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케이팝 리포트 – 2) 대형 기획사 : 대형을 넘은 초대형 기획사의 등장

by YANG-SOHA
   

1) 대형 기획사의 분류와 발전

한때 ‘케이팝 3대 기획사’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케이팝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과 일반 리스너 역시도 빈번하게 사용하는 단어였다. 본격적인 등장을 알린 1990년대 이후, 케이팝의 역사는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련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케이팝의 시장 규모는 점진적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지속해서 일궈낸 기획사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며 ‘3대 기획사’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3대 기획사’로 분류되던 기획사는 SM 엔터테인먼트와 YG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였다. 세 기획사는 단순 성과나 자산 규모뿐만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케이팝 시장의 주축이며,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과 체계를 도입하는 선구자이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3대 기획사’라는 용어로 묶이기 시작한 건 케이팝의 본격적인 도약이 시작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였다. 당시 SM 엔터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 등 동아시아 시장까지 장악한 동방신기(2003)와 슈퍼주니어(2005), 소녀시대(2007), 샤이니(2008)와 같은 그룹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YG 엔터는 2000년대 후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빅뱅(2006)과 2NE1(2009), JYP 엔터는 이른 시기에 미국까지 진출한 원더걸스(2008)와 음악과 TV 프로그램 등으로 인기를 끈 2PM, 2AM(2008)을 제작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데뷔한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빅뱅은 각각 2008년과 2009년에 「주문 (MIROTIC)」, 「쏘리쏘리」, 「하루하루」의 대성공으로 해당 시기 소속사의 몸집을 불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당시에는 세 기획사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SM 엔터의 대항마로 불리던 DSP 미디어(구 대성기획)의 SS501(2005)과 카라(2008), 내가 네트워크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2006), JYP 엔터 출신의 홍승성이 설립한 큐브 엔터테인먼트의 비스트(2009), 비의 프로듀싱으로 화제를 모은 엠블랙(2009) 등이 크게 활약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 이루어지며 케이팝 시장은 지금도 다양한 기획사의 분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3대 기획사’로 불리던 대형 기획사들은 꾸준히 성과를 내며 그 위상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SM 엔터는 f(x), 엑소(EXO), 레드벨벳(Red Velvet), NCT, aespa로 이어지는 케이팝 최고의 라인업을 구성하는 동시에 태연, 태민, 백현 등의 솔로 활동으로 그 입지를 단단히 다져놓았다. YG 엔터 역시 이후 위너(WINNER)와 아이콘(iKON)의 대중적 성공, 블랙핑크(BLACKPINK)의 전 세계적 인기에 이어 현재의 트레저(TREASURE)로 이어지는 훌륭한 성과를 이룩했으며, JYP 엔터는 원더걸스(WONDER GIRLS)부터 미쓰에이(miss A)와 트와이스(TWICE), 현재의 ITZY와 니쥬(NiziU), 엔믹스(NMIXX)로 이어지는 최고의 걸그룹 라인을 구축함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갓세븐(GOT7)과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 밴드 콘셉트의 데이식스(DAY6)가 일궈낸 대성공에 이은 Xdinary Heroes를 제작해 그 성장가도를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세간의 ‘3대 기획사’라는 분류는 그 위상에 걸맞은 성과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이들에 대적할 만한 신흥 세력이 종종 등장하곤 했지만 대부분 제대로 효력을 내지 못했다.

