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Review―
1st Quarter
쾅프로그램의 신보 『There is no more snow on the Television』는 대중음악 규범을 벗어나는 기묘한 소리와 리듬이 하염없이 재생되는 그 내용과 모순되게 텔레비전 즉 대중 매체에 더이상 잡음•잔상이 없다고 선언한다. 물론 본작에도 「Scarf」와 같이 찢어지는 듯한 소음—harsh noise—이 지속되는 불쾌하고 폭력적인 노이즈 넘버가 있지만, 여는 곡 「Bud」는 별난 댄스 비트라고 해도 될 만큼 나름대로 반복되는 리듬을 지니고, 「I Don’t Die Young」, 「Feed Me」, 「Everyday We Are」 등에서는 통신 불량 상태를 표현하는가 싶으면서도, 「Trashcan Live」, 「The Sun Walks」의 연주를 들으면 이전의 모든 소음이 어떤 깜깜하고 퀘퀘한 즉흥 연주 무대 위로 소환되고 만다. 스산하고 뿌연 안개 같은 드론음을 쌓아올려 미지의 공포를 조성하는 「TV Snow」에서 목소리, 즉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하는 (정확히는 ‘드러나는’) 순간 뻔한 스릴러 클리셰 아래 갇히고 마는 것도 마찬가지이리라. 만약 이것이 소음이라면 백색소음에 가깝다. 거슬릴 틈조차 주지 않고 그저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교통수단, 공사장, 광고판이 내는 소음은 곧 도시를 특징짓는 소리로 환원되고, 그 발원지에는 익명의 사람들이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내야 하는 소음을 견디며 노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그들은 왜 더이상 잡음이 없(다고 여겨지)는 전파를 납치해 소음을 다시금 재현하려 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가.
본작의 함의를 본격적으로 풀어낼 단서가 될 「Stargaze」에 대해 이전에 글을 작성한 coloringCYAN은 그것을 찬가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 전환부에서 힘없이 떨리는 한정인의 노래 뒤로 묘로리의 메아리 치는 기타 연주를 들으며 ‘별이 된다’는 말에 담긴 죽음의 그림자를 도무지 떨쳐내기 어려웠다. 이어지는 「Pulling Off the Stars」가 「불 길」(김해원, 2016)을 샘플링한 것도, 그 결과가 「참변」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 소행성 파편 하나만 떨어져도 그 일대는 초토화되듯이. “잘 듣고 있나요?”(「4 중간」)라는 질문 뒤로 「공천」과 「규탄」의 2-beat는 전반부와 확연히 다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 달리는 이유는 “기억이 … 나지를 않”고(「폭발」), 중후한 퍼즈와 함께 ‘나’를 구성하는 것은 터지고 만다. 「vc19111」에 이르러 KIRARA 특유의 피아노 소리를 깨부수는 하우스 비트를 전개하는 가운데 비트를 시시때때로 끊으며 내레이션에 감도는 긴장감 뒤로 중요한 반전이 이어지는데, 화자가 군중 속으로 들어가, “한 명 한 명 떠오르”는 「사별」에 “하나하나” 책임을 짊어야 할 그들에게 나지막이 외치는 것이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4 끝」). 속죄를 받는 순간 비로소 죄인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그 한 마디에, 연주가 끝난 댄스 플로어에서 발걸음을 좀체 뗄 수 없다.
포크 밴드 도마의 2집이자 셀프 타이틀 앨범 『도마』에는 ‘나’와 ‘너’로 이루어진 조그만 세계가 등장한다. 서사는 의외로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내가 아닌 춤”(「잠든 마음」)을 출 때 김도마의 노래는 거누의 기타와 불협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소식이고 싶어져.” 타인과 불협하는 화자는 도시라는 익명의 공간으로 도망친다. 화자는 결국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뒤 “아무도 모르는 춤”을 고독히 추는데(「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 그렇게 본작을 관통하는 ‘춤’의 이미지는 화자가 자아를 유지하는 행위일 것이다. 리버브 및 딜레이 효과와 함께 고조되는 기타 연주가 사이렌 소리처럼 다가온 뒤로 화자의 태도는 바뀐다. 진득한 R&B의 향취와 더불어 이어지는 “당신과 … 춤을 추고 싶”다는 고백(「화양연화」). 그리고 끝내 ‘너’와 재회할 것을, ‘나’는 “정답처럼” 확신한다(「겨울 발라드 (김도마 ver.)」). 내가 나로 있게 되는 순간이란 결국 타자를 받아들일 때로, 그 관계 가운데서 비로소 서로의 이름을 다시 찾아낸다고 본작은 말한다. 익명의 타인이 기능적으로 모인 도시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서로를 통해 찾아내기에, 고로, 『도마』인 것이다. 본작은 처연한 노래를 몽롱한 소리로 적시는 훌륭한 사이키델릭 포크 앨범이자 고독하고도 꿋꿋이 발을 내딛는 이의, 그런 이들에게 전하는 일기다.
