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대중음악웹진 <온음>입니다.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과 함께 시작된 2020년대에서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생한 중대한 사건들과 참상, 혼란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2020년대의 절반을 보내며, 저희는 지금까지의 2020년대에 공개된 대중음악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만한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사유의 결과를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본 지면에선 영미권과 일본의 트랙들을 다루며, <온음>의 전체 필진 10인 중 coloringCYAN,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 Asom, Subin의 총 6명이 참여했습니다. 2020년대의 절반을 훑는 중간점검이니만큼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 사이에 발표된 영미권 혹은 일본의 트랙들 중 필진 개인별로 10개씩을 뽑았고, 그 중 한 개의 트랙에는 어째서 해당 작품이 2020년대에 중요하게 다뤄져야하는지를 설명하는 단평을 각 필진들이 적었습니다. 각 필진들의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보태어진 작품 또한 그것이 리스트 내에서 으뜸이라는 이유로 단평이 적힌 것이 아님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안내드립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2020년대 중간점검이 독자 여러분들께 지난 5년을 떠올리시며, 앞으로의 5년을 생각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저희 <온음>을 구독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2020년 01월 01일에서 2024년 12월 31일까지 발매된 음반들 사이에서 선정된 필진별 개인 리스트입니다.
- 각 리스트의 목록은 가나다/abc/숫자 순으로 적었습니다.
- 본지의 모든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적힌 작품 역시 리스트 내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 참여필진 : coloringCYAN,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 Asom, Subin 총 6인
- 본지의 일본 대중음악 작품 표기는 ”원어 [영어음차]”의 형태로 적혔음을 알립니다.
- 다른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리스트들은 다음 링크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내 음반 → 여기를 클릭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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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by. coloringC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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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트랙
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 Written by. coloringC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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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rt Part 5」의 Kendrick Lamar(이하 Kendrick)는 심한 탈력감에 지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트로에서 “삶은 관점에 따라 다르단 것을 깨달았지”라 말하는 모습은 같은 ‘DNA’를 공유하는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믿음이 될 것이라 말하던 「DNA.」 (2017)와 다르다 ― 여기서의 ‘우리’는 후드의 ‘우리’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Verse 3에서 Kendrick은 Nipsey Hussle의 얼굴을 빌리며 새로운 해답을 찾는다. Verse 1과 2에서 나열한 후드의 참상들을 문화Culture라 칭할 수밖에 없는 ― 심지어 그에 “Fuck callin’ it culture”라 말했음에도 ― 현실을 오직 자신만이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는, 그가 그간 짊어졌던 구원자Savior로서의 바통을 청자에게 넘긴다. 트랙 내내 울리던 “I want”라는 문장을, 마지막에 이르러서 “I want you”라 완성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The Heart Part 5」는 Kendrick이 사회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갔던 『Mr. Morale & The Big Steppers』 (2022)의 관점을 예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미국 내 흑인 사회가 변해야 하며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한다. 단지 그 역할이 이 트랙을 들을 흑인 사회의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간 것뿐이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다. 미국 내 흑인의 구원은 ‘미국 내’ 흑인이 스스로 갈구해야한다는 「The Heart Part 5」의 이야기는 동시에 Kendrick이 Drake와의 디스전에서 미국과 ‘아프리칸-아메리칸’을 수호하는 민족주의자로 노선을 달리한 것 역시 예비했다. 우리는 이를 과거 그가 『To Pimp A Butterfly』 (2015)에서 후드를 아프리카로 돌아가게 하고자 했던 (「The Heart Part 5」 이후와는 전혀 다른) 급진성을 중심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지면에서 다루기엔 적절하지 않다.
