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 출신 제주도. 나는 가 본 적 없지만.”1 재일 교포 3세 래퍼 PM Kenobi의 「Haraboji & Aboji」 (2025)는 일본(어) 랩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식제품인 짜슐랭과 코코팜을 들고 재일교포 3세의 비애를 다루는 모습에서 특히 한국을 중심으로 2026년 연초에 화제가 되었다. 1세대인 할아버지가 오사카 이쿠노(大阪 生野)로 이주한 뒤 거기서 대를 이어받은 화자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본인 가계의 뿌리를 되짚는 이야기다. 특히 “그게 내게 흐르고 있는 피 / 붉음은 츠루하시 김치 / ‘조상을 소중히 여기거라’ / 매번 제사는 빼먹지 않아”2 등의 가사는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재일조선인 가정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대목이었고, 이후 조부가 이주한 이유가 제주 4•3 사건 때문임이 알려지며 동아시아사적 차원에서도 다시금 짚어볼 계기가 될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번 앨범 전후로 음악가 명의를 Viktor Kim으로 변경한 (전) Moment Joon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조부의 출신 북조선 / 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남쪽에서 석방”3으로 시작하는 Verse는 혼돈의 한국 근현대사를 가정폭력이 대물리는 트라우마 원인으로 지목하며 “제사는 안 가, 끊어낼 테니까”4라며 PM Kenobi와 대놓고 대비되는 태도를 취하는 게 특징이다. 다른 뿌리를 지닌 이와, 뿌리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이. 그런 그가 일본에서 디아스포라로서 음악으로 어떤 표현을 해내는지 주목해 보면 좋겠다.
『VIKTOR KiM』은 한국 출신이자 일본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음악이나 집필 등 활동 등을 해오던 Moment Joon이 Viktor Kim으로 음악 활동명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면서 낸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Viktor라는 이름도 그렇고, 트랙 제목들에 러시아어가 병기되거나 실제 가사에도 상당 부분 사용되는 등 인터내셔널한 언어가 제일 먼저 인식되는데,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언급이 되어 온 러시아인 피앙세와, 소비에트 고려인 계통이던 소련 록의 전설 Viktor Tsoi(Виктор Цой)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본작은 일본어, 영어, 한국어에 더해 러시아어까지 혼용하고 있고, 나는 러시아어 문해력이 아예 없으며 당장 입수할 수 있는 번역 자료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특히 가사가 중요한 랩/힙합 작품을 다루는 데 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은 한계를 밝히며 먼저 양해를 구한다.
언젠가 (전) Moment Joon의 개인 앨범 전작 『Passport & Garçon』 (2020) 단평을 쓰면서 생각했던 건 일본의 이민자 및 교포 혐오와 이를 부추기는 시스템 문제를 한 화자의 연속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 구조를 완결해 낸 것과 더불어 이와 같은 이야기가 필요했다는 시대적 상징성에 의의를 두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인 퍼스트’라는 슬로건 하에 외국인 배제 선동을 적극적으로 일으켜 의석을 불린 참정당(参政党)의 약진과, 이러한 집단 혐오 심리를 자신들의 표로 끌어 모은 자민당(自民党) 타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 체제가 확고해지면서, 비인간적인 비자 정책 등으로 배제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현재, 『VIKTOR KiM』의 이야기는 더욱 중요한 의의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내가 맨 처음 몰입된 요인은 그러한 의의뿐만 아니라, 앨범으로서 어떤 일관된 흐름으로 인도하는 구조와, 다언어를 구사해 담는 랩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앨범을 응집하는 점이다.
