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Marriage License』

by coloringCYAN
   

3인조 펑크-록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두 번째 앨범 『Marriage License』는 그들의 전작이었던 『KEEP DRINKING』에 비해 러닝타임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시원시원한 에너지와 날카로운 메시지, 의식들이 무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소개글을 통해 ‘짧고 빠르고 강력’하다고 말했듯, 러닝타임이 짧아진 만큼 그들의 강점들이 더욱 응축되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만 같다. 앨범의 문을 열어젖히고 첫 트랙 「끝이 없는 밤」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를 더욱 확신할 수 있다. 행진하듯 울려퍼지는 드럼과 아래에서부터 고요하게 치고 올라오는 연주들이 이대로 끝이 없는 밤이라 말하는 노랫말과 마주하며 하나가 되어 질주하는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1분 2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그들은 「끝이 없는 밤」에서 먹먹함과 벅차오름, 그리고 그들 특유의 시원시원한 펑크 연주까지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바를 전부 구현해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대로 끝이 없는 밤이라 말하는 그들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상당히 재밌어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 감상을 본작의 인트로는 선사한다.

앞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본작을 ‘짧고 빠르고 강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비단 그들의 앨범 뿐 아니라 그들의 연주에까지 해당될 수 있을 말일 것이다. 그들은 연주할 때 절대로 멈추지 않는 슈퍼카의 엔진과도 같이 빠르고 강력하게,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질주한다. 그들의 격렬한 연주에 비하자면 그들이 그들의 노랫말을 위해 헌사한 멜로디는 나긋나긋할 뿐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그러한 연주는 과거부터 ‘스케이트-펑크’라고 불리어왔다. 비즈한국의 포스트가 담은 익살스러운 표현을 빌려 응용하자면 : 아마 달리기를 할 때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심장이 터져버릴테니까.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그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본작에서 예시를 하나 찾아 들어보자. ‘WeWeWe 기획단’이 2020년 11월에 발매한 국내 최초 여성 록 컴필레이션 앨범 『We, Do It Together』에도 실렸던 트랙 「사적인 복수」가 그것이다. 해당 트랙 1분대부터 질주하는 드럼과 그에 따라 미끄러지는 기타 연주, 그리고 그에 반해 한껏 여유 있게 노래하는 목소리, 그 호흡에 맞춰 무리하게 발을 맞추려다가는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재빠른 연주의 복판에서도 그들의 목소리가 한껏 여유로운 이유는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 ‘스케이트-펑크’에 아주 숙련된 조교들이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본작은 아주 시원시원한 에너지를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본작에 대한 감상이 그렇게 시원한 에너지에만 경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작이 시원한 앨범이라고 느끼는 것은 본작의 깊은 곳 어딘가에 마치 에어컨이 모터에 의해 작동하는 것과 같이, 뜨겁게 본작을 달구는 또 다른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기에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그 뜨거움이 다름 아닌 본작의 제목인 『Marriage License』라는 제목에서부터 달궈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결혼 자격증’이라니,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말이 되게끔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이다. 작금의 사회에서 결혼은 일종의 자격과 같다. 다시 말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은 사회의 시선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정상성의 범주 안에 안착하게 된다는 말과도 같다 ― 그러나 기혼자라는 사실 자체가 사회가 마련한 정상성에 도전할 수 있는 반항적 역량이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 와중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가부장적 성격으로 인해 여성이 억압받으며, 동시에 현재 결혼 제도는 일반적으로 이성애주의 및 가부장제와 결합하여 있기에 퀴어가 억압받는다. 그러나 결혼은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이는 사회가 결혼 제도로 인해 억압받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거나, 아예 논의에서 배제해버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성과 퀴어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끊임없이 정당화되기 마련인 것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그렇게 만연한, 그러나 쉽사리 인식될 수 없는 차별과 혐오들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동시에 같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면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인트로 트랙 「끝이 없는 밤」에 이은 「Odoby」는 아리송한 제목과는 다르게 발음 그대로 ‘오도바이’(오토바이)다. 그들은 본작의 타이틀 중 하나로 그 트랙을 내세웠고, 이는 「Odoby」가 본작의 전체적인 무드를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라고 독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할 것이다. 위태로운 듯 능숙하면서 격렬하게 질주하는 펑크 연주의 위로 나긋나긋한 멜로디가 얹히며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빠르게 주행하는 듯한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만일 우리가 「Odoby」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트랙에 담긴 그들의 개인적 경험을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가령 그들은 소개글에 이런 글을 남긴 바 있다 : “체구가 작은 여성이라서, 작고 가벼운 오도바이를 타서, 걱정되어서, 큰 사고도 났으면서 정신머리 없다! 등의 이유로 오도바이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내가 편해서 선택한 작은 오도바이는 사고 이후 교통수단에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중 하나로 변했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고집스레 증명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약자에 대한 배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위협을 당하고 공포를 느끼는 이가 소수라서, 보이지 않아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가 보호해주어야 한다. 나쁜 것은 소수자를 위협해 알량한 권력을 느끼고자 하는 그 마음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이러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트랙에 녹여내기보다는, “When we are riding out because we’re still alive”라는 문장으로 써 대체했다. 본작은 전반적으로 이런 식이다. 본작은 사회에 대해 한껏 목소리를 올리면서도 그들의 센스를 한껏 발휘해, 그들이 무엇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차렷」을 살펴볼까. 이 트랙은 (소개글에 따르면) 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이를 자세하게 풀어내기보다는 엄격한 규율과 권력에 의한 어떠한 통제를 연상케 하는 짤막한 노랫말들의 나열로 대체하였다. 차렷 열중쉬어 차렷 경례라는 딱딱한 구호와 다시라는 말로 되돌아가는 구조의 반복. 우리는 이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 문제 또한 본작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의제일 것이고, 우리는 본작 곳곳에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 제시하는 여성 문제들의 단면들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Hit The Corner」와 「사적인 복수」는 적실한 예시다. 「Hit The Corner」의 경우 두 번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될 추악한 사건이었던 ‘N번방 사건’에 대한 분노를 거세게 표출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소리 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외침은 가해자들에 대한 조속하면서 합당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일 것이고, 동시에 피해자들의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함까지 더해진 촉박함일 것이다. 「사적인 복수」의 경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말투 내 세상이 그렇게 편해 보여?”라는 라인 뒤에 감추어진 분노를 통해 우리는 해당 트랙에 깃들어있는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사적인 복수」는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트랙이고, 그들은 “허무함과 분노 더 이상은 나를 갉아 먹지 못하게” 될 것을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낸다.

본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트랙 「Wish」는 본작 전반에 걸친 소리-높임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을 바라고, 또 희망을 노래하는 트랙이다. 전자음악 뮤지션 키라라의 동명의 트랙 「Wish」에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이 트랙은 “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우리 함께 웃고 싶어”라 말하는 노랫말과 함께 여전히 격정적이지만, 어딘가 처연함을 담고 있는 연주가 발을 맞추며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낸다. 한껏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외침들을 쏟아내다 마지막에 이르러 찬가와 같은 트랙으로 맺어지는 구성은 어떻게 보기엔 상투적일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 그것이 본작에 대한 평가에 발목을 잡을 요소는 아닐 것이다. 본작의 트랙들은 하나같이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하며, 시원시원한 펑크 연주의 묘미를 잘 살렸고, 그 속에서 요동치는 강력한 메시지와 의식들의 흐름이 남다르다. 2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못내 아쉬울 정도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본작을 통해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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