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orean Music Catalog by. 만능초보

by MANIL 10001

지난 2022년을 돌아보며 인상 깊게 들은 국내 트랙 25곡 및 분기별로 주목한 앨범/EP/믹스테이프 64 작품을 골라 남긴 짧은 감상평을 공유합니다.

  •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1월 사이에 발표한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 앨범 점수는 필자 만능초보 소관이며 타 필진 개입이 없음을 밝힙니다. 또한 본고는 온음 총결산 및 타 필진 리스트 결과와 무관합니다.

―Track Review―

KIRARA, 「Stargaze」, 『4』, Self-Released, 2021.12.18

빅비트 장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 KIRARA는 감정을 앨범으로 표현하고 공유하는 데 능하다. 이를테면 『sarah』(2018)의 첫 두 트랙 「걱정」과 「Wish」는 ‘슬픔’을 ‘바람’으로 승화하는 작업이었고, 각각 피아노 코드와 신디사이저 멜로디를 매개 삼아 아련하고도 신나는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한편 금번작 『4』에서는 ‘분노’를 제재로 삼았고, 그 가운데 코스모스 슈퍼스타(現 한정인)가 무구한 목소리로 “넌 지금 별을 보지만, 난 이제 별이 되려 해”라고 노래하는 「Stargaze」는 희망적으로도, 절망적으로도 들리는 신기한 곡이다. 예제곡들이 감정의 모순을 통해 희망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본곡은 아예 극단적인 기로로 내모는 것이다. 디스토션된 리드 신스, 촘촘히 때리는 건반과 아련히 울리는 기타가 각기 주연이 되는 섹션을 담당하며 KIRARA 특유의 긴 볼륨을 극적으로 이끈다. 체념, 공포, 갈망 등이 얽히고 설킨 감정을 두터운 비트에 촘촘히 정렬하여 댄스 플로어에 흩뿌리는 가운데, 듣는 이로 하여금 필시 무언가의 형태로 반응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전도한다.

도마, 「잠든 마음」, 『도마』, Self-Released, 2021.12.22

동료들이 유지를 이어 완성한 『도마』의 놀라움은 첫 곡 「잠든 마음」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 공간을 넓히는 사이키델릭한 기타는 김도마의 보컬과 불협하고, “아무도 모르는 소식이고 싶어져”라고 말하는 화자와 그 외부 간 어긋남을 포착한다. 그 외에도 코드에 반음씩 어긋내는 멜로디나 리드 기타의 기묘한 음정 변조, 세션 리듬과 보컬 사이 묘한 싱코페이션 등, 여러 어긋남 가운데서도 악곡은 정돈된 형태로 전개된다. 노랫말은 감정과 태스크의 과포화 상태를 맞아 어쩔 줄 모른 채 사고가 멈추고 마는 순간을 포착해 은유한다. “발 디딜 틈 없는 마음”에 어느새 들어와 버린 타인을 두고 고민과 번뇌의 고리를 순환하다, 끝내 닿은 곳은 몽롱한 꿈속. “아무도 모르는 소식이고 싶어져” 도망치는 시간의 달콤한 불안감을 본곡은 탁월하게 묘사하고, 곡 스스로 그 시간을 제공해주기도 할 것이다. 모두가, 모든 것을 마주하고 감당할 용기와 힘을 지닌 건 아니기에, 잠시 마음을 깜빡 재울 오늘만을 위해.

9와 숫자들, 「죽지는 마」, 『토털리 블루』, 오름 Ent., 2021.12.23

삶을 놓으려는 이웃을 향해 우리는 어떤 말을 섣불리 건네기 힘들다. 그 선택의 기로에 다다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그들의 삶을 짓눌렀을 지 타인 입장에서 감히 헤아리고 재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지는 마」의 화자는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말을 고르고 고른 끝에 내뱉은 한 마디, “이유는 없지만 내 소원이니까”라는 문장이 타인이 처한 절박한 고통을 전제한 채로, 그럼에도 삶을 주문하는 행위가 심히 이기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화자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주저 주저하던 차에 비로소 터지는 곡의 생동감은 남겨져야만 하는 이들의 격정을 대변한다. “그날은 오지만, 지금은 아니”어야 할 수많은, 정말 수없이 많은 소식이 사방을 에워싼 한 해였다. 모든 일에 절망과 무력감이 짓누르는 하루하루 가운데, 바뀌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며, 나를 위해서라도 감히 곱씹어본다. “적어도 나를 바꿀게. 조금이나마 너를 위하는 사람으로.”