소규모 독립 음반 레이블 SoundSupply_Service의 두 번째 자체 컬렉션 『SCA1 (Side B)』는 블랙 뮤직 및 일렉트로닉 장르 청자들 양쪽 모두의 흥미를 끌만한 준수한 결과물을 모았다. 그들의 첫 컬렉션 『SCA1 (Side A)』(2021)와 다소 변화한 인상을 짚어보자면, 역시 돌출하는 소리가 두드러진 점이다. 당장 포문을 여는 하이퍼팝 기조의 「Shrimp」(Scorched Evrth)부터 신디사이저를 분수처럼 터뜨리며 전개를 갈아엎어버리는 순간 하이퍼팝의 근원에 클럽을 해체—deconstructed club—하는 시도가 있었음을 다시금 일깨우고, 시작부터 날카로운 브레이크비트로 혼을 쏙 빼놓는 「Salty Malcolm」(Wona)에서 달변하는 샘플과 함께 무자비하게 때리는 하드코어 베이스 드럼은 이들 모임의 의미마저 전투적으로 전복해 버릴 듯이 강렬하다. 이외에도 「Froggy」(Lionclad)와 「Moonshot Monkeys」(TwinTimes)처럼 우주를 매개해 블랙 뮤직과 일렉트로닉의 성간을 유영하는 광경—『Cosmogramma』(Flying Lotus, 2010)—이 떠오르거나, 「Tylenol Cold」(Kimsiyun)의 샘플링 플레이는 풍성한 그루브로 여행의 마지막까지 취기를 남기며 컬렉션을 멋지게 완성한다.
동찬과 Dubinvain이 결성한 전자음악 팀 FFRD. 첫 EP 『현대음악』(2019)이 나올 당시, 추후 그들에게서 이런 자극적인 결과물이 등장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첫 정규 앨범 『폭력의 역사』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강한 타격, 거친 왜곡, 소음과 오출력으로 점철되었다. 그것이 재료가 되어 춤곡 리듬을 만든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래, 해골도 춤추고 있지 않은가.) ‘폭력’에 가까운 소음을 질서정연히 ‘역사’로 정리하는 것은 드럼 트랙의 몫이 크다. 「call of void」는 찢어질 듯한 절규를 하우스 비트에 끼워맞추고, 「killer d&d」처럼 째지는 선율과 정갈한 리듬이 겹치는 순간이나, 「no 관심」에서 역시 중독성 있는 랩 훅이 청자를 유인해 해체된 클럽으로 이끄는 모습 따위에서 어느샌가 그들의 폭력을 선망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변화무쌍한 테마로 앨범 중 펼친 폭력의 양태를 되돌아보는 「덫」은 그런 의미에서 검투가 끝난 줄 알고 제각기 흩어지는 청중들—“this game is over, no 관심” – 「no 관심」—에게 드리우는 반란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폭력의 정반합이 떠오른다.
