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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st : 2020 국외 베스트 앨범 20 by XENITH

 

2020년은 이미 진즉에 끝났지만, 한 번 더 2020년의 음악을 들고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리스트를 공개하기에 앞서 많은 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비록 저의 리스트가 “베스트 앨범”이라는 미명 하에 쓰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독자 여러분들이 본고를 읽으심으로 하여금 여러분들 마음 속에서 밝게 빛나던 별들을 떠올려보셨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소개합니다. 지난 한 해 저의 마음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20개의 별들입니다.

   

* 본고는 필진 XENITH 개인의 2020년 결산으로서, 웹진 <온음>의 총결산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본고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모두 2019년 12월 1일과 2020년 11월 31일 사이에 발매되었습니다.

* Honorable Mentions는 아티스트명을 기준하여 가나다/알파벳 순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리스트 내의 순위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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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able Mentions

 
Bob Dylan, 『Rough and Rowdy Ways』, Columbia, 2020.06
   
Dua Lipa, 『Future Nostalgia』, Warner, 2020.03
   
Haim, 『Women in Music Pt. III』, Columbia, 2020.06
   
Lido Pimienta, 『Miss Colombia』, Anti, 2020.04
   
Taylor Swift, 『folklore』, Republic, 2020.07
   
The Weeknd, 『After Hours』, XO/Republic, 2020.03
   
Run The Jewels, 『RTJ4』, Self-Released,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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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st

   
   

Kaytranada의 선택은 아주 용감하게도 자가복제였다. 글쎄, 자가복제라. 사실 평단 내에서 이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스타일을 매번 똑같이 가져간다는 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누군가에게는 설득력 있는 감점 요소로 작용했던 탓이리라. 하지만 Kaytranada는 이미 자신의 음악에 상당한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Soundcloud에서 명성을 떨치던 시절에도, 『99.9%(2016)』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평단 사이에서 오고 갈 적에도 그랬듯이, 본작 『Bubba』에서 역시 알앤비를 중심으로 펑크―Funk―와 디스코, 트랩 등 흑인음악 내 여러 영역의 소리를 하나의 앨범 안에 공존시키기를 시도했다. 그의 트랙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보다 흥겹고 그루브가 느껴지는 춤사위가 조금은 더 잘 어울리는 것만 같고, 우리에게 현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지하 어딘가가 아니라 조명이 은은하게 내려앉는 어떤 공간을 연상시키고는 한다. 누군가는 그에게 대단한 예술혼을 기대했을 테지만, 사실 사람들이 음악을 필요로 하는 시점은 일상의 여유로움을 빛나게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가 자가복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엿보이는 담력과 용단은 비범하고 귀중한 무언가이다.

       
   

여기 자가복제의 긍정적인 용례가 하나 더 있다. Disclosure가 그들이다. 그들의 근사한 데뷔 앨범 『Settle(2013)』은 2010년대 댄스 음악의 시류를 규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Caracal(2015)』를 통해 그 시류를 직접 배반했던 바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2020년이 되어 실로 오랜만에 자신들의 출발점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본작 『ENERGY』에 「Latch(2013)」 같은 아주 굉장한 트랙이 있지는 않지만, Aminé와 slowthai가 참여한 「My High」 정도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꽤 괜찮은 뱅어가 아닐까 싶다. 본작의 문을 여는 「Watch Your Step」 역시 우리가 Disclosure에게 바라던 트랙임은 분명해 보이고, 이색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트랙 중 하나인 「Douha (Mali Mali)」는 그들이 말하는 활력―『ENERGY』―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이미 정점에 도달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다시 밟는다는 것을 나쁘게는 답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런 답습은 자신들의 음악이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자신들의 근사한 결과물밖에 없기도 하다는 점에서, 본작은 꽤 괜찮은 표본이다.

