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미의 말처럼 큐브(CUBE) 엔터테인먼트에서 틴-팝을 경유하는 걸그룹을 제작했다는 점만으로도 LIGHTSUM(라잇썸)의 입지는 독특하게 느껴진다. 물론 CLC의 활동 초기를 떠올린다면 크게 의아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분명 큐브 엔터의 걸그룹 중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혹은 남기고 있는-그룹이 포미닛(4MINUTE)과 (여자)아이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 또한 큐브 엔터를 넘어 현재의 케이팝 시장에서,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아울러 대부분의 신인 아티스트가 강렬하고 과격한 이미지를 표방한다는 점은 LIGHTSUM이 품은 순진함과 쾌활함을 돋보이게 한다. LIGHTSUM이 두 번의 싱글 활동을 거쳐 발표한 첫 EP 『Into the Light』의 타이틀곡 「ALIVE」 또한 ‘하이틴’이란 콘셉트에 적합한 활기찬 분위기와 “You make me feel ALIVE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와 같은 기분 좋은 노랫말로 가득하다. 하지만 「ALIVE」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트랙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명랑함에 있다. 곡의 국면이 변화할 때마다 제자리에 머무르며 균형을 잡아내는 베이스의 그루브와 당찬 리듬은 물론, 때로는 청량하게, 때로는 기묘한 선율로 각 파트의 분위기를 담당하는 신디사이저 사운드 또한 인상적이다. 여기에 더해 곡이 전개되는 내내 온갖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소리들, 가령 프리 코러스에서 짧게 등장하는 마칭 밴드 스타일의 드럼과 브라스는 「ALIVE」라는 트랙이 갖는 재미를 몇 단계 위로 끌어올린다. 트랙 내부에 자리하는 다양한 소리의 흥미로운 활용은 물론 멤버들의 뛰어난 역량이 더해진 「ALIVE」는 최근 보기 드문 틴-팝 스타일의 쾌활함을 현재의 스타일에 조화롭게 섞어 만들어낸, 많은 사람이 신인 아티스트에 기대하는 이미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트랙이다.

데뷔 싱글 「날개 (Wings)」부터 「Let Me Know」, 「중독 (Addicted)」, 「Bewitched」로 이어지는 2021년 PIXY(픽시)의 활약은 괄목할 만한 인상을 남겼다. 다크 판타지 풍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개성 있는 스타일과 높은 완성도로 무장한 음악을 선보인 PIXY는 일 년이란 짧은 시간 내에 확고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특히 PIXY의 음악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색채는 매번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의 변주를 꾀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여전히 그룹 특유의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2022년 발매된 「Villain」은 앞서 언급된 활동에 비해 매끈한 사운드를 차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곡 전반에 등장하는 명확한 드럼 리듬을 비롯해, 음악 내의 공간을 메우는 다양한 신디사이저 사운드는 이전의 음악에 등장했던 것과는 달리 깔끔하고 매끄러운 인상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Villain」이 여전히 PIXY의 음악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곳곳에 배치된 변주와 미세한 사운드 활용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벌스에서 “She’s callin me”라는 위태로운 가창과 함께 등장하는 사운드는 직전 파트의 매끄러운 베이스에 두터운 노이즈를 덧씌워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렇게 주조된 암울한 분위기는 후렴에 이르러 “Villain”이란 외마디에 재차 매끈한 소리로 변주하고, 유려한 정취로 전개되던 곡은 결말에 이르러 나타나는 불안한 음계와 함께 마무리된다. 이에 더해, 곡의 매끈함과 독특한 변주를 주조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요소는 다름 아닌 멤버들의 가창에 있다는 점 역시 특기할만하다. 앞서 언급한 위태로운 분위기를 이루어 내는 매혹적인 음색이나 후렴에서의 명쾌한 보컬은 물론, 프리 코러스와 브릿지 등 각 파트의 빌드업을 돕는 멤버들의 아카펠라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Villain」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곳곳에 삽입된 랩 퍼포먼스는 사뭇 아쉬운 인상을 남기지만, 독창적인 콘셉트 표현과 다채로운 사운드 활용으로 점철된 「Villain」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케이팝 시장에서 PIXY가 점유할 수 있는 영역이 확고함을 증명하는 트랙이다.

