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콘크리트, 『Asians Take Her Car』

by 김로자
   

『Asians Take Her Car』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앨범이 발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인스타그램 매거진에서 신보를 그런지게이즈(grungegaze)라 소개하는 포스팅을 볼 일이 있었다. 2010년대 뉴-게이즈(nu-gaze)의 유행과 함께 절충적 서브-장르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런지게이즈라는 장르 호명이 영미 인디 씬에서 두루 사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한 편으로는 용어 그 자체로서도, 혹은 철근 콘크리트의 음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부정확하고 모호하다.

하나는 슈게이즈가 갖고 있는 다소간의 모호함 때문이다. 드림 팝에서 연원한 영국적 슈게이즈와, My Bloody Valentine을 위시로 노이즈 록의 유산을 들이마시는 슈게이즈 음악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는 경로를 취하고 있다. 예컨대 Kevin Shields는 Cocteau Twins로부터 영감 받았던 슈게이즈 밴드들처럼 모듈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더불어, 기타의 톤을 구상할 때에 있어 의도적으로 낮은 해상도와 뿌연 공간감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처럼 만드는 일과도 의외로 거리가 있었다. 그는 때로 Marshall JCM800 앰프를 사용하는데, 퍼즈와 함께 뒤섞여 빚어지는 더러운 톤은 기실 비교적 명확한 고음역을 들려주고 이는 기타 소리가 ‘자글자글하다’는 인상을 준다. 『Asians Take Her Car』가 그런지게이즈 앨범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이 앨범은 슈게이즈의 두 가지 톤적 지향 중 어느 것을 경유하는지, 그리고 소위 그런지게이즈라는 ‘장르’ 자체가 어느 것을 경유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슈게이즈라는 이름 붙이기보다도 더욱 난감한 것은 그런지라는 혼종적 명명에 있다. 우리는 소위 그런지라고 불리는 음악의, 장르로서의 성립 가능성이 얼마나 -심지어 ‘하이퍼팝’이라고 불리는 것보다도 더- 과대평가 되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슈게이즈 액트들을 두고 이야기할 때, 이들이 설령 상이한 방법들을 경유하더라도, 음압과 청각적 자극 – 3차원적 청각 경험을 통해 사이키델리아에 도달하려 한다는 어느 정도의 목표를 공유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My Bloody Valentine이 영향 받은 밴드들 – 예컨대 the Velvet Underground와 Sonic Youth 그리고 Dinosaur Jr.의 자장 아래에서 노이즈 록의 유산을 90년대 록 음악의 지평 속에 위치 지으려 한 Nirvana, 기타 톤과 릭의 활용에 있어 80년대 팝 메탈 유행 사이에서 윤색된 블루스적 뿌리를 복원하는 고전적 하드 록의 모습을 지향한 Soundgarden과 Pearl Jam, 여기서 더 나아가 스토너와 관계 맺었던 Alice in Chains나 Mudhoney를 시애틀이라는 공간성만으로 하나의 장르라 호명하는 것은 심히 억지스럽다. Melvins마저 그런지 밴드로 소개되는 광경에 이르면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멜랑콜리즘이라는 그런지의 정서는 펑크 하위문화처럼 하나의 모습으로 강령화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밴드들이 노정하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생각해보면 철근 콘크리트의 색채는 Nirvana와 비슷한 뿌리 위에서 기타를 ‘퍼즈 발사대’로 활용하며 톤적인 측면에 천착하던 『Siamese Dream』(1993, Virgin) 시절의 Smashing Pumpkins와 닮은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지의 어떤 에토스(ethos)가 슈게이즈의 에토스와 접합되었다는 것인지, 좁게는 철근 콘크리트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넓게는 그런지게이즈라는 이름을 둘러싸고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에게는 노이즈 록이라는 직관적이고도 아름다운 이름과 역사가 있다. 『Asians Take Her Car』는 동시대의 감각과 호흡하면서도 노이즈 록의 미덕을 근사하게 간직하고 있는 앨범이다. 다른 장르적 수사를 구태여 동원할 필요는 없다.

