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ÜRL, 『Silver Haze』

by 김로자
   

영화 감독 Jim Jarmusch는 대중음악과 이를 둘러싼 서브컬처들의 힙스터적 향유자로서, 본인의 필모그라피 속에 취향을 적극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The White Stripes와 Wu-Tang Clan의 멤버들을 비롯한 다양한 뮤지션들이 Jarmusch의 영화 속에 등장했다. 그 중 Tom Waits와 Iggy Pop은 『커피와 담배』(2003, dir. Jim Jarmusch)에서 『데드 돈 다이』(2019, dir. Jim Jarmusch)에 이르는 Jim Jarmusch의 역사를 함께 했다. Jim Jarmusch는 Iggy Pop이 활동했던 펑크 밴드 the Stooges의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2016, dir. Jim Jarmusch)를 작업하며, 캘리포니아에서 불어온 히피즘의 광풍과 뉴 욕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트 펑크 운동이 the Stooges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지리적 교차점 미시건에서 어떻게 부딪히고 저항적 하위문화로 폭발했는지를 조망하기도 했었다. 

대중음악 – 특히 컬트적 록 음악에 대한 Jarmusch의 관심은, 이를 필름 속에 담아내는 것을 넘어, 밴드를 결성하고 록 음악을 직접 만들어 내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동료 영화 프로듀서 Carter Logan 그리고 사운드 엔지니어 Shane Stoneback과 함께 아방가르드 밴드 SQÜRL을 결성했고, 『리미츠 오브 컨트롤』(2009, dir. Jim Jarmusch)과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dir. Jim Jarmusch) 그리고 『패터슨』(2016, dir. Jim Jarmusch)등의 사운드트랙을 SQÜRL의 명의로 제작했다. 

하지만 영화 음악이 아닌 SQÜRL 본인들만의 음악이 발매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SQÜRL은 Jim Jarmusch와 Carter Logan의 듀오로 재편됐고, 그들의 정규 데뷔 앨범 『Silver Haze』는 지난 5월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Silver Haze』는 시네마라는 매체와 하등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네마’적이다. 피치포크 필진 Brian Howe는 수록곡 「She Don’t Wanna Talk About It」 속에 등장하는 진술적 나레이션을 예로 들며 이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Jim Jarmusch의 필모그라피에 익숙한 이들이 무심코 듣기에, 앨범은 꽤나 당혹스러운 사운드를 담고 있다. Jim Jarmusch의 밴드 음악이 아니라 David Lynch의 사운드트랙이라고 했을 때 차라리 수긍이 갈 법한, 미니멀하고, 메마르고, 사악한 기류가 앨범을 시종일관 장악하고 있다.

이는 2인조가 된 SQÜRL이 지향하는 바와 크게 연관이 있다. 그들은 최소한의 방법들을 경유해 노이즈와 드론 사운드를 얻어내려는 집념으로 『Silver Haze』를 작업했다. Carter Logan은 둔탁하게 톤을 잡은 베이스와 스네어 드럼으로 단순한 8-비트 연주를 반복하고, 이따금씩 난데없이 스트링 드론 사운드를 경합시킨다. Jim Jarmusch는 그 위에서 무겁고 먹먹한 디스토션이 압도하는 기타 리프들을 늘어지듯 흘러가게 둔다. 사이를 스쳐가며 부유하는 신경증적 기타 텍스처들은 소름 끼친다. 이것들을 조율해 낸 프로듀서가 Randall Dunn이라는 것에도 시사점이 있다. 그는 다크 앰비언트를 토대로 둔 드론 메탈의 선구자적 밴드 Sunn O))), 마찬가지로 포스트-록과 드론 메탈의 방법론을 통해 여러 실험을 벌인 밴드 Earth, 그리고 재패노이즈 씬과 얽히고설킨 밴드 Boris의 사운드를 책임진 바 있다. 그리고 SQÜRL은 이 밴드들을 창작의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Randall Dunn과 SQÜRL이 내놓은 사운드는 Randall Dunn이 앞서 협업했던 밴드들의 경향성을 이어가며, 인상적인 장르적 위력을 드러낸다. 포스트-록의 무너진 구조 위에서, 끝을 두지 않고 이어지는 드론 소음과 데자뷰적 인상으로 서늘하게 맴도는 슬러지 – 둠 메탈의 장르적 분위기가 뒤섞이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되어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ilver Haze』는 분명 포스트-록의 작법에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블랙 메탈이 가진 ‘로-파이 헤비니스’의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이는 앨범의 오프닝 트랙 「Berlin ‘87」과 이것의 뮤직 비디오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천천히 울부짖는 기타 리프들이 정처 없이 흘러가는 가운데, 뮤직 비디오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8mm 필름으로 담아낸 유럽의 도시 풍경들을 늘어놓는다. 장면들은 맥락 없이 뿌옇게 흔들린다. 한편 뒤이어 터져 나오는 트랙 「the End of the World」는 이름처럼 묵시록적이다. 여기에서 Jim Jarmusch는 일흔이 다가오는 노인이 피난처 바깥 콘크리트 광장에서 우울한 음악에 맞춰 춤추는 10대들을 지켜본다는 내용의 짤막한 포스트-아포칼립스 단편을 낭독한다.

