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음 2021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

by 온음
   

안녕하세요. 웹진 <온음>입니다. 올해도 저희는 연말을 맞아 한 해 만들어진 음악들 중 저희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여기 모았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저희와 함께 올 한해 즐겨 들으신 음악들을 기억해보실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한 해 동안 저희 <온음>을 찾아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이 결산을 준비하는 사이, 도마의 2집 『도마』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고인께 감사와 경의의 마음을 표하고자 합니다. 낮은 자세로, 고인의 명복을 바랍니다. – 조지환

   
  • 아래의 목록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1월 사이에 발매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선정 이전의 후보 목록은 해당 링크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General Field──

   

The Best Album of 2021

잔나비, 『환상의 나라』, 페포니뮤직, 2021.07

‘록은 죽었다.’ 다소 과격하기까지 한 이 선언은 분명 잘못된 말이다. 만일 우리가 섣부르게 장르의 생사를 재단한다면, 그것은 그 장르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모독일뿐더러 그들이 제출하는 작품들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짓일 테다. 허나 그 선언을 ‘록은 대중음악 내에서 주도권을 잃었다.’와 같이 수정한다면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과거 록은 마치 팝의 동의어와 같이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른 장르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이는 장르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져만 가는 지금의 대중음악에 있어 더욱 분명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곳에서 ― 록헤드들, ‘록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그 시절을 경험한 기성 비평가들 ― 록의 황금기의 잔재를 좇는 이들은 많다. 아아, 찬란했던 옛날이여!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부르짖으며 그 잔재를 찾는다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환상의 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 록의 유산을 좇는 이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앨범이다. 2019년에 발매한 『전설』을 통해 ‘전설’로 불리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모티브로 삼았던 그들은 본격적으로 과거 록의 황금기를 조준한다. 불세출의 대작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1967)를 연상케 하는 음반의 구성이나 「비틀파워!」와 같은 ― 영문 제목은 「The Ballad of John and Yoko」 (1969)의 패러디인 ‘A Ballad of Non Le Jon’이다 ― 트랙의 수록은 그들의 지향점이 The Beatles를 비롯한 록의 전설들을 겨냥함을 분명히 한다. 또 각 트랙들의 면모는 너무나도 화려하고, 장중하며, 웅장한지라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다. 이에 우리는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록의 문법이 담지하던 미덕을 떠올리지 아니할 수 없다. 조지환은 『환상의 나라』를 두고 “프로그레시브-록의 야심”이 그 중심에 박혀있는 것만 같다 쓴다. 나 역시 그가 제출한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적어도 국내의 록 음반들에 한정하자면, 나는 아직도 『환상의 나라』의 방법론과 비교할 만한 작품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방법의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신선하며 충격적인 작품이란 의미일 것이다 ― 물론 그렇다고 『환상의 나라』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사운드를 구현해냈다거나 하는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겠지만 말이다. 『환상의 나라』는 그러한 차원에서 강점이 있다. 「로맨스의 왕」 후반부 코러스의 속도가 극적으로 요동치는 장면,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가 조성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풍경이 후반에 이르러 전혀 다른 얼굴로 변모하는 장면, 「밤의 공원」에서 후반부 장중한 합창과 세션의 연주가 아로새겨지는 장면 등은 휘황찬란한 장식들로 한껏 꾸며진 음반의 한 페이지다. 「용맹한 발걸음이여」, 「소년 클레이 피전」, 「누구를 위한 노래였던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트랙들에서는 힘차면서도 멋들어지게 써낸 일종의 리트 또는 뮤지컬, 오페라와 같은 노랫말들이 가득하다. 말하자면 『환상의 나라』는 다채로우면서도 거대하게 직조된 소리의 기예들과 치열하게 쓰인 노랫말들이 앞다투며 팽창해가는 음반이다. 가히 장엄하다 말할 수 있을 이 작품은 분명 2021년에 제출된 작품들 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환상의 나라』는 이전 『MONKEY HOTEL』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나 『전설』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와 같은 대중친화적인 넘버도 잊지 않았다. 「외딴섬 로맨틱」, 이 트랙은 흡인력이 있는 멜로디와 부드럽게 흘러가는 선율이 편안한 감상을 유도하면서도 장엄한 음반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의 나라』의 기획은 일종의 ‘대중성’과 ‘음악성’ 따위로 불리는 대중음악의 미덕들을 양득하며 다시 한 번 성공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살핀 ‘록의 쇠퇴’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한 번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록이 물러난 것은 사실이지만, 『환상의 나라』는 『MONKEY HOTEL』과 『전설』의 성공을 발판 삼아 록이 대중음악의 중심에 자리하던 그 시절의 소리를 끌어와 우리에게 전시한다. 이는 분명히 현재와 다소 이질적이고, 그렇기에 도전적인 시도다. 생각건대 메인스트림에서는 이렇게 접근성이 낮을 수 있는 음반이 제출되기가 까다로울 것이다. 반면 인디-씬에서는 이렇게 스케일이 크면서 도전적인 음반을 만들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여러 가지 이유로(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울 것이다. 이 두 가지 한국대중음악의 상황은 『환상의 나라』를 보다 독보적이면서도 낯선 위치로 올린다. 앞서 내가 『환상의 나라』의 방법론을 가진 다른 비교 대상을 쉽사리 제시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낯선 것은 단지 『환상의 나라』의 방법론이나 그 소리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환상의 나라』가 낯선 앨범이라면, 일차적으로 그 이유는 제목과 이야기에서부터 찾아져야 마땅하다. 『환상의 나라』, 풀어서 『환상의 나라 : 지오르보 대장과 구닥다리 영웅들』. 그러고 보면 『환상의 나라』의 주인공(화자)의 이야기는 지극히 낭만적인 어떤 것이라, 다소 삭막하기까지 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여간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극의 주인공은 낭만에 도취된 채 드넓게 펼쳐진 희망과 삶,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를 노래한다. 물론 낭만의 세계 속에서도 그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끝내 날 죽이지 못했던”(「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 고통에 아파하기도, 별을 목표로 비행하다 총성 한 방에 고꾸라지기도(「소년 클레이 피전」), 추락한 뒤 허망해하며 “누구를 위한 노래였던가”(「누구를 위한 노래였던가」)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금 날개를 펼치며 비행을 소망하고(「블루버드, 스프레드 유어 윙스!」), 그 날갯짓으로 그가 바라 마지않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컴백홈」).

“사랑은 구름 넘어 환상은 아니지만 멍청한 믿음은 좀 필요로 해. 어서 여기 밤사이 깨어진 꿈의 조각을 주워가렴.”(「용맹한 발걸음이여」) 『환상의 나라』를 하나의 리트 내지는 극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서 포착되는 것은 낭만적인 주인공이 갖은 시련에도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종국으로 나아가는 승리의 서사다. 그렇다면 서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용맹한 발걸음이여」의 이 구절은 ‘멍청한 믿음’을 가지고 한 발짝씩 나아가는 주인공의 행적을 그대로 담아낼 것이다. 이 여정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닌지라, 「굿바이 환상의 나라」의 고단한 읊조림으로 요약된다. 헌데 그를 마무리하는 “그래도 오늘 밤은 집에 가야겠어.”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전까지의 고단함과 달리 어딘가 당차고 희망적인데, 그것이 ‘집’으로 귀환하여 고난을 극복하는 「컴백홈」과 이어지는 최후의 서사는 분명 기억할만한 것이 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저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우리가 한 때 품었던 이상적인 삶 내지는 무언가와 너무나도 흡사한지라, 현실에 묶인 우리 대신 그가 복수해주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환상의 나라』라는 극의 낭만적인 주인공이 그의 현실 앞에서 버텨낼 뿐 아니라 그 현실을 자기 자신의 승리에 복속시키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승리는 힘든 시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누구나 극복하고자 하는 바는 있을 것이고, 각자의 이상 역시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지 않는가? 그 물음에 답하는 순간 우리 역시 『환상의 나라』 속 ‘구닥다리 영웅’으로 분하게 되며, 그 낯선 풍광에 정신이 아찔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환상의 나라』가 이룩한 성취가 단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도리어 그 성취를 축소시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환상의 나라』는 그 사운드에 있어서도, 이야기에 있어서도 우리가 가졌다 여겨질 바람 내지 희망을 이루어주는 음반으로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바람을 작품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다면, 그 작품은 미적 가치 뿐 아니라 다른 가치들 역시 획득하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환상의 나라』가 딱 그런 작품이다. 『환상의 나라』는 록의 황금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도, 현실의 고됨에 지친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극중의 저 주인공을 따라, 우리도 우리의 집으로 끝내 돌아갈 수 있기를! 그 바람들이 『환상의 나라』를 2021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올렸다. – coloringCYAN

