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아카이브 – 교육으로서의 비평

by YANG-SOHA

6월 중

서면 인터뷰 (번역 도움: 조지환)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It’s an honor to me that I’m having an interview with you. At first, please introduce yourself briefly to our readers.)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대학교 교수이자 철학, 예술, 미디어에 대한 여러-몇은 한국에도 번역된- 책을 집필한 보리스 그로이스입니다.

(I am professor at the New York University and author of several books on philosophy, art and media – some of which were translated into Korean.)

선생님께서는 오랜 시간, 많은 장소를 거치며 연구 및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이어오신 다양한 활동에 관해서, 현재에 관심을 두고 이어가고 싶은 작업은 무엇인지요?

(As far as I know, you have researched various topics through many places for a long time. Regarding those topics, what do you want to continue with your interest now?)

저는 항상 미술 작품과 인체 사이의 유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대성의 조건 하에서, 그 두 가지는 모두 귀중하고, 자율적이며, 보호받는 객체로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Curator)”라는 단어는 돌봄(care)을 뜻하는 라틴어 쿠라(Cura)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의료(medical care)에도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미술관과 병원, 예술작품 보호와 의술 사이에도 비슷한 유비가 있습니다. 곧 출판될 제 책은 돌봄의 개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유비에 기초한 “예술작품 되기”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요. 최근 부산의 한 전시회에서 제가 그 글을 읽는 영상이 상영되었어요. 당분간은 그러 방향으로 작업할 것 같습니다.

(I was always interested in the analogy between artwork and human body. Under the conditions of modernity both of them are treated as precious, autonomous, protected objects. The word “curator” comes from Latin cura – care. The same word is used for the medical care. There is a close analogy between museum and hospital, art protection and medicine. My forthcoming book is about the concept of care. I also wrote a text on “Becoming an Artwork” that is based on this analogy. A video of myself reading this text was shown recently at an art exhibition in Busan. I guess I will work for a while in this direction.)

선생님께서는 비평 외에도 철학, 미디어 등의 이론 연구, 큐레이팅 등 다양한 작업을 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런 다른 방향으로서의 연구가 비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혹은 어떻게 다양한 작업들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Your works are not confined to critique, but contains philosophy, media theory, and curating also. Can you tell me that how the different domains of researches affect your critique, or how the various works interplay with each other?)

제 생각에 그것들은 다른 방향성을 지니는 것 같아요. 때로 저는 현존하는 이론적 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이는 예술적 실천들과 큐레이토리얼한 실천들, 그리고 그러한 예술작품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저 틀을 확장하고 재고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저는 예술로부터 저의 이론적 작업에 대한 자극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I think it is the other way around. From time to time I am confronted with the artistic practices, curatorial practices and artworks that, as it seems to me, do not fit into the existing theoretical frameworks. Then I try to rethink and expand these frameworks. So I get from art the impulses for my theoretical work.)

선생님께서는 오랜 시간 비평가이자 이론가로서 작업을 이어오신 것으로 아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경험해보신 바에 의하면 현재의 비평이라는 것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한 이전과 비교했을 때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띠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For a long time, you have worked as a critic, and as a theorist. In your point of view as an experienced, what role does the present critique play? Where will it move forward compared to before?)

비평은 양가적이면서도 모순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평이란 대중의 이름으로 대중의 취미를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비평은 대중들과 예술작품이 접촉한다고 했을 때 어떤 작품이 좋아할 만한 것인가를 대중들에게 말해주지요. 하지만 우리는 대중을 교육하고자, 대중들의 취미를 바꾸고자, 그리고 대중이 거부하는 예술 작품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전위적이고 현대적인 비평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평은 예술에 대한 비평일 수도 있지만, 대중을 위한 비평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비평은 이러한 양가적인 유산의 계승자로, 대중의 이름으로 예술을 비판하고 예술의 이름으로 대중을 비판한다는 두 가지 모순적인 전략들 사이를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Critique has an ambivalent, contradictory past. We know critique as acting in the name of the public, expressing the public’s taste. This critique tells the public which artworks it would like if it comes in contact with them. But we also know critique that tries to educate the public, to change its taste, to defend the artworks that the public rejects – the avant-garde, modernist critique. So critique can be a critique of art but also a critique of its public. The contemporary critique is a heir of this ambivalent heritage and navigates between these two contradictory strategies: it criticizes art in the name of public and criticizes public in the name of art.)

현재의 비평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비평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비평이 공통적으로 견지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t now, the critique is being unfolded to various fields, in varied manners. Do you think there is any standpoint that criticisms should stick to? If it is, what is it?)

취미라는, 곧 비평가들의 감수성이라는 견지가 있습니다. 비평이라는 것은 주관적이어야만, 그리고 그것이 비평가의 인격을 반영해야만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비평은 너무 개인적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믿지요.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것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스스로의 고유한 취미를 신뢰한다면, 특수한 예술작품에 대한 것이든 예술과 문화 일반에 대한 것이든 당신과 같은 평가를 내리는 다른 사람들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여 자신만의 독자층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There is such a standpoint – it is the taste, the sensibility of the critic. Criticism is interesting only if it is subjective, if it reflects the personality of the critic. I know that some people believe that such a critique is irrelevant because it is too individualistic. It is wrong. In fact, people have more in common than they believe. If you trust your own taste you will see soon enough that there are also other people who will share your appreciation of the particular works of art and of art and culture in general. And thus you can build a readership that will rely on your judgment.)

