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s Never Die」 뮤직비디오에 관한 메모들

by 조지환
   

1.

이 비디오는 시내의 마천루와 교외 공동묘지 사이를 왕복한다. 도심에서 근교로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수평적으로, 옥상에서 지하로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수직적으로 이동한다.

이로써 이 비디오는 도시에 관해 중요한 사안 하나를 직접 시각화한다. 도시 안에서 치러지는 이동과 유통이 도시 안의 지역들 각각에 대해 닫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 깊숙한 중심에서 다시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도로 들어가는 다양한 경로들이다.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직적인 경로든, 수평적인 경로든, 이동의 경로들을 통과해 본다는 것, 아니면 그 경로들의 길고 짧음을 두루 체감해 본다는 것이다.

   

2.

욕실은 이 비디오의 가장 내밀한 실내들 중 하나다. (사실 화장실이라고 써야 맞을 것이다.)

욕실 타일에 대비해 볼 수 있을 법한 벽재들 몇 가지가 잠깐씩 비춰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별다른 마감을 하지 않은 채 노출시킨 콘크리트가 있는데, 이 콘크리트 벽재로 둘러싸인 장소는 굉장히 넓고 층고도 몹시 높은 데다 한 면에는 큼직한 통로가 뚫려 있어 사면이 닫혀 있다는 느낌을 거의 주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놓인 기둥들만이 약간의 폐쇄감을 꾸며낼 따름이다. 그보다 조금 더 좁지만 여전히 아직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널찍한 실내 야영장은 두 면이 통창 같이 큰 유리들로 대체되어 있어서, 마찬가지로 닫히지 않은 장소처럼 보인다. (유리는 마법 같은 벽재다. 그것은 정보 유통의 허용 한도는 넓히면서 인구 이동의 제한선은 유지한다.)

타일벽에 둘러싸인 욕실은 즉각적으로 폐쇄감을 연출하는 실내인데, 이 비디오는 욕조로 무릎 높이의 담을 쌓고 그 안에 물을 채워 재차 욕실 공간을 욕조와 욕조 밖, 그리고 물속과 물밖으로 분할한다. 그러므로 욕실은 (특히 욕조와 욕조 바로 위는)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분할되었고 가장 강하게 폐쇄되었으며 가장 좁다.

욕조 안의 수면이 마치 바닥처럼 화면 아래에 깔려 있는 탓에 층고가 훨씬 낮아진 듯 보인다.

도시는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장소들을 창출한다. 도시적으로 산출된 장소의 한 극에 놓여 있는 것이 저 욕실이라고 한다면, 반대편 극에 놓인 것은 이 비디오가 너무 자주 보여주는 하늘, 곧 모든 구획된 장소들의 여분, 분할의 부산물, 아니면 분할의 배경 내지 질료인 하늘이 있다.

이 비디오의 딱 중간쯤에, 그러니까 세 번째 코러스가 끝날 쯤 특이한 몽타주가 나온다. 아주 잠시 가로등 위로 날아오르던 검은 새가, 바로 다음 순간, 욕실 안에서 욕조 위를 선회한다. 새가 미분할지대에서 실내로 이동하는 과정은 통째로 생략된다. 똑같은 새가 횡단보도 근처 가로등 위로 지나가는 영상과 욕조 위를 돌며 나는 영상은 순식간에 교차될 뿐이다.

욕실 안에서를 제외하면, 이 비디오에 새가 나올 때마다 렌즈는 대부분 탁 트인 시야로 새를 조망한다. 바스트샷이나 니샷으로 인물을 중앙에 두고 있을 때에도, 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도처에 산개한 새무리를 곁눈질하여 볼 수 있다. 인물 위에서 좌우로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새무리가 화면 상반부를 채워버리는 때도 있다. 인트로에서는 새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기도 한다. 이 때는 새들의 하강이 슬로우 모션으로 추적된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렇게 트인 배경 밖으로 넘어갈 만큼 넓게 이동하는 새를 쫓기 위해 카메라가 반의 반 바퀴 회전하기도 한다. 날개 달린 사람 둘이 옥상 아래로 투신하고, 난간 위 밤하늘 가운데에 새 한마리가 드러난다. 바로 이 때부터 렌즈는 조명을 밝힌 고층건물들 위로 캄캄한 밤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까마귀를 추적하기 위해 잠시 우측으로 회전한다. 이 비디오의 부산함을 생각하면, 카메라의 회전에 드는 이 잠시간은 결코 짧은 간격이 아니다. 거의 끝에 가서도 뮤직비디오는 새의 이동을 보여주는 데에 꽤 긴 시간을 들인다. 묘에서 하늘로 올라간 까마귀가 교외 아파트 단지를 향해 무리 지어 멀리 날아가는 장면이다. 이 때는 인물들도 렌즈를 등진 채 새무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다.

그러니 새를 욕실에 가둬둔 샷은 특이하다 할 만하다. 새가 사방이 가로막힌 시야각 안에서 좁은 욕조 위로만 맴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밤하늘에서 욕실로 들어가는 새의 이동 경로를 짧게라도 체감하거나 추적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욕실은 (축자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도시의 가장 깊숙한 곳이다. (물 채운 욕조 안은 더더욱!) 그러나 이 비디오는 개방된 밤하늘에서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생각이 없다. 아니면 그 과정을 보여줄 여력이나 요령이 없다.

