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대중음악웹진 <온음>입니다.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과 함께 시작된 2020년대에서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생한 중대한 사건들과 참상, 혼란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2020년대의 절반을 보내며, 저희는 지금까지의 2020년대에 공개된 대중음악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만한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사유의 결과를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본 지면에선 영미권과 일본의 음반들을 다루며, <온음>의 전체 필진 10인 중 coloringCYAN,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 Asom, Subin의 총 6명이 참여했습니다. 2020년대의 절반을 훑는 중간점검이니만큼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 사이에 발표된 영미권 혹은 일본의 음반들 중 필진 개인별로 10개씩을 뽑았고, 그 중 한 개의 음반에는 어째서 해당 작품이 2020년대에 중요하게 다뤄져야하는지를 설명하는 단평을 각 필진들이 적었습니다. 각 필진들의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보태어진 작품 또한 그것이 리스트 내에서 으뜸이라는 이유로 단평이 적힌 것이 아님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안내드립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2020년대 중간점검이 독자 여러분들께 지난 5년을 떠올리시며, 앞으로의 5년을 생각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저희 <온음>을 구독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2020년 01월 01일에서 2024년 12월 31일까지 발매된 음반들 사이에서 선정된 필진별 개인 리스트입니다.
- 각 리스트의 목록은 가나다/abc/숫자 순으로 적었습니다.
- 본지의 모든 리스트는 무순위이며, 단평이 적힌 작품 역시 리스트 내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 참여필진 : coloringCYAN, Yves, MANIL (f.k.a. 만능초보), 김로자, Asom, Subin 총 6인
- 본지의 일본 대중음악 작품 표기는 ”원어 [영어음차]”의 형태로 적혔음을 알립니다.
- 다른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리스트들은 다음 링크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내 음반 → 여기를 클릭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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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음반
Playboi Carti, 『Whole Lotta Red』 – Written by. coloringCYAN
아티스트가 기존에 성공한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은 위험한 행보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경우엔 변화는 열화를 수반하며, 그것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경험적으로 증명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 순간 그 위험을 자진해서 감수하는 듯한 Playboi Carti는, 2020년대 힙합을 논할 때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리스크에 대한 리턴을 확실히 거뒀다. 『Whole Lotta Red』의 성취 역시 그렇다. 펑크-록스타 기믹, 반기독교, 악마 숭배 등 메인스트림의 힙합 아티스트로써는 파격적이었던 콘셉트들도 그랬지만, 2020년대 힙합의 큰 물결들 중 이 음반에서 비롯된 것들이 상당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겠다.
후시적인 관점에서 『Whole Lotta Red』를 레이지라 ‘규격화’할 수 있어도, 발매 당시를 돌이켜본다면 이 음반이 보여준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 시도된 기성 힙합에 대한 쉬이 묶일 수 없는 물음들과 반골적 해체일 따름이었다. 이를테면 힙합이 Popular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차트에 복무하던 힙합에 대한 역모를 꾸미던 이들 말이다 : 자본에 기반을 둔 세련된 엔지니어링이 중요하다면 극단적으로 부스트한 저역대의 소리로 하여금 귀를 짓눌러버리면 그만이다. 랩을 기술적으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턱을 풀고 혀를 꼬아 ‘랩을 잘한다는 기준’ 자체를 비웃겠다. 노랫말의 전달이 중요하다면 랩보다 더 높은 채널에서 쏘아지는 소리 ― 이를테면 동공을 직접 타격해 눈을 멀게 하는 레이저의 따가움같이! ― 가 가장 두드러지게 들리게끔 하겠다. 힙합이 이미 대중음악의 중심이 된 이후 진입장벽의 높이가 달라진 상황 속, 빌보드의 뒤편에 사운드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등장한 여러 신진 아티스트들이 골몰했던, 기성 힙합의 규범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모든 방법이 『Whole Lotta Red』에 고스란히 모아져있다.