선생님이 비평 작업을 하시면서 가지고 계신 관점이 있으신가요? 혹은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라고 하는 주안점이 있으신가요? 혹은, 선생님께서 비평 작업을 하시면서 중심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나 요소들이 있을까요?

(Do you have a certain point of view on work of critique? In other words, is there any main point that you are trying to emphasize or comply with? Or, considering your work of critique, what subject or element do you focus on?)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을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특정한 – 대개는 민족국가적인 – 권위 있는 전통이 있어서 모든 새로운 예술적 작업들이 그 전통에 견주어지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어떠한 규범적인 예술사도, 어떤 안정적인 민족국가적 전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의 모든 예술가들은 각자 자신들의 작품을 위치시킬 고유한 전통을 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예술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이한 접근들, 태도들, 실천들을 결합하고, 이를 통해 그들만의 개인적인 전통들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예술적 작업에서 제게 가장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와 같은 양상입니다. 제 말은, 한 명의 예술가가 하나의 특수한 예술사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방식이 흥미롭다는 것입니다.

(We are living in a time in which we do not know what art is and what does it mean to practice art. Earlier there was a certain – mostly national – canonical tradition with which every new artistic work was compared. But today we do not have any normative art history and any stable national tradition. Today every artist invents his or her own tradition in which these artists situate their own works. The individual artists combine different approaches, attitudes and practices that they can find all around the world and thus create their personal traditions. I should say that it is the aspect of the contemporary artistic work that is most interesting to me. I mean: it is interesting how an artist constructs a particular art history and finds his or her place in it.)

선생님께서는 인터넷을 새로운 분배의 장으로 작용하는 플랫폼으로 바라보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에는 비평 역시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읽히는 경향이 강한데, 이 점에 대해서 선생님의 또 다른 견해가 있을까요?

(As far as I know, you understand the internet as a platform that functions as a new field of distribution. Especially now, critiques tends to be shared and read online. How do you think about this tendency?)

저는 그것이 제가 예전에 말했던 것을 더 공고하게 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비평가들이 특정한 청중들에게 말을 걸었던 때에, 비평가들은 그 청중들에 대해 그리고 그 청중들의 취미에 대해 다소간 명료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비평가들이 안정적인 독자층을 가진 채 권위 있는 신문과 잡지를 출간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독자층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들의 비판적 판단을 받아들이게끔 하기 위해 독자들이 준비되어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에 의지할 수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에는 청중들이 분산되어 있고 유동적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비평가들은 자신의 독자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취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따라서 독자들의 취미를 염두에 둔 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들의 고유한 취향과 함께 남게 되었고, [이제] 그들의 개인적 판단에 관심을 기울일 독자층을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I would say it only reinforces what I said before. Earlier when the critics addressed certain audiences they had more or less clear understanding of these audiences and tastes of these audiences. If these critics had published in the authoritative newspapers or magazines with a stable readership they could anticipate the reaction of this readership and rely on the readiness of the readers to accept their critical judgment. But on the Internet the audiences are dispersed and fluid. The critic cannot know them and their tastes to a degree that would allow him or her to take these tastes in consideration. The critics are left alone with their own taste – and have to build a followership that would be interested in their personal judgment.)

앞으로의 예술의 생산과 소비, 비평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혹은 지양해야 할 지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In regard to futur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arts and critiques, what should we pursue? Or, what should we refuse?)

이 질문 대답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반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도발적이고, 규칙과 관습을 파괴합니다. 비평가는 항상 그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또 개방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 이에 관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동시에 나쁜 것일 수도 있지요.

(There are no general criteria to answer this question. Art is provocative, breaks rules and conventions. The critic should be ready and open for it. The future is unpredictable – that is what is good and at the same time bad about it.)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개념적인 의미가 아닌 개인적인 의미에서의 비평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To you, not in a conceptual sense, but in a personal one, what is the critique?)

우선, 예술에 더 집중하고, 예술을 더 잘 보는 방법이지요. 매번, 저는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을 작성하기 위해 본 작품을 다시 보고, 그것에 대한 글을 읽고, 작가나 큐레이터, 미술관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비평가와 대화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항상 제가 그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그 작품을 간과했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비평을 쓰는 것은 무엇보다 비평가 자신을 위한 좋은 교육입니다.

(First of all, it is a way to become more attentive to art, to better see it. Every time I have to write a critique of an artwork that I have already seen before I see it anew, read about it, very often speak with the artist, or curators, or gallerists, or other critics about it. And every time I learn how much I overlooked as I saw the same artwork for the first time. To write critique is primarily a good school for the critic.)

선생님에게 미술 비평이란 무엇인가요?

(Then, what is the critique of visual art to you?)

아시다시피,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매료되었고,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란 세인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예술을 볼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죠.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저는 몇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공개적으로 전시를 하지 못하는 비공식 예술가였지만요. 그래서 그 누구도 그들의 예술에 대해 쓰지 않았고, 제가 그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미술 비평은 오랜 시간 제 삶의 활로 중 하나였습니다. 나중이 되어서야 저는 학계의 일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제가 예술계의 일원으로서 남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You know, already as a child I was fascinated with art and spend a lot of time in the museums. And St. Petersburg where I have grown up offers a lot of possibilities to see art. Then in 1960s-1970s I met some artists – in fact, unofficial artists who could not exhibit publicly at that time. So nobody was writing about their art – and I began to do it. Thus, for a long time art critique was to me a way of life. Later I became a part of Academia but it is still important to me to remain also a part of the art world.)

번역에 도움을 주신 조지환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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