초반부 「КРАСНО」 – 「We Don’t Trust」 – 「To The Next」로 이어지는 트랩 뱅어들은 그의 음악이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에 따른 상징성 이전에 ‘들을 맛’이 나게 하는 크리에이터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부분에서 몇 가지 특별한 점을 적자면, 우선 4개 언어를 본격 한 데 담은 뱅어 「КРАСНО」는 제일 먼저 “Я хочу все, я хочу все / Sorry baby I gotta show’em, I gotta show’em / 耳元 ただの騒音, ただの騒音” 하고 러시아어 – 영어 – 일본어로 라임을 맞춰 Hook을 구축한다 — 이후 Verse에서는 또 한국어가 곳곳에서 감초 역할을 한다. 아마도 여러 듣는 이가 이해 못하고 넘길 만한 타 언어들을 기어이 뱅어의 중심에 구성하여 곡을 즐김에 있어 어느 하나 버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나는 일본에 자리잡은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힙합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어지는 「We Don’t Trust」는 곳곳에서 칸사이(関西) 사투리를 중심으로 한 라임 설계가 우선 놀라웠다. Viktor Kim이 칸사이 지방 오사카에 거점을 두고 있기는 하나, 어쨌거나 4개 언어를 구사하는 와중에 한 언어의 방언까지도 음악 언어로 체화해 다루는 것이 분명 흔한 성취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본곡은 외국인으로서 ‘좋은 이웃’이기를 포기하고, 소위 외국인 배제 심리를 정당화하는 대상인 ‘위험한 외국인’을 자처한다는 점에서도 강하게 자극하는 바가 있다. 이를테면 “메타포가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은 gun play / 왜냐면 싸움이나 헤이트 데모가 아니면 볼 수 없잖아 본심”5이라는 대목의 얼얼한 충격은 “바뀌지 않으니까 폭동부터 일으킬 거야”6라는 Hook에서 정점에 달한다.
더 흥미로운 건 문학가 안도 호세(安堂ホセ)7의 낭독이 고조된 분위기를 환기하는 「Scene 2」 이후 트랙들이다. 중반부는 컨셔스 래퍼로서 기대받는 것과 다른 약하고 모순된 모습을 드러내는 토로가 이어진다. 이를테면 「和KAN나И (Wakannai)」— ‘몰라’라는 뜻의 일본어를 여러 문자로 음차한 제목이다 — 에서 초기 Nas가 랩을 했을 법한 베이스 중심에 피아노를 조금 얹은 붐뱁 비트에서 플로우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차별주의자들? 전부 쓰레기니까 / 놈들과 달리 깨어있다고 자랑스러워 하며 / 사실 존나 sleepy 모두에겐 비밀”8이라고 1절에서는 화자 본인의 ‘모름’을 자학한다. 하지만 그 ‘모름’이란 이를테면 “근데 왜 예수는 안 오는 거야 가자(Gaza)에?”9라는 잊어선 안 되지만 세계 위정자들이 ‘모르쇠’하는 것과 관통하고 있음은 기억할 점이다.
소위 ‘깨어있는’ 것에 대한 자기 의심과 모순의 고백은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인데, 어느 정도 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역시나 앨범 단위로 일관된 서사로 이끄려는 구조와 랩 기량이다. 보다 멜로딕한 코드를 강조한 팝스러운 무드에서 생활을 변명하는 「Потому Что」 – 「YUJUFUDAN (right alright)」은 다소 진부함을 짚어야만 하는 숙명이었겠지만, 이후 다시 로-파이한 샘플이 베이스 맛을 살리는 붐뱁 비트에서 4개국어로 리듬의 완급을 능청스럽게 조율하고 노는 「YUJUFUDAN (больно)」는 지나가듯 위치된 짧은 트랙임에도 “위악자는 못 돼, 끽해봐야 위선자10 / When you see peace from the purity I see danger”와 같은 가사로 모순과 고뇌를 가장 유머러스하고 맛깔나게 저글링한다. 이 기량과 내용의 합치는 제법 진하게 여운이 남는다.
「Scene 3」는 오사카 출신 판소리 이수자 안성민(安聖民)의 수궁가 공연 장면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호랑이가 다리를 물리고 도망간 곳은 저 현해탄 건너 일본 칸사이 오사카로, “아따! 그놈 참 용맹 무서운 놈이로다. 나나 된게 여기까지 살아왔지 다른 놈 같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것이다”11를 칸사이 사투리로 읊는 장면12을 들으며 무언가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것은 「범 내려온다」 (이날치, 2020)가 어느 한순간 ‘힙’의 상징으로서 공유되던 현상과 대비되어 들려서 그랬을 수도 있고 — 그 성취를 격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 앞서 살핀 「Haraboji & Aboji」에서처럼 국가의 학살을 피해 건너온 뿌리의 이야기가 겹쳐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이 잠깐의 유머러스한 각색이 그저 정겨웠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Scene 3」부터는 본격적으로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트랙들이 이어진다.
