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st : 2021 국외 베스트 앨범 10 by Yves

by Yves

 

이번에도 지난 한 해, 2021년의 대중음악을 조망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시대의 대중음악에는 수만 명의 아티스트와 그에 필적하는 수의 앨범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기호와 취향이 존재합니다. 제가 절대적인 통찰력을 갖고 그 모두를 아우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제가 소개하는 10개의 별을 통해, 여러분도 직접,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별을 세어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하는 소원을 담아봅니다. 이에, 소개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빛났던, 그 색이 특별한 별들입니다.

 

 

* 본고는 필진 Yves 개인의 2021년 결산으로서, 웹진 <온음>의 총결산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본고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모두 2020년 12월 1일과 2021년 11월 31일 사이에 발매되었습니다.

* 지난 2020년 결산과는 다르게, 2021년 결산부터는 정규 앨범―LP―만을 본 리스트에서 소개합니다. 부가적으로, 기억될 만한 EP를 두 장을 뽑아 따로 소개합니다.

* Honorable Mentions와 EPs는 아티스트명을 기준하여 가나다/알파벳 순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리스트 내의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Honorable Mentions

 

black midi, 『Cavalcade』, Rough Trade, 2021.05

 

 

BROCKHAMPTON, 『ROADRUNNER: NEW LIGHT, NEW MACHINE』, RCA, 2021.04

 

 

Lana Del Rey,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 Interscope/Polydor, 2021.03

 

 

Rochelle Jordan, 『Play With The Changes』, Young Art, 2021.04

 

 

Skee Mask, 『Pool』, Ilian Tape, 2021.05

 

 

Sons of Kemet, 『Black To The Future』, Impulse!, 2021.05

 

 

The War on Drugs, 『I Don’t Live Here Anymore』, Atlantic, 2021.10

 

 

──────────────────

EPs

 

JPEGMAFIA, 『EP2!』, Republic, 2021.02

 

 

Tkay Maidza, 『Last Year Was Weird, Vol. 3』, 4AD, 2021.07

 

 

──────────────────

The List

 

 

 

 

The Weather Station의 『Ignorance』는 엄밀히 말해 그렇게 혁신적일 것까지는 없는 앨범이다. 다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간혹 지나치게 큰 충격만을 앨범의 대중예술적 성취를 가늠하는 지표로 삼는 경향이 있지만, 여기 대중음악의 만신전에 오른 인디 포크 앨범들을 보라. Bon Iver의 『For Emma, Forever Ago』 (2007), Fleet Foxes의 『Fleet Foxes』 (2008), PJ Harvey의 『Let England Shake』 (2011)나 Sufjan Stevens의 『Carrie & Lowell』 (2015) 등의 앨범들은 그 어떤 혁신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범 장르적인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Ignorance』 역시나 적당한 양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덧붙여 현대 포크와 고전 사이키델리아의 악기를 활용하고 있고, Tamara Lindeman의 보컬은 포크의 귀감이 되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섬세하고 우리 천연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런 『Ignorance』에 힘을 더하는 것은 주제 의식이다. “우리가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곧 망가뜨리게 될 거야.” 2019년에 Tamara가 남긴 긴 트윗이 겨냥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나 정신 건강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런 내용도 어느 정도는 내포하고 있겠다만, 주요 골자는 기후 변화에 관한 우려이고, 그녀는 『Ignorance』를 통해 우리의 무지를 환기하려 한다. 빛나는 인트로 「Robber」에서는 환경에 대한 정치세력과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인격화하고, 뒤이어 「Atlantic」에서는 석양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그 석양의 다음을 걱정한다. 「Parking Lot」에서는 차고로 날아온 한 마리의 새를 통해 그곳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Loss」에서는 변하는 기후가 앗아갈지도 모르는 눈부신 일상을 노래한다. “상실은 상실일 뿐이야.”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그렇게 잃어버릴 일상은 재즈의 즉흥성과 기타의 장력이 가져다주는 긴장감, 사이키델리아와 디스코의 드럼이 선사하는 감흥과 건반의 따스함만큼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음악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하겠다. 오랫동안 기후 변화에 관해 관심을 기울여온 그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Ignorance』와 같은 대중음악의 산물들이 기후 변화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은 관찰과 경고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관찰과 경고가 없다면 실천과 제도마저 없어질 것이고, 그런 사회 이슈에 관해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행동주의자는 멸절하고 말 것이다―그리고 행동주의자는 그러한 상기를 재확인시켜주는 역할도 병행한다. 그런 면에서 무거운 현실을 자각하는 와중에도 감정에 천착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Ignorance』는 사회의 발전이 가져올 기후 변화에 관한 절망적인 디스토피아 비전을 그리던 여타 앨범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Tamara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도를 두 문장으로 압축했던 바 있다. “나는 내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채로 내버려 둔다면, 그렇게 남고 말겠죠.” 『Ignorance』는 그런 앨범이다.

