The List : 2022 국내 베스트 앨범 10 by Yves

by Yves

다소 늦은 시점에, 지난 2022년의 대중음악을 돌아보는 결산 리스트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포스트 팬데믹을 맞이하던 작년, 대형 스타의 신보, 신예들의 약진, 중견 아티스트의 새로운 커리어하이 등 우리의 대중음악은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다채로웠습니다. 그 까마득한 스펙트럼 속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뛰어났던 열 장의 앨범들을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2022년은, 저의 활동이 아주 빈약했던 한 해이기도 합니다. 항상 저희 <온음>을 찾아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2023년 첫 글을 소개합니다. 그에 발맞추어, 필명을 기존의 XENITH에서 Yves로 변경하여 새롭게 시작해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본고는 필진 Yves 개인의 2022년 결산으로서, 웹진 <온음>의 총결산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본고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모두 2021년 12월 1일과 2022년 11월 31일 사이에 발매되었습니다.

* Honorable Mentions와 EPs는 아티스트명을 기준하여 가나다/알파벳 순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리스트 내의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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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able Mentions

 

김목인, 『저장된 풍경』, 일렉트릭뮤즈, 2022.07

 

박지하, 『The Gleam』, Self-Released, 2022.02

 

베이빌론, 『EGO 90’S』, Babylon, 2022.07

 

cotoba, 『4pricøt』, Self-Released, 2022.04

 

Lil Cherry & GOLDBUUDA, 『SPACE TALK』, ARTRA, 2022.04

 

Rad Museum, 『RAD』, you.will.knovv, 2022.03

 

Untell, 『HUMAN, the album』, talented,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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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s

 

유라 & 만동,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 문화인, 2022.11

 

NewJeans, 『New Jeans』, ADOR,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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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st

 

 

신지훈의 『별과 추억과 시』는, 올 한 해 제출된 수많은 싱어송라이팅 앨범 가운데에서도 가장 따뜻하다고 여겨지는 성질의 것 중 하나다. 듣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신지훈의 음색, 아름다운 현악 오케스트레이션과 적당한 드럼 프로그래밍, 가볍고 맑은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 그녀의 심경을 탁월하게 요약하는 인트로 「스물하나 열다섯」과 훌륭한 아웃트로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의 극적인 전개. 신지훈이 어떤 인물이냐와는 별개로 많은 이름이 별안간에 뇌리를 스친다. 장필순과 유재하라는 고전부터, 잔나비와 같은 우리 세대의 아이돌, 심지어는 Joni Mitchell이라는 커다란 이름까지, 실제로 『별과 추억과 시』의 소리가 직조되던 과정에는 이들의 이름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만이 『별과 추억과 시』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싱어송라이터는 그들의 디스코그래피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본인의 이야기를 앨범의 오브제로 삼거나 가공의 이야기를 꾸며 그것에 본인의 자아를 투영하고는 한다―이러한 두 특성은 본질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그렇기는 신지훈도 별반 다르지 않고 그녀의 데뷔 앨범 『별과 추억과 시』는 굳이 고르자면 전자에 해당하는 앨범이다. 그녀의 고해성사는 “스물하나 초봄”이나 “애달프던 열다섯”에 닿아 있거나 가족과 친구, 사랑하던 사람 등 10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을 향한다. 반드시 좋은 이야기만 다루고자 했던 건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이 되어 “구름 타고 멀리 날아” 하나의 앨범으로 그럴싸하게 재가공되었다. 발사된 로켓이 어느 한 지점에서 추진체를 버려야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별과 추억과 시』를 만들던 신지훈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억과 향수의 교차로에서, 과거는 반드시 미화되는가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신지훈이 간직한 수많은 추억 중 그 일부는 그녀를 계속해서 감정의 바다 저 깊은 곳으로 끌고 가 “더욱 더 모질게 나의 쓸모를 찾”는 행위를 반복하게 할 것이며 그녀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끊임없이 상기해줄 것이고, 혹은 언제까지고 다루기 어려운 것으로 남아 그녀를 힘들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 추억들에 안녕을 고한다고 그들을 아주 떼어 낼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이 존재하던 시간은 언젠가 과거가 되어 그녀와 멀어진다. 그렇게 나아가기 위해 신지훈은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날아 『별과 추억과 시』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긴 어둠을 서성이던 청춘이 남기고 간 의미”일 테니까.

* 본고는 일전에 작성한 글을 발췌한 글임을 알립니다.

