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umann』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 가지 일러둘 것이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평생 하나의 페달만 써야 한다면, 나는 끝내주는 퍼즈 하나를 사서 들고 다닐 것이다. Muff 중 하나일 수도 있고, Earthquaker 사에서 만드는 Sunn O))) 혹은 Boris의 기타리스트 Wata의 시그네처 퍼즈 페달일 수도 있다. 이는 요컨대 내가 슬러지 혹은 스토너 사운드에 단단히 미쳐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비평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고 성립해서도 안 되는 형용모순이지만, 이런 내가 『neumann』에 얹는 말은 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장르 팬의 입장에서, 『neumann』에서 반재현이 선보이는 기타 톤은 그 정도로 압도적이다.
1970년 이후로 메탈 음악은 서구 대중음악사에서 오랫동안 독자적인 공간을 구축해 오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적어도 장르의 ‘주류적’ 공간에서 기타의 톤과 텍스처를 조명하고 이에 집중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을까? 우리는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장르들과 달리 최초의 메탈 밴드와 음반이 무엇인지를 특정하는 것은 몹시 쉬운데, 이는 물론 Black Sabbath와 그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Black Sabbath』, 1970, Vertigo/Warner Bros.)이다. 기타리스트 Tony Iommi는 청소년 시기에 겪은 산재 사고로 손을 다쳐 기술적인 연주를 다른 비르투오소들처럼 구사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Black Sabbath의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일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Black Sabbath가 메탈 음악의 청사진을 그려가는 과정의 초점이 테크니컬한 연주를 선보이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블루스 음악과의 ‘혁명적’ 단절을 이루며1, 마치 Vincent Price의 영화처럼 육중하고,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atmosphere)를 기타 톤과 화성 그리고 리프를 활용해 구축해가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Paranoid』(1970, Vertigo/Warner Bros.) 그리고 특히 『Master of Reality』(1971, Vertigo)를 보면, Black Sabbath는 최초의 헤비 메탈 밴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최초의 슬러지/둠 메탈 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탈 음악이 대형 음반사를 위시한 주류 대중음악산업으로 편입되고 MTV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록 스타’라는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기 위한 토대가 되며, 이 장르는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기예를 과시하는 음악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고전 음악의 프레이즈를 연구하고 기타라는 악기에 도입하는 네오 클래시컬 메탈과 함께 이 경향은 가속화됐다. 애초에, 본격적인 메탈 밴드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문법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밴드, Deep Purple과 Led Zeppelin의 기타리스트들부터, 탁월한 테크니션(Ritchie Blackmore)이거나 현란한 블루스 연주자(Jimmy Page)였다. MTV가 팝 메탈의 경연장이나 다름 아니었던 80년대에, 메탈 음악은 보컬이 얼마나 넓은 음역대에서 소리를 잘 내지르거나 고음에 잘 도달하는지, 그리고 기타가 얼마나 빠르고 현란한지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종의 서커스가 됐다. 이 시기 기타 톤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같은 때 일본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수입된 메탈 음악 역시, 영미권 주류 메탈 시장의 경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매체들은 음악을 듣는 일보다는 기타리스트들의 기술적인 연주에 순위를 매기고 스포츠처럼 소비하는 일에 천착했다. 신대철, 김태원, 김도균이 소위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불리게 된 일 역시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기인했고, “누가 손가락으로 더 화려한 차력쇼를 보여주느냐”를 척도화하며 벌이는 놀이에 불과했다.