『Asians Take Her Car』가 일면 슈게이즈적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드림 팝의 계보학 속에 위치 지어지는 슈게이즈의 모습이 아니라, Dinosaur Jr.와 My Bloody Valentine의 계보학 속에 위치 지어지는 슈게이즈의 모습일 것이다. 슈게이즈의 방점이 드림 팝과 슈게이즈를 혼동히는 이들의 과시적 공간계 이펙트 전시가 아닌, 난폭하고 치열한 파열음이 선사하는 청각적 쾌감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이들의 노이즈 록을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철근 콘크리트는 귀에 들어오는 모든 사운드를 모호한 잔향처럼 활용하며 뒤섞는 대신, 리버브를 부여한 보컬과 리드 기타를, 명확한 토대로서의 리프 주변을 덧칠하는 도구로 구분하여 배치한다. 기타리스트 최정원은 위에서 이야기했던 Kevin Shields의 게인-디스토션-퍼즈 톤 활용 방식, 요컨대 고음역의 명확성을 확보해 자글자글한 기타 톤을 살려 두는 방식을 거친다. 이는 리버브의 ‘촉촉함’(wetness)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대체로 건조한 톤적 지향을 지키는 방법을 거치며, Kevin Shields의 선례보다도 더욱 뚜렷한 결과물을 보여주게 됐다. 철근 콘크리트의 기타가 갖는 몽환적 면모 역시, 공간의 반향을 만들어 부유하는 공감각을 만들기보다는, Kevin Shields가 플로팅 트레몰로 브릿지를 활용해 아밍을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음정의 ‘일렁임’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거쳐 구축된다.

baan의 『neumann』(2025, self-released)이 톤의 원근감, 습도, 명확성에 있어 집요한 치밀함을 발휘하며 “로-파이적이다”라는 착시를 일으키는 하이-파이 사운드에 도달하는 기념비적 성취를 거둔 후, 우리 인디 씬 청자들의 귀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 『Asians Take Her Car』는 사운드디자인과 톤 측면에서 같은 씬 속에 머무르는 반재현과 유사한 지향을 공유하며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아마도 믹싱과 컴프레싱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이름 그대로 합주녹음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을 이들의 지난 EP 『철근 콘크리트 합주녹음』(2025, Self-released)에서는, 굵은 스트링의 드롭 튜닝이 제공하는 피킹에서의 질겅거리는 타격감과 훨씬 먹먹한 퍼즈 톤이 정돈되지 않은 헤비니스에 근거를 제공해 줬다면, 『neumann』과 유사하게 조금 더 깔끔히 정돈된 톤을 선보이는 『Asians Take Her Car』는 혹자에게는 아쉬움으로, 다른 이에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이를 비교해 듣는 재미 역시 있을 것이다.

한편 앨범은 J Mascis나 『Siamese Dream』이 혁신적이었던 이유를 되새기고 재현한다. 인상주의적 배경색을 칠하는 붓으로서 기타 리프가 드러내는 ‘결’에 집중했던, 노이즈 록적, 혹은 슈게이즈적 톤을 토대로 두고도, 동시에 기타를 Jimi Hendrix 이후의 클래식 록처럼 화려하고 공격적인 솔로 악기로 활용했던 사례들이다. 철근 콘크리트는 선배들이 찾아냈던 절묘한 비례를 다시 발굴해내며, 록 음악의 미덕인 위력적인 리프와 솔로를 보여준다. 특히 리프에 있어서는 송라이터로서의 강점이 두드러지기도 하는데, 「Asians Take her Car」나 「Connect!!」는 시작부터 결코 늘어지지 않는 호흡을 근사하게 전개하며 주의를 단단히 끌어 오는 난폭한 구조의 매력을 선보인다.

대체로 건조한 텍스처를 활용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일본 얼터너티브 음악들처럼 습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트랙들 사이에서 유독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트랙 「I Want to Disappear (It’s a Agner)」다. 애수적 아르페지오와 직선적인 헤비 리프 사이의 역동적 전환,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달곰씁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크리모적 코드 보이싱, 포스트-록적 축적과 발산을 선보이는 구조와 후반부의 스크리밍은, 근래 들어 구태의연해진 Deafheaven의 음악이 재미있었던 시절, 특히 「Dream House」와 「Sunbather」(2013, Deathwish)가 선사했던 충격을 상기시키고 향수를 자극한다. 물론 여기에는 최정원의 브루털 보컬이 George Clarke의 모창처럼 들린다는 것이 꽤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언젠가, 마찬가지로 ‘야마’가 끝내주는 어느 뮤지션으로부터 이 단어를 어떤 비평 언어로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와 나는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온갖 단어를 생각해봤지만 끝내 ‘야마’를 대신할 완벽한 낱말을 찾지 못했다. 뮤지션이 간직한 고유의 성깔과 아집, 악기의 신경질적 면모가 청자의 귀를 헤집고 들어오는 면모로 전화하는 순간? 풀어서 언어화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Asians Take Her Car』는 분명히 ‘야마 있는 앨범’이다. 누군가 ‘야마’가 무엇인지 물어볼 때 대명사나 보조관념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Asians Take Her Car』는 부산이 우리 인디 록 씬에서 노이즈를 활용하는 음악의 요람이 되어가는 와중 중요한 점 하나를 찍었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야마’가 끝내준다.

   
「Asians Take her Car」 – official mus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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