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대중음악웹진 <온음>입니다.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과 함께 시작된 2020년대에서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생한 중대한 사건들과 참상, 혼란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2020년대의 절반을 보내며, 저희는 지금까지의 2020년대에 공개된 대중음악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만한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사유의 결과를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본 지면에선 국내의 음반들을 다루며, <온음>의 전체 필진 10인 중 coloringCYAN, 양소하,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의 총 5명이 참여했습니다. 2020년대의 절반을 훑는 중간점검이니만큼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 사이에 발표된 국내의 음반들 중 필진 개인별로 10개씩을 뽑았고, 그 중 한 개의 음반에는 어째서 해당 작품이 2020년대에 중요하게 다뤄져야하는지를 설명하는 단평을 각 필진들이 적었습니다. 각 필진들의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보태어진 작품 또한 그것이 리스트 내에서 으뜸이라는 이유로 단평이 적힌 것이 아님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안내드립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2020년대 중간점검이 독자 여러분들께 지난 5년을 떠올리시며, 앞으로의 5년을 생각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저희 <온음>을 구독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2020년 01월 01일에서 2024년 12월 31일까지 발매된 음반들 사이에서 선정된 필진별 개인 리스트입니다.
- 각 리스트의 목록은 가나다/abc/숫자 순으로 적었습니다.
- 본지의 모든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적힌 작품 역시 리스트 내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 참여필진 : coloringCYAN, 양소하,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 총 5인
- 다른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리스트들은 다음 링크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내 트랙 → 여기를 클릭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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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by. coloringC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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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음반
정밀아, 『청파소나타』 – Written by. coloringCYAN
『청파소나타』에서 정밀아는 너무 건조하지도, 너무 벅차오르지도 않는 목소리를 첫째로 내세운다.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는 「서시」의 단단한 결심은 그 내용보다 말랑하게 노래되며, 「오래된 동네」나 「광장」 같이 민중가요의 성격을 끌어올 때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는 노랫말로써 가장 할 말이 많이 하는 「환란일기」에서는, 정밀아의 목소리가 들뜬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 정도로 그녀가 들뜬 순간은 음반 내에선 「서울역에서 출발」이 또 그랬을 테다. 거기서 그녀가 어머니와 통화하며 “그냥 그랬구나 하는 거예요”라 했던 것처럼 여러 세태의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톺으면서도 그저 “정성껏 살아”가는 것을 방법으로 제시하는 「환란일기」에서 작중의 화자는, 어떤 면에선 소시민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순간, 음반은 청자와 순식간에 밀접해진다.
포크가 으레 노랫말을 다루는 방법 중 아티스트 개인의 이야기를 일반과 매개 짓는 ― 소위 말해 작가가 ‘익명화’되는 ―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청파소나타』가 취한 것이 바로 그것일 테다. 그것은 작품 자체가 다소 애매한 온도나 느슨한 관점으로 매몰될 취약함이 있는 방법이지만, 정밀아는 이 음반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뛰어넘었다. 하나가 앞서 말한 목소리를 다루는 방식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일기와 시 사이에 미묘하게 걸친 상태로 적힌 노랫말의 기예다. 그렇게 『청파소나타』는 정밀아의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서울역에서 출발」이나 「어른」에서 그려진 소소한 일상을 보며 부담 없이 듣게 되는 것처럼, 「오래된 동네」나 「광장」, 「환란일기」 같이 작금의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다루는 (조금 무거워도 될 만한) 트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된다는 말이다. 임진모가 말했듯 낭만/서정성을 갖추는 것과 현실을 응시하는 것이 포크의 미덕들이라 한다면, 그 두 가지를 고루 탁월하게 이룬 『청파소나타』는 평단에서 21세기 포크 걸작이라 상찬 받아온 이유를 충분히 갖춘 셈이다.
