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바탕에 숫자 ‘4’와 키라라를 상징하는 눈송이 ― 키라라 본인은 별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눈송이로 이해한다 ― 가 그려져 있는 단순한 앨범커버, 그 와중 활자들을 뒤덮고 있는 붉은 색이 눈에 띈다. 그녀의 상징 로고의 공식적인 색상은 민트색이고, 싱글 커버에서 그것은 하얀색으로 표시될 때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색은 새롭다. 더군다나 검은 바탕에 붉은색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존 흰 바탕에 민트색 로고를 색반전한 그 두 가지 색의 조화가 앨범의 분위기를 압축하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이따금씩 그녀의 앨범커버는 앨범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대표하는 경우가 있었다. 『moves』에서 그녀가 드러누워 닌텐도를 플레이하는 모습이라던가, 『sarah』에서 하얀 국화꽃들과 그녀를 상징하는 푸른 로고가 같이 놓여있는 장면이라던가.
일전에 나는 ‘클럽하우스’라는 어플리케이션에서 키라라가 고독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어느 날은 듣고 있다가, 발언자로 올라가 그녀에게 작업 중인 앨범이 어떠한 앨범이 될 것인지를 알려달라고 청한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때 이렇게 답했었다. “3집(『sarah』)이 ‘슬픔’에 관한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분노’에 관한 앨범이 될 것입니다.” 짧았던 그 문답에서부터 미약하게나마 앨범커버의 이유를 짚어볼 수 있겠다. 검은색의 어두움과 붉은색의 강렬함의 조화는 그를 바라보는 이에게 위협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잦다. 표지판은 단순한 그림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커버에서 색상의 단출한 배치만으로 우리에게 일종의 경고를 내리는 셈이다. 마치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과 같이 기능하는 것이다.
만일 『4』가 분노에 가득 차 길길이 날뛰는 앨범이라고 한다면, 앨범의 역동하는 에너지는 터져 나오다 못해 사방으로 분출하며 청자의 감상을 같이 들끓게 할 것이다. 또 만일 『4』가 분노하되 그 분노를 강하게 표출하는 대신 날뛰지 못하고 감정의 심연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면 청자는 그에 끌려가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4』는 자신의 에너지를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키라라가 나의 질문에 했던 대답을 믿고 있고, 그렇기에 『4』는 분노에 관한 앨범이라 인지하고 있다. 비록 그녀가 첫 트랙 「4」에서 “그냥, 댄스음악이니까, 재밌게 들어주세요.”라고 이야기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4』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그 모양새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길길이 날뛰며 청자들을 흥분시키거나, 저 바닥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앨범이 아니다. 키라라는 분노의 앞에서도 그저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대신 『4』는 그것이 가진 트랙들의 제목에서부터 어떠한 서사를 직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쓰인 제목들의 나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가능성을 가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4」에서 키라라는 『4』가 “그냥, 댄스음악”임을 밝히며 그것의 소리들이 일종의 서사를 가질 수 있다는 독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하지만 그 다음의 「Bearded Lady Juggling Show」는 ‘수염 난 여성’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작품과 창작자의 맥락을 교차시킨다. 이어 앨범은 「Stargaze」하고 (별을 바라보고), 기어이 「Pulling Off the Stars」하고야 (별을 따고야) 만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앨범은 그 직후 어떠한 「참변」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손실」을 야기했고, 「HRT」(호르몬 대체 요법, ‘트랜스-젠더 호르몬 대체 요법’을 포괄한다)는 작품의 맥락이 분명히 트랜스-젠더의 것을 담고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공천」은 정치권과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률의 제정간의 맥락을 공유할 것이다.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정치권은 「규탄」된다. 그 움직임은 「폭발」하고, 「Diffusion」(발산)된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현상유지적 공천은 반복되고(「공천 reprise」),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끝내 「사별」한다.
놀랍게도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트랙 제목의 배치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를 단지 우연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트랙의 제목을 짓고, 배치하는 창작자의 의도와 권한을 불필요하게 격하시키는 것일 테다. 허나 다분히 청자의 분노를 자아낼 만한 이 서사의 직조를 두고 그를 창작한 창작자, 키라라는 무심하다. 어째서? “그냥, 댄스음악이니까,” 실제로 『4』의 소리들은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들뜨지도, 침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소리들은 그녀가 지금까지 선보여 왔던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쿵’ 하면 ‘쿵’. ‘짝’ 하면 ‘짝’. 반짝하다가 불시로 번쩍하면서도 단순하고 명확하게” 장르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은 채 그녀의 소리가 지닌 방향성을 적실하게 요약한다 할 수 있을 이 문구는 『4』에 있어서도 다분히 유효하다.