──List by. Y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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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트랙
Jessie Ware, 「Spotlight」 – Written by. Yves
현시점 거의 모든 댄스 음악은 디스코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디스코가 소수자성의 아이콘으로 기능했던 짧은 태동기와 디스코 폭파의 밤을 지나, 그렇게 세상 밖에 내던져진 디스코 프로듀서들이 초대형 팝스타와 손을 잡게 된 이후로, 디스코는 테크노와 하우스를 비롯 수많은 양태의 하위 장르를 양산했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히트곡을 대중음악사에 남겼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디스코가 소수자성에 의해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표식을 남기게 된 것과는 별개로 아티스트 일반이 디스코로 표상되던 그 소수자성을 흉내내고자 함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은 포 텟으로 대표되는 디스코의 단순한 주요 골격에 훌륭한 베이스 연주가 더해지면 누구나 신명나게 춤을 출 만하다고 실상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Madonna와 손을 잡은 Nile Rodgers를 생각해보자. 그 과정에서 누구든 근사한 디스코 트랙과 사이키 조명 아래서라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유혹하고, 자신의 젊음과 혈기를 뽐내고, 때로는 애수적으로, 때로는 정열적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자신의 이성을 내던지고 정신 없이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난 반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디스코는 웬만한 팝 아티스트나 하우스 DJ라면 누구나 생각해 볼 만한 선호도 높은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의 잉글랜드 출신 Jessie Ware도 자신의 돌파구로 디스코를 선택했다. 당해 Coachella에서 커리어 최악의 경험을 해야 했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진지하게 음악을 그만둘 것을 권유받았다. 그것은 분명 알앤비와 소울 음악 전반이 비평적인 동면기를 마치던 시점에서 혜성같이 등장했던 그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왜 하필 디스코를 선택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에게 Robyn, Róisín Murphy, Kylie Minogue 그리고 Lady Gaga와 같은 아티스트가 아주 훌륭한 교보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유추해볼 수 있겠다. 그녀는 그렇게 설정하게 된 목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듣는 사람을 춤추게 하고 섹스하게 만드는 레코드.” 「Spotlight」가 그 목표를 너무나도 잘 투영시킨 트랙이었던 나머지, 「Spotlight」가 세상에 나온 그 즉시 Jessie Ware라는 아티스트의 프로필이 완전히 다시 쓰여야만 했다. 이제 그녀의 이름은 Donna Summer, Diana Ross, Anita Ward 같은 장르의 고전과 함께 적히고, 또 그녀는 그들과 종종 비견된다. 부드럽게 흘러 들어오는 우아하고 맥시멀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녀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 James Ford가 직조한 원초적이고 에너제틱한 베이스와 드럼, 고혹적인 Jessie Ware의 목소리가 한 데 휘몰아치는 4분 12초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장관은 그녀가 쓴 가사 몇 줄에 의해 청각적 AV로 진화한다. “말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어.”
2020년은 신기하리만치 많은 아티스트들이,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응답이 워낙 커다랗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저마다의 방식대로 디스코와 유로 댄스를 차용해 세상을 다른 의미로 들썩이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군상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춤을 출 수 있는 콘서트장과 클럽이 문을 닫아야만 했던 그 시기에, 분명 Jessie Ware보다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들은 많았다. The Weeknd가 그랬고, Dua Lipa가 그랬으며, Doja Cat이 그랬고, Lady Gaga가 그랬다―그 즈음 「Dancing On My Own」 (2010)은 플래티넘 레코드가 되었다. 하지만 「Spotlight」의 존재만으로도 Jessie Ware는 그들 못지 않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이제 그녀는 혜성과도 같이 등장했지만 그저 그런 알앤비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평을 받던 아티스트에서 현시점 가장 믿음직한 팝 레코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아티스트로 변모했다. 또한 철저히 젊은 생산자들에 의해서만 유지보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작금의 팝 시장에서 가장 훌륭했던 팝 앨범 중 적지 않은 수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의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논하는 과정에서도 그녀는 매우 중요한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새로운 장이 바로 단 하나의 트랙, 「Spotlight」에 의해 새로이 펼쳐졌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아닐 듯하다. 2020년대 현재까지의 대중음악에서 발생했었던 가장 큰 화젯거리 중 하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마법과도 같은, 아티스트 본인에게도 소중하지만 우리가 듣기에도 매우 훌륭하기 그지 없는 단 하나의 트랙, Jessie Ware의 「Spotlight」를 꼽는다.
