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학에서 장소Place와 공간Space의 구별을 도식적으로 본다면, 공간에 인간의 기억과 경험이 씌워지며 장소가 되는 것일 테다. 물론 이 구별을 이해하려면 이런 도식보단 훨씬 많은 내용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공간이 장소가 되는 성격에 개인 혹은 군상/집단의 기억과 감성 같은 인문/문화적 요소와 맞닿아있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에서 빈번히 쓰이는 장소를 상기시키는 방법이 청자들에 대해 강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장소가 가지는 성격(장소성)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 국면과 집단적 국면이 교차되어 형성되는 것이기에 단일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Billy Joel의 「New York State of Mind」 (1976), Nas의 「N.Y. State Of Mind」 (1994), JAY-Z의 「Empire State Of Mind」 (2009)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들은 뉴욕이라는 같은 장소를 이용하면서도 그 장소에 얽힌 아티스트 개개인의 서로 다른 체험과 관점을 통해 뉴욕이라는 장소의 장소성이 여러 얼굴들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보였다.
또한 대중음악의 장소성은 비단 노랫말을 통해 그 장소가 직접 드러나는 것으로만 포착되는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대로 공간이 장소가 될 때 주요한 기억과 감성은 시간적이다. 그렇기에 장소는 공간에 시간이 덧씌워지며 발생하는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 구체화된다고 해도 될 것이다. 아티스트는 이를 이용해 작품 속 장소의 시간축을 옮기고, 창작의 의도대로 청자의 감상을 유도해내며 아티스트 자신이 원하는 청자층을 겨냥할 수 있다. 여기엔 직접적인 노랫말보단 다른 방법이 더 효과적이겠다. 가령 UV의 「이태원 프리덤」 (2011)은 유로 디스코를 통해 발매연도로부터 십 수 년 전의 이태원 풍경을 그렸다. Rosalía는 미국 Pop 시장에 스페인의 토양을 심었고, Rainbow99는 대한민국의 전국 각지 장소들을 노랫말 없는 소리로 표현해냈다.
지난 10월 발매된 ROSÉ의 정규음반 선공개 트랙 「APT.」는 전 세계를 그야말로 뒤흔들었다. 「APT.」는 2020년대 들어 다시 수위에 오른 여타 팝-록이나 팝-펑크 히트곡들보다도 훨씬 단순하게 들릴 것이고, 파워코드를 위시로 한 기타 연주는 철저하게 조연인 채 드럼의 철골만이 무드의 중심을 좌우한다는 점은 이 트랙이 그들과 장르적 지향에서부터 차이를 빚는다는 느낌마저 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소구력을 위한 「APT.」의 전략이 프리-코러스까지의 고조되는 멜로디보다도 간단한 훅의 파괴력에 기댄다는 점을 놓고 보면, 이 트랙은 적소에서 꽤나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고도 볼 수 있다. 프리-코러스나 브리지를 미끼로 두어 그것들이 끝내는 훅의 변화(드럼-기타-합창)를 마땅하게 하는 전조로써 기능하는 것으로 할 때, 결과적으로 청자들은 그 훅에 더욱 강조점을 둔 채로 감상을 마칠 수 있었을 테다. 이렇듯 「APT.」는 쉬이 맴돌 수 있을 방법을 택했다. 우리는 음악성과 대중성이라는 이분법의 허상에 매몰될 필요도 없고, 반대로 그 둘을 억지로 통합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단지 「APT.」는 대중적 소구를 위한 전략을 짰고, 그것이 성공했으니 탄탄하게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APT.」의 세계적 성공이 단지 들리는 매력만으로 이루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히트곡이 그것이 정말 작품으로서 탁월하기에 히트한 것은 아니지만 ― 어떤 히트곡은 상당히 볼품없음에도 히트하지만 ―, 히트곡에는 대개 그것이 히트한 중요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대중음악은 단지 들리는 것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유를 짚어내어 판별하는 것 역시 대중음악비평의 당면과제일 것이다.
