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음 2022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

by 온음

 

안녕하세요. 웹진 <온음>입니다. 2023년이 우리를 맞이한지도 2주 가까이 흘렀고, 저희의 총결산도 벌써 다섯번째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저희는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며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발매된 음악들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았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저희와 함께 지난 한 해 동안 즐겨 들으신 음악들을 떠올릴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2년은 부끄럽게도 저희 <온음>이 가장 저조한 활동만을 보였던 한 해였습니다. 항상 저희의 글을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새삼스러운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2023년에는 더 나은 글, 더 많은 활동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다가갈 수 있도록 저희 모두가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coloringCYAN

 

 

  • 아래의 목록은 2021년 12월 01일부터 2022년 11월 30일 사이에 발매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선정 이전의 후보 목록은 해당 링크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온음>의 2022년 총결산에는 ‘Album Of The Year’에 최종적으로 두 장의 음반이 선정되었음을 알립니다. 11시간이 넘는 치열한 회의 끝에도, 끝내 ‘Album Of The Year’의 자리는 하나로 정해지지 못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고민되던 두 음반 모두에게 서로 다른 각자의 훌륭함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희 <온음> 필진 일동은 이번 결산만을 예외로 하여 ‘Album Of The Year’에 선정될 음반을 두 장으로 정했습니다. 각 음반에 대한 코멘트는 회의 당시 각 음반의 선정을 지지하셨던 필진들의 대표가 맡아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너른 양해와 함께 즐거운 일독을 바랍니다. – coloringCYAN

 

 

──General Field──

 

The Best Album of 2022

김도언, 『Damage』, SoundSupply_Service, 2022.05

글로벌 팬데믹 이전에도, 그것이 비교적 완화된 현재에도, 전자음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되기를 종종 즐겨왔고, 또 종종 즐긴다. 이 방식을 구분하는 것은 물리적인 환경일 수도 있고, 음악 작품을 바라보는 개인의 특정한 관념 혹은 그 외의 사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우리에게 작품 안에서 제공되는 것이든, 혹은 그 작품을 생산한 아티스트가 작품 바깥에서 제공하는 것이든, 결국 그 방식들은 곧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가 되어 흐른다. 김도언의 『Damage』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되기를 즐기는 전자음악 작품으로, 저 물줄기의 일부를 내가 직접 <온음>에서 일전에 소개했던 바 있다. 긴 글을 통해 소개했던 만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Damage』는 하나의 상념에서 출발한 표현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미술가 임다울의 서술은 우리가 『Damage』를 통해, 우리의 음악적 경험이 낳은 관념의 출처가 어딘지 되묻기를 주문한다. 가령 우리가 「청명」과 「늪」에서의 소리가 청명과 늪의 소리가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떤 불특정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떠올리는, 이처럼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일들의 연유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레코딩 시대에 전자음과 비-전자음―혹은 그렇게 일컬어지는 모든 소리―의 구분이 과연 효용이 있느냐는 의문이 있고, 『Damage』에서는 그들이 결국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착종되었고 엄격한 분류보다 개인의 가치 판단에 사유가 기대어져 있음을 긍정하는 듯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일전에 소개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 재료는, 이 물줄기의 일부는 『Damage』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중요할 수 있거나, 혹은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앨범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왔는데, 그러니까 철저히 전자 신호를 통해 프로그래밍된 음악이 자연과 결부되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는 것이다. 『Kid A』 (2000)의 설산, 『Dead Cities, Red Seas & Lost Ghosts』 (2003)에서의 황량한 겨울의 들판, 『Cosmogramma』 (2010)와 『We Will Always Love You』 (2020)에서의 우주 등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그러니까 나의 관점은 이러한 음악적 경험이 비평적 사유나 논지가 되는 것이 다소 구시대적이라는 coloringCYAN의 관점과는 사뭇 다른 셈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저들에게 각각의 오브제가 그랬듯 김도언에게도 이 하나의 상념은 어느 순간엔가 본인의 머릿속을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미확인 비행 물체에 가까워 보인다. 원래 영감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굳이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김도언은, 노스탤지어의 맹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Oneohtrix Point Never와는, 불화를 재료로 나르시시즘을 탄탄하게 조직하려 했던 Arca와는, 로봇 혹은 외계인으로서 인간이 되기를 한평생 꿈꿔왔던 Daft Punk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전의 이야기를 반복하자니 김도언의 음악을 고루 설명하기에 굉장히 부족할 것이라고 느껴진다. 이 자리에서 나는 『Damage』가 다른 방식으로도 이야기가 필요한 작품이고, 또 그렇기에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반드시 일관적이지는 않을 예정이기에 먼저 커다란 개요를 개괄적으로 설명하자면, 첫째는 coloringCYAN이 『Damage』에 관해 “다른 외적 맥락들을 수반하지 않은 채로 올해 가장 뛰어난 작품들 중 하나였다”라고 말한 배경이고, 둘째는 내가 생각하기에 수반되어야 할 다른 외적 맥락에 관한 배경이다―물론 이들 모두가 『Damage』를 사유하는 방식에 관한 커다란 물줄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첫째 개요에 관한 내용은 간단하다. coloringCYAN이 펼친 논지의 배경은 다름 아닌 김도언이 악곡을 주무르는 방식과 그 소리를 만들어내고 조직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Damage』는 종종 네오 사이키델리아 혹은 앰비언트 팝, 프로그레시브 일렉트로닉 앨범으로 분류되지만, 내가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이름은 사운드 콜라주다. 물론 작금의 사운드 콜라주는 어느 정도 아방가르드와 인더스트리얼의 후손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학구열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학구열은 무작정 많은 신시사이저와 가상 악기를 활용하거나, 너무 많은 샘플을 하나의 트랙에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레 DAW 한가운데로 불려 나온, 서로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소리와 소리가 한 트랙 안에서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사라지는 것을 조율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사운드 콜라주에서의 학구열이다.

그런 점에서 『Damage』는 꽤 훌륭한 사운드 콜라주 앨범이다. 가령―일전에 이야기한 대로―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트랙인 「SaGA」와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을 예시로 들어보자. 이 두 트랙은 공통되게 트랙 중간에 분기점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 4박자에서 3박자로, 후자의 경우 3박자에서 4박자로 바뀌는 지점이 그렇다. 이 경우 박자가 바뀐다는 것에 의미를 최대한 부여하기 위해서 템포와 코드의 진행, 전후의 분위기 등 고려했어야 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 김도언은, 「SaGA」에서는 소리의 두꺼운 층위를 상향하는 멜로디와,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에서는 목가적인 피아노 연주를 긴박한 분위기와 파형의 왜곡, 산발적인 노이즈와 적절하게 병치하며 훌륭한 각기 트랙을 만들어냈다. 이 점은 비단 두 개의 트랙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닌데, 프로듀서 Fisherman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Green Screen」에서는 Fisherman의 정규 앨범 『The Dragon Warrior』 (2020)의 몇몇 트랙에서 들어봤을 법한 소리가 김도언이 내놓은 바탕과 함께 적절하게 직조되어 있고, 「Portal」에서 역시 박자의 변환을 통해 트랙을 이어나가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단순한 진행이 요구되었을 3박자의 앰비언트 팝 트랙 「요새」에서는 프로듀서로서의 완급조절이 아주 잘 나타나고, 현악 중주 트랙 「Stock Quartet」에서는 탁월한 작곡 능력까지 확인할 수 있다―덧붙여 트랙의 후반부 피아노의 독주 파트에서 현악기를 활용하는 방식은 아주 훌륭하다.

물론 『Damage』는 굉장히 눈부신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공략할 수 없는 독립성이나 독창성, 혹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창의력이 발휘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본디 저들은 비범한 천재의 머릿속에서 형광등이 켜지듯 생겨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우리가 고르는 과정에서 돌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 아니던가. 김도언은 『Damage』를 통해, 그렇게 발견한 신호를 최대한으로 모아두려 노력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모든 소리는 근본적으로 쓸모 있는 재료일 뿐이고 그렇기는 사람의 목소리도 매한가지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피처링으로 목소리를 보탠 6명의 아티스트를 선별하는 과정에는 적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들이 쓰고 부른 가사가 감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저들의 목소리 그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저들을 의식하고 트랙을 만들었다지만 「꿈 속의 춤」에서 이민휘만큼 구슬프고 음산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면, 「Newbie」에서 이랑만큼 덤덤하고 분명하게 목소리를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또는, 「요새」와 「Prophet」의 So!YoON!과 김한주처럼 자신의 목소리에 갖가지 효과가 덮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 이 점에서도 김도언의 작편곡 능력은 여실히 드러나고, 산발적인 아이디어와 뜨거운 학구열이 융화를 이루는 8차선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악곡을 완성한다는 능수능란함은 아주 훌륭하다.

둘째 개요에 관한 내용에 앞서, 이 글의 맨 첫 문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팬데믹은 어떻게든 장르 음악과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에 관해서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바 긴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22년의 가장 커다란 화두 중 하나는 바로 포스트 팬데믹이었다. 그것이 현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Damage』는 지난 5월 발매되었고, 그 직전에는 이 지긋지긋한 팬데믹이 마침내 과거의 일이 된다는 기대감에 모두가 한껏 취해있었다. 그 시기 발매된 대부분의 작품 뒤에는,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던 수많은 아티스트, 각종 무대를 마주할 리스너들까지, 모두가 이어폰이 아니라 준비된 시설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그 기대감이 있었다. 김도언은 시기를 잘 탔다. 그리고 그 시기를 아주 잘 활용하여 『Damage』를 사유할 수 있는 다른 다양한 물리적인 환경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어떤 영화를 용산 아이맥스에서 봐야겠느냐 코엑스 돌비시네마에서 봐야겠느냐 하는 등의 선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수많은 사람과 함께, 한 자리에서 동일한 음악을 들으며 저마다의 호흡을 가져간다는, 그 한동안 망실할 수밖에 없었던 감각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Damage』에 관해 수반되어야 할 외적 맥락에 관한 배경이다.

물론 이것이 음악 그 자체보다 혹은,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움직임의 구심점이, 이제 막 디스코그래피를 개시한 한국의 전자음악 아티스트가 발매한 정규 앨범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중요하다. 김도언의 음악은 분명 근래 EDM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서 섭외되거나 마지막 몇 개의 무대를 장식하는 이들의 음악과는 다르다. 심지어 야망 있는 팝 아티스트가 그린 청사진의 일부가 되는 것이 일종의 출셋길처럼 여겨지는 한국 전자음악계의 동향과도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해보자. 한국에서, 본질에서 전자음악이라 볼 수 있는 앨범이 중요하게 다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2018년 제정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선에 본질에서 전자음악 앨범이라 할 수 있는 경우는 전무하다. 이것이 단순히 음악의 설득력이 없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적은 표본이다. 한국의 전자음악 아티스트가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랬지만 작금에 와서 더욱 어려운, 창작의 낙관적인 면으로만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이를 주목하는 이들도 줄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김도언과 그의 정규 앨범 『Damage』는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괄목할만한 행보를 보였고 그런 면에서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거둬들인 것이다. 나는 그 점을 굉장히 높게 샀고, 지난 한 해의 음악을 돌아보는 과정에서도 필요성이 중대하다고 보았다.