많은 의문을 남겼던 여자친구(GFRIEND)의 해체 이후, 메인 보컬을 비롯한 세 멤버가 떠난 비비지(VIVIZ)의 데뷔를 둘러싼 우려는 분명 존재했다. 더구나 기존 케이팝 그룹을 기획한 적 없는 신규 소속사 빅플래닛메이드 엔터테인먼트(BPM 엔터)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린 은하, 신비, 엄지는 해체 후 재데뷔라는 순탄치 않은 길을 택했다. 이후 공개된 그들의 첫 타이틀곡 「BOP BOP」은 이전 여자친구 활동의 경로를 경유하면서도, 세 멤버가 지닌 역량을 여실히 드러내는 곡이었다. 다만 「BOP BOP」은 그들이 활약한 지난 수년간의 행보를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면 크게 인상적이지 않은 트랙으로서, 더구나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신인 여성 아티스트의 활약 속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비비지는 <퀸덤 2>에서의 훌륭한 활약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활동량을 선보였고, 여름에 이르러 발매한 『Summer Vibe』에서 온전한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2010년대 이후 케이팝 시장의 많은 여성 아티스트가 공략한 여름이라는 계절은 걸그룹의 효과적인 성과 쟁취를 위한 항로로 여겨지고 있다. ‘서머 퀸’이라는 명칭을 대표하는 씨스타(SISTAR)를 시작으로 케이팝 서머 송을 대표하는 f(x)의 「Hot Summer」, 이후 레드벨벳(Red Velvet)의 「빨간 맛 (Red Flavor)」, 트와이스(TWICE)의 「Dance the Night Away」에 이르기까지 여름 특유의 쾌활함을 담아낸 작품은 케이팝 마니아와 대중을 아울러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악으로 남았다. 그리고 2022년 케이팝 여름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아티스트의 자리는 비비지에게 돌아갔다. 타이틀곡 「LOVEADE」의 활기찬 모습부터 이후 「#FLASHBACK」, 「춤」에서의 서정적인 분위기까지 비비지의 『Summer Vibe』는 음반명에 어울리는 여름 노래로 가득하다. 다만, 그 안에서도 「Love Love Love」는 세 멤버의 고른 균형이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다. 곡을 장식하는 딥하우스 풍의 정제된 비트 위에서 신비와 은하, 엄지는 그들이 선보일 수 있는 매력적인 음색과 탄탄한 보컬 퍼포먼스를 마음껏 펼쳐낸다.
독특한 음색을 기반으로 특유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은하와 엄지의 가창은 물론 곡의 하이라이트에서 서머 송의 쾌활함을 확실하게 짚어내는 신비의 깔끔한 보컬까지, 「Love Love Love」에서 비비지의 세 멤버가 뽐내는 합은 다른 신인 아티스트는 넘볼 수 없는 명확한 균형을 자랑한다. 또한 트랙 전반에 희미하게 감도는 아련한 감정이 그들의 이전 활동을 연상케한다는 점에서 「Love Love Love」는 곡을 둘러싼 깊은 여운을 남기는 트랙으로 자리한다. 본래 어떠한 케이팝 그룹이 되었든 간에, 이유를 불문하고 그룹의 멤버 변동이나 해체는 커다란 고난을 수반한다. 그리고 유독 시장 내에서 그룹 내외의 변화가 많았던 2022년의 케이팝을 지나 보내며 비비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전 소속사의 의아한 대처를 둘러싼 문제 제기를 제쳐 두고서라도, 비비지가 재데뷔라는 길을 택한 뒤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물은 단연 인상적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신인으로 지칭하며 일궈낸 지난 한 해 동안의 성과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며, 그것으로부터 몇 발짝 나아가는 과정을 수반했다. 이미 뛰어난 실력과 완벽에 가까운 그룹 내 조화를 지닌 비비지가 이를 바탕으로 펼쳐낼 앞으로의 행보는 케이팝 ‘신인’의 전례 없는 서사를 그려낼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강렬함과 과격함이라는 현재 대다수 보이그룹의 경향 속에서도 유별난 매력을 지녔던 ATEEZ(에이티즈)의 스타일이 관악기를 활용한 웅장함과 그 규모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력을 중추에 뒀다면, 이를 트랩 비트를 위시한 힙합의 활용으로 변주한 「불놀이야 (I’m The One)」은 명확한 그룹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등장한 「Guerrilla」는 앞선 트랙의 방식을 일부 차용하되, 기존 ATEEZ가 지녔던 강렬함을 배가시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벌스를 꾸며내는 트랩 리듬은 프리 코러스 직전 등장하는 강렬한 스크리밍과 함께 그 모습을 감추고, 짧지만 웅장함을 이끌어내는 프리코러스를 지나 등장하는 후렴에서 「Guerrilla」는 ATEEZ 고유의 당차고 거센 이미지를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브라스나 멀리 퍼져나가는 타악기 대신 더욱 밀도 높게 여백을 채워내는 신스 패드, 강렬하게 달려나가는 드럼 리듬, 촘촘한 레이어로 중심을 메우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구축하는 트랙의 후렴은 그들이 지난 활동과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구현하리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듯하다.