 

 

 

 

 

 

 

가히 우리 세대 최고의 재능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인물 두 명이 힘을 합쳤다. Bruno Mars와 Anderson .Paak에 관한 설명이 얼마나 필요할까. 사실 이 둘의 동행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닌데, 우리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당해 먼저 앨범을 제출했던 사람은 Anderson이었다. 네오 소울과 슬로우 잼, 당신은 『Malibu』 (2016)의 크레딧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슈퍼스타의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언더독의 것이라 보기에도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이는 Anderson이 가진 다방면의 재능과 겹쳐져 『Malibu』라는 단어에 캘리포니아의 부촌이나 중형 세단, 혹은 코코넛 향이 느껴지는 리큐르 이외의 의미가 있는 고유명사의 지위를 하사했다. 한편 Bruno가 『24K Magic』 (2016)을 발표한 건 그로부터 10개월 뒤의 일이다. 이 슈퍼스타는 The Stereotypes와 James Fauntleroy의 조력에 힘입어 거부할 수 없이 흥겨운 펑크 리듬과 모두를 단숨에 매료시키는 베이비메이킹 뮤직을 선보였다. 여느 슈퍼스타가 그렇듯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월드 투어를 계획하는데, 이때 그는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사람으로 Anderson을 선택했다. 재능이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아마 이들이 전 유럽을 돌며 함께했던 시간은 둘의 우정을 돈독히 하고 음악에 관한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터다. 이들의 공감대는 70년대 언저리에서 형성됐을 것이다. The Isley Brothers와 Stevie Wonder, Curtis Mayfield와 George Clinton 등―심지어는 Chic까지, Bruno와 Anderson은 둘 사이의 공감대를 Silk Sonic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할 하나의 앨범 『An Evening With Silk Sonic』으로 변환시키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 시작을 알린 건 「Leave The Door Open」이다. 섬세한 피아노 연주와 기타의 글리산도, 아기자기한 글로켄슈필, Bruno의 넓은 음역대와 Anderson의 스웨거, 이들의 조합을 우리는 70년대가 아니라 2021년에 감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Skate」는 완벽하게 롤러장에서 울려 퍼지는 잼이고, 「Smokin Out The Window」는 다층적인 화음과 현악 중주가 돋보이는 관능적인 트랙이다.

그러나 진짜 큰 문제는 『An Evening With Silk Sonic』이 발매된 이후에 발생한다. 지난 11월 29일 진행된 BET Awards에서의 「Fly As Me」 무대를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Sugarhill Gang의 무대가 아니다. 오르간과 베이스의 연주에 맞추어 Anderson은 능글맞을 정도로 유연한 랩 싱잉을 선보이고, 그 옆에서는 Bruno와 댄서들이 의도를 알 수 없는 몸짓을 계속해서 가져가는데, 나는 그 광경에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가히 충격적이다. 「777」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An Evening With Silk Sonic』의 중추는 그 시절의 잼이고 그 시절의 알앤비인지라 재능있는 재즈 베이시스트 Thundercat의 탁월한 연주와 Bootsy Collins의 만담이 교차하는 「After Last Night」나 「Put On A Smile」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아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An Evening With Silk Sonic』을 들으며 느낄 저마다의 감정을 이미 Bruno와 Anderson의 이름이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레트로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이 둘의 시너지가 우리를 아주 효율적으로 감싸는 것이다. 하다못해 당신이 이 글에 등장한 몇몇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혹은 이 글을 읽지조차 않았더라도, 지난 한 해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수 있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Bootsy Collins의 가호 아래에서.

 

 

 

 

 

 

 

현대 대중음악 시장에서 정규 앨범을 4장이나 발매한다는 것은 가히 기념비적이다. 아무리 소비의 순환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이 시대에 정규 앨범을 수십 장씩 발매하는 아티스트는 아무도 없고, 과반의 아티스트는 대형 음반사와의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규 앨범을 한 장씩 발매할 때마다 자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서서히 바닥나는 자신의 재료 창고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 볼티모어의 괴짜 JPEGMAFIA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4번째 정규 앨범 『LP!』를 대형 음반사를 통해 유통하고―사실 이마저도 Republic과의 계약을 빠르게 종료하기 위함이다―그 와중에도 자신의 집을 홈 스튜디오로 만들어 서브컬처를 바탕으로 한 실험에 몰두한다. 사실 이 실험의 성료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열정과 창의력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닌 좋은 장비와 서드파티 VST이고 그 뒤에는 아르바이트 대신 작업에 몰두할 시간을 보장하는 경제력이 자리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JPEGMAFIA는 작사, 작곡, 편곡, 마스터링 등 모든 것을 자신의 골방 한 편에서 해내고 무너져가는 천재의 신화를 별 힘을 들이지도 않고 지탱한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의 영공을 수호하던 그가 이제는 이 대중음악의 아웃라이어가 된 것이다.