우리 <온음> 일동은, 올해 최고의 앨범을 무엇으로 선정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긴 시간을 소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과감하게 두 장의 앨범을 올해의 앨범으로 공동 선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선정된 두 장의 앨범 모두 저마다의 형태로 2022년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앨범이라고 판단했고, 그 형태가 어떤 특정한 가치의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에 서 있는 것이었던 탓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Damage』의 경우 우리는,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가장 소외된, 한국의 대중음악 역사상 주목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영역이나 다름없는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 중 하나를 김도언이 구사하면서도 뛰어난 품질의 정규 앨범으로 그 결과물을, 혹은 일종의 연구 성과를 도출해냈다는 점을 주목했다. 동시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아티스트가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협업을 도모하고, 그 사유를 양방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 역시 주목했다. 김도언의 『Damage』는, 외부 맥락이 없이도 훌륭한 전자음악 앨범으로서 이야기될 법하지만, 우리의 2022년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려볼 때, 우리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몇 가지 감각들을 되살려준 매우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다. 『Damage』를 만든 김도언은 물론이고, 그에 관여한 수많은 이들은 아주 훌륭한 일을 해냈다.

『Damage』에 엔지니어로서 참여한 김시윤이 우리 <온음>이 이번 총결산을 준비할 즈음 세상을 떠났다. 훌륭한 음악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그에게 감사하며, 낮은 자세로 고인을 기린다. – XENITH

 

 

NewJeans, 『New Jeans』, ADOR, 2022.08

NewJeans는 2022년에 데뷔한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유달리 돋보였고, 그만큼 가시적으로 큰 성취를 거두기도 하였다. 「Attention」과 「Hype Boy」는 2022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재생된 트랙들 중 둘일 것이고, SNS에서도 NewJeans의 작품을 두고 각종 밈과 챌린지를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그들의 성공이 마치 하나의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NewJeans의 이러한 성과를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오갔다. 그에 나는 우선 민희진과 ADOR의 유능함을 지적할 수 있다. 지겹도록 오남용되는 ‘MZ’라는 낱말에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것이 사용되는 배경, 우리가 ‘복고(復古)’라 부르는 그 시대적 영역이 밀레니엄에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민희진과 ADOR는 그것을 정확하게 캐치했다. 그들은 동시에 ‘Z’함을 규정하고 그에 천착하는 이들은 그 ‘Z’함의 외부자들 뿐이라는 사실마저 눈치 채고 있었다. 요컨대 NewJeans는 결코 세대를 대표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것처럼 연기할 뿐이다. 뮤직비디오의 복장과 연출, 무대에서의 안무와 퍼포먼스 등, 모든 것들이 그렇다. 영민한 기획의 승리다.

하지만 NewJeans의 성공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획이 가졌던 영민함만큼이나 데뷔작 『New Jeans』가 가진 작품으로서의 힘이 막강했다는 점이다. 기획의 영민함에 작품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기획은 설득력을 잃는다. 반대로 작품의 좋은 품질에 엉성한 기획이 따른다면 그 작품은 저평가의 운명을 떠안고야 만다. 이것은 어찌 보면 ‘훌륭한 K-Pop 작품’에 대한 기준과도 같다. 손뼉이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New Jeans』는 바로 그러한 훌륭함을 가진 작품이다.

「Attention」의 경우 요즈음의 K-Pop 시류에 맞지 않는 작품이다. 아직까지 K-Pop의 방법론에 서려있는 극적인 과함 ― 일종의 맥시멀리즘 ― 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은 채로 보다 가벼이 들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이것은 어쩌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가요의 자리를 탐하던 K-Pop의 방법이었겠다. 가요가 되기를 포기하고 보다 매니악하게 변화하던 2010년대 후반부터의 K-Pop의 터치는 분명 작품의 소리 곳곳에 남아있다 ― 정확하게는, 트랙의 소리 직조 방식 자체가 그 이전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피치를 올리거나 중독적인 그루브를 만들기보다 햇볕이 내리쬐듯 화사한 무드의 화음을 남긴 훅에서의 디렉팅이 요즈음의 K-Pop과 「Attention」을 서로 멀어지게 한다. 반대로 「Hype Boy」는 보다 요즈음의 K-Pop에 알맞다. 「Attention」보다 선명해진 소리와 극적이게 된 파트의 배치가 그렇다. 한껏 피치를 올리며 중독적인 그루브를 만들어 귀에 맴돌게 하는 훅의 변화가 그렇다. 자연스러운 어우러짐보다는 각 멤버의 개성을 더욱 날 서게 하는 보컬 디렉팅이 그렇다. 어쩌면 「Attention」과 「Hype Boy」의 이어짐은 K-Pop에 대한 서로 다른 방법론이 같은 아티스트에게서 어떻게 조응할 수 있는지를, 그것의 소리와 연출의 직조로 보여준 셈이다.

앞선 두 트랙이 K-Pop의 소리가 어떤 양태를 보이는가에 대한 NewJeans의 대답이었다면, 「Cookie」는 K-Pop의 노랫말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NewJeans의 확신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을 주장이란 걸 알지만, 나는 ― <온음> 필진 전원이 아닌 본고를 작성하는 나, coloringCYAN은 ― 「Cookie」가 2022년에 발표된 모든 K-Pop, 그를 넘어 모든 장르의 트랙들 중 노랫말이 빼어나기로는 양손에 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Cookie」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 ― 물론 그에 대한 ADOR의 대처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 이 바로 그를 증명한다. K-Pop에 오랫동안 가해져온 유구한 믿음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티스트가 주로 ‘퍼포머’ 내지 ‘연기자’의 자리에만 머무르며,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아티스트가 ‘창작자’가 되거나 창작에 직관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믿음도 그 중 하나다. 「Cookie」를 둘러싼 논란은 바로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동시에 그것은 NewJeans의 기획 내지는 기획자에 대한 의심이기도 하며, 돈 내지는 특정 성향에 눈이 먼 ‘나쁜’ 어른들이 ‘어린 여성’ 아티스트에게 ‘상스러운(혹은 그렇게 읽힐 수 있을)’ 노랫말을 천진하게 노래하게 강제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일 것이다.

이때만큼은 K-Pop을 작품으로서만 향유하던 대중들도 장르의 특질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한 심사관이 되며, 바로 그 사실이 K-Pop 노랫말이 장르적으로 많은 주제와 소재를 다룰 수 없거나, 혹은 없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다. 애석하게도 ADOR의 다급함으로 인해 빛이 바라긴 했지만, 「Cookie」의 노랫말이 (적힌 그대로 보았을 때) K-Pop에 가해지는 대중적 검열에 맞설 수 있을 절묘한 무기가 된다는 것은 변함없다. 쿠키를 구웠다는 유치함에서 출발해 해석적 가능성을 다각화하는 노랫말은 장르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르면서도, 식사와 음료를 주지 않고 쿠키만을 구워주겠다는 노골적임만큼이나 고립되어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널 choco-chip으로 Sprinkle로 입맛 버리게 만들고 싶어”라고 적힌 다니엘의 라인은,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2022년 한국대중음악 최고의 라인으로 격상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장르에 대한 검열-감상이 장르의 특징마저 좌우하게 될 때 과연 무엇이 리스너의 입맛을 돋울 수 있느냐는 물음을 꽤나 직접적으로 묻기 때문이다.

이러한 트랙들의 빼어남은 ― 특기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트랙 「Hurt」도 유별난 점이 있다 ― 곧 NewJeans에게 ‘트리플 타이틀 트랙의 전원 히트’라는 가시적이면서도 놀라운 성취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상술했듯 『New Jeans』의 성취는 그것이 그룹에 대한 기획과 맞아떨어질 때 본격적으로 특별해진다. 복고적인 연출을 강조하는 「Attention」의 뮤직비디오와 장대한 서사를 그리는 「Hype Boy」의 뮤직비디오는 서로 지향점이 다르다. 형식미를 추구하는 「Attention」의 안무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Hype Boy」의 안무가 다른 것은 또 어떠한가. 모든 트랙에 다양한 시도와 각각의 기획을 불어넣으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구동하며 음반 내에서도 잘 어우러진다. 이는 평균적인 재생 시간이 짧아져만 가는 음악적 시류와도 맞닿아있다. 단 4곡의 컴팩트한 구성, 『New Jeans』의 성공을 보장함과 동시에 스트리밍 시대에 가해지는 물음까지도 직접 수행한다.

물론 『New Jeans』가 과연 ‘Album Of The Year’가 될 수 있느냐하면, 그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New Jeans』는 음반으로서 훌륭하지만, ‘베스트 앨범’이라 칭하기엔 각 트랙들의 악곡적 방식에 새롭거나 근사한 점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의 앨범’은 ‘베스트 앨범’이어야 한다는, 견고하게만 여겨졌던 공식도 이제는 질문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최고는 아니었을지언정 그에 못지않게 훌륭하며, 동시에 2022년 한 해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음반. 내가 생각하는 2022년의 ‘Album Of The Year’는 『New Jeans』다. – coloringCYAN

 

 

The Best Track of 2022

NewJeans, 「Hype Boy」, ADOR, 2022.08

지난 몇 년간 K-Pop이 더욱 마니악한 장르로 발돋움하며 ‘대중가요’에 가까웠던 이전과는 유리된 면모를 띠게 되는 과정에는 ‘과격함’이 주요하게 자리했다. 이러한 경향의 시작으로 특정하기에는 모호한 감이 있지만, 2012년 「강남 스타일」의 성과를 기반으로 한 K-Pop의 글로벌 진출이란 사건은 이와 같은 흐름이 만들어지는 데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보다 조금 앞선 2000년대 후반, 전국을 강타한 유례없는 K-Pop의 대중적 성과가 일각의 비판-양산형 후크 송의 등장 등-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는 2010년대에 들어선 후 전성기를 맞이했던 샤이니와 f(x)를 위시한 그룹의 음악적 다각화로 이어졌다. 다양한 장르 및 창작 방식의 도입, 퍼포먼스와 마케팅 등 부가적인 요소의 급격한 발전이 이어지던 때에 펼쳐진 방탄소년단의 전 지구적 성과는 시장 전반에 불을 지폈고, 그 즈음 K-Pop은 음악, 퍼포먼스, 그룹과 작품의 콘셉트,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자신의 모습을 과격하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경향을 K-Pop 내부에 위치한 모든 아티스트와 작품에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최근의 흐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과격함을 선보이는 방식이 주류에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특히나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분포한 K-Pop 팬덤이 점차 마이너한 장르 팬덤에 가까워지면서, K-Pop 특유의 과격함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산업적 지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흐름이 계속되던 2022년, NewJeans의 등장은 기존 시장에 만연했던 공식을 흩뜨려놓았다. 프로모션의 첫머리에 내놓은 「Attention」부터 음반의 마지막 트랙 「Hurt」에 이르기까지, NewJeans의 데뷔 EP에서는 과격함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매끄러운 선율과 깔끔한 사운드, 감각적인 비주얼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NewJeans의 EP에 수록된 네 개의 트랙 중, 「Hype Boy」는 작금의 K-Pop이 갖는 과격함과 가장 먼 대척점에 서있는 트랙이다. 「Attention」의 직설적인 어필보다는 부드러운 노랫말을 구성하고, 「Cookie」의 키치한 사운드보다는 부드러운 소리를 채택하며, 「Hurt」의 부드러운 아카펠라 대신 적당한 흥과 세련된 소리가 가득한 트랙으로서 「Hype Boy」는 앨범 내에 자리한다. 「Hype Boy」 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단연 후렴이 터져 나오는 순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프리 코러스가 진행되며 곡을 구성하던 신스 패드와 드럼이 조심스럽게 후퇴하고, “‘Cause I know what you like boy”라는 문장이 드러나기까지 보컬과 비트 사이에 존재하는 약 0.5초의 공백을 뒤로한 채 그 정적을 지나 후렴구의 청명한 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Hype Boy」는 순식간에 절정으로 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정의 순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극점에 도달한 그래프가 이후 서서히 하강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Hype Boy」를 둘러싼 모든 소리는 매끄러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처럼 곡 전반을 뒤덮은 간결한 구성은 해당 트랙이 K-Pop 팬덤과 대중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될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와 SNS에 만연한 노래, 댄스 커버 영상을 포함해 NewJeans에 관련된 2차 창작 콘텐츠 중 상당수를 「Hype Boy」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심지어는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은,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콘텐츠를 모사한 여러 영상에서의 전개 역시 “아 저 NewJeans의 「Hype Boy」요”라는 답변 직후 그 안무를 따라 추는 형식이다. 더구나 지난 하반기 불었던 NewJeans 열풍 속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곡이 「Hype Boy」라는 사실 또한 해당 트랙이 갖는 매력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지점 외에도 『New Jeans』의 각 트랙에서 주요하게 강조되는 주체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Attention」과 「Cookie」에서는 트랙을 프로듀싱한 250과 FRNK의 존재가, 「Hurt」에서는 화성을 쌓아 올리는 멤버들의 가창이 보다 도드라진다면, 「Hype Boy」에서는 매력적인 멜로디를 주조한 탑 라이너 Ylva Dimberg와 멤버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2022년 한국 대중음악의 내부에서 특히 돋보였던 많은 K-Pop 아티스트의 활약 중에서도 NewJeans의 성과는 가장 큰 임팩트와 긴 여운을 남긴 케이스가 될 것이다. 마니아의 장르가 되어가던 K-Pop이 다시금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NewJeans는 기존의 시장이 고수하던 방식이 아닌,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방식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더구나 K-Pop을 넘어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확고한 소비층을 지향하는 팬덤 문화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현재에, NewJeans는 ‘대중’으로 불리는 집단이 가지는 거대한 규모와 강한 소비력을 다시 한번 일선에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일련의 설명이나 어떠한 수식을 제외하고서라도, 「Hype Boy」는 지난 한 해 발매된 수많은 한국 대중음악 속에서도 가장 기분 좋게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음악임에 틀림없다. – 양소하