 

 

『Cross』, 『Oracular Spectacular』, 『Sound Of Silver』 (이상 2007). 비슷한 시기 발매된 세 장의 앨범은 완전히 다른 앨범이지만,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었다. 하나는 젊음 특유의 혈기왕성함과 야망을 담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복잡하지 않은 드럼 패턴과 생생한 멜로디가 담겼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록 팬과 전자음악 팬, 혹은 더 넓은 범위에서 리스너와 평단과 같은 각기 상반된 집단 모두를 그럴싸하게 만족시켰다는 점. 저 앨범을 만든 이들은 모두 밴드이지만 또 완전히 달랐다. EDM 페스티벌을 찾는 이들의 취향을 저격하거나, 사이키델리아의 제2막을 열거나, 기타보다 신시사이저에 더 커다란 권한을 부여한 채 펑크 음악을 만들거나. 2010년대 초반, 이를테면 다른 악기나 목소리보다 신시사이저나 샘플러 등에서 나온 전자 신호에 부여될 수 있을 최대한의 권한이 부여된 전자음악이라면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저들의 성격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한 두 밴드가 등장했는데, 하나는 Idiotape, 다른 하나는 Glen Check였다. 어찌 된 일인지 한국의 평단은 저와 비슷한 결을 가진 음악을 모두 전자음악으로 간주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들은 한국 전자음악의 이상향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의 논의가 무색하게도 십수 년이 지난 현재, 『Bleach』를 통해 9년 만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Glen Check는 완연한 인디 팝 밴드가 되어있었다. 물론 여전히 과거의 그들과 맞닿아 있는 트랙들이 실려있긴 하다. 『Bleach』에서 가장 뛰어난 두 개의 트랙, 「Dazed & Confused」와 「Sins」가 그렇다. 저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 전형적인 팝 트랙 「Sins」는 다수의 취향을 적절하게 만족하는 유로 댄스 넘버이자 썩 좋은 멜로디가 동원된 신스 팝 트랙이었다. 그런가 하면 앨범이 발매되기 몇 달 전 선공개된 「Dazed & Confused」 역시 색소폰 연주가 없는 「Midnight City」 (2011)를 연상시키는, 젊음의 혈기왕성함이 녹아있는 근사한 트랙이었다. 「Acid Test」와 「Raving」의 경우에도 「60‘s Cardin」 (2011)이나 「The Naked Sun」 (2012)의 프렌치 하우스로 대표되던 과거의 그들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트랙이지만 그보다 더 치열한 고민을 거쳤을 신시사이저의 운용과 소리의 직조는 저와의 시간적인 간극을 새삼스럽게나마 체감하게 해준다.

“오늘을 살라!”는 주문을 외치는 강렬함과 감성적인 터치가 공존하는 「Dive Baby, Dive」, 이모 록의 문법을 담은 「Blush」나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따스한 감성을 빌린 「Bliss」에서도 느껴지듯,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에 오른 가창과 더 수월하게 이끌어가는 신시사이저의 운용, 더 수려해진 기량과 세련된 감식안을 통해 이들은, 이들의 디스코그래피 그 어떤 지점에서보다 많은 이들에게 성공적으로 팝 어필을 내보인다. Glen Check가 『Bleach』를 통해 “음악적 표백”이라는 팻말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Justice, MGMT, LCD Soundsystem이 가지던 매력을 적절하게 혼합한 밴드는 전자음악의 발전이라는 사명을 띤 밴드인 것이 아니라, 생생한 멜로디로, 또는 복잡하지 않고 모두의 취향을 아우르는 리듬으로 많은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밴드인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Glen Check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Bleach』야말로 Glen Check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청사진이다.

 

 

지난 몇 년간 국내 인디 록 필드에서는 뛰어난 슈게이즈 혹은 드림 팝 앨범들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TRPP는 유독 초기 슈게이즈와 드림 팝의 규범을 충실하게 이행하던 밴드였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Daydream Nation』 (1988), 『Heaven Or Las Vegas』 (1990), 『Loveless』 (1991), 혹은 『Souvlaki』 (1993) 가운데 당신이 저 규범의 정점에 있는 앨범을 무엇이라고 여기든, 저들은 그 규범상을 매우 충실히 재현했다는 이야기고, 『TRPP』 (2021)는 그에 더해 흥겨운 리듬과 적절한 선율이 뒷받침된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Here to stay』는 『TRPP』와 같으면서도 다른 앨범이다. coloringCYAN의 표현처럼 몽롱하면서도 잠들 수 없는 소리를 구성하는 엔지니어링이 지극히 장르적이라는 점에서 저 둘은 같고, 쟁글 한 꼬집, 포스트 펑크―Punk―는 담뿍, 「Pause」를 필두로 보다 가벼운 캐치함을 전면에 내세웠던 『TRPP』의 성공을 뒤로하고 『Here to stay』에서는 보다 짙은 농도를 띤 일렉 기타와 노이즈의 혼합물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저 둘은 다르다. 그런 『Here to stay』는 『TRPP』가 그랬듯 여전히 훌륭한 앨범이다.

보다 짙은 농도를 띤 소리를 들려준다고 서술하기는 했다만 『Here to stay』가 반드시 음울하거나 심각한 표정이 어른거리는 앨범이냐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템포, 그 위로 들리는 선명한 멜로디 등 앨범의 특성을 아주 잘 요약해주는 「Here to stay」는 정말 Cocteau Twins가 발표한 트랙처럼 들린다. 우리가 「Cherry-Coloured Funk」에서 Cocteau Twins가 선사하는 최상의 황홀경을 마주하는 것처럼, 「Here to stay」 역시 캐치함을 덜어낸 그들의 음악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다. 뒤를 잇는 「Clue」와 「Play」는 역동적이다. 마냥 맑기만 한 소리는 아니지만 경쾌함은 분명하고, 즐겁거나 서정적이기를 반복하는 이들의 연주에는 다음 16마디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한 「명상」은 훌륭하다. 조지환이 지목한 4분 20초 지점을 전후로, 얼마간의 서스펜스를 일순의 카타르시스로 보상받는 형태의 진행, 이것은 분명 슈게이즈와 드림 팝이 그간의 충직한 수요를 발생시켜온 주된 원인 중 하나일 것이고, 이미 앨범을 재생할 가치를 증명하는 첫 세 개의 트랙 이후 그 가치를 한껏 드높이는 트랙으로 부족함이 없다.

