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Review―
3rd Quarter
MUTO는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 미디어 아티스트 홍찬혁,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와 음악 프로듀서 신범호(ZEZE, IDIOTAPE 멤버)가 뭉친 아트 프로젝트로, ‘광활한 대지’를 뜻한다고 한다. 박우재는 거문고를 활로 켜는 등의 독특한 주법으로 현대 음악적 선율에 독창적인 질감을 부여하고, 신범호는 이에 걸맞게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하거나, 직접 비트를 이끌어 간다. 이를테면 「Straight Line」 – 「Gon」 – 「Mountain」이 전술한 방식의 대표 예시라면, 「Harm」 – 「Sonnet」는 신범호가 주도하는 테크노 비트에 현을 뜯으며 국악적 색채를 덧칠한다. 「Red Moon」 – 「Wintre」는 MUTO라는 이름과 각 곡명에 걸맞는 광활하고 환상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치고, 「Seven Blind Men」은 리듬 트랙을 다시금 어지러이 강조하며 가장 비장하고 긴장되는 마무리를 짓는다.
리드 싱글이자 오프너 「Overdose」의 비트는 심해를 떠올리는 울림과 만나 꿈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걸이처럼 들린다. Uman Therma(a.k.a. Sala) 그리고 Yetsuby(a.k.a. Manda) 이 두 명의 DJ로 구성된 팀은 미니멀리즘, 앰비언트 색채를 짙게 풍기면서도 댄서블한 감각을 잊지 않는다. 「Rumble Bumble」의 아프로한 비트와 역주행 레코드는 힙합처럼도 들리고, 「Coconut Warrior」의 규칙적인 리듬, 「Hard Luck Story」의 두터운 베이스는 가히 뱅어라고 부를 만도 하다. 정규 앨범만 벌써 세 장 째인 이 팀의 금번작이 전작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앨범 전체에 걸쳐 ‘목소리’를 이용하는 데 있다. 일렉트로닉 악곡에서 보이스 샘플을 사용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작법 자체를 컨셉트 화 하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Coconut Warrior」와 「Catching Tails」의 아기 꾹꾹이 소리 같은 샘플은 Boards of Canada의 음산한 인용을 연상케 하고, 샘플링 컨셉트의 특징이 가장 도드라지는 건 「Mad Cat Party」에서 고양이 ‘Ringo the Cat’의 울음소리를 이용하는 장면일 테다. 이 링고 경의 목소리에 매료된 사이, 저 멀리에서는 팡파레를 알리는 신디사이저가 유유히 지나간다. 이러한 장면 장면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두 ‘꿈 같다’는 한 마디로 해치우는 건 간단하다. 그러나 소위 ‘꿈 엔딩’이 밈이 된 이유는 이야기를 내부논리적으로 맺지 못하고 여태 쌓은 서사를 무효하게 만드는 허무함과, 그 충격이 충격으로 남지 못하고 진부해져서 더는 의의를 찾기 힘들기 때문 아닌가. 본작은 그러한 진부해진 지점을 역이용해, 샘플링 작법을 축으로 삼아 소리의 움직임을 응집하여 본작만의 차별화를 꾀한다. 그 점에서 특별하다.
DIY 슈게이즈 아티스트들이 모여 꾸린 공연 《Digital Dawn》은 올 국내 음악을 짚을 때 빠뜨리기 힘든 사건일 것이다. 파란노을의 후속 EP를 비롯해 Della Zyr, Fin Fior의 앨범 발매 등으로 그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가장 활발히 움직인 아티스트 중 하나로 Asian Glow는 올해 특히나 비약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콜라보레이션을 포함한 EP만 세 장을 넘기고, 싱글과 리믹스, 라이브 등의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정규 앨범이 되는 본작 『Stalled Flutes, means』은 그 가운데서도 특출난 완성도를 자랑했다. 미드웨스트 이모 록의 기반을 가져가되, 현악기를 이용한 오케스트레이션 구사나 더 강하고 극적인 드럼 연주 등을 연출하며 앨범 단위 전작 『Cull Ficle』(2021)과도 차별화한 지점을 보인다 — 「Faltering Waver」가 대표적이다. 얼핏 악곡 간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 보이는 장르 특성 상, 스타일을 유지한 채 확연한 변화 지점을 만들어내는 점은 흥미롭다.
