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yler, the Creator(이하 Tyler)의 작품을 감상할 때 그가 그의 작품을 일종의 잘 짜인 서사로서 대하며 만드는 것을 기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YONKERS」 (2011)에서 바퀴벌레를 집어먹던 것과 같은 Tyler의 광기어린 모습들이 작품의 흐름을 주도하던 시절은 『Flower Boy』 (2017) 이후로는 이제 옛일들이 되었다 해도, 그는 여전히 작사함에 있어, 서사를 구축하고 상징들을 내세우는 것과 같은 면모를 많이 선보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Tyler의 음악적 방향성이 여전히 그의 커리어에서 최고작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Flower Boy』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견해를 수용할 때, 그 이전에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역설로 빚어진 광기어린 노랫말과 퍼포먼스였다고 한다면 이후에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능구렁이 같은 재치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진중한 태도이다. 허나 후자의 그 진솔함에 매료되어 간과된 것은 Tyler의 텍스트가 다소간에 반성적일뿐, 그 자체로는 플롯의 성격이 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모든 고해성사가 책으로 쓰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Tyler의 노랫말에 서사적 강점이 있다는 견해를 오해로서 거절하더라도, 적어도 그가 어떻게 음악의 텍스트가 서사적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는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가령 『Flower Boy』 이후의 그의 텍스트들이 사랑을 주제로 삼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단지 그가 거기에서부터 자신이 바이섹슈얼하다는 사실을 커밍아웃해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소재가 가진 보편과 맞닿은 역사적-전인류적 힘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유추하게 한다. 이는 인류의 예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토픽이 무엇이었는가를 떠올린다면 더욱 명확해지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Tyler는 그의 커리어를 직조해나가며 매 순간 다른 자아, 다른 페르소나에 의탁하여 이야기를 풀어갔다. 과격하게 말하면 그가 10년이 훌쩍 넘는 커리어를 통틀어 그의 본체 ‘Tyler Gregory Okonma’로서 풀어간 이야기는 드물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발자취엔 지금까지 그가 남겨온 수많은 자아/페르소나들이 남아있고, 그들이 거기서 하는 이야기도 제각각이다. 『Flower Boy』를 기점으로 작사 방식의 급변을 잊게 할 정도로 프로듀싱 기량이 수직상승한 탓에 많이 이야기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일지라도 과거 Tyler가 보였던 광기어린 텍스트들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의 Tyler는 확실히 미쳐있었고, 그 광기는 무맥락적인 발작이라기보다는 자아와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한 염세적 맥락을 지닌 헛소리들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는 등장과 함께 숱한 논란을 몰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 만일 당시의 사회적 검열이 지금만큼 엄격하고자 했다면 당시의 그는 캔슬링 당할 당시의 Slowthai와 비슷한 대접을 받았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에야 그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어도, 어쨌든 그때 그가 적은 텍스트들은 호모포빅한 지점들이 많았고, 그 외 여러 노랫말과 발언들이 논란이 되어 영국 등지에서는 입국금지까지 당했었다. 그러한 광기는 Tyler를 지금의 위치에 올린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채로 전하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는, 먼길을 돌아왔지만 지금에서라도 사과하고자 한다. 「SORRY NOT SORRY」는 그런 트랙이다. 시작부터 “미안해”라 말하는 그 트랙은 Tyler 자신이 커리어를 이어오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상처 입혔던 많은 이들에게 사과를 전한다. 그 대상은 비단 자신이 과거에 직접적으로 촉발시켰던 논란의 대상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Tyler의 어머니, 화려했지만 애매하게 끝나버린 Odd Future의 역사를 함께했던 멤버들, 그가 자신의 성지향성을 숨기던 시절에 만났던 애인들, 성소수자들과 팬들, 심지어는 흑인 사회와 환경 문제까지도 포함한다. 사과하는 그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천천히 그의 잘못들을 읊조리며 용서를 구할 것이다. He Made You Mine의 「Brighter Side of Darkness」 (1978)를 통으로 샘플링한 소리는 분위기에 알맞은 마땅한 처연함을 유지하며, 사과를 통해 과오의 어두움(Darkness)으로부터 밝은 면(Brighter Side)을 끌어내고자 하는 그의 태도와도 닮아있다.