장르가 주류 시장에서 쇠락한 이후 새롭고 고유한 내용을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메탈이 황금기에 영미권과 대한민국에서 드러냈던 경향들은 자가복제적인 것으로 인식되며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 남게 됐다. 헤비니스를 핵심으로 하는 메탈 음악이 정합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고유의 톤을 연구하려는 시도는 언더그라운드/인디 씬과 교차하며 다양하게 분화된 하위 문화/하위 장르의 공간에서 포착되기 시작했는데, 개중 하나의 대안으로 두드러진 것은 슬러지와 스토너 음악이었다. Metallica나 Pantera를 위시한 많은 메탈 밴드들이 중음역대를 소거하고 저음역대와 고음역대를 강조한 ‘V자’ 모양의 이퀄라이제이션을 통해 묵직한 기타 리프를 선명하게 들리는 데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스토너/슬러지 기타리스트들은 저음역대와 중음역대를 강조한 먹먹한 톤을 퍼즈 이펙터와 배합하고는 했고, 이를 통해 헤비니스를 잃지 않으면서도 끈적하고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우리 대중음악공간 속에서 이러한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윤병주와 노이즈가든이다. 80년대까지의 메탈 밴드들과 노이즈가든 사이의 상이성을 알아보려면, 그들이 위상학적으로 어떤 다른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전까지의 대한민국 메탈 밴드들은 라디오와 매거진을 통해 접한 영미권 주류 메탈 음악을 카피하는 데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기획자들과 음반사들에 발탁되어 매니지먼트를 받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수순을 따라갔다. 그런데 노이즈가든과 그들의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주류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것이 아닌 독립된 위치에서 자생적 하위문화공간의 물적,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마련해 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움직이던 인디 씬의 첫 세대였다. PC 통신으로부터 서울의 지하 공간들로 뻗어간 이 씬은, 당시까지 전혀 보편의 영역에 들어설 수 없었던, 얼터너티브 음악들의 여러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시도들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노이즈가든 역시 고전적인 메탈 음악을 재생산하기보다는, 당대의 그런지 유행 속에서도 퍼즈 톤메이킹에 천착한 밴드들, 예컨대 Alice in Chains, Mudhoney 등의 방법론을 자유자재로 다뤄볼 수 있었다. 그들의 데뷔 앨범 『nOiZeGaRdEn』(1996, 베이프로덕션)은, 비록 우리 대중음악공간에 스토너 혹은 슬러지라는 장르가 잘 소개되지 않은 탓으로 인해 이러한 이름들로는 드물게 호명되지만, 헤비한 구성의 록 음악들 사이에서도 기타 소리의 질감에 집중하는 장르의 가능성과 매력을 독보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됐다.
『neumann』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윤병주가 노이즈가든 시절 선보인 것 이후로, 우리 음악에서 이렇게 맛있고도 완성도 높은 스토너/슬러지 기타 톤을 들어본 일이 없다. 과거 투견이 수준 높은 스토너 사운드를 선보인 바 있고, 줄리아드림이 유사한 지향의 톤을 완성도 높게 구축해 갔지만, 그들의 새 소식을 듣지 못한지는 오래 되었다. 최근에는 Kyuss에 영향 받은 파주가 인상적인 음악들을 선보이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아직 풀-랭스 정규 앨범을 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끈적이고도 육중한 기타 사운드에 대한 갈증을 더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돌아오는 슈게이징의 인기 속 공간감과 몽환의 구축에 천착하는 경향이, 메탈의 탈-형식적 대안을 찾아가는 포스트-메탈 씬 속에서도 블랙게이즈라는 이름으로 커져가는 세계적 현상은, Hydra Head Records가 포스트-메탈의 유행을 이끌던 시절 장르의 흔한 방법론으로 여겨지던 스토너와 슬러지를 점차 잊히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neumann』은 잊힌 소리를 복원하고 또 넘어선다. 