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bather』 이후 10년과 그 이전, 포스트-메탈의 흐름을 톺아보다

by 김로자
2019년,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된 뒤 빌보드와 인터뷰를 갖는 Deafheaven. Ⓒ Shane Gardner.
 
  1. 2013년, 『Sunbather』라는 현상

지난 6월 11일은 미국 출신의 블랙 메탈 밴드 Deafheaven의 기념비적인 2집 앨범 『Sunbather』(2013)가 발매 1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Sunbather』가 블랙 메탈 향유자들과 소위 ‘힙스터’ 음악 향유자를 아우르며 씬에 선사한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스크리밍을 위주로 괴성을 내지르는 브루털 보컬의 활용에서, 높은 bpm으로 쓰인 곡을 쪼개진 노트(음표)들로 채워가며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달려가는 블래스트비트 드럼, 그리고 그 위에서 빠른 속도로 육중하게 질주하는 리프 구성은, 블랙 메탈과 데스 메탈을 포괄하는 익스트림 메탈 씬, 그리고 펑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하드코어 씬의 청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2013년의 『Sunbather』는, 그 모든 클리셰들을 담고 있었음에도 남달랐다. 『Sunbather』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바이닐 위에 내려놓으면, 서서히 흘러나오는 첫 번째 트랙 「Dream House」의 인트로 기타 리프부터 그러했다. 리버브에 힘을 줘 공간감을 부여하는 데에 공을 들인 몽글몽글한 톤의 기타를 별안간 마구 긁어 대고, 이를 오버더빙해서 겹겹이 쌓아 소리의 벽을 쌓으려는 듯 하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블래스트비트와 함께 터트리기 시작한다. 보컬리스트 George Clarke는 여느 블랙 메탈 트랙들에서 들을 수 있는 사악한 절규를 목을 긁으며 토해내지만, 그의 노랫말은 “꿈에 그리던 맨해튼의 멋진 집”, 이제는 아련해 진 일상 속 풍경들, 유년기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로맨스를 가리킨다. 『Sunbather』는 슈게이즈가 갖고 있는 파스텔 톤의 몽환과 서정, 그리고 블랙 메탈의 광기 사이에 서 있다. 두 가지의 동떨어진 듯한 장르적 성격을 매개해주는 것은 ‘로-파이’ 기타 톤이라는 공통분모였다. 부유하는 잔향들과 폭압적 멜랑콜리는 포스트-록의 대곡 지향적 구조 위에서 장엄히 펼쳐져 갔다.

 
Deafheaven, 「Dream House」 live at Pitchfork Music Festival 2014.
 

기타리스트 Kerry McCoy와 보컬리스트 George Clarke의 주도로 결성된 Deafheaven은 데뷔 앨범 『Roads to Judah』(2011) 에서 비슷한 기조의 음악을 과도기적 형태로 시도해본 바 있었지만 언더그라운드 바깥에서의 반향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Roads to Judah』에서 Deafheaven은 DSBM(depressive-sucidal black metal) 혹은 Mogwai와 같은 연주곡 중심 포스트-록 밴드들이 선보이는 흑색의 침울함을 연출하는 데 천착했었고, 이러한 정서적 지점은 블랙 메탈의 전형성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파스텔 톤 분위기가 정립된 『Sunbather』는 ‘게임 체인저’나 다름 없었다. 앨범은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 130위로 입성했고, 그 해 메타크리틱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앨범이 되었다. 이 새로운 ‘현상’을 가리키고자, 평론가들은 ‘포스트-블랙 메탈’, 혹은 블랙 메탈과 슈게이즈의 합성어로 ‘블랙게이즈’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Sunbather』 이후 10년 동안, 이 새로운 하위 장르의 파이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점점 성장해 왔다.

 
Deafheaven, 「Sunbather」 – live at 285 Kent in Brooklyn, NY, 2014.
 
  1. 『Sunbather』 이전: 메탈 음악에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붙이기
 

