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 「횟집」

by coloringCYAN
   

「횟집」은 불미스러운 이야기다. 시작부터 싸움이 나고 싸우던 누군가는 칼을 꺼낸다. 여기까지만 해도 큰 일이겠으나, 이야기는 자기 안의 등장인물들에게 정말로 야단이 났다는 것을 각종 수사들을 덧대어 드러낸다. 칼을 든 남자는 침을 질질 흘린댄다. 감정은 이미 통제불능의 영역으로 나아갔으니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 테다. 그가 일순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찰나일 뿐이다. 긴장의 틈새를 비집고 상대가 등을 보이는 순간, 어쩌면 그는 벼락처럼 달려들어 상대의 숨통을 날붙이로 찢어발길 것이다. 마치 굶주린 이리가 먹잇감의 목을 물어뜯는 모양으로! 어떤이는 죽고, 어떤 이는 죽이는 이야기의 완성. 이 이야기는 너무나 불미스럽고, 너무나 불온하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느덧 관객들이 운집했고, 그들은 이 이야기의 끝을 기다린다. 가급적 그것은 더욱 불미스럽게 끝나야지만 적절하겠다. 칼을 든 남자. 살의는 충만. 등장인물들이 익명이라면 관객들은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자신의 삶에 고충을 겪게 하는, 죽이고 싶은 누군가를 상상하며 시선을 칼 끝에 모은다. 다른 이는 너무 잔인해서 보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돌리다 힐끗힐끗 무대를 엿보고, 또 다른 이는 어서 도망가라며 쫓기는 등장인물을 응원한다. 릴스와 숏츠의 범람으로 보상중추가 마비된 이들은 첫 Verse 30초 동안 결말이 도래하지 않음에 불만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주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고자 하는건 이야기가 아닐 테다. 이야기 안에 고여있을 피. 그들은 피를 보고 싶어한다. 찰나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백현진은 전기수傳奇叟일 것이다. 관객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그는 더욱 열심히 이야기를 왼다. 슬금슬금 리듬을 타며, 몸짓으로 그들을 이야기 안에 유혹하여 가둔다. “허공에다 칼질을 시작하네” 부분에선 칼을 휘두르는 동작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겠다. “안 된다고 참아야 한다고 소리치며” 부분에서 자기 뺨을 때리거나, “칼을 겨누고 달려가네” 부분에서 눈동자의 초점을 무너뜨리는 등의 혼신의 연기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야기의 바탕이 될 소리들도 당연 중요하다. 김오키, 전제곤, 브라이언 신, 김다빈, 이태휘, 진수영 같이 기라성같은 재즈 연주자들이 백현진의 연기에 발을 맞춘다. 여기서 발을 맞춘다는 것은 단지 비유적이지만은 않다. 첫 Verse에선 마치 메가폰을 쥔 것처럼 백현진의 목소리는 먹먹하다 ― 관객이 모인 상황이라면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그것이 필요하기에 꽤 당연한 장치일 것이다. 더블베이스, 수자폰, 기타 등이 중저음역대를 채워 양 옆으로 소리를 가른다. 그들은 중앙에 자리한 목소리와 꼭 맞는 톤으로, 백현진과 함께 드럼을 발판삼아 한 발 한 발 전진한다. 박자는 가장 범례적인 축에 있기에 가장 정직하다 할 수 있을 4분음 4박자.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목적으로는 더할나위 없다. 점점 소리는 쌓이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관객들 역시 제각각의 표정으로 절정을 기다릴 테다. 어서 찔러! 어디를 찌를테냐? 극한의 자극을 위해선 대동맥을 찌르자! 질식할 정도로 오래 가는 긴장을 위해선 아킬레스건부터 베자! 부푼 기대와 들뜬 아우성. 이제 한 마디만이 남았다!

그런데 문득 백현진은, 이 이야기가 불미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어쩌면 연기하던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꾼이고,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런고로 그는 여기의 이미 이야기 속에 스스로를 투신한 모든 이들보다도 이야기에 대해 가장 외부자이다. 이야기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은, 저 관객들에 비해 그에겐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짧지만 매우 깊고 무거운 고뇌. 나는 이 이야기를 저들에게 계속 들려줄 수 있는가? 이것은 그가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저 관객들을 비-윤리적 불온함에서 구출하고자 함인가? 「횟집」의 첫 Verse가 끝나고 훅이 도래하는 간극은 매우 찰나에 불과하다. 도덕감정은 물론 중요한 동인이겠으나, 그 순간의 판단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여 더욱 분명한 직관만이 우선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불미스럽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부르는 게 적당”하겠다. 다음 장면은 “너무 끔찍”하고,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 폭력적”이니까!

