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를 만들고 발표하지 않기

by YANG-SOHA

이 글은 길고 거대한 투정에 가깝다.

별안간 나는 리스트를 만든다. 동시에 리스트가 가지는 함의를 생각한다. 리스트는 단순히 항목을 줄 세우는 행위와 그것의 결과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리스트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 항목을 일정한 순서로 정렬한 것’이다. 이 문장을 뜯어보면 다음과 같은 단어가 남게 되는데, ‘항목’, ‘순서’, ‘정렬’이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요소는 리스트를 만듦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하는데, 셋 중 하나라도 빠진 리스트를 리스트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 가령 ‘순서’를 가진 ‘항목’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항목들의 산개이고, ‘순서’를 가지고 ‘정렬’한 것은 순서의 정의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항목’을 ‘정렬’한 것은 그저 항목의 나열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스트는 ‘항목’이라는 것을 ‘순서’에 맞추어 ‘정렬’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더 세부적인 사항들이 붙는데, ‘항목’은 어떤 주제에 맞는, 그러니까 ‘특정’한 ‘항목’이 되어야 하며, ‘순서’는 ‘일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 맛집 100선’이라는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리스트의 항목 중에 부산의 맛집이 들어있다거나 13위 다음 순서가 갑자기 57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결국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리스트는 만들어진다. 보통 리스트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크게 ‘주제’와 ‘범위’, 그리고 ‘평가 기준’이 있을 것이다. 주제라는 것은 리스트의 항목이 ‘특정’한 분야에 속하게 하는 방향으로 제작된다. 앞서 이야기한 리스트에서 ‘맛집’이라는 키워드는 리스트의 주제를 정한다. 위 리스트가 가지는 ‘범위’는 ‘제주도’라는 지리적 범주와 ‘100선’이라는 정량적 범주이다. ‘범위’는 리스트가 적당한 크기를 가지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평가 기준’은 리스트의 핵심으로, 리스트가 가지는 순서의 정의를 돕는다. 위 리스트의 ‘평가 기준’은 ‘맛집’이라는 키워드를 대변하게 되는데, ‘청결’, ‘맛’, ‘지리적 이점’ 등의 요소가 기준이 될 것이다. 물론 때로 평가 기준에는 객관적인 지표가 자리하기도 한다. 가령 ‘전 세계 100대 부자’라는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전 세계 유력 정치인, 기업인 등의 신고 자산이라는 객관적인 자료를 평가 기준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예술이나 문화에 대한 리스트에서 평가 기준은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 힘들다. 본래 리스트를 만든다는 것은 통계 혹은 평가를 기반으로 하고, 객관적인 정보로 통계를 낼 수 없는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는 리스트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기준을 중심으로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리스트를 제작하는 사람 중 대다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노력을 쏟는다. 물론 리스트가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많은 사람들은 예술이나 문화에서도 리스트가 가지는 객관성을 강력히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스트 작성자는 자신이 작성한 리스트에, 혹은 리스트의 평가 기준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쏟는다. 그리고 현재에 있어 많은 제작자가 리스트에 객관성을 부착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된 방식은 ‘확장’이다. 원래 객관성이라는 요소를 가지기 위해 발생하는 필수 요소 중 하나인 ‘다양성’, 혹은 ‘다수’의 논리에 입각하기 위해 리스트 제작자는 자신의 리스트에 속하는 여러 요소를 확장한다. 가장 쉬운 방식은 리스트에 해당하는 항목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제주 맛집 TOP 5’보다는 ‘제주 맛집 TOP 10’이, 그보다는 ‘제주 맛집 TOP 100’이 더욱 큰 객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물론 거기에는 단순히 다양한 항목이 담겼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양의 항목을 정렬하며 더욱 객관성을 가지게 되리라는 독자의 믿음이 투영되기도 한다. 항목의 양뿐만 아니라 평가자의 수를 확대하는 것도 객관성을 얻는 쉬운 방법 중 하나다. 단연 평가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평가에 참여하는 의견과 평가 방식이 다양화된다는 뜻이고, 이는 자연스레 객관성의 증가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방식이자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평가 기준’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위 리스트를 처음 만들 때 ‘청결’, ‘맛’, ‘지리적 이점’을 평가 기준으로 두었다면, 보다 큰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작자는 ‘주방장의 이력’, ‘테이블 당 회전율’, ‘웨이팅 시간’ 같은 기준을 추가하여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리스트는 객관성을 가지게 되고, 객관성을 많이 가진 리스트일수록 읽는 이에게 보다 좋은 리스트라고 평가받게 된다.