그 방법들은 XXXTENTACION 등의 죽음으로 잠시 답보에 빠지는 듯 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을 잃어가던 코로나 시대의 복판에서 Playboi Carti는 『Whole Lotta Red』를 통해 그를 완성하며 자신을 실현했다. 그런고로 Playboi Carti가 2020년대 힙합 트렌드의 첨병에 서서 수많은 아류와 오마주를 거느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헌데 그는, 올해 신보 『MUSIC』을 통해 애틀랜타로 돌아가며 다시금 변화를 골몰했다. 2020년대의 끝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될지, 연대가 절반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상상마저 쉽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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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LLLING, 『The Turning Wheel』 – Written by. Yves
픽사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 (2017)에는 한 명의 망자가 등장한다. 작중에서는 망자의 후손들이 지내주는 제사의 성대함이 저승에 있는 망자의 부와 명예를 결정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그 망자는 생전 거느린 유명세 덕인지는 몰라도 매우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그 망자는 사실상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장 유명한 멕시칸 중 하나인 셈이다. 그 망자는 다름 아닌 Frida Kahlo다. Frida Kahlo가 유명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겠으나, 역시 널리 알려져 있듯 그녀는 『코코』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소아마비, 교통사고와 하반신 마비, 자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배우자, 수차례의 유산, 세상과의 불화 등 한 명의 사람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파도를 그녀는 일생 내내 마주해야 했다. 그런 파도를 자신의 그림 속에 녹여내던 그녀는 “그럼에도 인생 만세”라는 말과 함꼐 그녀 필생의 역작 『Viva La Vida』 (1954)를 남기고 8일 후에 47년의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수박의 면면은 그녀 인생의 단면이자 고통이었겠으나, 그것은 곧 위대한 예술가가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고통스러웠던 삶 역시나 수박처럼 달콤할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하는 하나의 정신과도 같은 것이었다―그녀의 사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모든 그림을 국보로 지정했다. 그리고 여기, 자신의 거의 모든 예술적 경험을 흑인-멕시칸으로서의 그것으로 소개하는 새크라멘토 출신의 SPELLLING이 있다. 그녀는 생전 Frida Kahlo가 “나는 꿈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예술관이 참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것이 가장 잘 투영된 하나의 그림을 보고 그녀가 느꼈던 수많은 생각은, 그대로 그녀의 역작 『The Turning Wheel』의 인트로 「Little Deer」가 되었고, 그야말로 『The Turning Wheel』의 밑바탕이 되었다.
『The Turning Wheel』의 전반부에서는 부드러운 관현악의 하모니와 Kate Bush의 재림을 관측할 수 있고, 앨범의 후반부에서는 ANOHNI나 Fever Ray에 빙의한 Tears For Fears의 현현을 관측할 수 있다. 이들은 겉보기 등급으로도 꽤나 극적으로 낮은 수치를 자랑하는 상징들인지라, 누군가 앨범이 마치 반으로 잘린 사과 두 쪽처럼 나뉘어져 있다고 말한들 아주 이해가 가지 않을 노릇은 아니겠다. 다만 앨범은 그렇게 들릴 뿐이다. 양면으로 나누어진 앨범의 각 면은 단순히 서로가 완전히 상반된 양태를 띄진 않는 듯하다. 전술했던 「Little Deer」로 돌아가, 그것을 만드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한 Frida Kahlo의 그림은 『상처입은 사슴』 (1946)으로, 아홉 발의 화살을 맞아 치명적인 상태에 놓인 사슴의 상태를 자신의 상태에 빗대어 그린 자화상 아닌 자화상이다. 하지만 트랙에서 그 사슴은 이상하리만치 죽음으로부터 아주 매혹적인 프로포즈를 받고 있고 또 이승으로부터 이 곳을 떠나가라는 그럴듯한 회유를 받고 있다. 그것은 피아노와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레드 카펫과 그 주변에 늘어선 관악기의 근사한 연주와 함께 한다. 한편 「Queen Of Wands」에서는 전능한 힘을 휘두르는 여왕을 마주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심각한 위기“를 마주한 이는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만, 그것으로 나아가는 길은 분명 기이할 정도로 우아한 왈츠였고 왈츠 특유의 그 세 박자 구성은 트랙이 끝날 때까지 주욱 이어진다. 앨범을 반으로 가로지르는 완연한 체임버 팝 트랙 「Emperor With An Egg」는 한 마리 아델리펭귄의 헤엄을 트랙의 주 뼈대로 삼는다. 트랙에서 그 헤엄은 꽤나 고결하고 멋들어진 행위로 묘사―”Like this?”―되는데, 그 너머에는 표범물개의 위협을 암시하는 전지적 시점의 누군가가 스산하게 서 있다.