   

The Best Track of 2021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유어썸머, 2021.08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기술하는 작업에서라면, 「늑대가 나타났다」는 분명 성공하고 있다. 농부들은 먹을 것을 만들고도 그것을 먹지 못한다. “우린 […]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뿐, 포도주를 담그고 그 찌꺼기를 먹을 뿐, 내 자식을 굶겨죽일 수는 없소.” 이 구절은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저 구절이, 「늑대가 나타났다」가 개입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목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그저 아무런 특징 없이 이해된 빈곤을 무턱대고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들이 생산 활동의 산물을 사회적으로 박탈당한 까닭에 야기된 빈곤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가 문제되는 사태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무엇이 저 소외를 가능케 했고 또 지속시키는가를 서술하지는 않는다. 이 노래가 요구하는 충격이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로 서술되지 않는다(다만 설명적 시각에서의 해석을 위한 참조점들을 남겨두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서술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장을 위한 무기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래들이 반드시 그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과도하고 불필요한 요구다. 「늑대가 나타났다」 이 노래는 봉기하는 인물들과 그 배경을 간략한 소묘를 제시하고 있고, 그것으로도 봉기를 위한 열정을 달구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열정을 달구는 것, 아마도 그것이 이 노래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일이 아닐까? 노래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거듭 되풀이되는 외침은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처럼 들린다. 진군가 스타일의 민중가요들의 브라스 대신, 「늑대가 나타났다」에서는 첼로가 저 흥분을 가열시키고 있고, 이랑은 자신의 희곡 속 농부들을 연기하고 그들의 경고를 강조함으로써 그 열기를 끓는점에 올려놓았다. – 조지환

   

The Best Artist of 2021

정재일

내가 생각하기에 Artist Of The Year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해 발매된 좋은 품질의 음반을 최우선 전제로 삼을 것. 둘째, 대중음악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력이 유의미할 것. 셋째, 그것이 한 해를 대표할 만해야 할 것. 그래서 올해는 정재일이다. 다소 의아한 선정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의아할 것도 없다. 그가 봉준호 감독과 꽤 오랜 기간 함께 작업했던 영화음악가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가 자신의 커리어를 펑크 밴드로 시작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조명되지 못한다. 많은 이들에게 정재일은 박효신의 러닝메이트로 익숙하겠지만, 사실 그는 대중음악에 발을 들인지 무려 20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지향점을 버린 것도 꽤 오래전 이야기가 된 현시점에서, 정재일은 근 몇 년간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고, 2021년은 그에게도 특별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발매한 세 번째 정규 앨범 『psalms』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성경의 시편과 1980년의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커다란 비극을, 서로 관계가 없을 두 오브제를 한없이 겸손하고 적실한 방식으로 영합해냈다. 그 비극의 황망함과 참혹함을 부다페스트 스코어링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정은혜의 힘을 빌려 너무나도 훌륭하게 재구성하고 소리로서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psalms』에서 덧없는 인간의 삶이 신군부에 의해 피로 물들어갔던 나날들 가운데로 뛰어들어 절규하고, 시민군의 용기와 투지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조지환의 걱정대로 우리가 이 자리에서 『psalms』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신군부가 자행한 폭력을 다루는 상세한 서술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는 낮은 자세로, 아티스트로서 5.18 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하여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를 향해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동시에 그는 음악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한껏 뽐낸 바 있다. 《기생충》 (2019)의 역사적인 성공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 대중에게 크게 각인시켰다. 물론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은 그 내용에 관한 맥락에서나 NETFLIX를 포함한 OTT 플랫폼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관한 맥락에서나 결함이 없는 호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감상할 때 우리의 감정선이 변화하는 과정에 배경음악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사운드 트랙 제작에 큰 공헌을 한 정재일에게도 그 대성공에 어떠한 지분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성취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렇듯 정재일은 올 한 해 대중음악을 넘어 대중문화를 대표할 만한 흔적들을 남겼고, 그 흔적들이 새겨지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경탄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가 선정하는 2021년의 Artist Of The Year는 이래서 정재일이다. – XENITH

   

The Best Rookie of 2021

æspa

æspa를 올해의 신인으로 언급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단 세 번의 활동으로 얻게 된 엄청난 팬덤의 규모와 대중적 흥행 같은 것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만으로 그들이 2021년 최고의 신인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혹 SM Ent.라는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의 차세대 리더이자, 데뷔에서부터 멤버 모두 파리 최고의 디자이너 하우스 중 하나인 GIVENCHY의 앰버서더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성과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근 1년 사이 전 세계 산업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메타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세계관이라든가, 다국적 멤버로 구성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 K-Pop 시장의 차세대 슈퍼스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은 가까운 미래에 그들이 이루어낼 성공들을 점칠 수 있는 단초로서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근거들을 제쳐두고서라도, 나는 æspa라는 아티스트를 올해 가장 뛰어난 신인 아티스트로서 들이밀 수 있는 이유로 그들의 음악적 성과를 이야기하고 싶다.

2020년 말 데뷔 싱글 「Black Mamba」를 발매한 이후 리메이크 싱글인 「약속 (Forever)」, 올해 대중음악 시장 최고 인기 싱글 「Next Level」,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첫 앨범 『Savage』에 이르기까지, æspa는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악성과 세계관, 콘셉트를 선보이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했다. 가령 올해 인기 있는 밈으로 활용되었던 “æspa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같은 가사나 ‘광야(KWANGYA)’같은 세계관 속 용어는 대중을 넘어 K-Pop 팬에게도 낯설만한 요소였지만, 그들의 세계관을 전개함에 있어서 꾸준하게 세계관을 활용한 작사를 통해 효과적인 성과를 이루어냈다. 가령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æ)’라는 존재와 그를 가로막는 흑막 ‘블랙 맘바’, æspa를 돕는 ‘나비스(Nævis)’같은 세계관 속 낯선 존재들을 그들의 음악에 적용하고 그것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독특한 음악적 색채와 분위기를 통해 팬과 대중 모두 그 존재를 너무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들의 성과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음악의 특성에 있다. 이전 NCT가 데뷔하며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Neo’라는 명칭으로 규정했던 것과 비슷하게, æspa 역시 퓨처리스틱한 음악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특히 그들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첫 앨범 『Savage』에서는 PC Music 등 ‘하이퍼 팝’으로 묘사되는 거친 전자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거나, 과거 SMP라고 불렸던 SM Ent. 및 K-Pop의 근원적인 구성 방식을 현재에 맞추어 활용함으로써 æspa라는 그룹만이 선보일 수 있는 특별한 음악적 색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독창적인 음악적 기조는 기존 æspa의 미래적인 세계관과 결합하며 더욱 효과를 얻었고, 이를 K-Pop 마니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보이며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근 몇 년간 걸그룹의 도약이 돋보이는 K-Pop 시장 내에서, æspa라는 훌륭한 그룹의 등장만으로도 많은 K-Pop 팬들은 화창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올해 이룩한 대중적 성과를 더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K-Pop 시장의 미래가 넓디넓은 광야로 진출하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 양소하