「Heal」은 특별한 트랙이다. 드럼 없이 잔잔한 기타와 잔향이 감싸는 점에서도 그렇고, 디아스포라 및 교포 이웃의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맞추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Viktor Kim은 비출산주의적 사고를 본작 곳곳에서 드러내는데 — 심지어 「Haraboji & Aboji」에서도 예고편처럼 말한다 — 막상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이웃의 말에 담긴 절망의 무게를 앞에 두고 ‘라임 스킴이나 떠올리고 있는’ 본인을 돌아보며 랩의 무력감을 곱씹으면서도, 어렵게 ‘죽이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자’라는 말을 하기까지의 고뇌를 담아내는 모습에서, 나는 이것이 화자가 삶에 대한 미묘한 영점 조정을 새로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R&B적인 Hook 멜로디가 인상적이고 실제 ‘blues’의 요소와도 연관 있는 종교적 신념 또한 엿보이는 게 특징인 「Blues in My Heart」도 앤썸으로서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미 날카로운 가사가 넘쳐나는 본작에서 침잠한 무드이면서도 제법 문제적일 트랙 「Viktor, I heard a rumor that you live! Это ведь неправда, да?」는, 소위 ‘dope’한 무드라고 불리는 은은하고 긴장감 있는 비트에 — 나는 화지 「잘 자, 서울」 (2014)이나 E SENS 「The Anecdote」 (2015) 트랙 등이 생각났다 — Kendrick Lamar가 2Pac과 대화를 나누는 연출을 한 「Mortal Man」 (2015)과 성장 연도별로 기억을 회상하는 「FEAR.」 (2017)를, 고려인이자 소련 록의 전설 Viktor Tsoi를 대상으로 오마주하며 앨범을 실질적으로 갈무리한다.
한국인이라는 뿌리에 대한 애증을 Viktor Tsoi의 삶에 비춰 되물으며, 어쩌면 민족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이방인/언더그라운드 위치였으면서 끝내 불멸할 상징으로 기억된 Viktor Tsoi를 향한 “Цой жив (최는 살아있다)”라는 슬로건을, Viktor Kim이라는 개명과 함께 화자 본인의 디아스포라-성과 겹쳐 보이는 내용에 대해, 나는 과연 이를 ‘정체성 문제에 대한 심리적 실마리를 풀어낸다’ ‘디아스포라로서 삶의 터전을 일궈 나갈 저항 정신을 계승한다’와 같은 말과 함께 순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자리잡은 삶의 터전이, 아니 삶 그 자체가, 국가에 의해 손쉽게 ‘금지’될 수 있다는 상황인 것만큼은 분명하다.13
그렇게 앨범은 초반 공격적인 자신감과 ‘좋은 외국인’ 역할을 거부하다가 중반에서 화자의 무지와 위선, 생활상의 모순을 드러내는 자기 의심을 거쳐 후반에 이르러 타인의 고통과 마주하며 이름과 계보를 찾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면) 마지막 트랙에 「WAR」가 배치되면서, 그 목소리는 그저 제거 대상으로 변모한다. 「WAR」는 트랙의 시그니처로 장식되는 디스토티드된 소음 따위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소름끼치는 가사가 연달아 등장하는 불쾌한 트랙이다. 이것이야 말로 앞서 ‘위악자’에 이른 세계선에서 부르는 노래만 같다.