두 번째 벌스에서는 강력한 랩과 거친 드럼 리듬이 어우러지거나, 커다란 여백 속에서 섬세하게 음정을 짚어내는 보컬이 교차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며 트랙 안에서 효과적으로 완급조절을 이루어 낸다. 이와 같은 잠시간의 휴지 이후, 더 과격하게, 더 거칠게 후렴을 꾸며내는 「Guerrilla」의 소리들과 멤버들의 보컬 퍼포먼스는 브릿지에 이르러 보다 명확한 목표를 드러낸다. 하드 록, 혹은 메탈을 떠오르게 하는 강력한 리듬과 화려한 기타 연주 사이에서 폭발적인 고음을 선보이는 홍중의 가창, 그리고 거칠게 울려 퍼지는 스크리밍 속에서 터져 나오는 “The Guerrilla”라는 외침은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ATEEZ의 강렬함을 온전히 그려낸다. ‘해적’이라는 콘셉트로 당찬 여정의 이미지를 구현한 <TREASURE>시리즈와 다채로운 스타일을 활용하며 그룹의 목표를 재정비한 <FEVER>시리즈를 지나, 새롭게 펼쳐내는 ATEEZ의 강렬함을 확고히 그려낸 <THE WORLD> 시리즈의 첫머리에 놓인 「Guerrilla」는 그들이 지금의 케이팝 씬에서 구축한 독보적인 매력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케이팝 시장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이가 스스로를 피력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존에 없는 신선함을 강조할 수도 있고,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여해 이례적인 스케일을 보여줄 수도 있다. 매년 수십 개가 넘는 그룹이 데뷔하는 케이팝 산업에서, 2022년 ADOR와 뉴진스(NewJeans)가 택한 방식은 분명 남다르다. 아직 그룹명이 공개되기 전부터 결성 소식만으로 케이팝 시장과 팬덤을 들뜨게 했던 뉴진스는 그 어떤 잘 가꾸어진 티저 영상이나 이미지 없이 곧바로 「Attention」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그들이 프로모션의 첫 단계, 그리고 장차 발매될 음반의 첫 트랙으로 「Attention」을 배치한 이유는 명확하다. 거대해진 시장 규모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향한 ‘관심’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노랫말은 『New Jeans』에 수록된 다른 어떤 트랙보다도 명확한 목적을 지닌다. 다만, 뉴진스는 현재의 많은 경우와는 달리, 자신의 등장에 과격한 소리나 모습, 혹은 거창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로지 깔끔하게 정제된 사운드와 적절히 눈에 들어오는 안무, 그리고 이를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 내는 멤버들의 퍼포먼스 만으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당차게 밝히는 편을 택한 것이다.
이는 공고한 마니아의 영역이 되어가는 최근 케이팝 산업의 경향과는 큰 차이를 갖는다. 과하지 않은 소리로 구성한 간결한 프로듀싱, 스포티한 의상과 청량한 색감을 담아낸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나는 비주얼 등 「Attention」의 어느 한구석도 지나치거나 복잡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예상치 못한 코드 진행으로 이어지는 후렴구의 멜로디나 곡 전반의 무드를 주조하는 짧게 분절된 챈트, “Attention”이란 단어를 한 글자씩 읊어 나가는 후반부의 가사와 같은 부분에서 뉴진스는 이 트랙으로 쟁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명시한다. 매혹적인 선율로 청자를 유혹하거나 거친 모습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정한 사운드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둔 채, 굳센 의지를 오묘한 멜로디로 풀어나가는 시점에서 이미 그들의 목적은 실현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뉴진스가 「Attention」 이후 만들어낸 엄청난 성과들을 알고 있다면, 작금의 케이팝 씬이 원했던 신인의 등장은 꼭 과격하거나, 거창하거나, 복잡할 필요 없이, 그저 우리에게 ‘주목’하라는 당찬 외침으로 가능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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