헌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SORRY NOT SORRY」는 이상한 트랙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정말 진심어린 사과라고 받아들이기에는 텍스트의 형식 자체가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다. 가령 Tyler의 사과는 잘 나가는 듯하다가 정확히 그와 Reign Judge 사이에 있던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틀어지는데, 그 뒤로도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변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사과 받을 사람을 자신으로 설정하며 트랙의 주객을 순간 역전시키는 모습까지도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그가 커리어에서 강점으로 내세우지 않아왔던 자신의 장점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가 「SORRY NOT SORRY」에서 일련의 미안함을 드러내는 라인들은 대부분 “Sorry”로 시작한다. 특히나 첫 라인이 “I’m sorry”라는, 주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문장이었기에 “Sorry”로 시작하는 라인들 역시 편의상 주어가 생략된 형태의, 그러니까 사과를 전하는 주체가 Tyler 본인일 것이라는 기대는 청자들에게 조작된 채로 심어진다. 그러니까 그는 작품에서 건네는 사과들 그 사이에 교묘하게 전혀 다른 얼굴을 한 말들을 숨겨놓았다. 개중 몇몇 라인은 Tyler가 ‘사과한다’며 전하는 악수가 되는 것이지만, 또 몇몇 라인은 같은 인물이 ‘사과해라’라며 전하는 삿대질이 되는 것이다.
애당초 ‘sorry not sorry’는 관용구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그리고 주로 그 뜻은 발화자의 언행이 문제적이라는 사실을 발화자 자신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발화자 자신이 그를 진지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sorry (not sorry)’의 형태로 사용되는 것이며, 이는 사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관용구를 발화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당당함을 내세우고자 함에 가깝다. 하지만 Tyler가 그것을 제목으로 차용한 「SORRY NOT SORRY」는 원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자 한다. 이것은 해당 트랙의 내용이 관용구의 의미를 초과하고자 했다는 말이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자신의 변화와 그에 대한 타인들의 비판에 대해, 그는 스스로를 떳떳하다고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도 않다. 「SORRY NOT SORRY」는 마치 법정에서의 피고가 이따금씩 증인석에 앉기도 하는 혼란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트랙이 진행되며 더욱 구체화된다. 가령 “너의 대명사를 몰랐던 것을 사과해”라 말하는 라인의 바로 뒤에는 “근데 딱히 디스하려는건 아니지만, 우리 처음 봤잖아 씨발 진정해 좀”이라 일갈하는 Tyler의 말이 이어진다. 대명사의 문제는 성지향성/소수성의 담론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그는 그러한 차원에서 성소수자로서의 자신이 다른 성소수자들을 미스-젠더링해왔던 일련의 사실들을 사과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이기에 다른 성소수자들의 대명사를 ‘항상’ 올바르게 호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올바른 사과의 형식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과를 진심어리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일언반구의 변명이 없이 깔끔하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에만 한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Tyler의 「SORRY NOT SORRY」에서 취하는 태도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의심할 여지는 충분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SORRY NOT SORRY」에서 Tyler의 사과는 어딘가 과잉되어있다. 그러니까 굳이 사과까지 안 해도 될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는 비슷하게 사과한다. 지구의 환경 문제-음악적 변화를 비판했던 팬들-흑인 사회 순으로 사과를 전하는 단락은 대표적이다. 해당 단락에 대해서는 전문을 번역하여 적겠다.
…
Sorry Mother Earth, polluted air with chemicals and dirt
어머니 지구에게 화학물질과 먼지로 오염된 대기를 사과해
These cars ain’t gonna buy and drive themselves
그걸 만든 자동차들은 알아서 구매되거나 운전되는 것이 아니니까
What the hell you think I work for, not to not explore and stay the same? (I’m)
내가 뭘 위해 일한다 생각해? 모험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거?
Sorry to the fans who say I changed,
내가 변했다고 말하는 팬들에게 사과해
Cause I did
변했으니까
Sorry you don’t know me on a personal level to pinpoint what it is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나랑 가깝지 않은 것에 사과해
I’m sorry to my ancestors (I’m so sorry), I know I’m supposed to fight (I know)
나의 조상들에게 사과해 (정말 미안), 싸웠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알긴 하는데)
But this ice shinin’ brighter than a black man’s plight, I’ma make it right
근데 이 보석들은 흑인의 곤란보다 더욱 빛나는걸, 내가 바로잡아볼까
In the meantime, I’ll give some advice while these blood diamonds gettin’ cleaned off
이 피 묻은 다이아몬드들이 깨끗해지는 동안 내가 조언을 하나 해줄게
Nigga, fuck the price, spend it then, then again, I can’t save niggas
새끼야 그게 얼마든 좆까고 일단 존나 써, 내가 흑인(사회)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아?