『LP!』가 지금까지 JPEGMAFIA가 발매한 앨범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체력은 끊임없는 분노와 광기를 감당할 수 없고, 제아무리 전위적인 아이디어를 떠돌아다니다가도 어느 한 지점에서 기성의 아이디어에 천착할 수도 있는 법이다. 「HAZARD DUTY PAY!」를 보라. J Dilla 스타일의 고전 소울 샘플, 거기에 JPEGMAFIA는 꽤 괜찮은 스탭 신스와 드럼 샘플을 추가하고 랩을 하며 추임새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JPEGMAFIA가 발매한 적이 없던 스타일의 트랙이지만 그는 이 한 트랙만을 위해서 굳이 『LP!』를 두 가지 버전으로 발매한 것일지도 모른다―겉으로는 샘플 클리어런스와 관련된 문제라고 밝혔다. 물론 『LP!』에는 아케이드 게임 같은 인상을 남기는 글리치 합 트랙 「TRUST!」와 「NEMO!」도 있고, Britney Spears와 합을 맞추는 「THOT’S PRAYER!」도 있으며, 뜬금없이 관악기가 등장하는 「REBOUND!」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형적인 JPEGMAFIA 스타일인 「TIRED, NERVOUS & BROKE!」도 있지만, 그 뒤에는 바로 그가 싱잉랩을 하는 「🔥」가 이어진다.

데뷔 초기 그에게는 Death Grips의 아류라는 팻말이 따라다녔고, 그 팻말에는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Ol’ Ditry Bastard와 MF DOOM의 이름이 가끔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일 『LP!』를 발매하며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나는 젊은 Frank Zappa야.” Frank Zappa의 디스코그래피가 그렇듯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JPEGMAFIA는 못을 박는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 그 스타일이 과거의 것과 완전히 결별한 형태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정치에 대한 풍자, 폭력과 무정부 상태에 대한 진단 등을 다루며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나 그것이 과거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노골적으로 저격하던 때보다는 누그러졌을 뿐이고, 편린처럼 흩어진 아이디어의 집합체도 조금은 부드럽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형태로 나아갔을 뿐이다. 만일 이 젊은 Frank Zappa가 조금 더 정제된 앨범을 발매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모종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만한 결과물일 터다. 그전까지는, 『LP!』가 가장 정제된 형태로서 JPEGMAFIA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결과물이 될 전망이다.

 

 

 

 

 

 

 

나는 지난해 Yves Tumor의 『Heaven To A Tortured Mind』 (2020)에 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서술을 했다. “‘록은 죽었다.’ 장르 팬들에게나 아티스트에게나 심히 도발적일 장르를 향한 이러한 사망 선고는 어찌나 많은 이들에 의해서 행해졌던지 더이상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중략) 저 문장의 길이만큼이나 단호할 선언이 무색하게도 장르에 숨을 불어넣는 이들이 꾸준히 존재해왔다는 점인데, (후략)” 아마 이 이야기를 주어만 살짝 바꾼다면 St. Vincent―Annie Clark―의 『Daddy’s Home』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Annie가 피력하는 의견의 주요 골자는 70년대 음악의 생명력이 다한 것이 아니라, 낡거나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생각대로 실제로 그렇다. 그저 Billboard 차트를 비롯한 대중음악 시장 전반의 헤게모니를 쥔 주인공이 바뀐 것뿐이고, 그것은 그저 세월의 풍파에 따른 정상적인 반작용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자연스러운 순환고리의 세대교체가 만든 결과물이다.

David Bowie, Stevie Wonder, Sly & The Family Stone, Steely Dan, 심지어는 Pink Floyd까지 Annie가 가진 양질의 취향은 아마 자신의 집에 있던 낡은 레코드판 더미의 주인인 아버지에게서 대물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Daddy’s Home』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불러오고자 제작되지 않았다. 『Strange Mercy』 (2010)가 만들어진 것도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듯 Annie는 그동안 훌륭한 디스코그래피를 가진 중견 아티스트가 되었고, 젊은 시절 아버지의 나이만큼 장성한 딸이 되었다. 이 사실은 Annie의 아버지가 수감 생활에서 돌아왔다는 점과 맞물려 『Daddy’s Home』에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 『Daddy’s Home』은 자신의 집이 곧 나이 든 아버지의 집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면서도,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라는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부끄러운 가정사를 둘러싼 허심탄회한 독백이라기보다 부녀지간이라는 불가분의 관계의 시간이 즉,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담긴 물줄기를 조망하는 일에 가깝다. 「Daddy’s Home」에서 아버지의 죄수 번호를 호명하고 「The Melting Of The Sun」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적절히 은유하는 것을 두고 ‘음악적 성찰’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곳곳이 드러나는 70년대 초반 펑크―Funk―록과 소울, 소프트 록 등의 향취는 물줄기의 흐름에 대한 해석이 실로 오랜만에 온전해졌음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Pay Your Way In Pain」에서의 불협화음과 과장된 컴프레션, 변화무쌍한 표현 등은 그 시절의 음악이 현재에 와서 어떻게 세련되게 변모했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 「The Laughing Man」과 「Down」에서도 그러한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더 세련되고 멋들어졌는지 그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했듯 Annie의 물줄기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그것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대중음악 시장이 기술적 진보와 맞물려 너무나 빠르게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너무나 빠르게 발전한 탓에 그 시절의 음악이 더는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사전적 의미로든 그렇지 않든―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또 다른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리고 그 자식들이 끊임없이 자신과 부모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면서, 대중음악은 그렇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과 함께라면,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일 테지만, 우리의 대중음악은 수년 후에도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밝을 것이다.