이 순간 백현진의 목소리는, 앞서 Verse에서 악기들과 맞췄던 호흡으로부터 탈출한다. 먹먹함이 옅어진 것으로 보아 메가폰은 내려놓은 듯 하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트랙의 중앙에서, 하지만 다른 악기들보다 훨씬 우악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불균형이 야기된 까닭이 목소리의 특정 대역을 매만진 탓인지, 혹은 (백현진이 더욱 고성을 내든지, 엔지니어링의 힘이든지 해서) 목소리의 음량이 달라진 탓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 분명하게 관철되는 것은 이 무대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지다. 원래대로라면 훅부터 등장해 이야기의 맛을 돋궈야 했을 색소폰 연주의 멜로디 라인마저 백현진은 어떻게든 파묻어버린다. 무대 위 악기의 소리들을 이겨내야만 이야기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분명해질테니.

관객들은 동요한다. 하지만 백현진의 뜻대로 될 리는 만무하다. 그들은 이미 이야기의 “끔찍”하고 “폭력적”일 뻔하디 뻔한 결말이 불러일으킬 자극을 갈망한다. 이것은 새로운 요전邀錢인가? 그렇다면 더 지불하면 될 일. 이야기를 그만두지 마라! 이 순간 무대 위로 야유와 함께 돈이 날아온다면 이는 정말 까다롭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필이면 관객들이 눈을 부라리며 항의할 간주부 소리의 톤은 들떠있다. 아니, 사실 트랙의 처음부터 그랬다. 애초에 이렇게 중단될 이야기가 아니었고, 처연한 톤의 연주가 어울리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수자폰이 자아내는 그루브의 어떤 부분은 장난기가 서린 것처럼도 들리는 탓에, 특히 그것이 색소폰과 경쟁하는 구간에서는 트랙의 소리가 마치 익살이 오가는 밝은 분위기의 재즈 클럽에서 들릴만할 것이다. 즉흥적이거나 기교가 도드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어도 충분히 화려한 연주다. 그렇다면 이 순간 트랙이 마치 극중극의 겉껍질이 되어 희극처럼 보이게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트랙 안에 웃고 있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가장 당혹감에 빠져 불안해 할 이는 누구인가? 백현진? 연주자? 아니면 관객들? 내 생각엔, 이야기 그 자체다. 지금 이야기는, 자기 안에 결말까지 짜인 서사가 (어쩌면 창작자도 아닐) 한낱 전기수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다. 이는 이야기에게 있어 백현진이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중단하려 하며 느꼈을 곤혹만큼이나 난처한 일이다. 플롯보다도 피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만큼이나 이야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관객들에 알려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고자 한다. 헌데 누군가 그것이 불미스럽다는 이유로, 비-윤리적이고 “끔찍”하고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작품의 유통과 감상을 중단하고자 한다면, 작품의 생명은 그곳에서 마감되는가? 대체 누가, 과연 어떤 근거로 작품을 검열하고 그 생사의 여탈을 정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이해관계가 얽혀, 「횟집」은 두 번째 훅부터 진정으로 난장판이 된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비명이 그 난장을 대표한다 ― 이민휘가 그 비명을 녹음했다. 그 비명은 누구의 것인가? 어쩌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내는 비명일 수도 있다. 기어이 칼에 찔린 이가 내는 비명일지도, 그를 목격한 이가 깜짝 놀라 지르는 비명일 수도 있겠다. 혹은 엉망이 된 객석에서 몇몇 관객들이 두려움에 떨다 내지른 것일 수 있겠다. 이민휘의 비명은, 내가 비명이라고 썼음에도 단지 비명이라고만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트랙 안의 모든 것들의 감정이 한데 모여 울려퍼지는 그 소리는 비명이라기보단 괴성이라 적는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특정하건, 확실하게 그 괴성은 이야기의 속행을 명령하고 있다. 따라서 그 괴성은 곧 이야기가 스스로 내는 괴성이라해도 무방하다. 자신의 존재를 위해. 생존을 위해!

백현진은 그를 알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속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크게 외친다. “이 노래는 여기까지만 부르는 게 적당하겠어!!” 무대 위 전기수와 연주자들은 괴성에 맞서 아예 무대를 망치는 것을 택했다. 악기들의 연주는 과격해지고, 거기에 묵직하게 들이닥치는 신스까지 합류해 괴성과 싸운다. 어떻게든 괴성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그를 소리의 영역 뒤편에서 틀어막아버리는 이들과, 자신의 위상을 이리저리 옮기며 어떻게든 그로부터 빠져나오려 하는 괴성의 어울림. 아비규환. 이것이 「횟집」의 두 번째 훅이 보여주는 광경이다.