하지만 『Sunbather』가 척박한 토양의 황무지 위에 난데 없이 피어난 꽃은 아니었다. Deafheaven 본인들의 전작 『Roads to Judah』에서부터 짙은 잔향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게 두는 기타 톤이 블랙 메탈이라는 토대 위에서 실험되고 있었고, Deafheaven 이전에는 이들의 동료로 『Sunbather』의 제작에도 참여한 프랑스의 Neige가 있었다. 그는 10대 시절 시작한 프로젝트 Alcest를 통해, 유리알처럼 청명한 기타 톤과 발라드적 서정성을 블랙 메탈에 접합시키는 실험을 2000년대 중반부터 시도하고 있었다. Neige가 스무 살에 Alcest의 이름으로 내놓은 첫 EP 『Le secret』(2005), 그리고 정규 1집 『Souvenirs d’un autre monde』(2007)에서 ‘블랙게이즈’의 동화적 세계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보면, ‘메탈 씬의 Radiohead’라 불리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 Deftones가 메탈 음악에 슈게이즈의 몽환을 접합하려는 실험을 선보이고 있었다. My Bloody Valentine의 Kevin Shields가 트레몰로 암을 통해 연출하는 것처럼 일렁이는 기타 톤을 메탈 기타에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는 Deftones의 2집 앨범 『Around the Fur』(1997)의 싱글 「Be Quiet and Drive (Far Away)」에 적용된 바 있었다. 그리고 메탈 앨범이 아니라 슈게이즈 앨범이라는 밈(meme)까지 존재하는 후속작 『White Pony』(2000)는, 슈게이즈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록과 메탈을 어떻게 접합해야 하는지에 관한 청사진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Deftones는 블랙 메탈로부터 출발한 밴드가 아니었지만, 이들의 성과가 이후 블랙 메탈에 슈게이즈, 포스트-록의 실험법을 도입하려는 밴드들에게 나침반이 되어 주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편 ‘블랙 메탈을 이탈하려는 블랙 메탈 음악’이 아니라 ‘메탈 음악을 이탈하려는 메탈 음악’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시도되고 있었다. 요컨대 ‘포스트-블랙 메탈’이 세상의 빛을 처음으로 본 것은 2005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포스트-블랙 메탈’이나 ‘블랙게이즈’와 같은 하위 장르들을 포괄하는 범주, 즉 ‘포스트-메탈’에 관한 구상과 고민은 20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장르음악의 이름에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사례들이 여럿 존재한다. 70년대 말에는 런던 펑크의 불꽃 같은 유행과 거의 동시에 ‘포스트-펑크’라는 대안적 흐름이 등장한 바 있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포스트-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장르음악의 공간, 문법, 내용이 스스로 운동하다가, 언젠가는 자기를 지양(Aufhebung)하며 전진하는 일련의 변증법적 흐름들에 우리는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붙여 온 것 같다. 포스트-펑크는 뉴욕의 아트 펑크 운동이 런던으로 건너오며 강조되게 된 아마추어리즘 그리고 정동적 공격성에 구애받지 않고도 펑크 음악의 토대인 ‘3-코드주의’적 단순성 위에서 다른 장르음악들의 실험법과 호흡했다. 포스트-펑크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밴드들의 세부적인 면면은 다채로웠지만 위에서 언급한 경향은 비교적 명확한 전제였다. 늦깎이 데뷔를 한 Television과 Siouxsie & the Banshees부터, Gang of Four, Joy Division 그리고 Talking Heads에 이르는 밴드들까지 포스트-펑크 밴드라 호명되었다.

‘포스트-록’이 개념화된 과정은 보다 추상적이었다. 반 세기 넘게 대중음악시장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록 음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록 음악이 사용하는 악기들을 바탕으로 두되, 록 음악의 작곡적 구조를 이루는 리프, 보컬, 코드를 활용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많은 밴드들이 ‘포스트-록’ 밴드로 호명되었다. 재즈적 어프로치를 시도한 Tortoise, 장황하게 흘러가는 연주를 선보이는 Godspeed You! Black Emperor나 Mogwai, 앰비언트적 연출에 집중한 Sigur Rós, 미니멀한 공간 위에 소음의 잔향들을 늘어트리는 Swans는 모두 포스트-록 밴드지만 이들의 내용은 모두 상이하다. ‘형식성에 구애받지 않는 형식’이 된 장르음악이라면, 실험의 경로가 상이하더라도 ‘포스트-장르음악’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것이다.