이는 꼭 마디 단위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간은 「Little boy / the darkest day」부터 「Oblivion」까지의 구간이다. 「Little boy / the darkest day」는 앨범에서 가장 음울한 소리를 들려주고 목소리도 한껏 낮아져 있다. 그러다가도 이들은 「Dodgy」와 「Rainbow spell」에서 저와는 다른 강렬한 광휘를 이따금씩 거칠게 드러내려 한다. 그러다가도 이들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시도를 감추고, 또 장막을 걷어내기를 반복한다. 저러한 완급조절이 완연히 해소되는 순간이 바로 「Oblivion」이다. 조지환이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하나의 정돈된 흐름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 중에는 이도 포함된 듯하다. 물론 이것이 『Here to stay』 만이 갖는 유별난 시퀀스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Here to stay』는 무작정 축 처져 있거나 일렉 기타와 노이즈의 두터운 층위로 우리를 끌고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저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PRIVATE PINK』는 『PAINGREEN』 (2020)과 보색 관계 같다. 한 쌍으로 묶이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더 대조된다.” 김효진은 2년의 간격을 두고 발매된 A.TRAIN의 두 앨범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실에 가깝다. 저 둘을 같은 한 쌍으로 묶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고독과 우울 같은 키워드, 그로부터 발생한 삶에 대한 니힐리즘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 손기호는 A.TRAIN을 ‘표류자’라고 일컬으며 『PRIVATE PINK』를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가학의 폭포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가 찾던 부표”라고 묘사했다. 그렇기는 『PAINGREEN』도 매한가지지만 A.TRAIN은 『PRIVATE PINK』가 저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다소 인과관계가 분명한 사유라고 밝히며 앨범을 연다. 초록빛 고통은 본인에게 심어진 씨앗이고, 그것이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해 발아했다는 이야기, 자신은 여전히 괜찮지 않은 상태이고, 여전히 자라야 한다는 이야기. 저 둘은 이런 점에서 같다.

그러나 사실은 어떻게든 저것이 발아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발생한다. 『PRIVATE PINK』의 몇 가지 표식들이 예증하듯 그의 우울은 그의 유년 시절과 가족사에서 착상했다. 물론 이에서도 마침내 서로 간의 유대를 확인하고, 저들을 향한 원망의 대물림이 끊어지고, 가슴 시리도록 절절한 해후를 맞이하는 결말은 찾아볼 수 없다. A.TRAIN은 떠나간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여전히 유년 시절의 그가 더 행복했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바꾸는 등 유년 시절의 그를 부끄러워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의 아들로 살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말을 빈말로나마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성했고, 잿빛 하늘에 신이나 우중충한 색채의 옷들을 고르는 것 이외의 아름다움을 궁금해하는 등 시야가 넓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림대병원」에서의 동떨어진 이야기를 크게 괘념치 않는 것이 그의 의도를 묵살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 당연하게도 언젠가 죽어 뭍으로 돌아갈 테고, 그것을 눈앞에 두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누려야 할 운명이니까.

『PRIVATE PINK』는 그럴싸한 컨템포러리 알앤비 앨범이지만, 장르적 전형을 충실히 이행하다가도 이따금 그것을 교묘하게 비껴가는 모양새다. 네오 소울의 리듬과 서보경의 색소폰 연주가 겹쳐지는 「SOMETHING BEAUTIFUL」, 완연한 체임버 팝 트랙 「사실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일지도」, 90년대 한국 포크의 정서가 깃든 「식물」 등 그 방식도 『PAINGREEN』의 그것과는 다른 듯하다. 그런 『PRIVATE PINK』를 통해 관측할 수 있었던 그의 내면에는 파스텔 톤의 색상환의 반대편에 있을 두 색상이 공존하고, 죽음이라는 심연을 응시하는 이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이가 공존하며, 폐쇄적인 아티스트와 사교적인 수완가가 공존한다. 또 『PAINGREEN』에서의 화자가 온전히 자신이었음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열등감, 좌절감, 수치심과 같이 자신을 옭아매고 갉아먹던 감정들과 결별하거나 결별을 준비하는 순간을 『PRIVATE PINK』는 담는다. 우리의 삶에는, 참과 거짓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명제들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진위가 상관이 없어진 명제들이 공존할 수 있거나 공존한다는 것, A.TRAIN도 그런 운명을 언젠가부터 이해하게 된 듯하다.