래퍼 넉살은 『1Q87』(2020) 등의 앨범에서 밴드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구사했고, 펑크(funk) 밴드 까데호는 『FREEBODY』(2020) 등에서 블랙 뮤직 그루브에 충실하고 탄탄한 연주를 선보여왔다. 그렇게 넉살과 까데호의 만남은 의외이면서도 납득이 가는 조합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기대에 가장 걸맞는 트랙일 「굿모닝 서울」은 가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곡이다. 까데호의 미니멀하고 타이트한 연주 위로 넉살은 유연하게 박자를 타며 상경(上京)자의 삶을 묘사하고, 구수한 훅을 따라 읊조리게 만든다. 「알지도 못하면서」처럼 속도감 있는 싱글도 흥겹고, 즉흥 연주 트랙도 본래 까데호의 색을 다시금 경험한다. 전반적인 음색과 구수한 감성은 일정한 톤앤매너로 준수한 협업 작품을 완성한다.
최근, 생존은 곧 저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말의 맥락과 별개로 우리는 흔히 맹수를 맞닥뜨렸을 때 죽은 척해서 그것이 지나가게 하라는 조언을 종종 듣는다. 그 실효성 여부는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인식상 죽은 척하기란 적에게 대항할 방도가 없을 때 마지막 저항책인 것이다. 포크 듀오 시옷과 바람 멤버로도 알려진 해파의 솔로 앨범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이가/이에게 보내는 노래 모음이다. 생의 의지를 다잡아주는 조그만 도피처—「Safe Haven」—는 오히려 집중되는 질량에 짓눌리곤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쁘게 아름답게」 있기를 주문하는 천진한 왈츠는 단조로 전조하는 순간 아티스트의 말마따나 물이 차오르는 듯하며 개인의 — 여성의 — 숨을 옥죈다. 그렇게 주문된 삶을 완성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은 두 감정 사이에 화자를 침잠하려는 물은 오히려 간극을 매개로 흐르는, 생명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모든 게 불안하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아요”(「혼잣말」). 마지막에 울리는 오르골 소리(「다음번에 갈 때는」)와 같이, 노래가 끝나더라도 곧이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삶을 은유하는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몽롱한 상태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두 프로듀서, cjb95와 Wona의 트립합 프로젝트 EP는 힙합 비트의 둔탁한 질주감과 애시드 하우스 식 몽롱한 질감이, Wona의 떨리는 팔세토와 해체적 샘플을 매개로 거칠게 충돌한다. 소름끼치는 오르간과 디스토션된 기타 사이로 언뜻 감미롭게도 들리는 보컬이 위태롭게 오가는 「Euphoria」, 반대로 두텁게 질주하는 베이스 드럼 위로 Beth Gibbons 마냥 절절하고 소름 끼치는 보컬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Metamorphosis」 등…. 그들이 본작을 통해 Portishead의 매캐한 그루브와 Massive Attack의 노이지한 트립을 한꺼번에 재현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결과물일 테다.
『콜라보 씨의 일일』(2017)에서 ‘콜라보 씨’가 거닐며 소요한 풍경을 아름답게 기억한다면, 이번에 새로 『저장된 풍경』 역시 따듯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포크 앨범이다. 「도심산책」과 「디깅」의 거리 묘사는 도시가 이토록 온기를 지닌 곳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하고, 「다르다는 건」의 기타 코드 전개는 짧은 소절 안에서 감상의 낙차를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시대 한산해진 전시장•무대의 싸늘한 풍경 또한 숨기지 않으며, 보사노바 혹은 컨트리/블루스 리듬을 차용한 「세상의 뒷면」, 「낮달」도 색다른 풍경으로 갤러리를 수놓아준다. 그러한 잡상들을 나란히 정돈한 리얼 세션과 코러스의 섬세한 엔지니어링 또한 본작을 감상하는 데 크나큰 역할을 맡을 것이다.