「횟집」의 마무리는 다소간 뜬금없다. 치열하게 싸우던 백현진의 목소리와 괴성이 거의 동시에 퇴장하고, 악기의 연주는 간주부에서 들었던 그 들뜬 톤으로 다시 회귀한다. 이번엔 소리의 멜로디와 템포마저 마치 행진에 어울릴법한 당참이 있다. 관객들은 화를 내며 퇴장했을 것이다. 연주자들만이 계속 연주하다 일시에 전원 연주를 멈춘다. 인산인해를 이뤘던 이 공연장엔 이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이겼는가? 백현진은 끝내 이야기를 끝까지 부르지 않았고, 이야기는 검열됨에 저항해 괴성이 되어 무대에서 싸웠으며, 관객들도 그 시점에서 볼 장은 다 봤을 테다. 때로는 감상자들의 요구에, 때로는 작품의 무게에 짓눌리는 창작자들과 실연자들. 여러 이유로 검열의 잣대에서 재단되는 작품들. 창작자와 작품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혼동하거나 그에 대해 혼란을 겪는 감상자들. 대중음악 역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져다 준다. 백현진은 「횟집」이 수록된 음반 『서울식: 밤 사이드』의 소개글 부분에 「횟집」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 “이런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그를 보며 ‘이런 노래’라는 어구에 새겨졌을 그의 무수한 고뇌와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그의 퍼포먼스, 작사적 역량이 훌륭한 동료들을 만나 탄생한 최고의 트랙. 『서울식』 시리즈에서 유독 이 트랙의 분위기가 가장 묘한 차이를 빚는다는 것도 비범하다. 「횟집」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처럼.

그러나 그를 곱씹을 시간은 길지 않다. 음반의, 트랙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우리는 어느새 무작위한 알고리즘의 바다를 헤엄해 다른 이야기에 도달할 것이다. 모두가 막 내린 무대에 쉽게 여운을 가질 정도로 삶의 여유가 있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다닐 테다. 「횟집」의 무대에도, 종국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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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1월에 폐국한 <온스테이지>에서 공연된 무대들 중 최고의 무대를 꼽을 수 있겠는가? 너무나 좋은 공연들이 많았기에 곤란한 물음이겠으나, 나는 그들 중에서 2022년 백현진의 「횟집」 무대를 최고로 꼽는다. 정육면체 공간 안의 백현진과 그를 둘러싼 연주자들. 흥에 겨운 건지 한이 맺힌 건지 모르겠는 백현진의 몸짓과 연주자들의 연주를 연속된 것으로 훑어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온스테이지>의 모든 공연들에서도 공연장의 공간을 가장 잘 활용한 축의 것이었다.

음원이 공개된 지금 돌아보면, 당시 「횟집」의 소리와 음원 「횟집」의 소리는 확연히 다른 지점들이 있다. 첫 번째 훅에 색소폰이 등장하지 않고, 대신 공연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간주부에서 즉흥성에 집중된 김오키의 현란한 연주를 강조했다. 그 때는 김한주가 코러스로 참여했기에, 코러스가 들어가는 두 번째 훅과 마지막 후주의 구조도 음원과는 사뭇 달랐다. 이민휘가 등장하는 시점도 마찬가지다. 음원에서는 두 번째 훅의 시작부터 더욱 격렬한 괴성으로 느닷없이 치고들어오지만, <온스테이지>에서는 두 번째 훅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보다 간결하게 등장하며, 그 타이밍 역시 카메라를 통해 충분히 예고된 뒤에서였다.

두 번째 훅이 끝나고 후주부에서 이민휘가 웃음을 참지 못한 모습까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점은, 내가 <온스테이지>의 「횟집」을 굉장히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다. 비록 실상이 힘껏 비명을 지르고 웃음참기에 실패한 것일지라도, 음악이 가장 고조될 타이밍에 조명까지 붉은색으로 뒤바뀌며 소름끼치는 절규를 선보인 뒤에 그녀가 보였던 그 웃음이 정말 무서웠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 그를 비추던 화각 역시도. 이를테면 이야기를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백현진의 노랫말에 당위를 부여하는 느낌. 이 역시 음원 「횟집」에서 괴성을 듣고 떠올린 감상과는 꽤 거리가 있는 것이다. <온스테이지> 카메라 연출의 힘이 확실히 크긴 컸다.

이 글의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는 지난 <온스테이지>의 「횟집」 무대를 본 이후로 고안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횟집」이 트랙으로 발매되었기에, 나는 비로소 작품비평으로 이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 때 이 트랙이 영영 발매되지 않아 라이브가 아닌 음원으로 들을 수 없을 것을 걱정했었다. 그렇지 않아 진심으로 다행이다.

       

1 comment

익명 2025년 11월 11일 - 9:02 오후

해석글 잘 봤습니다.
이민휘님의 웃음은 30초경에 한번,3분쯤 한번
총 두번나옵니다. 김한주님의 코러스가 시작하는 3분에도 웃음을 자아내는걸 보면, 이는 의도됨이 확실하다 생각하는데,
다시 돌아와 30초경에 웃음의 의미는 무었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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