SPELLLING은 그렇게 Frida Kahlo가 남긴 유산을 『The Turning Wheel』의 자양분으로 삼은 듯하다.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없고, 그렇다고 아주 달디 달기만 한 것도 없다는 우리 삶 지고의 사실을 그녀는 가리킨다. 무언가가 상승하면 반드시 다른 무언가는 하강하게 되어 있고, 물체의 밝은 면이 있다면 반드시 그 뒤에는 어두운 면과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우리 세상의 물리 법칙처럼, 우리 생과 사도 일직선상의 스펙트럼이기만 한 것이 아닌 이어지는 순환고리와도 같은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는 셈이다. 「Revolution」에서 SPELLLING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제는 떨쳐야 할 때가 왔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나이 듦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이어지는 혁명”과 같은 것으로 그 위치를 격상시킨다. 『The Turning Wheel』의 후반부를 자신의 어두운 학창 생활을 그리는 「Boys At School」로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정신적 성장의 표식일 것이다. 이렇듯 윤회, 생과 사의 사이클과 입체성,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 등을 노래하는 사람치고 자신이 전지적 관조자나 선지자가 된 것처럼 가사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던 듯하다. 멀게는 Joni Mitchell―「Both Sides Now」 (1969)―부터, 가까이는 Childish Gambino―「Feels Like Summer」 (2018)―와 Vampire Weekend의 Ezra Koenig―「This Life」 (2019)―까지, SPELLLING도 그러기는 매한가지고 「Turning Wheel」에서 그녀는 자전하는 지구 위의 모든 인간군상과 사회 속 바삐 움직이는 군집들, “움직이지 않고 춤을 추는” 그 사람들을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에서 유유자적하며 가리키고 있다. 그녀가 『뜻대로 하세요』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마치 작중의 우울한 사색가 Jacques라도 된 것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 저들은 모두 배우일 뿐.” 지금껏 이야기했듯 실상 앨범 내내 그녀가 가리키는 것은 하나로 수렴되는데,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다르게 반복하고자 그녀가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오브제를 그녀는 끌어오고 있다―이것이 내가 일전에 쓴 글의 기조였다.