여하간 저 검은 새에게 있어 욕실이란 어떻게 들어가게 된 곳인지도 알 수 없는 곳, 난데없이 불시착하게 된 곳, 함정처럼 붙잡혀 갇히게 되는 곳이겠다. 이 비디오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생략한 채 그 깊숙한 곳의 협소한 풍경을 갑작스레 드러낸다.

만약 도시가 그 안의 경로들을 체감함으로써 이해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도시의 가장 깊은 실내들은 도시 안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경로의 통과 과정이 드러나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 그런 데까지 들어가게 됐는지를 되짚는 일이야말로 까다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에 비견할 만한 것으로, 지저분한 침실에서 사람 손등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비춘 직후 그 개미들이 건물 옥상 위에서 새의 사체를 중심으로 모여 드는 모습을 비추는 몽타주가 있다. 이 몽타주는 두 번째 코러스가 끝나갈 즈음에 나온다. 그 때 옥상에서는 새가 운동을 완전히 중단한 채 심지어는 시멘트 바닥을 배경 삼아 클로즈업 되고 있으므로, 새와 관련해서는 도리어 이 장면이 더 극단적이고 예외적일지 모른다. 이 몽타주의 실내는 욕실에 견줄 만하다. 침실 한 구석에는 모니터 두 대가, 다른 한 구석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그밖에 나머지 공간에는 옷가지며 쓰레기나 인형, 음식물, 조명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어 몸을 둘 만한 자리가 줄어들어 있다. 특히 어안렌즈의 화면 왜곡이 그곳에서의 폐쇄감과 협소감을 과장한다. 우리는 검은 새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밤하늘에서 욕실로 들어갔는지 볼 수 없듯 개미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침실에서 옥상 위로 빠져나갔는지 볼 수 없다. 침실의 개미떼가 환시로 처리되는 것 같다는 점은 그들의 이동 과정에 대한 추적을 더더욱 난망한 것으로 만든다.)

   

3.

도시가 이동의 경로들을 통해 이해된다고 하는 것은, 도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이동중이며 그렇기에 (도시 자체가 항상 과도기에 있고 항상 스스로 과도기를 만들어내듯) 과도적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멀미가 날 법도 하다. 이 비디오는 조류를 타고 떠밀려가다 정지하면서 물살의 압력을 느끼듯 곤란해 하는 얼굴로 시작한다.

「girls never die」와 마찬가지로 언더무드 필름이 연출한 「rising」의 뮤직비디오는 버스 안에서 시작한다. 대중교통은 진부하지만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소재다. 도시가 항상 이동과 유통, 순환을 요구하며, 그 교통의 흐름에 대하여 정해진 방향을 거스르기란 대단히 까다롭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에.

버스 밖에도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다. 그것은 구획된 장소들을 병렬하는 형식이다. 다른 하나는 노들섬 정류장이다. 그것은 구획된 장소들 사이에 설치된 중간 경유지점이며, 달리 적자면 주된 구획을 보조하는 부수적 구획의 장치다. 이런 것들이 도시 안의 흐름을 유도하고 정향한다. 그 안팎에는 물론 풍랑과 암초들도 있을 것이다. 도시의 흐름은 통로들과 교차점들에서 온갖 것들을 뒤섞기에, 그 안에서 마주치고 싶은 것들만 선별하여 마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멀미를 피할 길은 없다.

「rising」의 뮤직비디오에서 정류장에 앉은 인물은 손톱을 긁어대며 매니큐어를 벗겨내는 식으로 멀미를 앓는다.

「girls never die」의 뮤직비디오는 좁은 복도와 경유 지점, 교통수단을 지하철역 안에서 단번에 보여준다. 지하철역 역시 편의적이지만 역시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소재다. 지하철역은 그 안에 복도를 갖추고 있을 뿐더러, 그 자체로 하나의 경유 지점이며, 고속으로 지나가는 교통수단의 잔상을 훑을 수도 있는 곳이니까.

   

4.

「girls never die」의 뮤직비디오는 근교 공동묘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인물들의 키보다 살짝 낮아 보이게끔 비추며 끝난다

부동산 투기의 관점에서 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묘지 같은 혐오시설이 보인다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적잖이 껄끄러운 일일 것이다.

도시는 도시민들의 통과의례 중 가장 부담스러운 의례를 도시에서 적당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관하곤 한다. 20세기 초 왜정 때에는 경성에 바로 붙어 있던 아현동과 장충동 등지에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서울 근처의 묘지들은 훨씬 멀다. 가령 수도권 추모공원들은 용인이나 일산, 안산, 포천 등지에 있다. 그리고 그 추모공원들도 소속 도시의 중심 주거지역에서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이는 곧 도심의 생활 상규가 교외로 영역을 넓혔다는 것이기도 하다. 통과의례는 치러져야 한다. 그러나 도심에서는 치러질 수 없으리. 그리하여 도시는 자기 밖에서 자기 일을 치러줄 교외를 요구한다.

비디오가 끝날 즈음, 애초에 관이 있어야 할 묘의 밑바닥에서 새 한 마리가 솟구쳐 오르고, 곧 새 한 무리가 아파트 단지 위를 건너 도심으로 진입하듯 날아간다. 인물들은 하관식을 치르듯 묘를 둘러싸고 그 속을 바라보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교외 밑바닥에서 다시 시내의 상공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향한다는 점에서는 수평적으로, 지하에서 옥상 위로 향한다는 점에서는 수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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