──List by. 양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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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음반
NewJeans, 『New Jeans』 – Written by. 양소하
2020년대 한국에서 NewJeans 만큼 많은 이들에게, 온갖 분야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언급된 사례가 있을까? NewJeans의 데뷔 EP 『New Jeans』는 그 완성도나 중요성과 별개로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획득했으며, 동시에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생산한다. 우리는, 또 나는, NewJeans와 『New Jeans』에 대해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그룹의 데뷔 직전 민희진이 TV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와 언급한 ‘반反 K-Pop’으로서 NewJeans를 생각한다. 그들이 기존 K-Pop과 다른 문법을 보여주는 사례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것은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이었다. 예컨대, 2010년대를 통과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K-Pop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창조한 과잉의 결과물이다. 맥시멀리즘의 형상 너머 예측 불가한 역동성을 지닌 음악. 온갖 장르적 서사와 캐릭터 작법을 버무려,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팽창한 세계관과 서사.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이란 (실현 가능한) 꿈을 위해, 시장 안팎의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끌어와 어떻게든 체화하려는 기업 전략. 그 찬란한 격동과 지리멸렬한 구조가 임계점에 달하는 시점에 NewJeans는 등장했다.
기존 K-Pop이 쌓아온 과도한 체계를 마주한 NewJeans의 발길은, 최초에 그 이미지를 겨냥한다. 그들에게 있어, 이제는 이해를 넘어 분석을 요구하는 K-Pop 세계관과 콘셉트 규범은 무의미했다. 예컨대, 『New Jeans』 음반은 물론, ‘새로운 청바지’라는 뜻의 그룹명은 그 어떤 설명이나 서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와 콘셉트 포토에서 집과 학교 등 실내 공간부터 공터, 운동장, 거리를 배회하는 소녀들은, 자신을 담아낼 특수한 세계를 배격하고 단지 ‘현실(을 닮은) 여기’에 스스로 존재함을 표명한다[1]. 나아가 간결하고 세련된, 장르 음악 문법과 대중적 소구력을 적절히 배합한 음악은 NewJeans가 저격한 기존 K-Pop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보컬-찹 샘플이 세기를 조절하며 부유하는 「Attention」과 ‘왑왑’하는 소리의 신디사이저가 점멸하는 「Cookie」는 분명 채울 수 있는 여백이 많음에도 그 자리를 비워 둔다. 대신, 다양한 샘플과 악기 소리가 아닌 멤버들의 목소리를 활용해 그 공간을 메워낸다. 예컨대, 간결한 어조로 말의 빠르기를 조절해 친구와 대화하듯 노래하는 벌스를 지나, 순식간에 음고를 높이며 특별한 기교 없이 균일한 음색으로 가창하는 「Attention」의 후렴은 화사한 공간감을 만들고, 이와 동일하게 일정한 음을 반복해서 내뱉다 급작스레 꺾어 버리는 파트를 지나, 차근차근 하강하며 후렴으로 진입하는 「Cookie」의 프리코러스는 탄탄한 구조를 그려낸다.
동시에, 복잡한 세계를 창조하던 K-Pop이 더더욱 완벽한 허구를 그리고자 노력했다면, NewJeans는 그 흐름을 비틀어 K-Pop 자체를 지목하는 방향으로 회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노랫말, 그러니까 NewJeans는 ‘사랑’이라는 통속적 이야기를 경유해 K-Pop을 이야기한다 – 보다 급진적으로 말해, 『New Jeans』는 메타 K-Pop적인 작품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짝사랑의 탈을 쓴 채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요청하는 행위(「Attention」),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것으로 상대를 ‘쩔게’ 만들어준다는 약속(「Hype Boy」), 허기와 갈증을 해소할 음식과 음료는 없지만, 대신 상대의 본능적 즐거움을 충족할 달콤한 디저트는 반드시 주겠노라는 선언(「Cookie」), 스스로는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 상대의 애정을 소극적으로 갈구하는 모습(「Hurt」)까지, 그 모든 노랫말을 모호한 대상과의 사랑이 아닌 K-Pop 아티스트와 팬덤(또는 리스너)의 관계에 대입하면 어색한 경우가 없다 – 물론 NewJeans가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K-Pop 산업의 모습, 특히 기업 • 아티스트 – 팬덤 • 리스너의 관계를 녹여낸 사례는 이후로도 꾸준히 등장한다.
