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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valanches, 『We Will Always Love You』

   

호주의 전자음악 밴드 The Avalanches(이하 Avalanches)의 데뷔 앨범 『Since I Left You(2000)』는 상식을 거부하는 작품이었다. Robbie Chater(이하 Robbie)에 의하면 작업 과정에서 무려 3500개의 샘플이 이용되는 동안 실질적인 녹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혹자는 실질적으로 900개 정도가 샘플로서 이용되었다고 추산하지만, 이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숫자임은 매한가지다. 샘플델리아, 플런더포닉스, 사운드콜라주, 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은 Yamaha Promix 01과 Akai S2000 Sampler를 통해 천문학적인 숫자의 샘플을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자양분에서 손수 꺼내어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샘플링이 진정 창작인가하며 의문을―혹은 도둑질이라며 강한 부정을―던지던 이들에게 Avalanches는 『Since I Left You』로서 긍정의 답변을 보냈던 셈이고, 그 답변의 근거는 20년이 훌쩍 지나 『We Will Always Love You』가 발매된 시점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듯 보인다. “본작은 우리가 아주 작은 부분만 기여하고 있는, 커다란 에너지의 아름다운 흐름 그 모든 세세한 과정들을 반영하고 있어요.” Robbie는 자신들의 샘플링에 투영된 의미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Robbie와 또 다른 멤버 Toni Di Blasi가 표현했다는, 저 커다란 에너지의 아름다운 흐름은 단순히 샘플에 깃들어 있는 시간의 흔적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전설적인 밴드로서 입지를 끌어 올린 그들이 공백기로 보냈던 16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을 향한 세상의 관심이 무뎌지게 했을지언정 적지 않은 수의 아티스트들이 동경을 품게 했다. 『Wildflower(2016)』에서 Camp Lo가 과거 그들이 자신들의 트랙을 샘플링해준 것에 화답하고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Because I’m Me」―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이 시대의 괴짜 래퍼 Danny Brown과 영원히 빛날 안광의 소유자 MF DOOM이 한 트랙에서 함께 랩을 하는 장면―「Frankie Sinatra」―은 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외에도 Kevin Parker와 David Berman, Josh Tillman의 이름이 함께 올라가 있는 크레딧까지. 이토록 화려한 라인업은 본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다. 본작에서는 인디 록의 아이콘 MGMT와 이 세상 가장 세련된 미니멀리스트 중 한 명인 Blood Orange, 전설적인 밴드 The Clash의 멤버 Mick Jones, 그 외에도 Denzel Curry, Jamie xx, Sampa the Great 등 수많은 이들이 이 원대한 항햇길에 동참하기로 했다. Alan Parsons와 Smokey Robinson이 이미―샘플로서―올라타 있는 이 거대한 방주에는 이제 각 장르의 고전들과 세대를 대표하는 래퍼들, 새 시대의 걸출한 재능들과 베테랑 이상의 베테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것은 참여한 이들이 오랜 기간 품어왔던 꿈이 아니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울 수준의 일이다.

다만 조금 생각해볼 일이다. Avalanches는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을 자신들의 방주로 초대했던 것일까. 새천년을 맞이하기 전 『Since I Left You』를 만들던 과정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던 이들은 작업에 참여한 몇몇 엔지니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샘플링은 원작자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이 진행되었고, 때로는 그들을 제외하고는 샘플의 출처를 아무도 알지 못했던 덕에 사용된 샘플의 굉장한 양과 비교해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샘플의 클리어런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상술했듯 단 한 장의 작품을 위해 상식 밖의 상상력과 창작력을 동원했다. 이렇듯 그들이 『Since I Left You』를 만드는 것은 모든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그 필요충분조건의 상당수가 긴 세월 동안 변화했다는 것이다. 샘플링에 가장 큰 빚을 진 장르인 힙합의 입지가 큰 폭으로 변화했고, Kanye West와 J Dilla가 빚어낸 몇 장의 역작들은 샘플링을 향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 와중에 2012년 샘플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저작권법의 범지구적인 개정과 유료 샘플 판매사이트의 등장으로 그 상승곡선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제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선과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 시선 아래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의 수는 자연히 제한되었고, 그들이 갖고 있던 창작력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이 슬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적인 수준을 아득히 넘어가는 수의 샘플을 동원하는 것은 샘플을 경작하는 이들답게 힙합의 영역을 방문했던 『Wildflower』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수가 전보다는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이제 10초의 시간 동안 4개의 샘플이 각기 다른 시점에서 튀어나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이들은 그 부재를 피처링 아티스트로 채우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녹이 슬었을 창작력에 비해 『Wildflower』는 월등히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초기의 나는 본작의 크레딧을 보며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다. 많은 이들을 동원하는 것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없다거나, 그로 인해 Avalanches의 독창성이 드러나지 못한다면 부정적으로 비추어질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Blood Orange가 참여한 얼터너티브 힙합 트랙 「We Will Always Love You」는 흡사 Tyler, The Creator의 트랙처럼, 신나는 박자감의 펑크―Funk―트랙 「Music Makes Me High」는 약간의 샘플링이 가미된 Gorillaz의 트랙처럼 느껴진다. Jamie xx가 참여한 「Wherever You Go」에서는 그의 지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렇다고 Avalanches의 손길이 닿은 영역이 확연히 구분되어 나타나지도 않는 것 같다. 그 외에도 「Take Care In Your Dreaming」에서의 감미로운 선율 위로 들리는 Denzel Curry의 랩은 이질적이고 Sampa The Great의 랩이 정체불명의 드론에 파묻히는 등 심히 아쉬운 지점도 있다.

