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occhioP (feat. 初音ミク Hatsune Miku & ARuFa), 「匿名M (Anonymous M)」

by MANIL 10001

“익명 M입니다. 노래나 부르고 다닙니다 … 특정하려고 들지 마세요.”

“좋아하는 음식은?” 

“없어요, 인간이 아니니까요.” 

“취미는 있나요?” 

“없어요, 인간이 아니니까요.” 

“실례지만, 연령은?” 

“16살1이에요, 영원히.” 

“영원히?” 

“인간이 아니니까요.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匿名M (익명 M)」은 유명 크리에이터 ARuFa가 분한 인터뷰어와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初音ミク)가 분한 취재 대상 ‘익명 M’ 사이에서 묻고 답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뷰어는 M에게 지극히 인간적인 기본 정보를 묻지만, M은 계속해서 “인간이 아니니까요”라는 답변을 반복한다. 인간을 상정한 물음의 전제 자체가 M에게는 자꾸만 어긋나며, 대화는 평행선을 걷는다. 다만 “요즘 고민 같은 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서 “머리숱이 많아서 고민이에요”, “발음이 안 좋아서 ‘가희(歌姬)’라고 불리는 건 부담스러워요” 따위로 답하며 무기물적인 컨셉트를 깨뜨리는 데 어떤 의의가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단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자.

“최근에 〇〇 씨가 저한테 노래를 안 시켜요. 자기가 직접 노래하거나 캐릭터를 바꾸거나 질리거나 여러 이유로요.” 

이어지는 건 보컬로이드 씬에 대한 메타 발언이다. 보컬로이드 프로듀서가 가수로 전향하는 사례는 어느덧 국민 가수로 자리한 요네즈 켄시(米津玄師) 뿐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2023년 가장 뜨거운 그룹 YOASOBI의 프로듀서이자 서브 보컬리스트 Ayase도 그렇고, 꾸준히 보컬로이드 히트곡을 제조하는 프로듀서 DECO*27 또한 한때 그랬으며, Giga와 같은 근래 인기 프로듀서의 면면을 살펴 보면 아예 보컬로이드가 거쳐 가는 과정 중 하나로 보이는 것이 아주 틀린 인식은 아닐 지 모른다. 보컬로이드가 사양길로 접어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2절에 들어서인데, 이는 후술한다.

“그래도 각자 사정이 있을 테니까, 붙잡아 두는 것도 부담스러울 테니까, 모두 해피(happy)하면 좋겠어요!”

지극히 만화 캐릭터다운 긍정적인 말로 상황을 급히 정리하고자 하지만 —

“그것도 인생사네요.”

“아뇨,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 그러나 M은 조금이라도 공감의 여지를 파고들려는 인터뷰어의 발언을 즉각 부정한다. 이렇게 볼 때, 앞서 맨 처음 “특정하려고 들지 마세요”라고 경고하는 구절은 단순히 특정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넘어서 인격 개체로서 인식되기를 거부하는 구절로 변모한다. 후렴으로 가보자.

“인간인 척 하는 한낱 음악 소프트웨어입니다 … 생명 없는 나에게 당신은 어떤 이미지를 씌울 테인가요?”

그렇다면 2절에서는 과연 어떤 이미지가 씌이는가.

“나보고 곧 끝난다고 하는데, 인간들 당신네도 언젠가 끝나잖아요.”

보컬로이드 즉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는 그 기술이 지닌 가능성에 비해 실질적인 혁신의 기폭제로 작용하지 못한 채 서브컬처 한 구석에 남아버리고 만 인상이 짙다. 비록 지금은 위치가 애매해졌지만, 사상 최초 버추얼 유튜버 — VTuber — 키즈나 아이(キズナアイ; Kizuna AI)가 등장할 당시, 보컬로이드 문화는 확실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의견 역시 심심치 않게 대두되던 걸로 기억한다. 

