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Jeans
   

Written by. 김로자

   

지난 한 해, 특히 하반기에 접어들며, NewJeans는 음악 자체보다도 음악 외적인 일들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여기에는 상품으로 물화된 아이돌, 요컨대 예술노동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아이돌의 전속 계약은 통상적인 임금노동자의 근로계약인가? 아니면 개인사업자의 용역계약인가? 후자라면 이는 노동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특수고용에 가까운가? 이들이 자본의 횡포로 공격받는다면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가? 물론 “돈 잘 버는 연예인들 걱정은 할 필요 없다”라는 말이 일면 계급적으로 옳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몇몇 의원들이 아리셀 화재 참사를 뒤로 하고 NewJeans와 연관된 문제들을 휘발적으로 소비하려는 경향도 있었지만, 위의 질문들은 대중음악산업이 종사자와 대중들에게 대답해야 할 숙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K-pop 뮤지션들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기획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이러한 논쟁을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들을 제쳐 두고,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올해 여름까지 NewJeans가 일본을 위시로 거둔 음악적 성취들은 이제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NewJeans의 음악이 가리키는 노스탤지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누구의 노스탤지어인지, 혹은 어느 시기를 가리키는 노스탤지어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지난 여름 발표된 일본 데뷔 싱글 「Supernatural」은 이러한 모호성을 상징적으로 증폭시켰다. 작곡과 안무 그리고 의상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유행한 뉴 잭 스윙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고, 중간중간 배치된 영상의 로-파이적 편집은 이러한 감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CG를 통해 묘사된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펑크적 인상의 서울이다. 이미지를 프랑켄슈타인적으로 기워내, 착각을 통한 재현을 완성하는 NewJeans의 전략은 이전 트랙들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작년의 행보를 통해 더욱 노골적이 된 셈이다. 여기에서 NewJeans가 보여준 탁월함은, 레트로에 대한 페티시를 자극하려는 대중음악의 여러 전략적 시도들에 진정한 모범답안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