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서점 인터뷰: 소리와 감정의 회색 빛 잔향

by 온음
 

지난 4월 첫 싱글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2024, self-released/POCLANOS)을 발매하며, 특유의 몽환적인 기타 톤을 무기로 인디 씬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밴드 유령서점. 뒤이어 지난 10월 발매된 셀프 타이틀 EP 『유령서점』(2024, self-released/POCLANOS)은 싱글 단위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났던 슈게이즈라는 장르적 지향으로부터 더욱 확장된 문법들을 종횡무진하면서도, 밴드 특유의 ‘응축된 에너지를 터트려내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일관되게 지켜내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대중음악웹진 <온음>은 『유령서점』EP의 발매와 함께 유령서점 멤버들과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 인터뷰 날짜: 2024년 11월 10일
  • 장소: 서울, 카페 언플러그드
  • 인터뷰이: 김수, 김이미르(이하 이미르), 디디, 강다니엘(이하 다니엘)
  • 인터뷰어: 김로자 (대중음악웹진 <온음> 필진, 이하 로자)
 

로자 : 반갑습니다. 일단 유령서점을 사랑해 주시는 팬 분들께,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김수 : 안녕하세요, 저는 유령서점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김수입니다.

이미르 : 저는 베이스와 보컬 믹스를 맡고 있는 김이미르입니다.

다니엘 : 저는 드럼 연주와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강다니엘입니다.

디디 : 저는 기타를 맡고 있는 디디입니다.

 
유령서점의 EP 『유령서점』.
유령서점의 EP 『유령서점』
 

로자 : 다시 한 번 반갑습니다. 이번에 유령서점의 셀프 타이틀 EP로 팬 분들과 만나 뵙게 되셨잖아요. 그런데 유령서점 이전에는 햄스터 파우더 클럽이라는 밴드가 있던 것으로도 알고 있고, 그래서 멤버들 각자 이전까지 어떤 음악을 듣고 또 해 오셨는지, 그리고 유령서점이라는 밴드는 어떤 계기로 결성되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 : 일단 저는 되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자랐어요. 2010년대, 중학생 때에는 언니네 이발관 같은 한국 인디를 많이 들었어요. 동시에 메탈이나 이모코어 같은 것들도 많이 들었고요. 이런 음악들을 듣다 보니 밴드가 하고 싶어져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진입장벽이 있다 보니 일단 혼자 음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힙-합이나 R&B 피처링도 종종 했고, 2021년에는 시티 팝 싱글도 낸 적이 있었어요.

디디 : 저는 슈게이즈와 드림 팝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Blur나 Suede같은, 브릿팝으로 호명되는 90년대 영국 음악들이나, 매드체스터, 포스트-록이나 쟁글 팝, 포스트-펑크 같은 것들도 좋아해요. 다양하게 듣는 것 같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편식한달까요. (웃음)

다니엘 : 저는 음악적 환경이 있는 집에서 자랐어요. 어머니께서 교회 성가대에 계셨고, 피아노나 드럼을 전공한 친척들도 있었거든요. 교회에서 드럼을 배우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저는 사실 밴드 음악도 좋아하지만 한국 재즈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트럼페터 배선용 씨나 윤석철 트리오를 좋아했었는데…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동기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들의 세션을 하다가, 밴드의 개념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햄스터 파우더 클럽에 함께 하게 됐어요. 그러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유령서점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지요.

이미르 :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드코어 힙-합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헝거노마라는 이름으로, 바이탈리티라는 하드코어 힙-합 크루에서 활동했었습니다. “하드코어 힙-합에 인생을 바치고 싶다” 같은 생각이 있었는데, 살다 보니까 인생은 너무 길고 재미있는 것도 너무 많아서, 다른 음악도 해보고 싶게 된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햄스터 파우더 클럽이라는 밴드를 시작했다가 취직을 하면서 쉬게 됐었는데요. 지금은 유령서점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어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디디 : 귀여운 음악 좋아하잖아. (웃음)

이미르 : 귀여운 음악? 귀여운 음악 좋아하지. 딱히 가리지 않는 것 같아.

김수 : 그래서 유령서점이 어떻게 결성되었냐면… 제가 서울에 상경한 지 2년 쯤 되었는데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려고 학원에 갔는데, 거기서 이미르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인사도 안 하고 그냥 모르는 사람이었어서 어쩌다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밴드 이야기가 나와서, 서로의 작업물을 공유하게 되었어요. 이번 EP에 싣게 된 「Sailor」를 들려줬었는데, 이미르가 거기에 노래를 불러서 다시 보내준 거예요. 그게 되게 마음에 들어서 같이 하자고 덥석 이야기를 꺼냈고, 둘이서 차근차근 작업을 시작했어요.