 

 

The Best Artist of 2022

250

2022년 대중음악을 돌아볼 때 250은 그 해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로 거론할 여지가 다분하다. 뮤지션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개인 프로젝트 『뽕』과, 프로듀서로 참여한 K-Pop 프로젝트 『New Jeans』 모두 각기 위치한 장르 필드부터 거시적인 음악계 전반에 이르기까지 가히 충격이라 할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250을 ‘Best Artist’로 상찬하는 근거로써 『New Jeans』를 제시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집단•종합적인 K-Pop 예술의 특성을 배제한 채 — 혹은 단순히 NewJeans라는 프런트 아티스트의 존재를 희석한 채 — 그 공을 지나치게 작가주의적으로 돌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50이 『New Jeans』라는 작품(EP)이 완성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 합의하며, 이를 바탕으로 『New Jeans』의 성취를 인용하고자 한다(이는 해당 작품에 관련된 NewJeans를 비롯한 다른 참여진들의 성취보다 우선된 것으로 다루고자 함이 아님을 밝힌다).

본론으로 돌아가, 그가 주도하거나 참여한 프로젝트가 미친 영향력은 시대와 국경, 심지어는 음악이라는 예술 분야까지 온갖 바운더리를 넘나들었다. 음악 내적으로는 『뽕』을 통해 트로트/뽕짝이라는 장르와 그것이 반영하는 70-80년대 시대상을, 『New Jeans』의 트랙에서는 90-00년대 R&B 및 하우스 뮤직을 재해석했다. 국내외 매체는 그가 주조한 독보적인 사운드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가 예술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대상에 관한 기사를 남겼다.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 SXSW 2023에 초청받을 뿐만 아니라, 「뱅버스」 뮤직비디오의 경우는 각종 영화제에 출품되었다. 250이라는 인물을 축으로 팝과 언더그라운드 사이 간극의 거리를 가늠해볼 계기 또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음악은 뛰어났고, 이를 통한 전방위적인 성취는 넓은 범위에서 많은 것을 기념할 수 있게 했다. – 만능초보

 

 

The Best Rookie of 2022

LE SSERAFIM

「FEARLESS」에서 「ANTIFRAGILE」로 LE SSERAFIM이 내세우는 슬로건이 바뀐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으레 다른 K-Pop 그룹들이 그렇듯 신보와 함께 새로운 타이틀 트랙을 홍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LE SSERAFIM의 행보는 그를 초과한다. ‘I’M FEARLESS’라는 강령적 문장의 어구전철로 꽃핀 ‘LE SSERAFIM’이 「FEARLESS」함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보통 결단이 아니다.

가령 「FEARLESS」는 트랙 이름 그대로 ‘겁 없음’의 내적 상태를 지시한다. 그렇다면 트랙에서 「FEARLESS」함을 내세우는 LE SSERAFIM은 어떠한 초연함을 연기하게 된다. 그 앞에 대적한 적이 누구든, 그들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LE SSERAFIM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사뿐히 무시하며 성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실제로 「FEARLESS」는 야망만을 정조준한 채로(“제일 높은 곳에 난 닿길 원해”) 곤란에 대한 무관심함을 강조하는(“관심 없어 과거에”)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ANTIFRAGILE」은 ‘깨지지 않는’다는 외적 상태를 지시한다. 그렇다면 트랙에서 「ANTIFRAGILE」한 LE SSERAFIM은 연기할 필요가 없다. 「FEARLESS」와 다르게 그들은 자신의 곤란을 그대로 기술한다(“모두 기도해 내 falling”).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결론이 비슷해보일지라도 사실 두 트랙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FEARLESS」가 그리는 것은 「FEARLESS」를 넘어서 ‘FLAWLESS’하기까지 한 초인의 형상이다.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어떤 시련이 닥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가장 빠른 길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초인 말이다. 「ANTIFRAGILE」이 그리는 것은 그에 비하면 평범하다. 산행 중 시련을 맞는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러다 길을 잃고 날이 밝기까지 숙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 속의 떠오르지 않는 해를 기다리며 ‘겁을 집어’먹고 ‘두려움에 떨’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깨지지 않는’ 그녀들은 기어이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FEARLESS」해야만 했던 LE SSERAFIM에 더 이상 그렇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두려움이 닥쳤을 때, HYBE와 쏘스뮤직은 다른 누구보다도 크게 겁을 집어먹고는 치졸하면서도 비열한 행태만을 보였다. 그들의 대응은 그룹과 전(前) 멤버에게도, 분노에 차서 자신의 죄있음을 잊고 돌을 던지던 대중에게도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애매함만이 가득했다. 문제가 된 멤버를 방출한지 두 달 뒤에 공개한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전 멤버의 존재를 지운 편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고 ― 해당 다큐멘터리의 가장 역겨웠던 장면이 그로 인해 생겼다 ― , 데뷔를 마쳤다는 후광 효과를 믿은 채로 현재진행형인 착취의 역사를 자랑스러운 듯이 늘어놓는다. <The World Is My Oyster>는 K-Pop 장르/산업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추악함을 보고 싶을 때 필요한 교보재일 것이다.

그렇기에 「FEARLESS」에서 「ANTIFRAGILE」로의 전회는 논란을 통해 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관심이 증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성공했고, LE SSERAFIM은 『ANTIFRAGILE』 EP를 통해 데뷔작보다도 훨씬 더한 호응과 성공을 이뤄냈다. 이것을 단순하게 보면 부침을 겪은 그룹이 재기하게 되는 납작한 성공 서사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설득력을 더한 요인은 기획 자체뿐 아니라 그를 연기하고 발화하는 아티스트로서의 LE SSERAFIM에도 있었다. 확실히 『ANTIFRAGILE』 EP에서의 기획은 이전까지의 실책을 가리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영리함보다도 LE SSERAFIM의 활약이 보다 주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K-Pop 장르의 성패가 어떤 방식으로 좌우되는지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겠다.

2022년의 한국대중음악은 K-Pop의 축제와도 같았다. 그 중심에는 다양한 신진 걸그룹들이 있었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K-Pop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한 해를 빛냈다. 그러나 K-Pop은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지닌다. K-Pop에 대해 논하며 장르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K-Pop을 논하지 않느니만 못한 처사다 ― 불행히도 많은 장르 리스너들과 평단의 비평가들은 이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2022년은 K-Pop의 축제였지만, 그에 마냥 환호할 수만은 없다. 다른 지평, 다른 시선 역시 중요하다. 2022년 한 해 동안 가장 빛나면서도 가장 어두웠던 역사를 자기 안에 양립시켰던 신인. 올 한 해 가장 성공적인 신인은 아니었을지라도,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만 할 신인. LE SSERAFIM이 바로 그 이름이다. – coloringCYAN

 

 

──Genre Field──

 

The Best Rock Album of 2022

TRPP, 『Here to Stay』,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2022.09

「반사」와 「명상」은 빅 비트의 박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명상」이 더 빠르고 경쾌하며 그 낯빛도 (”빛을 따라가는 길“에서처럼) 사뭇 밝다고 한다면, 「반사」는 더 느리고 약간 더 무거우며 그 낯빛도 (“마취가 풀린 고통”에서처럼) 사뭇 어둡다. 저 둘이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또렷하게 구별되고 있다는 점은 두 곡의 제목에서도 마찬가인데, “Reflection”은 그것을 반성으로 이해한다면 “Meditation”과 대단히 가까이에 있겠으나, “반사”와 “명상” 사이의 거리는 꽤나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반사」의 제목이 빛을 받아 돌려주며 환히 비추는 사태를 가리키는 데에 반해 그 곡이 조금 더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명상」의 제목이 눈을 감고 빛을 차단한 채 사고에 잠겨드는 사태를 가리키는 데에 반해 그 곡이 조금 더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은 묘한 일이기도 하다.

TRPP의 데뷔 앨범은 슈게이즈와 드림팝의 장르적 규범 안에서 가용할 수 있을 변칙적 스타일들을 폭넓게 펼쳐 보였고, 그렇게 하여 저 장르들의 원형을 새롭게 복각하였다. 『Here to stay』는 그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나 동시에 전작과는 다른 지대에서 흥미로운 것들을 탐사하는 새로운 작업에 착수하고 있기도 하다. 『Here to stay』는 더 묘하고 더 많은 말을 하도록 자극하는 구별들을 들려준다. 「반사」와 「명상」 사이에서 연출되는 구별은 그것의 가장 분명한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구별이 8번 트랙에서 10번 트랙까지에 걸쳐 다시 한 번, 그러나 살짝 다른 방식을 통해 극적으로 연출된다. 「Little boy / the darkest day」는 얼핏 듣기에도 더 음울하다. 목소리는 더 심각한 분위기를 뿜고 있고, 곡의 끝부분에서 마디마다 한 번 씩 울리는 라이드는 마치 종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바로 다음 트랙은, 마냥 맑지만은 않다 하더라도, 훨씬 경쾌한 비트로 위에 한결 힘찬 리프를 얹어 들려준다. 「Rainbow spell」은 저 둘 사이의 구별을 자기 안으로 끌어모으는 듯하며, 그래서 저 둘의 분위기를 종합하는 듯하다. 「Rainbow spell」의 리프는 「Dodgy」의 그것보다는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음울하지는 않으며, 이 곡 마지막에 울리는 기타 노이즈는 「Little boy / the darkest day」 만큼 어둡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얼마간의 무게로 이 곡의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Oblivion」은 인트로의 짧은 IDM 비트와 그 이후에 이어지는 슈게이즈 연주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찍어내는 곡이다. 저 상이한 부분들을 이어주는 요소가 있다. 피드백 노이즈가 그 매개항인데, 그것은 인트로가 끝나갈 즈음 스산하게 울리다가, 그 뒤로 소리의 벽을 긁어대듯 여러 차례 울릴 때에는 한층 더 소름끼치게, 마치 유령의 울음처럼 출몰한다. 또 한 편 첫 곡 「Here to stay」의 첫 부분에서 짤막하게 메아리치는 전자음은 인트로가 끝난 다음에도 작은 음량으로나마 이어지는 것 같지만, 소리의 벽에 가려 잘 들리지 않으며, 그렇기에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인트로와 그 뒤의 슈게이즈 연주가 판이한 인상을 찍어낸다.