YAYA KIM, 「분노는 나의 힘」, 『a.k.a YAYA』, Self-Released, 2022.01.17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혹은 트립합) 넘버다. 블루지하고 사이키델릭한 록 세션과 오케스트레이션이 날카롭게 부딪치며 소용돌이 치는, 그 ‘힘’이란 무작정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다. 곡을 여는 퍼지(fuzzy)한 스트로크는 곧바로 이어지는 루프에서 장중한 저음부 오케스트레이션 및 신경을 긁는 각종 기악 연주와 큰 충돌 없이 얽어들어가며 그루브를 완성한다. 벌스가 시작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은 퇴장하고, 기타는 블루지한 꾸밈음 자리로 물러서며, 재지한 피아노 잼이 쓸쓸히 YAYA의 보컬을 보조할 따름이다. 그 고혹한 무대 뒤 그림자에 숨은 것들은 언제든지 분노를 표출할 채비가 되어있을 것이고, 예기치 못하는 기다림은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을 감돌게 하리라. 우리는 흔히 분노의 자멸적 특징을 일컫는 경구나 이를 죄악시하는 규범을 종종 마주하지만, 그만큼 분노에서 비롯된 권리 쟁취의 역사를 배우고 그 유산 또한 누리기도 한다. 본곡에서 말하고자 하는 ‘힘(power)’은 어쩌면 ‘권력’일 수도 있고, 이로 비롯된 분노는 곧 악곡의 진취적 — progressive — 성격만큼이나 숭고하고 정당한 무언가이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아니, 악곡이 지닌 ‘힘’이 그렇게 독해하도록 만든다.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공중부양』,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2022.02.22

2010년대 인디 록 붐의 중심에 있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한국 록의 유산을 이어받은 기가 막힌 연주와 함께 청년층 보편에 공감을 사는 가사를 종종 코미컬하게 전달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 동시에 음악사적으로도 중요한 밴드로 남았다. 그들이 2018년에 해체한 뒤로 오랜만에 음악 활동에 나선 프론트 퍼슨 장기하가 취한 노선은 바로 ‘코미컬’ 쪽이었다. 주술적인 리듬을 만드는 최소한의 비트 위로 알쏭달쏭한 설교를 외고, TV 무대에서는 공중을 부양하며, 마치 소싯적 신흥 종교 선지자와 같은 기묘한 이미지를 사이키델릭 표현 가운데 골때리게 포섭했다. 일전에 장기하가 비슷한 코미디 내레이션 스타일로 피처링에 참여한 「Worship From Elsewhere」(이수호, 2021)가 말 그대로 ‘경배(worship)’를 키워드로 내세운 걸 고려할 때, 그에게 대중이 다시금 반응하며 인기곡의 반열로 복귀시키는 광경은 그야말로 해프닝의 완성처럼 보인다.

NMIXX, 「占 (TANK)」, 『AD MARE』, JYP Ent., 2022.02.22

시끌벅적한 EDM 트랩을 기반 삼는 K-Pop 트랙이다. 신인 아이돌 그룹 NMIXX의 데뷔 맥시 싱글의 타이틀곡 「O.O」는 격렬한 템포 체인지로 청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곡이었다. 이에 앞선 커플링 트랙인 본곡 「占 (TANK)」도 광기 어린 분위기는 마찬가지로, 업템포로 울리는 디스토션 신디사이저, 808 베이스, 브레이크비트 등은 수시로 무기를 바꿔 가며 위협 사격을 가한다. 정신없는 프로덕션에 지지 않는, 아니, 더 어질러놓는 파워풀한 보컬 퍼포먼스도 빼놓을 수 없다. “I’m so freaky fresh fresh like a TANK” 하고 반복되는 훅은 위협 사격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전진하고, 벌스의 극적인 구어체와 센스 있는 라이밍은 NMIXX라는 신인을 뇌리에 지나치리만치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작금 K-Pop의 주효 요소인 ‘다이나믹, 맥시멀, 하이퍼’한 감성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사례가 되지 않을까.