   

──Genre Field──

   

The Best Rock Album of 2021

잔나비, 『환상의 나라』, 페포니뮤직, 2021.07

“두려워하지 마라. 이 섬은 소음과 소리와 달콤한 노래들로 가득하다. 즐거움을 줄 뿐 해치지 않을.” 이는 William Shakespeare의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칼리반의 대사다. 아마 이 대사를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환상의 나라』(부제 : 지오르보 대장과 구닥다리 영웅들) 서두에서 읊는다 하더라도 크게 위화감은 없을 것이다. 칼리반이 『템페스트』 내에서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 또는 그 행적이 어떠한지 그 여하와는 관계가 없이, 그의 말대로 『환상의 나라』 역시나 소음과 소리와 달콤한 노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뿐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매한가지다. 조지환의 말대로 『환상의 나라』는 하나의 크고 화려한 장관과도 같다. 장관도 그냥 장관이 아니라, 『MONKEY HOTEL』 (2016)과 『전설』 (2019)이 지니고 있던 장점들만을 모아 만든, 그 품이 아주 넓은 장관이다. 그 장점들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다 ― 앨범을 앨범으로써 너무나도 가치 있게 만들고, 하나의 이야기책과도 같이 재밌게 만드는 능력, 무거울 수 있는 주제 앞에서 발휘하는 재치가 담긴 가사, 거창하고 과장된 듯 보이는 와중에도 빛이 나는 매력적인 연주와 가창. 『환상의 나라』는 그러한 장관이다.

그 장관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환상의 나라』는 “여전히 꿈과 희망, 사랑과 우정, 성실과 용기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동시에 “철없던 밤과 낮”의 나라이고, 지나간 시간을 부르짖는 나라이며, 그런 면에서 낭만주의적 세계관의 나라이기도 하다. 어찌나 낭만주의적인지 이곳에서는 파랑새마저 활기찬 날갯짓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대표되지만, 그 일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외딴섬 로맨틱」에서 찾아가는 무지개가 떨어진 섬은 결국 닿을 수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섬이고, 「고백극장」에서의 우정과 사랑은 처절하게 쟁취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소년 클레이 피전」에서의 별이 되려던 소년은 총성 한 발에 끝없이 추락하고, 「용맹한 발걸음이여」에서 성실이라는 개념은 “멍청한 믿음”이라는 말과 밀접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 『환상의 나라』에서는 그런 것들마저 최정훈의 익살스럽고 명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린다. 『환상의 나라』는 결국 우리의 낭만주의마저 현실의 어두운 이면과 결별할 수 없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낭만주의가 온전한 형태의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곳은 아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들이 그토록 닿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무지개는 「컴백홈」에 관한 삽화의 호수에 담겼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바라보던 호수에 빠져 목숨을 잃었지만, 『환상의 나라』에서는 우리가 그 호수에 빠져 현실로 돌아가기를 유도하는 것 같다. 우리의 낭만은 현실과 병렬적인 구조는 아닐지언정 어떻게든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비틀 파워!」는 『환상의 나라』가 잔나비 본인들이 지나온 청춘과 추억의 나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다. “Dear Mr. John, Mr. Paul”과 같은 가사나, 쇼 비즈니스와 예술에 관한 인식 사이의 괴리를 노래하는 것이나, 사이키델릭하면서도 코러스와 오케스트레이션 등의 다채로운 치장을 덧대어가는 연주 방식이나, 이들은 충분히 자신들의 음악이 그 시절 로큰롤이 쫓아 마지않던 미덕과 연관되었다고 주장한다. coloringCYAN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본작을 두고 The Beatles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1967) 따위의 앨범을 언급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에게 『환상의 나라』는 John Lennon이 Paul McCartney와 함께하던 시절의 나라이기도 한 셈이다. 특히나 이와 같은 연주는 비단 「비틀 파워!」만의 특질이 아닌데,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와 「밤의 공원」이 그런 면에서 가장 눈에 띈다. 이들에게 1964년 언젠가의 JFK 공항에서 벌어진 사건 ― 브리티시 인베이전 ― 은 상당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젊음의 표상을 자처하면서도 그 이면을 노래하기를 즐기는 것도 이와 결을 함께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환상의 나라』는 그 품이 이다지도 넓다.

이러나저러나 『환상의 나라』는 잔나비가 오랜 기간 꿈꿔왔던 순간처럼 보인다. 『MONKEY HOTEL』에서 그들은 상흔을 입은 모든 젊음을 아우를 수 있는 노래들을 했고, 『전설』에서는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보편적인 메시지로 치환시킨 노래들을 했다. 그동안 그들을 향한 평가는 유수의 브릿 팝, 체임버 팝,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들을 ― 이를테면 앞서 언급된 The Beatles나 Coldplay, 심지어는 신중현과 엽전들까지 ― 소환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곧 그들의 지향을 향한 호오를 가르는 지표가 되었다. 재현적 반영을 두고 기시감과 완성도 사이에서 그 갈피를 잡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환상의 나라』는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책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랑스럽게 제출한 전시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이고, 젊음과 낭만을 향한 동경을 우리의 현실과 매개하는 그 방식이 근사하다. 우리의 대중음악은 지극히 낭만주의적이면서도 비즈니스적이고, 그런 면에서 현실주의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에서 이러한 가사를 쓴다. “신음하는 친구여, 자신 있게 고갤 떨궈라!” 『환상의 나라』와 같은 작품들이 계속해서 제출되는 한, 우리의 낭만은 결코 현실 속에서 허황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소음과 소리와 달콤한 노래들로 가득한 『환상의 나라』를 마주하며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올해 최고의 록 앨범은 『환상의 나라』다. – XENITH

   

The Best Rock Track of 2021

TRPP, 「Pause」, Self-Released, 2021.05

종종, 슈게이즈가 얼마나 신나는 장르인지는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게 슈게이즈는 「When You Sleep」 (1991)과 「Kaleidoscope」 (1990)에서 그렇듯 듣는 이를 춤추게 만드는 리듬과 함께할 때 가장 화려해지는 장르다. 「Pause」는 그 점에서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세상을 잠시 멈춰놓고 가만히 누워있고 싶다는 노랫말과는 달리, 이 곡은 활기로 가득 차 있다. TRPP는 짧은 인트로에서부터 강하게 드럼을 타격하고, 노이즈의 막을 만드는 기타로 하여금 저 드럼이 정해준 힘찬 리듬을 따라가게 하고 있다. 앰프를 긁어대기라도 할 듯이 찌그러진 톤으로 노래 한복판에 들어와 자기 릭을 휘저어대는 리드 기타 끝에 갑작스런 트레몰로가 깊게 걸릴 때, 「Pause」는 가장 역동적이 된다. 보컬 트랙들에 녹음된 목소리들은 모두 힘을 주지 않고 있지만, 멜로디가 쳐지는 일은 없다. 도리어 박자에 맞춰 율동적으로 음절을 나누는 코러스 멜로디는 비트만큼이나 즉각적으로 활기를 전달하며, 무엇보다도 입에 감긴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음색은 구겨진 채 퍼지고 늘어진 노이즈에, 어깨와 고개를 가만두지 않는 리듬. 「Pause」에는 슈게이즈에 바랄 수 있을 모든 것들이 모두 담겨 있다. 알 듯 말 듯 분명치 않은 가사는 노이즈와 멜로디의 신비감을 더 짙게 덧칠하면서, 신나는 연주와는 상반된 분위기로 노래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Pause」는 어느 방면에서도 흠결을 찾기 힘든 노래고, 그렇기에 『TRPP』를 위한 싱글컷으로서든, 아니면 저 앨범의 인트로로서든 탁월한 노래라고 할 만하다. 올 한 해는 기억에 남는 슈게이즈 넘버가 유독 많은 해였고, 그만큼 많은 트랙들이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에서도 「Pause」는 가장 밝게 빛나는 트랙이었다. 나는 이 노래로 올해의 슈게이즈를 기념하고자 한다. – 조지환