SM 엔터, YG 엔터, JYP 엔터가 ‘3대 기획사’로 구분되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 다양한 요소를 기준으로 두고 있다. 분류의 주요한 근거인 성과와 경력, 자본 규모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기획사 자체의 결속력과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 정체성을 이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동적으로 변형하는 것 또한 그들을 ‘대형 기획사’로 지칭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2022년 현재의 ‘N대 대형 기획사’, 혹은 ‘대형 기획사’라고 칭할 수 있는 기획사는 무엇일까? 2000년대 후반 명명된 ‘3대 기획사’는 2010년대에까지 그 위상을 지속했지만 이는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금의 균열을 허락했다. 당시 방탄소년단(BTS)의 유일무이한 성공을 이뤄낸 빅히트(Big Hit) 엔터테인먼트가 공고했던 기존의 벽을 넘어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방탄소년단의 국내 시장 성과에 힘입어 세계 시장을 겨냥했고, 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기존 대형 기획사조차 버거워하던 세계 시장으로의 확장을 성공한 빅히트 엔터는 방탄소년단의 활동 범위를 유럽, 북미, 남미를 포함한 지구 전역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성과에 이어 야심 차게 시장에 내놓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까지 성공적인 데뷔를 이룩하며 그들의 위세는 기존 대형 기획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빅히트 엔터는 기존 기획사와는 차별화되는 활로 개척으로 그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기획사의 단일적, 자체적 성장에 노력을 집중했던 기존 대형 기획사와 달리, 빅히트 엔터는 보다 개방적이고 다채로운 방향으로의 진출로 눈길을 돌렸다. 2019년에 들어 빅히트 엔터는 큰 팬덤을 보유한 여자친구가 소속된 쏘스뮤직(SOURCE MUSIC)을 인수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ENM과 손잡고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Belift Lab)을 설립했다. 이어지는 해에는 세븐틴(SEVENTEEN), 뉴이스트(NU’EST) 등 인기 그룹이 소속된 플레디스(PLEDIS) 엔터테인먼트와 지코(ZICO)가 설립한 힙합 레이블 KOZ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고, 2021년에 들어 사명을 HYBE로 변경한 뒤 2000년대부터 SM 엔터의 중추로서 주요한 과업을 달성하며 케이팝 팬덤에 이름을 각인시킨 민희진을 영입하며 그를 주축으로 한 레이블 ADOR를 설립했다. 또한 HYBE라는 사명 아래 그들은 기존 기획사들이 도전하지 않은 다양한 사업에 손을 뻗었는데, 콘텐츠 제작이나 굿즈 사업 등 기존 케이팝 시장의 주요 산업을 포함해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를 활용한 한국어 및 언어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HYBE EDU와 게임 개발사 HYBE IM을 설립했고, 현 케이팝 시장 최대의 소통 및 소셜 플랫폼 위버스(Weverse)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재 HYBE는 전신인 빅히트 뮤직과 전술한 산하 레이블, 일본 시장을 겨냥한 HYBE JAPAN, 세계적 음악 기업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함께 팝 시장을 타겟으로 제작한 HYBE Universal까지 총 8개의 레이블을 경영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업과 타 기업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 규모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2)  초대형 기획사의 등장

이렇게 HYBE가 급격히 성장한 시장 흐름에 대해 사람들은 과거의 명칭을 빌려 ‘4대 기획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는 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4대 대형 기획사’라는 용어만으로는 명백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는 앞선 분류의 기준과 마찬가지로, 단순 성과와 인기 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케이팝 시장이 전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며 규모를 키워 나가 그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들이 만들어졌듯, 케이팝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대중성과 단순 흥행보다 팬덤 확보와 아티스트 고유의 특색을 주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변화한 현재의 케이팝 시장을 분류하는 근거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관련 요인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여 현재의 시장에 대입하거나 그를 통해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분류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통해 현재의 케이팝 시장을 또다시 분류해 본다면, 나는 ‘대형 기획사’라는 유형 위에 존재하는 ‘초대형 기획사’라는 갈래를 만들고자 한다. 이는 개별 기획사를 포함해 케이팝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나, 케이팝에 관여하거나, 반대로 케이팝이 관여하는 분야 역시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착안한 명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류법에 따르면, 과거부터 ‘대형 기획사’로 분류되었던 YG 엔터와 JYP 엔터, 그리고 이를 상위하는 ‘초대형 기획사’로서 SM 엔터와 HYBE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의 근거에는 ‘대형 기획사’ 분류법과 마찬가지로 여러 요소와 근거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다. 

(1) 신흥 강자 HYBE의 무서운 성장세

‘대형 기획사’와 ‘초대형 기획사’의 분리는 단순히 대형 기획사에 포함되는 기획사를 격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분명 그것보다 다양하고 훌륭한 성과를 내는 ‘초대형 기획사’를 확고하게 구분 짓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앞선 분류 기준과 같은 성과가 중심이 될 것이다. 직접적인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그렇겠으나, 보다 직관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보여주는 시가총액의 경우 HYBE를 제외한 세 기획사의 규모는 비슷한 선상에 놓여있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2월 25일을 기준으로 SM 엔터는 약 1조 7천억 원, YG 엔터는 약 1조 2천억 원, JYP 엔터는 약 1조 7500억 원의 시가총액을 구가한다. 하지만 HYBE는 이들 시가총액의 대략 10배에 상응하는 11조 8천억 원 가량의 시가총액으로 평가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이들 사이의 간극은 HYBE가 일궈낸 압도적인 성장으로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설립되어 최소 20년 이상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세 기획사와 달리 HYBE의 전신인 빅히트 엔터는 2005년 설립되어 이들보다 최소 7년 이상 낮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빅히트 엔터는 2005년 설립 이후 대체로 JYP 엔터 소속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을 전담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들이 2007년 처음으로 런칭한 그룹인 에이트(8eight) 역시 케이팝이나 아이돌 시장에 부합하는 그룹은 아니었다. 따라서, 빅히트 엔터의 첫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2013년을 그들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본다면, 빅히트 엔터는 타 기획사 3사에 비해 20년가량의 이력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HYBE는 전술했듯 방탄소년단의 유례없는 성공과 독창적인 시장 개척으로 현재와 같은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HYBE는 현재 산하 레이블을 포함해 12 팀의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고 올해에만 3개 이상의 그룹 데뷔를 목표로 두고 있으며, 레이블에 소속된 프로듀서와 퍼포먼스 디렉터, 공개 연습생 역시 각자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ENHYPEN), 세븐틴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내어 케이팝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플레디스 소속의 프로미스나인(fromis_9) 역시 최근 성장세를 보이며 힘을 보태고 있다. 