Glen Check, 「Sins」, 『Bleach』, EMA, 2022.03.03

서구적 신스팝/드림팝 등을 전문으로 하는 팝 밴드 Glen Check. 그들이 일으킨 프렌치 팝 앤썸 「60’s Cardin」(2012)의 충격으로부터 어느덧 10년 이상 흐른 지금, 그들의 팝 감각은 여전히 활력을 띤 채 더욱 원숙해진 기예와 함께 귀환한다. 금번작 『Bleach』에 수록된 신스팝 넘버 「Sins」는 그들의 장기를 다시금 잘 집약해낸 트랙이다. 짧은 브레이크비트 뒤 신디사이저가 터져 나올 때 아련한 향수와 밝은 청량감이 단박에 휘감고, 레이저처럼 쏘아대는 신스 코드와 베이스는 원색 조명으로 플로어를 몽환하게 꾸민다. 그 조명들이 모인 곳에 비친, 오토튠과 팔세토를 합친 드라마틱한 보컬 퍼포먼스는 관능미를 뽐내며 곡이 자아내는 분위기 속으로 확실하게 흡인시킨다. “넌 내 죄를 숨기게 해 — you make me hide my sins.” 화자를 화려히 비추는 빛은 그림자에 이면을 감추게 만들더라도, 그마저도 매력 있는 예술이 되는 낭만.

(여자)아이들, 「TOMBOY」, 『I NEVER DIE』, CUBE Ent., 2022.03.14

팝 펑크가 다시금 유행하는 가운데, K-Pop도 거기에 발빠르게 반응을 내비쳤다. (여자)아이들의 「TOMBOY」는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성취와 성과를 거둔 곡 중 하나로 들 수 있겠다. 간결 명료하고 록킹한 루프를 바탕으로 각 섹션마다 소스를 약간씩 변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는 리듬에 악센트가 달라붙도록 배치한 멜로디는 전개에 탄력을 더한다. 셀프 프로듀싱을 내세우는 (여자)아이들이 「TOMBOY」에서 팝 펑크를 차용한 전략은 본디 펑크 록의 DIY 성격을 적절히 빌리며 호소력을 확보하는 양상을 보였고, 그렇게 팀의 위기에서 그들은 보란듯이 정면돌파를 감행한 끝에 기어이 “yeah I’m f***** TOMBOY”를 전국에 울려퍼지게 만드는 대성공을 거둔다. 훌륭하게 마감된 악곡 그 자체만으로 기념하기 충분할 테지만, 대중음악의 스릴 넘치는 순간을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일궈낸 시의적 배경은 본곡의 선언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한로로, 「입춘」, Studio MOS, 2022.03.14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후렴에서 노이지한 기타와 함께 터뜨리는 자기연민적 호소는 「Creep」(Radiohead, 1992)의 방식과 닮았다. 아찔하게 올라가는 멜로디가 불안과 고양감을 한꺼번에 담듯이, 화자가 느끼는 불안은 자기 확신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듯하지만, 결국 모두가 맞이하는 계절감 어린 노랫말이 이에 푸른빛을 칠하며 인생에서 맞이하는 봄을 예찬한다. 그 작은 잎새를 누군가 살피기 바라는 바는 갓 데뷔곡 발매를 앞둔 아티스트의 마음이기도 하겠거니와, 누군들 ‘처음’을 겪으며 비슷한 감정 스펙트럼이 공명할 것이다. 청춘, 즉 젊음을 ‘봄’에 빗대는 동북아권 문화의 특성을 살려 시간과 감정을 한꺼번에 비유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부른 것은 주목할 만한 성취가 될 테다.

Lil Cherry (feat. GOLDBUUDA & Rico Nasty), 「CATWALK」, ARTRA, 2022.03.18

가장 독특하게 랩을 하는 이들이 가장 치밀하게 구성한 뱅어다. 이를테면 인트로에서 브레이크비트 필인으로 분위기를 고조한 뒤 쿵 내리 찍는 베이스 드럼과 함께 GOLDBUUDA가 등장하는 순간은 짧지만 짜릿한 낙차를 선사한다. 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Lil Cherry는 쉰 듯한 목소리로 적절히 멈블링하며 강세를 리드미컬하게 조절하고, 첫 두 마디에서 라임 구성을 반복하거나, 전반과 후반의 목소리 높낮이를 완전히 대비시키는 등 자신의 메인 벌스를 훌륭하게 채운다. 수많은 요소들을 어지러이 투입시키는 GOLDBUUDA의 작곡 역량은 가히 신예라 부를 만하고, 악곡의 주요 레퍼런스일 Rico Nasty와 더불어 과잉으로 치닫는 조류를 자신들의 팝으로 승화하는 퍼포먼스까지 고루 뛰어난, 현대 팝 랩의 최전선에 위치한 대표 사례다.