 

 

싱어송라이터 야야 킴의 『a.k.a YAYA』는 정말 말 그대로 섬광처럼 나타났다. 그녀가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것은 8년 만의 일로서, 이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전작의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날이 치솟는 것이 아니고서야 화젯거리가 되기는 어려웠을 테다. 하지만 『a.k.a YAYA』는 기어이 올해 최고의 앨범을 거론하는 장에서 떡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러니까 『a.k.a YAYA』는 이미 보통의 경우가 아닌 셈이다. 차디 찬 겨울 어느 날 나타난 새빨간 앨범 커버, 33개의 트랙, 2시간을 우습게 넘기는 러닝 타임을 보라. 하나의 앨범을 간편하게 규정지어줄 수 있을 장르의 이름을 찾기란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려워 보이고, 하다못해 『a.k.a YAYA』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감상하는 일에는 출발선에 선 마라토너의 다짐만큼이나 굳센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인다.

애플 뮤직에 의하면, 『a.k.a YAYA』의 장르는 케이팝이다. 이것이 다소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진 분류라는 걸 감안해도, 케이팝의 탈장르적 위치와 특성을 고려하면 꽤나 그럴싸한 분류가 될지도 모른다. 이게 정말 맞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블루지한 전개의 트립 합 트랙 「분노는 나의 힘」, 펑크―Funk―록 트랙으로서 그루브가 탁월한 「오늘 밤은 나의 것」, 라틴 음악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Esta Noche」, 피아노와 드럼의 연주가 앞다투어 맹렬히 싸워대는 재즈 트랙 「맹수로 살아남는 법」과 같은 트랙들을 도저히 하나의 단어로 간단명료하게 묶어서 정리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이것은 앨범의 단위로서만 갖는 특질이 아니다. 가령 「Frame」과 같은 트랙의 장르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있겠는가. 이쯤 되니 라이너노트에 적힌 디스크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 비관적이고, 음침하고, 염세적이거나, 스산한 내용의 가사로 점철된 『a.k.a YAYA』지만 어떤 트랙이든 놀라운 지점들이 반드시 하나쯤은 포함되어 있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번뜩이는 지점들이 넘쳐흐른다. 이것이 우리가 『a.k.a YAYA』를 치켜세우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발매되는 앨범의 길이가 가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전히 장대한 크기의 앨범은 발매되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도 『a.k.a YAYA』는 더블 앨범도 아니고 무려 트리플 앨범이라는 점에서 더욱 유별나다. 보통의 대작은 하나의 항성만큼 커다란 에너지가 최대한 응축되거나, 개개의 트랙들이 오롯이 한 방향을 가리키거나, 유려하게 흘러가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그리고 그 요구에는 유기성, 응집력, 일관성 등의 단어를 동원해 대작의 흠결을 짚어낼 것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야야 킴은 수년에 달하는 작업 기간 내도록 이러한 경향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더 유별난 것이다. 물론 『a.k.a YAYA』에도 사소한 기복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럼에도 야야 킴이 대동한 수많은 트랙과 세션과 장기와 무기들은 도리어 우리를 철저히 무장해제의 상태로 만든다. 『a.k.a YAYA』는 보통의 앨범이 아니다.

* 본고는 일전에 작성한 글을 발췌한 글임을 알립니다.

 

 

한국에서 전자음악에 관한 논의가 몇 년씩이나 늦춰진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수요와 공급, 내수 시장의 특성에 관한 문제는 둘째치고, 가장 큰 문제는 기성 평단의 안일한 논의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한 해 최고의 전자음악 앨범을 고르는 데에 인디 신스팝 밴드와 케이팝 아티스트가 기성 평단의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저들은 게을렀고, 또 저들은 “기계음 논쟁” 따위의 지엽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양산되는 것을 방관했다. 이에 대해 두런대는 자리가 아닌 만큼 간단히 줄이도록 하겠다. 그런데 이런 풍토가 이제는 젊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전자음악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에서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소위 Soundcloud와 스트리밍 플랫폼의 시대를 지나면서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기술적인 기량 자체가 나날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잠재력만큼은 유례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를 지나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테다. Wona는 그 가운데서도 꽤 주목할만한 이름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Happy Trippy Creepy』는 『Thanatoid Butterfly』 (2020)를 습작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로 훌륭하다. 조지환은 “노래는 어떻게 유령의 집이 되는가?”라며 「Too Many Jellies」의 스산한 서스펜스에서 느껴지는 장력을 언급했지만, 「LIL SSANAI」나 「Go!」가 재생되는 순간 우리는 영락없이,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하시엔다의 댄스 플로어 위에서 정신을 잃고 춤을 추는 사람이 된다. 다만 이는 순전히 내가 느끼거나 공감하는 특성과 사안으로, 다른 누군가는 스산함 속에서도 극도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도 있고, 혹은 이글거리는 베이스와 역동적인 리듬 속에서 기이함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Happy Trippy Creepy』의 제목은 아마 이런 이유로 정해졌으리라. 특정한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신시사이저가 어떤 플러그인과 라우팅되어 재가공되는지, 혹은 브레이크비트와 UK 드릴이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되어있는지와 같은 지리멸렬한 설명이 없이도 서술이 가능할 정도로 직접적이거나 가시적인 경험과 인상은 『Happy Trippy Creepy』의 많은 것을 설명하는 듯하다.