이는 분명 시장에 만연한 ‘팬송’이나 K-Pop 아티스트의 보편적 데뷔 과정과 다른 방법론을 채택한 사례일 테다. 먼저, NewJeans는 급작스레 공개된 데뷔 프로모션과 연습생 시절이 공개되지 않은 대부분의 멤버로 인해 시작에 앞서 ‘팬’이라 부를 만한 이들이 사실상 부재했다. 그들이 ‘민희진 걸그룹’으로 먼저 알려졌단 사실은, 민희진이라는 독특한 존재와 그의 이력을 향한, 이른바 ‘민희진 키즈’의 관심이 발현된 결과였다 – 더구나 그로 인해 발생한 극초기 팬덤은 사실상 NewJeans가 아닌 민희진의 팬에 가까웠다. 또한 대부분의 K-Pop 아티스트는 데뷔 단계에서 정체성을 강력히 표명하거나, 사랑의 문장을 통과해 일방적인 구애의 노랫말을 발화하며 아이돌로서 자신의 존재를 청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NewJeans는 네 개의 트랙에 걸쳐, K-Pop 시장의 생산자 • 퍼포머로서 느낄 법한 다소 솔직한 내면을 표현한다 – 전술했듯, 그들은 팬과 리스너의 관심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며, 비록 자신이 실존적 도움은 줄 수 없더라도 그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선사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 같은 가사는, 그들이 SF 세계의 허구적 인물이거나 매번 달라지는 콘셉트에 맞춰 역할을 바꿔내는 캐릭터가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형상의 K-Pop 아이돌임을 보다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많은 이들이 언급하듯,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을 표상해 만들어낸 (실재를 둔갑한 허구의)세계 안에서, NewJeans는 춤추고 노래하길 좋아하는 NewJeans 그 자체로 존재한다.
결국 NewJeans는 그들의 이름과 연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고리로서, K-Pop의 새로운 유전자New Genes를 배합한다. 그들은 작금의 K-Pop에 반한다는 동기를 장착한 채로, 자신을 프리즘 삼아 작품에 K-Pop을 투사하고 있다. NewJeans의 등장 이후 급격하게 가시화된 K-Pop의 면면을 돌아보자. 가령, 음악 못지않게 높은 비중을 가진 뮤직비디오, 스타일링 등 시각적 콘텐츠와 다채롭고 차별화된 마케팅의 중요성. 아티스트, 기획사 대표, 음악 제작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군의 제작자가 협력해 만든 결과물로서 K-Pop 콘텐츠가 내포한 가치. 과포화된 시장의 해법을 시장 바깥에서 흡수하는 K-Pop 산업의 탐욕적 비즈니스 모델. 이 문제들은 분명 그 전까지 아주 주요하게(혹은 생명력을 지닌 채)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일 테다. 나아가, 기존 캐릭터 산업의 성격을 확장해 그룹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산업 외부 대상과 협업하는 방식, 시장에서 콘텐츠를 생산 • 배포 • 실연하는 주체로서 기획사와 제작자, 퍼포머가 K-Pop이라는 산업을 인식하는 관점과 태도를 담은 콘텐츠는 NewJeans의 길지 않은 활동에서 자주 부각되었다. 이처럼 『New Jeans』 발매 이후 그들의 내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금 K-Pop 시장[2]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 최근 2년 새 데뷔한 ILLIT, KISS OF LIFE, KiiiKiii 등 그룹에서 NewJeans의 발자국이 흐릿하거나 일부 변용된 채 드러나는 한 편, 작년의 aespa와 (아직 이르지만)올해의 NMIXX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NewJeans의 파장을 뚫어내며 당해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을 내놓은 사례가 그렇다.
K-Pop은 30여 년 전 다소간 두서없이, 그러나 체계적으로 태동했고, 이후 내부 시스템과 자본 구조를 공고히 다져가는 방향으로 급진적 성장을 이룩했다. 동시에 K-Pop은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모호한 근원과 정체성을 굳이 찾아내고자 노력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허물을 두껍게 덧씌웠다. 그렇기에, 적어도 오늘날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 그러니까, K-Pop이란 건 대체 무엇인가? 원점으로 돌아가, NewJeans가 K-Pop의 반대항으로 자리 잡기 위해 마주했던 과제 역시 K-Pop을 정의하는 일이었을 테다. 하지만 K-Pop을 규정하는 건 지극히 어렵고, 그 해결에 앞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 예컨대 K-Pop에서 ‘K’와 ‘Pop’의 의미나, 그 음악적 • 산업적 특성을 하나하나 정의하려는 노력은, 결국 K-Pop이 온갖 요소를 착종하며 쌓아올린 태생적 혼돈으로 인해 손을 대기 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민희진과 ADOR는 NewJeans를 그 자체로 단순한 해답으로 제시하기보다, 활동을 통해 K-Pop을 은밀히 폭로할 수 있는 여러 질문의 총체로서 내놓았다. 그리고 과거에도, 얼마 남지 않은 2020년대의 미래에도, 아마 『New Jeans』만큼 충격적인 질문으로 가득 찬 작품을 만나긴 힘들 것 같다.