1시간 11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본작에서 이 정도 흠결은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트랙들은 모두 본작의 발매 이전에 본작의 색채를 개괄적으로 드러내려는 목적으로서 그들이 선공개한 트랙들이다. 「The Divine Chord」는 그중에서 가장 Avalanches다운 트랙임과 동시에 내가 본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시감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히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독창성은 사용하는 샘플의 수가 줄면 줄수록 정비례하게 줄어들 것이 자명한 데다, 그 부재를 피처링 아티스트가 효과적으로 메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본작의 발매 전부터 관측되던 것으로서, 그들의 방주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전의 트랙들처럼 그들이 사용한 샘플이 어떠한 호기심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샘플링이 주는 묘미조차도 본작에서는 미약하다는 것이다. 「We Will Always Love You」에서의 Smokey Robinson의 흔적이나 「Interstellar Love」에서의 Alan Parsons의 등장은 조금 뻔하다 싶고, 대부분의 샘플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선 안에서 활용된다는 점은 원작과의 비교에서도 별다른 쾌감을 선사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다만 그 와중에 내가 특기하고 싶은 것은 이들이 현시점 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우주 공간을 향해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인간의 피조물인 Voyager 호1의 Golden Record에서 얻은 영감이다. 이 인류 문명을 암시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하늘 높이 발사했던 근사한 프로젝트는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철학자, 뛰어난 작가이자 교수였던 Carl Sagan(이하 Carl)의 빛나는 업적 중 하나로, Avalanches는 단순히 이에 실린 여러 언어의 인사말을 샘플링하여 「Wherever You Go」에 담았을 뿐 아니라, 그에 얽힌 Carl과 Ann Druyan(이하 Ann)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역시 다루고자 했다. 그들은 Golden Record에 실린 Ann의 심장 박동과 뇌파 샘플, 그 순수한 화학적인 사랑의 형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어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들은 분광기 속에서 소리로, 그리고 다시 이미지로 변환된 Ann의 사진―앨범 아트워크―으로 표현하여 본작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 면에서 본작의 몇몇 트랙을 통해 빛과 전파의 향연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로서는 별과 별, 행성과 행성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빛과 전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Weightless」에서 들리는 Arecibo 메시지가 대표적일 것이고, 「Star Song.IMG」에서의 소음 역시 그와 결을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고유한 소우주를 가진 아티스트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냅니다.” Robbie의 전언과 본작의 타이틀은 알게 모르게 『코스모스』2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는 요구3를 연상시키고, 국제 연합과 미국의 수장이 남긴 말4 5 6과 겹쳐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지점들만큼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강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지 모른다.

Carl은 생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직접 발판이 되고자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지구를 떠난 적이 없었지만, 시선만큼은 항상 지구 바깥을 향해 있었다. 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눈부신 지성으로 우리에게 『코스모스』를 선사했고, 많은 이들에게 우주와 별에 관해 동경을 심어주었다. 우주는 광활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이다. 동시에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을 것이지만, 앞서 확인한 빛을 통해 자신들의 시선을 그 너머에까지 보내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혜성같이 등장했던 Avalanches의 행보가 그의 것과 조금은 겹쳐지는 듯하다. 『Since I Left You』는 그들의 고유한 소우주였고, 그 소우주를 선보인 지 20년이 지나 그들은 이제 쉽게 이해할 수 없던 것에 관해 누구나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고자 본작을 제작한 것만 같다. 가령 「Running Red Lights」가 팝 기법을 따라가는 트랙이고, 「We Will Always Love You」와 「The Divine Chord」라는 거부감 없는 트랙을 통해 그들이 본작을 시작하듯이 말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들이 옮긴 화각을 통해 바라본 곳이 내가 알던 것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이 남아, 심히 아쉬움을 느끼는 것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본작이 가설이 없는 하나의 이론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본 것이 지금껏 내가 나의 눈으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신성일지, 생성 초기의 항성일지, 꽤 오랜 기간 나는 구분할 수 없을 것만 같다.

   

  1. 1977년 발사
  2. 『Cosmos』, Carl Sagan, 1980
  3.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 Carl Sagan, 『코스모스』 특별판, 사이언스북스, 홍승수 역, 2006, 682p
  4. “지구라는 행성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인간들을 망라하는 147개국으로 구성된 조직, 유엔의 사무총장으로서 나는 우리 행성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 인사말을 보냅니다… 다만 겸손과 희망으로, 이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 Carl Sagan 공저,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김명남 역, 2016, 45p, Kurt Waldheim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말 인용
  5. “이것은 작고 먼 세상에서 보내는 우리의 선물입니다… 이 레코드판은 우리의 소망과 결의의 표현이며, 방대하고 멋진 우주에 대한 우리 선의의 표현입니다.” – Carl Sagan 공저,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김명남 역, 2016, 47p, Jimmy Carter 당시 미국 대통령의 말 인용
  6. Kurt Waldheim의 말 역시 「Wherever You Go」에 삽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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