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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노을,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근처 골방에서 홀로 레코딩을 하고 지인들에게 데모 앨범을 나눠준 뒤, 동아리에서 후배들과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는 모습. 낭만이 있었던 2000년대 초반 홍대 클럽에서 몇 안 되는 관객들과 밤낮없이 공연한 다음 하루하루를 계획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 어쩌면 이 단락이 파란노을의 본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의 라이너 노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읽혀야 할 단락일 것이다. 신원을 포함한 어떠한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기를 꺼리는(그는 피치포크의 정보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란노을에 대하여 우리는 그의 라이너 노트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의 라이너 노트를 통해 그가 꿈꾸는 “세계투어를 도는 락스타가 될 것”이 분명한 “재능이 있는” 음악가로서의 이상과 “21살이 될 동안 기타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고, 노래 실력도 형편없으며, 키와 외모도 평균 이하”인 “찐따”와 같은 현실의 괴리를 담아낸다. 내가 읽기로 그의 이상은 그에게 음악의 꿈을 꾸게 한 홍대의 인디 음악가들에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내가 첫 문장으로 소개한 단락이 그의 라이너 노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한 그는 “누군가에게 평생 기억되고 회자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말했던 ‘락스타’가 되고자 하는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보인다. 작은 바람과 원대한 이상의 교차는 그가 초라하게만 그려낸 그의 현재를 더욱 부각시키는 듯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Rate Your Music’을 위시로 한 해외 리스너들의 엄청난 하이프를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파란노을 본인이 생각했던 이상만큼의 사랑과 지지를 많은 이들이 본작에 건네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선 작품 자체에 집중한다. 본작은 슈게이즈, 이모-록, 포스트-록, 베드룸-팝 등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지만, 믹싱과 마스터링과 같은 기술적 측면에서 결함이 많은 작품인지라 ‘보다 잘 들리는’ 소리를 추구하는 청자들에게는 선제적인 거부감이 느껴질 만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본작은 ‘잘 들리지 않는’ 앨범임에도 라이너 노트를 참조하여 자신이 품은 노랫말들을 음미할 것을 청자들에게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의 라이너 노트에서 드러나는 자조와 패배감은 본작의 노랫말들을 경유해야만 비로소 유효한 문장들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비참한 모습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이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 (Beautiful World)」에서의 패배주의, 노력이라는 건 과대평가되었어, 결과가 없으면 사라져버리는걸이라 말하는 「변명 (Excuse)」에서의 냉소, 흰 천장과 그 다음엔 혐오스런 나의 몸이라 말하는 「흰천장 (White Ceiling)」에서의 자기-혐오, 나도 유명해지고 싶어 무대에도 서고 싶어라 말하는 「청춘반란 (Youth Rebellion)」에서의 괴리 등이 그렇다.

물론 모든 트랙이 꼭 그렇지는 않다. 「아날로그 센티멘탈리즘 (Analog Sentimentalism)」에서 그는 어렸을 때를 행복했을 때라 말하며 그 중 한 장면을 구체적으로(“6교시가 끝나고 교문 밖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분식집에서 콜팝과 슬러시를 사먹고 ) 그려내고,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에서의 노랫말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의 병렬적 제시일 뿐이며, 마지막 트랙 「I Can Feel My Heart Touching You」에서는 이젠 겁낼 필요 없어 더는 도망가지 않아 저 멀리로라는 희망적인 노랫말을 그려내기도 한다 ― 그것은 그의 라이너노트에 적힌 “”언젠가는 잘될거야.”같은 말을 꺼낼 수 없습니다.”와 같은 문장과 대비된다. 이는 그가 본작에서 단순히 자기-혐오, 패배감과 같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상으로 적히는 미래를 직시하는 감정의 복합체들을 다루었다는 이야기와 같을 것이고, 동시에 “세상에 저와 같은 행동하는 찐따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청자들로 하여금 그에 몰입하고 감정을 공유하기를 요구하는 것일 테다. 다만 군데군데 너무 솔직하거나,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쓰인 그의 노랫말들은(「청춘반란 (Youth Rebellion)」의 찐따무직백수모쏠아싸병신새끼와 같은 노랫말이 대표적이다) 오히려 그가 자아낸 본작의 세계에서마저 우리를 탈선하게 만들며, 그의 자아와 청자를 이격시킨다. 그러한 노랫말을 그리는 멜로디 역시 지나치게 평이한 구석이 많다. 노랫말이 소리들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멜로디일텐데, 그 멜로디가 평이하거나, 종종 허술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똑같이 보컬이 잘 들리지 않는 록 음악을 구사하면서도 멜로디도, 노랫말도 더 좋았던 한국 밴드의 선례 중 하나로 나는 ‘선결’을 제시할 수 있다.