‘포스트-메탈’이라는 조어 역시도 포스트-록과 비슷하거나 조금 늦은 시기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무엇을 ‘포스트-메탈’이라 명명할 것인지는 모호했다. 포스트-록과 비슷하게, 메탈 음악이 사용하는 시끄러운 디스토션을 바탕으로 두되, 록에서 기원한 메탈의 작곡상 구조, 즉 위에서도 언급한 리프, 보컬, 코드 활용에서 자유로워진 모든 메탈 음악들을 포스트-메탈이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자유’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는 어려운 문제였다. 지금은 드문 분류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특이한 타임 시그니처(박자표) 위에서 리프를 변칙적으로 배치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Tool을 포스트-메탈 밴드라 명명하는 경향도 있었다. Tool이 기존 메탈 씬에서 듣기 힘들었던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에 포스트-메탈이라는 범주로 호명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구조의 미학’에 집착하고 이를 복잡화하는 데에 천착하는 것과 ‘구조’를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풀어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실험법이다. 이러한 지점 때문에 Tool을 포스트-메탈 밴드라고 부르는 일은 오늘날 거의 없는 듯하지만, 당시 평단과 청자들 모두 ‘포스트-메탈’이라는 용어를 두고 혼란에 빠졌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포스트-메탈’이라는 장르를 명확히 정립하려는 시도들이 점차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스토너 록과 슬러지 메탈의 범주에서 갈라져 나온 밴드들이었다. 이들은 본래 메탈 음악에서 기타 톤을 잡을 때 익숙한 방식이었던, Pantera의 기타리스트 Dimebag Darrell과 Metallica로 대표되는 ‘V자 이퀄라이징’을 폐기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스토너와 슬러지 밴드들은 중음역대의 음향을 제거하고 저음역대와 고음역대의 음향을 강조해 날카로운 기타 톤을 연출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중저음역을 극단적으로 키워 먹먹한 기타 소리를 얻어내고 이를 느리게 흘려 보내며 환각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몇몇 밴드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포스트-록처럼 리프 중심의 구조 자체를 소거하고 장황한 연주를 이어가는 지점에까지 이르렀고, 이러한 방법론을 밀어붙이던 Neurosis가 『Through Silver in Blood』(1996)을 발매했을 때 평단과 청중은 포스트-메탈의 상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뚜렷이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포스트-메탈’은, 기존 메탈 음악의 ‘톤’과 ‘구조’에 구애 받지 않는 음악으로 인식되었다. Aaron Turner라는 인물은 Hydra Head라는 포스트-메탈 레이블을 설립하고, 곧이어 본인이 결성한 밴드 ISIS를 통해 『Oceanic』(2002)과 같은 교과서적 명반들을 내놓으며 스토너와 슬러지 사운드 중심의 포스트-메탈 씬을 정립해 갔다.

하지만 모든 포스트-메탈이 스토너와 슬러지에 기반한 실험으로 환원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Swans와 유사하게 음표 단위로 분절되지 않는 소리들을 늘어놓으며 공감각적 공간을 연출하거나, 노이즈를 곡의 주도적 요소로 설정하는 드론 음악을 메탈과 접합하려는 밴드들이 포스트-메탈 씬의 한 축을 차지했다. 여기에서는 밴드 Sunn O)))와 Earth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The Dillinger Escape Plan이나 Converge 혹은 Cave In처럼 하드코어 펑크나 메탈코어 씬에서 넘어온 밴드들은, 하드코어의 과격성을 간직하되 이것들이 가진 단순성을 폐기하고 매스 록과 같은 복잡성에 천착하는 장르의 실험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포스트-메탈과의 접점을 마련했다. 일본의 Boris는 스토너와 슬러지부터 슈게이즈, 그리고 드론과 재패노이즈(일본의 과격한 노이즈 음악)까지 넘나드는 방대한 디스코그라피 속에서 한 가지로 수렴되지 않는 포스트-메탈의 다양한 실험법들을 제시했다. 한 편, 톤 메이킹에서의 전위적인 실험에 있어 한 가지 경로로 매몰되기보다는, 포스트-록의 장황한 인스트루멘틀을 메탈의 범주 안에서 재현하는 것 자체에 더욱 의미를 두었던 Russian Circles 같은 밴드들도 있었다. Russian Circles 같은 경향을 고려하며 포스트-메탈을 범주화한다면, Godspeed You! Black Emperor의 「Mladic」이나 Mogwai의 「Like Herod」같은 ‘헤비한’ 포스트-록 트랙들도 포스트-메탈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메탈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한 가지의 음악을 가리키지는 않는 모호성은 20년 가까이 장르의 정체성처럼 굳어져 왔다. 한 편 포스트-메탈의 범주에 해당되는 음악들은 전위성과 과격성이라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메인스트림이나 여러 장르음악을 소비하는 리스너들의 간택을 받지 못한 채 메탈 컬트의 언저리를 맴돌아야만 했다. 그러던 와중 발매된 『Sunbather』는, 장르의 지형과 위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Russian Circles, live in Audiotree.
 