환상적인 인트로 「Little Deer」는 그 자체로 Lewis Carroll의 작품을 청각화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앨범의 첫 80초는 실상 우리가 토끼굴을 타고 떨어져 『The Turning Wheel』이라는 나라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인 셈이다. 「Turning Wheel」과 「The Future」는 그 자체로 60년대 바로크 팝과 라운지 팝의 굵직한 표식들을 연거푸 소환해내고, 「Boys At School」은 Massive Attack이 편곡한 Pink Floyd의 트랙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Emperor With An Egg」나 「Revolution」 같은 트랙들은 창작욕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의 Sufjan Stevens가 떠오르게 만드는 훌륭한 체임버 팝 트랙이고 「Legacy」는 초기 Cocteau Twins나 Kate Bush의 자양분을 양껏 흡수한 Grimes를 상상하게 만드는 트랙이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실상 microKORG와 Roland Juno-106 단 두 대의 신시사이저가 흐름을 주도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다크웨이브 일변도였던 『Mazy Fly』 (2019)와는 다르게 『The Turning Wheel』은 얼터너티브라는 말로 환원하기에도 그 단어가 포용 가능한 범위가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벅찰 만큼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있고 또 그만큼 다양한 곡조를 보여준다. 대중문화 전체가 팬데믹이라는 유례 없는 공황 앞에 신음하고 있던 때 Sacred Bones라는 이 비교적 영세한 레이블은 그녀가 자신의 야망을 펼치기 위해 서른 명에 가까운 연주자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관현악 중주단은 물론이요 어쿠스틱 기타, 밴조, 바순과 클라리넷, 드럼 머신, 몇 명의 성가대 등 모든 연주자들은 SPELLLING의 주도 아래 앨범의 거의 모든 트랙에서 가히 마법과도 같은 일을 연거푸 해내고야 말았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Yves Saint-Laurent은 “나의 태도는 나 자신을 천재들과 비견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천재성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워가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무릇 위대한 예술가라면 후대의 예술가에게 그만한 영감을 주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전대의 위대한 예술가를 찾아가기도 하는 법이다. 전달 매체가 같든 다르든 어떤 예술 작품이 다른 무언가로 변환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만큼 매력적인 것은 찾아보기 어렵고, 하물며 그것을 위해 두 아티스트가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고도 마음 속 어딘가에서 조우하는 모습만큼이나 아름다운 사건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누군가의 멘티가 되기를 자처하면서까지 자신의 일생을 결정지을 수 있을 해답을 찾고자 하는 걸까. 하물며 그 우리가 예술가라면, 왜 굳이 다른 예술가의 예술관을 통해 우리의 예술관을 규정짓고 싶어하는 걸까. SPELLLING과 『The Turning Wheel』은 그에 관한 멋들어진 답변이 될 수 있다. 분명 Frida Kahlo와 SPELLLING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이 있었을 것이다. 『The Turning Wheel』은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의 새끼 손가락에 묶여진 그 빨간 실을 자각하면서 발생한 일종의 대형 사고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SPELLLING은 마치 방주를 지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노아처럼 하나의 거대한 방주를 만들고, 비록 어벤져스는 아니지만 자신의 방주에 태울 믿음직한 동료들과 오브제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거룩한 여정을 떠난다는 것이 그 사고의 개요다. 그 사고 이전 5년 전까지만해도 DAW의 존재도 몰랐던 사람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이 사고는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규정지을 수 있을 앨범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재야의 아티스트에게 모범이 될 수 있을 만한 것이고 또 작품 가운데에 서린 그 정신이 반드시 동시대를 통해서야만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줄 수 있을 훌륭한 사례다. 이래서 2020년대 현재까지 발매된 최고의 앨범은, SPELLLING의 『The Turning Wheel』이다.
──List by. MAN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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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음반
米津玄師 [Yonezu Kenshi], 『STRAY SHEEP』 – Written by. MANIL (f.k.a. 만능초보)
『STRAY SHEEP』은 2020년대 J-Pop 양상을 집약해 대표하는 단 한 장의 음반으로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발매 후 한동안 일본 음반 판매량 기록을 경신한 사실도 그렇지만, 애시당초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하치’[ハチ]로써 이름을 알리고, 이후 보컬리스트로 전향해 메인스트림 팝계에 점차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요네즈 켄시(米津玄師)의 커리어가 현재 일본 팝 시장을 여러 방면에서 상징하는 바는 크다. 2010년대 전후 J-Pop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보컬로이드 문화는 중요하게 자리잡은 인터넷 서브컬처이고, 2020년대에 들어서는 관련 아티스트들이 소위 ‘메이저 레이블’을 잠식해 나가는 양상이고, 그 분기점에 「Lemon」 (2018)의 대성공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테다. 또한 이와 더불어 『STRAY SHEEP』은 당시 해당작을 포함해 본인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리며 CD 중심으로 돌던 시장 헤게모니를 탈피하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했다. 팬데믹 한가운데 놓이게 되며 결과적으로 무언가/누군가를 추모하게 만드는 음반의 주제 또한 인상적이다.