퇴폐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붉은 앨범 커버부터 심상치 않다. 사실상의 셀프 타이틀을 내건 YAYA KIM의 3집에는 무려 3 디스크에 33곡이 담겨 있는데, 아무리 DIY 음악 공정이 보편화된 시대라지만 독립 예술가가 혼자서 연주 세션을 제외한 모든 제작 공정을 홀로 맡아 이만큼 방대하고도 밀도 높은 볼륨으로 완성해내는, 야심도 이만한 야심을 보기란 쉽지 않다 — 아니, 오히려 연주 세션을 제작 레이블조차 없이 기용해낸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온음은 일전 총결산에서 『환상의 나라』(잔나비, 2021)를 다루며 진취와 팽창의 열망을 야심차게 드러낸 점, 그것이 적어도 국내 주류 팝 시장과 독립 음악 영역 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성취인 점을 높이 샀는데, 본작 『a.k.a YAYA』는 비슷한 이유로 주목을 요하는 앨범이 되겠다. 각 디스크는 장르 별로 나뉘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디스크는 특히 그 변화 폭이 두드러지는데, 이를테면 처음부터 대뜸 평행세계의 Pink Floyd가 한번쯤 연주했을 법한 리프와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적 전개를 띠더니, 다음으로는 신나는 스윙이 태연하게 표정을 바꿔 맞이하고, 후반부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록, 트로트, Portishead 풍 앰비언트 트립-합 등이 나란히 트랙 리스트 한 켠에 자리한다. 두 번째 디스크는 블루지•라티노한 모드로 고혹한 분위기를 초지일관하면서도 하드 밥 잼과 힙합 비트, 드론 등을 유려하게 섞고, 세 번째 디스크에 이르러서는 클래시컬 재즈부터 인도, 중동의 음계까지 탐색한다. 본작 전체를 단숨에 감상하기는 상당히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왜, 집대성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뚜렷한 작품군이 있지 않은가 — 이를테면 『The Beatles (a.k.a. White Album)』(The Beatles, 1968). 본작 또한 33곡 중 그 무엇을 골라 틀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YAYA의 날서고도 그루비한 가창을 다양한 스타일의 멋진 연주와 함께 들을 수 있다. 성공적인 종합 패키지다.
작년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파란노을, 2021)을 비롯해 Asian Glow, BrokenTeeth 등 여러 국내 아티스트에게서 주목할 만한 DIY 슈게이즈 작업물이 등장한 가운데, Della Zyr의 본작 『비타민과 우려』는 명백히 그 흐름을 계승하는 작업물로 볼 수 있겠다. (이들이 한 데 모인 공연 《Digital Dawn》 참여진으로서 유학 중인 미국에서 귀국하기도 했다.) 첫 곡 「기다려준 새벽」은 대표적으로, 슈게이즈 특유의 노이지한 코드 사이로 로파이 처리된 샘플과 서정적으로 반짝이면서 묘한 불협화음을 남기는 탑 리프. 물론 신디사이저로 공간감을 확장하는 「Pale Blue Dot (지구 혹은 천국)」, 두텁게 고동치는 드럼과 포크 록 리프가 긴 시간을 이끄는 「Dream II: 저울」 등은 — 그 외적 무게에 비해 내실이 든든히 버텨주었는지는 의문이지만 — 고유한 색채로 환원된다. 그리고 장르 특성 상 종종 정서가 침잠하는 것과 비교해, 본작은 감사와 의지의 정서가 생각보다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위대한 재즈 디바 나윤선의 이번 11번째 앨범 『WAKING WORLD』에 이르러서는 이제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까지 함께 붙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간결하게 꾸린 세션과의 합주를 나윤선이 다채롭게 다듬은 편곡이 흥미로운데, 이를테면 「Lost Vegas」, 「Tangled Soul」 등의 록스러운 접근이나 「Round and Round」, 「My Mother」를 이루는 샘플러 비트가 그렇고, 「Heart of a Woman」에서 신비하고 토속적인 선율을 그리며 아트 팝스러운 빛깔을 내는 것도 인상 깊다. 물론 앨범 전곡을 직접 쓰게 된 배경에는 그를 팬데믹, 즉 깨어있는 것이 악몽이 되고 만 세상—「Waking World」—이 있고, 특히나 즉흥성이 강조되는 재즈 뮤지션으로서 큰 타격이었다고 전하며, 벼랑에 내몰린 끝에 비로소 도전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을 때면 그의 선회는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실제로 간결하지만 선연한 고통의 노랫말은 가슴을 생생하게 헤집는데, 이는 반대로 치유의 노랫말 역시 진정으로 마음을 감싼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지개가 실재하지 않는 걸 알지만 너는 그걸로 진실한 사랑 노래를 만들 수 있어 — I know the rainbow’s not real, but you can make real love songs with it”, “우리는 사랑으로 이뤄진 걸 잊지 마 — Never forget we are made from love.” 화자의 진취적 전회를 Thomas Naim의 기타와 Arielle Besson의 트럼펫이 아름답게 꾸며줄 때, 절망 속에서 비로소 DAW를 켜게 된 그의 열정이 감동을 일군다.
