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의 『뽕』이 과연 일렉트로닉 음반인가에 대한 문제가 논쟁적일 수 있는 것처럼, 『뽕』을 완성하는 음반의 핵심 트랙 「로얄 블루」가 일렉트로닉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역시 쉬이 답을 내릴 수 없다. 1960~70년대부터 드럼머신이나 신시사이저와 같은 전자적 요소들이 음악의 범주로 스미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중음악 장르들은 ― 그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 어떻게 그러한 전자적임과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숙제로 껴안았다. 응당 그렇게 들려야 한다는 기대를 잘 벗어나지 않는 실연되는 소리와 달리 전자적 소리는 프로그램의 발전에 따라 이전의 모델들을 끊임없이 낯선 것으로 만들며 보다 다채로운 청각적 경험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 결과 1990년대부터 두각을 보인 샘플링의 문제와 함께, 대중음악의 전자화는 현재까지도 대중음악의 핵심적 화두가 되었다. 특히나 근 몇 년 사이 떠오른 음악의 ‘감각적 과잉’(통칭 ‘하이퍼-팝’)과 같은 문제처럼, 대중음악의 전자화는 청자의 감각적 저변을 넓힌 공신으로 이야기되기에 충분하다.
「로얄 블루」는 대중음악이 전자화되기 시작하던 태동기의 형태를 담지한 채로 등장한다. 끊임없이 새롭게 감각을 재편해나가는 전자음악의 특성은 「로얄 블루」에서 1980년대부터의 자신의 유산마저 무덤에서 꺼내오는 것으로 현재의 우리에게 새로움이라는 강박적 환각을 투사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250 본인의 “뻔한 뽕짝과 지나치게 세련된 전자음악”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말보다도 「로얄 블루」를 일렉트로닉이라 말할 수 있게 하는 핵심이 된다. 가령 도입부의 ‘뽕끼’ 가득한 신시사이저나 기계적 비트는 과거의 전자적 유산일 것이고, 그것이 이정식의 색소폰이나 정체 모를 휘파람같은 비-전자적 요소와 자리다툼을 하는 과정이 트랙 전체에 드러날 때 우리는 쉬이 경험할 수 없었던 복판으로 초대되는 것이다. 마냥 new한 것만이 새로운 것은 아니며 그것은 ‘익숙함’과 ‘낯섦’의 적절한 분배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250은 그 사실을 꿰뚫고 있다. 「로얄 블루」는 자신이 품은 소리들을 결코 어설프게 조화시키는 법이 없으며, 십여 초마다 그 얼굴을 전혀 다른 것으로 둔갑시킨다. 전자적, 비-전자적의 모든 소리들이 교배하는 환희의 순간도 잠시뿐이다. 놀랍기 그지없는 250의 기예는 매순간 완전히 다른 차원들로 나아가며, 바로 그것이 「로얄 블루」가 『뽕』의, 아니, 250 음악의 완성이자 궁극이 되는 이유이다. – coloringCY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