영미권 트렌드와 맞닿으면서도 소위 월드 뮤직에 가깝게 다채로이 구성하고, 이들을 결국 J-Pop으로 융화하는 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풍성히 나눌 수 있겠다. 「Campanella」의 동유럽풍 리프, 「Flamingo」의 트렌디하면서도 토속적인 멜로디, 「感電」 [Kanden]의 날카롭고 감미로운 스윙 등을 시작으로 레게와 오키나와 민요를 참조해 더한 「Paprika」, 미국 인디 포크/컨트리 리프를 깔아 재해석한 「まちがいさがし」 [Machigai Sagashi], 탱고를 가져온 「Décolleté」 등 생각보다 다양한 요소를 작품 안에 비교적 통일성 있게 융화시키는 감각은 놀랍다. 동시에 본작이 당시 J-Pop에서 트렌드 전선에 선 작품임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이를테면 당시 영미권 팝 시장을 강타하던 신스팝 디스코를 구사한 「PLACEBO」는 킥 포인트다. 「Lemon」을 트렌디한 미디엄 템포 발라드로 만드는 건 디지털 신호임을 숨기지 않는 드럼과 꽤나 자주 쓰임에도 어째선지 화제가 되는 “웩” 샘플이다 — 이러한 화제 자체가 영미권 팝과 J-Pop 사이 거리를 드러내는 듯도 하다. 한편 그의 록에 대한 정열은 천재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이자 밴드 뮤지션 wowaka를 추모하는 「ひまわり」 [Himawari], 그리고 Sonic Youth에 가닿는 「TEENAGE RIOT」에서 모두 들을 수 있는데, 모두 보컬로이드 시절부터 반영된 21세기 J-Rock 스타일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의 출발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그 줄기는 2020년대를 넘어오며 대두하는 J-Pop 조류가 공유해온 강일 테다.
──List by. 김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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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ain, 『Fatigue』 – Written by. 김로자
가타부타 할 말이 많지 않다. 때로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된다. L’Rain의 두 번째 음반 역시 그런 작품이다.『Fatigue』는 간-장르적 위치에서 성립하는 아방가르드 팝의 완성된 형상이다.
『Fatigue』는 여러 장르와 함께 숨쉬고 역동한다. 사이키델릭 솔과 스피리추얼 음악의 전통, 얼터너티브 R&B의 유행, 드림 팝의 몽환적 감각, 그리고 앰비언트 전자음악의 부유하는 사운드스케이프가 포착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L’Rain은 결코 한 가지 장르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그는 요소들을 놀라운 비례로 접합하는 가운데, 이것들을 통해 고유의 사이키델리아를 오롯이 구축해내려 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의 수입 그리고 보편화가 록 음악만큼은 활발하지 않았던 20세기 대한민국의 음악 지형에서, 사이키델릭이라는 문법은 록 음악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이키델릭 록을 시도했던 당대의 숱한 영미권 록 스타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탔고, 사이키델릭과 연관된 모든 음악들에 있어 진정한 비르투오소였던 신중현이 ‘대한민국 록의 대부’로 소개되고는 했던 탓이 클 것 같다. 하지만 원초적인 민속 음악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의 교회 음악으로부터 계승되는 일련의 전통들은 르상티망(Ressentiment)과 몽환 사이에서 고유의 사이키델리아를 빚어낼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Stevie Wonder는 본인을 대표하는 명반들에서 신디사이저를 활용해 사이키델리아에 도달했고, the Temptations나 George Clinton의 Funkadelic은 블루스의 멜로디들을 날뛰는 정동을 응축한 퍼즈 사운드로 터트려내며 특유의 정동을 드러냈다. 그리고, 『Fatigue』는 그 모든 사이키델리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여러 하위문화 속 사이키델리아들을 뒤섞어 새로운 위상의 몽환을 펼쳐 낸다.