가수 Babylon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인 본작 『EGO 90’S』는 그 실질적인 내용 이전에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와 맥락이 흥미롭기 그지 없다. 90년대 한국 R&B 가요 복고라는 컨셉트 하에 꾸린 거대한 볼륨과 탄탄한 내실, 한때 가요계를 휘어잡은 선인들을 비롯한 온갖 가요계 동료들을 불러모은 블록버스터 급 게스트 진, 그리고 그 가운데서 Babylon 스스로 수준급 가창력을 통해 자기 작품을 꿋꿋이 이끌 능력을 갖춘 아티스트라는 것을 내보인 점 등에서 말이다. 나얼을 비롯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진의 면면도 이 대대적인 복고 프로젝트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내용에 있어서도 슬로우잼, 스무스 소울과 같은 보컬 위주 발라드와 더불어 뉴잭스윙과 같은 당대 컨템포러리 댄스 팝까지 폭넓은 표현 범위를 자랑한다. 이를테면 「잘 어울려」, 「같이 걸을까」 등의 감미롭고 직설적인 매혹은 확실히 근래 들어 드물어진 화자 전형인 듯하고, 「비가 와」의 축축한 무드와 「블루 하트」의 당대 전형적인 댄스 넘버는 당시 힙합 비트와 펑크(funk) 리프가 사용되는 대조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대중 매체에서 종종 보이는 90년대 복고적 움직임 가운데 독립적이면서도 음악 면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앨범 프로젝트로서 준수한 성취를 이뤄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심연을 마주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소위 ‘신이 죽은’ 시대라고 한들 여러 민중은 여전히 종교적 규범을 필요로 하고, 인간의 환세계를 넘어선 거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언젠가 비로소 자기 나름의 해답을 탐구할 순간이 도래하곤 한다. 서울매직클럽의 『Bless』는 『Peace』(2022)에서 대비적으로 이어지는 연작으로, 종교적 상상력이 제시하는 구원과 심판의 양면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Entry Level Museum」의 단선적으로 울려 퍼지는 멜로디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오마주하고, 그 위로 같은 테마를 점차 중첩해 올리고, 내리고, 반복하며 이루는 정반합은 정석적인 포스트 록에 상상력을 더할 여지를 충분히 준다. 「The Last Day of Venus」 역시 블랙 게이즈적 하이라이트 사이로 성가대를 삽입하며 신과의 매개를 꾀하고, 그러한 전개가 중첩된 가운데 비로소 「Gush」의 육중한 리프와 스크리모는 포스트 블랙 메탈로서 거창한 세계를 향한 상상력을 동하게 한다. 서울에서.
ATEEZ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포문이다.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규율에 흠집을 내며 신세계를 직접 만들어가는 사이버펑크 이미지를 내세운 본작의 중심에는 가히 전투적인 「Guerrilla」가 자리하고 있다. 로킹하고 노이지한 탑 리프는 자연스레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부르는데 불협화음이나 워드플레이 등을 구사하는 후렴은 각각 낙차를 형성하며 흥미진진한 전개를 만든다. 「Sector 1」 – 「Cyberpunk」의 댄서블한 비트나 「New World」로 치닫는 비장한 힙합 퍼포먼스는 다양한 스타일을 위시하면서도 거기서 시끄러운 요소만 따온 듯한 소스 선택은 앨범 단위로 일관된 색을 유지한다. 근래 과격하고 비장한 경향을 종종 띠던 보이그룹 추세를 스스로의 컨셉트로 삼아 마감한 것이 인상적이다.
