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발매된, 437만 유튜브 구독자를 지닌 우타이테 Raon(이라온)의 싱글 「♡Like Like♡」는 아주 전형적인 동시에 아주 훌륭한 케이팝 트랙이다. 지난달 발매된 정규앨범 『RA:ONLY Vol.1』이 유명 애니메이션 OST 「A Cruel Angel’s Thesis」 (원곡 「残酷な天使のテーゼ (잔혹한 천사의 테제)」, 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주제가) 등을 수록한-그의 유튜브 설명을 빌리자면-‘Cover Selection Album’이라는 점을 돌아본다면 그가 「♡Like Like♡」에서 택한 전회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Raon이 수 년에 걸쳐 발매한 다수의 싱글이 애니메이션-혹은 관련 행사-의 주제가이며, 「♡Like Like♡」 이후 발매된 「FEEL me in BLACK」 또한 국내 게임 프로듀서 ESTi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을 때, 「♡Like Like♡」가 품고 있는 이질감은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FEEL me in BLACK」이 게임 프로듀서와 함께 만들어 낸, 매력적인 OST 타입의 J-Pop 트랙이라는 사실로부터 「♡Like Like♡」의 이질감을, 예컨대 해당 트랙이 지닌 강력한 케이팝의 특성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권은비의 「Glitch」와 「Croquis」, GHOST9(고스트나인)의 「Triangle」 등 특유의 강렬한 사운드 디자인부터 태민의 「이데아 (IDEA:理想)」, NCT 127의 「Superhuman」, NCT DREAM의 「발자국 (Walk With You)」의 유려한 구성 등 다채로운 프로듀싱 역량을 뽐내는 TAK이 「♡Like Like♡」의 제작 전반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트랙이 갖는 특성을 설명하는 유효한 근거가 된다. 또한 트랙 곳곳에서 포착되는 강렬한 내지름, 화려하게 변주하는 멜로디의 운동성은 Ado, Reol 등 유명 일본 아티스트에 이어 TAK과 함께 「♡Like Like♡」를 제작한 Giga의 손에서 주조된 J-Pop의 특성으로 비친다.
물론, 「♡Like Like♡」가 가진 특장점을 참여 프로듀서의 역량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트랙을 처음 들었을 청자가 느낄 법한 감상은, 2020년 전후의 여러 케이팝 트랙에서 마주할 수 있던 과격한 낙차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들)의 연상으로 이어진다. 150 bpm을 넘나드는 빠른 박자에서 쏟아지는 소리의 향연은 트랙이 진행되는 내내 그것의 질감, 분위기, 구조를 뒤바꾸며 나아간다. 첫 후렴이 끝난 직후 난데없이 템포가 느려지며 간결한 구성이 등장하는 것도 잠시, 곧이어 원래의 모습으로 복귀하자마자 기존 후렴의 자리를 더 과격한 형태의 브릿지가 대체하며 청자의 혼란을 가중한다. 시종일관 변모하는 소리와 빨라지고 느려지기를 머뭇거리지 않는 곡의 전개는 물론, 뜬금없이 등장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내세우는 구성까지, 「♡Like Like♡」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케이팝의 지독하고 끈질긴 ‘예측 불가함’과 닮아있다.