푸른 커버 아트워크, 맑은 말렛 소리와 섬세하게 중첩한 목소리에서 떠오르는 건 꿈결처럼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다. 즉, 제목의 저 “혼돈(chaos)”이라는 한 단어만이 어색한 포즈로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 보면 상황은 거꾸로 흘러가는 걸 알게 된다. “제발 이 예감이 빗나가”기를 바라는 혼돈 속 상충하는 건 오히려 따뜻한 소리뿐이다(「Old Wind」). 아니, 물론 거기서 점차 드러나는 박동에 긴장감도 덩달아 고조되지만서도, 그렇다면 나는 무슨 근거로 저 소리를 ‘따뜻하다’고 느낀 것인가? 이 역시 반대로 되물어 볼 수 있겠다. 혼돈은 무슨 형상을 띠는가?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가? “나는 혼자가 무서워. 나는 혼자인 것 같아 — I fear to be alone. I feel alone”(「1」)라 고백하는 쓸쓸한 선율은 화자가 목도하는 고요한 아포칼립스를 유추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수몰」(천용성, 2021)이나 「지구 멸망 한 시간 전」(Jclef, 2018)처럼 특정 세계가 소멸하는 장면을 전자는 실내악 연주로 담담히 풀거나 후자는 아예 혼란의 배경음을 소거해버리는 방식으로 다룬 사례도 떠오른다. 아주 비약을 더하자면, 이러한 모순은 애초에 무수한 인생들의 흥망성쇠가 건조한 문장 한 줄로 전해지는 역사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인간에 앞서서 존재해 온 자연마저도 폭풍 전야는 맑고 고요하다. 해일은 아직 닥치지 않았지만, 그 광경을 목도하는 이의 쓸쓸하고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시공간은 이미 지평선 — 「Horizon」 — 너머로 도달하고 말았음을 직감한다.
퓨전 국악 밴드 씽씽에서 비롯된 여러 팀들—이를테면 이날치, 추다혜차지스 등—이 대중음악 장에서 상업•비평•영향력 등 다방면으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축에 있던 이희문 또한 이희문과 프렐류드, 오방신과 등의 활동을 통해 펑크(funk), 크로스오버 등으로 융합의 영역을 적극 넓히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본작 『Minyo!』에서 특기할 점은 한 작품으로 응집하는 컨셉트 자체에 있을지 모르겠다. 『민요삼천리』(1968) 음반집에서 발췌•각색한 본작은 해당 음반집을 당시에 민요가 민중에게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하며 사라진 ‘미뇨’라는 아이를 찾아나선다는 내용으로 공연을 꾸린다. 전통과 민중, 이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내용은 전통을 보존한 채 그 구성을 다시금 배치하여 새로운 픽션을 만드는 것. 어쿠스틱 악기로 극적인 연주를 꾀하며 포크(folk), 즉 말 그대로 현대 대중음악의 ‘민요’ 형태를 빌린 것.
나는 아직도 『INVU』에 대한 의견을 선뜻 내지 못하겠다. 물론 태연이 훌륭한 보컬리스트인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멜로디/코드 리프와 백 코러스가 이루는 하모니에는 세련된 엔지니어링 흔적이 드러난다. 그리고 본작이 ‘질투’라는 키워드로 서늘한 톤앤매너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꽤나 일관되게 다듬어진 작업물인 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두터운 하우스 비트 위로 맑은 악의를 노래하는 「INVU」는 음반을 적절히 소개하고, 스플라이스 풍 샘플에 리드미컬하게 올라 태연 특유의 발라드 소재로 화하는 「그런 밤」과 「Siren」, 그리고 「사계」(2019)와 같이 극적인 맛이 나는 「어른아이」 등도 흥미로운 트랙이다. 그러나 무난했던 선공개 싱글 「Can’t Control Myself」와 「Weekend」는 여전히 서사 상 역할이 애매하고, 전반적으로 말끔한 전개가 결국 탄탄한 구조를 완성했는가 하면 의문이 강하게 남는다. 분명 더 치밀하거나 특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Hardboiled Café』는 ‘씬’, ‘라임’ 등의 키워드를 통해 장르의 규범을 되묻는다. 