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즈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겐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특정 언어를 얻고자 하는 자들이 거대한 장벽을 느끼고 언어적 괴리가 모종의 상대적 박탈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O’KOYE는 그 괴리로 하여금 결합을 통한 완전체를 꿈꾸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는 것만으로 간주될 것이 아닌, 각자의 내밀한 언어들이 한 데 섞여 같은 곳에서 발화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IKYO의 싱글 「Jazztext」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했던 O2는, 발매 이후 이를 연장선으로 IKYO와 또 한 번 합심했다. 여론은 재즈 요소가 삽입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O’KOYE를 ’Jazzyfact’나 ‘Nujabes’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이야기하는데, 또 그것에 그치지 않고 셋을 통째로 묶어 재즈 힙합 아티스트라 몰아가고 있다. O’KOYE는 그저 새로운 언어를 청취자들에게 듣고 배우게끔 하는 것보다도 아주 친밀하고 익숙하게 통용되어 온 낱낱의 철자들을 하나의 뜻으로 통하는 문장으로 조합시킨 것 뿐이다.
그러므로 더욱이 O’KOYE는 재즈 힙합 아티스트라고 프레임 씌워지는 일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청취자에게 O’KOYE의 음악은 그저 각 개인의 스펙트럼 한가운데에 놓여있을 뿐, 같은 말도 한 번 더 꼬거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해석하기 나름인 것처럼 말이다. 이들을 정립하려 하면 할수록 간파되는 스펙트럼은 곧 관점이 되고, O’KOYE는 우리의 거울이 된다. 익숙한 것들을 골라내어 콜라주처럼 이름표를 갖다 붙이는 일은 사실상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O’KOYE와의 사담을 빌려 굳이 이들의 음악을 하나로 명명한다면, 재즈적 요소들의 비율이 높은 크로스오버다. 가령 「Yezzir」에선 재즈의 흔적만이 남아있고 웡키로서의 테크닉이 주조가 되는 것처럼, 「Hallelujah」에서는 튜닝이 느슨한 펑크 드럼이 시그니처가 되어 짐작할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되다 「I Just Wanna Dance」에서는 현악기와 피아노의 현대주법들이 거대한 다이나믹과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자기주장이 강한 것들의 맥시멀이다.
O’KOYE와의 비공식 자리에서 그들은 정해진 포맷을 따르느라 장르에 충실하다 보니 틀에 자신을 가두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아티스트적 고충을 털어놓았다. 한 가지의 툴을 이용해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이, 처음엔 탈 정형화를 시도하려다가 틀 내부를 확장시키는 쪽으로 접근하게 된 결과라고 한다. 그의 보법적 예시로 일본의 재즈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우에하라 히로미’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잼에서의 솔로 순서라면 단선율 악기가 먼저 등장한 뒤, 드럼과 베이스를 거쳐 가는 것이 일반적일 테지만, 우에하라 히로미의 『Silver Lining Suite』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 피아노 한 대만을 가지고 여러 솔로 악기들 몫까지의 기량을 펼친다. 또, O’KOYE는 ‘A Tribe Called Quest’나 Charlie Parker의 트럼펫 세션으로 시작한 ‘Miles Davis’를 떠올리게 하는데, 특히 1992년 마지막으로 발매된 Miles Davis의 『Doo-Bop』처럼 붐뱁 위에 트럼펫 연주가 얹어져 아방가르드하게 진행된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이들은 힙합 뮤지션 ‘팔로알토’에게 “힙합의 황금기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라. 그것이 영 제너레이션이 할 수 있는 음악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해주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시대를 답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뮤지션들이 매너리즘을 느끼는 일은 빈번하다. 이들에게는 프로젝트에 노트를 입력하고 샘플을 찍어내는 행위들이 더 익숙한 것처럼, 그럼에도 습득하지 못 하는 언어들도 발화될 수 있도록, 어떤 방법론적인 것에도 제약 받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 여럿이 하나의 몸처럼 유기하여 새로운 언어를 체득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 나는 이들이 좀 더 확장된 세계에 우리가 발을 들이도록 이끄는 인도자임이라 이야기한다.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하지만 스스로를 겁쟁이라 여기는 자들의 용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