전작의 막 트랙이 연대를 요청한 「TENO HIRA」 (2020)였다면, 위정자들의 전쟁 욕심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WAR」로의 전환은 이제 보다 긴박하고 절망적인 세태 반영이 느껴져 씁쓸하다. 아무튼 「WAR」는 정말 끔찍한 곡이다. “OK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잖아? 그럼 총을 준비해라, 저건 인간이 아니야”14 “떨어져 봤으니까 이젠 우리가 떨어뜨릴 Bomb”15 “전쟁에 나갈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에 / 망할 중국인들에게 나라를 탈취당하기 전에 / 다음 쓰나미에 전부 쓸려나가기 전에!”16
이것은 앞서 “차별주의자들? 전부 쓰레기니까” 수준에서 몇 발 안 나간 얄팍한 풍자라고 일축할 수 있을 텐데, 아아, 그러기에는 깊이고 뭐고 간에 결국 당장 닥칠 수 있는 우리네 운명이 이런 수준의 세계관과 정녕 얼마나 다른지 모를 일들을 시시각각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다수자들이 배제주의를 정당화하는 또 다른 대상인 ‘난민’들이 겪는 현실들 아닌가? 이와 같은 충격적인 마무리는 디아스포라의 실제적 위협이라는 점에서 일일이 충격을 먹을 새가 있을까? 「WAR」에서 특히 중요한 특징적인 것은 안부를 묻는 말이 곧 무장 명령으로 이어지고, 일상의 보존이 타인을 죽이는 명분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보존되는 일상은 누구의 것인지 갈라쳐지는 것조차 위정자의 정치 도구임을, 우리는 안다/모른다.
『VIKTOR KiM』을 두고 완전 무결한 힙합의 새 지평 같은 말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한 줄기 서사로 구성을 하는 과정에서 이를테면 「To The Next」처럼 과한 디스토티드 노이즈를 구사하나 앞선 뱅어의 누적으로 피로감이 먼저 오는 트랙이나, 중반부의 ‘팝스럽다’고 평한 트랙들이 ‘-스러움’에서 그치는 장면은 텐션이 느슨해진다. 이전에 콜라보 앨범 동료이기도 했던 Fisong 정도를 제외하면 피처링진이 오히려 Viktor Kim 스스로의 퍼포먼스에 밀려서 존재감이 옅은 것도 약점이겠다. 그럼에도 결국 본작을 높이 위치시키는 이유는 아티스트 본인의 세계를 뛰어난 퍼포먼스로 구현하였고, 그 내용에서 디아스포라의 어쩌면 모순적일 수도, 날카로울 수도 있지만, 일관된 이야기로 응집하여 따라가게 한 다음, 그것이 지워질 수 있다는 위협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데 있다.
- “じいちゃん出身済州島 俺は行ったことないけど” ↩︎
- “それが俺に流れている血 赤さは鶴橋キムチ 先祖を大事にしなさい 毎回チェサは欠かさない” — 보충: 오사카 이쿠노 구에 있는 츠루하시(鶴橋)는 일본의 대표적인 코리아 타운이다. ↩︎
- “祖父の出身北朝鮮 戦争で捕虜になったら南で釈放” ↩︎
- “チェサは行かない 断ち切るから” ↩︎
- “メタファーじゃなくて本当にやりたい gun play / だって喧嘩かヘイトデモじゃないと見れないもん本音” ↩︎
- “変わらないんだから暴動から起こす” ↩︎
- 소설 『DTOPIA』 (2025)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했다. ↩︎
- “差別主義者たち? みんなゴミだから 奴らと違って目覚めてると誇りながら 実は超sleepy 皆には内緒” ↩︎
- “なのになんでイエスは来ないのガザに” ↩︎
- “偽悪者にはなれない 所詮偽善者” ↩︎
- 인용 출처: 한국판소리보존회 http://www.koreapansori.com/information/lyrics.php?ptype=view&idx=5697&page=1&code=lyrics&category=113 ↩︎
- “ひゃーなんとも恐ろしいやつやで わしやからここまで逃げてこれたもんのう 他のやつやったらとっくに昔に死んでるところやで” ↩︎
- 2026년 7월, 튀르키예 국적 Murat Çiçek은 일본에서 검문 시 재류카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타카오(高尾) 경찰서에서 구류 중에 사망했다. 그는 일본 영화 《みんな、おしゃべり! (The Chatterboxes)》 (2025)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
- “OK みんな元気で生きてんじゃない なら銃を構えろ、あれは人間じゃない” ↩︎
- “落とされたし今度は我らが落とすBomb” ↩︎
- “戦に行ける子供たちが消える前に クソシナ人に国が乗っ取られる前に 次の津波に全部流される前に”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