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와 숫자들의 『토털리 블루』는 2017년부터 기획된 음반이라고 한다. 음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제목답게 ‘블루’, 푸른색이다.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곳곳에서 푸른색이 선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피」, 「토털리 블루」와 같이 제목에서부터 푸른색이 칠해진 트랙이 있는가 하면, 「소설」에서 “파란 환영”, “파란 장막” 따위의 낱말들, 「파도에 맞서」에서 바다가 “푸른 이빨”을 드러낸다고 하는 비유 등이 푸른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블루’라는 낱말이 단지 푸른색뿐 아니라, 또한 ‘우울’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음반 전체에 퍼져있는 푸른빛은 음반의 핵심 정서를 이해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말 그대로 『토털리 블루』는 9와 숫자들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여기는 ‘우울’을 직시하는 음반이다. 음반을 덮고 있는 푸른색이 단지 비유로 남지만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9와 숫자들이 『토털리 블루』를 기획하기 시작한 2017년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기가 막힌 우연이 운명처럼 작품에 시대성을 부여하였다. 『토털리 블루』의 앨범 소개글은 “기획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코로나19라는 시대적 비극으로 인해, 9와 숫자들의 색으로 내세우자고 했던 블루가 모두의 색이 됐다.”라고 적는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조치 등의 외부적 조치들로 인해 사람 간 교류가 줄어들면서 우울을 겪게 된다는 신조어 ‘코로나 블루’는 이미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할 때부터 쓰이던 용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발매된 『토털리 블루』는 같은 푸른빛을 띠게 된 청자들에게 아주 적실한 작품이 되었다.
음반이 이야기를, ‘우울’을 풀어내는 방식은 거칠게 나누자면 첫 세 트랙으로 이루어진 전반부, 그리고 뒤의 세 트랙으로 이루어진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겠다. 「나들의 날들」, 「푸른 피」, 「토털리 블루」로 이어지는 세 트랙은 화자의 ‘우울’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세 트랙에서 드러나는 우울의 국면들은 각기 다르다. 「나들의 날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화자의 모습에 낯섦을 느끼는 트랙이다. 「푸른 피」는 ‘파란색 피’로 형상화되는, 피가 항상 인간을 채우듯 쉴 새 없이 화자를 덮는 우울함에 “나의 피는 원래 파란색이야”라며 초연한 태도를 유지한다. 「토털리 블루」는 송가와 같은 앞선 두 트랙과 달리 나른한 독백에 가깝다. 「나들의 날들」과 「푸른 피」에서 비유로 점철되었던 화자의 우울은 「토털리 블루」에 이르러 “I’m completely blue”라는 직설로 나아간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우울함에 대한 작사를 다채로우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꾸몄다는 사실은 송재경의 뛰어난 작가적 역량을 입증한다.
후반부의 세 트랙에 이르면 『토털리 블루』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선다. 화자 자신의 우울에 대해 노래하고자 했던 전반부에서 벗어나자, 이제 음반은 이름 모를 많은 타인들의 우울마저 보듬고자 한다.
「죽지는 마」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거기서 화자는 이름도 모르고, 일면식조차 없을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에게 죽지 말 것을,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던 와중 문득 “잘 지내줘 어떤 우주 안에 있더라도”라며 타인의 안녕을 바라던 「나들의 날들」의 노랫말과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한 요청을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분명 죽지 말라는 요청이 그의 “소원”이라고 했다. “제발”이라고까지 한다. 심지어는 그가 겨냥하는 불특정 다수의 고됨을 야기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알면서도,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을 바꾸어 그들을 위하겠다고 말한다.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이 무한한 이타적 외침은 어쩌면 ‘블루’를 겪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일지 모른다. 지금도 날마다 많은 이들이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선다. 다소 직접적인 송재경의 간절함은 분명 힘을 지니고 있고, 힘이 될 수 있다. 앞선 세 트랙에서 화자의 우울과 나약함을 여실히 드러냈기에, 그런 화자가 전하는 살아야 한다는 말은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것만 같다.
바로 여기서부터 『토털리 블루』는 비로소 단지 우울만을 되뇌는 음반이 아닌, 그 우울을 딛고 나아가야한다는 희망의 음반이 된다. 그대를 알게 된 뒤로 “모든 말들은 소설이 아닌 시가” 된다는 「소설」은 「죽지는 마」의 직설들을 더 비유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결과일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특정한 ‘그대’에게 전하는 로맨틱한 사랑의 메시지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음반의 흐름은 「소설」을 불특정한 ‘그대들’로 향하는 북돋음의 노래로 읽을 것을 권한다. “그대를 알게 된 뒤로” 화자가 쓰고자 했던 소설의 언어는 시로 변하여, 비록 화자 자신도 그를 “설명할 방법을” 모를지라도, 그는 그렇게 더욱 ‘그대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그렇게 ‘나’와 ‘너’가 서로의 우울을 마주하며 그것을 반전할 수 있다는 확신은 마지막 트랙 「파도에 맞서」에서 분명해진다. 욕심과 집착을 벗으며 용기를 가져 변하겠다는 화자의 울림 있는 목소리는 최종적으로 『토털리 블루』를 수식하는 정감을 파란 우울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으로 전환시킨다.
『토털리 블루』는 과시하는 음반이 아니다. 음반 전체에 자리한 기교 없이 순전한 연주가 음반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토털리 블루』의 연주는 그것 위에 노니는 노랫말들을 위한 특정한 분위기를 조성할 뿐, 어떤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분명 그것이 담고 있는 소리 역시 감상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던 전작들에 비해 노랫말의 비중이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9와 숫자들이 적은 노랫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토털리 블루』는 BGM이 깔린 하나의 이야기책 같다. 이 음반은 청자로 하여금 자신을 흘러가는 소리로서 듣지 말고 스스로가 적어내린 활자들 각각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 진솔한 낱말들을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감동은 배가될 것이다. 잔뜩 세련되게 치장된 음악들도 멋스럽지만, 가끔은 보다 직접적으로 와닿는 이런 음악 역시 필요하다. 9와 숫자들의 『토털리 블루』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제 때 우리 앞에 도착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