250, 「로얄 블루」, 『뽕』, BANA, 2022.03.18

프로듀서 250이 2022년 음악계 키 플레이어로 활약했고, 그 중심에는 긴 시간에 걸친 개인 프로젝트 『뽕』을 드디어 완성해 세상에 내보인 사건이 있다. 「로얄 블루」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백미를 차지하는 트랙이다. 차진 R&B 드럼 세트와 과장스러운 오케스트라 히트 뒤 누군가의 묘한 외침과 함께 이정식의 처연한 색소폰 연주—와 음계 사이를 미끄러지는 베이스 신스—가 이어받는 순간에, 혹은 그 테마를 다시금 위태로운 휘파람이 이어받을 때 발생하는 낙차를 즐길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탄의 정체는 무엇일까. 샘플인지 실연인지 분간이 안 가는 보컬 찹(chop)과 원색적 파형을 지녔을 전자 오르간 등이 가세해 펼치는 잼 세션은 그 연주 형태에 따라 재즈라 부를 수도, 멜로디나 음색에 따라 트로트/블루스라 부를 수도, 그 모든 것을 편곡해 내는 방식에서 일렉트로닉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이 쉽게 연관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그루비하게 서로 섞여 들어가고, 키치한 오마주와 리얼한 정서 재현 사이 회색 지대로 청자를 밀어넣은 채, 각 세션은 고혹한 절정에 치닫는다.

콩코드, 「무지개꽃 피어있네」, 『초음속 여객기』, 지호기타뮤직/2% Ent., 2022.03.21

콩코드의 사이키델릭한 블루스 코드는 명백히 60-70년대 국내 밴드 뮤직을 지향한다. 「무지개꽃 피어있네」는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단출한 구조를 가지고 각 악기 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그 그루브에 집중시키면서 점차 빨간빛 물감부터 보랏빛 물감으로 하나둘 알록달록 칠해가는 모습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다. 차진 베이스 라인, 어느덧 들썩이는 레게 리듬, 어떤 결핍을 서정적으로 승화하는 노랫말, 그 모든 것이 놀랍도록 응축된 매력적인 곡이다.

윤하, 「사건의 지평선」, 『END THEORY : FINAL EDITION』, C9 Ent., 2022.03.30

이별을 앞둔 소중한 인연에게 보내는 “산뜻한 안녕”은 블랙홀 너머로 시간을 떠나보내는 비유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본곡 「사건의 지평선」은 “아스라이 하얀 빛”이 곁을 떠나 사라지기까지 관찰하는 과정과 같아 보인다. 동일한 리프를 연주하는 처음과 끝을 들어보자. 헤어질 결심을 막 마친 결연한 도입과, 기어코 거스를 수 없는 강 건너로 떠나보내는 아련한 맺음. 이렇듯 감정을 수시로 오르내리는 악곡은 윤하 특유의 섬세한 정서 전달과 폭발적인 호소력 모두를 경험할 수 있게끔 전개되고, 이는 곧 미시적 인연과 거시적 우주 현상 사이로 대응하며, 곧장 피어오르는 감정을 다른 차원으로 보낸다. 그래서 본곡은 아련할 지언정 슬픔에 잠식당하지는 않고, 비로소 “새로운 길모퉁이”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선택을 앞두거나 겪은 이에게, 지극히 설득력 있는 논변으로 용기와 위로를 가져다준, 소중한 곡이다.

009, 「돈 가져와」, 『ㅠㅠ』, Self-Released, 2022.03.31

『ㅠㅠ』의 분열적 양상은 랩 플로우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공과금을 포함한 관리비는 냈어”라는 첫 마디는 현실감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데서 충격적인데, 거기서 피치를 높인 더블링이 서늘한 감성을 더하며 본곡의 분열은 확실히 효과를 미친다. “어쩌고 저쩌고 좆까고 일단 시작해”를 비롯한 각종 단어나 라인이 종종 뜬금없이 반복 재생되는데, 그것이 리듬과 맞아 떨어지며 플로우를 더 타이트하게 조인다. 비정형적 프로덕션에 걸맞는 랩 디자인 기량이 빛나는 것이다. 문제의 프로덕션 역시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날로그 신스와 일렉트릭 피아노 코드는 이윽고 808 베이스가 부수며 분열의 한 요소로만 작용하는가 싶으면서도 “돈 가져와 돈 돈 돈 돈 돈” 하는 훅의 캐치함을 보조하기도 한다. “돈 좋지 돈 좋아”라는 말의 맥락을 파괴하며 “돈 그거 너무 좋더라”로 맺는 마지막 반전은 뻔하면서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009가 치밀하게 전개한 결과다.