──List by. MAN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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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트랙
Aiobahn & KOTOKO, 「INTERNET YAMERO」 – Written by. MANIL (f.k.a. 만능초보)
2010~2020년대 일본 대중음악을 돌아보면 포스트-보컬로이드 문화 및 재패니즈 하드코어 테크노의 부상, 독자적인 랩/힙합 씬의 전개 등이 떠오른다. 이는 정보화 이후 인터넷 서브컬처가 음반산업 헤게모니를 쥐기 시작한 여러 증거의 단면이고, 글로벌 관점에서도 그 거대한 줄기가 일본에서부터 뻗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새삼 J-Pop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인디 게임 《NEEDY GIRL OVERDOSE》 (2022)는 실시간 방송, SNS 및 게시판 문화 등 인터넷 문화를 풍자하며 그 이면에 침잠하는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문제 따위를 위악적으로 전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본곡이 한국 출신 전자음악 DJ Aiobahn과 애니송 및 게임 사운드트랙 등에서 활약한 KOTOKO를 위시해 인터넷 공유 문화를 통해 알게 모르게 확산한 이른바 ‘전파송’ 감성을 담은 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겠다.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일본발 인터넷 기반 음악 문화를 종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맛깔나게 완성되었다. 유로 댄스를 위시한 전작 「INTERNET OVERDOSE」 (2021)도 좋았지만, 본곡에서는 이를테면 하드코어 트랜스를 중심으로 전개하되 1절에 들어서자마자 YMO를 겨냥한 베이퍼웨이브 / 퓨처 펑크 질감을 과감하게 패러디하고, 이는 본곡으로 하여금 특정한 심상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감상 층위를 더한다. 혼란하고 공포스럽게 꾸민 전후 사이 첫 번째 후렴부에서 소위 하이퍼팝 식으로 신스 라인을 터뜨리는 쾌감 또한 장난 아니고, 두 번째 후렴부는 기어이 원작 게임 소재마냥 쇼트 비디오 바이럴 히트를 기록한다.
미야자와 켄지(宮沢賢治)의 『봄과 수라』 서시 (1924)를 패러디한 도입부 내레이션은 인격이 전자 신호로 공유되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비유로 전유하는 것도 흥미롭고, 1절의 묘사는 정보화시대에 느끼는 모순적 고립감을 나름 날카롭게 진단한다. “상담을 받았어.” 2절에서 정적과 함께 불현듯 속삭이는 이 구절이 내게 왜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이후 “인터넷 그만해라”라는 조언에 거기 쌓인 추억을 떠올리며 “인터넷 최고!”라고 반발하는 평면적인 내용으로 수렴됨에도 불구하고, 아마 현대 정신질환과 투병 과정을 묘사하는 데 있어 상담 치료라는 구체적인 상황이 대중음악 악곡에서 제시된 게 흔하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디지털 원주민에게 “인터넷 꺼라”는 주문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거의 인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 시킬 기세인 시대 정신 앞에서 심신을 방어할 제언으로 세상과 단절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떠올릴 수 있겠다. 인터넷 서브컬처의 현재 유행을 소재 삼아 이를 자학적으로 재현하면서 결과적으로 어떤 진단에 성공하는, 본곡은 꽤나 뼈아픈 패러디 작업이다.
──List by. 김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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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Tumor, 「Heaven Surrounds Us Like a Hood」 – Written by. 김로자
여러모로 상상 밖의 트랙이었다. Yves Tumor가 실험적 전자음악의 공간을 벗어나 록의 문법을 수용하는 것은, 전작 『Heaven to a Tortured Mind』(2020, Warp)에서부터 단순한 징후가 아닌 드러나는 실천으로 목격됐었다. 하지만 다음 앨범에서 이런 실천이 페티시즘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본격적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초창기의 실리카겔은 사이키델리아의 공간적 구축에 천착했다. 그러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리프의 호소력을 통해 승부수를 보는 음악으로 급격히 선회하며 록 스타가 없는 나라와 시대의 한 가운데서 록 스타가 됐다. Yves Tumor의 이행도 비슷한 모양새다(물론 상업적 성과는 신통치 않지만). 나는 Deep Purple이나 Metallica 같은 리프의 천재들보다도 끝내주는 기타 리프를 Yves Tumor의 싱글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관절 2020년대에, 기타 리프 하나만으로 청중을 압도하면서도 팝적 호소력을 갖는 트랙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상상해본 적 없던 일이다.
원색의 이미지들이 거칠게 역동하는 뮤직 비디오는 글램 록을 현재로 소환한다. 다만 이는 70년대 노스탤지어 속에 멈춰 있거나, 80년대 글램 메탈처럼 비루하고 뻔하지 않다. 『Praise A Lord Who Chews But Which Does Not Consume; (Or Simply, Hot Between Worlds)』(2023, Warp)의 트랙리스트 속, 「Heaven Surrounds Us Like a Hood」의 앞과 맞닿아 있는 「Interlude」와 「Parody」의 뒤를 이어 이 트랙을 자연스레 들어보면 더 확실해진다. Yves Tumor는 LA와 MTV를 끼고 잘 나가던 옛 팝 메탈 밴드들처럼 이미지와 섹슈얼리티를 전시하는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이미지, 리프, 노이즈 세 가지 도구를 활용해 정동을 포착 가능하며 분출될 수 있는 형태로 끌어내려 했다.