[1] 그들이 작품 속에서 실존하는 가장 독특한 위치는 「Hype Boy」 뮤직비디오에서 연락(채팅)이 오가는 곳으로서 온라인(정확히는 스마트폰)을 모사한 공간이며, 이는 2020년대에 더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 스마트폰을 위시한 온라인 • 가상 공간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그들의 이후 작품 활동에서도 주요한 모티프로 반복된다. 그 무엇보다 스마트폰은, 2020년대의 10대-20대 초반 소녀들이 자리하는 ‘현실을 닮고자 하는 NewJeans의 세계’에서 절대 제거될 수 없는 존재다.
[2] K-Pop의 세계 진출을 이끈 BTS의 군백기와 블랙핑크 멤버들의 솔로 활동, GD • 비스트 • 2NE1 등 전국민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티스트의 컴백 또는 재결합, 쏟아지는 현지화 그룹 제작과 XG • BINI 등 K-Pop 시스템을 이식한 K 너머 국가의 아이돌 팝, 쇠락한(줄 알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재소환, 이달의 소녀로 다시 불거진 기획사 – 아티스트 간 계약 문제와 이후 ARTMS • Loossemble • 츄 • 이브의 행보가 보이는 특이성, RIIZE • TWS 등을 기점으로 이뤄진 보이그룹 대중성 논의의 입장 전환, PLAVE를 위시한 버추얼 아이돌의 부상, 초대형 기획사의 지각변동과 그 자리를 노리는 중대형 • 신진 기업 간의 각축, 코첼라 • 롤라팔루자 등 글로벌 페스티벌에 출격하며 유명 패션 하우스의 앰버서더 자리를 채운 K-Pop 아티스트들 …. 2020년대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2024-2025년은 K-Pop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격변을 맞이했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또 긍정의 방향이든 부정적 논쟁이든 상관 없이, NewJeans는 그 혼돈의 한 가운데 서 있다.
──List by. Y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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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음반
잔나비, 『환상의 나라』 – Written by. Yves
Maurice Maeterlinck의 희곡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으로 시작해 그 파랑새가 항시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깨달으며 끝내 날아가 버린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주인공의 절박한 호소로 끝이 난다. 여기서 이 “파랑새”는, 분명 주인공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찾아다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저 “파랑새”가 끝내 자신의 길을 찾아 홀로 날아가 버리던 것은 그 누구도 그리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저 “파랑새”는 삶의 부박함과 고단함을 외면할 수 있게 만들었던 몇 안 되던 세계관의 상징물이었고 그것이 홀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은 삶의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그대로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버드, 스프레드 유어 윙스!」에서 최정훈은 그 “파랑새”에게 오히려 자신의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을 주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뒤이어 「굿바이 환상의 나라」에서 최정훈은 이렇게 말한다. “환상의 나라를 사랑하고자 했던 사내에게 현실의 아름다움은 독이어야만 했지.” “이제 내가 믿어왔던 그 모든 것들, 난 환상이었다 부를 수 있어. 그러면서도 또 믿어 볼래. 그것들을 환상이라고, 그렇게 부르기까지의 그 시간들을.” 애당초 『파랑새』부터가 삶의 부박함과 고단함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던 희곡이 아니었던 것처럼, “환상의 나라”를 거부감 없이 방문하던 이에게도 그것은 매한가지였던 셈이다. 이렇듯 우리는 가끔 그 “환상의 나라”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아침을 나서는 발걸음은 마냥 용맹하지만은 못하고, 우리의 밤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지개가 떨어진 곳을 알아,”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내보이던 우리는 어느덧 “거긴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는 뱃사공이 되었다. 그런 우리는 필요하다. “여전히 꿈과 희망, 사랑과 우정, 성실과 용기가 넘쳐흐르는 곳!” 우리에게 『환상의 나라』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분명 『환상의 나라』에는 젊은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가져본 적 있던 거의 모든 감정들이 서려 있다. Tom Sawyer라도 된 양 옮겨가는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쾌활함,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록 스타를 보고 느끼는 동경, 연애 감정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숫기 없음, 꿈을 눈 앞에 두고 한없이 추락하는 동안의 좌절감 등 이들은 모두 비단 최정훈만이 느껴봤을 매우 독특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가사를 쓰는 재치, 그의 관점과 태도, 『Monkey Hotel』 (2016)과 『전설』 (2019)에서보다 더 진일보한 작/편곡 등 그가 가진 무기들로 이 감정들이 아주 이상적인 시공간에서라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순도 높은 무언가라고 꾸미며 우리를 감쪽같이 속인다. 