하지만 『4』가 키라라의 전작들과 결정적으로 멀어지는 지점은 보컬의 활용에 있다. 그녀는 전자음악가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말보다는 소리로 풀어가는 타입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때로는 자신의 목소리로, 때로는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김고양, 코스모스 슈퍼스타, 시와, 애리, 김정연, 신승은이 『4』에 참여하여 그녀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그 목소리들 또한 『4』에 담긴 소리가 그랬듯, 말하듯이 차분한 투로 노래가 되어 불러진다. 대신 그 안에 녹아있는 메시지들엔 힘이 있다. 청자를 오롯이 그 메시지에 집중시키면서, 그것이 앨범의 중심에 자리한다고 믿게 만드는 그러한 힘이 말이다. 「폭발」은 대표적이다. 애리의 목소리는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거기서 그녀는 기억과 망각 그 사이에서 고뇌하다 “가슴이 타요”, “머리는 돌죠”, “손발은 떨죠”, “내 마음 가득히 채운 불꽃”과 같은 노랫말로 분노를 형상화한다. “하나하나 생각하면 한명한명” 떠오른다는 그녀의 단상은 마치 우리의 외면 속 잊혀져간 이들을 소환해내는 것 같고, 애리는 그 사실에 분노하듯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삶의 조각을 저버린 너도 세상도 기억한다고”
생각해보면 키라라의 작품들에는 항상 감상의 중심이 되는 트랙이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rcts』의 「꽝」이 그랬고, 『moves』의 「BLIZZARD」가 그랬으며, 『sarah』의 「Wish」도 그랬다. 그렇다면 『4』에서는 「Stargaze」를 꼽고 싶다. 분위기를 직조하는 전자기타와 건반의 연주 위로 코스모스 슈퍼스타는 망설이듯, 하지만 강단 있게 한 글자씩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트랙 속 “넌 지금 별을 보지만” 화자는 “별이 되려”한다. 그렇기에 ‘너’가 별을 보며 아름답다 말하는 것은 곧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 된다. 그래서 화자는 무서워한다. 과연 저 자는 나의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 일컫는가? 나 역시 너와 같은 한낱 인간일 뿐이지 않는가? 그러나 ‘너’의 시선은 끝내 “주저하던” 화자를 일으켜세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트랙의 제목이 「Pulling Off the Stars」인 이유는 「Stargaze」의 화자가 스스로를 ‘아름다운 별’로서 긍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세상의 두려움에 가시화되지 못한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있고, 가시화된 트랜스-젠더들 또한 갖은 핍박 속에서 세상을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 순간, 나는 「Stargaze」에서 「Pulling Off the Stars」로 이어지는 이 단편은 분명 트랜스-젠더인 키라라가 다른 트랜스-젠더들에게 전하는 찬가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4』는 분명 분노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내용이 마냥 분노로 차있어 도무지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될 수 없는 그러한 상태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4』는 앞선 문단에서 살폈던 찬가와 함께, 그럼에도 역시 견뎌내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분명 키라라가 「4」에서 “그냥, 댄스음악이니까, 재밌게 들어주세요.”라 말하며 작품을 청자들에게 어떠한 서사도, 맥락도 부재한 상태로 제시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앞서 “키라라는 무심하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 하지만 과연 그녀는 진실로 그녀의 앨범에 무심했을까? 아니다. 「4 중간」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어… 잘 듣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우리가 앨범을 ‘앨범에 제시된 순서대로’ 잘 듣고 있는지를 청해 묻는다. 분명 그녀가 외면할 수 없었던 어떤 힘이 『4』에는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트랙 「4 끝」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장식한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분노가 종교에서 죄악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4』의 분노는 「4 끝」에 의해 ‘참작된 분노’가 된다. 이 순간 『4』는 이유 있는 분노를 담은, 이유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분명 『4』는 키라라의 말마따나 “그냥, 댄스음악”으로 들어도 충분히 좋은 음반이다. 잘 짜인 소리들에, 이따금씩 가해지는 번뜩이는 변칙과 깊게 파고드는 장르적 스릴은 그녀가 줄곧 잘해왔던 일이고, 『4』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4』를 두고 ‘잘 만들어진 전자음악’이라 칭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쉽게 포착하고, 동의할 수 있을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본고를 통해 『4』에 대해 조금 다른 독해를 권한다. 『4』의 중심에 자리한 분노가, 어떻게 그 안에서 꽃피고, 어떻게 퍼져나가며, 무엇을 바탕에 두고 무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도 어느 샌가 마냥 춤 출수만은 없게 만드는 그 감정에 대해. 그 분노를 마주한 우리는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추던 춤을 마저 춰야 하는가? 아니면 추던 춤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까? 그 문제에 답을 찾는 것이 곧 우리의 당면과제가 될 것이다. 키라라는 “그냥, 댄스음악”을 틀었을 뿐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