   

The Best Rap/HipHop Album of 2021

Kid Milli, dress, 『Cliché』, Highline Ent./Indigo Music, 2021.04

우리가 대중음악 작품들에 대해 논할 때 작품들의 성격에 따라 그에 대해 각기 다른 기준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처럼 여겨진다. ‘1 프로듀서 1 MC’로 구성된 팀이 제출한 작품을 평가할 때 흔히들 기준으로 삼는 것은 프로듀서와 MC간의 작품 내적인 시너지다. 가령 우리는 XXX의 작품을 두고 FRNK의 날카로운 소리들과 김심야의 공격적인 랩이 잘 조화를 이루어 그것이 좋다고 평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황두하는 “‘1 프로듀서 1 MC’ 조합의 앨범은 각자의 색깔이 뚜렷이 드러나면서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을 때 매력이 극대화된다.”라고 적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준을 프로듀서 dress와 퍼포머 Kid Milli가 의기투합한 『Cliché』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다.

『Cliché』에서의 Kid Milli와 dress의 조화는 가히 성공적이다. Kid Milli의 아카펠라 랩을 제시하면, 그에 맞춰 dress가 비트를 직조하는 독특한 작업방식은 dress에 의한 Kid Milli의 재해석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Kid Milli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카펠라 랩을 만들 때 사용한 비트들과 그 랩을 듣고 dress가 직조한 비트들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차이가 아이러니하게도 『Cliché』의 저변을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Kid Milli는 때로는 자신의 장기처럼 빠르고 단단하게, 때로는 보다 느긋하게, 때로는 노래하듯이 각종 퍼포먼스로 『Cliché』를 빼곡히 채운다. dress는 「Bittersweet」와 같은 뱅어, 「Challenge」와 같은 빠른 템포의 하우스, 차분함과 담담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Blow」나 「Citrus」처럼 그런 Kid Milli의 랩을 위해 다양한 분위기의 소리들을 선사한다. 또한 두 사람의 합이 제대로 들어맞는 순간들은 트랙 내에서 두 가지 비트가 하나의 외양으로 연결되는 때에 찾아온다. 코로나와 예술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각기 다른 비트 위에서 매개시키는 「Face & Mask」, 타이트하게 이어지는 퍼포먼스를 적절하게 환기하는 「Cliché」, 강렬한 소리들에 이어 등장하는 끈적한 Okasian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Bankroll」까지가 그렇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Midnight Blue」는 『Cliché』의 가장 빛나는 트랙이다.

『Cliché』에서 또한 중요한 지점은, 그들이 각기 다른 두 가지의 트랙리스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나는 소리의 배치를 중시한 dress의 트랙리스트, 하나는 노랫말 서사의 순서를 중시한 Kid Milli의 트랙리스트이다. 혹자는 이를 소리와 서사 양측에서 앨범이 실패한 지점이라 평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가령 지금 이 순간에 『Cliché』를 돌이켜본다면, 나는 Adele이 『30』을 발매하며 남긴 의견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녀에 의하면 앨범을 만들 때 트랙리스트의 배치는 하나도 허투루 짜인 것이 없다. Kid Milli와 dress의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러한 트랙리스트의 제시가 곧 그들 자신이 ‘스튜디오 앨범’으로서의 『Cliché』를 일종의 ‘플레이리스트’화하는 작업이라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스트리밍 시대에 플레이리스트는 새로울 것도 없는 형식이다. 그러나 Kid Milli와 dress 본인들이 『Cliché』에 대해 스튜디오 앨범을 표방하면서도 그를 플레이리스트화 시킨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 방식으로 그들은 스트리밍 시대의 대중음악을 가동하게 하는 일종의 ‘Cliché’에 반기를 드는 셈이다. 트랙의 배치에 있어 어떤 청자에겐 dress의 것이, 어떤 청자에겐 Kid Milli의 것이 더 와닿을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서순 모두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소리와 랩 퍼포먼스 모두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양득하는 Kid Milli와 dress의 기예다. 그리고 이 역시 『Cliché』에서 포착되는 한국힙합의 어떠한 ‘Cliché’ 들이 상투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술한) 여러 이유들을 거쳐, 『Cliché』는 분명 올해 가장 기억할 만한 랩/힙합 앨범으로 남았다. – coloringCYAN

   

The Best Rap/HipHop Track of 2021

HEARTCORE, 「60 BPM」, Hi-Lite Records, 2021.08

힙합과 하이패션의 경계는 언제부터 무너졌을까? 비교적 먼 과거에는 ‘힙합 패션’이라는 단어로 명명할 수 있을 만한 패션 스타일이 확고하게 존재했지만, 2010년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스타일을 뽐내며 이제는 힙합 내에서 여러 패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2010년대 Kanye West가 부상하며 그와 주변인들은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전개했고, A$AP Rocky 등의 패셔니스타는 힙합 씬을 넘어 전 세계 하이패션을 비롯한 패션 시장을 장악했다. 이제 래퍼들은 Supreme, A BATHING APE, Stussy보다 PRADA, Christian Dior, Maison Margiela를 많이 입기 시작했고, 이는 곧 힙합 씬에서 송신하는 일방적인 애정 표현이 아닌 패션 씬에서 역시 주목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해외의 경우 『Yeezus』 투어에서 Martin Margiela가 제작한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Kanye를 중심으로 힙합의 하이패션 장악은 시작되었다. Kanye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과 스니커즈 컬렉션 협업을 이어오는 동시에 현재에는 갭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어 자신의 패션 커리어를 전개하고 있으며, 그의 최측근인 Demna Gvasalia는 Vetements을 넘어 파리 최고의 디자이너 하우스 중 하나인 BALENCIAGA의 디렉터로 활약하며 사장되어가던 브랜드의 완벽한 부활을 도왔다. 또한 과거 Kany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Matthew Willams는 자신의 브랜드 1017 ALYX 9SM의 테크-웨어 선두를 앞세워 유서 깊은 디자이너 하우스 GIVENCHY의 디자인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두 말할 필요 없는, 이제는 고인이 된 Virgil Abloh는 본래 힙합 팬들에게 Kanye의 비주얼/아트 디렉터로 이름을 알렸지만 2010년대에 들어 PYREX VISION을 설립한 데 이어 밀라노에서 Off-White를 설립해 패션 씬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으며, 결국 파리 디자이너 하우스 사상 최초로 흑인으로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 맡은 직책이 Louis Vuitton 남성 라인의 총사령관이었으니, 힙합 음악과 그 문화가 스트리트 패션이란 경계를 넘어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확실히 경계를 넓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2021년에 들어서도 힙합의 영역 확장은 이어졌는데, Travis Scott은 자신의 레이블이자 브랜드인 Cactus Jack을 통해 Kim Jones가 이끄는 Dior Men과 함께 컬렉션 꾸미고, Frank Ocean의 주얼리 브랜드 Homer와 프라다의 ‘PRADA for Homer 1’ 컬렉션이 발매되는 등 힙합과 하이패션의 접점 만들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어느덧 힙합은 음악 내의 주류를 넘어 전 세계 문화의 주류가 되었고, 힙합은 패션 씬 내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Kanye West, A$AP Rocky와 같은 래퍼들이 자신만의 패션 커리어를 전개해나갔다면, 국내에서 역시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영향력을 넓혀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서 거론되는 Reddy는 2010년대부터 꾸준히 패션에 대한 애정을 자랑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갔고, 비교적 나중에 같은 레이블에서 데뷔한 Swervy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패션에 대한 열정을 선보였다. 그리고 두 래퍼와 함께 Yosi, SUI라는 뛰어난 프로듀서가 결합한 그룹 HEARTCORE는 그들이 가진 패션에 대한 애정을 음악을 통해 훌륭하게 풀어내었다. 특히 「60 BPM」이란 트랙은 기존 힙합 씬에서 보기 드물었던 사운드와 구성을 통해 패션에 대한 애정과 힙합에 대한 열정의 적절한 교차점을 만들어냈다. 기존 패션 브랜드의 런웨이에서 볼만한 미니멀한 전자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로듀싱 위에서 Reddy와 Swervy는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드러내며 패션이라는 주제에 대한 스스로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가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런웨이, 컬렉션 등을 언급하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패션의 영역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구현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과시하며 힙합과 패션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현 세대의 현상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단지 패션이라는 주제를 사유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적 요소를 적합한 위치에 배치하고, ‘멋’이라는 원초적인, 그러면서도 힙합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를 과장스럽지 않게 표현한 점 역시 「60 BPM」이라는 곡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포인트가 되었다. 힙합과 패션은 근원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요소를 모두 훌륭하게 표현해 내는 Reddy와 Swervy라는 인물, 그리고 그들의 음악적 색채를 확실하게 뒤받치는 Yosi라는 프로듀서를 통해 만들어진 「60 BPM」은 지난 한 해 동안 발매된 힙합과 그 문화를 대표할 만한 매력적인 트랙이 되었다. – 양소하