슬슬 라이브를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디디를 영입했고, 다니엘도 도와주는 역할로 함께 하려다가 어쩌다보니 유령서점의 멤버가 되었어요. 디디와 다니엘이 함께 하게 된 것이, 유령서점의 색깔을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디디 : 저는 유령서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음악을 안 해봤었거든요. 실용음악학원에 다니면서 좋아하는 곡들을 카피하는 정도였어요.그러다 우연히 햄스터 파우더 클럽의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그때 이미르가 같이 밴드를 하자고 이야기를 꺼냈어요. 작년 초였는데요. 그때는 제가 기타를 친지 3년도 안 됐을 때였거든요. 자신이 없어서 “저 그 정도 아닙니다” 하고 거절을 했는데, 거절을 해놓고도 계속 아쉬운 거예요. 진짜 좋은 기회를 괜히 놓쳐버렸다 싶어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8월달 즈음 다시 물어봐 주기에 유령서점과 함께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저를 선택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요. 말해주세요. 

이미르 : 뭔가 같이 해야만 할 것 같았는걸요.

(모두 웃음)

다니엘 : 저 같은 경우에는… 유령서점이 8월 아이다호에서 첫 단독 공연을 할 때 이미르 형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공연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해서 흔쾌히 수락하고 곡들을 들어봤는데요. 지금은 발매되었지만 그 때는 미공개곡이었던 것들을 들어봤는데, 다 훌륭하더라고요. 연주하는 게 정말로 재미있는 거예요. 합주를 두 번 정도 같이 했을 때, 밴드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미르 형과 따로 자리를 가진 날이 있었는데 멤버 더 뽑을 생각 없냐고 물어봤어요. 그러고나서 세 번째 합주가 끝나고 “멤버들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얘기 한 뒤, 모두 오케이를 해 준 것이지요. 뽑아주어 정말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로자 : 밴드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음악을 하시다 밴드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 보시게 된 분들도 계시고, 음악을 아예 처음 시작해 보시게 된 경우도 있는데, 밴드로 함께 모여 음악을 하는 것은 어떤가요?

김수 : 저는 항상 밴드라는 형식을 추구했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안정적이고 완벽한 상태 아닌가 싶어요.

디디 : 저도 집에서 혼자 기타를 치는 것보다는, 모여서 합주를 하고 앰프로 기타 소리를 듣는 게 훨씬 좋지요. 밴드를 많이 듣고,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기도 하고요. 

다니엘 : 원맨 밴드를 하는 아티스트 분들을 가끔 봐요. 이제 Jacob Collier라던지, 아니면 국내 재즈 드러머 중에 한웅원 님이라고 계시는데요. 그분도 원맨 밴드의 형식으로 앨범을 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연이 되면 ‘다 같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밴드가 음악에 있어서는 절대 사라질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꼭 필요한 존재, 혹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이미르 : 뭐든 같이 하는게 재밌어요. 혼자 하고 싶을 때에는 또 혼자 하면 되고요.

로자 : 그래도 밴드라는 형식을 세션이라는 형식과 비교했을 때 주는 끈끈함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좋은 것 같아요.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 공식 음원 
 