앨범을 재생하자마자 쏟아지는, 「Birdperson 새사람」의 리프부터 그렇다. 저음역에 중점을 준 이퀄라이제이션 속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빈티지하지만 묵직한 기타 톤과, 그 사이를 간섭하는 날카로운 피드백이 박자를 밀고 당기다 블래스트비트를 쏟아내는 드럼 위에 펼쳐진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대곡지향적 구조다. 이러한 설명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스토너/슬러지 톤으로 풀어내려던 Mastodon을 떠올리게 하지만, baan의 맥락은 상이하다. baan은 록과 메탈의 전통적 구조 안에서 기타 솔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과장된 비장미를 연출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승전결이 형해화된 시간들 속에서 리프의 폭풍우를 장황하게 쏟아내고, 드럼의 역동을 통해 변주를 줄 뿐이다. 이러한 작법 속에서, 「Birdperson 새사람」과 「Early Bird Dies First」는 두개의 다른 트랙보다는, 포스트-록적 빌드업을 통해 음압의 크기를 점층적으로 확대해 가는 한 트랙의 두 파트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ISIS에서 Russian Circles에 이르는 여러 포스트-메탈 밴드들의 상징적 스타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neumann』의 지향은 이들과도 구별된다. 반재현의 기타는 톤의 측면에서 위의 두 밴드와 유사하지만, 이들처럼 시종일관 어둡고 사악한 분위기 속에 머물지 않는다. baan은 ISIS의 Aaron Turner처럼 목을 쥐어짜내며 절규하는 보컬을 사운드스케이프의 중심에 두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은 소리를 지르지만 이것의 모양은 메탈의 브루털 보컬보다는 하드코어 펑크의 것에 가깝고, 슈게이즈의 보컬처럼 기타 레이어의 뒤에 숨어 은은히 자락을 드러낸다.
『neumann』이 기존의 슬러지 기반 포스트-메탈들과 가장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은 멜로디 메이킹에 있다. 앨범 곳곳에는 미드웨스트 이모를 연상케 하는 싱그럽고 청량한 장조의 리프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치 흑백의 배경으로부터 조금씩 채도를 올려가는 듯하다. 불싸조와 Turnstile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는 듯한 은근한 서정은, 노이즈를 정동적으로 분출해내는 지점과 맞물리며 이모 음악과 포스트-하드코어의 정취를 선사한다. 이모의 멜로디가 선사하는 나른한 낭만과 슈게이즈적 잔향이 앨범 안팎에 은은히 머무르지만, 이는 결코 과하지 않다. 수록곡 제목처럼 “씩씩한 노래를 부르자”는 이들의 선언과 함께, 앨범은 밝지만은 않지만 우울에 맞서 싸우고 나아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neumann』은, 늪처럼 질척거리는 절망을 소거하고 템포를 올린, 요컨대 행복해진 ISIS처럼 들리기도 한다. ‘불안하지만 희망차다’는 감정선은 기존의 메탈 음악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인데, 이것이 『neumann』의 고유성을 빚어내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한편, 위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Reversal of a Man」은 특히나 불싸조의 트랙처럼 들린다. 이는 크런치한 기타로 문을 열고, 로-파이 텍스처로 종알대는 나레이션 텍스처 샘플이 흘러나오다, 규칙 없이 종횡무진하는 리프들이 쏟아져 나오는 구조 때문이다.
