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내 트랙

by 온음
   

안녕하세요. 대중음악웹진 <온음>입니다.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과 함께 시작된 2020년대에서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생한 중대한 사건들과 참상, 혼란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2020년대의 절반을 보내며, 저희는 지금까지의 2020년대에 공개된 대중음악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만한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사유의 결과를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본 지면에선 국내의 트랙들을 다루며, <온음>의 전체 필진 10인 중 coloringCYAN, 양소하,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의 총 5명이 참여했습니다. 2020년대의 절반을 훑는 중간점검이니만큼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 사이에 발표된 국내의 트랙들 중 필진 개인별로 10개씩을 뽑았고, 그 중 한 개의 트랙에는 어째서 해당 작품이 2020년대에 중요하게 다뤄져야하는지를 설명하는 단평을 각 필진들이 적었습니다. 각 필진들의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보태어진 작품 또한 그것이 리스트 내에서 으뜸이라는 이유로 단평이 적힌 것이 아님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안내드립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2020년대 중간점검이 독자 여러분들께 지난 5년을 떠올리시며, 앞으로의 5년을 생각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저희 <온음>을 구독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2020년 01월 01일에서 2024년 12월 31일까지 발매된 트랙들 사이에서 선정된 필진별 개인 리스트입니다.
  • 각 리스트의 목록은 가나다/abc/숫자 순으로 적었습니다.
  • 본지의 모든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적힌 작품 역시 리스트 내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 참여필진 : coloringCYAN, 양소하,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 총 5인
   

──List by. coloringC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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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트랙

Anonymous Artist, 「바로 리부트 정상화」 – Written by. coloringCYAN

   

2024년 SUNO나 Udio등의 사이트를 통한 AI음악의 본격적 도래는 능란한 합성/편집 기술과 최소한의 화성 지식을 요구했던 과거 합성음악의 유행과도 결이 크게 다르다. 이젠 어느 누구든, 지식과 경험이 일천할지라도 대중음악을 생산하며 ‘아티스트’로써 예술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중음악’이라는 낱말의 가능성이 생산 양식의 변화로 인해 생긴 것이라면,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넘어 예술가 및 제작술을 둘러싼 아우라마저 해체되어버린 지금을 보는 우리는 음악예술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재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맞닥뜨렸다 할 수 있겠다.

현재까지 국내 AI음악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을 「바로 리부트 정상화」는 AI음악이 특정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특수한 청자들에 한해 효력을 발휘하는 밈으로서만 남지 아니하고, 충분한 대중적 소구를 갖춰 기성 대중음악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특히 이 트랙을 ‘메이플스토리’의 구역 밖으로 꺼낸 가장 날선 무기가 ‘김창섭이 정상화’하는 노랫말이 아닌 AI로 인해 타격감 좋게 잘 구현된 드럼 리듬과 탑-라인(말맛)을 비롯한 소리의 완성도였다는 점이 그렇다 ― 따라서 오직 이른바 ‘생체뷰봇단’의 활약만이 트랙의 히트를 정의한다는 일부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의 주장은 (어쩌면 그들은 이 트랙이 게임 바깥으로 꺼내어져 논의되는 것을 꺼리는 것일 수 있겠다) 사실과 거리가 있는 자조다. 서브컬처적 밈과 도파민에 절여진 텍스트의 내용 자체는 (익명의) 인간의 산물이나, 그것이 더 이상 해당 서브컬처의 안에 있게만 하지 않도록 널리 불리게 한 힘은 원작‘자’에게 있지 않은 셈이다.