사이키델리아는 장르가 아닌 ‘영성’이다. 이 측면에서 『Fatigue』는 단순히 과거의 사이키델릭 록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전통 속에서 사이키델릭을 시도했던 아티스트들과도 다른 차원에 도달한다. 다층화된 소리들이 겹쳐지며 드러나는 풍부하고 촉촉한 텍스처와 공간 위, 찬트(chant)처럼 나선으로 맴도는 주술적 언어들이 존재한다. 이 회전들은 중층으로 쌓여 가고, 때로 교차하고 발산한다. 이 여정 속 우리는, 때때로 직관과 감각의 경지 한가운데에 놓인다.
──List by. A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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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dalena Bay, 『Imaginal Disk』 – Written by. Asom
무엇이 인간을 완성하는가? 2021년 앨범 『Mercurial World』로 세간을 뜨겁게 달군 신스팝 듀오 Magdalena Bay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지난 2024년, 『Imaginal Disk』를 발매했다. 외계인 True가 가상의 디스크를 이식받고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는 컨셉에서 출발하는 이 앨범은, 어린 날에 본 공상 과학 만화를 연상시키는 순수한 상상력과 강렬한 빛깔의 음색으로 가득 차 있다.
『Imaginal Disk』는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앨범이다. 『Mercurial World』부터 이어져오는 비디오 게임의 칩튠 음악을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 음색이 「Watching T.V.」 곳곳에 버무려져 있으며, 「That’s My Floor」의 Daft Punk를 연상시키는 신스 베이스나 「Cry for Me」에서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 디스코(가령 이들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ABBA의 「Dancing Queen」 등)를 연상시키는 리듬 패턴을 보더라도 이들이 여전히 과거 세대를 풍미한 아티스트들로부터 음악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한 편으로, 공상 과학적인 앨범 컨셉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담아냄으로써 이들은 단순히 과거를 복기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재와 미래를 위한 담화를 제시한다.
지성을 가진 인외의 것이 인간성에 눈 뜬다는 테마는 2020년대 들어 큰 화두가 되었던 한 가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AI이다. 특히 예술계에서 생성형 AI가 보여준 수행 능력은 인간만의 유일한 기능이라고 여겨져 왔던 창작 활동에 대안을 제시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며,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 AI와는 여전히 구별되는 인간만의 유효한 특성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Magdalena Bay가 해답은 바로 사랑이다. ‘Imaginal Disk’를 이식받은 뒤로 True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맛본다. 「Vampire in the Corner」의 집착과 회피가 뒤섞인 미성숙하고 육체적인 사랑, 「Love Is Everywhere」에서 보여주는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인 성격의 사랑, 그리고 「Cry for Me」가 이야기하는 관용과 이해 등 이타적인 관념들로 이어지는 사랑이 그러하다. 이는 대단히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고찰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명쾌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써 작용한다.
곤충의 우화에서 나타나는 Imaginal Disc처럼, 형태를 변모해 가는 「She Looked Like Me!」의 모티프와 더불어 점점 성숙한 형태의 사랑으로 다가가는 True의 모습은 듀오의 해피엔딩을 기원하며 끝을 맺는다. 범세계적인 질병과 전쟁으로, 유례없던 기술의 대중화와 그 부작용으로 시끄러웠던 2020년 상반기. 이 역시 인간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었음을, 그리고 사랑과 같은 인간만의 권능으로 다음 단계를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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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작성 음반
berlioz, 『jazz is for ordinary people』 – Written by. Subin