IVE, 「LOVE DIVE」, STARSHIP Ent., 2022.04.05

신진 여성 아이돌 그룹들의 기세가 엄청나다. 2021년 말 데뷔한 6인조 IVE는 그 시작—「ELEVEN」(2021)—부터 나르시시즘을 탁월하게 표현했고, 스스로도 근래 가장 핫한 셀럽이 되었다. 그들의 2번째 싱글 「LOVE DIVE」는 어린이들을 비롯한 폭넓은 계층의 ‘아이돌’로 만든 결정적인 앤썸이 되겠다. 우선 너—그것이 설령 ‘나’이더라도—에게 빠졌으니 너도 내게 “감히” 뛰어들라는 메시지는 매우 직관적이다. 멤버별 파트를 비교적 규칙적으로 나열하면서도 프리-코러스를 두 섹션 씩 배치하거나, 정박을 때리는 빅룸 비트 위로 묘하게 리듬을 어긋내며 말맛을 강조하는 등, 3분을 넘지 않는 길이를 맥시멀하게 채우는 구성도 돋보인다. 물에 젖은 듯한 질감, 마이너 코드와 하강 멜로디로 표현하는 극적인 효과 등은 다이빙에 빗댄 긴장과 희열 사이를 절묘하고도 명료하게 전달한다.

김도언,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 『Damage』, SoundSupply_Service, 2022.05.10

3박자 피아노 리듬 위로 기본적 파형의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하프, 벤조, 플루트 등 민속적인 음색이 가상의 실내악 밴드 마냥 섞여 들어가는데, 먼 데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던 퍼커션과 글리치는 다른 신디사이저 모듈레이션과 함께 점차 속도를 높인다. 이윽고 4박자 전조를 맞이하면 베이스 드럼이 운전대를 이어 받고, 이제 각종 전자적인 글리치와 칩멍크 샘플, 왜곡된 덥스텝 드랍이 스콜처럼 쏟아져 내린다. 어느덧 포커스 바깥으로 빠지던 피아노 등은 요정들의 변신이 끝나갈 즈음 다시금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로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아련히 꾸민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음색과 멜로디의 콜라주를 통해 극적인 서사를 연주하는 트랙이다.

넉살×까데호, 「굿모닝 서울」, 『당신께』, VMC/Interpark, 2022.06.16

이 곡은 뛰어난 랩 트랙에 요구되는 기대를 충실히 만족시킨다. 일정한 박자로 타이트하게 연주되는 펑크(funk) 밴드 까데호가 주조하는 잼은 여유 공간을 내주어 넉살의 랩이 돋보이게 하면서도 각 악기가 구사하는 싱코페이션이 얽히며 단조롭지 않은 그루브를 형성한다. 그 위를 자유자재로 거니는 넉살의 플로우 또한 박자와 악센트의 완급을 기가 막히게 조절하며 능수능란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여러 비유를 이용한 서사적 표현법은 유쾌하고 따스하다. 이를테면 “숨을 들이켜 내 폐 속엔 도시의 먼지 / 그건 살기 위해 땅을 박찬 당신의 열기”와 같은 가사처럼, 서울에 대한 애증을 너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거기서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내듯이.

오헬렌, 「수영장」, Self-Released, 2022.06.24

인디 포크/팝 뮤지션 오헬렌은 기묘한 아티스트다. 실제로, 기묘한 발음과 창법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최솔과 함께 한 『Oh』(2020), 『Pause』(2021)와 같은 작품을 들으면, 가창에서는 Joanna Newsom과 같은 프릭 포크(freak folk) 감성이 떠오르고, 가벼운 기악을 민속적 리듬으로 배치하는 등 예상하기 어려운 음악의 형태를 한다. 본곡 「수영장」은 그에 비해 비교적 어쿠스틱 팝스럽게 정돈된다. 트리플렛 리듬, 프릭한 가창에서 스며나오는 캐치한 멜로디. “여기는 조금 따뜻했고 저기는 조금 깊다는 것도 알아, 이제는”이라 노래하는 것처럼 안정된 구성 가운데 자유로이 헤엄치는 오헬렌의 모습은 더욱이 숙련된 유영자처럼 보인다. 각 건반 악기들이 파도처럼 점차 고조되는 전개는 여전히 신비로움을 담보하면서, 너울이 지나간 후 첼로 계열 현악기가 유머러스하게 마무리짓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NewJeans, 「Hype Boy」, 『New Jeans』, ADOR, 2022.08.01