내가 리스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올해 중순 발표된 멜론의 ‘역대 케이팝 명곡 100’이라는 리스트를 보았기 때문이다. 멜론이라는 국내 최대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내놓은 이 리스트는 케이팝이 점점 가파른 성장을 이룩하는 현재에 꼭 필요한 리스트로 보였으며, 보다 미약한 케이팝의 정의에 대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물론 멜론이 발표한 리스트는 여러 부분에서 흥미로운 동시에 신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명 기존의 케이팝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식상하고 의문이 드는 점들이 있었다. 고무적인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평가인단에 있었다. 멜론의 리스트에 참여한 선정위원은 총 35명으로 20명의 음악평론가와 음악방송 관계자 8명, 음악산업 관계자 7명이 참여했다. 이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음악평론가 20명의 리스트였는데, 해당 리스트에는 이미 여러 시상식에 참여한 기성 평론가부터 공식적인 석상에서 이름을 쉬이 보기 힘든 신진 평론가까지 다양한 시선을 가진 평론가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이어 멜론이 해당 리스트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행한 부단한 노력이 가시적이라는 점 역시 흥미로웠다. 멜론이 ‘역대 케이팝 명곡 100’이라는 거창한 리스트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 점이 눈에 띄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앞서 말한 선정위원의 수였다. 기존 국내에서 가장 큰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손꼽히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선정위원이 대략 60여 명, 가장 많은 선정위원이 참여한 ‘팝’ 부문의 선정위원이 19명인 것을 감안했을 때 케이팝이라는 단일 장르의 리스트 작성에 35명이 참여했다는 점은 분명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였다. 이어, 해당 리스트를 멜론과 함께 제작한 서울신문의 참여는 기성 언론을 포함시켜 리스트에 객관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였다. 또한 그들이 내세운 11개의 선정 기준과 5개월이라는 작성 기간 역시 꽤나 깊은 노력을 들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보다도 리스트가 가지는 허점들은 더 크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가령,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보이는 점은 선정 기준에 대한 것이다. 멜론은 해당 리스트의 선정 기준으로 크게 ‘상징성’, ‘흥행성’, ‘작품성’, ‘퍼포먼스’라는 네 가지의 기준과 그 안에 약 3개의 세부 기준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하지만 ‘상징성’ 부문에 들어간 ‘음악적 차별화 시도’가 ‘작품성’과 ‘예술적 독창성’의 차이가 모호하다는 것과, ‘작품성’과 ‘퍼포먼스’를 구분한 것, ‘팬덤’, ‘대중성’이라는 ‘흥행성’ 내부의 모호한 기준 등은 해당 리스트가 객관성을 보유하기 위해 단순히 선정 기준의 수를 많아 보이게 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해당 리스트가 ‘역대 케이팝’에 대한 항목들을 정렬함에 있어서 케이팝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정의를 넘어 ‘역대’라는 범위에 있어 케이팝의 시작을 언제로 볼지에 대해 해당 리스트는 정확한 제시를 하지 않으며 그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별다른 설명 없이 그 시작으로 두고 있다. 이 점은 해당 리스트가 많은 인원과 시간을 투입해 이뤄졌음에도 기반을 제대로 다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 된다.

비록 멜론의 리스트는 고무적인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공존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케이팝과 관련한 리스트 중 가장 크고 흥미로운 리스트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해당 리스트를 간단하게 정리한 결과를 아래에 공유한다. (멜론에서 자체 공유한 최다 랭크된 아티스트, 작곡가, 작사가는 제외한다.)