그 무기들은 인트로 「환상의 나라」의 산뜻한 현악 연주로 시작해 장엄한 기타 연주로 나아가는 구성처럼 “영화 같은 분위기”라는 키워드 내에서도 가장 상투적인 방식이 되기도 하지만,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에서 청년층의 실의와 고단함이라는 주제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유머―가령 “우울의 서막, 젊은 관짝 대행진!”이나, Friedrich Nietzsche의 말을 적당히 바꾼 “끝내 날 죽이지 못했던 그것은 진짜로 아팠다”라는 가사―와 곡의 골조를 두고 피아노와 기타가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난장, 다양한 목소리가 우리의 감상을 집중시켰다 해제하게 만드는 놀라운 서스펜션을 덕지덕지 이어 붙인 기가 막힌 브리콜라주가 되기도 한다. 가장 밝은 것으로부터 가장 어두운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경험과 감정은 우리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둔갑하고, 그런 『환상의 나라』는 우리의 젊음을 향한 정말 힘차고 강력한 송가 그 자체처럼 들린다.
최정훈이 사랑해 마지않는 The Beatles를 비롯한 The Beach Boys, Burt Barcharach, The Byrds, The Zombies 등 수없이 많은 1960년대의 아티스트들은 기존의 록 음악에 관현악 세션, 코러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시사이저나 키보드가 낼 수 있었던 소리 이외의 것을 도입해 그야말로 바로크 팝의 선구적인 면모를 구성할 수 있었던 시기의 표식이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비슷한 일을 해낸 아티스트들로는 Sufjan Stevens나 Godspeed You! Black Emperor, Stereolab, Black Country, New Road 등 장르를 불문하고 수도 없이 많았지만 6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잔나비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해냈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정확히는, 그들이 『Monkey Hotel』이나 『전설』을 제작할 당시 그들 능력 바깥의 소리를 전부 가상 악기로 구현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환상의 나라』에서는 진짜 악기의 연주,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보탤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2019)와 「밤의 공원」, 혹은 「외딴섬 로맨틱」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갖는 태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 트랙 사이에 알 수 없는 풍성함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는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을 테다.
이러한 바로크 팝, 체임버 팝과 다분히 착종이 이루어진 현재 한국의 인디 록, 인디 포크의 문법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환상의 나라』의 수준으로 작편곡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사례는 극히 소수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는 앞선 이야기가 예증하듯 경제적인 이유가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을 테다. 『전설』의 성공으로 경제적인 제약이 최소화된 그들을 막을 수 있었던 건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배경 외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물을 보라. 전술한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가 『환상의 나라』 최고의 트랙이라면, 「밤의 공원」의 그 아웃트로는 『환상의 나라』 최고의 순간이다. 시적인 가사와 코러스, 기타와 드럼의 정열적인 연주, 80년대 팝 음악을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신스 리드와 갖은 효과음들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치던 그 장면, 주어진 것이 많지 않은 젊음이 쟁취할 수 있을 가장 짜릿한 경험이 단 1분 내외로 요약되는, 가히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다. 『환상의 나라』는 마치 하나의 트랙처럼 만들어진 앨범이지만 모든 트랙에서 젊음의 희노애락을 저마다의 방식대로 짚어내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트랙이 끝나면 그 트랙이 담지하는 전경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앨범이 주는 단일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Tilda와 Tiltil이 파랑새를 산 채로 데리고 그 세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던 것처럼, 파랑새로 하여금 스스로가 날개를 펼치고 그 세계 안 깊은 곳으로 날아가게 해야 그것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은 나를 원치 않아,”라는 말을 이해하고 우리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우리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환상의 나라』는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한때 홍대 문화의 기수였던 그룹사운드 잔나비는 시간이 지나 어느덧 이 땅 위의 모두가 아는 밴드가 되었고, 장르의 팬을 자처하면서도 소싯적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환상의 나라』 이후 보여주는 잔나비의 행보는 밴드의 그것이라기보다는 한 솔로 아티스트의 개인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것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의 나라』는 형용할 수 없이 근사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아무도 모르던 밴드였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젊음의, 그것을 위한, 또 그것에 의한 노래를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환상의 나라』는 그들의 역작이고, 언제까지나 젊고자 하는 최정훈이 쓸 수 있던 최고의 노래들이 모인 최고의 결과물이다. 