완성된 『Happy Trippy Creepy』를 가장 먼저 들었을 사람 중 한 명일 정병욱은 Wona를 탐미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그가 작성한 라이너노트에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서술되어있기는 하다만, 사실 그렇게까지 와닿는 이야기는 아닐 터다. 『Happy Trippy Creepy』를 듣게 될 많은 이들은 Wona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없고, 치열한 공정이 이루어지던 작업실의 풍경을 엿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Happy Trippy Creepy』를 나름의 서사가 담긴 앨범이라고 그 지위를 부여하는 쪽은 갖가지 신시사이저에서 흘러나오는 전자 신호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Wona인가, 아니면 그 품질에 깊이 감복한 다른 누군가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Thanatoid Butterfly』 이후의, 이를테면 리믹스 앨범 『Resurrected Butterflies』 (2021)나 cjb95와의 협업 프로젝트 『MORPH』 EP (2022)에서 드러나던 시도와 탐구의 흔적이 『Happy Trippy Creepy』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그녀에게도, 구부러진 파형과 거친 질감의 마감 처리, 역동적인 진행과 리듬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이 남아있는 듯 보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SAAY의 두 번째 정규 앨범 『S:INEMA』에서 그녀는 알앤비와 관련된, 가능한 모든 범위의 선율과 리듬, 혹은 전경 그 자체를 우리에게 내보인다. 가까운 시점으로는 Janelle Monáe와 SZA, 혹은 Corinne Bailey Rae와 Beyoncé가 있고, 먼 과거의 시점으로는 Prince와 Sade, 혹은 D’Angelo가 있다. 그런 앨범 내에서 SAAY는 교태롭거나 고혹적이거나, 때로는 리드미컬하거나 신명 나게 뛰놀기도 하는 등 도저히 하나의 앨범에 담겨 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레퍼런스를 직접 체현한다. 국적을 막론하고 작금의 알앤비 아티스트가 고전을 넘어 교양의 영역에 자리한 아티스트를 동경하고 그들의 유산을 다루는 앨범을 만든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다만 감히 예상컨대 Frank Ocean도 질겁할 수준의 인물풍경화가 아로새겨진 『S:INEMA』가 한국 알앤비 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앨범은 아닌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S:INEMA』를 만들던 SAAY에게 영감이 되었을 법한 이들을 주욱 나열해보자면 그 길이는 아마 Solange의 『A Seat At The Table』 (2016)의 크레딧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길 테다. 「Sh*t Makerrrrrrrr」, 「Tint」와 같이 Kehlani와 SZA 등 현대 컨템포러리 알앤비 씬을 그대로 복각해놓은 것과 다름없는 트랙들부터, 「Summer In Love」, 「Caffeine!」과 같이 팝 어필이 돋보이는 트랙들과 밀레니엄 이전의 알앤비에서 통용되던 후덥지근하고 매끄러운 음색과 습윤한 점성을 느낄 수 있는 「ALARM」이나 「Believe, Be Live」와 같은 트랙들까지. 그뿐만이 아니다. 소싯적 Prince가 엿보이는 풍부한 록 사운드가 담긴 「ROCKY」나 후렴구의 아날로그 신스 리드가 기가 막힌 「Sweet As Hell」 등 다양한 색상의 콜라주와도 다름없는 이것은 작금의 한국 알앤비 씬에서 쉬이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나이가 토성의 공전 주기와 비슷해지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테지만 유독 SAAY는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자신 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물론 「Interstellar」와 「Talk 2 Me Nice」가 연달아서 등장한다는 사실에서 엿보이듯 썩 정돈된 구조의 서사는 아니다. 하지만 SAAY는 본인의 이야기를 카드 덱을 펼치듯 펼쳐놓고 우리가 가져가고 싶은 것만 양껏 가져가기를 종용한다. 개인의 우울, 연인과의 이별과 같은 감정적인 이야기부터 듣는 이의 열정을 고양시키거나 자신의 주체적인 면을 언급하는 태도까지 선택지는 꽤 다양한 편이다. 인생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청각적 몽타주와 미장센이 즐비한 『S:INEMA』는 SAAY가 연출한 영화와 다름없다.

* 본고는 일전에 작성한 글을 발췌하여 수정한 글임을 알립니다.

 

 

“길을 잃는 것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 250의 『뽕』은 애당초 그의 의도가 아닌 소속사 BANA의 제안에서 출발한 앨범이었다. 그것이 2014년이었다고 250 본인이 회고했으니 『뽕』을 찾는 여정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한 셈이다. BANA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의 첫 배경이 된 2017년 여름 이후 「이창」을 내놓기까지 1년, 「휘날레」의 애수적인 선율과 감성의 목소리를 위해 오승원을 찾는데 2년, 「로얄 블루」의 데모에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를 녹음하는데 또 다른 몇 년을 소모하는 등 250은 때때로 길을 잃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원하는 곳이 아닌 곳에서 시작된 모험, 그 속에서 길을 잃기를 마다하지 않고, 트로트 열풍의 당사자도, 80년대 밤거리를 노닐던 이들도 들을 것 같지는 않을, 한국 사람이라면 “너무 잘 알고 있을” 음악이 담긴 앨범을 만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Untrue』 (2007)를 만들던 Burial도, 『Random Access Memories』 (2013)를 만들던 Daft Punk도 이러지는 않았으리라. 하다못해 그는 『뽕』을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도 E SENS를 위해 곡을 썼고, 이태원의 클럽 모처에서 광란의 파티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뽕』은, 어쩌다 보니 그게 재밌어졌다는 등 창작의 낙관적인 면으로 서술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정도로 아주 독특한 결과물이다.