기타리스트 Marc Ribot이 참여한 두 연주곡 「Garden of Glass Flowers」와 「Il Deserto Rosso」도 인상 깊다. 이 트랙들 속에서는 앨범 전반을 장악한 숨막히는 기류 위에서 공명하는, 짙은 잔향의 앰비언트 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특히 「Il Deserto Rosso」는 ‘붉은 사막’이라는 이름처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황야를 무대로 한 옛 서부극의 시퀀스를 연상케 한다.

『Silver Haze』는 세상의 끝에 내몰린 듯한 감정을 건조하게, 다만 끊임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그 속에 팝적 감각을 간직한 트랙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놀랍다. Nick Cave & the Bad Seeds 풍의 다크 카바레 발라드를 드론 메탈의 텍스처로 다시 풀어낸 듯한 「Queen Elizabeth」, 그리고 젊은 아방가르드 싱어송라이터 Anika가 보컬로 참여한 「She Don’t Wanna Talk About It」이 그것이다. 이 곡에서, 술에 취한 듯한 바리톤 보컬의 Jim Jarmusch와 Anika는 대화 같은 노래를 주고 받는다. Nick Cave와 PJ Harvey, 혹은 Kylie Minogue의 듀엣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레이션을 시네마적으로, 특히 Jean-Luc Godard를 연상케 하는 누벨 바그 영화처럼 풀어내는 방법론은 「John Ashbury Takes a Walk」에서도 빛을 발한다. 여기에서는 ‘대배우’ Charlotte Gainsbourg가 등장해, John Ashbury의 시를 작게 읊조린다. 『Silver Haze』는 이러한 방법들을 경유해 흐릿한 장면들을 연상시키고자 한다. 타이틀 트랙이자 클로징 트랙인 「Silver Haze」에 이르면, 내내 감각의 근저에 머물던 드론 소음들을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내고, 차곡차곡 쌓고, 커다란 소리의 벽을 쌓아 터트린다.

포스트-록의 대중음악 형식을 무너트리는 문법이 마니아들의 대안으로 등장해 지위를 다져가기 시작한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간다. 근래에는 ‘소음의 무기력한 폭압’을 위시로 한 스토너, 둠 하위 장르의 영역이 메탈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 실험적 대중음악을 즐기는 청자들 전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퓨네럴-둠 메탈 밴드 Dream Unending이 작년 발매한 앨범  『Song of Salvation』이, 메탈 팬덤을 넘어 평단의 호평을 끌어낸 사건을 단적인 예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SQÜRL은 이러한 시류에 도전장을 단단히 내밀었다. 그들의 첫 결과물 『Silver Haze』는 영화인들의 취미생활이라는 단순한 촌평에 그치지 않을, 올해를 통틀어 가장 과감하고 대범한 음악적 시도를 담고 있다.

   
   

※ 트위터 개인 계정에 이 앨범의 발매 사실을 공유했을 때 반응이 뜨거웠는데, 그 중에는 “이 밴드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가”라는 의문도 상당수 있었다. 움라우트를 살려 원칙대로 발음한다면 “스쾰”에 가깝겠지만, Jim Jarmusch는 인터뷰에서 밴드 이름을 “스퀄”이라고 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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