누구도 AI음악이 이 정도로 히트할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단 점에서, 「바로 리부트 정상화」의 선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한국대중음악의 AI 활용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며 AI를 대중음악의 안에서 이탈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게임음악 등에선 AI가 창작에 적극적인 위력을 행사 중이며, 일부 대중음악가들은 창작 과정에 AI를 사용하고 있다. 더해서 「바로 리부트 정상화」 같은 AI 음악의 존재방식은 이미 대중음악산업의 스트리밍이라는 틀로써 범주화될 수 없는 상태다 ― 간편한 예로 그것은 가시화된 ‘차트’의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가시적인 성취를 거뒀다. 따라서 대중음악의 안으로 AI를 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순식간에 해묵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분명 (어쩌면 우리가 채 인지하기도 전에) 대중음악의 안으로 들어와있다. 그렇다면 그를 통해 대중음악의 성격이 어떻게 바뀔/바뀐 것인가, 그리고 그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예술가’와 ‘향유자’는 어떻게 관계할 수 있는가가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되겠다 ― 일례로, 지금 시점에선 어느 누구도 「바로 리부트 정상화」에 ‘인간’이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 명쾌히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예민하게 주시해야 하며, 대중음악비평가들의 비평적 수고 역시 그 주시의 한 방법일 것이다.

   

──List by. 양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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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사랑이야기」 – Written by. 양소하

   

난 여전히 뽕짝보다 신나는 음악을 찾지 못했다. 귀를 찌르듯 높고 날카롭게 향연하는 전자음은, 듣는 이의 의향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고막을 침략해 트랜스 상태로 몰아넣는다. 빠른 속도로 정직하게 쿵짝대는 거친 드럼과, 그 사이를 쪼개며 운동하는 베이스는, 몸을 흔들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청자의 신체를 자신의 그루브에 중독시킨다. 이에 더해, 은연중 튀어나와 흥취를 돋우고 눈 깜짝할 새 사라지길 반복하며, 음악의 공간에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효과음과 추임새의 존재감까지. 적어도 내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뽕짝의 향취는 단지 촌스러운 분위기와 엉성하게 조직된 소리로 가득한 음악이 아니었다. 뽕짝은 나도 모르는 새 정신을 착란시켜 모든 감각의 주권을 빼앗아버리는, 아주 사나운 포식자를 닮은 노래에 가깝다. 아마도 250의 『뽕』이 많은 이들에 의해 ‘세련되었다’거나 ‘힙하다’는 인상을 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 전자음악의 문법에 가까운 원리로, 유연한 구성과 매끈하게 조성한 소리를 바탕 삼아 뽕짝의 포악함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방식을 주요하게 채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사랑이야기」는 앨범 안에서 유별난 위치를 점한다. 예컨대 강덕구는 “빨간 불이 번쩍이는 지방 도시 뒷골목의 정서”[1]가 『뽕』을 뒤덮고 있으며, 그 “풍경을 아우르는 장치”로서 “고속도로”를 지목한다. 적어도 현재 청년층에게 있어 ‘뽕짝’의 향취를 가장 직접적으로 남긴 것은 다름 아닌 고속도로일 테다. 특히 휴게소 한편의 트럭에서 퍼져 나오는 뽕짝을 떠올려 보자. 낮은 음질과 높은 음량으로 인해 가창과 노랫말은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것은 청각 기관을 마비시키는 특유의 소리만으로 휴게소 방문객을 현혹한다. 그리고 250이 직접 언급했듯, 운전하며 듣는 빠른 속도의 음악으로서 ‘고속도로 뽕짝’을 닮은 「사랑이야기」에는 이와 같은 감흥이 온전히 담겨 있다. 예컨대, 장윤정과 박현빈을 지나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 시대가 왔음에도, 우리가 ‘트로트’가 아닌 ‘뽕짝’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아티스트로서 이박사의 목소리가 양쪽 귀를 혼란시키며 트랙의 포문을 연다. 강한 파열음을 터뜨리는 드럼과 서서히 청각을 마취시키는 신디사이저가 연달아 등장하고, 뿅뿅 거리는 효과음이 나타날 때면 그나마의 피난처가 될 수 있던 미약한 여백조차 제거된다. 그리고, 마침내 꽈배기 톤의 리드 신디사이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사랑이야기」는 휴게소에서 마주한 뽕짝의 격정을 완벽히 재현한다. 