내가 본작을 지지할 수 없는 결정적인 지점은 바로 본작의 노랫말이 드러내는 감정적 측면이 나와는 너무나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진행한 노랫말에 대한 논의가 본고에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파란노을은 본작의 소리를 주조함에 있어 그 소리들을 긍정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탁월하게 연출해낸 지점들을 우리에게 드러낸다. 「아름다운 세상 (Beautiful World)」 3분여를 넘어서 들어서는 짧고 굵은 연주의 반복과 그에 겹쳐져 들리는 노이즈라든지, 끝을 잊은 채로 10분간 달려 나가다 별안간 꿈결같이 끝나버리는 「흰천장 (White Ceiling)」, 전반부 어쿠스틱 기타와 후반부의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힘 있는 연주의 대비가 분명한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가장 연주의 전개가 다채롭고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 「격변의 시대 (Age of Fluctuation)」 등이 적절한 예시가 될 것이다. 언급하지 않은 트랙들의 소리 역시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모양새다. 다만 음질 탓인지 이따금씩 지나치게 튀는 하이엣, 킥 등의 소리들 같은 요소들이 부정적 지점으로 남을 수는 있겠다. 이는 정돈되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의 차원에서 보호가 가능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그럼에도 살짝 과하게 불균형한 소리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피치포크의 리뷰는 무례했다. 그들은 파란노을의 라이너 노트에 적힌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잘 자 푼푼’, ‘신세기 에반게리온’, ‘NHK에 어서오세요’ 등과 같은 레퍼런스, 그리고 M83과 같은 밴드를 언급하면서도 라이너 노트의 상단에 위치한, 그리고 파란노을 본인이 “그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가장 큰 영감이 되었던 홍대-인디-음악씬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 앞서 첫 문단에서 내가 파란노을이 홍대의 인디 음악가들에게 그가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라이너 노트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지목했음을 떠올려본다면 이는 더욱 문제적이다. 다만 내가 이를 문제 삼는 것은 피치포크의 리뷰에 대한 메타비평을 하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파란노을의 국외 하이프가 한국의 인디 음악-씬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하게 가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그렇다면 본작이 이토록 상당한 하이프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오롯이 본작이 가지고 있는 음악의 힘에 기인하는 것일 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나온다. 파란노을은 단지 하이프만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실제로 중요하게 논해질 수 있는 여러 성취들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개인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작품이 중요한 작품으로 격상된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문제이다.

가령 내가 본작이 다루는 여러 감정들의 복합체들과 그들의 추진력에 관한 문제들에 동의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본작이 이룩한 성취들 자체는 내가 거부하는 그것들이 중요한 문제로 독해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이렇게 나의 감상과 작품의 외적 성취가 충돌할 때 나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본작에 대한 나의 평가가 어떠하였든, 파란노을은 그가 이룩할 수 있을 최선의 성취를 본작을 통해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그의 라이너 노트에 따르면 그는 “어른이 되어 막 현실을 직시하게 된 그는 이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라 말하며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가로막혀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이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본작의 성과는 파란노을 자신조차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본작을 통해 자신의 이상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으로 보이니, 바라보기에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coloringCYAN
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One thought on “파란노을,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1. 몇 주 전에 음악 리스트를 뒤져보다가, 언니네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 음악에 빠진 저에게 이 앨범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떡하고 던져주더군요. “이게 뭐지? 처음 보는 앨범인데? 앨범 표지가 이쁘니까 일단 들어볼까?” 하고 클릭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기묘하고 낯설지만 오묘한 분위기에 이 앨범에 빠졌습니다. 비록 앨범 음질?이 별로 좋지 못 하지만 충분히 이 음악에서 전하는 메세지가 확실히 들어오면서 오히려 ‘음질이 안 좋은게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더라고요. 물론 중간에 욕 한 바가지에 “팩폭 멈춰!”를 외칠 뻔 하고, 음질이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아서 중간에 다른 음악 들으러 가는 등의 짓을 했지만, 확실히 2020년대를 대표할 만한 앨범 100선 안에 들만한 명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앨범 이후로 슈게이징 음악에 빠져버린건 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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