 

 

 

 

 

 

 

12간지와―비록 실현된 것은 두 장에 불과했지만―미국의 50개 주, 전자음과의 일탈, 어느 해 7월 4일, 그리고 각종 고전과 종교 신화 등 Sufjan Stevens의 디스코그래피에 스민 특정한 오브제들을 보자 하니 헛웃음이 절로 난다. 장인은 기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어찌 된 일인지 Sufjan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자신의 예술관에 투영시켜 그럴싸한 대중음악 작품으로 연성해냈다. 예술가에게 바라는 세간의 이상향과 그것을 실천하는데 예술가가 갖춰야 할 태도 등 그 복잡한 기전에 관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지만―실제로 큰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르지만―그는 Angelo De Augustine과의 협업 프로젝트 『A Beginner’s Mind』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가감 없이 선보인다. 『A Beginner’s Mind』는 지난 몇 년간 Sufjan이 발매한 수 장의 앨범 중 가장 근사한 결과물로서, 이 어지러운 디스코그래피에서 실로 Sufjan스러운 음악이 무엇인지 맥을 짚을 수 있는 적당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혹자는 Sufjan과 Angelo의 관계가 동업자 이상의 무언가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나는 그에 관해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이들이 뉴욕 교외의 한 오두막에서 꽤 오랜 기간 많은 영화를 함께 감상하며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경험을 어떻게 선율과 가사로 옮길지 의논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 제작 방식이 완전히 다른 예술 작품이 다른 무언가로 변환되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감상의 척도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Back To Oz」―『돌아온 오즈』 (1985)―나 「Cimmerian Shade」―『양들의 침묵』 (1991)―같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그 연관이 보이는 트랙도 있지만, 모더니티를 비관하는 「You Give Death A Bad Name」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과 상당히 밀접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상에 내린 사랑이라는 은총을 역설하는 『베를린 천사의 시』 (1987)의 메시지가 개인주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Reach Out」 역시 그런 측면이 있다.

『A Beginner’s Mind』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천명을 앞둔 아저씨가 한참은 어린 동업자의 손을 잡고 “초심자의 마음”을 외친다는 점이다. Sufjan은 Angelo의 역량을 가능한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고, 반대로 Angelo는 Sufjan이 있어야 할 제자리가 어디인지 몸소 확인시켜준다. 가볍고 맑은 핑거 피킹, 추억과 고통의 교차, 탬버린과 잔향이 짙은 그윽한 목소리의 접면 등 「Reach Out」이 재생되는 순간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그에게 바라고 또 바랐던 Sufjan스러운 음악의 형태가 끝내 결착에 이른다. 물론 『A Beginner’s Mind』에는 Elliott Smith를 위시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한 줌 덜어 넣은 「Lady Macbeth In Chains」나 「Back To Oz」와 같은 트랙도 있고, 마냥 편안하게만 듣기는 힘든 「Murder And Crime」이나 「Lost In The World」 같이 공허한 발라드 트랙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Sufjan이 외치는 “초심자의 마음”이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답할 자신이 없지만, 기타를 든 그가 살던 오즈로 돌아가 다시 기타를 잡은 그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나의 답을 대신해도 좋을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미국 바깥의 힙합은 큰 폭으로 발전했고, Little Simz는 영국―혹은 그저 잉글랜드―의 그것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녀가 비평적으로 큰 상찬을 받았던 『GREY Area』 (2019) 외에도 두 장의 정규 앨범과 수많은 EP 그리고 믹스테이프를 발매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런 그녀가 Kanye West와 Drake가 앨범을 발매하던 시기에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를 발매했다.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Little Simz는 외향적인 음악 산업 안에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숨기고 또 어디까지 내보일 수 있는지 그 맥을 짚고자 한다. 지난 수년간 힙합이 힙합이 아니게 되어가는 과정 중에는 마초이즘을 덜어내며 자신의 내밀한 영역을 관찰하고 전시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있었는데, 이 역시 Kanye West와 Drake가 자기과시와 자기 연민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불을 지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다소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예전 같았으면 성사되지 않았을 대전의 최후의 승자는 다윗인 Little Simz인 듯 보인다. 지난 4월 선공개된 「Introvert」가 올해 최고의 인트로이자 최고의 싱글 중 하나라는 점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이 Little Simz에게 부여된 배당률을 한껏 낮춘 주역이다. 뒤를 잇는 「Woman」과 「Two Worlds Apart」에서도 드러나듯 Inflo의 프로덕션도 그 방향이 명확하다. 골든 에라의 드럼과 브라스 세션, 소울풀한 질감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 그리고 풍성함이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의 중심부를 이루고 Little Simz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영국식 억양이 그와 함께 쾌활한 질주를 이어간다. 「Point And Kill」에서는 나이지리아 아티스트 Obongjayar와 함께 네오 소울의 감성과 그루브를 추가하고, 「Standing Ovation」에서는 「Introvert」와는 또 다른 방식의 웅장함까지 더해 앨범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나는 Little Simz에게서 이와 같은 앨범을 기대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How Did You Get Her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버전의 나야.”