   

The Best R&B/Soul Album of 2021

유라, 『GAUSSIAN』, 문화인, 2021.02

유라의 본 EP, 『GAUSSIAN』을 들으며, 뭉툭한 칼날 같은 기억에 마음이 베이는 느낌이었다. 아마 예상보다 화자의 감정이 선연하게 드러난 작품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감정은 쨍하면서 숨을 머금고 부유하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몽롱하지만 신경을 건드리는 그루브와 조화를 이루며, 어딘가 세게 맞은 듯 얼얼한 기분과 함께 강하게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감각은 들으면 들을수록 빛바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짙게 머무른다.

그러니까, 가슴이 아프다. 어떤 소중한 대상이 사라진 공허감이 미니멀하고 날카로운 만듦새에 배어나오고, 그렇기에 소중한 대상의 부재로 인해 가슴에 뚫린 구멍은 더 아리고 쓰라리다. 이를테면 ‘미미’하게 자취를 감춰 가는 대상을 심란하게 바라보는 「미미 (MIMI)」의 아련함, 얼터너티브-록스러운 리듬 기타와 하우스 비트를 통해 모순된 감정 사이를 세차게 오가는 「분홍 (PINK!)」의 강렬함은 화자에게 남은 상흔이 추억으로 넘어가려는 그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듯하다.

컨템포러리/얼터너티브 R&B, 펑크(funk), 록, 하우스, 퓨처 베이스 등 트랙 별로 구사하는 스타일이 다양하고, 화자의 단상도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다. 그럼에도 본작의 응집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짚어보자면, 우선 앞서 무게를 두어 서술한 두 곡을 지나서도 프로덕션 밀도가 일정하게 서늘하고 몽환적인 무드를 만들어내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또, 곡간 퍼포먼스 편차도 크지 않고, 리듬에 맞춰 발음을 흐리는 듯한 목소리를 서늘하게 강조해 그 내용에 더 유심히 귀 기울이게 하기 때문에, 화자의 시니컬하고 자기성찰적인 태도는 일관되게 들려온다. 그렇게 상념은 자아가 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가슴을 시리게 훑고 지나간 그 경험은, 2021년을 돌이켜 볼 때, 국내 여러 독창적인 R&B 앨범 중에서 가장 감정 깊이까지 자취를 남겼고, 이를 토대로 나는 ‘Best R&B/Soul Album’이라는 미명 아래 본작을 마땅히 기록하고자 한다. – 만능초보

   

The Best R&B/Soul Track of 2021

원슈타인, 「적외선 카메라」, Stone Music Ent., 2020.12

「적외선 카메라」가 모티프로 삼고 있는 것은 열화상 카메라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는 상황이다. ‘쇼미더머니9’ 본선 무대에서 원슈타인은 노래가 시작하기 전 인트로 격의 노래를 몇 마디 더 덧붙였는데, 그 때 그가 노래한 가사 중에는 “가족들의 나가지 말란 말에도”가 있었다. 이 노래에서 원슈타인은 팬데믹 시기의 일상사를, 평이한 어휘들을 사용해 가까이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지난 두 해 동안, 꽤 많은 노래들이 팬데믹으로 인한 곤란을 대개는 추상적으로만 거론했지만, 원슈타인은 보다 살갗에 와 닿는 사태들을 통해 보다 나은 묘사를 시도하고 있다. 가족들은 외출을 만류하고, 건물에 출입하기 전에는 열화상 카메라로 피부 온도를 잰다. 여기에 원슈타인은 똑같이 흔하고 익숙하면서도 훨씬 더 설레는 삽화를 추가한다. 함께 걷고 있는 둘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을 것이기에 연인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을 통해 연인이 말을 걸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라인이 그것이다. (“넌 mask on해도 말거는 듯한 눈빛”) 그리고 「적외선 카메라」의 매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싱잉에서 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부드럽게 빠져나오며 리듬을 늘어뜨리는 빼어난 보컬 솜씨, 이 노래의 중심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음색으로 너무 튀지 않게 곡을 꾸며주는 장식적인 효과음들이 모두 협력해 이 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적외선 카메라」는 구성적으로 모자람이 없으며, 가사면에서 영리하고, 멜로디는 세련된, 탁월한 트랙이다. – 조지환

   

The Best Electronic Album of 2021

SoundSupply Service, 『SCA1 (Side A)』, SoundSupply_Service, 2021.06

나뿐만 아니라 우리 <온음> 일동은 국내의 전자 음악 시장에서 벌어지는 협업과 컴필레이션 앨범의 행렬에 상당한 관심을 표현해왔고, 그 필요성과 의의를 꾸준히 언급해온 바 있다. 그렇게 소개했던 이들은 Keiiti Aki나 Honey Badger Records, VINIOR와 같은 이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몇 가지 리믹스 앨범과 트랙들이 있었다. 올해에도 그러한 사례 중 인상적인 것으로는 Computer Music Club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는 몇 개의 작업물들과 키라라가 12월 발매된 정규 앨범 『4』의 트랙들을 선공개하는 과정에서 제출한 리믹스 트랙들이 있었고, Two Tone Shape의 『Fantastic Machines Remix』와 백예린의 『tellusboutyourself Remixes』가 있었다. 이러한 협업이나 컴필레이션은 아티스트 간의 계약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힙합 레이블에서의 그것과 약간은 결이 다르다. 나는 일전에 이러한 서술을 했던 바 있다. “전자 음악은 (중략), 주류에서 그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닿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중략) 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몇 되지 않을 기회이자 장이며… (후략)” 우리는 그 움직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지점인 SoundSupply Service의 『SCA1 (SIDE A)』를 올해 최고의 일렉트로닉 앨범으로 선정하며, 소개한다.

『SCA1 (SIDE A)』는 지난 여름 SoundSupply Service가 본격적으로 런칭하며 발매한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제작되었다. 이들 중에는 이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이들도 있고, 처음으로 공식 음원을 발매하는 이들도 있다. 일단 가장 먼저 이수호와 cjb95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들은 힙합 리스너들에게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이수호는 「Long Place」에서 Burial을 모사하면서도 『Entertain』 (2018)에서 구사하던 신경증적인 전자음을 교차시키며 탁월한 감각을 선보인다. 반면 「Move Your Body」에서의 cjb95는 김심야의 『Dog』 (2020)에서 보여주던 프로듀싱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트랙을 내놓았다. 「Move Your Body」는 포 텟의 하우스 트랙인 듯 보이면서도 적당히 펑크 ― Funk ― 스러운 베이스라인과 보컬 샘플의 배치가 어우러지는 웡키 트랙이기도 하다.