로자 :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이 처음 나와서 들어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도입부 리프를 들으면서는 My Bloody Valentine의 Kevin Shields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무대에서 Fender Jazzmaster를 쓰시는 걸 본 적은 없는데, Jazzmaster 기타 특유의 트레몰로 암을 통해 일렁이는 소리가 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첫 싱글이 나왔을 때 많은 분들이 유령서점은 슈게이즈 밴드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EP를 통째로 들어보면, 단순히 슈게이즈로 환원되는 음악은 또 아니거든요. 어떤 지점에서는 다브다가 떠오르는 매스 록이 두드러지고, 또 다른 지점에서는 미드웨스트 이모가 연상되기도 하고요. ‘유령서점이 하나의 장르를 하는 밴드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유령서점을 이야기할 때에, 유령서점이 어떤 밴드로 불리기를 바라시는지, 혹은 유령서점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로 불리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수 : 사실 “어떤 특정한 음악을 한다”라고 불리는 건 앞으로도 좀 어렵지 않을까, 저희 스스로도 생각을 해요. 워낙 다양한 장르들을 하고 있기도 하고,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그만큼 많으니까요. 딱히 스스로 어떻게 불리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듣는 분들이 명명을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첫 싱글이 슈게이즈였다보니 슈게이즈 밴드라는 이름이 따라오게 되었는데요. 사실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은 제가 어렸을 때 코드 3개만 가지고 만든 노래입니다. 사실 맨 처음에는 일본의 펑크 밴드 the Blue Hearts 같은 같은 곡이었어요. 그걸 발전시키다 보니 슈게이즈 같은 느낌이 되었는데요. 사실 앞으로도 곡들을 이런 식으로 작업하게 될 것 같아요. 처음에 데모를 쓸 때는 슈게이즈였다가, 이미르가 편곡과 프로듀싱을 하다 보면 방향이 틀어져서 다른 노래가 될 수도 있고요. 이런 방식 덕분에 장르가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저희가 슈게이즈 밴드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여길 만한 요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슈게이즈라는 장르에만 국한되고 싶지는 않아요.

다니엘 : 제 이름으로 개인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느끼는 점이지만, 절대 한 앨범 속에서 한 장르로 쭉 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음악 생활을 하면서 봤던 아티스트들이나 밴드들도, 한 앨범 안의 어떤 지점에서는 잔잔한 발라드를 담고, 다른 지점에서는 펑크를 담고 했으니까요. 유령서점이 어떤 장르의 밴드로 불리기보다는, 유령서점만의 장르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멤버들끼리는 장난으로, “우리는 슈-개러지다” 같은 농담을 하기도 해요.

김수 :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My Bloody Valentine 같다”라는 말을 확실히 많이 듣기는 했지만요. 작업도 제가 Fender Telecaster로 했던 것에 이미르가 슈게이즈의 색깔을 넣고 싶어 Jazzmaster로 추가적인 레이어를 입혔고요. 그리고 말씀하셨던 트레몰로 아밍 같은 소리는, 직접 하나하나 피치 시프팅을 해서 만든 겁니다.

로자 : 와, 중노동이네요.

디디 : 그런데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 말고 다른 곡들에도 슈게이즈적인 요소가 아예 없지는 않아요. 노이즈가 개입하는 부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슈게이즈라면 슈게이즈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또 완전히 슈게이즈라고만 부를 수 있나? 질문하면 애매해지는 거지요.

김수 : 이제 슈게이즈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홍대’라는 개념처럼요. (웃음)

 
「봄노래」 공식 음원 
 

로자 : 「봄노래」 같은 트랙들을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중간중간 배치된 특이한 박자들과 복잡한 변박들, 그리고 디디 님의 화려한 태핑 같은 기술적인 요소들이었어요. 이런 지점들이 레코딩 세션이나 무대에서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지, 그리고 이런 테크니컬한 것들을 특별히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수 : 사실 「봄노래」는 지금보다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매스 록적인 요소를 더 넣을까 싶기도 했거든요. 박자도 5/4로의 변박이 한 번 있는 정도고, 태핑도 보이는 것에 비해 난해하지는 않으니까요. 특별히 기술적인 요소들을 쓰고 싶어서 썼다기보다는, 어울려서 썼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기술적인 요소들을 많이 시도할 것 같은데, 테크니컬함을 추구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러한 테크닉들이 제가 선호하는 음악에 잘 어울리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는 슬라이드 바나 아밍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태핑을 많이 쓰는 이유는… 제가 Telecaster 기타를 쓰는데, Telecaster가 태핑을 했을 때 소리가 예쁘거든요. 그래서 애용하는 것 같고. 레코딩에 들어갔을 때, 이번 EP의 기타 녹음들은 제가 예전에 거의 해뒀던 것들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라이브를 할 때가 되면 어려워요. 기타가 다른 악기들보다는 쉬운 편이지만, 노래를 하면서도 받쳐주는 연주가 선명하고 깔끔하게 들려야 하는데, 신경을 쓰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디디 : 저는 유령서점에 들어오고 나서야 변박과 태핑이 있는 곡을 처음 해봤거든요. 이전까지는 브릿팝 같은 걸 많이 쳤으니까요. 새로 연습을 시작하며 부족한 점이 여전히 많음을 느끼는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웃음)