또한 HYBE가 전개하는 사업 역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전술한 케이팝 소셜 플랫폼 위버스는 최근 네이버와의 협업으로 케이팝 소통 플랫폼의 큰 축인 V LIVE와의 통합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HYBE 소속의 그룹을 포함해 블랙핑크, 선미, 위클리(weeekly), 드림캐쳐, 스테이씨(STAYC) 등 41팀의 아티스트가 위버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팬덤과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힙입어 HYBE는 현재 기업 가치와 규모에서는 그 어떤 케이팝 기획사도 넘볼 수 없는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더욱이 이러한 성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위상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사업적 성과를 차치하더라도, HYBE는 케이팝 내부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 HYBE 소속 아티스트는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것을 마니아층에도, 일반 리스너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이전부터 쌓아온 고유의 성장 서사와 내러티브를 강조한 메세지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독창적 세계관과 음악성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2020년 말 데뷔한 엔하이픈은 지난 네 번의 활동으로 케이팝 팬과 평론지, 대중 모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그들의 팬덤 역시 나날이 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플레디스 소속의 세븐틴과 뉴이스트는 이전부터 함께한 탄탄한 팬덤을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한 성과를 내보이고 있으며, 전술했듯 프로미스나인 역시 최근 활동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며 떠오르는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이전부터 음악 외부에서 HYBE가 구축한 방식은 현재 케이팝 시장에 통용되는 요소로 정착했다. 가령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유튜브, SNS 등 소셜 미디어 활용은 현재 다양한 기획사가 프로모션 및 콘텐츠 제공 매체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이전에도 SNS와 유튜브 등을 사용하는 기획사는 많았으나 방탄소년단의 경우와 같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아티스트-팬덤 간의 자유로운 소통 창구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렇듯 HYBE는 다양한 시장 개척, 확고한 정체성 및 팬덤 구축, 완성도 높은 콘텐츠 제작 등 다방면에서 케이팝 시장의 모범이 될 만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현재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초대형 기획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 SM이라는 구관이 명관이 되기까지