「Move Your Body」는 아마 『SCA1 (SIDE A)』에서 가장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트랙 중 하나일 것이고, 그런 면에서는 Beautiful Disco의 「Curb」도 매한가지다. Beautiful Disco 역시 11월 발매된 Khundi Panda의 『The Spoiled Child : 균』 등에서의 프로덕션 크레딧을 통해 힙합 리스너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동시에 『Beaming Interlude』를 비롯한 본인의 앨범을 발매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그는 「Curb」를 통해 적당히 KAYTRANADA스러운 자신의 색채를 성공적으로 요약했다. 한편 래퍼로서 활동하던 Easymind는 골든 에라의 향수를 느낄 법한 샘플 베이스의 비트를 「BQ Real Quick」을 통해서 선보였고, Omega Sapien의 『Garlic』 (2020)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진 전광재는 「Excuse」로 본인의 첫 번째 공식 음원을 발매했다. 「Bananacupcake」의 Y2K92는 말할 것도 없고, 잠자코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김도언 역시 「melting e」라는 그럴싸한 앰비언트 트랙을 제출했다. 또 다른 웡키 트랙인 ccr의 「shed baile」도 빼놓기에는 아쉬울 완성도를 지닌 트랙이다. 이렇듯 힙합 리스너들에게 친숙할 법한 이름과 색채가 돋보이는 『SCA1 (SIDE A)』지만 동시에 트랙의 전자 음악스러운 요소가 감상에 우위를 점하며 청자가 바로 춤을 추기보다는 귀를 기울여 듣게 하는 트랙들도 무시하기 어려운 게 『SCA1 (SIDE A)』다.

『SCA1 (SIDE A)』는 생각 외로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점이 많은 작품이다. 개개의 트랙에 관해 담론이 형성되기는 어려운 작품이지만, 흑인 음악과 전자 음악의 경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기예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다. 동시에 이들은 특별한 계약관계가 없이도 친분과 신뢰를 바탕으로 넓은 시야를 가져가는 듯 보인다. 가령 이수호의 『Monika』가 발매되는 데에 SoundSupply Service와 『SCA1 (SIDE A)』에 참여한 이들이 상당한 공을 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전자음악가와 프로듀서로서의 면모가 동시에 조명받기를 추구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보다 멀리 보기를 시도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올 한 해 국내 전자 음악 시장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구체적인 성과를 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첫 번째 움직임의 완성도와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한 열정과 고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SCA1 (SIDE A)』를 올해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일렉트로닉 앨범으로 선정한다.

결산 대상 기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지난 12월 SoundSupply Service는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SCA1 (SIDE B)』를 발매했다. 다시 한 번, 이들의 움직임이 최대한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XENITH

   

The Best Electronic Track of 2021

해파리, 「소무-독경」, 플립드코인뮤직, 2021.01

「소무-독경」에서 민희는 나지막이 읊조리며 트랙의 시작을 알린다. “이에 여기 노래하고 다시 춤을 추나이다.” 「소무-독경」의 방점은 바로 이 지점에 찍혀있다. 이를 종묘제례악의 ‘소무(昭武)’ 부분에서 ― ‘독경(篤慶)’ 부분은 「소무-독경」의 노랫말에 없다 ― 불리었던 노랫말로 바꾸어본다면 그는 ‘시용가차무(是用歌且舞)’일 것이다. 그녀의 읊조림 다음에는 반복적인 테크노 리듬이 등장할 것이다. 헌데 그 리듬과 소리들은 유려하면서도 어딘가 음산하고 불온한지라, 제례 음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녀는 그 불온함 위로 노래를 강행한다. 그녀는 도입부의 읊조림을 넘어서 본격적인 창(唱)을 펼치며 소무의 노랫말을 한 구절씩 외친다. 그러다 불현듯, 그녀는 창을 그만두고 영어로 읊조린다. “Therefore, we sing and dance again.” 그렇다면 후손들이 벌이는 제례에 참여했던 조상신들은 일제히 당황할 것이다. 그 읊조림은 분명 과거 이씨 왕조의 것이 아니다.

종묘제례악에서도 왕조의 무공을 찬양하는 ‘정대업’의 도입부에 자리한 소무와 독경에서 중요한 것은 ‘왕조/조상의 공적에 대한 기림’이다. 분명 소무에서 세종은 ‘서양무경렬(庶揚無競烈)’1이기에 ‘시용가차무(是用歌且舞)’2한다고 쓴다. 즉 왕조의 조상들이 ‘더 강할 수 없는 업적을 세움’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나 해파리가 「소무-독경」에서 주목한 것은 ‘노래하고 춤을 추는’ 행위 자체다. 그녀들은 가무의 이유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괄호를 치고 오직 가무만을 내세우며 그녀들이 모티브로 삼은 종묘제례악의 근간을 뒤흔든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 노랫말의 사용은 더욱 특별하다. 그녀들은 종묘제례악의 형식은 취하면서도, 영어의 사용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그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일단 춤을 출 것을 요청한다.

해파리가 「소무-독경」에서 어떠한 탁월함을 성취했다면, 그것은 그녀들이 종묘제례악의 수단적 가치였던 음악과 춤을 목적으로 전도시켜 현재의 우리에게 제출함으로 단지 ‘옛 것’으로 인식되어온 전통음악에 또 다른 시선을 제시했다는 것일 테다. 또 거기에 더해, 그녀들이 「소무-독경」에서 제시한 (어떤 불온한) 소리들은 분명 독보적인 무드를 조성한다. 전도적인 시선을 빼어난 소리들로 직조한 그녀들의 결과물은 분명 올해 모든 전자음악 트랙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 coloringCYAN

   

The Best Folk Album of 2021

장필순, 『페트리코-장필순』, doekee music, 2021.06

‘페트리코’(petrichor)란 건조한 흙 위에 비가 내릴 때 발생하는 흙내라고 한다. 그 미묘하고 아스라한 순간에 이를 때, 비 내음은 분명 우리 곁을 맴돌 테지만, 감각을 곤두세워 이를 포착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이름 없이 그저 흘러가고 말 것이다. 장필순의 『페트리코』는 이처럼 삶의 숲에서 옅게 존재하다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화자는 이른 새벽 언덕에 올라, 그렇게 잊혀 가는 기억을 찾아 부른다.

기억은 상실과 이어지고, 상실된 것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상실에 서린 감정의 이름을 부르던 화자는 어느덧 기억의 숲에서 행복한 나무가 되어, 작은 소녀 — 화자의 과거 — 에게 닿기를 바라며 바람에 말을 적는다. “이제는 더 이상 그리운 건 눈물이 아니라고”(「숲의 레퀴엠」). 김도헌이 “자연 그 자체가 되고자 한다”고 평한 것처럼, 그렇게 본작은, 자연이 된 이를 마땅히 있어야 할 자연으로 떠나보내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노래를 통해, 한 발짝 먼저 나무가 되어 떠난 이의 고백 — 조동진, 『나무가 되어』 (2016) —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장필순은 고(故) 조동진을 비롯해 그의 형제이자 아티스트의 반려자인 조동익, 뛰어난 작사가/가수이자 역시 그의 자매인 조동희 등과 더불어 독립적으로 끈끈히 뭉친 푸른곰팡이(구 하나음악) 공동체의 일원이다.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동진 일가의 음악 연대기는 자칫 그들을 과거에만 머물게 만들 수도 있지만, 이 예술 군집은 “어떤 어제/내일보다 빛나지 않”는(「불꽃놀이」) 오늘에도 활발히 자취를 남기고 있다.