지난해 선공개된 「뱅버스」를 비롯, 「사랑이야기」, 「바라보고」와 같은 트랙은 우리가 흔히 ‘뽕짝’이라고 부르는 ‘7080 불타는 고속버스 식’ 디스코 트랙의 흥겨운 분위기를 따른다. 그런가 하면 앨범을 여닫는 「모든 것이 꿈이었네」와 「휘날레」 같은 트랙은 절절한 신파와 애환을 저마다의 감성으로 녹여낸다. 고속도로 휴게소 한편에 마련된 출처를 알 수 없는 테이프를 파는 매장, 어두운 바에서의 은은한 불빛 아래 놓인 국산 양주와 말보로 레드, 촌스러운 글씨체의 콜라텍 공연 광고지 등 우리가 『뽕』이라는 단어에서 막연하게 떠올리는 몇 가지의 이미지와 『뽕』의 트랙이 선사하는 이미지는 놀랍도록 일치한다. 주제와 심상을 표현하는 작업으로써의 『뽕』도 훌륭하지만, 250이 지평 삼는 전자음악 즉, 소리와 소리, 혹은 그 성격을 저울질하는 것이 요구되는 앨범으로써도 『뽕』은 훌륭하다. 트랙의 전개에 있어 「뱅버스」, 「이창」, 「레드 글라스」는 특기해야 할 매력을 갖췄다 볼 수 있으나, 「로얄 블루」가 가장 복합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속성을 대표하고, 또 앨범 안에서도 가장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808 베이스의 글라이드부터, 요란한 히트, 이정식의 기가 막힌 색소폰의 블루지한 연주와 저를 뒤따르는 휘파람 소리 등의 효과음에 이르기까지, 「로얄 블루」의 요소들은 우리를 흥과 신파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도록 만든다. 이러한 속성은 『뽕』이 여전히 하나의 단어로 정리할 수 없는 단어이거나 앨범이라는 사실과 이음동의다.

coloringCYAN은 『뽕』의 이름을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쉬이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을 감성 중 하나라고 칭했고, 장유정은 『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런가 하면 이준영은 『뽕』이라는 단어가 다분히 하위문화적이고 절대 고급스러운 낱말로 다가오지 않거나,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도 고급스러운 의미를 담아서 활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뽕』은 당연히 세련되지도 않았고 250 본인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 아니고서야 작금의 그 어떤 클럽이나 바에서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한국 대중음악의 외래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250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것과는 별개로 백만의 추종자를 만들 수 있을 앨범도 아니다. 그러나 세련된 멋을 추구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촌스러움, 삶의 애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그 감성, 마냥 향락적이지도, 또 마냥 슬프지만도 않은 반세기 전 밤거리 풍경이 어른거리는 그 음악의 총체를 굳이 『뽕』이라고 불러야 하겠다면 『뽕』은 성공적인 일종의 연구 성과다. 『뽕』은 창작자가 작품을 위해 어디까지 노력을 쏟을 수 있을지, 또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바라볼 수 있을지 보여주는 사례 중 가장 독특한 부류로서, 작편곡 과정에서의 치열함이 이룩한 성과 외에도 맺은 결실이 더 있는 것처럼 보인다.

 

 

Claude Monet의 『푸르빌의 절벽 산책로』, Vincent Van Gogh의 『밤의 카페 테라스』, 심지어는 Tame Impala의 『The Slow Rush』 (2020)의 앨범 커버까지, 『도마』는 저들과 같은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저 풍경들에는 해, 달, 별과 같은 천체로부터 오는 천연적인 빛과 은은한 스탠드나 가로등부터, 번쩍이는 네온사인까지의 크고 작은 인공적인 빛이 공존하거나, 장소의 크기 혹은 천장의 고저와 관계없이 저 안의 사람이 필히 약하게나마 고립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인상이 서려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저 안의 사람이 되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유독 눈에 띄는 윤슬을 응시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감상에 빠지거나, 혼자 남은 방에서의 고즈넉함에 육신을 의탁하는 등의 경험 말이다. 『도마』는 저들과 같은 경험이나 기억의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모으고 모아 만든 하나의 일기장이다. 이 일기장에서는 막연한 외로움이나 잠시나마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 외로움을 느끼고 싶다는 약간의 갈망이 느껴진다. 그 속에는 내밀한 감정의 움직임이 있고 또 실오라기 한 올 만큼이나마 온기가 느껴지는 불특정한 풍광이 존재한다. 『도마』의 묘사는, 그 설명하기 쉽지만은 않은 마음들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분명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서울」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발끝마다 채이는 방법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 어두워질 줄을 모르는 창문, 고요함은 가격이 오르네.” 저 값비싸지는 고요함은 두 개의 의미로 읽힌다. 하나는 우리가 바쁜 나날 속에서 고요함을 마냥 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만큼 고요함을 필요로 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를 어떻게 이해하든 『도마』의 화자는 많지 않은 그 기회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더 세밀하게 다루고 느끼려 하는 것 같다. 가령 「서울」이 이 서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듯, 「잠든 마음」에서의 잠 역시 단어 그대로의 잠이 아닌 것 같다. 「잠든 마음」의 화자는 각종 외부 신호를 모조리 무시해버린 채,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마음만을 마주한다. 이 공상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소식”은 앞에서의 고요함만큼 값비싼 것이라, 그 누구에게도 쉬이 보여줄 수 없고, 그러기는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추는 시간, 심지어는 고요함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커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미덥지 않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간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화자는 머뭇거리지 않고 긴 밤을 걸어 앞으로 나아간다. 「화양연화」와 두 곡의 「겨울 발라드」에서 화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끌어안고, 본인만 알고 추던 춤을 비로소 함께 추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는 건조해져만 가는 그 마음에 불어 넣어진 습윤한 기운이다.

