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아카이브 – 지휘로서의 비평

by YANG-SOHA

5월 8일 토요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안녕하세요, 선생님.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 비평하는 김정현입니다. 

저는 미술 비평가라는 역할로서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SeMA-하나 평론 상을 통해 등단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미술 비평에 관심을 가지고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2015년에 평론상을 받았는데, 그전에 미술 비평가가 되려고 한 적은 없었어요. 학부 시절부터 연구와 분석적인 글쓰기를 좋아해서 막연히 미술사학자나 문화연구자가 되고 싶어 했고요. 대학원 졸업 후에 방황하다가 우연히 현장 경험을 했는데, 동시대 미술에 관한 글을 가끔 쓸 수 있게 됐지만 직업으로 삼기에는 보상이 너무 없었죠. 그런데 2015년에 새로 제정된 세마-하나 평론상의 상금이 엄청 컸거든요 (웃음). 당시에는 상금을 받아서 당분간 마음껏 전시나 공연을 보거나 동시대 미술 연구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다가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장 경험도 미술 제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때라 어리둥절하더라고요. 그래도 이때를 계기로 비평가로서의 책무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어요.

미술이라는, 특히 현대 미술이라는 영역은 항상 다가가기에 두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미술 비평 자체도 자주 접하는 편은 아닌데, 현재의 미술 비평은 어떻게 발행되는지, 혹은 어떻게 작품과 연결되고 쓰이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미술 비평 제도에 대한 질문인 것 같은데요. 미술 비평은 아마도 문학 비평을 제외한다면 여러 예술 영역 중에 가장 지면이 많고 출간물도 많이 쏟아져 나오는 곳일 거예요. 제 경험에 의하면, 미술 월간지 등 전문지, 작가 도록, 레지던시 결과보고서, 이렇게 세 가지 매체가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지역 문화재단 등의 기관지나 온라인 플랫폼 등 지면이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게, 글쓰기 과정에서 작가와의 만남이나 대화가 중시된다는 거였어요. 물론 작가와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작성하는 글도 있습니다만, 이런 게 미술비평의 눈에 띄는 특수성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미대가 없는 대학을 나와서 작가 지인이 한 명도 없었던 데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배경 탓인지 연구 대상과의 객관적 거리 설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터라 인격적 교류까지 포함하는 직접 만남이 아직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어느 예술 분야보다도 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작업 자체에 대한 해설이 아니더라도 작가의 사고나 표현방식과 관심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합니다. 또, 미술 비평의 가장 중요한 독자 중 한 축이 바로 작가이기 때문에, (따라서 종종 갈등도 생기지만) 작가와의 대화는 곧 독자와의 대화이기도 하죠.

미술비평은 미술작품만큼 결과물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라 일반 독자들에게 친절하지는 않아요. 영화나 음악 비평이 작품을 찾아보게 하는 추천사 역할을 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미술비평은 글을 읽고 나서 작품과 전시를 찾아보게 하는 힘보다 이미 감상한 작품에 대한 이해나 해석의 참고자료 성격이 강한 것 같아요. 또, 대부분의 미술작품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되거나 복제 배포하는 관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극 등의 공연 비평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언어적 기록도 부수적인 차원을 넘어 비평의 중요한 역할이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재밌었던 지점이 있다면, 영화와 음악 비평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저도 자주 느끼는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영화 OTT 서비스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욱 발전하면서 영화와 음악 비평이 가지는 큐레이팅으로서의 역할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작품과 글을 동시점에 감상하기 편해졌으니까 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 느낀 것 중 하나가, 앞서 말씀하셨듯 미술의 경우에는 작 품과 글을 함께 감상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특히 현대의 미술에 있어서는 작 품을 사진 한 장으로만 파악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의 경우에도 주로 미술 비평은 전시회를 감상한 뒤에 사후 해설 같은 느낌으로 찾아보는 편인 것 같고요. 그런 지점에서 미술 비평이 확실히 음악 비평과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장르별로 개별 작업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면이 있겠지만, 그렇죠. 

선생님께서 미술 비평이라는 작업을 하실 때 중요하게 여기시는 요소라든가, 글쓰기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이 있으실지 궁금해요. 

‘그때 그때 읽고 있던 책이나 꽂힌 이론을 대충 활용해서 글 쓰지 않는다’는 정도가 경계하는 일이랄까. 저는 작품의 감각이나 작가의 사유에서 확장해가는 비평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다루는 작업마다 비평의 방법론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뭉뚱그린 이야기지만, 시각 언어가 중요한 작업이라면 작업의 컨셉 뿐만 아니라, 재료, 구조, 형식, 감각을 가능한 자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추상적 개념의 차원에서 인식을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사회적 담론 형성의 차원에서 두드러지는 작업은 시사적 배경과 이론적 지식을 참고하면서도 작업의 특수한 시선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려고 해요.