그러나 「♡Like Like♡」에서 더욱 돋보이는 케이팝의 특성이 있다면, 그건 Raon이 자신의 목소리를 능란하게 다루는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발매된 훌륭한 케이팝 트랙 중 하나인 NMIXX의 「占 (TANK)」(이하 「TANK」)는 자극적인(혹은 공격적인) 소리로 구축한 패턴 구조, 단순함과 과격함으로 무장한 가사-“시작합니다 처음엔 따끔할 겁니다”-의 조화를 작품에 투영한다. 조지환이 말했듯 「TANK」는 함께 수록된 Inst. 트랙을 듣는 것만으로도 원곡의 자극을 큰 손상 없이 느낄 수 있는 트랙인데, 이는 곡을 지탱하는 비트와 보컬/랩의 특성이 다소간 중첩되기 때문이다. 「TANK」를 구성하는 Inst. 트랙과 보컬 트랙이 공존할 때 그 과격함은 증폭하지만, 둘 중 하나가 제거되어도 각각의 트랙이 갖는 공격성은 일정 수준 이상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Like Like♡」는 「TANK」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원곡과 Inst. 트랙 사이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듯하다. 예컨대, 「TANK」보다 훨씬 불규칙하며 다채롭게 변모하는 「♡Like Like♡」의 비트는 Raon의 보컬이 사라지는 순간 자체의 특출난 매력을 상당수 잃어버린다. 동시에, 이는 원곡에서 아티스트의 가창이 갖는 특성과 비중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많은 케이팝 걸그룹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깔끔하고 강력한 가창과 켜켜이 쌓이는 보컬 레이어부터 J-Pop의 화려한 기교, 고전적인 록/메탈 창법에 이르기까지 Raon(의 가창)은 트랙에서 종횡무진 활약한다. 특히 Raon이 「♡Like Like♡」 내에서 펼치는 다양한 목소리, 창법은 각각의 순간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여러 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노래를 가창하는 듯한 인상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Like Like♡」 1절을 하나의 그룹이 가창한다고 가정한 채 들어보면, 첫 파트인 “몰아쳐 온 느낌”부터 “날 불러주면 갈게 더 더 더 더”까지의 허스키한 중저역대 음색과, 다음의 “Oh 그게 나라면 믿겨지니”까지의 랩 파트, “Yeah 그래 맞아”부터 “Keep your eyes on me now”의 강렬한 하이톤에서 드러나는 음색과 음고, 가창 방식의 차이는 이를 모두 다른 사람이 가창한 것처럼 들린다. 심지어 직후의 ““You’re stuck in a frame”와 “So hard to go back 네 맘 뺏을게” 파트의 가창은 각각 부드러운 음색과 뻗어나가는 가창으로 표현되고, “어느새 끌리지 너 역시”부터 이어지는 빌드업 파트와 이후 후렴의 가창은 모두 강렬한 인상을 띠면서도, 전자는 다소 장난스러운, 후자는 보다 강인하게 느껴지는 차이점을 가진다. 이처럼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역량으로 그룹의 가창처럼 느껴지는 보컬 운용을 선보일 수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Raon이 오랜 기간 우타이테로 활동하며 발전시킨 능력과 노련함이 주요하게 자리할 것이다.
이에 더해, 역시 다채로운 역량을 지닌 TAK과 Giga는 Raon이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의 가창을 선보이는 각 파트에 적절한 소리를 배치한다. 다시 1절을 살펴보자면, 장난스러운 보컬이 진행되는 파트에는 곡의 메인 리프와 함께 가벼운 킥과 퍼커션을 정박에 배치하고, 이후 강렬한 가창이 등장하는 파트에는 메인 리프를 늘어뜨리면서 둔탁한 킥과 베이스를 더해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또한, “You’re stuck in a frame 예상을 깰게” / “So hard to go back 네 맘 뺏을게” 파트에서 등장하는 피아노와 박수 소리를 직후의 빌드업 파트에서 일렉트로닉 키보드와 드럼 스네어 소리로 자연스레 교체하는 것, 후렴의 그루브를 만드는 808 베이스를 직후 템포 변경 파트에서 둔탁한 베이스 연주로 치환하는 방식은 TAK이 이전의 「Croquis」, 「Triangle」 등 작품에서 파트 구분 및 연결을 위해 사용한 바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채로운 소리를 자유롭게 만져가며 Raon의 여러 가창 방식에 어울리는 적절한 형태로 변모해 내는 프로듀서의 역량은 그의 보컬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된다.