I’m not Superman,
난 슈퍼맨(영웅)이 아니야!
But I could try
뭐 시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
이 단락은 랩 노랫말의 형식으로서 평가하더라도 상당히 놀라운 지점들이 많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건 Tyler가 취하고 있는 태도다. 「SORRY NOT SORRY」가 가진 모순적인 지점들은 바로 이 단락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Tyler 자신의 자동차 구매와 운전이 환경오염에 책임이 있게 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위 단락의 세 번째 라인의 중의성이 그 사과를 단지 일면적인 것으로 해석하게 두지는 않는다. 그것(세 번째 라인)은 바로 이어지는 팬들에 대한 사과와 맞물려 자신의 작품적 변화를 변호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경오염에 대한 사과와도 맞물려 자신의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누리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어야하느냐는 항변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라인이 어느 사과에 맞물리더라도, Tyler가 취하는 역설적 태도와 크게 맞닿아있다는 사실이다.
흑인(사회)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이어지는 사과는 더욱 문제적이다. Tyler가 흑인 힙합 아티스트치고는 흑인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동시대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그의 사과는 충분히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 물론 그와 비슷한 다른 이들도 충분히 있기에 그가 사과까지 할 문제인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자면 말이다. 하지만 “근데 이 보석들은 흑인의 곤란보다 더욱 빛나는걸, 내가 바로잡아볼까”라는 바로 그 라인은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무어라 해석할 수 있는가? 그는 그 라인을 통해 흑인 아티스트의 성취를 상징하는 보석들이 흑인 사회의 곤란들을 가린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역시 그가 이룩한 성취에 눈이 부셔 흑인 사회의 곤란들을 보지 못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인가? Kendrick Lamar가 일전에 그의 걸작 「Wesley’s Theory」 (2015)에서 지적한 바 있는 흑인의 부의 문제와 밀접한 이 두 가지 해석은 둘 중 어느 방향을 채택하는지에 따라 뒤이은 라인들에 대한 해석마저도 크게 달라지게 한다. 전자의 경우 Tyler는 무력한 지식인과 같이 보이고, 후자의 경우에서는 그가 커머셜 래퍼들의 흔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영웅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슈퍼맨’의 사용 역시 그러한 중의적임에 힘을 싣는다. 전자의 경우 슈퍼맨은 영웅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히지만, 후자의 경우 그 상징이 ‘백인 남성’이라는 점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꼬집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들을 거치며 작품의 최종장에서 Tyler는 자신의 모든 발화들 ― 심지어 바로 지금 「SORRY NOT SORRY」에서마저도 ― 이 ‘듣는 이를 소름끼치게 할 확신 가득한 헛소리’라 규정하며 더욱 거친 어조로 자신이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정당화시킨다. 여기서 마지막 두 라인은 작품 전체를 매력적인 반전으로 마감한다.
…
Sorry, not sorry (Buck ’em, buck ’em)
미안한데, 사실 안 미안해
(혹은, 사과하긴 하는데 딱히 유감은 없어)
I got two words, fuck ’em
딱 두 단어가 할 말로 남았어, ‘좆 까’
…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모든 사과들이 사실은 미안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그러니까 ‘별다른 유감’이 없이 그저 발생된/중인 상처와 논란들에 대해서 표면적인 예의만 차린 것이라는, 관용구의 원래 의미와 유사하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듯한 Tyler의 발언은 작품 전체에 드러난 혼란을 해소하며 그것을 명확한 것으로 바꾸는 그만의 방식일 것이다. 오랜 커리어 동안 그의 언행과 작품들로 인해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을 만든 것 역시 자신이기에 그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어쩌면 자신에 가득 찬 그만이 할 수 있는 사과로 이야기를 끝맺는 것이다. 그렇기에 ‘좆까’라는 말이 마지막에 들어선 것은 정말 감탄스러운 반전이다. 작품 전체에서 ‘(I’m) Sorry’라는 낱말들을 반복적으로 청자들에게 주입했기에, 딱 두 단어가 남았다는 말 직후 잠시 정적이 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Tyler는 바로 그 기대를 배반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은 그 자신으로서 남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을 것이다. Kendrick Lamar가 「Blacker The Berry」 (2015)의 마지막에 인종차별 문제의 책임을 흑인사회로 전가하는 반전이나, 「DUCKWORTH.」 (2017)의 마지막에 자신의 성공이 단지 우연(coincidence)적인 것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반전과 견줄만한 충격적인 연출이다. 「SORRY NOT SORRY」는 Tyler가 작사함에 있어 서사적 강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견해를 더 이상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모든 음악에 비디오가 첨부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음악을 작품으로 대할 때 꼭 뮤직비디오를 참조하여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음악 자신이 더 이상 청각적인 예술로서만 남고자 하지 않게 된 지금에 이르러, 참조할만한 뮤직비디오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마땅히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SORRY NOT SORRY」의 뮤직비디오 얘기다. 그것은 단지 트랙으로만 들었을 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보완하며, 트랙의 강점을 부각시킨다.