아마 이 앨범에서 가장 독특한 트랙은 「Furykawa」일 것이다. 여기에도 역시 슈게이즈 노이즈가 있다. 그러나 애상적인 발라드 멜로디, 열대 민속 음악을 떠오르게 하는 퍼커션, 그리고 다른 곡들보다 훨씬 짧은 길이 때문에, 이 곡의 개성은 앨범 안에서도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그것이 앨범의 모양새를 흩어놓을만큼 돌출되지는 않는 것은 묘한 일이다. 이만큼 이질적인 계기들을 품고 있지만 『Here to stay』는 여전히 하나의 정돈된 흐름을 가지고 있는 듯하고, 그것을 수월하게 이끌어가는 듯 들린다. – 조지환

 

 

The Best Rock Track of 2022

야야 킴, 「분노는 나의 힘」, Self-Released, 2022.01

평행세계의 Pink Floyd가 한번쯤 연주했을 법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혹은 트립-합) 넘버다. 카리스마를 짙게 풍기는 디바이자 프로듀서 야야 킴의 장대한 복귀작 『a.k.a YAYA』는 장중하고 묵직한 작품이었다.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인트로로서나 트랙 그 자체로나, 이 블루지하고 사이키델릭한 록 세션과 오케스트레이션이 날카롭게 부딪치며 소용돌이 치는 흡인력에는 감탄 외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에너지에 대하여, 화자는 그 원동력이 ‘분노’라 일컫는다. “분노는 각오를. 분노는 냉정을. 분노는 선택을. 분노는 나의 힘.” 무엇이 화자를 분노하게 하였는가.

본곡이 내뿜는 ‘힘’이란 무작정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다. 곡을 여는 퍼지(fuzzy)한 스트로크는 곧바로 이어지는 루프에서 장중한 저음부 오케스트레이션 및 신경을 긁는 각종 기악 연주와 큰 충돌 없이 얽어들어가며 그루브를 완성한다. 벌스가 시작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은 퇴장하고, 기타는 블루지한 꾸밈음 자리로 물러서며, 재지한 피아노 잼이 쓸쓸히 야야 킴의 보컬을 보조할 따름이다. 그 고혹한 무대 뒤 그림자에는 무엇이, 얼마나 숨어있을까? 그것들은 야야 킴을 필두로 언제든지 분노를 표출할 채비가 되어있을 것이고, 그것을 예기치 못하는 기다림의 시간은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을 감돌게 하리라.

흔히 분노의 자멸적 특징을 일컫는 경구나 이를 죄악시하는 규범을 종종 마주한다. (사실 본곡도 “최후의 폭포와 그 힘을 함께 할” 것이라며 자멸적 특징을 짚고 넘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분노에서 비롯된 권리 쟁취의 역사를 배우고 그 유산 또한 누리고 있다. 본곡의 영제—“Anger Is My Power”—에서 ‘power’가 곧 ‘권력’으로도 해석되는 것을 떠올리면, 본곡에서 말하고자 하는 ‘분노’의 성격 역시 악곡의 진취적 — progressive — 성격만큼이나 숭고하고 정당한 무언가이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아니, 악곡이 지닌 힘이 그렇게 독해하도록 만든다. – 만능초보

 

 

The Best Rap/HipHop Album of 2022

Lil Cherry X GOLDBUUDA, 『SPACE TALK』, ARTRA, 2022.04

팝-랩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생긴 것만은 아닐 테다. 팝-랩이라는 개념을 가볍게 대중문화의 주류 시장을 향한 어필이 동반된 형식의 힙합이라고 생각해보아도 이 역사의 길이가 힙합 자체의 역사의 길이와 거의 대등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다름 아닌 Kanye West로, 그는 꾸준히 앨범을 만드는 일을 마치 불규칙한 방사형으로 계획된 도시의 약도를 그리는 일처럼 해왔다. 다시 말해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는 건 여타 아티스트와 다를 게 없었지만, 일단은 다양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엿보이듯 그 이전의 팝-랩이 현재의 것으로 나아가던 과정은 꾸준히 논급되어왔던 소위 “힙합이 힙합이 아니게 되어가는 과정”과 일정 부분 연관이 있다. 힙스터들의 아이돌 BROCKHAMPTON과 Rico Nasty, 호주의 떠오르는 신성 Tkay Maidza, 클라우드 랩의 강자 Travis Scott과 A$AP Rocky, SNS 음악 시대의 총아 Lil Nas X나 Doja Cat 등이 팝-랩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를 적당히 요약해 줄 것이다.

국외에 사례에 기대어 서술하긴 했다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진 않다. 대다수 랩/힙합 아티스트가―그 중심에서 심화하는 이야기의 주제와는 별개로―현재 통용되는 팝-랩으로의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는 다소간에 썩 긍정적이다. 단적으로 Lil Cherry와 GOLDBUUDA의 사례도 그렇다. 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우애가 깊은 남매가 발매한 『SPACE TALK』도 완연한 팝-랩 앨범이다. 남매의 아이디어가 출발한 지점은 현재의 유행을 비롯 비교적 소수의 매니아에게서 주목받고 있는 경향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총체로, 그런 면에서 『SPACE TALK』가 가장 최신의 경향을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Jean Dawson의 『Pixel Bath』, Rico Nasty의 『Nightmare Vacation』, Tkay Maidza의 『Last Year Was Weird, Vol. 2』 EP (이상 2020)와 같이 근래 국외에서 주목받는 몇 장의 팝-랩 작품은 아주 좋은 레퍼런스가 되었을 것이다.

절규에 가까운 Mudd the student의 피처링, 두 트랙의 상반된 속도감, 이모코어와 얼터너티브 락의 대비 등 앨범을 시작하는 두 개의 트랙 「Power Rangers」와 「Rockstars」부터 이들이 서로 다른 속도감을 즐긴다는 것을 대번에 보여준다. 한편 「Golden Mulan」에서 Lil Cherry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은 앨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주술에 가까운 랩 싱잉과 반복적인 가사를 동원한 그녀의 퍼포먼스는 『SPACE TALK』 역시 그녀에게 딱 맞는 옷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CATWALK」는 『Las Ruinas』 Mixtape (2022)의 선공개 트랙들을 완전히 빼다박은 모양새인데, 그 주인공인 Rico Nasty가 참여한 점은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남매의 추진력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 추진력은 남매를 시종일관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듯하다. 조지환의 말처럼, Lil Cherry와 나란히 함께 랩을 하기에 Jvcki Wai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을까? SNS 음악 시대에 걸맞게, 이들은 12개의 트랙을 앨범에 담으면서도 30분의 러닝 타임으로 압축해놓았고, 시종일관 듣는 이를 흥겹고, 정신없고, 몽롱하게 만든다. 이들의 추진력은 가히 그들을 우주 공간 어딘가로 날려보낼 만한 것이다.

『SPACE TALK』를 통해 이들 남매는 가사 형식을 파괴하고, 기존의 장르 문법을 거스르며, 노골적으로 헤도니즘을 전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 FRND」에서도 GOLDBUUDA가 대놓고 말하지 않는가. “그냥 좀 즐기자고!” 물론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리와 가사에 무언가 깊은 의미가 서려 있다고 믿거나, 혹은 그러하다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유무를 작품성의 근간으로 여기는 일부 장르 팬들에게는 현재 통용되는 팝-랩의 문법이 썩 용납되기 어려운 듯하다―이는 특정한 환경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SPACE TALK』를 외면하기엔, 트랩과 클라우드 랩, 디지코어와 이모코어, 글리치 합과 얼터너티브 락, “오늘을 즐겨라!”라는 주문을 아주 성실히 실천하는 태도 등, 『SPACE TALK』에는 남매에게 기대할 수 있을 모든 종류의 재미가 고루 담겼다. Lil Cherry와 GOLDBUUDA는, 기존의 사유와는 달리 생성된 갈래로 뻗어가며 새로이 만들어진 힙합의 소리에 관심이 있던 국내 랩/힙합 아티스트 중 그들을 가장 잘 다룬 사람이고, 『SPACE TALK』는 그러한 방향성에서 나온 걸출한 작품이다. – XENITH

 

 

The Best Rap/HipHop Track of 2022

009, 「돈 가져와」, Self-Released, 2022.03

한국대중음악에서 경제적 양극화가 작품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장르는 한국힙합이다. 힙합의 근원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역사는 장르의 다른 맥락들을 거세시킨 채로 가장 노골적이며 자극적으로 표상되는 경제적 맥락만을 남겼다. 이미 정상 부근에 도달하여 성공에 도취된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어떻게 자수성가했는지, 얼마나 돈을 쌓아뒀는지를 거만하게 노래한다.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수많은 다른 아티스트들은 아랫공기를 마시며 자신의 곤란과 가난을 노래한다. 그것은 크게 야망에 대한 표출과 신세한탄이라는 두 부류로 나눠지지만, 또한 가장 개인적인 치부를 작품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겠다. 개인적 부의 획득이 목표가 된 만큼 한국힙합이 점점 개인적인 장르가 되어간다는 분석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미국의 모든 래퍼가 Kendrick Lamar가 될 수 없듯이, 한국의 모든 래퍼가 김심야처럼 작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한국힙합에 대해 ‘장르 자체가 뻔하고 시시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겠다 ― 사실 이것도 이미 몇 년 이상 된 물음이다. 다만 작품의 장르적 진부함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일반적으로 먹힐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그 안에 자리한 상투적 문법은 반대로 생각하면 그에 그만한 보편-지향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성립된다. 간단히 말해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시선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운’ 감흥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2년 한국힙합에서는 009의 「돈 가져와」가 그런 트랙이었다.