이 글의 첫 두 문단에 적은 대중음악에서 장소를 사용하는 방법은, 아티스트의 의도를 작품으로 직결시킬 수 있다는 특징과 함께 그것이 문화적이다보니 다른 문화권의 청자들에게 온전히 이해되기 어렵다는 난점도 같이 가진다. 한국음악 글로벌 히트의 발판을 마련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2012)의 경우도 그랬다. 그 트랙의 글로벌 히트 요인은 당대에 세계적 유행을 끌던 클럽튠과 함께 한국인이 아니면 생경할 법한 제목부터 뮤직비디오의 여러 한국문화적인 요소(사우나/고속버스 씬 등) 등이 불러일으키는 (장소에 대한) 낯섦에 있었다.
「APT.」의 훅에서 등장하는 “아파트” 역시 ‘Apartment’와 다르다. 국외 감상자들은 그것을 알기에 그를 “Apateu”라 표기하여 부른다. 고로 아파트는 한국의 장소다. 1970-80년대의 경제성장과 함께 좁은 서울에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후죽순 지어진 아파트는 이내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 지금까지도, 빈부여하를 떠나 많은 이들은 일단 ‘아파트’에 산다. 그것은 윤수일의 「아파트」 (1982)와 같이 문화부흥의 상징적인 기표로 쓰일 때도 있었지만, 이랑의 「럭키아파트」 (2012)와 같이 삶의 애환을 투사하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처럼 아파트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삶과 문화를 대표할 수 있을 장소다. 삶과 문화의 가장 기초적일 주거의 형태가 다르다면, 여기 아파트라는 장소의 성격은 다른 이들에게 쉬이 이해될 것이 아니다.
재밌게도 ROSÉ는 「APT.」를 아파트라는 건물의 형태에서 동작을 따온 동명의 술게임 ‘아파트’에서 착안해 만들었고, 그녀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강조한다, . 그렇다면 ROSÉ는 「APT.」에서의 아파트를 동음이의어로 인한 말장난적 소재로 남겨두고 그다지 그것의 장소로서의 성격엔 집중하지 않았었을 수 있다. 도리어 「APT.」에서 장소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쪽은 Bruno Mars다. 그가 적고 노래한 “Turn this 아파트 into a club”라는 노랫말은 애정을 나누며 술을 즐기는 트랙 내의 불특정한 장소를 단숨에 ‘아파트’ 안으로 축소시킨다.
선술했듯 「APT.」라는 제목은 대부분의 국외 청자로 하여금 ‘Apartment’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 우리가 사용하는 ‘아파트’라는 낱말을 ’Apartment‘로 이해하는 문화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것은 전술한 Bruno Mars의 노랫말과 맞물리며 한국과 같은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 중심의 주거 문화가 형성된, ‘Apartment’와 ‘Condominium’의 구분이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와 같은 국가의 사람들에게 어쩌면 ROSÉ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을 강한 소구력을 가지게 했다. 아파트Apartment에서 친밀한 이들과 같이 술을 기울이며 밤을 보내는 그 장면이, 문화권을 넘나드는 청자들에게 각각 전혀 다른 국면을 재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APT.」가 보여주는 장소의 성격은 다채로워진다. 전혀 다른 국적과 문화의 사람들까지도 「APT.」를 통해 ‘Apateu’에서 함께 술판을 벌이게 된다. 그 술잔이 놓인 테이블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을 잔뜩 열어둔 채로 말이다.
그렇게 국외의 사람들에게 마냥 낯설지도, 친숙하지도 않게된 「APT.」의 장소에 세계의 많은 이들이 매료되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글로벌 히트라는 결과를 낳았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꽤나 중요한 성과다. 한국의 자본으로 기획되어 한국의 풍경을 한국어로 노래한 「강남스타일」과는 또다른 성과다. 미국의 자본이 투입되어 영어로 노래하면서도, 그리고 어쩌면 아티스트 본인이 의도한 바가 없음에도, 낱말로 드러나는 장소에 대한 다른 이해가 글로벌 히트를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APT.」의 구호화된 훅은 명백한 한국의 장소이기도 하기에, 이 트랙은 해가 갈수록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국가적 경계를 뒤흔드는 미국 Pop의 흐름으로부터 우리의 고유함을 보존할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