따지고 보면 의아한 일이다. 보컬로이드와 VTuber는 핵심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보컬로이드에게 캐릭터란 본디 맥거핀이다. 한편 VTuber를 만드는 모델링 및 트래킹 기술은 유기적인 페르소나를 생성하는 행위이며, 또한 음악 활동은 엄밀히 말하면 부가 콘텐츠다. 이들을 공통된 영역에 서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요인은 결국 그 향유층이 겹친다는 점 때문이 될 테며, 이는 만화 캐릭터스러운 존재를 최대한 인간이 감각 및 교류할 수 있는 차원으로 접근시키는 마케팅 방법을 취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인 척 하는 한낱 음악 소프트웨어”라는 후렴구에서 중요한 건 ‘인간인 척’일 지도 모른다. M은 계속해서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강조하지만, 캐릭터라고 하는, 인간을 모방하는 형태를 띨 때야 비로소 그 존재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나더라도 고마워요! 수많은 작품을 주어서 고마워요! 여러분 덕분에 나는 계속 노래를 부를 거에요…!”

“감동적이네요.”

“뭐, 전부 시켜서 말하는 거지만요.”

“… 그렇군요.”

여기서 캐릭터의 자립성은 소거된다. 따라서 「えれくとりっく・えんじぇぅ」(ヤスオP, 2007)나 「ヒビカセ」(Giga / Reol, 2014)와 같이 (의존적이나마) 호혜적인 것으로 묘사되던 프로듀서와 보컬로이드 사이 관계 또한 일방적인 역학을 폭로함으로써 부정당한다. 이를 가지고 문화에서 통용되던 클리셰를 뒤엎었다고 하기에는 그저 얕은 냉소를 드러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컬로이드 소프트웨어에게서 ‘하츠네 미쿠’라는 이름을 제거하여 거기 부과된 각종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업으로 본다면 조금 더 의의를 발굴할 수 있겠다.

2022~2023년의 가장 큰 사회적 화두 중 하나는 생성형 AI의 보급일 것이다. 특히 음악계에서도 소위 ‘AI 커버’를 비롯해 타인의 목소리를 이용한 콘텐츠 제작이 우후죽순 일어나는 가운데 권리 문제가 화두에 점차 오르고 있는 모양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이미 꾸준히 문제 제기되어 온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포르노 제작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논의와도 맞닿아, 첨예하고 진중한 검토를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보컬로이드에 이용되는 음성 합성 기술은 다시금 중요한 고찰 대상으로 부각된다. Crypton Future Media가 개발한, 성우 후지타 사키(藤田咲)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일궈진 문화는 과연 IT 시대의 어떠한 측면을 상징했는가. 왜 〇〇 씨는 최근에 M—미쿠에게 노래를 시키지 않는가. 그 자리를 꿰찬 건 누구인가. 그는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적’인가.

“안녕히 계세요. 하츠네… 앗, 익명 M이었습니다.”

산산조각 부숴버린 캐릭터를 끄트머리에 다시금 소환하는 피날레는 섣부른 반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때 뮤직비디오에서 눈가림막이 글리치와 함께 한순간 벗겨지며 안광을 빛내는 연출은 멋졌다.

칩튠 식 신디사이저에 글리치를 건 멜로디 라인과 트랩 리듬을 기반 삼아 M의 내레이션에 맞춰 소리의 출입을 조절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verse의 구성은 치밀하다. 이어서 후렴은 덥 비트와 코러스 트랙으로 드랍을 찍어 쾌감을 부른다. 물론 보컬로이드 특성 상 웬만해서 일정한 음계가 붙는다고 치더라도, 기본 리듬과 음계를 우선으로 드러내지 않는 대화 형식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스릴을 만들어내는 편곡은 훌륭하다. 이러한 점을 들어 본곡은 2023년 가장 중요한 트랙 중 하나로 기억될 가치가 있다.

  1. 참고로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初音ミク)는 2023년에 런칭 16주년을 맞이한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