나는 그 관록이 돋보이는 독자성에 경외를 표할 따름이다. 그들의 소리는 그들이 꾸준히 뿌리를 둔 포크 감성의 노랫말과 멜로디를 토대로 글리치 섞인 앰비언트를 동반한 소리 질감을 지극히 느린 템포로 이끌어 신비로이 배경을 색칠한다. 그 가운데, 공동체를 상징하는 장필순의 목소리는 비로소 이 군집을 다시금 완성하는 순간이다. 축 젖은 자연을 싣는 조동익의 소리와 삶의 자취를 자연에 빗대 담아내는 조동희의 노랫말 등이 그를 중심으로 응집력 있게 모인 본작은, 그들 공동체의 근래 발자취 중 아이덴티티가 가장 풍부히 녹아든 작품이 될 것이다. – 만능초보

   

The Best Folk Track of 2021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유어썸머, 2021.08

「늑대가 나타났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도시 성문은 굳게 닫혀 걸렸고 문밖에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두 번 반복되는 중반부를 기점으로, 일련의 ― 분명 과거의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 이야기를 전개하는 전반부와, 어떠한 경고의 형태를 띠는 말들이 이어지는 후반부로 트랙을 분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은 여성이 ― 농민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 가난한 마을로 들어서고, (아마 그것에 분노하여) 봉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부자의 곡물창고를 습격하거나 도시를 향한 성문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가운데에는 “~가 나타났다”라는 외침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그 외침이 사용되는 방식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무언가가 ‘나타났다’라는 외침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목격한 뒤 그것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제목에서부터 자연스레 연상되는 ‘양치기 소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것의 진위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양치기 소년은 양 떼를 공격하려 나타난 늑대의 존재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이렇듯 위협적 존재를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사용되는 “~가 나타났다”라는 외침을 「늑대가 나타났다」에도 적용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작품을 독해하고자 한다면 자연스레 여러 의문이 생길 것이다. 가령 이후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져 등장하는 외침과 달리, 처음의 “마녀가 나타났다”라는 외침은 왜 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울려 퍼지는가? 혹은, 그 외침 속에 등장하는 마녀, 폭도, 늑대, 이단을 위협적인 존재로서 인식하고 그 존재를 경고하고자 그것이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는데, “~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향하는 방향을 반대로 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가 나타났다”는 말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위협을 끼칠 존재의 출현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늑대가 나타났다」에서는 “~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 혹은 자신을 위협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 집단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두려워하라는 경고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서 적용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의문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가령 처음에 등장하는 “마녀가 나타났다”를 외치는 인물이 자식을 잃은 채 가난한 마을에 들어서는 여성이며,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을 마녀라 지칭하여 소리쳤다면, 그리고 그것에 분노한 사람들이 각각의 행동에 따라 스스로를 ‘폭도’, ‘늑대’, ‘이단’으로 지칭하며 도시와 성벽 안에 있는 사람들 ― 아마 귀족이나 부자들 ― 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경고하고자 “~가 나타났다”고 외쳤다면, 그러한 전개가 합당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사는 꽤나 명확한 존재를 향한 경고를 전하고 있다. “이 가난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 /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라든가, “우리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오 / 내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소”라는 말들은 분명 화자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업신여기는 객체를 향해 소리치는 경고처럼 들린다. 특히 이것을 앞선 전반부와 연결시킨다면, 이것은 군중들의 “~가 나타났다”는 외침이며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도시 내부의 사람들 ― 상위 계층이나 지배층 ― 을 향한 경고로서 가사를 독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늑대가 나타났다」에 등장하는 주된 군중은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존재를 인식조차 안 하거나, 무시하거나, 신경도 쓰지 않으며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든 지배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이며 경고를 하고 있는 듯한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의 이야기가 더욱 처절하게 들리는 이유는, 분명 그 이야기가 과거의 무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도, 그것이 현시대의 상황과 크게 멀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후반부에 등장하는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라는 외침은 작품상 스토리에 등장하는 과거의 가난한 농민들을 가리키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랑이라는 아티스트 본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마 이랑은 「늑대가 나타났다」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가난을 연결시키며 과거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지배층 ― 현시대의 기득권층 ― 의 무심함과 무능을 경고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며 기술이 발전하고 피상적으로는 계층의 구별이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가난과 빈부격차에 대한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이고, 특히 앞서 언급했듯 이랑이라는 인물이 이전부터 던졌던 문제의식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문제 제기는 더욱 명확한 방향성을 띠게 될 것이다. 물론 「늑대가 나타났다」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그것에 대한 해석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조지환의 글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랑이라는 아티스트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던져온 여러 문제의식을 생각해 본다면,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트랙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병폐를 경고하고자 하는 그의 목소리를 보다 주의 깊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 양소하

   

The Best Pop Album of 2021

아이유, 『LILAC』, EDAM Ent., 2021.03

Pop 장르의 본질에 접근할 때, 대중성(popularity)이라는 요소는 어떤 형태로든 고려될 만한 지점이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근 10년간 아이유가 성취한 국내 음원 차트, 음악방송 순위 등의 기록은 아티스트가 국내 대중음악 장에서 가지는 감히 독보적이라고 할 만한 위치를 설명할 근거로 삼을 수 있겠다. 이를테면 아이유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나이 시리즈’ — 「스물셋」 (2015), 「Palette」 (2017), 「에잇」 (2020) — 가 대한민국 교실과 거리에서 얼마나 자주, 오래도록 울려 퍼졌는지 떠올린다면, 나는 “201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이유의 20대에 빚을 졌다”는 말이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찬란한 시기와 작별하는 주제의 앨범인 만큼, 동명의 타이틀곡 「라일락」은 펑키(funky)한 연주와 재지(jazzy)한 터치 —그리고 「좋은 날」 (2010) 테마 인용 — 와 더불어 아티스트 대표곡에 종종 이용된 복고풍 춤곡을 다시 가져오고, 무엇보다도 이를 — 다시 새 봄을 맞듯이 —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리고 아이유는 전진한다. 바로 직전곡과 대비되는 미니멀한 비트에 섬세히 호흡을 맞추는 「Flu」. 펑키한 리듬에 흥미롭고 실험적인 장치를 곳곳에 배치한 연주, 그리고 아이유의 그루비한 랩 퍼포먼스까지 놀라움으로 가득한 더블 타이틀 「Coin」. 「봄 안녕 봄」과 「돌림노래」의 서로 대비되는 R&B 스타일도 재미있고, 선공개곡 「Celebrity」에서 화자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던가. 「아이와 나의 바다」의 환난과 극복을 넘어, 말맛을 살리며 리듬에 착 감겨 여유로이 파도를 넘는 「어푸 (Ah puh)」는 단연 후반부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이고, 기어이 다음 이야기로 향하는 「에필로그」까지도 거리에서 울려 퍼지며 ‘봄’의 끝을 축하한다.