──List by. A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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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your name? – 「youthful days」 – Written by. Asom
2020년대 상반기는 과거 지향의 시기였다. 2010년대 후반부터 고개를 든 뉴트로의 유행은 팬데믹과 같은 범세계적 공황이 비료가 되어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음악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Magdalena Bay는 옛 비디오 게임의 화면과 소리를 「You Lose!」의 뮤직비디오와 사운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冥丁는 『古風』 연작을 통해 자국의 옛 풍속을 세츄레이션(아날로그 음향 장비에서 생기는 소리의 파형 왜곡 현상)을 가득 머금은 샘플링 작업으로 그려냈다.
트랙을 다루기 전에 우선 이러한 음악을 감상하는 관점 세 가지를 제시해 보겠다. 1. 어떤 방법으로 과거를 연상시키는가, 2. 어떠한 현대적인 요소를 넣어 과거의 음악을 단순 복기하는 것 이상으로 차별화를 두었는가, 3. 어떤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국외 음반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Magdalena Bay의 「You Lose!」를 통해 이야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과거 비디오 게임에 쓰였던 사운드를 차용해 레트로라는 청각적 인상을 주며, 2. 이와 동시에 프리 코러스에서는 조성에서 벗어난 코드 및 불협을 주는 보컬 멜로디를 이용해 세련되고 실험적인 진행을 가졌으며, 3.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을 과거의 비슷한 경험에 비추어 현재와 과거는 나란히 늘어선 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what is your name?의 「youthful days」 역시 제목부터 그러하듯 과거를 연상시키는 트랙이다. 나른하고 부드러운 악기 리프와 코드 진행, 악기들의 톤은 Fishmans와 같은 1990~2000년대 일본 밴드들을 떠오르게 하고, 언젠가 들어 본 듯 평범한 8비트 리듬으로 시작되는 드럼은 추억의 감각을 선사한다. 그리고 페이저나 플렌저 같은 모듈레이션 계열 이펙터를 품은 리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기억의 어딘가를 끄집어낸다.
그렇다면 「youthful days」는 어떻게 차별화를 이루어내는가? 이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나간 세월을 뒤쫓는 것에 충실한 트랙이 말이다. 교과서 한편에 끼적인 낙서 같은 재킷 이미지와 VHS 비디오 화면처럼 일렁이는 사운드 디자인은 현대적인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하기에, 부재가 와 닿는다. 마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써의 음악이 아닌 향수에 빠진 어떠한 존재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뿐이다. 과거에 파묻히는 것이 곧 현재이던 2022년 하반기, what is your name?은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 그러한 현대인들을 음악으로 담아냈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보컬이다. 테이프를 반복해서 뒤로 돌리는 듯 분절되던 음성은 이내 절규가 되어 돌아온다. what is your name?이 바라보는 과거는 결국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몇 번을 곱씹어도 의미 있는 문장 하나를 구성하지 못한 채, 침전할수록 응어리지는 것은 그리움뿐이다. 그 허무함과 덧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이라는 미명 하에 반추를 지속하는 나약함과 같은 것들을 「youthful days」는 이야기한다.
혼란과 고립이라는 현재에 놓여있던 우리에게 과거는 깊은 안식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과거가 주는 콘텐츠는 언젠가 고갈되기 마련이다 – 실제로 근래의 유행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의 디자인을 재소비하는 트렌드로 이어지며 점차 현재와 가까워지고 있다. 회상이란 아름다우면서도 명확한 한계를 지닌 것이다, 「youthful days」가 짚어낸 것처럼.
──List by. Su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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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트랙
Slowdive, 「the slab」 – Written by. Subin
2023년 6년 만의 신보. Slowdive의 음악은 청각적 경험 이상으로 좀 더 거대한 공간을 형성한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면 우리는 Slowdive가 만들어낸 ‘공간’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우리는 더 이상 그 공간이란 것을 새롭게 형성해 낼 의무도 없을뿐더러, 해낼 수 있는 영역조차 아니다. 그리고 이 ‘공간’이란 것은 복제될 수 없는 영역이다. 2020년대 총결산 리스팅을 통해 언급했던 berlioz를 빌려오자면, 이들이 실연(實演)하고 실현해 온 근본적인 음악의 형태는 탈형태하거나 결합하는 형태로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서 변화해 왔다. 그 형태로는 여전히 우리의 곁에 존재하지만, 그들이 실연과 실현의 현장에서 멀어지게 되는 만큼 우리는 그 공간 자체에 꾸준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시대성에 연연하거나, 시간을 붙들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Slowdive가 주는 거대한 공간을 여러 겹의 기타 프로듀싱과 리버브 같은 공간계 이펙팅을 통해 형성되는 슈게이즈의 사운드 특성으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대 슈게이즈의 리바이벌 속에서 ‘우리가 다시 슈게이즈를 하고 있다’는 인식은 실제로 슈게이즈의 사운드를 복각하고 있되, 공간 자체를 향유하고 있지는 않다.