「♡Like Like♡」에서 찾아낼 수 있는 흥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령,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출연한 다수의 유명 유튜버, 스트리머는 기존 케이팝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장경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채널 구독자가 웬만한 케이팝 아이돌 공식 채널을 상위하며, Raon을 포함한 10여 명의 출연진 구독자 수의 총합이 1,000만을 거뜬히 넘기는 이들의 연대의 장은 「♡Like Like♡」의 뮤직비디오에서 펼쳐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해당 트랙은 단순히 J-Pop과 애니메이션 OST 커버를 핵심으로 삼는 우타이테로써 아티스트 Raon의 전회일 뿐만 아니라, 그가 주요 거점으로 삼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그 반경이 케이팝의 일부로 침투하는 분기점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1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예컨대, 팬데믹 이후 케이팝의 확장은 어떻게,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케이팝 아티스트가 세계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의 단독 헤드라이너로 활약하고, 온갖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앞다퉈 케이팝 아티스트를 자사 앰버서더로 발탁하며, FIFTY FIFTY(피프티 피프티)의 영리한 전략이 바이럴을 일으켜 놀라운 기록-빌보드 핫 100차트 10위권 입성-과 함께 ‘제2의 방시혁’과 같은 낯간지러운 수식어를 만들어 내는 2023년, 혹은 케이팝 대표 아티스트로 꼽히는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음반 초동 판매량을 세븐틴과 aespa가 큰 격차로 뛰어넘는 현재의 케이팝 시장은 또 어떤 확장과 변화의 국면을 맞이할 것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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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반 년 가량의 시간을 지나 보내며, 작품의 완성도나 특수성을 배제하고서라도 아주 흥미로운 감상을 만들어 냈던 케이팝 트랙을 돌아볼까 한다. 그 리스트의 첫 타자로 내세울 사례로써, 그들(아티스트와 기획사) 스스로 ‘X-Pop’이라는 명칭을 강조하는 XG의 경우는 어떨까? 전원 일본인(혹은 일본계)멤버로 구성된, 일본 엔터 기업의 자본으로 제작한 그룹으로써 XG는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케이팝의 일원으로 인식될 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XGALX가 수행한 효과적인 마케팅-멤버 전원이 케이팝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쳤다는 사실 강조 등-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겠으나, 무엇보다 케이팝이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특성들이 XG의 핵심에 자리하기 때문일 테다. 가령, 직전에 언급한 케이팝의 트레이닝(연습생) 체계는 어떤 아티스트를 ‘케이팝 아티스트’로 분류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근거이며, 작품 크레딧을 가득 채운 작곡•작사가(들), 탄탄하게 짜인 프로모션과 콘텐츠 또한 XG가 케이팝 산업의 특성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만든다.
이에 더해, XG의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포착되는 강렬하고 다채로운 모습 또한 케이팝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XG가 지난해 발매한 「MASCARA」 등의 트랙에서 더욱 주요하게 드러나지만, 이들이 2023년 들어 발매한 싱글 「SHOOTING STAR」와 「LEFT RIGHT」에서 그 경로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가령, 타이틀곡인 「SHOOTING STAR」는 멤버들이 선보이는 유려하고 특출난 랩 퍼포먼스에서 다소간 그 경계가 흐려지다가도, 프리-코러스에 이르러 등장하는 랩-보컬 구성의 이격에서 케이팝적 낙차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서에 자리하며 얼터너티브 R&B 장르를 표방하는 「LEFT RIGHT」는 2010년대 유행한 공간감 있는 신디사이저와 간결한 보컬, 싱잉 랩의 구성을 지닌다. 이는 해당 트랙이, 만능초보가 말했듯 훌륭한 R&B, J-Pop 넘버이자 케이팝의 R&B 스테레오타입을 일정 부분 차용한 결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LEFT RIGHT」는 케이팝의 몇몇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히 다수의 그룹이 음반 수록곡(혹은 서브타이틀곡)으로 활용했던 R&B 사례와 그 궤를 중첩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현재의 케이팝 산업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법한 매끄러움을 뽐낸다. 과거 H.O.T.에서부터 현재의 많은 그룹까지 이어지는, 케이팝의 큰 낙차를 바탕으로 구성한 난잡함은 XG의 최근작-특히 「LEFT RIGHT」-에서 그 종적을 감춘 듯하다. 