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rama」의 노랫말이 가지는 효과는 텍스트 자체로는 상당히 미진한 수준에 있다. 가령 「Savage」 (2021)의 편린을 복원하며 SMCU의 두 시즌 사이 연결고리를 만드는 시도가 그렇다. 트랙의 막바지에서 윈터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You know, I’m savage”라 노래하는 장면은 이 트랙에서 가장 중요해야만 했을 것이었다 ― 이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은 잠시 뒤로 미룬다. 그러나 그 낱말들이 트랙 초반에 비슷한 위상을 가진 채로 한 번 소모되기에, 막상 후반부의 그 전회가 반전처럼 읽히지 않고 또 그렇게까지 놀랍지도 않다.
또한 그간 æspa의 노랫말은 평평한 묘사로 명확한 이미지를 그리며 자신들의 캐릭터와 서사의 원초적인 부분까지 청자에게 직접 각인시키는 강점이 있었다. 허나 「Drama」에서는 전작인 「Spicy」 (2023)와 마찬가지로 낱말 사용에 의미형성보다 음운적 강조를 앞세우며 노랫말 전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론 둘을 비교할 때 전자보단 후자가 더 나은 작사적 기예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 SMCU 시즌1때의 æspa의 노랫말이 다소간 유치하다는 사람들의 혹평도 그 이유에서 나왔다. 하지만 æspa는 탄생부터 블록버스터의 슈퍼히어로와 같은 ‘영웅적임’을 담지한 그룹이다. 그 서사와 폭력의 뒷받침엔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도움이 되었다.
다만 「Drama」는 그 약점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에 강점들이 도드라지며, 그 중에는 앞서 말한 약점을 일부 강점으로 뒤바꾸는 마력도 있다. 영리한 보컬 디렉팅, 트랙 전체에 흩뿌려진 중요한 두 낱말 “Drama”와 “Trauma”를 구분이 힘들게끔 뒤섞는 재주가 그것이다 ― 본래의 발음 유사성도 주요하지만 여기서 보통 “Drama”는 ‘U’ 발음을 가지며, ‘D’와 ‘T’는 강세로 인해 ‘T’처럼 들리기도 ‘CH’처럼 들리기도 한다. 트랙의 제목이 「Drama」기에 초회청의 주안은 “Drama”로 향할 테지만, “Trauma”를 알아채는 순간 노랫말 전체는 일종의 착시마술처럼 기능하게 된다. 그러니까 æspa는 “Drama”를 가져오는가, 부수는가? “Trauma”는? 그리고 두 현상은 두 낱말에 항상 다르게만 적용되는가? 이 때 노랫말이 가진 이미지의 모호함은 달리 집중될 필요를 가진다. 「Drama」의 보컬 디렉팅은 단지 멋들어진 훅 멜로디를 만들었다는 것 이상의 성과를 취한다.
이수만과 유영진이 지분 다툼 끝에 SM Ent.에서 물러난 이후로 æspa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블랙맘바와의 사투를 끝낸 후 그녀들이 현실로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서사적 수준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가령 æspa는 Pop의 작법을 쓰면서도 Pop스럽길 원치 않았던 이전과 달리 보다 Pop에 걸맞은 대중적 소구력을 원했다. 공상과학적인 의상과 메이크업도 제법 현실에 맞게 돌아왔으며, 뮤직비디오의 변화는 더욱 구체적이다. 「Spicy」가 스스로를 치명적(Spicy)이라 칭하면서 뮤직비디오는 정반대의 하이-틴 시리즈와 같이 꾸미는 괴리로 승부했다면, 「Drama」의 뮤직비디오는 초장의 경고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영상 전체가 마치 ‘나폴리탄 괴담’과 같이 읽히고자 한다.
변화를 인지시키되 그것이 너무 급작스러우면 대중적 소구력뿐 아니라 기존 매니아의 지지도 얻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두 트랙의 내외적 변화가 가진 핵심은 팬덤과 그 외 대중 모두가 대상 영속성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전제한 채로 다양한 해석적 도구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Spicy」는 그것을 이전의 æspa 음악과도 큰 위화감이 없는 소리들로 제공했다면, 「Drama」는 그 시도를 노랫말과 뮤직비디오로써 수행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Drama」는 이전까지의 모든 æspa 타이틀 트랙과 비교해도 그 소리의 양태가 가장 이질적인 축에 있다. ‘æspa 음악’하면 흔히들 떠올리던 모습은 (주로 금속제의) 드럼과 베이스가 트랙을 전개하는 주된 원동력으로 삼고 그들을 짓이기거나 덧대거나 하는 식의 변칙으로 국면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에 있었다. 허나 「Drama」에선 드럼은 (마치 보통의 Pop 장르가 그렇듯)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절제되어있으며, 대신 훅의 전자기타 연주(내지는 그를 가장한 전자적 소리)가 트랙에서 훨씬 주요하다. 보통 그녀들이 ‘쇠맛’이라 부르던 금속제 소리도 보조적일 뿐이다. 이제는 æspa가 정말 다른 무대에서 연기함을, 노랫말로 보이기 이전에 소리로써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극Drama이 서사를 배우들이 ‘수행’함으로 성립하듯, 「Drama」 역시 æspa가 주어진 서사보다 자신들의 수행이 앞서있음을 알아채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이 때 첫 문단에서 내가 적었던 “You know, I’m savage” 파트가 어째서 중요성을 가지는지가 설명된다. 「Savage」에서의 그것은 æspa가 이야기 안에서 그만큼이나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적시하지만 여기서는 그 사용이 보다 복합적이다. 그것은 상술한 “Drama”와 “Trauma”를 혼동시키는 기예가 가져온 서사적 불안을 해소하는 장치이며, 동시에 그를 통해 배우들æspa의 실체를 대본 밖에서도 지문처럼 읽히게 하여 청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안팎과 시말을 분간하기 어렵게 하는 메소드적 절충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 트랙의 시작이 “I’m the drama”(내가 극(자체)이다)인 것처럼.
SM의 지분 분쟁은 올해 K-Pop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며, 분쟁 종결 이후 æspa의 변화가 그를 입증했다. 이수만과 유영진의 흔적이 파묻혔다고 해도, 그것들은 그저 콘크리트 쳐진 것이 아니라 타임캡슐과 같이 청자로 하여금 그것을 발굴해야 할 의무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æspa의 선택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의 측면에서 「Spicy」보다 「Drama」가 훨씬 적합하고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æspa는 그녀들이 K-Pop에 속하기에 목도하게 된 중대한 선택의 기로를 실로 K-Pop스럽게 타개했다 할 수 있겠다. 「Drama」는 만듦새가 좋지만 K-Pop으로서 ‘장르적으로도’ 훌륭한 트랙이고, 우리는 그를 설명할 때 단지 그 작품 내적인 만듦새가 좋다는 것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트랙의 중요성은 희석되고 장르는 점점 무인도처럼 될 것이다. 음악이 이제는 단지 그 이름대로 ‘들리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 이미 다른 기성 장르들에도 그러한 서명이 새겨지기 시작한지는 오래다. 점점 다양한 비평적/설명적 도구가 필요해지고 있다. 그 서명의 선구자처럼 되고 있는 K-Pop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2 comments
[…] 해결하는 돌파구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이어 「Drama」는 aespa의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엮어가며 스스로 나아갈 미래를 예고했다. 타임라인 속 예기치 못한 균열이 일어나는 동안, 우리가 사는 이 […]
[…] 경영권 분쟁 직후 발매한 「Spicy」 (2023)가 아닌,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더욱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내보인 「Drama」 (2023) 때의 일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