물론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의 화자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절제된 톤으로 이어가지만, 정작 현재의 Little Simz 본인은 아주 내향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녀는 Emma Corrin에게 자신의 내향적인 면이 그녀의 직관과 선견지명을 선사했다는 내용의 가사를 전달했을 정도로 외향적이라고 느껴지고,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그 외에도 여럿 더 있다. 가령 Donna Summer를 비롯한 모든 여성에 보내는 찬가 「Woman」이나 COVID-19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향해 헌사를 건네는 「Standing Ovation」에서의 그녀가 특히 그렇다. 동시에 가족사를 다루는 「I Love You, I Hate You」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담은 「I See You」 같은 트랙에서의 묘사 역시 그 자체로 이미 ‘내향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Little Simz는 예술에서의 자기 전시라는 클리셰에 관한 자신의 오랜 고찰을 근사하고 우수한 품질의 앨범으로 재가공한다. “나는 아티스트로서의 Little Simz인가 혹은 사람으로서의 Simbiatu Ajikawo인가?” 우리 시대의 William Shakespeare는 이 단 한 줄의 질문을 시작으로 기어이 일을 내고야 말았고, 지난여름의 끝자락에서 마주했던 앨범 중 최고는 엄청난 트래픽을 일으킨 이들의 앨범이 아니라, 바로 이 Little Simz의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다.

 

 

 

 

 

 

 

우리가 흔히 대중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역사는 아무리 길어봐야 한 세기의 길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에 비교해 우리는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산물을 맞이했다. 그로 인해 오늘날 대중음악이 갖게 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말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피사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는 그 자체로 선례이고 그 선례들은 축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이 대중음악에서 피사체로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오늘날의 사례로 Spellling―l이 세 개다. Chrystia Cabral―의 『The Turning Wheel』을 마주한다. Chrystia는 많은 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무심하게 돌아가는 쳇바퀴라고 표현하듯 그녀가 살아가는 세상 속 많은 것들을 앨범의 소재로 삼는다. 가령 「Emperor with an Egg」에서는 알을 품은 황제펭귄이 피사체가 되고, 「Queen of Wands」에서는 한 장의 타로카드가 피사체가 된다. 그런가 하면 「Little Deer」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과 경험이 새끼 사슴의 연약함이라는 피사체에 투영되고, 「Boys at School」에서는 Chrystia라는 사람을 만든 불우한 학창 시절이 그려진다.