가령 「돈 가져와」의 첫 두 마디는 2022년을 통틀어서 가장 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노랫말이 되겠다. “공과금을 포함한 관리비는 냈어”라는 라인은 한국힙합의 현실을 정리하며, “나머지를 마무리하려 뱉어”라는 라인은 한국힙합에 투사되는 환상을 축약한다. 알바 뛰는 신세는 예술가에게 ‘Self-Disrespect’라고 Beenzino가 말했듯, 이미 신화에 매료되어버린 한국힙합에서 작품활동이 아닌 노동을 통한 소득의 획득은 부끄러운 일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그를 통해 자연스레 ‘공과금’과 ‘관리비’라는 현실적 ‘푼돈’을 납부하기 위해 ‘투잡’을 뛰는 화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후자의 시작이 ‘나머지’가 되는 것은 실로 절묘한 낱말의 선택이다. 그것은 못 다번 생활비가 될 수도, 혹은 현실에 비해 저 높이 올라가있는 야망의 금액이 될 수도 있다. 009는 그것을 (랩을) ‘뱉음’으로써 마무리하고자 한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강제된 비용이 아니라면, 그를 본업(랩)으로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돈 가져와」의 첫 두 마디는 그렇기에 한국힙합에 대한 가장 적실한 요약이 될 것이고, 그렇기에 현실과 맞닿아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장르적인 파괴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사실상 「돈 가져와」는 첫 두 마디의 독보적인 성취가 트랙의 다른 모든 성과를 뒷받침한다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첫 두 마디의 파괴력이 뒤이어 009가 “어쩌고저쩌고 좆까고” 시작하는 한스런 랩에 그 자신이 ‘날 것’으로 보이게 하는 작용을 가하기 때문이고, “돈 가져와”라는 다소 공허한 외침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며, 트랙 전체가 ‘전기적으로’ 유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 가져와」에 적은 노랫말을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풀어내는 009의 랩 퍼포먼스도 ― 특히나 두 번째 Verse에서 009가 구사하는 랩은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가장 위력적이다 ― 트랙의 가치를 드높이는데 일조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분명 큰 틀에서 「돈 가져와」는 상술한 한국힙합 자체의 진부함에서 벗어나있는 트랙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009는 「돈 가져와」를 통해 왜 아직도 한국힙합의 주된 문법이 장르적인 유효함을 지닐 수 있는지를 증명해냈다. 바로 그 의미에서 2022년의 한국힙합의 가장 큰 성취는 「돈 가져와」일 것이다. – coloringCYAN

 

 

The Best R&B/Soul Album of 2022

Rad Museum, 『RAD』, you.will.knovv, 2022.03

“I’m in the rad museum.”(「God’s Work」) 마치 한 허리 배어낸 동짓달 긴 밤을 이불 아래 두었다가 굽이굽이 펴듯이, 일방통행하는 시간의 흔적을 한 공간에 늘어놓은 이 “쩌는 박물관—Rad Museum”은 필시 시공이 뒤틀려있을 것이다. 코러스로 이룬 소리의 벽이 멈춘 시공간을 감싸고, 거기서 화자는 그저 신이 만든 형상에 감탄할 따름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문을 닫을 테고, 우리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 이제 다시 「AirDrop」처럼 재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다. (해당 곡에서 AirDrop과 같은 기계 기술을 거부하고 인간 본래 능력을 예찬하는 태도는 복선과 같다.) 거기 “섞일 수조차 없는”(「이 밤에」) 「한량」에게 이런 삶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이 놈의 정보화 시대”—「instagram」(DEAN, 2017)—에 싫증을 내던 이와 함께 세상과 연결을 끊고서(「Off-Line」), 출구(「EXIT」)를 나와 차원을 건너(「4D」) 내면에 잠재한 우주를 발견하러 구도의 여행을 떠나고(「Say Hello Inner Child」), 화자는 이윽고 깨닫는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영원한 「God’s Work」 안을 맴돌며,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고 (「Forever」).

Rad Museum의 솔로 데뷔 EP 『Scene』(2017)은 축축한 음색으로 아련한 서정과 로킹한 향수를 블렌딩해 깊은 풍미를 완성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본작은 당시의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소리와 서사의 확장을 꾀하는 데 성공하며, 아티스트 본인의 핸들 네임을 제목에 각인한 것처럼 당분간 그를 대표할 탄탄한 음악 세계를 한 데 담아냈다. 「Dancing in the Rain」의 이국적 풍취가 담긴 기타 연주는 의외로 한국 포크를 떠올리는 「젖은 우산」에서 예상치 못한 코드 워크로 계승되고, 「ㅗ매드키드ㅗ」의 로킹한 바이브는 날카로운 리프와 펑크(punk) 비트를 위시한 「EXIT」, 프로그레시브- 혹은 포스트-록적 전개를 띠는 「Forever」가 각각 바통을 잇는다. 피아노가 통통 튀는 「AirDrop」과 리드미컬한 펑크(funk) 넘버 「한량」은 센스 있는 라임과 유머러스한 낱말•레퍼런스 차용—이를테면 펜타곤, BLOO, 혁오의 대표 멜로디 등—으로 이목을 확 사로잡고, 사이키델릭한 네오 소울 「U」와 뉴 디스코 비트가 댄서블하게 찍히는 「Off-Line」의 준수한 멜로디에는 세련된 팝 감각이 번쩍인다. 게스트 참여도 적절하고, 특히 Wonstein의 멜로디, 이하이의 차가운 정서 표현, LOCO의 랩 스킬 등이 각 곡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2010년대 이후로 얼터너티브 R&B는 장르 씬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고, 국내에도 DEAN, offonoff와 같은 아티스트가 해당 장르 대표 주자로서 트렌드와 팝 감각, 악곡 완성도를 동시에 잡곤 했다. 바로 그들이 주도한 CLUBESKIMO 크루 및 DEAN이 설립한 레이블 you.will.knovv 소속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Rad Museum은 그러한 흐름 중에서도 특출난 작품을 발표해 왔고, 본작은 빼어난 형식으로 아티스트의 생각, 감정,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며, 앨범 단위로 가장 큰 성취를 이룬 얼터너티브 R&B 팝 작품 중 하나라 감히 일컬을 수 있겠다. – 만능초보

 

 

The Best R&B/Soul Track of 2022

유라 & 만동, 「지느러미」, (주)문화인, 2022.11

이 노래의 가사는 “끓어오르는 열망”으로 시작한다. 그에 걸맞게, 이 노래가 가장 잘하는 것은 저 열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단, 급히 데우고 바로 불에서 내리는 식으로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천에 거르면 방울져 떨어질 진액만 남을 때까지, 달이고 졸이고 고아내듯이.

전주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노래는 시작할 때 이미 불 위에 올라 있다. 만동과 유라는 노래의 첫 박에서부터 곧장 한꺼번에 등장한다. 처음에 그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움직이듯이 신중하게 소리를 내지만, 그러는 중에도 뭉근하게 열기를 달구어 간다. 기타는 그들이 지핀 불의 세기를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노래에서 기타는 마치 조금씩 자그맣게 올라오다 어느순간 요란하게 치솟는 기포들 같다. 그 기포들은 우선 첫 코러스가 끝난 뒤 유라가 몽롱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 수면을 어지럽힐 것이다. 기타의 소리가 멎는다면, 그것은 불기운이 전보다 더 뭉근해졌다는 신호다. 결코 식었다고는 할 수 없을 그 잔열 속에서는, 유라의 목소리가 휘두르는 마력과 리듬의 미묘함이 훨씬 더 또렷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불길이 갑작스레 강해진다. 훨씬 거칠어진 음색과 함께, 솔로 앞뒤로 배치된 기타의 난폭한 스트러밍이 솥 속을 헤집어 놓는다. 아마 솥 위로 빠져나온 증기가 온 주방을 후텁지근하게 만들 것이다. 한참을 펄펄 끓인 뒤, 이들은 이내 다시 불을 줄이고, 작은 기포들이 수면 위로 피어오르기를 기다린다.

「지느러미」의 열기는 점진적으로 오르내릴 때에나 아니면 빠르게 뒤바뀔 때에나 항상 많은 것을 함께 변화시키고, 곡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며, 또 때로는 강렬한 기세로 청자를 흥분시킨다. 이들의 능란한 불조절은, 이 노래를 갈수록 흥미로워지도록 만든다. 5분 20초 내내, 모든 구간에서 더 세거나 더 여린 자극들이 새로이 나타나고 이어진다. 이런 노래를 어떻게 흘려들을 수 있을까. – 조지환

 

 

The Best Electronic Album of 2022

김도언, 『Damage』, SoundSupply_Service, 2022.05

「청명」한 하늘과 「Green Screen」을 오가는 앨범이라는 아티스트의 서술처럼, 인식의 양면성을 오가는 앨범이다. 사실(事實, reality)에서 사실(寫實, realism)로, 자연(nature)에서 자연스러움(natural)으로…. 앰비언트 텍스처를 매개로 하프, 바이올린 등의 (가상) 악기나 글리치 등의 샘플이 수시로 교차하는 소리가 마치 게임 배경음악을 연상케 한다 — 앰비언트 장르 창시자로 알려진 Brian Eno가 Windows OS 효과음 작곡가이기도 한 것을 상기해보자. 「Portal」, 「창」이라는 단어가 정보화 시대 가운데서 컴퓨터/인터넷 용어로 쓰이듯이, 화자가 가상 세계로 접속한 뒤 「SaGA」 – 「거울」 – 「늪」 – 「모습을 바꾸는 요정들」로 이어지는 판타지 문학스러운 제재를 지닌 페이즈(phase)는 우아하고, 음산하고, 장대한 분위기가 멜로딕하게 얽히며, 전자음악이라는 인공적 소재를 가지고 토속•제례적 신비로움을 경험케 하는, 대립된 인식의 경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극적인 하이라이트다.

본작의 질감이나 리듬, 편집 방식에서 괄호로 전술한 Brian Eno를 비롯해 Cornelius, Flying Lotus, Oneohtrix Point Never 등이 떠오르고, 전반적으로 수놓인 멜로딕한 아르페지오는 그가 영향의 근원으로 윤상과 토이 등을 지목한 것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이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건 서두에 언급한 여러 대비적 요소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는 변화를 수반하는 전개 방식을 통해 입체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 또 장르를 불문하고 국내 음악계에서 내로라 하는 게스트를 불러 모은 게스트 진 활용도 인상적인데, 이랑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황소윤과 Rad Museum의 몽환적인 가창, 이민휘와 이이언의 부유하는 목소리를 각각 이용하는 방식 등을 보면 신인 프로듀서가 이들을 기용하여 본인이 구현하는 세계에 적재적소로 배치하는 놀라운 기량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기본적으로 연주 앨범인 만큼 특히 후반부에서 피날레로 이어지는 「Lizard Wizard」 – 「Stock Quartet」 – 「Green Screen」 라인의 클래식•기악 요소가 들어간 연주 또한 아티스트의 폭넓은 표현 영역을 확인시켜준다. 본작이 다양한 장르로 구분될 소리를 담은 것과 서사 진행에 있어 언어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점 역시 비범할 따름이다.

비디오 화면 너머 캐릭터에 스스로를 이입하며, 소리의 수풀을 가로질러, 기어이 답을 찾아낸 듯한 화자에게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끝내 미디어를 분리하여 꿈에서 깨우고 말지만, 잔상이 아른거리는 이 푸른 몽타주가 청자에게 각인한 새로운 충격—damage—은 발 디딘 현실에 끊임없이 맴돌 것이다. 본작에 담긴 훌륭한 연주와 구성, 신선한 질감은 물론, 대중음악 — 특히 언어의 참여도가 적은 전자음악 — 작품을 통해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로 청자를 이끌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거둔 성취는 기념비적이다. – 만능초보

 

 

The Best Electronic Track of 2022

250, 「로얄 블루」, BANA, 2022.03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도 파란색이라는 색깔은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의 왕정부터 현대 많은 국가의 정당에 이르기까지, 거대 기업이나 스포츠 구단, 집단과 개인의 선호를 아울러 파란색은 분야나 사회를 가리지 않고 가장 사랑받는 색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파란색이 영단어 ‘blue’로 쓰일 때 ‘우울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경우를 떠올린다. 250의 「로얄 블루」가 일종의 파랑을 묘사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이것이 프랑스 국기의 파랑이 갖는 ‘자유’나 대다수 기업의 파란색 심볼이 갖는 ‘안정’, 하늘과 바다의 파랑이 갖는 ‘희망’이 아닌, ‘우울’에 가깝다고 느낀다.