NewJeans는 특별한 사전 보도 없이 돌연 YouTube에 『New Jeans』 EP 수록곡 뮤직비디오를 차례로 발표하는 데뷔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세공된 레트로 질감으로 그들만의 색을 구축한 일련의 데뷔 과정 중 가장 특이점을 꼽으라면 역시 「Hype Boy」의 ‘멤버별 4버전 뮤직비디오’가 되겠다. K-Pop의 본질로서 각 멤버별 캐릭터-화 전략을 극대화해서 어필하며 신인 아티스트들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역시나 2000년대 전후로 유행한 비주얼 노벨 게임스러운 구도를 형성하면서 복고적 요소도 챙기는 흥미로운 전략이었다. 악곡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세련된 댄스 트랙이다. 비트와 하모니를 섬세하게 다루는 텍스처가 인상적인데, 이를테면 칩멍크 기법으로 조각낸 보이스 샘플에서 저음역대를 대폭 깎은 신디사이저와 가벼운 철제 하우스 비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과정은 섬세한 질감과 뱅어로서의 타격감을 모두 잡는 탁월한 시퀀스다. 또 랩 싱잉에 가까운 라임과 중요한 대목에서 음절을 늘리는 방식 등으로 만들어내는 그루브는 섬세한 텍스처와 어우러지는데, 동시에 여전히 바탕에 자리한 칩멍크를 비롯해 적재적소에 삽입되는 보이스 샘플은 댄서블한 리듬을 살리면서 역동적인 댄스 스테이지를 펼친다. 가슴 설레는 짝사랑을 “내가 널 쩔게 해줄게 — I hype you boy”라고 표현하는 방식도 흥미로운 아이러니였다.

SILICA GEL, 「NO PAIN」, MAGIC STRAWBERRY SOUND, 2022.08.25

몽환적이고 즐거운 음악과 이미지로 두터운 팬층을 가진 밴드 실리카겔(SILICA GEL). 그들은 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펼치면서도 일관적인 색채를 유지하는데, 이를테면 발음을 흐려 음악에 묻히면서도 따라부르고 싶게 만드는 멜로디는 직관적인 몽환을 그리고, 쨍한 소리는 환상을 뇌리에 각인한다. 그런 요소들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노랫말에도 불구하고 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일 테다. 「NO PAIN」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화자가 어디로 떠나려는지 악곡만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로킹한 기타가 선사하는 질주감과 더불어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라는 요청은 어느새 희망의 찬가로 화한다.

Omega Sapien, Mudd the Student & bj wnjn (feat. RM), 「섹시느낌」, Balming Tiger, 2022.09.01

힙합/R&B 등지에서 대안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Balming Tiger 크루는 각 멤버들의 독창적인 개성과 집단으로서의 에너지를 모두 흥미롭게 선보이며 88rising이나 PC Music 등 세계 각지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유럽 투어까지 성사시키기도 했다. 특히 어느 시점부터 그들 스스로 “얼터너티브 K-Pop”을 제창한 데 대해, 이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정말로 세계 제일의 K-Pop 스타인 BTS의 RM을 피처링으로 부른 건 단순한 콜라보레이션 이상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겠다. 성적 흥분을 제재로 펼치는 악곡 센스 자체도 매우 훌륭하다. bj wnjn의 극도로 낮은 허스키 보이스는 단숨에 청자를 사로잡고, 래퍼 라인의 나른하고 그루비한 퍼포먼스, 사이키델릭한 기타 등, 재밌어 보이는 수많은 요소를 한 데 담아낸 흥미로운 곡이다.