생각해보라. 전달 매체를 막론하고 대중문화의 그 어떤 무대에서든 어린이들이 장성한 모습이나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그 당시의 젊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를 그리는 작품은 언제나 환영받고 있지 않던가. 그것도 아주!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삶이 아주 치열할 것이고, 또 우리가 지나온 삶이 아주 부박하고 고단했음을 그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환상의 나라』는 하나의 도피처지만 우리가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온 열정과 순수한 마음을 우리와 함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좌절과 우리를 짓누르는 압박감 그 모든 것을 우리와 함께 들어주고 우리에게 남다른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듯하다. 이제 우리의 삶이 모두가 지나가는 삶이라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해해주는 이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손을 뻗으라, 그리고 내어주는 손을 잡으라! 우리 모두가 굳이 『파랑새』를 읽고 어떤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안녕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정훈도 말하지 않는가. “신음하는 친구여, 자신 있게 고갤 떨궈라!” 『환상의 나라』는 틀림없이 메말라가는 우리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만큼 머물고, 원하는 만큼 나아가고, 원하는 시간에 돌아오면 그만이다. 2020년대 들어 지금까지 발매된 최고의 앨범, 잔나비의 『환상의 나라』다.
──List by. MAN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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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Written by. MANIL (f.k.a. 만능초보)
「undo」에서 마치 프리스타일 랩을 하듯이 창을 읊는 추다혜와 그 사이사이 들어서는 차지스의 강렬한 잼(jam)은 기대를 한껏 부풀리며 앨범 포문을 열어젖힌다. 이어지는 「비나수+」에서 방울소리가 사이키델릭한 기타 연주와 어우러져 무가(巫歌)를 읊고, 이와 함께 본작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노랫말인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 “굿패키지로다” 등의 라인을 남기며, 노래 배경이 먼 옛날이 아닌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현대임을 드러낸다. 「사는새」에서는 스피리추얼 색소포니스트 김오키가 참여해 쉬이 잊기 힘든 절정을 맞이하고, 「리츄얼댄스」에서는 재즈 힙합스러운 바이브로, 「에허리쑹거야」에서는 레게로, 「차지S차지」에서는 (직접 창작한 가사와 함께) 펑키하고 로큰롤스러운 소리로 댄서블한 기조를 이어나간다. 자메이카 덥으로 수록곡을 리믹스하며 여정을 한단락 마무리짓는 것 또한 범지구적 지역 융합성을 나타내는 방식이겠다. 추다혜는 앓는 듯 흐느끼는 듯한 하행선율진행이 많은 서도민요 창법을 토속적 펑크(funk) 그루브와 조화시키며 흥겹고 극적인 노래로 탈바꿈하는 점은 단순한 융합을 넘어 고유한 영역을 바라본 실험의 성과일 테다.
국악과 서양 대중음악을 융합한다는 관점은 2020년 시점에서 특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국내외로 히트하며 크로스오버 음악의 잠재력을 만개한 이날치를 비롯해 고래야, 악단광칠, 오방신과와 같은 밴드들이 함께 주목받기도 했으며, 또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보다 정통적인 창작 국악으로 치열한 고민이 담긴 성취를 이뤄냈다. 물론 이를테면 잠비나이를 비롯해 2020년대 전후로도 크로스오버 계열 음악이 좋은 성취를 거둔 것도 있지만, 또한 새 연대 초 갑작스레 들끓어오른 열기에 비해 2025년 현재 그 영향이 다소 아쉽다는 의견 역시 타당하겠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융합 시도가 현재에도 꾸준히 의미 있는 이유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공간을 초월하여 새 지평을 여는 특징과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카리브해, 미국 남부 등 토속적 특색이 강한 그루브를 참조하는 가운데, 서도민요 창법을 극적인 형태로 얹어 완성해낸 본작이 성취한 바는 어쩌면 단순히 ‘우리것’을 넘어 더 넓은 범위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토속성은 범지구적 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고유한 매력점이 될 수 있겠다. 이는 물론 온갖 요소를 시장 가치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 사회 기준으로 납작하게 맞춘 의견일 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융합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구도는 희망의 여지를 남기는 듯하다. 그들이 팬데믹 가운데서 기도했던 것처럼.
