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은 지리멸렬한 반복을 낳고, 반복은 지루함과 뻔함을 야기한다. 근래에는 팝-펑크가 그랬고, 걸-크러쉬도 그랬다. 하지만 그 재미없음의 이유는 각기 다른 것으로 보인다. 팝-펑크의 경우는 인기에 따라 장르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양산화가 따분함의 핵심이었다. Olivia Rodrigo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팝-펑크를 무기로 세계적인 대-히트를 얻음에 따라 그를 구사하지 않던 다른 아티스트들마저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곧 차별적인 특별함에 대한 사유를 결한 채 장르의 왕도만을 지키는 트랙들의 양산을 결과로 맞이했다. 소리의 기악적 구성에서도, 노랫말에서도 어느 하나 차별화될 것이 없는 작품들이 유행을 빌미로 성공을 노렸고, 이는 마치 팝-펑크 유행 이전 디스코 리바이벌이 유행하던 시기의 그것과 판박이다.
반대로 걸-크러쉬의 경우, 언론과 대중 등이 해당 낱말을 오남용해왔다는 것이 따분함의 핵심이었다. 걸-크러쉬의 유행은 K-Pop을 중심으로 기존의 대중음악 작품들이 다소간 내포하고 있던 수동적 여성상의 문제가 오래도록 비판을 맞이한 데에 대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보이시하거나 에너제틱하거나 하는 콘셉트들에 무분별하게 걸-크러쉬를 사용하다보니, 그 낱말이 본래 가지고 있는 퀴어적 의미마저 옅어지는 문제는 새로이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TOMBOY」는 팝-펑크를 구사하며, 걸-크러쉬를 지향한다. 하지만 「TOMBOY」는 팝-펑크로서도, 걸-크러쉬로서도 뻔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전소연은 K-Pop이 팝-펑크의 탈을 썼을 때 기존 장르의 왕도를 어떻게 비껴갈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가령 기존 팝-펑크에서 흔히 보이지 않았던 하이게인 디스토션을 먹인 기타의 소리, 멤버들의 파트가 변할 때마다 그 멤버의 목소리에 맞춰 이리저리 치고 빠지는 소스들의 변화, 팝-펑크에서 응당 포착될 수 있을 노골적인 비속어를 묵음처리로 가리는 재치 등이 그렇다 ― 그래서 나는 「TOMBOY」의 원곡이 비속어를 가리지 않은 CD Only. 버전보다 더욱 장르적으로 재밌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콘셉트의 측면에서도 이성애적 연애의 이야기가 ‘TOMBOY’라는 낱말을 거치며 “It’s neither man nor woman”이라는 퀴어적 결론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걸-크러쉬의 본래적 의미에 가깝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자)아이들 프로덕션의 전권을 맡다시피 하는 전소연은 사실 작곡적 지향과 그 강점이 명확했던 플레이어였다. 타이틀 트랙에서 주로 구사해오던 뭄바-톤이나 레게-톤의 문법이 그것이다. 하지만 멤버의 변화라는, K-Pop 아티스트로서는 중대한 사건을 겪은 이후로 그녀는 새로운 방향에 주목했다. 팝-펑크 유행을 (여자)아이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TOMBOY」는 결과적으로 그녀의 역량을 다시금 증명한 트랙이 됨과 동시에, 부침을 겪지 않을까하는 외부의 우려도 잠재우는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통계적으로 2022년 가장 많이 재생된 트랙 중 하나가 「TOMBOY」라는 사실이 그를 증명하지 않는가? 그러한 사실들이 올해에 가장 중요한 트랙들 중 한 자리로써 「TOMBOY」의 이름을 새겼다. – coloringCY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