NewJeans가 『New Jeans』를 바탕으로 전개한 기획과 데뷔 활동은 가히 선풍적이었다. 특별히 유효한 사전 정보 없이 수록곡 뮤직비디오를 YouTube에 선공개한 것부터 시작해, Y2K 감성을 전면에 내건 비주얼 워크뿐만 아니라 연계 굿즈와 앱 등, 그들 주위를 둘러싼 여러 콘텐츠들은 미장센이 세공된 만큼 더 키치하게 작용했다. 연말연시 후속활동 「Ditto」와 「OMG」까지 다다른 현재 나는 그들이 화제를 부르는 방식이 생각 이상으로 소란하고 공격적이라고 인식하는데, 이처럼 NewJeans는 K-Pop의 전반적 경향을 거슬러 서브컬처 노선을 과감하게 내달린다. NewJeans에 대해 각자 생각하는 바가 많아지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안티테제적 행보가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며, 인식에 모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지론은 결국 음악 활동의 핵심이 되는 악곡들이 캐치하면서도 편안한 질감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를테면 「Attention」과 「Hype Boy」는 저역폭을 대폭 깎고, 음정의 극적인 기예를 가급적 배제한다. 두 곡 모두 보이스 샘플을 조각내며 최소한의 긴장감을 일으키지만, 전자는 화음으로 승화하고 후자는 역동적인 하우스 비트로 넘기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캐치한 팝스러움을 이끌어내는 트리거로 탁월하게 해소하는 양상이다. 「Cookie」는 길게 늘어지는 이레귤러한 그루브와 직관적이지 못한 문장으로 승부를 걸며 작중 가장 도발적인 트랙이 될 텐데, 미니멀한 웡키 비트와 어감의 중독성을 승착으로 꼽을 수 있다. R&B 팝 넘버 「Hurt」가 음계 높낮이 대신 나른한 그루브 형성에 치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처럼 본작을 구성하는 네 곡은 각기 다른 속성을 지닌 후킹 요소를 부담스럽지 않은 이지 리스닝스러운 질감에 담아냈다. 한편 보컬 퍼포먼스를 보면, 악센트와 라임은 곳곳에 자유롭고 댄서블한 그루브를 형성하면서도, 그 디테일한 요소와 음정•박자 구조 반복 등은 치밀하기 그지 없다. 음계 높낮이에 천착하지 않으면서도 탁월한 가창력을 작품 내내 구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New Jeans』는 K-Pop에 얽힌 주변적 맥락을 치밀하게 어긋내며 그들 스스로의 행보를 곧 대안적 위치에 내세운, 2022년 가장 흥미로운 이슈 중 하나였다.
SoundSupply_Service 레이블은 런칭 이후 여러 레프트필드 일렉트로닉 프로듀서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 중 oddeen의 본작은 국내에서 쉽게 찾아내기는 힘든 웡키 댄스 넘버를 준수하게 모은 앨범인 점에서 그 가치를 설명할 수 있겠다. 시종일관 기묘하고 날카로운 소스로 댄서블한 리듬을 수놓는 가운데, 곳곳에 질주하는 에너지가 긴장을 해소한다. 이를테면 「ope!」에서 건반 및 칩멍크의 흐드러지는 반짝임 뒤로 원색적 파형의 신디사이저 아르페지오가 등장하거나, 「Broken Walk」 또한 마찬가지로 어지럽게 중첩한 잘그락거리는 샘플을 정갈한 힙합 비트가 전진시키는 구간 등은 위태로운 에너지를 응집하며 하이라이트를 점한다. 중반부 앰비언트 질감과 후반부 글리치 및 정글 비트의 쓰임도 인상적이다. 담긴 형태의 주류/비주류성과 상관없이, 즐겁게 감상할 만한 앨범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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