다만, 근 몇 년간 케이팝에서는 보편적인 팝 음악의 매끄러운 연결이 글로벌 진출의 여파를 빌미로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고, XG의 최신작 또한 이와 같은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본격적인 글로벌 진출을 도모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XG의 유려함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데뷔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기존의 특성을 다소 배제한 채 곧바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삼은 매끄러움을 강조했던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 자리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케이팝의 특성의 한구석에 예측 불가한 순간의 연결로서 낙차가 자리한다면, 그 곁에는 글로벌 음악 시장의 시류를, 특히 영미권 팝 시장의 흐름을 가능한 한 빠르게 산업 안으로 흡수하려는 몸부림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이는 케이팝의 깊은 뿌리에서부터 작동하는 핵심적인 특성으로 비치기도 하는데, 이러한 특성이 발전하는 시장 상황과 맞물리며 만드는 경향은 최근에 이르러 더욱 흥미로운 현상을 발생시킨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케이팝이 해외의 트렌드를 본격적으로 반영하는 데에는 족히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령 200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2010년대 초 케이팝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다양한 일렉트로닉과 힙합 장르 및 그 방법론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례가 등장한 시기는 케이팝의 글로벌 진출이 시작되기 전이라는 점에서, 10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과는 큰 차이를 지닌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케이팝의 글로벌 성과가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한 만큼, 케이팝 시장과 해외 음악 시장의 거리 또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2022년 펼쳐진 걸그룹의 활약 속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부분은, 데뷔 시점에서 마땅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그룹과 기획사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을 직면했던 르세라핌(LE SSERAFIM)이 「ANTIFRAGILE」을 통해 문제를 단숨에 돌파하는 순간에 있다. 그들의 데뷔곡인 「FEARLESS」는 대다수의 혹평과는 달리 매력적인 구석이 많은 트랙이지만 그보다 「ANTIFRAGILE」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HYBE가 해당 트랙을 중심으로 라틴 팝이란 트렌드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편입시키는 양상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르세라핌과 쏘스 뮤직(SOURCE MUSIC)은 「ANTIFRAGILE」 티저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로잘리아(Rosalía)를 카피했다는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주요하게 짚어봐야 할 것은 단지 르세라핌의 트랙이 로잘리아의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따지는 것이기보다, 로잘리아-를 위시한 새로운 세대의 라틴 아티스트-가 영미권 팝 시장의 총아로 떠오르는 시점과 르세라핌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차용하는 시점 사이의 시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치우친다.
기존 케이팝 사례에서, 새롭게 발매된 케이팝 트랙과 그것의 레퍼런스 트랙 간의 유사성이 높더라도, 그들 간의 시간적 간격이 넓었기 때문에 두 트랙이 한국과 해외에서 주목받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시장 사이의 시차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는 2019년 무렵의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2021년의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를 레퍼런스로 삼은 케이팝이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2022년의 르세라핌은 이전의 사례보다도 빠르고 영리하게 해외 시장의 시류를 자신의 두 번째 활동곡으로 흡수했다. 어쩌면 르세라핌과 로잘리아의 유사성이 보다 강력하게 제기되었던 이유에는, 물론 르세라핌을 둘러싼 여러 비판과 실제 작품 간 유사성 정도 또한 중요하겠지만, 두 아티스트•작품 간의 시차가 크게 좁혀졌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레퍼런스 작품과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2023년으로 이행하며 르세라핌의 첫 정규앨범 『UNFORGIVEN』은 물론, SM 엔터테인먼트 등 타 기획사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르세라핌의 신규 타이틀곡 「UNFORGIVEN」은 피처링진과 샘플링 공개로 높인 기대치를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로 많은 이들에게 혹평을 받았으나, 앨범 종반부에 수록된 「Fire in the Belly」에서 재현되는 라틴 팝의 시류는 「ANTIFRAGILE」과 다소 상이한 궤적을 그리며 그것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이에 대한 설명은 coloringCYAN의 리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편, 태민과 백현의 군 복무 동안 SM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남성 솔로 아티스트로 활약한 엑소(EXO)의 카이(KAI)는 군 입대 전 마지막 솔로 콘셉트로 라틴 팝을 차용했다.