──List by. 김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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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수염, 『2』 – Written by. 김로자
『2』는 발매되자마자 거의 모든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미역수염은 『2』로 한국대중음악상도 하나 탔다. 하지만 나는 『2』가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대단한 앨범인지, 제대로 인정받은 적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모든 블랙게이즈 그리고 포스트 메탈 리스너들이, 『2』가 『Sunbather』(2013, Deathwish) 이후 씬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적 전진을 이루며 모두가 마주한 장르의 침체를 가장 담대하게 돌파한 앨범이라고 인정하는 날이 올 때까지, 『2』는 저평가된 명반일 것이다.
Alcest와 Deafheaven의 스타일이 공간감과 서정을 빌려 블랙게이즈라는 장르를 자신들의 스타일로 정립한 뒤, 여러 아류 밴드들은 물론 두 선구자 본인들마저 박제된 실험법을 근사하게 연출하는 데만 골몰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는 이 장르가 더는 재미있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미역수염은 축구 감독 Pep Guardiola 같다. 그는 사람들의 단순한 오해처럼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주구장창 패스하는 것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점유율에 집중하거나 짧은 패스들을 활용하는 패스 전술을 쓰지 않는다. 경기 전반을 통제해 경기 전개에 있어서 폭넓은 선택권을 확보한다거나, 공을 이리저리 돌리는 가운데 이를 압박하는 상대의 진형을 흐트러트리며 기회를 만들거나, 아니면 적어도 지치게 만들자는 분명한 목적을 둔 채 축구 전술의 모양을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미역수염 역시, 단지 그들의 음악을 “리버브로 주구장창 떡칠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음악의 공간성을 활용하지 않는다. 분명, 낮은 해상도 속에서 뭉개지는 소리와 애매모호함으로 부유하는 공간감은 요즘 인디 씬에서 그 자체로 소비자들을 ‘환장하게’ 하는 컬트적 소비재가 됐다. 그러나 미역수염은, 종종 슈게이즈로 호명되고 실제로 완성도 높은 슈게이즈 사운드를 구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슈게이즈라는 허구는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자주 질문했고 슈게이즈로의 환원적 호명 역시 거부하는 태도를 『2』의 작업과 발매 과정 전반에서 견지한 채 나아갔다. 그래서 위와 같은 컬트적 사운드 요소들은 그 자체로 목적적인 것이 되기보다는 앨범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
『2』라는 앨범은 그 자체로 포스트 메탈이라는 기표에 가장 어울리는 기의인 듯 보인다. 메탈 안팎의 온갖 도구들을 마구 뒤섞어 배치하고, 그것으로 메탈의 문법을 무너트리지만 여전히 메탈이기 때문이다. 메탈이라는 문법 속, 신파와 비장이라는 금과옥조나 다름 없는 스펙터클 바깥에서도 음압과 거대한 구조를 빌어 청자를 폭력적으로 압도하는 장르 특유의 미학을 충실히 완성한다. 명료하고 높은 해상도 속에서도 슈게이즈적 앰비언스를 아름답게 칠해 가는 기타 톤, 젠트에서 하드코어 펑크에 이르는 여러 과격한 장르들 사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리듬이 앨범 속에 존재한다. 한 편 작곡 상의 여러 지점에서 『2』는 Sonic Youth가 시도하는 포스트 메탈(혹은 메탈 풍의 디스토션과 비싼 리버브 페달을 산 Sonic Youth)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소음을 터트리는 지점 사이사이에 배치된 Kim Gordon 풍의 스포큰 워드, 말하기에 다름 아닌 보컬을 통해 일상언어를 음악 속에 배치하는 방식에 곡의 키를 쥐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 사이를 변화무쌍하게 오가는 앨범의 구조적 흐름은 그저 경이롭다.
미역수염은 메탈과 슈게이즈는 물론, 정형화된 포스트 메탈 문법으로부터 이탈하면서도 여전히 그 장르이기 위한 앨범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온갖 실험법들을 기존과는 다른 위상학적 방식으로 나열하고 풀어낸다. 『2』가 지금까지 없었던, 그리고 지금까지 장르가 겪어 왔던 위기를 돌파하는 포스트 메탈 앨범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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