최다 랭크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 28 회

JYP 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 12 회

DSP 미디어: 6 회

하이브 (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5 회

큐브 엔터테인먼트: 4 회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3 회

울림 엔터테인먼트: 2 회

연대별 랭크 횟수

1990년대: 19 회

2000년대: 24 회

2010년대: 57 회

최다 랭크 연도

2017년: 9 개

2009년: 7 개

2012년, 2015년, 2016년, 2019년: 6 개

이 분석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 다음과 같다. 해당 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랭크된 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는 공동 2위인 JYP, YG 엔터테인먼트의 랭크 횟수를 더한 것보다 많은 곡을 리스트에 올렸다. 특히 현재 케이팝 4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SM, JYP, YG, 하이브의 랭크 횟수 중 나머지 세 기획사의 랭크 횟수를 전부 합쳐야 SM 엔터테인먼트와 비등하다는 점은 분명 상기할만하다. 이어, 연대별 랭크 횟수를 보았을 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랭크 횟수를 전부 더해도 2010년대 곡의 랭크 횟수보다 10회 이상 밑돈다는 점, 최다 랭크 연도에 해당되는 2017년을 포함해, 2012년, 2015년, 2016년, 2017년까지, 2010년대에 근접한 2009년 등 2010년대에 발표된 케이팝 곡이 리스트에 가장 많이 포함되었다는 점 역시 지목할만한 부분이다. 특히 최다 랭크 연도의 경우에는 더욱 흥미로운 지점을 남기는데, 흔히 2세대 아이돌의 본격적인 시작 연도라고 불리는 2009년과 케이팝의 전 세계적 성과를 만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포함한 2012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최다 랭크 연도가 2015년~2019년 사이에 머무른다는 점이 그렇다. 이전 트랙 결산으로 다룬 적 있지만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케이팝이 세계화라는 가시적 성과와 함께 음악적 발전이라는 가장 변혁적인 순간을 맞이했던 시기라는 점에서 유효한 결과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당 시기는 샤이니, f(x) 등 2.5 세대 아이돌의 음악적 유전자를 본격적으로 꽃피운 시기임과 동시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엑소의 데뷔 등 본격적인 케이팝의 세계화를 목전에 두었던 시기라는 점에서 케이팝의 위상과 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한 순간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렇듯 멜론이 발표한 ‘역대 케이팝 명곡 100’이라는 리스트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보다 흥미로운 지점들을 남긴다. 특히 리스트 전반에서 나타나는 다채로운 시선과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케이팝이 지나온 지난 30여 년간의 발자취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욱 세세하게 분석하고자 하는 욕망을 끓어오르게 하는 흥미로운 콘텐츠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리스트를 만들었다. ‘역대 케이팝 명곡 100’이라는 동일한 주제, 범위를 가진 리스트는 나의 노트북으로 기획되고 그 안에서 쓰여졌으며 내 클라우드 드라이브의 폴더 안에 잠들어있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처럼 나는 해당 리스트를 발표할 생각이 없다. 물론 이것은 내가 스스로의 리스트에 가지는 자신감 부족, 객관성 결여 등의 요소로부터 비롯되기도 하지만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해당 리스트를 제작하는 것과 이를 발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동시에 흥미를 크게 잃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리스트를 발표하기보다는 앞선 사례와 같이 리스트에 대한 간단한 정리만을 공유하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다만 나의 경우 2020년이 아닌 2021년까지의 곡으로 선정했다.)

최다 랭크 아티스트

f(x): 4 회

레드벨벳: 3 회

2NE1, 방탄소년단, 보아, 빅뱅, 소녀시대, 카라, H.O.T., NCT 127: 2 회

최다 랭크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 30 회

YG 엔터테인먼트: 8 회

JYP 엔터테인먼트: 7 회

DSP 미디어: 6 회

큐브 엔터테인먼트: 5 회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4 회

울림 엔터테인먼트, 하이브(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블록베리 크리에이티브: 3 회

로엔 엔터테인먼트,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C9 엔터테인먼트, RBW 엔터테인먼트, WM 엔터테인먼트: 2 회