  1. 『Sunbather』 이후: 포스트-메탈의 현재
 

『Sunbather』는 메탈의 여러 하위 장르들 중에서도 블랙 메탈을 간택하고 이를 물구나무 세우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선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The Mantle』(2002)같은 앨범들에서 북유럽 민속 음악과 블랙 메탈을 경유했던 Agalloch, Neige의 밴드였던 Alcest나 Amesoeurs, 혹은 Altar of Plagues 등이 이미 블랙 메탈의 정형성을 깨부수고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Alcest, live at Wacken Open Air 2016.
 

하지만 Deafheaven은 『Sunbather』에서 선배들보다도 더욱 과격한 방식으로 블랙 메탈의 사악한 기류를 소거해버렸다. 빈 자리를 메꾼 것은 2010년대 인디 리스너들과 평단으로부터 ‘페티시즘’적인 찬사를 받은 슈게이즈, 드림 팝의 애수적 분위기였다. Deafheaven은 이를 통해 익스트림 메탈 씬을 넘어서고 대중음악시장 전반에 대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Sunbather』가 메탈을 듣지 않는 리스너들에게도 팔리는 현상은, 포스트-메탈 씬 속의 많은 밴드들이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Deafheaven의 방법론을 모방해야만 하는 상황을 강요하기도 했다. Deafheaven과 유사한 포스트-블랙 메탈 밴드, 혹은 블랙게이즈 밴드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어느 시점부터는 포스트-블랙 메탈이 포스트-메탈을 과대대표하는 일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씬의 구성원들이 Deafheaven을 의식하는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DSBM의 장르적 바운더리 속에서 출발했던 밴드 Ghost Bath가, 앨범 『Moonlover』(2016)에 「Dream House」가 가진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듯 제목을 베껴 온 트랙 「Happyhouse」를 삽입했다가 Deafheaven 멤버들의 빈축을 샀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Sunbather』의 영향 아래에 있으면서도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으려는 여러 시도들이 존재했고, 2010년대 말까지는 빼어난 결과물들이 여럿 나왔다. 위에서 언급한 『Moonlover』도 앨범 내적으로만 보면 훌륭한 만듦새를 가지고 있었다. Deafheaven의 성공에 덩달아 재조명을 받은 Alcest도 계속해서 수작들을 내놓았다. 벨기에 출신으로 Deafheaven과 같은 레이블 Deathwish에 몸 담았던 밴드 Oathbreaker는, 『Sunbather』의 프로듀서 Jack Shirley의 손을 거친 3집 앨범 『Rheia』(2016)를 내놓으며, 처절함 속에서 피어나는 비장미로 청자들을 압도했다. 아프리카계 스위스 블랙 메탈 뮤지션 Manuel Gagneux가 인종과 디아스포라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시작한 포스트-블랙 메탈 프로젝트 Zeal & Ardor는, 『Devil Is Fine』(2017)과 『Stranger Fruit』(2018)에서 아프리카 민속 음악과 영가, 스피리추얼의 창법 그리고 형식을 블랙 메탈에 이식하는 시도를 멋지게 성공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슈게이즈에 대한 ‘페티시즘’적 소구력으로부터 지위를 확보한 하위 장르는, 결국 스스로의 영향력이 휘발되는 시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Sunbather』의 뒤를 이어 『New Bermuda』(2015)와 『Ordinary Corrupt Human Love』(2018)에 이르기까지 압도적 긴장감과 완성도 높은 공간감을 경합시키는 양질의 블랙게이즈 앨범들을 내놓던 Deafheaven은, 5집 앨범 『Infinite Granite』(2021)에서 메탈의 요소들을 완전히 폐기하는 선택을 했다. 메탈이 빠진 Deafheaven의 음악은, 프로덕션의 퀄리티만 제외하면 밴드캠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산형 슈게이즈 앨범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되어버렸다. Alcest는 『Spiritual Instinct』(2019) 이후로 신보 소식이 없고, Zeal & Ardor의 근래 음악은 1집과 2집의 진부한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기대주’였던 Oathbreaker의 경우, 『Rheia』 발매 이후 몇 년째 기약 없는 휴식기를 갖고 있다.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Sunbather』의 영향 아래에 놓인 블랙게이즈와 포스트-블랙 메탈 씬은 침체기에 빠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unbather』가 10년 전 선사했던 충격, 그리고 이것이 남긴 유산들을 우리는 쉽사리 평가 절하할 수 없다. 같은 해 Kanye West가 내놓았던 『Yeezus』가 Lou Reed의 소감처럼 온갖 장르음악의 문법들 그리고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는 소음들과 호흡하며 힙합 음악의 미래를 조망하는 역할을 했었다면, 메탈 씬에서는 『Sunbather』가 마찬가지의 역할을 했다. 그것 만으로 이 앨범은 청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자격이 있다. 포스트-메탈의 영원한 분기점이 된 『Sunbather』로부터, 장르음악의 과거와 미래를 그려가는 여정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아래는 필자가 추천하는, 포스트-메탈과 연관 장르들의 음반들이다.