250의 『뽕』은 더 많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다양한 의견과 논의를 갖추고 있다. 다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250이 지금까지 DJ로서, 전자음악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K-Pop 프로듀서로서 만들어 낸 ‘세련되고 힙한’ 이미지에 사로잡혀 『뽕』의 ‘멋짐’만을 주요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뽕』은, 「주세요」와 「레드 글라스」처럼 멋들어진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모든 것이 꿈이었네」와 「나는 너를 사랑해」의 아름답고 애절한 정서를, 「뱅버스」와 「바라보고」의 매력적인 융합을 담은 앨범이다. 「로얄블루」의 깊이 침잠하는 고독과 「휘날레」가 풍기는 희망차고도 우울한 노스탤지어, 「이창」이 잡아챈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하는 박자의 다채로운 변용 또한 간과할 수 없겠다. 하지만 「사랑이야기」에서 비로소 뽕짝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위치 정보를 드러내어 청자를 인도한다. 뽕짝은 이 국가 안에서 빠르고 또 느리게 흘러가는 우리의 감각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만들고, 마치 “상처받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2]처럼 울려 퍼지는 혼돈의 한복판으로 듣는 이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곳[3]에서, 나는 마비된 감각에 온몸을 맡긴 채, 음악과 함께 마음 편히 몸을 흔들었던 것만 같다.


[1]  강덕구.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익사한 남자의 자화상. 글항아리, 2023. 302p.

[2]  위의 책,296p.

[3]  거세게 달리는 차량으로 가득한 고속도로, 그 한가운데 우뚝 멈춰 선 휴게소 한복판, 또 효도 라디오가 달린 자전거가 질주하는 강변, 갑작스레 울려 퍼진 전화 벨소리로 가득 찬 지하철. 지금도 뽕짝은 우리 주변을 빠르게 달리고 있다.

   

──List by. Y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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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 「사건의 지평선」 – Written by. Yves

   

대중음악이 “대중에 의해 불리우는 음악,” 혹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음악”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그런 주장을 펼치는 이들조차도 그 “대중”의 범위를 스스로가 철저하게 규정하지 못할 뿐더러, 평단을 위시한 “소수의 대중”이 펼치는 의견이 “통상적 대중”이 펼치는 의견과 철저히 유리된 무언가라는 일반의 전제부터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주장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재까지도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일련의 괴리를 봉합하는 사례들이 드물지만 늘 있어왔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은 그 드문 사례 속 가장 최근의 것들 중 하나로써, 2022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횟수를 자랑하는 트랙 중 하나임과 동시에 당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을 규정할 수 있을 트랙 중 하나였다. 「사건의 지평선」은 유명 케이팝 아티스트의 트랙과 민망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발라드 트랙이 국내 차트의 최상단을 독점하듯 했던 근 몇 년간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차트 최상단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수한 트랙이기도 하며 데뷔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는 아티스트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대학가를 점령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물론 윤하가 지명도가 낮은 아티스트는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만들어낸 일련의 사건들은 아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때 그녀는 국민가수라고 부를 수 있을 사례로 손꼽혔고, 지금도 많은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소싯적 그녀의 음악을 꾸준히 찾고 있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을 바뀌었을 만한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도 자연히 여럿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건의 지평선」은 윤하에게도 매우 특별한 트랙인 것이다. 김윤하는 그녀는 언제나 노래하고 있었다며, 「사건의 지평선」을 두고 “그런 윤하를 다시 시대의 한가운데로 소환한 노래”라고 말했다. 일전의 나는 이렇게 썼다. “「사건의 지평선」을 듣는 우리는 아마 저마다의 이유로 현실 속의 상황과 유리되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는 가사와 음색에 조응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와 보낸 20년에 가까운 기간을 떠올릴 것이며, 어쩌면 그 이유가 트랙 자체와는 무관한 다른 어떠한 맥락일 수도 있다.” 「사건의 지평선」은 나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될 수 있다는 실로 가슴 벅찬 단일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강력한 후보인 셈이고, 여기서 그 “나”는 윤하 자신, “우리”는 말 그대로 우리인 고로, 「사건의 지평선」이 아름답게 꾸민 우리의 2022년 하반기는 아티스트가 손수 한국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를 쟁취해낸 마법과도 같은 사건이다.