그리고 「로얄 블루」 속에 내재한 여러 소리들, 가령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드럼 머신의 리듬, 아련한 휘파람 소리, 몽글몽글한 질감의 신디사이저, 애절한 허밍과 깊은 정취를 지닌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와 같은 소리들은 「로얄 블루」의 이와 같은 우울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것이다. 심지어는 뮤직비디오에서 새빨간 셔츠에 새하얀 수트 피스를 갖춰 입고 바에 앉아, 시뻘건 라벨의 시바스 리갈 양주와 말보로 레드의 담배 연기를 번갈아 들이 마시는 250의 모습 뒤로 펼쳐지는 장경까지도 「로얄 블루」의 정취를 그려내는 하나의 음악적 요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와 같이 「로얄 블루」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만들어내는 인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일관된 정서를 지니고 있다.

약 15초 내외의 간격으로 온갖 소리들이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는 「로얄 블루」의 구성은 시종일관 서로 다른 사운드를 함께 배치하거나 이격 시키면서 나아간다. 각각의 소리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여백이 인식될 때도, 하나의 사운드를 중심에 위치시켜 그것을 주인공의 자리로 격상시키는 순간에도, 혹은 모든 소리들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자아낼 때에도 「로얄 블루」는 한결같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리고 나는 「로얄 블루」가 재생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뮤직비디오 속 250이 등지고 있을 법한 바의 무대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무대와 같은 모습으로 연상해 본다.

무대 위에는 어둠이 가라앉아 있고, 그 위에는 셋 정도의 연주자가 서있을 것이다. 아마 색소폰을 부는 이정식이 가운데에 위치해 있을 테고, 그 옆에 서서 무신경하게 드럼 머신을 두드리거나 신디사이저 키보드를 누르는 250을, 그리고 흥에 겨워 휘파람을 불거나 알 수 없는 단어를 흥얼거리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무대 위에 서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곧이어, 나는 이들이 합을 맞추며 서로의 연주를 주고받는 4분 가량의 대장정을 그려본다. 얼떨결에 무대에 오른 낯선 이들이 서로의 장기를 뽐내는, 다만 그 실력이 너무도 뛰어나 마치 수십 년은 함께 활동했을 것만 같은 수준의 궁합으로 각자가 돋보일 순간을 제 알아서 만들어내는 그런 풍경을 말이다.

실제로 「로얄 블루」가 재생되는 4분 37초 동안 음악 속 공간을 채우거나 그곳에서 빠져나가는 여러 소리들은 아주 매끄럽게 연결되거나 분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소리들은 다소 뜬금없는 정취를 띠기도 하며, 혹은 급작스럽게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려 들거나 예상치 못한 순간 그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의 유려함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일순간의 감흥은 무척 인상적이며, 때로는 감동적이거나 황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곡의 초반부에 아주 무겁고 부드럽게 등장하는 색소폰 소리가 중반부에는 갑자기 거친 모습으로 짧은 순간 모습을 비추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듯 화려한 연주로 곡을 마무리하는 순간은 「로얄 블루」 특유의 정서를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곡의 절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앞서 말했듯 하나의 소리, 한 명의 연주자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순한 리듬 위에 난데없이 고막을 쾅쾅 울리는 강한 어택의 전자음을 찍어내거나, 느리고 간결하게 음을 짚어내던 신디사이저가 중반부에 이르러 색소폰에 비견될 만큼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순간에는 무대 위 250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테다. 혹은, 곡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휘파람이나 허밍을 듣는 순간 청자는 자연스레 그 소리의 주인에게 눈길을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나는 다시금 「로얄 블루」를 연주하는 이들이 서있는 무대를 떠올린다. 무심한 표정으로 전자 악기를 누르고 있는 250, 분위기에 취해 알 수 없는 몸놀림을 펼치는 이정식, 그리고 삐져나오는 흥을 주체 못하고 전자음과 색소폰 소리 사이로 난입해 자신의 흥을 펼쳐내는 이름 모를 이가 장식하는 그 무대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들이 꾸며내는 무대를 바라보는 내내, 그리고 무대가 끝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세 연주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알 수 없는 우울에 빠질 것 같다. 이는 마치 수많은 사람의 환호를 뒤로하고 무대에서 내려온 음악가가 느낀다는 공연 후 우울(post show blues)과 유사한 모습으로, 그러니까 연주자들이 쏟아내는 화려하고 강력한 희열과 흥취를 남겨둔 채 그곳을 빠져나와야 하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우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울함은 음악을 다시 재생하는 순간 회복될 수 있으며, 다시금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펼쳐질 4분간의 정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로얄 블루」가 선보이는 가치는 재현된다. 우리가 흔히 일렉트로닉 음악에 기대하는 유별난 모습을 지닌 트랙은 아닐지라도, 「로얄 블루」에 듬뿍 담긴 정서와 그것에 흠뻑 빠져 곡의 운치를 표현하는 연주자들의 치열한 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트랙 안에 온전히 담아낸 250의 고된 노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로얄 블루」라는 트랙이 지니는 미학은 완성될 수 있다. – 양소하

 

 

The Best Folk Album of 2022

도마, 『도마』, Self-Released, 2021.12

『도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깜깜한 밤, 빛이 들지 않는 방이다. 방에는 모래톱이 펼쳐져 있다. 누군가가 그 방 안에서 졸면서 춤을 추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모래를 밟고 선 채 그를 바라본다. 잠든 채 춤을 추는 이의 움직임을 그려내듯, 「잠든 마음」은 몽롱하고 나른한 음향과 느긋하게 몸을 들썩일 만한 리듬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도마』는 저 이미지들을 조금씩 바꾸어 가며 연거푸 보여준다.

빛 (또는 어둠)과 밤은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에 이르기까지 매번 주의를 받는 대상들이다. 「서울」이 도시를 묘사하며 보여주는 것은 신호등의 불빛과 늦은 시간까지 지치지 않고 창문을 비추는 거리의 조명들이다. 반대로 불빛이 없기에 그림자도 있을 수 없는 적막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웅크리고 있는 게 편했다」는 창문 없는 실내를 선택한다.

『도마』의 방들에서는 항상 조도의 조절이 문제다. 방 속에서는 불을 끄더라도 외부의 빛을 제어하기 힘들다. 2번과 4번 트랙에서 그 곤란은, 밤새 밝은 창을 보거나 그러지 않기 위해 창을 없애야 한다는 양자택일적 궁지로 제시된다. 『도마』는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에 이르러 저 방 밖으로 나올 것이다. 천장 없는 곳에서는 불빛이 없는 밤에라도 달빛이 거리를 비춘다. 선 채로 부대끼는 일에 지친 탓에 소파로 파고들어(「거리의 거리」) 웅크려 있던(「웅크리고 있는 게 편했다」) 『도마』는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에 이르러 다시 다리 위에서 직립하며, 첫 곡에서 그랬듯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춤은, 첫 곡에서 바랐듯, “아무도 모르는” 춤이라고 한다. 첫 곡에서 춤추던 이가 자기 곁에 선 다른 이를 어느새 뜻하지 않게 발견했다고 한다면, 이제 이 노래에서는 춤을 추는 이 스스로가 먼저 어딘가 있을 다른 이를 떠올리고 있다. 춤은 마치 소식처럼 그에게로 전해지겠지만, 그러나 남들의 시선 밖에서 내밀하게 나아갈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의 뒷부분에서는 곡의 분위기를 다소간 소란스럽게 만드는 효과음이 마치 사이렌의 경보음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김도마의 콧노래는 그 소란의 한 가운데에서 나지막이 이어진다. 나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부산하고 시끄러운 도시의 외각에 놓인 다리 위에서 남몰래 어렴풋한 달빛을 받으며 춤을 추는 이를 상상한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의 끝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을 본다. “시간은 […] 젖을까”라는 물음 뒤로, 이제 습기 내지는 물이 새로이 주의를 받게 될 것이다. 「화양연화」에서 물은 소통의 매개요, 구어보다도 더 정확하게 의미작용을 하는 기호다. 빗방울은 “나보다 말을 더 잘”하고, 떨어지는 빗방울 너머로는 두 팔 벌리고 달려오는 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 때부터, 춤은 누군가 혼자 추는 춤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춤을 추고 싶어, 당신과.”

「겨울 발라드」에서 물은 만남의 무대, 그것도 나아가는 방향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천천히 운동 중인 무대다. 이 노래에서 물은 마치 천에 물기가 스미듯 젖어드는 물도 아니고, 빗방울처럼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떨어지는 물도 아니다. 이 노래의 물은, 그 한 가운데 떠가는 이가 어디로든 흘러 가면서도도,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지난날을 가지런히 갤 수 있도록 서둘러 가지는 않는, 깊고 넓은 물줄기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눈 감고도”, 그러니까 빛에 의지하지 않고도, 모른 채로 답을 맞히는 양 만나게 된다.

두 곡의 「겨울 발라드」 중 거누의 판본은 아마도 앨범의 마지막 곡이 되기에는 김도마의 판본보다 더 알맞은 판본일 것이다. 쓰인 악기들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둘이서 노래를 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서 흐르는 물은 『도마』가 한겨울에 찾아낸,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대상이다. 그것이 새로운 만남을 위해 길을 잃기 위한 조건이고, 길을 잃었다가도 반갑게 다시 마주하기 위한 배경이기 때문이다. 함께함의 배경과 조건을 ‘함께’ 노래하고 있는 마지막 곡은, 뭉클하면서도 굳세고 힘찬 결말로 다가올 것이다. – 조지환

 

 

The Best Folk Track of 2022

도마, 「잠든 마음」, Self-Released, 2021.12

도마의 「잠든 마음」에 관해 현재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영상 기록은 2019년 초봄 즈음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들은 영상으로 남아있는 것 이외에도 홍대의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의, 자그마한 공연장에서, 어쩌면 그 전부터 꽤 자주 「잠든 마음」의 초안을 연주하고 전시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든 마음」은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쳤다. 김도마의 즉흥성에 기대었던 멜로디가 조금은 더 정형적으로 변했고, 가사는 거의 환골탈태의 수준으로 바뀌었다. 악곡의 구조도 상당 부분 바뀌었는데, 가령 기존에 8마디였던 도입부가 16마디로 바뀌었고, 벌스에서 후렴구로 넘어갈 때 하나의 코드를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2마디가 삽입되어 극적인 전개를 꾀했다―후렴이 이미 두 벌의 6마디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 폭의 변화는 아니겠지만 사장조의 트랙으로서 이미 특이한 형태의 코드 진행도 조금은 더 세밀해진 듯하다. 김도마와 거누의 기타 연주, 김도마의 목소리만이 존재하던 트랙에 드럼의 라이브 연주, 신시사이저의 활용이 추가된 것은 결정적이다. 그렇게 우리가 아는 「잠든 마음」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일은, 솔직히 말해 기적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도마』가 발매된 뒤 거누가 남겼던 글에서도 저 하나의 문장만큼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없을 테다. 김도마는 2021년 그녀의 생일날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그 전까지 도마는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하는 일에 열정적이었고, 거누는 그녀가 떠난 후 생전에 함께 작업하던 곡들을 이어받아 『도마』의 작업을 완수했다. 이 과정에 대해 유추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곡선으로 뻗어 있는 찬연한 자취를 보며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생전 김도마는 본인이 구현하고 싶었던 소리를 위해 미디를 배웠다. 거누는 그 소리가, 그가 몸담은 또 다른 밴드 문소문의 카코포니와의 협업을 통해 매개되고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듯 보인다. 앞서 결정적이었다 서술한 드럼의 라이브 연주와 신시사이저의 활용은 이 과정에서 추가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김도마의 보컬이 다른 소리의 연주와 함께 미묘한 싱코페이션을 만들어내는 것도 결정되었을 것이다. 끝끝내 “아무도 모르는 소식”이 되어버린 김도마의 마음과 그에 서린 알 수 없는 쓸쓸함은, 거누의 열정에 의해 너무나도 빛나는 것으로 승화한다.