 
  • 포스트-메탈과 접점이 있는, 스토너와 슬러지 음반들

Melvins, 『Houdini』 (1993)

Kyuss, 『Welcome to Sky Valley』 (1994)

Fu Manchu, 『the Action Is Go』 (1997)

Mastodon, 『Leviathan』 (2003)

Baroness, 『Gold & Grey』 (2019)

  • 포스트-메탈과 접점이 있는 기타 메탈/포스트-록/노이즈 음반들

Slint, 『Spiderland』 (1991)

Merzbow, 『Pulse Demon』 (1996)

Swans, 『Soundtrack for the Blind』 (1996)

Mogwai, 『Young Team』 (1997)

Deftones, 『Around the Fur』 (1997)

Don Caballero, 『What Burns Never Returns』 (1998)

Deftones, 『White Pony』 (2000)

Tool, 『Lateralus』 (2001)

Lightning Bolt, 『Wonderful Rainbow』 (2003)

Godspeed You! Black Emperor, 『Allelujah! Don’t Bend, Ascend!』 (2012)

  • 스토너, 슬러지에 영향 받은 포스트-메탈 음반들

Neurosis, 『Through Silver in Blood』 (1996)

Neurosis, 『Times of Grace』 (1999)

ISIS, 『Celestial』 (2001)

ISIS, 『Oceanic』 (2002)

Boris, 『Heavy Rocks』 (2002)

Boris, 『Akuma no Uta』 (2003)

Cult of Luna, 『Salvation』 (2004)

Boris, 『Pink』 (2005)

Cult of Luna, 『Somewhere Along the Highway』 (2006)

Pallbearer, 『Foundations of Burden』 (2014)

Chelsea Wolfe, 『Hiss Spun』 (2017)

Cave In, 『Heavy Pendulum』 (2022)

  • 드론에 영향 받은 포스트-메탈 음반들

Earth, 『Earth 2: Special Low Frequency Version』 (1993)

Boris, 『Absolutego』 (1996)

Sunn O))), 『the Grimmrobe Demos』 (1999)

Sunn O))), 『Flight of the Behemoth』 (2002)

Boris, 『Boris at Last -Feedbacker-』 (2003)

Boris, 『Fade』 (2022)

  • 하드코어 씬에 기반을 둔 포스트-메탈 음반들

The Dillinger Escape Plan, 『Calculating Infinity』 (1999)

Cave In, 『Jupiter』 (2000)

Converge, 『Jane Doe』 (2001)

Converge, 『All We Love We Leave Behind』 (2012)

  • 기타 주요 포스트-메탈 음반들

Agalloch, 『the Mantle』 (2002)

Wolves in the Throne Room, 『Two Hunters』 (2007)

Russian Circles, 『Geneva』 (2009)

Liturgy, 『Aesthethica』 (2011)

Russian Circles, 『Memorial』 (2013)

Sannhet, 『Revisionist』 (2015)

Russian Circles, 『Gnosis』 (2022)

  • 포스트-블랙 메탈/블랙게이즈 음반들

Alcest, 『Le secret』 (2005)

Alcest, 『Souvenirs d’un autre monde』 (2007)

Amesoeurs, 『Amesoeurs』 (2009)

Alcest, 『Écailles de Lune』 (2010)

Deafheaven, 『Roads to Judah』 (2011)

Deafheaven & Bosse-de-Nage, 『Split』 (2012)

Altar of Plagues, 『Teethed Glory & Injury』 (2013)

Deafheaven, 『Sunbather』 (2013)

Deafheaven, 『New Bermuda』 (2015)

Oathbreaker, 『Rheia』 (2016)

Alcest, 『Kodama』 (2016)

Ghost Bath, 『Moonlover』 (2016)

Zeal & Ardor, 『Devil Is Fine』 (2017)

Zeal & Ardor, 『Stranger Fruit』 (2018)

MØL, 『Jord』 (2018)

Deafheaven, 『Ordinary Corrupt Human Love』 (2018)

Unreqvited, 『Mosaic I: L’amour Et L’ardeur』 (2018)

Violet Cold, 『Noir Kid』 (2020)

Violet Cold, 『Empire of Love』 (2021)

King Woman, 『Celestial Blues』 (2022)

미역수염, 『Bombora』 (2022)

Sadness & abriction, 『Sadness // Abriction』 (2023)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