또한 일전에 썼지만, 사실 「사건의 지평선」은 그 자체로도 매우 훌륭한 트랙이다. 트랙은 분명 전형적인 한국형 기타 팝의 관습적인 속성을 충실히 따라가고는 있지만, 사건의 지평선을 연인 간의 사랑과 같은 특정한 관계의 끝맺음과 연결 지어 은유하는 방식, 그것을 표현하는 드라마틱한 전개, 그리고 윤하 본인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서도 한 손에 꼽을 만한 퍼포먼스와 같은 사항들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다른 것보다도 이러한 트랙의 강점들이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고 또 여기에서 전술한 사건들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넘어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윤하가 언젠가 한국판 James Cameron이 되어서 우주나 환경, 자연에 관해 이것보다 더 대단한 트랙을 들고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사건의 지평선」은 윤하의 디스코그래피에 새생명을 불어넣은 트랙이고, 음악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갈수록 삭막해져만 가는 이 시대에 내려온 한줄기의 따스한 햇살과 다름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현재까지의 2020년대를 꾸미는 한국 최고의 트랙,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다.

   

──List by. MAN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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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 Written by. MANIL (f.k.a. 만능초보)

   

문이 삐걱이듯 활을 켜며 담담히 전하는 모두(冒頭) 방백은 특정한 시공간을 극 배경으로 설정하지만, 첼로 선율이 간주를 꾸미다가 이윽고 합창에 불을 지피는 순간의 짜릿함은 극중 상황 혹은 극에 투영하는 각종 사태 가운데 청자/가창자를 사로잡는 듯하다. 이렇게 연주와 편곡을 통한 동력, ‘이야기’를 매개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식 따위는 곧 우리에게 지금 여기 저항이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고, 실제로 거리에 모일 시 뭉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도록 만든다. 이와 같이 「늑대가 나타났다」는 악곡을 직접 경유해 발휘하는 힘만 놓고 보더라도 근 5년 사이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자리 가운데 하나를 점한다는 평가를 전제로 밝히고 싶다.

다만 2022년 부마민주항쟁기념식에서 본곡 가창을 행정안전부의 판단으로 공연에서 배제하고 용역비조차 미지급하여 현재까지 소송이 끝나지 않은 사건은 본곡이 지닌 힘을 단순히 방증하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정치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는 동시에 이 곡이 상징하는 바를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국내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시대를 관통하는 민중가요는 그 영향을 비민주적으로 억압하려는 검열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곤 했다. 물론 이를 20세기 후반 군사독재정권 당시 유통 자체를 금지시킨 상황과 직접 비교 가능한 사안인지는 조금 더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곡의 메시지나 영향력에 권력자들이 위협을 감지했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라는 주문이나 “내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다는 사유 따위는 결국 동시대에 곡을 부를/들을 이들에게 어느 정도 느슨한 보편 감각을 공유하도록 만드는데, 특히 두 번째 인용한 구호는 넓게 어린이/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도 관련지을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저항의 이유는 곧 사회적 개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함이자, 거시적으로는 사회 권력이 방기한 책임을 묻기 위함이겠다. 비록 불법 계엄령 선포 이후 내란을 주도한 행정부 수뇌 타도라는 비교적 명확한 목표로 전국적인 대규모 집회가 다시금 활성화된 시국을 겪고 있지만, 불의한 권위에 꾸준히 저항이 필요한 이유를 본곡은 부각하고 있고, 그 대상은 곡이 그리는 바와 똑같이 시민을 늑대로 몰아가는 구태의연함을 보일 뿐임을 본곡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금 볼 수 있었다.