―우리 <온음> 일동은 지난 한 해의 음악을 돌아보는 총결산을 진행하며 도마에게 상당히 많은 자리를 할당했다. 이는 1년여 전 『도마』가 발매되었을 때부터 뛰어난 마감처리를 이유로 들며 꾸준히 염두에 둬왔었던 사항이었고 회의를 진행하던 과정에서도 큰 이견이 없었다. 지금 이 글은, 그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쓰인 글 중 하나이고, 또 이 페이지에 접속해 있을 당신이 가장 마지막에 읽게 될 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다음의 마지막 문단을, 조금은 힘을 주어서 쓴다.

『도마』의 첫 트랙이 된 「잠든 마음」이 우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거나 울렸을 것이라 굳게 믿은 이유 중에는 분명 김도마의 요절에 대한 안타까움 또한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욱 서술해왔듯 반드시 그런 취지로서만 이 자리에서 「잠든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더해 우리는 「잠든 마음」을 통해, 남겨진 이들이 소중한 이의 부재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았고, 또 그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그 열의를 보았다. 우리는 그것에 마음이 동했다. 유명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2000)에 대한 한줄평으로 “스쳐 가는 순간들로 사랑의 시간을 인수분해하다,”라는 근사한 말을 남겼다. 「잠든 마음」도 그렇다. 트랙이 만들어지던 과정, 창작자의 고민, 도마라는 밴드가 추구하던 소리 등 그 모든 것들이 도마라는 밴드의 시간에 있어 인수가 된 것이다. 물론 「잠든 마음」에 관해 기억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슬픈 일이다. 그러나 함부로 단언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가도,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기뻐도 될 만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거누만큼이나, 김도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낮은 자세로 조의를 표하며, 「잠든 마음」을 사유할 수 있음에 기쁜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 XENITH

 

 

The Best Pop Album of 2022

야야 킴, 『a.k.a YAYA』, Self-Released, 2022.01

『a.k.a YAYA』를 야야 킴(또는 야야)의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야야 킴은 그가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한 것을 족히 전부 담아낼 수 있었을 법한 갯수의 트랙들을 만들고, 그 모음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며칠에 걸쳐 나눠 들을래도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이 앨범은, 재생 시간 두 시간을 넘어가는 중에도 흐지부지 되거나 느슨해지지 않는 일 없이, 끝까지 형태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다. 예컨대 CD3에서는, 화려한 편곡과 사나운 음색들 사이에 비교적 차분한 피아노 연주를 (디스크 3의 5번부터 7번 트랙까지) 세 트랙에 걸쳐 연달아 배치함으로써 분위기의 변화를 완만하게 조정하는 흐름을 구성한다. 이런 식으로 긴 시간 동안 조직력에 대한 집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앨범이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곧 이 앨범의 성격을 요약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지는 않는다. 애당초 서른세 트랙이 서로 다른 개성을 보존하고 있는 군집에서, 단일한 앨범의 개성을 단순하게 추려낸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무심하리만치 고집스런 상상력과 추상만이 그것을 무리하게나마 가능케 할 것이다.

그 성격을 요약하기란, 이 앨범 속 각각의 디스크들에 대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라이너노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트랙은 장르 혹은 무드로 파트가 나뉘었습니다. : CD1 (Trip-hop, Rock, Funk, Soul, Pop) / CD2 (Nu-tango rock, Jazz) / CD3 (World music, Crossover, Classic, Avant-garde)” 이 앨범의 풍부함은, 이와 같은 도식적 구획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가령, 재즈는 이 앨범 전반에 고루 퍼져 있는데다가, 탱고의 무드라면 「먼지」 인트로의 반도네온에서부터 이미 CD1에 도착해 있다. (이 앨범은 뒤로 갈 수록 라틴 음악의 요소를 자주 꺼내드는데,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오늘날 팝의 유행에도 부합하는 앨범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저 구획 스스로가 자신의 미완성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트립합과 락, 펑크, 소울, 팝을 한 디스크에 모아두는 것은 이미 다소 애매한 분류가 아닐까?

이렇듯 요약하기 어려운 앨범일 수록, 놓치기 쉬운 낱낱의 트랙들이 드러내는 재치를 따로 따로 기억해두는 것도 아마 즐거운 청취를 위해 권장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일 것이다. 『a.k.a YAYA』에는 군데군데 유머러스한 구석들이 있다. 이를테면 「개, 돼지를 위하여」의 끝에는 “00이는~ 바보래요~”라고 서로 놀리는 짤막한 동요의 멜로디가 인용되어 있다. 바로 다음 트랙의 인트로에서부터 나오는 중후하고 쌉쌀한 재즈 트럼펫을 코앞에 두고 스쳐가기에, 저 동요의 멜로디는 더 익살맞게 들린다. 또 「절대 고독」의 경우, 그냥 재즈 넘버라기에는 조금 더 미묘한 노래인데, 멜로디와 목소리의 진동에, 그리고 가사의 정서에 옅게 트롯의 뉘앙스가 발려 있기 때문이다.

가사의 말씨는 거의 자주 위압적이고, 자꾸만 불길한 모티프들을 되풀이하며, 때로는 칼부터 맞고 시작할 정도로 (「미완성 인간」) 강렬한 표정과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힘을 쓰고 있으며, 그렇지 않을 때는 무거운 어휘들을 매달고 공허한 회한 아니면 파괴적인 각오에 빠져들고는 한다. 그 가사들 중에서도, 「오늘 밤」의 첫 벌스에 나오는, 귓가에 맴도는 밤바람이 싸늘하다고 하는 구절은 특기할 만하다. 기실 밤바람이 서늘하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오늘 밤」은 도리어 후끈하다고 해야 옳을 곡이다. 찬 밤공기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을 텐데, 「The Night That Never Ends」의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그렇다. 재앙 같은 불길과 칼부림을 헤치고 나와 이 앨범이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은, 선선해지기 시작하며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초가을 밤의 풀숲이다. 긴 앨범을 끝마치기에는 더없이 좋은 결말이다. – 조지환

 

 

The Best Pop Track of 2022

윤하, 「사건의 지평선」, C9 Ent., 2022.03

「사건의 지평선」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자그마치 15년이 넘는, 오랜 활동을 이어온 아티스트가 다시금 시장의 정상으로 들어서는 과정은 일종의 영웅담, 혹은 가슴 벅찬 성공 서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와 같은 사건의 신호탄이 그의 장기였던 라이브 무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무대가 지난 2년간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팬데믹 이후 재개된 수많은 공연과 축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윤하와 「사건의 지평선」의 서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윤하가 활동해 온 맥락을 잘 알고 있는 팬부터 몇몇 히트곡만 알고 있는 대다수의 대중에 이르기까지, 혹은 「사건의 지평선」을 커버한 많은 가수와 일반인, 곡이 차트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하는 음악 산업 관계자, 트랙의 제목과 연관된 천문학 이슈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학계 종사자들의 이야기 등을 포함해, 2022년의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지평선」을 두고 펼쳐낸 모든 이야기가 구성하는 맥락은 당해의 그 어떤 문화적 사건보다도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앞선 시기 윤하를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트랙들에 비해서 「사건의 지평선」은 다소 힘을 뺀 모습이다. 아련한 사운드를 연주하는 악기들의 연주도 강렬함을 자아내기보다는 트랙의 분위기를 매끄럽게 만드는 데에 치중하는 모습이고, 무엇보다 곡의 중심에 놓인 윤하의 가창도 그렇다.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고전적인 록 보컬의 거친 창법으로 강력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보다, 곡의 주제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부드럽고 감정적인 보컬 퍼포먼스가 돋보인다. 다만, 여전히 윤하의 가창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역량을 요구하며, 여기에 덧씌운 세심하고 짙은 감정은 그 누구도 이 노래가 가진 본래의 형상을 모사하기 힘들 만큼 정교한 만듦새를 직조한다. 물론 「사건의 지평선」을 논하며 곡 안에 자리하는 여러 소리의 구성을, 가령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각 구간에서 필요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자아내는 연주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아주 현란한 기교나 강력한 에너지가 요구되는 연주는 아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아련하고도 서정적인 감성을 확실하게 구현해 내는 다양한 악기의 퍼포먼스는 앞선 윤하의 가창 방식과 유사한 형태로 드러나며 트랙의 미덕을 확장한다.

다만,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을 팝 트랙으로서, 그러니까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으며, 우리를 연결하는 음악으로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사건의 지평선」의 노랫말을 일일이 분석하려 들지 않아도, 그것이 담고 있는 주제와 메세지는 온전히 청자에게 가닿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이를 애절한 이별 노래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은 떠나보낸 이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주제를 뒤덮고 있는 「사건의 지평선」의 핵심은, 결국 앞에 놓인 일련의 고난이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 모두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또는 나아갈 수 있다는 다짐과 위로를 담고 있다는 데에 있다. 본래 많은 사람이 팝 음악, 혹은 대중가요에 요하는 바는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듣는 이의 고통을 덜어주고, 행복을 더하고, 우리네 관계를 더 깊게 연결할 수 있는 음악은 대중가요, 대중음악으로서의 본분을 아주 뛰어나게 수행하는 노래가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더해 음악의 완성도나 트랙이 일궈낸 시장에서의 성과 및 그것이 이루어진 과정, 그리고 노래를 둘러싼 수많은 맥락 속에서 지난해의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준 「사건의 지평선」은 단연코 2022년 최고의 팝 트랙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양소하

 

 

The Best K-Pop Album of 2022

NewJeans, 『New Jeans』, ADOR, 2022.08

2022년 대한민국 문화계의 하반기는 NewJeans가 선사한 충격과 그것의 거대한 파장 속에서 흘러갔다. NewJeans의 등장은 K-Pop을 넘어 대중음악 시장 전반, 혹은 패션과 비주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분야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NewJeans를 둘러싼 수많은 말이 오가는 것을 목격한 순간, 나는 이것이 온전히 K-Pop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New Jeans』의 발매 전후로 이루어졌던 짧은 프로모션과 그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콘텐츠는 NewJeans의 등장을 화려하게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티저 이미지나 영상을 배제한 채 곧바로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방식, 독특한 감각의 비주얼 이미지와 웹사이트 등을 제작한 것, 하나의 트랙에 네 가지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 자체 어플리케이션-Phoning-과 더현대 서울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 등 기간의 길이와는 별개로 자신의 개성과 특징을 모두 담아놓은 영리한 프로모션은 당해 가장 많은 사람에게 도달했으며 그 효과도 확실히 쟁취한 마케팅이 되었다.