변박 같은 것은, 어차피 합주를 하려면 곡을 다 외워야 해서, 박이 바뀌는 타이밍을 아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고요. 복잡한 박자나 태핑 둘 다 연주하는 입장에서도 재미있고 듣는 입장에서도 재미있으니까, 앞으로도 많이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다니엘 : 저는 오히려 이런 곡들이 드러머로서의 흥미를 자극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드러머로서 박자를 분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가끔씩 완급을 조절하고 세세히 연주해야 할 때 정신이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보통 음악을 연주할 때 드러머의 역할은 템포와 리듬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잖아요. 그런 역할과 다르게, 예컨대 「봄노래」의 인트로 부분 같은 데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연주를 할 수 있고, 「개똥벌레」에서 곡의 파트가 바뀌면서 등장하는 더블 타임(인터뷰어 주: 한 마디의 시간은 그대로 두고 음표의 값을 바꾸어 두 배의 음표를 마디에 채워 넣는 방식) 같은 것도, 드러머의 기술을 보여줄 수 있고요. 이러한 지점들이 유령서점의 곡들을 연주할 때 드러머로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 아닐까 생각합니다. 밴드의 전체적인 합도 중요하지만, 듣고 보시는 관객 분들도 이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신다면 좋겠지요.

이미르 : 곡을 만들 때, ‘테크닉적으로 뛰어난가’의 여부보다는 ‘테크닉들이 마음에 와닿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예컨대 「개똥벌레」의 도입부에는 화려한 태핑이 나오는데, 이게 사실은 개똥벌레가 춤추는 모습이 연상되어서 집어 넣은 멜로디 라인이에요. 화려한지 아닌지보다는, 곡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편이지요.

 
「Sailor」 뮤직 비디오 
 

로자 : 저는 유령서점의 가사를 정말 좋아해요. 서정시 같은 가운데, 완전히 어둡지는 않지만 또 한 편으로는 완전히 밝지는 않은, 회색의 정서가 유령서점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가사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으신 주제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또 EP에는 한국어로 된 곡들과 영어로 된 곡들이 같이 있는데, 이렇게 여러 언어로 가사를 쓰시는 이유도 궁금해요.

김수 : 여러 언어로 가사를 쓰는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면… 곡을 쓰며 가이드로 흥얼거릴 때 영어가 어울리는 노래가 있고 한국어가 어울리는 노래가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고르는 것 같아요. 멜로디에 가사를 입힐 때 막힌다 싶으면 언어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Sue」가 그랬어요. 한국어로 쓰다가 안 어울려서 영어로 바꿨는데 잘 어울리더라고요.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리고 가사의 정서가 ‘회색’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정확히 맞는 게, 가사를 쓸 때에 좀 회피적인 면모들이 있었어요. 첫 EP를 낸 건데, 시작부터 너무 강한 감정들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바로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해버리면 좀 당황스럽지 않나요?

로자 : 아무래도 그렇지요.

김수 : 그런 이유 때문에, 첫 EP에서는 정확한 감정이나 메시지를 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알아서 일단 생각해 보세요”라고, 맛보기 가사들을 쓴 느낌이랄까요? 솔직하게 말하면 여러 곡들에서 하고 있는 말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삶은 다 절망적이고 외롭고 괴롭지만, 그냥 덤덤하게 살아가자는 이야기들. 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하고 느끼는 생각이고 감정인데, 그렇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유난 떨기보다는 덤덤하게 얘기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너무 처절하게, 너무 슬프게 보이지는 말자, 어쨌든 우리는 살아갈 테니까.” 의 느낌으로 담백하게 가사를 쓰려고 했어요. 물론 곡들에는 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담겨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면 회색 같은 노래에 다른 색깔이 덧입혀질 것 같았어요.

디디 : 저도 유령서점의 가사가 시적이라서 좋아요. 저도 시를 많이 읽지만, 시가 좋은 이유는 뚜렷한 메시지를 드러내 말하기보다는 은유를 거치기 때문이거든요. 앞에 내세운 언어 뒤에 의미가 있고, 우리는 그 언어를 읽으며 의미를 파악해야 하지요. 유령서점의 가사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요. 한 편으로 수는 구체적인 경험을 가사에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청자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가사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니엘 : 저는 「봄노래」의 가사를 좋아해요. 의미를 짧고 간결하게, 임팩트 있게 던져준다는 점에서요. “실패한 작품들은 재가 되어 / 까맣게 탄 정원엔 꽃 한 송이 없지만” 같은 구절들이 그런 것 같아요. 어떠한 삶의 과정을 겪는 순간들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러한 가사의 인상이 연주를 통해 더 두드러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이미르 : 저도 수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제일 큰 매력 포인트가 가사였어요.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도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이 좋은 곡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노래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너는 내 생각을 받아들여야 해” 같은 느낌의 곡들이 너무 많은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어렴풋한 인상의 곡들이 더 오래 들을 수도 있고 제 취향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어요.