앨범 전체에 걸쳐 흩뿌린 이야기는 결국 아티스트의 행적을 투영한 화자의 자아를 그 중심에 세우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더라도 거기에는 모두 각기 다른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각 트랙에 걸쳐 각기 독립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곡을 기억에 남기며, 청자로 하여금 거기에 여러 감정을 투영하게 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들과 더불어 방황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해 온 아이유가 『LILAC』에 이르러서 보이는 결연하고, 아련하지만 여유로운 모습은, 근래 보고 들은 그 어떤 ‘자아-완성’의 서사보다도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허락한다.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아이와 나의 바다」)라고, 우리와 함께, 혹은 한걸음 앞서서 그렇게 말을 건네주는 이가 있다는 게, 한 발 떨어진 채 건네는 감탄이나 찬사 따위에 앞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만능초보

   

The Best Pop Track of 2021

오헬렌&최솔, 「마음」, Self-Released, 2021.01

「마음」은 마법적이라 할만치 야릇한 소리들을 들려주면서도 무척이나 포근한 온기를 가진 트랙이다. 오헬렌은 뜻을 가진 낱말들로 이루어져 완성된 문장들의 발음을 바꾸어 뜻을 알 수 없게 노래하는 일에 있어서도 특별한 솜씨를 갖춘 보컬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애초에 뜻이 없을 말소리들을 이어놓으며 목소리를 악기로 만드는 기예에 집중하고 있다. 그 효과로, 이 곡의 신비감은 더없이 크게 증폭된다. 패턴을 알아차릴 수 없는 퍼커션과 한동안 현기증나게 계속되는 토이 피아노는 감각을 복잡하게 만들며 어지럽히고, 관악기 음색의 신스와 현악기들은 노래에 부피감을 더해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이렇듯 「마음」은 여러 겹의 인상을 층층이 찍어내면서, 다채로운 소리들이 4분여 동안 서로 갈마들며 얽혀들도록 한다. 그 소리들의 직물 저 뒤편에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노랫말은 간결하면서도 미묘하다. 고운 마음을 나누는 사이에서도 서로의 심중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그 주제에 있어서나, 추상성에 있어서나, 악기들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렇듯 모든 요소들을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마음」은 고유한 색채를 찾아 조색하여 스스로에게 독특하면서도 황홀한 빛깔을 부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것은 결코 흔치 않은 성취일 것이다. – 조지환

   

The Best K-Pop Album of 2021

TXT, 『혼돈의 장 : FREEZE』, BIGHIT MUSIC, 2021.05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처음 데뷔했을 때는 그들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까지 가지 않더라도,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와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 (Can’t You See Me?)」에서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동화나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스스로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판타지 속 등장인물로 브랜딩 하며 기존의 보이그룹이 가졌던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서사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꿈의 장’이라는 시리즈의 챕터로서 존재했고, 그들은 『minisode1 : Blue Hour』에 들어서며 조금은 다른 방향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해당 앨범은 수록곡에서도 적극적으로 록 사운드를 차용하면서 HYBE가 추구하는 음악적 특성의 대표주자로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2021년에 들어 보다 본격적인 발전의 길로 들어섰는데, ‘혼돈의 장’이라는 챕터로 들어서며 그들의 변화는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시리즈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를 가졌다면, 새로이 시작된 이야기의 중심은 ‘혼돈’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가령, ‘꿈의 장’ 챕터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선보였던 사운드와 메시지, 분위기는 대체로 판타지스러울 정도로 엉뚱하거나 신비했다. 그러나 ‘혼돈의 장’챕터에 들어서며 그들은 이모-록을 중심 사운드로 채택하며 보다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꿈’에 대한 이야기의 가운데에서는 주로 “너의 존재가 마법처럼 내 세상을 바꿔”(「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 “널 본 순간 마법은 시작됐어”(「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마법”, “비밀”, “영원”, “꿈”과 같은 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현재의 그들은 “어둠”, “도망가”, “바닥”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자신의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혼돈의 장 : FREEZE』 속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연 음울한 분위기다. 타이틀곡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뿐만 아니라 틱톡에서 바이럴 되었던 「Anti-Romantic」, 이전 앨범에 수록된 「New Rules」의 주제를 빌려오면서 그것을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풀어낸 「No Rules」, 이모-록이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디어 스푸트니크」까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이전부터 쌓아온 ‘혼돈’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그려낸다. 단지 그것은 가사로 발화될 뿐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의 사운드를 통해서 구현되기도 하며, 앨범 전반의 분위기를 유기성 있게 만들어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특히 데뷔에서부터 언급한 ‘구원’이라는 메시지의 주체로서 ‘너’와 ‘나’의 결합을 적극 발화하면서 그들이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청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현세대의 청춘을 그려내는 방식으로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난 ‘꿈의 장’ 챕터에서 그들은 청춘을 쾌활하고 엉뚱하면서도, 그로부터 생기는 여러 고통을 받는 존재로서 그려냈다면, 이번 ‘혼돈의 장’ 챕터를 통해 보다 고통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어필하고 있다. 특히 이전 챕터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차용하며 청춘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혼돈의 장’ 챕터를 통해 청춘이 겪는 고민이나 고통을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그려내며 그것을 이겨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그들이 선보이는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또 다른 방향으로서의 전개를 예상케 한다. 그리고 이런 성장을 보여주는 서사는 멤버와 그룹이 연차를 쌓으며 이룩하는 발전과 겹쳐지며 그룹 자체의 개연성을 효과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점차 성장하면서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초석으로서 자리하는 『혼돈의 장 : FREEZE』는 그것의 매력적인 트랙과 더불어 앞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선보일 성장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K-Pop이라는 장르가 본연적으로 청소년과 청년을 대변하는 만큼, 그들이 선사하는 성장의 근거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물할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양소하

   

The Best K-Pop Track of 2021

æspa, 「Savage」, SM Ent., 2021.10

내가 「Savage」에 놀란 것은 이 노래의 구석구석에서 SOPHIE와 Arca 같은 선구자들의 서명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그런 건 이제 그렇게까지 놀랄 만한 일은 못된다). 내가 놀란 것은 온갖 폭행이 가사창에 적나라하게 열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고, 부수고, 깨고, 짓밟고, 광선검으로 칼부림을 벌이고, 주먹질하겠다지 않는가! 상대가 다쳤든 말든 상관없이, 재생할 틈조차 주지 않으면서! 저것들 중 어떤 것도 은유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æspa는 단지 사적인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 æ와의 싱크 차단을 일종의 디아스포라로 독해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텍스트 내부에서는 블랙 맘바와 æspa가 사적으로 주고받는 술수와 복수만이 저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Savage」는 정말이지 최소한의 정도로만 정당화된 원초적인 파괴를 ‘Savage’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æspa는 걸그룹 음악에는 전에 없었을 폭력적인 텍스트들의 장으로 나아가려는 듯하다. 「Savage」에서 새로운 것은, 공격적인 무대 연출이나 뮤직비디오보다도 어휘들을 통해 분출되는 폭력이다. 단지 맹수나 전사, 중독 등에 대한 은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휘의 평범한 의미가 글자 그대로 직접 표현되는 폭력이다. ‘Savage’라는 말은 BLACKPINK의 「뚜두뚜두」에서도 나왔었지만, 그 노래에서 ‘Savage’란 단지 자부심 같은 것을 가리키는 데에 그칠 뿐이었다. 반면 「Savage」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무력을 자비 없이 행사하는 수준에까지 가뿐하게 나아간다. “Don’t you know I’m a Savage?”라는 윈터의 경고가 결코 빈말은 아닌 것이다.

æspa는 빠른 속도로 난폭하고 극단적인 이미지들에 접근하고 있다. 이제 K-Pop은 강대한 적을 위협할 수 있을 뿐더러 필요하면 파괴할 수도 있는 여성의 형상을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I’m a killa!”) 저 폭력의 장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이 그로테스크한 만큼 급진적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광야는 K-Pop의 최전방이다. – 조지환

  1. “거의 더 강할 수 없는 업적을 올리심이여”
  2. “이럼으로써 노래하고 또 춤을 추나이다.”

3 comments

박제민 2022년 3월 18일 - 12:39 오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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æspa, 「Drama」 – 온음 2023년 11월 18일 - 2:00 오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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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24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 – 온음 2025년 8월 17일 - 3:35 오후

[…] 적대 세력과 전투를 벌이며 체득한 ‘폭력성(혹은 공격성)’에 있을 테다. 조지환이 말했듯 「Savage」 (2021)의 노랫말은 걸그룹의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 만큼, 아니 K-P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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