두 곡의 「겨울 발라드」에 눈길이 간다. 「겨울 발라드 (김도마 Version)」은 완연한 체임버 팝 트랙이고, 「겨울 발라드 (거누 Version)」은 약간의 편곡이 가미된, 어쿠스틱한 포크 트랙이다.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습윤하지만 점성은 없고, 건조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서도 포근함이 느껴진다. 두 곡의 「겨울 발라드」에서 각각의 화자는, 내리는 눈 속에서 길을 잃어보자고 서로에게 제안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눈감고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각자의 발걸음을 내딛거나, 흘러가는 물결에 몸을 맡긴다. 「겨울 발라드 (거누 Version)」이 『도마』의 아웃트로가 되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조지환의 말처럼 쓰인 악기가 다르거나, 꼭 으뜸화음으로 마무리되어서가 아니라, 김도마와 거누가 각각의 화자가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도마』가 발매된 배경을 우리는 알고 있듯이, 이 선택의 배경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겨울 발라드 (거누 Version)」를 듣고 있노라면 꼭 이들이 고요함을 갈구하는 삶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예증하는 것만 같다. 우리의 마음은, 그것이 잠이 들어있든,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든, 누군가를 향해 활짝 열려있든 그 여부와는 관계없이 항상 값비싸다는 것을. 『도마』는, 무심코 일상을 살아가던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지그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 시간 동안만큼은 길을 잃어도 좋으리라.

 

Album Of The Year! 2022년 한국 전자음악 씬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움직임 중 하나는 SoundSupply_Service의 도약이었다.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던 『SCA1 (SIDE A)』 (2021)로 처음 윤곽을 드러낸 이후, 이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 전자음악 레이블을 둘러싼 인물들은 여러 번씩이나 본인들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시켰다. NewJeans의 대성공에 지분이 있던 XXX의 FRNK와 Balming Tiger의 일원으로 잘 알려져 있을 이수호를 비롯, 힙합 팬들에게 익숙할 Beautiful Disco와 cjb95 그리고 작금의 전자음악 씬 안에서도 독특한 부류의 앨범을 발매한 oddeen과 Wona 등 이들은 글로벌 팬데믹으로 인해 전자음악 씬 전체가 유례가 없던 타격을 맞았던 와중에도 결코 간과할 수 없을 성과를 거뒀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 바로 김도언의 『Damage』다. 『Damage』는 종종 네오 사이키델리아 혹은 앰비언트 팝, 프로그레시브 일렉트로닉 앨범으로 분류되지만, 내가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이름은 사운드 콜라주다. 물론 작금의 사운드 콜라주는 어느 정도 아방가르드와 인더스트리얼의 후손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학구열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학구열은 무작정 많은 신시사이저와 가상 악기를 활용하거나, 너무 많은 샘플을 하나의 트랙에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레 DAW 한가운데로 불려 나온, 서로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소리와 소리가 한 트랙 안에서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사라지는 것을 조율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사운드 콜라주에서의 학구열이다.

그런 점에서 『Damage』는 꽤 훌륭한 사운드 콜라주 앨범이다. 가령―일전에 이야기한 대로―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트랙인 「SaGA」와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을 예시로 들어보자. 이 두 트랙은 공통되게 트랙 중간에 분기점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 4박자에서 3박자로, 후자의 경우 3박자에서 4박자로 바뀌는 지점이 그렇다. 이 경우 박자가 바뀐다는 것에 의미를 최대한 부여하기 위해서 템포와 코드의 진행, 전후의 분위기 등 고려했어야 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 김도언은, 「SaGA」에서는 소리의 두꺼운 층위를 상향하는 멜로디와,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에서는 목가적인 피아노 연주를 긴박한 분위기와 파형의 왜곡, 산발적인 노이즈와 적절하게 병치하며 훌륭한 각기 트랙을 만들어냈다. 이 점은 비단 두 개의 트랙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닌데, 프로듀서 Fisherman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Green Screen」에서는 Fisherman의 정규 앨범 『The Dragon Warrior』 (2020)의 몇몇 트랙에서 들어봤을 법한 소리가 김도언이 내놓은 바탕과 함께 적절하게 직조되어 있고, 「Portal」에서 역시 박자의 변환을 통해 트랙을 이어나가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단순한 진행이 요구되었을 3박자의 앰비언트 팝 트랙 「요새」에서는 프로듀서로서의 완급조절이 아주 잘 나타나고, 현악 중주 트랙 「Stock Quartet」에서는 탁월한 작곡 능력까지 확인할 수 있다―덧붙여 트랙의 후반부 피아노의 독주 파트에서 현악기를 활용하는 방식은 아주 훌륭하다.