 
「개똥벌레」 뮤직 비디오 
 

로자 : EP 속에는 인상이나 방법론이 바뀌는 지점이 여럿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 톤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 같아요. 일단은 촉촉한 리버브의 잔향이 존재하고, 때로는 Telecaster 픽업 특유의 튀는 클린 톤이 만들어지고, 디스토션 톤은 따뜻하고 넓은 소리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식으로요. 이러한 기타 톤이 EP에 슈게이즈적인 색채를 입히기도 하고, 완성도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편으로 비슷한 장르의 밴드들은 낮은 해상도와 로-파이적 감각의 프로듀싱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유령서점』 EP를 들을 때에는  높은 해상도 덕분에 악기들이 뚜렷하게 귀에 들어왔고, 프로듀싱의 지향점이 하이-파이에 있다는 인상도 받았거든요. EP를 작업하시며 믹싱과 프로듀싱을 직접 맡으셨다고 들었는데, 레코딩과 후작업 속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나 사운드적 지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르 : 저를 위한 질문! 감사합니다. (웃음) 유령서점의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스로 작업하기 때문에 저희가 원하는 소리만 100%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 같은 특히 슈게이즈적이지만, 스테레오적인 공간감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단순하게 슈게이즈니까, 디스토션도 잔뜩 먹이고 보컬과 기타에도 공간계 이펙트들을 잔뜩 먹여서 해상도를 뭉개는 건 너무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더 명확하게 해상도를 올려서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김수 : 음색이 투명한 느낌이 있지 않나요?

로자 : 맞아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미르 : 장르의 특징을 살리자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주적인 느낌을 사운드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 것 같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소리의 벽’(wall of sound)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유령서점의 음악을 작업하면서는 ‘소리의 커튼’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감쌀 수 있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앨범 전체의 기타 톤이나 사운드와 관련해서는, 김수가 미리 녹음을 한 데모나 트랙을 들을 때 어떻게 작업을 해야 될지 감이 와요. 사실 소리가 이미 그 데모에 존재하는, 그래서 이 곡이 어떻게 완성되어야 할지가 조금은 보이는 느낌이에요. 믹싱의 방향성을 정할 때에 수가 제게 많은 걸 믿고 맡겨줘요. 제가 마음대로 작업을 해보고 믹스를 하면서도 피드백을 계속 주고 받는데요. 보통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선택하기 어려울 때, 작업물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자랑하고 싶을 때, 혹은 기타 톤이 좀 튀거나 어울리지 않을 때 수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저는 모든 악기가 다 잘 들렸으면 좋겠어요. 전부 다 동시에 잘 들리는 게 아니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소리를 내다가 차례가 되면 크게 얘기하고, 때로는 다 같이 합창하고 이런 느낌으로요. 개개인의 한마디가 세상에서 뭔가 중요한 말이 되는 것처럼요. 저희 곡에서는 필요 없는 소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김수 : 악기 하나가 묻혀서 안 들리기에는 다 너무 아까워요.

이미르 : 한 편으로는 여러 장르를 오가는 와중에도 김수라는 중심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수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살리는 방향으로요. 수의 목소리에는 차분하고 건조하지만 동시에 힘 있고 열정적인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면모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김수 : 이미르가 작업의 후반부를 맡는다면, 저는 곡을 스케치하고, 만들고, 빚어가는 초반부의 작업들을 맡는데요. 저는 곡을 쓸 때 리드 기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타 리프 만들 때가 제일 재미있고, 보컬보다 더 신경 써서 녹음할 때도 많아요. 이번 EP를 작업하면서는 세 대의 기타를 썼는데요. 일단 중심적인 작업들은 제 Telecaster로 했고, 여기에 기타의 더블링을 입힐 때 디디가 갖고 있는 Gibson ES-335를, 그리고 이미르가 가지고 있는 Jazzmaster를 썼어요. 이렇게 하니 소리가 풍성하고 예뻐지더라고요.