연대별(세부) 랭크 횟수

1990년대: 6 회

2000년대: 15회

2010년~2015년: 23 회

2015년~2019년: 46 회

2020년: 10 회

내 리스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가장 먼저 최다 랭크 기획사 가장 높은 순위에 위치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위상이다. 물론 개인이 작성한 리스트인 만큼 주관과 취향이 보다 많은 관여를 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다른 모든 기획사들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와중 30 회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또한 최다 랭크 아티스트에도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f(x)가 1위, 레드벨벳이 2위를 한 점 역시 상기할만한 부분이었다. 이어, 최다 랭크 기획사의 다양성 또한 눈에 띈다. 멜론의 리스트에서는 2번 이상의 랭크를 기록한 기획사가 8개였던 반면 내 리스트에서 복수 이상 랭크된 기획사는 총 14개였다. 연대별 랭크 횟수를 살펴보았을 때 2020년을 제외한 2010년대가 총 69회를 기록하며 멜론의 리스트보다 확연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앞서 강조한 2015년~2019년 사이의 기간이 총 46회 랭크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전술했듯 나의 리스트는 개인이 작성했기 때문에 35명이 참여한 멜론의 리스트보다는 훨씬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중의 차이만 있을 뿐 전반적인 리스트의 양상은 멜론의 리스트와 나의 리스트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해당 리스트 작성 과정이 고무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간단한 개요에 이어, 내가 이 리스트에 부담을 느낀 이유와 흥미를 잃은 이유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먼저 내가 리스트 제작과 발표에 부담감을 가지게 된 데에는 ‘케이팝’이라는 것을 정의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 멜론의 리스트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던 ‘케이팝에 대한 정의 부재’는 내가 리스트를 작성함에 있어서 가장 공을 들여 작성하고픈 부분이었고, 또한 케이팝의 정의는 리스트 소개의 역할을 넘어 리스트의 선정 기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보다 큰 중압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케이팝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전까지도 다수 행해졌던 것이고, 나 역시 오랜 시간 고민을 해온 부분이었다. 내가 봐왔던 자료에 의하면 케이팝을 정의하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산업적으로 케이팝을 정의하려는 시도이다. 케이팝이라는 용어 자체가 한국의 아이돌 팝을 해외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산업적 용어이기 때문에 케이팝이 가지는 여러 산업적인 부분들을 묶어 산업적인 요소로서 이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록, 힙합과 같은 현대 대중음악의 주류와 크게 반대되는 ‘기획사’라는 개념은 케이팝이 가지는 산업적 독특함을 배가시켰고, 이에서 파생되는 연습생, 팬덤 등의 요소를 통해 케이팝을 규정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해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현재로서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케이팝을 산업적으로 규정하고자 할 때 범하는 오류에서 비롯된다. 흔히 케이팝을 산업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다음과 같은 부분에 집중하는데, ‘거대한 자본과 기획 아래에서 만들어진다’, ‘아티스트보다는 기획사가 주도적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현재 케이팝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도 활용되는 산업적 방식이다. 가령 발라드로 통칭되는 한국의 일부 팝 장르의 경우 기획사나 자본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기획사가 주체적으로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며, 가수에게 가창과 퍼포먼스만 요청하는 방식 등 케이팝과 비슷한 양상을 띈다. 또한 영미권 팝 장르의 경우에도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비중에서 차이가 날 뿐 거대한 자본과 기획사의 본격적인 주도 아래 작품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케이팝과 큰 산업적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케이팝을 산업적으로 규명함에 있어 이러한 점에 집중하기 때문에 실패를 범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숙원사업과도 같은 정의 방식은 케이팝을 음악적으로, 혹은 예술로서 규정하는 것이다. 케이팝이라는 것 자체가 산업이기에 앞서 음악의 한 분야이고, 기존 음악 장르의 경우 일정 부분 음악적인 요소로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을 통해 케이팝을 규정하려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케이팝은 모두가 알고 있듯 다채로운 장르와 음악적 요소를 활용하는 장르로, 하나의 음악적 방식으로 규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장르 내에서도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을 필두로 아티스트만의 색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 역시 유효하게 작용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활용되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방식 중 가장 유효한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 케이팝을 소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앞서 산업적 정의의 방식에서 언급된 ‘케이팝 팬덤’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이들이 케이팝이라는 장르이자 분야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케이팝의 소비적 정의의 쟁점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는 이유는 케이팝 내에서도 팬덤이라는 요소는 가장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예술 분야를 통틀어서도 비슷한 사례나 과거 용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소비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팝은 그런 독특한 팬덤과 함께 대중에게도 적극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은 케이팝이 소비적인 측면에서 정의하였을 때 가장 유효한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더한다. 