내가 보기에 『The Turning Wheel』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투명한 자기 전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관한 심오한 고찰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 하나로 『The Turning Wheel』을 규정해야 한다면, 나는 앞서 사용한 피사체라는 표현에 덧붙여 그를 그린 정교한 그림이라고 하겠다. 그림에 저마다의 화풍이 있는 것처럼, 작사에도 저마다의 기조가 있기 마련이다. 『The Turning Wheel』에서는 단 한 줄의 가사도 그저 건조하게 작성되지 않았다. Chrystia가 화각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성한 가사는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윤택하며, 때로는 동화 같다. 잠시만, 동화 같다는 표현, Pitchfork가 작성한 리뷰의 마지막 문장처럼, 동화는 언제나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쯤에서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The Turning Wheel』의 소리는 Roland Juno-106를 주력으로 활용했던 『Mazy Fly』 (2019)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피아노와 현악 중주, 브라스와 밴조, 다양한 효과음과 퍼커션 등, 「Little Deer」에서는 전자음을 켜켜이 쌓으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고전적인 악기들로 극적인 전개를 선보인다. 「Emperor with and Egg」는 전자음으로 만든 패드로 시작되지만 1분 48초 지점에서의 현악 중주가 우리의 감상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그런가 하면 「Boys at School」의 전반부는 완연한 바로크 팝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하우스와 사이키델릭 등으로 변모한다. 나는 Pink Floyd의 앨범에서도 이러한 변화무쌍함을 본 적이 없고, 『The Turning Wheel』은 「Little Deer」로 동화같이 시작해 폭풍 속의 「Legacy」를 지나서 다시 「Sweet Talk」의 동화 같은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폭풍의 눈 안은 고요하지만 결국 그 역시 폭풍의 일부다. 이런 앨범을 들으며 마냥 편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The Turning Wheel』을 들으며 많은 이들의 이름이 떠오를 수 있겠다. Björk와 Grimes, Fiona Apple과 Lana Del Rey 등, 하지만 나에게는 Kate Bush의 이름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물론 아트 팝, 프로그레시브 팝 혹은 얼터너티브 등의 앨범들을 다루며 위와 같이 표식처럼 기능하는 이들을 언급하는 것이 다소 관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Chrystia는 『Hounds of Love』 (1985)의 Kate Bush처럼 노래하고, 그녀와 비슷하게 프로그레시브 팝을 향한 야망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그러기는 『Mazy Fly』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그에 뒤이어서 발매될 앨범이 『The Turning Wheel』이 될 것으로는 예측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DAW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Chrystia의 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앨범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당신이 아직까지 『The Turning Wheel』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재생해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의 한 시간은 소중하고, 『The Turning Wheel』은 그 한 시간을 가치 있게 채울 수 있는 아주 탁월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서브컬처를 즐기는 이들에게 매 홀수 해에 발매되는 Tyler, The Creator의 앨범을 발매 직후 감상하는 일은 일종의 연례행사다. 그의 친구 Frank Ocean이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사이 Tyler는 어찌 보면 어부지리로 믿음의 아이콘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그 범위를 앨범을 발매한다는 사실에만 한정하자면 말이다. Tyler는 2년 전 『IGOR』 (2019)로 생애 첫 빌보드 정상과 그래미를 품에 안았다. 그전에는 자신의 Neptunes 톤의 프로덕션이 빛을 발하던 『Flower Boy』 (2017)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완전히 반전시켰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는―『Goblin』 (2011)―바퀴벌레를 저글링하고 앨범 하나에 천 번의 횟수에 육박하는 욕설을 담기도 했다. 다시 말해 『Goblin』부터 『IGOR』까지, 이 모두를 발매하던 이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상당히 놀랍다는 이야기다. Tyler의 팬들이 그에게 무엇을 바랐든, 그는 앨범을 발매하던 족족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렸고, 그러기는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도 매한가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CALL ME IF YOU GET LOST』는 마치 Tyler가 십수 년 전의 평행세계에서 우리의 세계로 던져놓은 언더그라운드 믹스테이프같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 믹스테이프. 예로부터 J Dilla를 탄생시켰고, Drake와 Lil Wayne, 그리고 Tyler 본인이 모태 삼았던 그것. 그리고 Chance The Rapper와 Playboi Carti에게 빛나는 순간을 쥐여주었던 그것. 물론 2021년의 현재에도 믹스테이프 문화는 변했을지언정 고사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Tyler가 믹스테이프 같은 앨범을 발매하는 일은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다. Datpiff.com의 고전 믹스테이프를 연상시키는 DJ Drama의 하이프, 골든 에라의 드럼과 샘플, 플루트와 Neptunes 톤의 신시사이저가 공존하고, 그 위에서 Tyler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이 근 몇 년간 발표했던 그 어떤 앨범에서보다도 타이트한 랩을 선보인다. 자신의 롤스로이스에서 뛰쳐나온 Tyler Baudelaire 선생은 「LUMBERJACK」을 발표하던 순간부터 작정하고 팬들을 광란의 소용돌이로 던져버리는데, 우리는 어찌 된 일인지 그 던져짐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트랩 비트와 오토튠 대신 H-Town의 부드러운 관능미가 남은 「WUSYANAME」과 The Impressions의 칠함이 녹아든 「MASSA」가 있다. 그런가 하면 『Flower Boy』의 후반부 트랙을 연상시키거나 뜬금없는 레게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가 있고 Gravediggaz를 샘플링해 하드코어 힙합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LUMBERJACK」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즐기는 일은 불가항력의 무언가다.

Tyler에게는 2년 전 짝사랑의 절절함을 노래하던 중에도 다저 스타디움에서 황금색 가발을 쓰고 춤을 추는 등 괴상한 면이 있었지만,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는 당혹스러울 만큼 유연한 플렉싱을 선보인다. 누군가는 이와 같은 Tyler의 모습을 보며 『Wolf』 (2013)와 『Cherry Bomb』 (2015)를 떠올릴 테지만, 「WUSYANAME」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인디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한다거나 「HOT WINGS BLOWS」에서 호화로운 일상을 뽐내고 「MANIFESTO」에서 사회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라던 세간의 요구에 도전하는 모습은 분명 그 시절의 Tyler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대를 반쯤은 무너뜨리며 등장한 하나의 전화번호는 분명 그 시절의 Tyler까지 끌어안은 채 존재한다. 그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이 있을 때 전화하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겠는가. 우리는 그저 Tyler Baudelaire 혹은 Tyler Okonma, 그리고 Tyler, The Creator를 찾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CALL ME IF YOU GET LOST』를 재생할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Tyler의 눈에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보이는 것인지, 『CALL ME IF YOU GET LOST』를 듣는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지난 6월 25일 발매된 SAULT의 『NINE』에 관한 감상은 사실상 그로부터 99일이 지난 10월 3일, 세계 표준시로 자정에 막을 내렸고, 현재 인터넷상에 남은 것은 이처럼 글로서 쓰인 기록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살아가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레코드―Record―는 사라질지언정 기록―Record―은 남는다는 것이겠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회로가 아니다. 우리가 사유하는 대중음악 역시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인데, SAULT는 기어이 그 현상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NINE』이라는 앨범 자체에 관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로이 덧붙일 수 있는 말이 많을 수가 없다―앨범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일전에 내가 작성한 글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대중음악의 많은 산물이 정보화 시대라는 은총과 겹쳐져 영원불멸의 지위를 획득하거나 고결한 재림을 선보이는 와중에, 아마도 『NINE』은 일종의 반기로도 기능할 수 있을 테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NINE』을 2021년의 가장 중요했던 앨범 중 하나로 선정하며 앨범 자체에 관한 감상을 서술하는 대신 SAULT가 신비주의를 자처하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들의 앨범을 ‘사라지는 것’으로 기획한 그 의도에 관한 탐구와 고찰을 늘어놓고자 한다.