berlioz는 ‘재즈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통적 재즈를 줄곧 즐겨 온 매니아층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재즈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느슨하거나 느긋한 분위기로 상징화되어 있다. 허나 berlioz는 재즈를 단순히 고급스러운 감상용 BGM에 그치는 것이 아닌 발을 구르며 춤을 출 수 있는 것임을, 음악은 계속 연주되고 있음을 동시에 인식시킨다. 이로 인해 단순 재즈 하우스 장르로서의 보편적 특성으로도 간주될 우려가 있고, berlioz는 자신을 재즈 하우스 아티스트로 정체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jazz is for ordinary people』에서 하우스의 모습은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단언컨대, 우리가 berlioz의 음악을 통해 몸을 들썩이게 된다면 하우스가 아닌 재즈 때문일 것이다. 재즈에 우리는 여전히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보다 팝적인 것과 좀 더 밀접한 연관을 맺기를 원할 때, 전통적인 재즈의 작법에서 벗어나 재지한 요소 정도가 가미되는, 세션으로서의 역량에서 멈추기도 하며, 이는 그들 나름의 고충일 테다. 그러나 berlioz의 음악은 보란 듯이 재즈에 하우스가 업혀 가고 있다. 하우스는 포온더플로어나 그것에서 좀 더 발전된 형태로서의 리듬만 충실히 유지되고 있다 할 정도로 과언이 아니다. 한두 개 정도의 프레이즈만을 두고 무한 루프시키는 하우스의 보편적 재즈 샘플링 방식을 벗어나, 재즈 연주자들은 굉장히 프리하게 연주하고 있다. 동시에 귀에 걸릴 만한 뚜렷한 리프가 공존하는 것이 하우스의 chill 플로우(차분한 흐름)를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비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마치 재즈 트리오 셋에서의 드럼 역할을 하우스 비트가 아주 잘해내 주고 있는 것처럼. 가령 「r&r」은 인도 전통 현악기인 시타르(Sitar)가 등장하는데, 하우스에선 다소 생소한 악기다. 시타르는 내부에서 재즈 문법으로 연주되며, John Coltrane의 「India」와 같은 월드 재즈의 스피리추얼을 환기한다. 악기 특성상 자아낼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외에도 재즈 화성 진행을 더해 하우스와의 그루브까지도 형성해 낼 수 있는 악기의 활용도를 보여준다. 이들은 대중과의 밀접한 결합을 시도하면서도 자유로움과 즉흥성 같은 재즈의 고유성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berlioz는 공식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영화 클립들에 음악을 붙여 놓은 숏폼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들의 메이킹 필름에서는 재즈 연주자들의 레코딩 과정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재즈를 순전히 완료된 결과물로서만 보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연주자들의 노고를 고스란히 담아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스트리밍 시대 이후 퍼포먼스와 연주의 과정이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는 지금의 시점에서 재즈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주류적 흐름과 반목한다. ‘즉흥성’과 ‘연주’를 빼놓고선 설명될 수 없는 재즈의 형태가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여 오랜 역사를 거쳐왔지만, 그런 만큼 재즈 연주자들은 현장으로부터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허나 berlioz는 대중에게 순수한 날것의 형태와 권위를 드러냄으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는 방식들은 지양하면서, 이를 통해 동시에 대중의 재즈 소비 자체가 연주자에 대한 배려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또 berlioz는 자신의 음악을 “마티스가 하우스 음악을 만들었다면”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조차 재즈를 향유할 수 있는 층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고자 하는 이야기다. 뚜렷한 형태를 빚어내는 것보다 감각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포비즘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겠다. 전위적인 시도 이래로 작가들과 대중 모두에게 더 자유로운 표현과 수용의 가능성이 생긴 것, berlioz 또한 재즈 고유의 자유로움과 즉흥성을 지키면서도 누구나 쉽게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 둘에게서 동시에 포착될 수 있는 감상의 접점이란 ’감각의 해방’을 통해 감상 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와 창작자와 대중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주변의 재즈 연주자들로부터 그들 중 많은 대부분이 팝적인 것에 닿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 왔다. 그들의 쓰임에 있어 한계점을 마주하고, 주류를 위해 재즈의 본령을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들의 불안감은 현시대에 더욱 고조된다. 여론은 berlioz가 재즈를 보다 쉽게 소비해 버릴 수 있는 접근성을 제공한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나는 재즈의 최전선에 놓여있으면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려 하는 이들에게 berlioz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특히 SNS를 통한 예술 소비의 형태가 다양하게 발전해 온 만큼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라 여긴다. 우리는 berlioz로 하여금 한 때 재즈가 대중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이제는 그 시대를 살아오지 못한 세대의 경우가 대다수일 테지만, 그럼에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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