보통 이런 서술은 그 규범을 깨는 경우에 어울리겠지만, 본작은 오히려 규범에 규범을 덧씌워 이를 강박적으로 따른다. P-TYPE을 상징하는 촘촘하고 타격감 있는 라임 짜임새가 그렇다. 그뿐 아니다. 본작이 컨셉트로 표방한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픽션 역시 탐정이 나오고, 사건이 일어나고, 그 진상을 추리할 단서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등 이 또한 규범이 강하게 자리잡은, 그렇기에 더욱 오락성이 강한 문학 장르인 점을 떠올려보자. ‘씬의 죽음’이라는 다분히 거창하고 본질주의적인 주제는 P-TYPE이 — 무려 「돈키호테」(2004) 시절부터 — 꾸준히 설파해 온 것이지만, 이를 미스터리 컨셉트 안에 가두며 ‘범인’일 가능성조차 있는 한 캐릭터의 발언으로 상대화시켜버리며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선에서 재현한다. 장르의 본질 회귀를 거세게 외칠수록 현실과 동떨어진 오락성도 강화되는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것이다. Keeproots를 비롯해 PLAYHOUSE, Fredi Casso, Deepfry 등이 수놓은 재즈 힙합 비트는 리얼 세션과 어우러지며 고혹한 현장감을 자아내고, 본작에 담긴 연주와 랩 라임의 밀도는 탄탄할 뿐더러 퍼포먼스, 내러티브, 그리고 예술의 장과 그 역사•담론을 메타적 층위로 얽어낸다.
「GingaMingaYo (the strange world)」 드랍의 획기적인 반전, 수록곡의 기묘한 멜로디와 아기자기한 소리 등에 가장 먼저 몰입했다. 그와 더불어 관심이 끌린 부분은 역시 곡 중에서 ‘Billlie’가 3인칭으로 타자화되거나, ‘11’ 따위의 세계관과 연결된 암호들의 등장이다. 당장 aespa, NCT의 SMCU 프로젝트 혹은 이달의 소녀 등이 떠오르는데, Billlie 역시 독자적인 세계 구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면서도 — 본작의 확장판 스케일은 그룹을 중심으로 한 거대 서사 구축 욕망이 확연히 드러난다 — “긴가민가요” 하고 훅 드랍을 찍는 순간, 그들이 받치던 환상적 서사의 무게를 단숨에 덜어내는 것은 큰 차이점이 될 것이다. 즉, 본작은 「GingaMingaYo」로 판타지 무대에 진입하면서도 아웃트로에 이르러 현실을 환기시키며 “앨범의 내부 설정과 외부 요소와의 동기화”를 꾀하는 것이다. 컨셉트에 철저하면서도 이에 갇혀 무너지지 않도록 출구를 마련하는 전략이 흥미로웠고, 컨셉트 플레이 및 악곡 완성도에 대한 믿음은 그들의 다음 EP 활동인 『the Billage of perception: chapter two』(2022)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발휘된다. 꾸준한 주목을 요하는 팀이다.
희미한 빛—“gleam”—을 소리로 표현해 연주하는 박지하의 작업에는 양금, 생황, 피리와 같은 여러 국악기가 동원될 뿐더러 심지어 표지에는 생황이 늠름하게 서있지만 정작 그 음악에서 전통의 향취를 맡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그 소리들을 철저히 ‘소리로써’ 이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 소리로부터 떠오르는 건 전통적인(traditional) 것이라기보다, 서구의 앰비언트 및 뉴에이지 음악 등에서 보던 동양적인(oriental) 상징이다. 고전 영화 제목을 따온 「Sunrise: A Song of Two Humans」에서 나란히 시간을 잇는 생황 소리에서는 Tim Hecker, 송영남 등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해금을 긁어 빛을 스며들이고 양금이 그곳을 환히 밝히는 「Light Way」의 소리 출처가 신디사이저 사각파나 샘플러 따위가 아닐 것임에도 내가 떠올리는 장르 명은 노이즈, 글리치 따위의 전자 음악 양식이다. 물론 본작을 들으며 어둠에서 빛이 스며드는 어떤 구원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기획 측이 바라는 바람직한 감상일 수 있겠으나, 내게 익숙한 곳에 발을 딛은 채이더라도, 변주를 습득하며 한 발자국 씩 그 경계를 넓혀가는 과정 가운데 조금 더 멀리 뛰어보는 경험이 되었다.
(다음 페이지: 2분기 앨범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