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음악에서 가사는 중요하다. 누구의 영향이라고 내가 굳이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겠지만, 여하간에 언젠가부터 꾸준히 그래왔다. 그 가사가 현학적이건, 직관적이건 간에 청자들은 그것을 ‘아티스트의 전언’ 비슷한 무언가로 받아들여 왔었고, 또 그것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등 아티스트가 담아낸 심상을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 아티스트 사이에 자그마한 가교를 만들어왔다. 이것은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들은 박자와 시간이라는 한정된 조건 안에서 자신의 심상을 담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해왔고, 기술적으로도 악기보다 목소리가 우선시되는 방법을 구상하여 청자들이 자신의 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왔다.
그런 점에서 가사는 중요한 것일 텐데, 여기 이상한 작품이 하나 있다. 오헬렌&최솔의 『Oh』 말이다. 한국인 아티스트인데, 가사는 온통 영어인 탓에 한 번 해석해야 하는 수고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잘 들리지 않는다기보다는 음절 간의 간격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심지어 그 발음마저도 독특하고 의도적으로 꼬아버린 듯한 느낌도 든다. 다만 그 와중에 퍼커션을 통한 리듬의 구조는 명확하다. 아니, 내가 대중음악에서 가사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그러니까, 가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 소리 음, 즐거울 락 자를 쓰는 단어가 음악―音樂―아니던가. 물론 가사를 해석하는 것도 본작을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그런 수고를 잠시 미뤄두고 소리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포착할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령 「She died」 같은 트랙을 들어보라. “sun is”를 [썬니스]로, “hotter”를 [할러]에 가깝게 발음하며 목소리 그 자체로도 운율을 조성하려는 시도, 가사를 제외하고서라도 흥겨운 베이스라인과 아프리칸 퍼커션을 듣자면 충분히 음악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점이 재밌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 XENI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