선생님께서는 미술 비평가이기도 하시지만, 동시에 큐레이팅을 하시기도 하고, 기획이나 강연을 하시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작업을 수행 하시는 것이 비평으로 이행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그런 다양한 작업을 통해 얻게 된 점이 있으신 지 궁금합니다. 

요즘에는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것보다는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지만 … 미술비평가가 ‘되면서’ 작업의 맥락과 작가들의 사고 방식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기획이나 제작 기회를 공부하듯이 활용했다고 할까. 어쨌든 순도 높은 ‘먹물’로서 창작의 물질성을 이해하기 위해 경험이 절실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가의 시각적 컨셉을 언어적 컨셉으로 변환해서 작업과 ‘닮은’ 글을 쓰는 게 가능해진 것 같아요. 흔히 비평을 ‘2차 창작’이라고 하지만, 이런 ‘2차적인 것’의 개념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잖아요. 갈수록 창작과 비평의 관계를 ‘메타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돼요.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음악 비평에 관심을 가지고 읽으시는 편인가요? 

많이 접해보지 못했는데, 미술비평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후로 더 안보게 된 것 같네요. 오래전에네이버 뮤직에 연재되는 칼럼이나 앨범 소개글을 가끔 봤고요. 동시대 음악에 대한 글보다는 고전 음악에 대한 글을 독서가로서 종종 찾아본 정도예요.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2008) 라든지, 페테르 샌디의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2008), 롤랑 마뉘엘의 『음악의 기쁨』(2014) 같은 책을 재미있게 봤어요.

선생님께서는 음악을 자주 들으시는 편인가요? 

‘자주’ 듣거나 ‘즐겨’ 듣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가끔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곡을 검색해서 한번 들어보는 정도예요. 좋아하는 곡을 보관함에 넣기는 하지만, 플레이리스트를 전부 재생하기보다는 당장 듣고 싶은 한 두 곡만 집중해서 듣고 끄는 식이에요. 정말 드물지만 심하게 꽂혀서 몇 날 며칠 반복 재생하는 트랙이나 앨범도 있지만요.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이런 음악 비평을 보고싶다’라고 하는 게 있을까요? 

음악 비평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어떤 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건 너무 어렵네요. 이번에 인터뷰 요청을 받으면서, 진지한 리스너나 음악비평의 독자가 아닌 제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지 고민이 됐는데요. 어떤 말을 해도 맥락 없어질 것 같아서요 … 맥락 없음을 양해해주신다면, 한 가지 망상이 있는데요. 최근에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아임낫데어』(2007)를 다시 보면서 대중 음악에 관한 굉장히 좋은 비평적 시선을 지닌 작품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 음악의 시대적 맥락, 아티스트의 정체성, 가사와 사운드의 변화뿐만 아니라 음악이 창작되고 수용되며 흘러가는 인간적 삶과 역사적 시간에 대한 생각을 자극해서, 동시대 미술 비평의 서사나 관점을 구축하는 데 참고하고 싶더라고요.

혹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비평이 견지해야 할 점, 혹은 나아가야 할 점이 있 다고 생각하시나요? 

비평 일반의 비전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라면, 미술비평의 제도화된 형식을 벗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원고지 20매나 70매 분량의 많이 짧거나, 덜 짧은 글 말고, 단행본 분량의 사고의 크기와 집중력을 요하는 비평, 사변적 언어보다 관점이 돋보이는 글, 예술을 고립시키지 않고 예술의 고독을 연결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에게 비평이란 무엇일까요? 

폴란드의 화가이자 아방가르드 연극 연출가인 타데우스 칸토르(Tadeusz Kantor)라고 있어요. 이 사람의 작업 중에 해변에서 사다리 위에 올라간 퍼포머가 모래사장에 앉은 관객을 등지고 파도를 지휘하는 <파노라마 바다 해프닝(Panoramic Sea Happening)>(1967)이라는 게 있거든요. 저한테는 비평이 파도를 지휘하는 일 같아요. 가끔은 제 글-지휘가 파도에 리듬과 소리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성취감, 공허함, 유희, 혼란, 자기합리화, 막막함, 상쾌함 … 정복할 수도, 그럴 생각도 없고 종종 수많은 작업에 그저 압도되고 말지만, 크고 작은 파도 같은 예술작품을 가능한 오래 바라보면서, 두렵지만 즐겁게 손을 휘둘러 (키보드를 두드려) 보는 거죠.

최근에 많이 듣는 음악을 소개해 주세요. 

올해는 뭘 들었는지 바로 떠오르는 게 없는데 … 작년에는 카렌 오(Karen O)의 [Lux Prima](2018)와 우효의 신곡(2020)을 많이 돌려 들었어요. 파가니니의 기타 소나타,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라벨의 피아노 콘체르토 G장조 2악장, 슈베르트 가곡, 웨스 앤더슨 영화 사운드 트랙 등은 질리지 않는 리스트고요. 최근에 검색해서 두 번 이상 들은 음악은 오자와 켄이치(小沢健二)의 <콘야와 부기백(今夜はブギー・バック)>(1994)과 비아이(B.I)의 솔로 신보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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