예전에는 공간감이 깊고 효과가 이것 저것 들어간 기타 소리를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점점 취향이 바뀌어서, 컴프레서와 딜레이 그리고 리버브로만 빚어지는 생 기타 소리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생 기타 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버브라고 생각해서 이번 EP 작업에도 신경을 썼어요. 사실 「유령서점」이라는 트랙을 작업할 때도 리버브와 딜레이의 독특한 활용에 집중했는데, 수작업을 바빠서 못하고 믹싱을 다른 곳에 맡겼더니 소리 자체는 깔끔하고 선명해졌지만 저희가 의도했던 공간감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워요.

드라이브 계열도, 저는 기타 톤이 일그러지는 것보다는 음색이 따뜻하게 나오는 편이 좋거든요. 그래서 퍼즈 같은 것은 강한 왜곡이 필요할 때에만 종종 쓰고요. 저는 생 기타 톤을 바탕으로 제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만 스케치를 해 두고 그 뒤에 풍성하게, 귀가 편하게 들리도록 후작업을 하는데요. 작업을 그렇게 하다 보면 정말 좋은 소리가 나와 있어요.

보컬 같은 경우에는… 저는 정말 노래만 해요. 대체로 제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는데, 이미르의 믹싱을 거치면 괜찮게 들려요.이미르와는 작업 스타일이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다니엘 : 드럼의 경우에… 이번 EP는 프로그램으로 드럼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저는 스네어 톤에 신경을 써요. 서스테인(인터뷰어 주: 공명을 통한 소리의 유지력)이 강하지 않은 스네어 톤이 중요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Gretsch나 Ludwig 사의 드럼처럼, 따뜻하고 풍성한, 로우 톤에 어울리는 드럼들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유령서점이라는 밴드로 작업을 할 때에는 소리를 깔끔하게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럼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는 실제로 드럼을 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합니다. 중간중간 무뎌질 수 있는 지점에 재미있는 연출을 하고, 다른 악기들을 받쳐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어요.

디디 : 유령서점 사운드의 장점은 노이즈로 완전히 뭉개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라이브를 할 때 여러가지 기타 효과들을 덧입히는 실험을 해볼 수 있어요. 같은 곡이어도 라이브마다 다른 이펙트들을 활용해보고는 합니다. 어느 공연에서는 페이저 효과를 써보고, 다른 공연에서는 코러스 효과를 써보는… 이런 것을 연구해보는 게 재미있어요. 기타도, 어느 날은 Telecaster 소리를 써보고 싶어서 Telecaster를 들고 가보고, 다른 날은 ES-335의 따뜻한 소리를 써보고 싶어서 들고 가보는 식이에요.

김수 : 공연마다 다른 기타 연주를 볼 수 있는 건 보는 맛을 확실히 살게 합니다. 퍼포먼스적인 측면이 있지요.

 
『유령서점』 EP 공식 스트리밍 
 

로자 : 사실 이번 EP의 내용물이 정말 풍성해서, 정규 앨범이라는 형식으로 발매되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습니다.

이미르 : 저도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웃음)

김수 : 하지만 오히려 EP였기 때문에 힘을 많이 덜어내고 가볍게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만드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곡들 하나하나에 엄청난 무게가 실린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EP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이미르 : 수록곡을 고를 때에도, EP라는 틀을 생각했었으니까요.

김수 :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서 길이가 조금 길어지기는 했지만요. 정규 1집은 EP보다 더 무게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로자 : 그러면 바로 정규 1집을 준비하시는 건가요?

김수 : 일단은 공연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소화하고, 내년 즈음 싱글을 하나 내고, 그 뒤에 1집을 준비할 것 같아요. 굿즈나 컨텐츠 준비도 병행하고요.

로자 : 그렇다면 1집의 방향성이나 사운드적 지향은 이미 나와 있는 건가요?

김수 : 그런 건 아닌데, 어느 정도의 깊이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미르 : 여기서 김수가 말하는 깊이란 어두움에 가깝습니다.

김수 : 그런데 만들다 보니, 그렇게 어두운 앨범이 될지는 또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내년에는 페스티벌도 나가 보고 싶어요. ‘라이브클럽데이’도요.

로자 : 응원해요! 그럼 마지막으로, 각자 더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이 있나요?

다니엘 : 저는 개인 앨범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내년에 내려고 하는데, 거의 마지막 단계예요. 그리고 다른 퓨전 재즈 밴드도 앨범을 준비해보려고 해요.

디디 : 저는… 하고 싶은 밴드를 한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니까, 다들 기회가 생긴다면 놓치지 말고 밴드를 하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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