물론 『Damage』는 굉장히 눈부신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공략할 수 없는 독립성이나 독창성, 혹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창의력이 발휘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본디 저들은 비범한 천재의 머릿속에서 형광등이 켜지듯 생겨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우리가 고르는 과정에서 돌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 아니던가. 김도언은 『Damage』를 통해, 그렇게 발견한 신호를 최대한으로 모아두려 노력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모든 소리는 근본적으로 쓸모 있는 재료일 뿐이고 그렇기는 사람의 목소리도 매한가지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피처링으로 목소리를 보탠 6명의 아티스트를 선별하는 과정에는 적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들이 쓰고 부른 가사가 감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저들의 목소리 그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저들을 의식하고 트랙을 만들었다지만 「꿈 속의 춤」에서 이민휘만큼 구슬프고 음산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면, 「Newbie」에서 이랑만큼 덤덤하고 분명하게 목소리를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또는, 「요새」와 「Prophet」의 So!YoON!과 김한주처럼 자신의 목소리에 갖가지 효과가 덮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 이 점에서도 김도언의 작편곡 능력은 여실히 드러나고, 산발적인 아이디어와 뜨거운 학구열이 융화를 이루는 8차선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악곡을 완성한다는 능수능란함은 아주 훌륭하다.

전자음악 아티스트의 훌륭한 정규 앨범이 어떤 움직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귀중하다. 2022년의 가장 커다란 화두 중 하나는 바로 포스트 팬데믹이었다. 그것이 현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Damage』는 지난 5월 발매되었고, 그 직전에는 이 지긋지긋한 팬데믹이 마침내 과거의 일이 된다는 기대감에 모두가 한껏 취해있었다. 그 시기 발매된 대부분의 작품 뒤에는,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던 수많은 아티스트, 각종 무대를 마주할 리스너들까지, 모두가 이어폰이 아니라 준비된 시설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그 기대감이 있었다. 김도언은 시기를 잘 탔다. 그리고 그 시기를 아주 잘 활용하여 『Damage』를 사유할 수 있는 다른 다양한 물리적인 환경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어떤 영화를 용산 아이맥스에서 봐야겠느냐 코엑스 돌비시네마에서 봐야겠느냐 하는 등의 선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수많은 사람과 함께, 한 자리에서 동일한 음악을 들으며 저마다의 호흡을 가져간다는, 그 한동안 망실할 수밖에 없었던 감각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자음악 아티스트가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랬지만 작금에 와서 더욱 어려운, 창작의 낙관적인 면으로만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이를 주목하는 이들도 줄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김도언과 그의 정규 앨범 『Damage』는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괄목할만한 행보를 보였고 그런 면에서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거둬들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전자음의 향연에서 자연을 연상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가상과 실재를 모두 현실 아래에 둘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폭력과 무구함의 경계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을 이미 알고 있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발매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현재까지도, 『Damage』는 여전히 당시의 우리가 마주했던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의 행렬 끝에는 몇 가지 질문들이 더 이어지곤 했다. 그러니까 가령, 앞선 문단의 내용이 앨범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과연 주요한가, 오프라인 행사를 주최할 수 없는 처지의 전자음악 아티스트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가와 같은. 그럴 때마다 나는 특정한 음악이 불가항력으로 사람을 다른 공간으로 끌고 갈 때가 있다는 다소 수사적인 표현과 함께 훌륭한 음악이라면 대개 이런 힘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처음 「요새」를 들었을 때 나는 분명 소리나 박자와 함께 발을 맞추어 걷고 있었고,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의 분기점에서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나아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 「Green Screen」이 끝나자 나는 저 안에서 돌아갈 곳을 찾아야 했으며 이내 다시 이민휘의 목소리와 함께 「꿈 속의 춤」을 추었다. 나는 지난여름 진행된 몇 행사에서도 이와 동일한 경험을 했으며, 이 경험은 부차적인 요소로 정리되기엔 너무나 근사했다. 저러한 경험을 한 이가 나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그 각각의 경험들은 환호하고, 땀 흘리고, 하나 되어 뛰노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때로는 그저 걷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그저 살아 숨 쉬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할 수도 있는 법이다. 『Damage』는 최소한 그런 면에서는 타의 추종으로부터 멀리 달아난 채로 가장 근사했다.

* 본고는 일전에 작성한 글을 발췌하여 수정한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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