한 편으로, 『neumann』에서 baan이 음향과 앰비언스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언급될 필요가 있다. 『neumann』에 대해 필진 Subin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믹싱과 같은 후작업 뿐 만 아니라 레코딩 세션 전반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포착되는 여러 음향적 쟁점과 고유성을 제시했다. baan은 대체로 리버브를 비롯한 페달들을 활용해 ‘촉촉(wet)’하고 풍부한 잔향의 공간을 구축하는 대신 건조한 기타 톤을 연출하는 듯하다. Subin은 이와 같이 건조한 기타 톤과 이따금씩 경합하는, 상이한 색채 그리고 질감의 기타 톤들 사이의 명암을 대비해 음반 속의 공간감이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되어 간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주장에는 커다란 설득력이 있다. Subin은 동시에, 스테레오 믹싱의 단순한 기타 패닝을 넘어, 녹음 현장에서 악기들의 마이킹이 이루어지는 ‘위치’에 치밀한 변주를 주고, 드럼 킷의 위치감을 곡의 전개 도중 의도적으로 전후 이동시키는 등의 시도에 집중했다. 나는 이러한 논의를, 음향의 설계 속에서 풍부한 잔향에 의존하는 대신 ‘시선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축하는 대안적 앰비언스 방법론의 가능성으로 이해했다. Subin의 의견을 직접 인용하자면, “공간감을 형성하는 것과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원근법을 주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baan은 Bandcamp 프로필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Doom but not boring. Screamo but not crying. Hardcore but not macho. Shoegaze but not sucks.” (지루하지 않은 둠, 울부짖지 않는 스크리모, 마초적이지 않은 하드코어, ‘구리지’ 않은 슈게이즈) 『neumann』은 이러한 선언에 이념형적으로 가장 걸맞은 앨범이다. 「Histrionic」의 도입부 같은 지점에서는 느린 템포와 낮은 튜닝의 베이스가 거칠고 빈티지한 퍼즈 톤을 거쳐 전개되고 기타가 이를 뒤따르며 둠 메탈과 닮은 사운드디자인을 선보이지만, 앨범은 둠 메탈처럼 시종일관 느린 템포 속에서 힘 없이 흐느적거리지 않는다. 『neumann』은 막 비가 갠 오후 풍경처럼 흐린 서정을 간직하고 있지만 유치한 신파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탁월한 완급 조절 속 높은 수준의 지구력과 흡입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앨범은 At the Drive-In의 『Relationship of Command』(2000, Grand Royal/Fearless/Virgin) 이후 가장 탄탄하게 만들어진 포스트-하드코어 명반이라 할 만 한데, 이 두 앨범은 모두 Big Black처럼 남성성을 전시하거나, 하드코어 펑크 태동기의 스케이트 펑크 혹은 오이!처럼 과격성과 선동성에 기대지 않는다. 한 편 이들은 톤 메이킹에 공을 들이지만 근래 범람하는 ‘양산형’ 슈게이즈 음악들처럼 리버브를 무작정 남용하고 고음역을 소거해 뭉개지고 모호해진 로-파이 톤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지도 않는다.
『neumann』은 단순히 장르들을 늘어놓으며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안다”고 자랑하는 앨범이 아니다. 슬러지와 포스트-메탈, 포스트-하드코어, 이모, 슈게이즈 등 여러 장르들 각각의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정점에 다다른 밴드가, 이것들을 자양분 삼아 헤비니스에 대한 새롭고 대안적인 상을 점성술사의 수정구처럼 내다보고 가리키는 앨범이다. baan은 인디 씬과 메탈 씬의 희미한 교집합 속에서, 단순한 콜라주가 아닌 제 3의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앨범을 듣는 처음 몇 분 동안, 나는 반재현이라는 뮤지션에게 질투심이 들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남은 것은 그저 감탄 뿐이었다. 퍼즈와 디스토션 페달 속 상이한 톤들의 예민한 차이점들을 포착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본능적 감각, 폭발하는 리프들로 구성된 구조를 필요한 때에 맺고 풀어내는 능력, 그리고 이 경이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들어간 모든 역량들과 노력은 내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 Black Sabbath는 Led Zeppelin 그리고 Deep Purple과 함께 70년대 초 과격한 록 음악의 유행을 선도한 ‘Unholy Trinity’로 불렸고, 대한민국에는 세 밴드가 모두 ‘헤비 메탈 밴드’로 소개되며 개중 가장 인기 있었던 Led Zeppelin이 헤비 메탈 음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하드 록의 블루스적 기반으로부터 어떻게 이탈하여 메탈 음악의 고유한 공간을 형성했는지를 기준으로 볼 때 Sabbath를 제외한 나머지 밴드들을 본격적인 메탈 밴드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개중에서도 Led Zeppelin은 특히 록 음악의 블루스적 근원을 복원하는 작업에 충실한 밴드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