아무래도 대중음악 시장의 소비 패턴에 가장 먼저 눈이 간다. 『NINE』에서의 SAULT는 자신들이 경험하고 경험해 온 폭력의 굴레를 고찰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그러니만큼 『NINE』은 그 앨범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시대에서는 그러한 가치가 적당히 무시되고는 한다. 『NINE』은 과거 SAULT의 앨범과 비교해 그 길이가 상당히 짧고, 그렇기에 그 응집력이 보장된 형태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스트리밍 플랫폼에 입성하기만 해도 그 응집력이 조각이 날 위험에 처한다―비단 『NINE』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SAULT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원치 않았을 듯 보이는 것은 또 있다. 많은 이들은 2020년 발매된 그들의 더블 앨범을 향해서도 그랬듯 「Trap Life」와 같은 트랙을 들으며 George Floyd 사건과 같은 공권력의 폭압을 연결하겠지만 「You From London」에서 드러나듯 『NINE』에서만큼은 SAULT가 그들의 배경을 런던―혹은 영국―에 거주하는 이민자 계층의 청년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SAULT는 아마 자신들의 이야기가 무분별하게 확장되고 수용되는 일을 원치 않았을 것이지만, 평단과 대중은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의 메시지를 작게나마 왜곡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Haha」와 「You From London」에서의 묘사가 사케이즘인지 깨닫지 못하거나, 「Bitter Streets」와 「Alcohol」의 묘사가 그들의 의도보다 커다란 계층을 대변한다고 여길 것이다. SAULT는 그래서, 『NINE』이 그 자체로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앨범을 사라지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대중음악의 산물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와 표현들에 청자 본인의 배경을 대입하고 그에 관해 고찰하며 그를 통해 건강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매우 옳은 일일 것이다. SAULT조차도 이는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겠지만, 내가 앞서 이야기했듯, 이들은 그러한 상호작용을 거부했다. 물론 나 역시도 이 글을 통해 그들의 의도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SAULT가 그들 역시도―은밀할지언정―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틀 아래에서 활동하면서도 그것이 사유되는 방식을 비꼬고 거부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겠다. 우리가 누군가의 앨범을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누군가의 세심한 관찰을 그저 싸구려 프로파간다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SAULT와 『NINE』은 심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상이 그랬듯 그 필요성은 『NINE』이 존재하던 순간 극대화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내가 99일의 짧은 수명을 뒤로하고 사라진 SAULT의 『NINE』에 다소 무리하게 높은 점수를 책정하거나 2021년의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함으로써 그저 사라지게 두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Album Of The Year! 『Elaenia』 (2015)는 2000년대 후반부터 줄곧 DJ로 활동하며 이따금 몇 개의 싱글과 EP만을 발매하던 Floating Points―Samuel Shepherd―가 발매하는 첫 정규 앨범이었다. 오랜 작업 기간 끝에 발매된 『Elaenia』는 재즈와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등이 상당히 절묘하고 매우 놀라운 형태로서 융화된 결과물이었는데, 당시 The Guardian과 Pitchfork를 비롯한 많은 매체가 『Elaenia』를 주목했고, Samuel의 이름을 영국 전자음악 시장에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어 그가 The xx의 월드 투어 게스트로도 참여하게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Samuel의 행보를 아주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활동하던 전설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Pharoah Sanders이다. 아마 Pharoah를 매료시켰던 것은 「Silhouette (I, II& III)」나 「Peroration Six」와 같은 트랙이었을 것이다. Buchla 신시사이저에서 나왔을 소리의 층위 사이로 Tom Skinner의 드럼 연주가 흐르고, 피아노와 각종 현악기의 연주가 흐르는 등의 모습은 분명 Pharoah에게도 신비롭게 전달됐을 것이다. Samuel과 Pharoah의 나이 차가 한 세대는 족히 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들이 조우할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그들의 열린 마음 외에도 신비롭게 공명하는 선율과 리듬의 지분이 컸을 것이다.