Kendrick Lamar가 「The Heart Part 5」 (2022)의 뮤직비디오에서 다양한 흑인 유명인사들로 의태하여 자신의 노랫말을 강화했던 것과 달리, Tyler는 「SORRY NOT SORRY」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간 자신이 커리어 동안 직조했던 페르소나들을 같은 무대 위에 모조리 올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알맞은 부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가령 그가 자신의 성지향성을 숨기던 시절 만났던 전 애인들에게 사과하는 Tyler는 『Flower Boy』의 Tyler이고, 거친 어조로 변명을 일삼으며 사과에 혼란을 야기하는 Tyler는 『Goblin』 (2011)의 Tyler이다. 그 와중 상의를 걸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Tyler의 모습도 있다. 그렇다면 「SORRY NOT SORRY」는 비로소 그 자신이 페르소나를 거치지 않은 본체 ‘Tyler Gregory Okonma’로서도 이야기를 풀 것이라는 말도 된다.
그리고 ‘Tyler Gregory Okonma’는 작품이 전개되어가는 동안 자신의 페르소나들을 하나씩 납치하고, 살해한다. 비록 그가 살해는 무대 뒤편에서 벌이는 것으로 보이기에 Tyler의 어머니를 비롯한 ‘그가 사과하는 대상’ ― 그들은 뮤직비디오에서 Tyler와 그의 페르소나들이 노래하는 무대의 관객으로서 연출된다 ― 들이 살해까지는 인지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Tyler Gregory Okonma’가 그의 페르소나들을 납치하는 과정까지는 그들의 입회하에 이루어진다. 어쩌면 마지막에 『CALL ME IF YOU GET LOST』 (2021)의 페르소나 ‘Sir. Baudelaire’가 살해당할 때에는 관객들도 그 사실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시키고, 살해하는 그 과정은 과거를 긍정하며 나아가는 작품의 이야기와도 일치한다. 관객들이 그러한 ‘Tyler Gregory Okonma’의 행각에 어떠한 리액션을 보였는지를 촬영하지 않은 것 역시, 있는 그대로의 Tyler를 「SORRY NOT SORRY」를 통해 훌륭하게 데뷔시키는 연출일 것이다.
나는 일전에 <온음>에 『CALL ME IF YOU GET LOST』에 대한 리뷰를 기고할 때, “본작은 『IGOR』까지의 모든 Tyler의 앨범들을 끌어안는다. 그렇기에 『CALL ME IF YOU GET LOST』는 『Bastard』도, 『Goblin』도, 『Wolf』도, 『Cherry Bomb』도, 『Flower Boy』도, 『IGOR』도 될 수 있는 앨범인 것이다.”라고 적은 바 있다. 그리고 2년 뒤에 발매된 디럭스 버전 『CALL ME IF YOU GET LOST: The Estate Sale』 (2023)의 마지막 트랙 「SORRY NOT SORRY」는 Tyler가 단지 다양한 페르소나들에 자유자재로 의태할 수만 있는 아티스트가 아닌,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Tyler Gregory Okonma’로서 긍정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려냈다. 둘의 뉘앙스는 비슷해도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그는 「SORRY NOT SORRY」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커리어의 첫 번째 막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뒤에 ‘Tyler Gregory Okonma’가 나아갈 길들이 곧 그의 두 번째 막이 될 것이다. 그만큼 「SORRY NOT SORRY」는 엄청난 힘을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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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조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내가 가장 최근에 기고한 Tyler 비평인 「SORRY NOT SORRY」 (2023) 리뷰의 일부를 발췌하여 적겠다 : “Tyler는 그의 커리어를 직조해나가며 매 순간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