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살, 『1Q87』

by coloringCYAN
   

『작은 것들의 신』의 「팔지 않아」에서 “팔지 않아, 내 영혼은 절대 싸구려로 팔지 않아”라고 부르짖었던 넉살은 ― 싸구려로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방송-미디어 출연을 기준으로 진짜와 가짜를 나누던 『양화』시절의 논의를 바탕으로 보면 ― ‘영혼을 팔았고’, 유명세를 얻어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할 정도의 인지도를 얻고, 그를 바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기도 하였다. 넉살 본인도 근 몇 년 간 일어난 그러한 자신의 변화를 잘 인지하고 있다. 본작, 『1Q87』의 문을 여는 트랙 「BAD TRIP」에서 그는 “스무 살에 난 고개 안 숙여 고기값은 없어도, 서른셋에 난 왼손에 돼지 몇 백 마리를 감고 멋진 척을 한다고”라고 말한다. 본작의 흐름은 그러한 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넉살의 의문은 간단했다. 그렇게 변해버린 넉살의 입지와, 한국힙합에서의 그의 위치, 환상만 같던 것들을 손에 쥐고 나니 그것들이 정말로 자신의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버린 것이다. 2020년, 1987년에 태어난 넉살이 꼭 서른세 살이 되는 해. ‘1Q87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넉살은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그는 그렇게 제목을 정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좋든 싫든 그는 지금 이 ‘1Q87년’에 몸을 두고 있다. 그가 비롯된 1987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7년이다. 공기가 바뀌고 풍경이 변했다. 그는 이 물음표 딸린 세계의 존재양식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성공 이후 자신의 모습들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의심한다면, 그것은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추론하는 것과 같다. 만일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야말로 예속된 노예의 모습일 것이다. 「AM I A SLAVE」의 의문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성공 이후 물질적인 성공을 이루었지만, 정작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요원해져만 간다. “금으로 된 도시로 가는 말안장을 얹어, 하지만 난 타고 있지 않아 과연 누구”라고 넉살이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넉살은 어떠한가? 과연 그러한 물질적인 것들에 침잠해 자신의 존재를 점점 잃어가는가? 그런 의미에서 “떠나고 싶어 온 곳, 자유의 땅, 금으로 된 성에서 마음은 목화를 따”라는 노랫말은 정말로 위험한 칼날과 같은 노랫말이다. ‘자유의 땅’과 ‘목화를 따’라는 두 어절로 우리의 앞에 과거 미국의 흑인 노예제를 순식간에 소환해내고, 그 흑인 노예들을 넉살은 자신의 현재와 동일시한다. 임팩트는 엄청나다. 넉살은 흑인의 역사성과 당사자성을 짓밟으면서 그를 자신의 모습으로 덧칠했다. 그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서 확 와 닿는 라인이면서도, 앨범으로의 몰입을 박살내는 라인이기도 하다. 넉살이 그려낸 가상을 따라가다가도,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현실로 돌아올 때 우리는 그야말로 본작과 현실에 반쯤 다리를 걸치고 있는 꼴이 된다. 그가 자신의 라인이 어떠한 충격을 줄지 알고 있었으리라는 관대한 해석 아래,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본작에서의 넉살의 위치를 우리가 직접 체험하게 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AM I A SLAVE」에서 물질에 종속되는 자신에 대해 성찰했음에도, 그 뒤에 ‘돈’을 노래하는 트랙 「WON」이 따라붙는 것은 또한 넉살의 아이러니를 부각시키는 배치일 것이다. 물질적인 것들에 종속되어 “세상의 포로, 세상에 홀로”라고 말했던 넉살이 바로 다음 트랙에서 “내 통장엔 동그라미 너무 많아 like UFO, 돈을 종이 쪼가리로 보는 삶 득도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변화가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돈을 종이 쪼가리로 보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변화이다. 그의 동료 ODEE, 우원재와 함께, 그는 직전(「AM I A SLAVE」)까지의 고민은 다 날려버린 듯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돈들을 누린다. 마치 그러한 고민들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1Q87년’에 몸을 두고 있고, 그의 고민은 그의 변화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고 앞서 서술한 바 있다. 그러한 점에서 「AM I A SLAVE」로부터 「WON」으로의 변화는 충분히 특기할만한 지점일 것이다.