내가 HYBE와 함께 거론한 초대형 기획사는 SM 엔터다. 앞서 설명한 기업 규모만 보자면 SM 엔터는 HYBE와 나란히 서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SM 엔터는 내가 ‘대형 기획사’로 분류한 YG 엔터, JYP 엔터와 자산규모가 비슷할 뿐 아니라 현시점 JYP 엔터와는 비슷한 선상에서 움직이고는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러한 기획사의 분류는 단순 자산이나 기업 규모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SM 엔터는 기업 규모, 사업 수익 등의 요소에서는 밀릴지 모르겠으나, 그들만의 독창적인 강점이 있기에 ‘초대형 기획사’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한다. 가령, 현재 SM 엔터의 중추이자 그들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대한 부분은 그들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SM 엔터는 케이팝의 시작을 알린 H.O.T.와 S.E.S.를 제작한 회사다. 1990년대 초반 현진영과 와와로 시작한 SM 엔터의 경력은 이후 H.O.T.를 위시한 케이팝 시장의 개척으로 이어졌다. H.O.T.의 성공과 함께 케이팝 시장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린 SM 엔터는 이후 S.E.S.를 통해 케이팝 걸그룹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 신화와 플라이 투 더 스카이를 통해 회사의 규모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보아(BoA)라는 파격적인 아티스트를 공개하여 케이팝 시장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2000년 만 13세의 나이로 데뷔한 보아는 현재까지도 SM 엔터의 주요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자 2000년대 일본으로의 성공적인 진출을 이룩하며 현재의 케이팝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과에 이어 등장한 밀크(M.I.L.K.), 블랙비트, 트랙스(TraxX), 천상지희 The Grace는 당시 상대적으로 미미한 성적으로 비판받기도 했으나,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SM 엔터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렇게 2000년대 중반 등장한 동방신기(TVXQ!)는 파격적인 화제를 모으며 일본 및 아시아권을 장악한 뒤 현재까지도 일본 내 한류를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었고, 이어 등장한 슈퍼주니어 역시 데뷔 초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으나, 이후 드라마, 예능 등 멤버들의 다채로운 활약과 「쏘리쏘리」의 역사적 성공으로 현재까지 그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 역시 데뷔에서부터 훌륭한 성과를 내며 자타 공인 케이팝 최고의 걸그룹으로 등극했으며, 이들 역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내 음악 시장과 멤버들의 개인 활동으로 현재까지 그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샤이니(SHINee)와 f(x)는 독창적인 음악적 색채와 개성 있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구축했으며, 매번 다채로운 음악적 도전을 시도하여 현재 케이팝 음악의 다양성을 선도했다. 2010년대에 들어 데뷔한 엑소(EXO)는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고 평가받는 그룹이며, 레드벨벳(Red Velvet) 역시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로 케이팝 팬덤과 평론지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세대에서는 NCT와 aespa가 데뷔하여 현재 케이팝 씬을 대표하는 그룹에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보아를 비롯하여 솔로 활동을 전개했던 태민, 태연, 종현, 키, 백현, 카이 등의 소속 아티스트는 각자의 강점을 살린 음악을 통해 호평을 받았고, 미국의 유명 기업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의 제의로 기획된 슈퍼엠(SuperM) 역시 ‘케이팝 어벤져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좋은 성과를 내었다. 

이렇듯 1990년대 케이팝의 시작부터 2020년대 케이팝의 현재까지 SM 엔터는 언제나 뛰어난 기획과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 콘텐츠를 제작하여 과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SM 엔터가 그들의 유구한 역사를 활용하여 제작하는 여러 프로젝트는 현재의 그 어떤 기획사도 따라 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한다. 가령 올해 1월 1일에 진행되었던 SM TOWN의 합동 콘서트인 <SMTOWN 2022 : SMCU EXPRESS>에는 1996년에 데뷔한 H.O.T.의 강타에서부터 2020년 데뷔한 aespa까지 지난 30년가량의 케이팝 역사를 아우르는 출연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SM 엔터는 오랜 역사를 통해 구축된 그들의 활동과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가령 전술한 슈퍼엠의 경우에는 2008년 데뷔한 샤이니의 태민부터 2012년 데뷔한 엑소의 백현과 카이, 2016년 이후 NCT로 데뷔한 태용, 텐, 마크, 루카스로 구성되어 2.5세대부터 3.5세대까지의 보이그룹 계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또한 지난 <SMCU EXPRESS>에서 공개된 프로젝트 그룹 GOT the beat는 슈퍼엠과 유사하게 보아, 소녀시대의 태연과 효연, 레드벨벳의 슬기와 웬디, aespa의 카리나와 윈터로 구성되며 2000년에 데뷔한 보아와 2020년에 데뷔한 카리나, 윈터가 공존하는 경이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단발성 그룹뿐만 아니라 2000년대 부터 <SM TOWN LIVE>라는 기획사 전체의 합동 콘서트를 주기적으로 진행하며 소속 아티스트 간의 유대와 해당 팬덤 간의 유대감을 다지기도 했고, SM 엔터에서 신인 그룹이 데뷔할 때면 선배 그룹이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등 축적한 경력을 활용하여 프로모션/마케팅 방식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랜 경험과 역사를 쌓아온 SM 엔터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SM 엔터와 유사하게 오랜 기간 명맥을 이어온 기획사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 과거에 소속되었던 그룹이 해체하거나 아티스트가 소속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기획사 측면에서의 활동을 전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같은 ‘초대형 기획사’로 분류할 수 있는 HYBE의 경우에는 많은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들이 각자 다른 레이블에 속해있기 때문에 유대감이 부족할뿐더러 각 팬덤 사이의 결속과 기획사 측면에서의 충성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SM 엔터는 자신들의 강점인 긴 이력을 활용하여 아티스트 개별의 팬덤뿐만 아니라 기획사 전체를 좋아하는 팬덤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케이팝 시장의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았다. 현재와 같은 기획사적 팬덤을 구축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그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들인 노력을 생각한다면, 제아무리 빠르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HYBE 마저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SM 엔터만의 강점이 확실하게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SM 엔터는 위와 같은 사례를 넘어 더욱 많은 요소에서 케이팝 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중 가장 주요하게 꼽을 수 있는 것은 SM 엔터가 시행해온 음악적, 기획적 측면에 있다. 