솔로 데뷔작 『KAI』와 이후 『Peaches』에서 매혹적인 얼터너티브 R&B와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전례와 달리, 『Rover』에서 카이는 강렬한 리듬의 라틴 팝을 자신의 퍼포먼스를 강조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사용한다. 오랜 그룹 커리어와 솔로 활동을 거쳐 발전한 보컬과 랩 역량은 물론, 일찍이 증명된 자신의 퍼포먼스를 다채롭게 선보이는 방안으로 라틴 팝을 택한 카이는 타이틀곡 「Rover」와 수록곡 「Bomba」에서 효과적인 결과물을 남겼다. 그의 장기를 여실히 드러내는 댄스 필름, 안무 영상 등 콘텐츠에서 드러나는 「Bomba」의 퍼포먼스는 「Rover」의 강렬하고 컨셉추얼한 안무와 달리 (보다 라틴 팝의 원류에 가까운)농염하고 감각적인 움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타이틀곡과 차별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앞서 많은 화제가 되었던 「음 Mmmh」과는 또 다른 매혹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물론, 케이팝이 타겟팅한 최근의 음악 트렌드에 라틴 팝만이 자리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여전히 음악 시장에서 주요한 위치를 지키고 있는 힙합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세븐틴이 「Fire」에서 선보인 Afrobeats와 xikers(싸이커스)가 「Xikey」에서 활용한 Drill 사운드-자체적으로 설명한 UK Grime보다는 Drill에 가깝다-는 케이팝이 해외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는 경향을 다소 증명한다. 물론, Drill 특유의 리듬은 지난해부터 이미 일부 케이팝 트랙에서 등장한 적 있으나, 기존 케이팝 트랙에서 트랩 리듬이 활용되는 방식-첫 후렴 직후, 두 번째 벌스 도입 부분의 보컬-랩 전환 파트-을 대체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을 뿐, xikers의 사례처럼 트랙 전반의 구성과 랩 파트의 발성 및 발음, 곡의 콘셉트에까지 영향을 끼친 사례는 찾아보기 드물다(트랙 마지막에 이르러 케이팝 특유의 보컬 변환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전형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지점-Drill 안에서도 케이팝의 낙차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Xikey」의 재미를 증폭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자리한다.) 또한 세븐틴이 「Fire」를 두 개의 타이틀곡 직후-음반의 세 번째 순서-에 배치했다는 점, 그리고 트랙 제작에 참여한 멤버가 (기존 세븐틴의 많은 곡을 프로듀싱한) 우지가 아닌 랩 포지션의 버논과 원우라는 사실은 Afrobeats와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Fire」가 갖는 독특한 위치를 가늠케 한다.
현재까지의 사례가 대체로 음악적-장르적-특성에 머문다면, 이보다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경우가 남아있다. 별안간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며 케이팝 아티스트가 해외의 여러 분야, 콘텐츠, 기업과 협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23년 발매된 두 개의 트랙, 뉴진스(NewJeans)의 「Zero」와 aepsa의 「Hold On Tight」는 닮은 듯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 코카콜라 제로의 광고 음악으로 제작된 뉴진스의 트랙은 이전 활동에서 선보인 바 있는 다채로운 리듬 활용, 독특한 멜로디 전개와 함께 후렴에 이르러 등장하는 빠르고 강력한 드럼 비트 위로 한국 사회의 구전 음악 “코카콜라 맛있다”를 활용하는 유머를 뽐낸다. 이는 「Cookie」의 독특한 가사와 끝음 처리, 「Ditto」의 처연한 멜로디를 연상케 하면서도, 트랙을 뒤덮은 간결한 아르페지오 키보드와 세련된 벌스, 프리-코러스 멜로디와 크게 대비되는 구성으로 그 특이함을 팽창시킨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테트리스 (Tetris)>의 OST로 발매된 aespa의 「Hold On Tight」는 앞선 「Zero」보다 직접적으로 본래의 멜로디-게임 <테트리스>의 배경음악-를 활용하면서, 트랙의 분위기 전반을 aespa의 기존 콘셉트와 조화롭게 구축한 곡이다. 「Hold On Tight」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게임 <테트리스>의 배경음악 멜로디를 시작과 후렴 부분에 그대로 옮겨 오는 동시에, 벌스와 프리-코러스를 꾸미는 다채로운 멜로디, 테크노 스타일의 사운드가 풍기는 진중한 분위기를 기반으로 삼는 멤버들의 보컬 퍼포먼스가 거침없이 활약하는 트랙이다. 특히 프리 코러스에 등장하는 메인 보컬 윈터, 닝닝(두 번째 프리 코러스의 카리나까지)의 미려한 가창은 오리지널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위태로운 전개를 무게감 있는 가사와 함께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주역이다. 또한 첫 후렴 이후 분위기를 환기한 뒤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과정은 물론, 후렴 직전과 중간에 등장하는 짧은 외침은 노랫말과 드라마에서 연상되는 이중의 감정을 담아내는 독특한 역할을 맡는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이 외침-“for your life”-이 그것과 반대되는 또 다른 외침-“fuck your life”-와 겹쳐 들린다.)