   

──List by. 김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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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설빈, 「방관자」 – Written by. 김로자

   

2020년대 초반, 즉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광장의 정치가 국가권력에 개입할 수 있음을 보편이 직접 체험했던 사건이 있었고, 이 나라는 소위 ‘촛불시민’이라는 것의 인과적 결론과도 같았던 문재인 정부와 함께 2020년대의 문을 열었다. 계급의 역학과 사회정치적 헤게모니 속 근본적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국가수반이라는 기호 하나만 바뀌는 일은, 광장의 정치를 국가사회에 포섭하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깨닫는 시간과 계기들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계엄이라는 민주주의의 충격적 퇴행과 함께, 다시 한 번 광장의 정치가 현재로 소환되었다. 2020년대 초라는 시간은 박근혜와 윤석열이라는 두 광장 사이에 서 있다. 그러므로 2020년대의 우리에게는 광장의 음악이 필요하다. 국민국가에 대한 이상한 도착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총파업의 한 가운데에서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민주노총은 『새노래』(202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오소리웍스)를 만들었다. 2020년대를 위한 민중가요 신보다. 앨범 발매에 앞서 지난 2024년 12월에 황푸하의 트랙과 함께 싱글로 먼저 공개된 「방관자」 역시, 새로운 민중가요 노래다[1].

여유와 설빈의 새 노래와 지금까지의 우리 민중가요들, 요컨대 ‘노가바’[2]와의 혁명적 단절을 이루고 80년대부터 김호철과 구로공단-노동자노래단을 거치며 정립된 어떤 장르 사이에는 형식과 태도 측면에서의 전회가 단적으로 존재한다. 가령 내가 「방관자」에서 마주한 것은 직관적인 선전선동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인디 씬 속 어떤 얼터너티브 포크 음악들을 돌아봐도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서러운 앰비언스가 산란하며 스스로의 자취를 감춰 가는 장면 뿐이다. 「방관자」라는 트랙은, 민중가요라기에는 이례적으로 수동적인 태도로 진술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침잠하고 단념하는 사람을 산보자적 시선에서 목격하고, 이 ‘침잠하고 단념하는’ 일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깨닫게 한다.

「방관자」라는 노래가, 더 나아가 민중가요가 민중가요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민중’이라는 의식적 자기 호명이다. 단순히 ‘예술가의 정치적인 견해가 드러나는 음악’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발화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민중가요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해보자. 전자의 경우 예술가라는 정체성은 스스로를 민중 그리고 노동계급과 구별 짓는다.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할 때, 분업적 관점에서 인민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인민에 봉사한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시혜적 지식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누군가의 외삽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텍스트다. 예술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사회적 산물이고, 사회는 가치의 대립과 투쟁을 통해 구성되는 정치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식이 비대한 ‘예술가’들의 예술이 정치적 기호 되기를 적극적으로 지향하지만 정작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정치적 텍스트로 전락해버린다면, 민중가요는 현장의 욕망과 요구 속에 피어 오르고, 입과 입을 거쳐 불리며 바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민중 속에 존재할 뿐이다. 나는 여유와 설빈이라는 두 예술노동자가, ‘그저 그렇게’,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침내 하나 불러냈다고 생각한다.


[1] 나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특히 트랙 단위의 무언가를 ‘노래’라고 부르는 것을 꺼리지만, 민중에 의해 불리기 위해 만들어진 민중가요는 노래라고 호명해야만 할 것 같다.

[2]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노동자들이 본격적인 민중음악 생산의 주체가 되기 전, 대학 내 운동사회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가요의 가사를 급진적인 내용으로 바꾸어 부르는 방식으로 저항음악을 생산했다.

3 comments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내 음반 – 온음 2025년 4월 29일 - 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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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외 트랙 – 온음 2025년 4월 30일 - 6: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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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외 음반 – 온음 2025년 5월 2일 - 1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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