SM 엔터는 H.O.T.를 통해 케이팝 시장을 개척했으며, 이를 통해 케이팝 시장 전반의 기틀을 닦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H.O.T.를 기획/제작하며 만들어진 SM 엔터의 규정은 현재 케이팝 시장 전반에 뿌리내린 보편적 방식이 되었다. 어린 연령대의 지망생을 연습생이라는 독특한 트레이닝 체계로 육성해 그룹을 구성하는 방식이나, 아티스트가 무대를 선보이거나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영화,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전천후로 활약하는 모습은 H.O.T.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사례일 것이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케이팝 기획사가 차용하는 송 캠프 등 대규모의 자본과 인원, 시간 등을 투자해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 아트 필름, 안무 영상의 도입과 같은 사례는 SM 엔터가 꾸준히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케이팝 시장 전반에 배포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어,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슈퍼주니어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거쳐 EXO-K와 EXO-M이 서로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거나 한 데 합쳐 활동하는 투 트랙 시스템, NCT의 무한 확장 시스템 등 SM 엔터가 시도한 새로운 기획적 방법론은 시대를 거쳐 케이팝에서 상용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이 도전한 기획적 요소 외에도, SM 엔터는 음악적 측면에서도 케이팝을 다채롭게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샤이니의 「View」와 f(x)의 「4 Walls」로 대표되는 딥 하우스 등 케이팝 시장에 다양한 장르적 방법론을 도입한 것은 물론, 「Sherlockㆍ셜록 (Clue + Note)」과 「I GOT A BOY」등 케이팝 고유의 특성을 만들기 위한 음악적 도전은 케이팝이 음악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면을 확장한 사례일 것이다. 이어, 샤이니, f(x), 레드벨벳, NCT, aespa 등 매번 새로운 콘셉트를 도입하여 케이팝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SM 엔터가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렇듯 SM 엔터는 시장 내의 규모 비중에 관해서는 부족할지 모르겠으나, 케이팝의 시초부터 이어진 유구한 이력과 독자적인 기획사 자체 팬덤을 구축하고, 매번 트렌드를 이끌어 케이팝 시장을 선도하는 등 케이팝이 만들어진 역사 이래 항상 시장의 선구자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SM 엔터는 30년가량의 활약 속에서 꾸준히 완성도 높은 아티스트와 작품을 기획하고, 그렇게 제작된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품, 콘텐츠 등이 케이팝 팬덤의 많은 사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3) 마치며

물론 케이팝 시장은 단순히 ‘초대형 기획사’라든가 ‘대형 기획사’로 분류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획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다양한 기획사들은 자신만의 특색과 개성을 살려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아티스트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지난해 데뷔한 빌리(billlie)는 미스틱 스토리(Mystic Story)에서 처음으로 런칭한 아이돌 그룹임에도 4개월의 활동에서 선보인 훌륭한 결과물로 케이팝 팬덤에 빠르게 각인되었으며, TWICE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린 블랙아이드필승이 제작한 기획사 하이업(High-Up) 엔터테인먼트의 첫 아이돌 그룹인 스테이씨 역시 2020년 말 데뷔한 직후 「ASAP」을 통해 범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대형 기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 등장했으나,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아티스트를 기획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울림(woolllim) 엔터테인먼트, WM 엔터테인먼트,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등은 여타 대형 기획사만큼 훌륭한 성과와 탄탄한 팬층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케이팝 시장이 몇몇 산업 시장과 같은 독과점의 형태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시장을 선도하거나 장악하고 있는 대형 기획사, 혹은 초대형 기획사의 존재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을 통해 구축한 시스템과 노하우, 대규모 자본과 인원 등을 필두로 매번 높은 완성도와 훌륭한 실력으로 무장한 작품, 아티스트, 콘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SM 엔터와 HYBE가 초대형 기획사로 떠오른 현재, 앞으로 어떤 기획사가 새로운 대형 기획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혹은 어떤 기획사가 새롭게 등장해 케이팝 시장을 뒤흔들지 등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과 콘텐츠뿐만 아니라 케이팝 시장 전반을 보다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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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LOSS, 『ReGLOSS』 – 온음 2024년 11월 7일 - 5:00 오후

[…] Fortnite 서버를 통해 공연을 펼친 사례는 상징적이다. 비슷한 시기 K-Pop 시장 초대형 기획사들이 보인 행보 또한 주목해보자. SM이 aespa 데뷔와 함께 “SMCU” 프로젝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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