한 편, 나는 NewJeans의 활동에서 음악보다는 오히려 이미지나 영상을 비롯한 비주얼의 중요도가 더욱 높다고 판단했다. 가령, Æ Synctx, Hyein Seo 등 국내 브랜드의 구조적인 의상을 착용한 「Cookie」부터 「Attention」의 스포티 룩, 「Hype Boy」의 청자켓과 스쿨룩에 이르기까지 NewJeans의 패션은 단지 하나의 영상이나 무대를 꾸미는 용도를 넘어, 각각의 트랙이 가지는 특성을 강조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특히 그것이 자체 제작 의상이 아닌 기성 브랜드의 제품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또한 SM 엔터테인먼트 재직 당시부터 독특한 감각을 자랑했던 민희진 대표의 총괄 아래 만들어진 NewJeans의 사진과 영상 등의 비주얼은 최근 유행하는 경향과 독창적인 미감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러한 비주얼 콘텐츠는 앞서 언급한 자체 앱과 웹 사이트, 다양한 버전의 뮤직비디오 등 신선한 형식으로 제공되며 기존의 K-Pop 시장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매력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NewJeans의 음악, 그리고 그것과 밀접한 요소가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그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 또한 각 트랙의 특성에 맞춘 방식으로 드러나는데, 「Attention」의 화려한 동작과 「Cookie」의 기물을 사용한 독창적인 퍼포먼스도 그렇고, 높은 중독성과 따라 하기 쉬운 안무로 수많은 챌린지를 양산한 「Hype Boy」를 포함해 NewJeans의 노래에서 춤과 퍼포먼스는 곡의 색채를 확장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한다. 또한 「Hurt」를 포함한 모든 트랙에서 그들의 노랫말은 독특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음반, 그리고 그룹 자체의 시작점에서 자신을 향한 관심을 갈구하는 「Attention」는 과할 정도로 직설적이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가령 “내가 너를 특별하게 만든다”(「Hype Boy」)고 말하거나, 아주 서정적인 고백을 하거나(「Hurt」), 자신만의 매력을 아주 독특하고 괴상하게 어필하는(「Cookie」) 다른 세 곡의 가사 역시 각 트랙의 매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음악을 둘러싼 여러 요소의 활용은 단연 NewJeans의 성과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겠지만, 『New Jeans』에 담긴 네 곡이 지닌 매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활동 전반의 특성은 무시되었을 지도 모른다. 음반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 「Attention」과 「Hurt」의 중추에는 각각 청명한 신디사이저 패드와 부드러운 아카펠라가 자리하며, 상이한 창법을 활용해 때로는 쾌활한, 때로는 부드러운 보컬을 선보이는 멤버들의 가창은 『New Jeans』의 탄탄한 뼈대를 만들어낸다. 이와 동시에, 깔끔하게 디자인된 사운드와 유려하게 이어지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Hype Boy」, 키치한 전자음과 지속적으로 변주하는 리듬, 독특하게 전개되는 가창이 어우러진 「Cookie」는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트랙으로서 마니아와 대중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NewJeans의 음악은 장르 팬덤과 대중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즐기기에 적합했고, 그들의 행보는 K-Pop 마니아도 놀랄 만큼 신선했으며, 음반과 무대, 콘텐츠 등 여러 활동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자체적인 독특한 매력을 갖춘 동시에 현재의 흐름에도 잘 녹아들었다. 본래 K-Pop이라는 장르 자체가 다양한 요소와 특성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분야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NewJeans가 이룩한 성과는 무척 인상적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ADOR와 민희진, 그리고 NewJeans의 행보는 2022년 K-Pop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고, 더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 양소하

 

 

The Best K-Pop Track of 2022

LE SSERAFIM, 「ANTIFRAGILE」, 쏘스뮤직, 2022.10

「ANTIFRAGILE」은 Rosalía를 닮았다. 라틴 리듬을 기반으로 하여 레게-톤의 감상을 지향하는 소리의 구성이나 소스의 배치 같은 악곡적 측면에서는 「CHICKEN TERIYAKI」와 같은 Rosalía의 트랙들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자아의 강인함 내지는 해방을 드러내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써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장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뮤직비디오는 「MALAMENTE (Cap.1: Augurio)」, 「SAOKO」 등 Rosalía의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구도를 취한다. 이 사실은 종종 「ANTIFRAGILE」에 대한 비판의 수단으로 쓰였다. 비판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장르적으로’ 상위호환의 것으로 보이는 Rosalía의 트랙들과의 비교가 굳이 「ANTIFRAGILE」을 찾아듣게 할 이유를 약화시킨다는 것, 둘째는 Rosalía에 대한 적극적 참고 내지는 레퍼런스가 자아내는 커다란 기시감이 「ANTIFRAGILE」 내지는 LE SSERAFIM에게서 기대할 수 있을 독창성을 무력화하여 작품의 가치가 깎여 내려갔다는 것.

주장들의 핵심은 K-Pop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다. 음악작품을 장르적인 것으로 여기며 감상할 때 그 방법의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해당 작품의 장르적 특성을 가늠하며 듣는 것이 보다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기악적 양태나 목소리의 방법 등의 차이로 장르가 구분지어지는 다른 장르들과 달리 K-Pop은 장르를 결정지을 수 있는 차이가 작품 외부에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작품이 같은 소리를 내고 같은 말을 할지라도 그것이 작품 자체부터 그를 발화하는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기획되고 검열/선별된 결과라면 그것은 곧 다른 장르가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이러한 창작의 형식은 한국에서는 유독 독특하게 발생하며, 그것이 우리가 K-Pop이라는 이름에 ‘K-’를 허가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K-Pop은 가벼이 쓰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한국대중음악상’과 같이 기존의 Pop에 춤과 같은 퍼포먼스가 ― 작품을 이루는데 결정적일 정도로 위상이 격상된 채 작품 내부에 ― 있는지를 따지며 K-Pop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K-Pop을 결정짓는 장르적 특성의 핵심이 온전히 작품 내부에만 있다는 오해를 낳는다. ‘izm’과 같이 국적의 차이로만 K-Pop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다소 게으른 사유의 결과다. K-Pop은 그것이 장르라는 사실에서, 그 이름이 작품에 부과되는 것 자체만으로 대중음악 시장을 관통하는 산업적 구조의 화려함과 어두움을 양면으로서 동시에 고찰하게 하는 무거운 낱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청자에게 강요하는 피곤함 탓에 우리는 K-Pop의 특성을 쉽게 잊고는 기성음악을 다루는 방식으로 K-Pop을 자주 다루곤 한다. 이때 K-Pop이 발 딛을 공간은 급속도로 줄어들며, 장르(작품)에 대한 평가는 짜게 식는다. 대중과 평단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각자의 베스트 리스트에 K-Pop의 자리를 쉽게 허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K-Pop 장르를 결정짓는 차이가 작품 외부에 있다면, 그것은 K-Pop을 작품 내부의 요소로 구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희박하다는 말과 같다. 불로초를 갈구하던 진시황처럼 우리가 K-Pop을 기성음악과 같은 틀로 구분하고자 하더라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그저 모든 것을 잠식시켜 중독 상태에 빠트리는 수은일 뿐이다. 스스로가 작품 내적인 특별함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K-Pop은 다른 장르들을 그때그때의 트렌드에 맞춰 입맛대로 취사선택하여 잠식하고 잡아먹는다. 디스코-리바이벌의 유행을 잠식한 2021년의 K-Pop이나 팝-록 유행을 집어삼킨 2022년의 K-Pop과 같이 말이다.

원본이 되는 유행과 K-Pop이 잡아먹은 유행 간의 차이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중독된 탓이다. 그렇게 작품으로서 구분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K-Pop은 자신이 삼킨 트렌드에 여타 장르와는 다른 특별함을 부여함으로써 K-Pop이란 이름으로 완성된다. 그를 발화하는 아티스트를 바탕으로 설계하는 치밀한 기획과 선별의 총체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작품의 발화자가 될 뿐 장르에서는 외부자로만 남았던 아티스트의 성격이 K-Pop에서는 장르적 특징 중 하나가 되는 고유함으로 변해 중요한 독해 대상으로 화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온음>에 K-Pop 작품에 대한 글을 기고할 때 ‘캐릭터성’ 등을 운운한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다.

그런 차원에서 「ANTIFRAGILE」은 지극히 K-Pop이며, 동시에 올해 제출된 K-Pop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K-Pop-스러움’에 충실한 K-Pop이다. 가령 「ANTIFRAGILE」은 올해 대중과 평단 양측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Rosalía의 음악에서 「CHICKEN TERIYAKI」의 레게-톤이 가진 역동성과 중독성을 원본으로써 모사하면서도, Pre-Hook에서의 건반이나 원곡이 가진 단순함의 이점을 포기한 다채로운 보컬 멜로디의 구성 등을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고자 한다. 요컨대 「CHICKEN TERIYAKI」에 클럽에서 들릴법한 Maniac함이 있다면 「ANTIFRAGILE」은 길거리 어디서 들려도 그럴듯한 풍성함을 가지는 것이다. ‘앤타이-프라질’과 ‘안티(티티티)-프라자일’이라는 같은 낱말에 대한 발음의 분리를 통해 Rosalía의 ‘말맛’을 살리려는 시도도 잊지 않으면서 카즈하가 “I can’t feel it”이라 노래할 때 그 부분에 전혀 다른 멜로디를 구사하게 하는 방식이 그렇다. 라인의 끝을 영어로만 맞추는 작사의 어설픔이 철저한 발음 디렉팅을 통해 자연스러움으로 화하게 되는 전략이 그렇다. 「ANTIFRAGILE」은 Rosalía를 모사하면서도 LE SSERAFIM의 작품으로 나아간다.

카즈하가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라 말하며 무대에서 발레 기술을 선보이거나, 사쿠라와 김채원이 “무시 마 내가 걸어 온 커리어”라 말하는 것은 「ANTIFRAGILE」이 우리에게 아티스트의 성격과 역사적 맥락이 작품에 서려있음을 무시하지 말 것을 강제하는 방법이다. 근육을 자랑하는 듯한 LE SSERAFIM의 안무가 그저 우습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전작 「FEARLESS」로부터 이어진 「ANTIFRAGILE」의 서사가 그 안무에서 비롯되는 남성성을 투과하며 지리멸렬하게 반복되어온 K-Pop의 걸-크러쉬를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ANTIFRAGILE」에 대해 상술한 모든 측면들이 곧 LE SSERAFIM을 이루고, 바로 그 이유로 「ANTIFRAGILE」은 올해 등장한 K-Pop 작품들 중 가장 장르적인 왕도를 걸으면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 순간 나는 LE SSERAFIM이 올해 가장 극적인 도약을 이뤄낸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깨지지 않는’ 마음이다. 2022년 K-Pop의 오메가는 「ANTIFRAGILE」이다. – coloringCYAN

2 comments

익명 2023년 1월 14일 - 5:07 오후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노래에 뉴진스를 선정하고 올해의 루키로 르세라핌을 선정한 건 다소 동감가지 않는 결과네요. 한 그룹에게 물아주는 상황을 경계한 건지 몰라도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르세라핌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부진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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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SSERAFIM, 『EASY』 – 온음 2024년 3월 22일 - 8:36 오후

[…] 우리가 ‘온음 2022 총결산’에서 LE SSERAFIM을 ‘The Best Rookie of 2022’와 ‘The Best K-Pop …은 비슷했다. 그녀들이 처했던 여러 곤란들과 그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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