그리고 나는 리스트를 위한 케이팝의 정의를 위해 전술한 방식 모든 것을 따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산업적 측면의 경우, 케이팝이 만들어지는 거대한 자본과 기획사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아티스트와 작품을 선정하기로 했다. 거대 기획이라는 것은 케이팝의 초석이자 핵심으로서 케이팝이라는 것을 규정하는 출발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어, 소비적 측면의 경우 기존 케이팝 팬덤이라고 불리는 케이팝 특유의 소비 방식에 부합하는 경우를 케이팝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음악적 정의의 경우에는 조금의 차이를 가지려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케이팝을 음악적으로 규정함에 있어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요소를 중점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댄스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돌 그룹/솔로 아티스트의 팝 음악’이 그것인데,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에 있어서도 담론이 빈번히 발생하고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렇듯 정의를 협소시키는 것이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이어, 이 글에서 언급한 ‘스토리텔링’, ‘다이나믹’, ‘보컬 운용’ 중에서도 ‘다이나믹’이라는 요소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머지의 요소, 특히 ‘스토리텔링’이라는 요소는 현재의 케이팝을 규정하는 데 있어 콘셉트, 테마, 세계관 등의 주요 요소를 창조하는 주된 요소이지만 이는 음악을 넘어 기획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야 하는 지점이 크기 때문에 이보다는 ‘다이나믹’이라는 음악적 측면에 더욱 귀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다이나믹’이라는 요소는 케이팝이라는 장르만이 유독 주요하게 활용하는 특성으로 자리 잡았는데, 여타 장르가 드롭 등의 방식을 통해 낙차를 만드는 것과 달리 케이팝은 그것의 음악적 본질인 여러 장르, 전개 방식, 음악적 방법론을 융합하여 낙차를 만든다는 점이 차별화될 수 있는 음악적 요소라고 보았다. 

따라서 나는 위와 같은 요소를 중점적으로 두어 케이팝을 정의하기로 마음먹었다, 만 이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령 케이팝의 산업, 소비적 측면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케이팝에 대한 여러 객관적 지표와 관련 논문, 서적뿐만 아니라 케이팝이 속한 산업, 특히 국내 여러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케이팝이 음악적으로 가지는 특성들, 특히 ‘다이나믹’이라는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렉트로닉 장르를 위시한 댄스 음악뿐만 아니라 록, 힙합, 알앤비 등의 수많은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수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케이팝을 정의하는 것에 일차적인 포기를 요구받았다. 이어, 케이팝을 정의하는 것 다음으로 케이팝의 역사를 정의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멜론의 경우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초로 두었고, 나의 경우 앞서 언급한 주장의 ‘아이돌 팝’이라는 요소에 맞춰 H.O.T.의 데뷔를 케이팝의 시작으로 보았으나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국내 대중음악사에 대한 폭넓은 조사와 함께 이를 둘러싼 여러 시장, 산업적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부담을 안게 되었고, 케이팝을 규정하는 것에 사실상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리스트의 핵심이자 기반인 케이팝과 그 역사를 정의하는 것을 포기한 이후, 리스트의 발표를 넘어 그 자체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리스트를 전부 만들고 발표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성된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이 가치가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을 하였고, 결국 나는 리스트를 발표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 글은 길고 거대한 투정이다. 내가 하나의 리스트를 보고, 그로부터 리스트에 대해 생각하고, 리스트를 기획하고, 작성하다가 포기하고, 결국 투정을 부리는 지난 몇 주간의 일상을 풀어낸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누군가 이것을 보고 보다 나은 사유와 방식을 통해 케이팝에 대한 효과적인 리스트, 혹은 정의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지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하고,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케이팝은 2020년대에 들어서도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국내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적 성장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케이팝을 이야기하고,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혹 당신은 이 글을 보고 훨씬 더 나은 케이팝 리스트를, 케이팝에 대한 정의를,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유효한 담론을 만들어냈으면 하는 마지막 요청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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