다음 트랙 「AKIRA」도 그렇다. 제3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디스토피아를 담은 만화 <AKIRA>를 모티브로 삼은 본 트랙에서의 넉살은 자신을 “도심 속의 monster”, “인간 청소부”라 칭하며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몇 개의 시로 나는 이제 부르주아, 이젠 시집을 태워버릴 불을 줘”라고 말한다. 그에게 「WON」에서의 부를 안겨준 자신의 시집까지 불사르며 그는 자신의 난폭함을 뽐낸다(“나의 마음 피 흘렸네 이제 너에게 갚아줄게 지금”). 하지만 그러면서도 “난 어디에 기대어 쉴 수 있을까, 누가 나의 피를 씻어내 줄까”라고 말하며 그러한 난폭함을 멈추기를 바라기도 한다. 반전은 개코가 맡은 훅에서부터 비롯된다. 가령 “매일 심각한 일이 터지는 것 같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들 미쳐가는 것 같아도 그저 변화의 진통일거야”라는 상반된 두 라인은 정지와 변화 사이의 이행과도 같다. 결국 「AKIRA」에서 드러난 넉살의 심리마저도 그의 변화에 대한 적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Interlude인 「Crack Kidz (Interlude)」가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기점이 된다고 하면, 전반부는 이렇듯 넉살의 변화와 그에 대한 고민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하나의 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본작의 후반부에는 비유를 한 층 덜어낸 넉살의 직접적인 삶들이 등장한다. 다만 후반부의 첫 트랙이라고 할 수 있을 「Dance Class」는 조금 특별한 위치에 있는데, 자신의 출중한 실력을 바탕으로 Swag를 부리며 “87년도에 태어난 연희동 god’s son”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전반부의 넉살의 고뇌를 일축하며 1Q87에서 탈출해 1987의 넉살로 나아가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우리가 아는 넉살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연희동 badass untill I die”라 말하며 자신이 죽기 전까지 ‘연희동의 나쁜 놈’이라 선언하는 「연희동 BADASS」는 연희동이라는 지역을 바탕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트랙이며, 다음 트랙 「브라더」는 현재의 성공을 같은 레이블 VMC의 멤버들과 “스테인리스에서 순금 big chain 내 하루치 시급”과 같은 라인으로 자축하는 트랙이다. 그러한 자축은 이내 자의식 과잉이 되어 「나」에서 절정을 맞이하는데, “귀에 좆 박은 리스너 양반들 키보드에 야만인들, 너넨 여기에 못 껴 안 끼는 게 아냐 못 껴”와 같은 라인으로 타자를 배격하고, “이제 알겠네 자기혐오를 멈추는 법, 나를 증오할 바엔 남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라인으로 방어기제를 드러내며 그 단단함을 뽐낸다. 이제 넉살에게 더 이상 본작의 전반부와 같은 변화에 대한 고뇌는 없는 것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은 곧 변화의 앞에 고뇌하는 1Q87의 넉살과 자의식이 과잉되어 단단한 1987의 넉살 사이의 구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울」과 「너와 나」는 바로 그러한 두 자아의 반목과 교제의 역사를 드러낸다. 이렇듯 두 자아의 이야기가 어지러이 섞여있지만, 우리가 오롯이 본작의 흐름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넉살의 퍼포먼스에 있다. 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이 훌륭하게 본작에서의 넉살의 퍼포먼스를 요약한 황두하의 말을 인용한다.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단어 선택, 구체적 묘사와 추상적 비유를 오가는 작법은 랩 음악이 지닌 고유의 재미를 최대로 끌어낸다. 여기에 특유의 비음 섞인 톤과 탁 트인 발성으로 시종일관 휘몰아치는 랩 퍼포먼스가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메인 프로듀서 BUGGY를 중심으로 CODE KUNST, Fredi Casso, ILLUID HALLER, Don Sign., HOLYDAY 등이 뭉친 본작의 프로덕션 역시 전작과 다르게 『1Q87』의 세계에 걸맞은 무드를 꾸려낸다. 차갑고 날카로운 질감을 전자음으로 그려낸 「AM I A SLAVE」, Lo-Fi한 신시사이저와 강하게 부딪치는 킥과 베이스가 인상적인 「Crack Kidz (Interlude)」에 「Dance Class」, 보컬 샘플을 바탕으로 어쩌면 본작에서 가장 VMC스러운 사운드를 꾸몄다 할 수 있을 「브라더」, CODE KUNST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거울」과 「너와 나」 등 모든 트랙들이 그렇다.

마지막 트랙 「추락」은 단연 내가 생각하는 본작의 하이라이트이자, 본작 최고의 트랙이다. Don Sign.의 주도 아래 몽환적으로 짜인 비트 위에서 넉살이 여유로이 랩을 하고, 그 뒤에 DeVita가 훅으로 합류하는 바로 그 순간은 온 몸에 전율이 일 정도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추락」을 통해 넉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본작을 통해 살핀 것은 변화 앞에서 고뇌하던 넉살과, 그와는 반대로 자의식을 키웠던 넉살이라는 두 자아가 끝내 교제하게 되는 역사이다. 넉살은 그러한 교제를 통해 깨닫게 된다. 변화란 끝내 나아감이고, 그러한 나아감은 사실 추락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추락 가운데 누군가는 그것을 추락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비행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추락의 와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만약 삶 속에 두려움이 떨림이라면, 설렘과 기대가 내일 기다리고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넉살, “You want the rhythm without the blues”(나는 이 라인을 R&B와 우울Blue을 이용한 말장난이라 이해한다)이라 노래하는 DeVita. 본작에서 넉살이 선택한 길은 무엇이었을까? 본작은 그렇기에 열린 결말이고, 우리는 본작에서의, 「추락」에서의 넉살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되새기게 된다. “모든 게 끝이 있음에 3분 14초의 미학”이라고 넉살이 그랬던가, 본작, 『1Q87』의 마무리로 너무나도 적실한 3분 14초의 트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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