둘의 만남은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던, 당시 일흔을 훌쩍 넘긴 Pharoah의 마음 한편에서 꺼져가던 불씨를 살린 모양이다. 둘은 결국 협업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고, 현악 중주로 살을 붙이기 위해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까지 섭외하여 지금의 『Promises』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아마 『Promises』의 작업은 Samuel이 『Crush』 (2019)를 구상하고 만들기 이전에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Samuel과 Pharoah는 앨범의 주도권을 위해 앞다투어 싸우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 대신 『Promises』에서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장하거나 그 형태를 변환하며, 그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사실상 9개의 악장―Movement―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트랙인 『Promises』에서 그 포문을 여는 것은 Samuel의 연주다. Samuel이 연주하는 7개의 음정은 약간의 변동을 제외하면 하나의 코드로만 연주되는데, 이것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장악한다. 피아노, 하프시코드, 첼레스타, 그리고 Samuel이 다루기를 즐겼던 신시사이저들―이를테면 Buchla 200e 혹은 Oberheim OB-Xa 등―이 다양한 조합으로 연주되며 『Promises』에 신비롭고, 우아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Samuel은 제각각의 악기가 들어오고 나갈 자리를 엄격하게 정하고, 그들이 연주할 음정과 그 셈여림, 현악기에서 활이 켜져야 하는 방식과 진행에 따른 분위기 등 그 기획에 있어 정말 많은 일을 해내는 장악력을 선보인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Pharoah와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공이 생각 외로 크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획자가 연주자를 향해 카리스마와 혜안을 발휘할 때, 그것이 빛이 나기 위한 가장 큰 대전제는 연주자의 우수한 기량이다. 일단 Pharoah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실제로 Pharoah는 굉장한 연주를 선보였다. 「Movement 1」에서 Pharoah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 『Promises』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Movement 4」를 빼놓을 수 없다. 트랙 초반 Pharoah는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이어가며 흥미로운 모습을 보이지만 정확하게 트랙의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Movement 1」에서의 등장과 정확하게 같은 음정을 연주하며 다시 한번 자신이 얼마나 압도적인 색소포니스트인지 모두에게 각인시키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역시 Samuel이 전달한 악보를 충실하게 자신들의 연주로서 재현하는데, 이들의 순간은 『Promises』의 절정이기도 한 「Movement 6」에서 찾아온다. 「Movement 6」는 말 그대로 교향곡의 일부 같은 인상을 남기는데,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현악 중주 아래로 Samuel의 7개의 음정이 정말 고결하게 내려앉는 순간 우리는 이것이 지난 한 해 겪었던 음악적 경험 중 최고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순간을 단순히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에 걸맞은 단어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이들의 조화 혹은 그 조화가 구축되는 방식이다. 절정의 연속인 「Movement 7」에서는 『Promises』를 통틀어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Pharoah와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공격적인 연주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Samuel의 상당한 믹싱과 만나 그 자체로 기예로서 승화된다. 우리는 이 기예를 온전히 기예로써 마주하기 위해 『Promises』의 전반부를 소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에게는 이 절정이 전반부와 비교해 압도적인 인상으로 남아있지만, 전반부를 그렇다고 지루하게 흘려보내지 않았던 것에는 Pharoah의 공이 크다. 그리고 이들이 이 훌륭한 연주의 막을 내리는 방식을 보라. 「Movement 8」부터는 Pharoah의 연주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긴장감을 너무 빠르게 해소하지 않으려는 Samuel의 다양한 연주가 아기자기하게 이루어지고, 마지막 「Movement 9」에서는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커튼콜이 대미를 장식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이 구축해야만 했던 조화다. 하나의 앨범에 서로 다른 이들이 공존할 때, 이들이 모든 트랙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상보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면, 초점은 앨범 자체의 기승전결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Samuel의 기획 아래 이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멋들어진 방식으로 그 조화를 일구어냈다.

『Promises』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머니 코드도, 드럼도―심지어는 신시사이저로 그것을 모사한 듯한 소리도―그리고 섹스 어필과 자기 과시, 혹은 자기 전시를 담은 가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Promises』에는 참여한 이들의 음악에 대한 서로의 사랑과 존경, 또 재능과 아이디어의 소용돌이가 존재하고, 블랙홀처럼 우리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키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대중음악에 친숙한 우리에게 그저 멀게만 느껴졌던 고전 음악의 형식미가 우리의 곁에서 공명하는 광경을 엿볼 수도 있고 인격으로서 아티스트를 나누는 우리의 장벽―이를테면 장르와 인종, 세대, 문화권과 언어 등―을 초월하는 관계의 붉은 실이 존재하기도 한다. 『Promises』는, Samuel과 Pharoah가 서로의 존재를 처음 그들의 눈으로 확인했던 사건과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가 처음으로 악보를 넘겨받던 일과 함께 그 자체로 큰 발자국이다. 이들 모두가 현실 세계에서 한자리에 모인 적은 사실 거의 없을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2021년의 대중음악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커다란 홀에 모인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

2 comments

Tomboy 2022년 3월 13일 - 10:58 오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작년에도 좋은 앨범들이 참 많았네요. 그런데 프로미스는 작정하고 들어봐도 별 감흥이 없더라고요. 글 읽은 김에 한 번 더 들어봐야겠네요

Reply
온음 2020년대 총결산 — 중간점검 : 국외 음반 – 온음 2025년 5월 20일 - 1:26 오전

[…] 그녀가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오브제를 그녀는 끌어오고 있다―이것이 내가 일전에 쓴 글의 […]

Repl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