글에서 언급하진 못했지만, 뉴진스와 aespa가 자신의 주요 프로모션 콘텐츠로서 ‘웹’을 사용하는 방식, 방탄소년단의 RM이 솔로 데뷔 음반에 각 분야의 국내 아티스트를 소환하는 순간, tripleS(트리플에스)가 첫 단체 곡 「Rising」을 통해 세계관을 규합하는 모습 또한 최근 6개월간의 케이팝 시장에서 흥미를 일으킨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케이팝은, 2023년 현재에 이르러, 더는 ‘K’라는 범주로도, ‘Pop’이라는 범주로도, 혹은 기존에(특히나 팬데믹 이전의) 정립된 암묵적 규범으로도 명확히 분류할 수 없다. 그저 오래된 관습처럼 시장을 묶고 있는 ‘K-Pop’의 규범을 넘어 더 넓고 다양한 방향으로 그 확장을 모색할 때에, 그리고 많은 이들의 뇌리에 인식된 갖가지 꼬리표를 지울 때에, 케이팝은 그것이 가진 커다란 가능성을 보다 재밌는 방식으로 갈고닦을 수 있다.
2023년의 케이팝에는 XG부터 「Hold On Tight」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케이팝’이라는 장르와 산업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혹은 제기하도록 만들어) 그것의 용어적 정의를 확장하거나, 시장의 오랜 특성을 발전시키며 케이팝이 음악적 타겟으로 삼는 장르 활용에 대한 시간과 영역을 확장하거나, 그것이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며 산업 내에 색다른 활용 방식을 제시하는 등, 팬데믹 이후 다시 한번 놀라운 성장을 도모하는 케이팝 시장에는 다양한 범주 확대의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시 한번, 글의 원류로 복귀해, Raon의 「♡Like Like♡」가 스트리밍과 우타이테 등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문화를 케이팝 시장에 침투시키는 과정은, 우리가 지금의 케이팝 시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영역 확장의 또 다른 사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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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케이팝이란 무엇인가? 이제 내게 ‘케이팝’의 명백한 분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케이팝을 ‘아이돌 팝’이나 일종의 ‘캐릭터 산업’으로 분류하는 등의 방식처럼 내게도 케이팝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댄스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케이팝 기획사에서 제작한 아이돌 솔로/그룹 아티스트의 음악’이었는데, 여기에는 ‘댄스 음악 (중심)’과 ‘한국의 케이팝 기획사’, ‘아이돌 솔로/그룹 아티스트’가 핵심 키워드로 자리했다. 다만, 대부분의 자발적 규정이 그렇듯 이런 기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는데, 가장 먼저 그 의미가 퇴색된 건 ‘댄스 음악 중심’이었고-이 기준은 원래부터 그다지 중요한 기준은 아니었다, 그다음은 ‘아이돌 솔로/그룹 아티스트’였다.
‘댄스 음악’과 ‘아이돌’이란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과는 별개로 ‘한국의 케이팝 기획사에서 제작’했다는 분류는 아주 명확하게 구분이 가능하기에, 그리고 그것 자체가 케이팝의 음악과 아티스트를 비롯한 많은 요소를 설명할 수 있기에 이는 내가 케이팝을 분류하는 아주 주요한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XG가 데뷔한 뒤 그러한 기준마저 이제는 아주 명확한 기준은 아니리라 판단했다-물론 XGALX는 한국 법인으로 등록되었으나, 기획사 대표 및 모회사 사장의 발언 등 많은 부분에서 강조되는, 그 뿌리가 일본의 엔터 기업 AVEX라는 사실은 XGALX의 기업 등록을 근거로 그들을 케이팝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유니버설 뮤직 재팬의 자회사 Accelers에서 제작한 「♡Like Like♡」를 케이팝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도 주요하게 언급될 만하다.
적어도 2023년에 와서는 ‘케이팝 기획사 제작’이라는 규정 또한 유효하지 않을 수 있겠다. XG 이전에도, 가령 2018년 말 데뷔한 K/DA는 ‘케이팝 기획사’도, ‘한국의 기업’도, 심지어 ‘음반사’나 ‘엔터사’도 아닌 게임 개발사에서 제작한, 아주 특출난 케이팝 아티스트로써 활약하지 않았나? 케이팝이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한 지도 수 년이 지난 지금, 케이팝 기획사의 트레이닝 방식이 많은 경로로 전파되고, 그들의 아티스트•음악 프로듀싱 시스템이 체계화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그것을 다른 국가, 다른 산업에서 활용하기도 쉬워졌다. 지금의 케이팝을 효과적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보다 독창적인 기준으로 관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가령, 틱톡에서 다른 케이팝 아티스트가 챌린지에 참여한 횟수, 트위터 및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아티스트 검색 방지용 별명의 개수, 하나의 트랙 안에서 템포, 구성, 동일 사운드의 변주 횟수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