TRPP, 「명상」, 『Here To Stay』, MAGIC STRAWBERRY SOUND, 2022.09.17

근 수년간 한국 슈게이즈 장르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건 분명해보인다. TRPP는 본래 타 밴드 혹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던 이들이 모인 자율적인 프로젝트 밴드라 하는데, 그 가운데서 선택된 장르가 슈게이즈라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명상」은 우선 담백하고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중독성 있다. 드럼 머신이 등장하고는 댄서블한 리듬이 더욱 강조된다. 도무지 “명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간주(후주)는 어느새 사이키델릭하게 주위를 감싸돌고 있을 테다. 피날레에서 템포를 늦추는 전개야 흔하지만, 환상을 자연스레 깨우는 데는 탁월한 선택처럼 보인다. 쓰리 기타 밴드로서의 에너지가 5분간 크게 처지는 일 없이 울리는 데서 — 저번 「Pause」(2021)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 본 대상 기간 내 슈게이즈를 기념하기에 충분한 선곡이 될 것이다.

A.TRAIN (feat. 김뜻돌, 시문 & 서보경), 「SOMETHING BEAUTIFUL」, 『PRIVATE PINK』, SOULSOUP, 2022.09.25

솔로 R&B 뮤지션 A.TRAIN을 중심으로 팝/록 뮤지션 김뜻돌, 기타에는 여러 펑크(funk)/재즈 밴드 등에서 활약하는 시문, 색소폰에는 재즈 뮤지션 서보경이 한 데 모인 인디즈 대곡이다. 하지만 거기서 노래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어두우며, 심지어 화자들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늘 이별하는 영화만 골라서 보는 내가 그리 이상한가,” “아련한 사랑은 아플수록 더 아름다운 법이야, 이건 좀 이상한가.” 그럼에도 전작 『PAINGREEN』(2020)에서 죽음에 집착하던 화자의 태도에 비해, “something beautiful in my head”라며 생의 미학을 탐색하려고 딛는 한 발짝은 의미 있어 보인다. 두 보컬리스트와 각 세션의 고혹한 조화는 옛 영화 한 장면처럼 무대를 꾸며 그 발자취를 더욱 아름답게 칠한다.

LE SSERAFIM, 「ANTIFRAGILE」, 『ANTIFRAGILE』, Source Music, 2022.10.17

“I’M FEARLESS”를 제창하고 나온 LE SSERAFIM은 데뷔로부터 얼마 안 지난 시점에 멤버 탈퇴라는 좌초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본곡 「ANTIFRAGILE」에 이르러 사건은 도리어 추락 자체를 긍정하며 “흉짐도 나의 일부”(「FEARLESS」)라던 그들의 ‘겁 없는’ 캐릭터를 지탱하는 맥락을 만들어내어 반전에 성공한다. 이를테면 1절의 절반은 지나야 들어서는 디스토션 걸린 베이스와 함께 높이서 떨어지는 멜로디 뒤, “걸어봐 위엄 like a lion”이라고 흐르는 듯한 그루브로 이어 말 그대로 “ANTIFRAGILE”한 과정을 선보이며 스웨그를 전개한다. 사용된 여러 소스나 댄스 퍼포먼스에서 특정 레퍼런스—「CHICKEN TERIYAKI」 (Rosalía, 2022)—가 떠오르는 건 사실이나, 이미 기존에도 수많은 K-Pop 아티스트가 시도한 레게톤에서 더욱 클럽튠이 짙은 네오페레오로 파고든 건 팝 시장의 트렌디함과 K-Pop 내부에서 차별화된 이미지를 모두 잡은 탁월한 선택으로, “I go to ride till I die, die” 등의 캐치한 말맛이 장르를 흥미롭게 전유하는 양상에서 성공적이다.

유라 & 만동, 「지느러미」,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 문화인, 2022.11.21

「지느러미」는 압도적인 곡이다. 적대하는 이들의 피튀기는 수읽기인지, 아니면 질척이는 육체 간 탐닉인지 불분명한 이미지는 유라의 서늘한 노래와 만동의 격정적인 연주로 힘찬 추상화가 된다. 곡이 시작하자마자 틈도 주지 않고 내달리는 드럼과 더블 베이스의 마이너 코드 연주는 긴장된 미지의 세계로 청자를 단숨에 사로잡고, 일상 어휘와 다소 동떨어진 단어 선택이 주는 운율은 능글맞게 파도를 탄다. 단연 압권은 브릿지에서 터져나오는 함석영의 강렬하고 블루지한 기타 연주다. 피할 수 없는 혈투의 방아쇠인지, 탐닉의 끝에 치닫는 절정인지 나는 여전히 분간하기 어렵다. 지느러미 주위로 몰아치는 소용돌이에 그저 넋을 놓고 빨려들어갈 따름이다.

(다음 페이지: 1분기 앨범 리뷰)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