「the slab」은 『Everything is alive』에 내재된 모든 감정과 에너지의 절정이자 해소의 문이다. 앨범의 끝을 장식함으로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무한한 굴레 속에 우리가 다시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매개가 된다. 가령 다른 트랙들이 정서적 여백과 서사에 집중할 동안 감정이 최고조로 닿는 지점에서 공중에 비산되는 해소를 이룬다. 청자들은 일곱 트랙이 재생되는 동안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뭉툭한 감상이 그 자리에 머물 것이다. 허나 「the slab」은 인트로부터 거대한 드럼으로 시작해 공간을 비틀어버릴 만큼 압축적이며, 전진적인 과감함을 보인다. 무엇으로 뻗어나가는지 분명하게 지시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감정의 파편들을 하나로 응축시켜 공격적으로 돌진한다.
Slowdive는 「the slab」을 통해, 지금까지의 행보를 빗겨가는 새로운 시도들로도 슈게이즈의 장본인으로서 또 한 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Slowdive는 현재 90년대의 슈게이징 규격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그저 ‘몽롱한’, ‘몽환적인’, ‘어지러운’ 듯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물어다 주고 있지 않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이들의 주제는 여전히 무너짐이나 시간에 대한 추상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대다수 아티스트들이 이들을 뮤즈로 삼고 ‘슈게이징 규격’, 가령 사운드 질감 형성에만 매몰돼 있는 동안 정작 원본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Slowdive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만 기대어 장르적 클리셰에 기대고 있지 않다. 이들은 우리에게 분명 슈게이즈의 또 다른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지금껏 익히 알려진 ‘슈게이즈 사운드’의 독특한 감상을, 아주 정직하고 직관적인 것으로 뒤바꿔버린 것이다. ‘몽환’ 따위의 일그러지고 흐물한 감상과 감각을 요구하지 않고도 청자들은 여전히 Slowdive가 창조해 낸 공간에 머물 수 있고,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슈게이즈라는 것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the slab」의 굉음과 노이즈는 청자들을 그곳에 가두려 하거나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닌 이들과 이들의 감상을 해방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과 감상의 해방이란, ‘슈게이즈’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가 이 트랙을 2020년대 총결산 리스트의 해외 부문 트랙으로 꼽은 이유는 단순히 이들이 슈게이즈의 주인으로서 신보를 낸 것에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이 ‘공간’과의 괴리를, 창작자들의 책임으로 귀결시키는 것 또한 아니다. 사적인 이야기를 첨언하자면, 현대 이 ‘슈게이즈’라고 불리우는 것들에 적잖은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대의 슈게이즈가 어떤 감상법을 요구해왔는지, 그로 말미암아 나의 감상법이 어떤 식으로 고착화 되어 왔는지 적시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생산되는 슈게이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그저 ‘슈게이즈를 하고 있네’ 정도일 뿐, Slowdive의 신보조차도 ‘Slowdive가 여전히 슈게이즈를 하고 있다’ 정도의 감상만 남길 뿐,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큰 의미를 남기지는 않는 것 같다. 파란노을, sonhos tomam conta 등을 통한 2020년대 슈게이즈 리바이벌은 청각 경험이나 질감의 재현을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20년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지금도, 앞으로도 슈게이즈와 함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거대한 공간마저 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하며, 그들로 인해 우리는 그 공간 속에 언제든 편리하게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오만함이라는 것은, 재현하는 것만으로 감각적 해방을 이끌고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는 운동성 확보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우리가 슈게이즈 잔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믿는다면, 아마 그것에는 Slowdive와 mbv 같은 당대의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슈게이즈를 하고 있고, 그들의 음악을 통해 그 뿌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크게 한몫 차지하고 있을테다. 이것을 과연 현대 슈게이즈 향유자들과 창작자들이 포착해낼 수 있는가에 거대한 의문을 제시하며, 동시에 나는 이번을 통해 그들이 슈게이즈라는 공간의 주인임을 다시금 기억한다. 위에서 강조했듯, 아마도 우리의 대부분은 그저 ‘Slowdive의 신작’이나 ‘또 한 번의 슈게이즈 행보’ 같은 것들에 열광하고 있을 것이라 단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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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 취향이 한결같이 십덕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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