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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가볍고 수많은』, 잔파, 2019.11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본작, 『가볍고 수많은』에서 백현진의 목소리는 적어도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들이 생각보다 가벼운 이야기들이라 인식하게 한다. 가령 「눈」에서 “2리터짜리 물이라는 낱말이 사용됨이 그렇고, 「반 줄」에서 김밥 한 줄, 라디오헤드의 카르마 폴리스와 같은 낱말들이 사용됨이 그렇고, 「사자 티셔츠」에서 사자 티셔츠와 같은 낱말이 사용됨이 그렇다. 그러한 친근한 낱말들의 사용은 백현진의 이야기를 지극히 그의 사적인 경험들로 격리시키고,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는 듣는 이의 입장에서 가벼운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본작에서 드러나는 백현진의 이야기는 수많은 비극들이다. 「눈」에서 병원의 ‘너’를 보고 약속들을 취소하는 장면, 「반 줄」에서 김밥 반 줄을 먹다 그만두는 장면, 「빛」에서 말을 그만두는 장면들이 그렇다. 「가로수」의 장면은 결정적이다. 간신히 가로수를 붙잡으며 오줌을 누고, 이 병신아 죽긴 왜 죽냐고라고 뇌까리는 장면은 김오키의 앨범 『스피릿선발대』의 「실직폐업부채이혼자살 휴게실」에서의 백현진의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그 목소리는 「실직폐업부채이혼자살 휴게실」에서 드러난 것보다 더욱 힘이 실려있고, 감정적이다.

본작에서의 백현진의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울컥이게 만드는 힘이 있고, 김오키, 이태훈, 진수영, 그리고 백현진의 연주가 그러한 목소리에 실린 감정들을 뒷받침한다. 때때로 수면 위에서 넘칠 듯 일렁이다가도, 어느 순간 폭발하여 넘치기도, 어느 순간 가라앉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들을 어느 정도 가볍다고 인식하게 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백현진이 선보이는 낱말들의 사용과 함께 노랫말의 구체적인 내용을 감추며 본작의 이야기를 온전히 백현진 자신에게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작을 감상하며 쉽게 본작의 화자를 우리 자신에게 대입시키거나, 혹은 그에 공감하거나 할 수 없다. 그저 본작의 이야기들을 연주와 함께 감상하며, 그 감정들을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본작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샌가 자연스레 백현진의 감정들에 감화되게 된다. 감상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모순이 곧 본작을 특별한 위치에 올리는 것이다. – coloringC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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