       
   

Arca가 앞으로의 정규 앨범으로 『Xen(2014)』이나 『Mutant(2015)』 같이 심히 극단적인 소리만을 모은 작품을 발매하는 일은 확률 낮은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Arca(2017)』에서부터 감지되던 것이었지만―이벤트성 믹스셋인 「@@@@@(2020)」과는 별개로―본작 『KiCk i』에 와서 더욱 확실해진 것 같다. 그녀가 제시해왔던 디컨스트럭티드―Deconstructed―의 소리는 분명 특별한 것이었으나 어떠한 질서도 없이 나열된 것의 집합이기도 했는데, 그 소리가 질서 있게 정리되려고 하자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그 범위에 편입시키기 시작했다. 「Nonbinary」와 「Time」은 FKA twigs와 Björk의 영향이 엿보이는 그녀의 아방가르드 팝을 향한 전회의 방향을 예측할 때 가장 직관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Mequetrefe」와 「Riquiqui」에서는 라틴 음악을 다루기도 하며, 「Afterwards」에서는 아예 Björk와의 협업을 모색하여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명확하게 가리키기도 한다. 이외에도 Rosalia, SOPHIE와의 협업 역시 앞으로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로서 유의미할 것이다. 그녀의 시도가 꽤 장기적인 계획이라는 것은 나의 바람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본작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이며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본작 『2017-2019』를 감상할 때의 초점은 누군가가 Beyoncé의 트랙을 샘플링했다던가―「Fantasy」―여러 아이덴디티를 표방한다던가―Nicolas Jaar―하는 숱한 뉴스거리에 맞추어질 것이 아니라, 전작 『2012-2017(2018)』과의 비교에 맞추어져야 한다. 본작에서 우리는 전작의 뼈대를 구성했던 고전 소울 샘플과 하우스를 향한 접근 대신 테크노의 기법과 타악기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그 형태가 일그러진 드럼 샘플이 반복되는 「Fantasy」나, 초반부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내 감미로운 선율의 연주 그리고 반복되는 보컬 샘플과 만나는 순간이 돋보이는 「With An Addict」가 인상적이다. 우리의 주의를 한 번에 끌어당기는 신스와 화려한 타악기의 운용이 이끄는 「Alarm」은 그 길이가 조금 더 길었더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본작 최고의 트랙으로 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트랙을 전개하는 방식은 생각 외로 매끄럽다. 가끔은 트랙 내에서 활용하는 타악기와 샘플의 배치가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댄스 플로어의 청중들을 위한 적절한 템포와 인상적인 신스 덕분에 나름 친숙하게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Against All Logic이 받은 영감의 산물은 우리에게 학구적인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대신 양질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상 밴드라 일컬어지는 Gorillaz가 『Song Machine, Season One : Strange Timez』로 돌아왔다. 본질적으로 본작은 Damon Albarn의 기획 하에 다양한 아날로그 신스를 말 그대로 모조리 때려넣은 팝 앨범이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얼터너티브와 록, 힙합과 알앤비의 영역을 기민하게 오가고 있다. 그것은 영국 대중음악의 표상과 사고뭉치, 아트 팝의 시그니처와 힙합계 상류층의 최측근들이 모여있는 탓이지만, 본작에는 특별히 저점이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없다. 특히나 본작을 여는 「Strange Timez」에서의 Robert Smith, 「Pac-Man」에서의 ScHoolboy Q의 퍼포먼스는 본작 최고의 순간들이다. 동시에 「Pac-Man」은 가장 Gorillaz스러운 트랙이기도 하며, 「Chalk Tablet Towers」와 「Momentary Bliss」 역시 피처링의 등장이 전혀 위화감 없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Gorillaz스럽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의 취향이 어떤지는 내가 알 길이 없겠지만, 일단 와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아보도록 하자. 본작에 있는 트랙 중 최소한 하나쯤은 당신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이다. 나는 본작의 다채로움만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일전에도 꾸준히 그래왔으니 말이다. 본작이야말로 Gorillaz가 만들어야만했던 높은 완성도의 작품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Jean Dawson은 분명 주목을 요하는 이름이다. 그의 앨범 『Pixel Bath』가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내가 이 앨범을 두고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다채로운 앨범―혹은 전에 없던 앨범”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작을 얼터너티브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 시류가 촉발한 장르 벤딩―Genre Bending―의 시도라고 본다면 그중에서도 높은 완성도의 작품일 것이라는 말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Devilish」는 꽤 재밌는 이모 랩과 록의 조화가 엿보이는 트랙이고, A$AP Rocky가 함께한 「Triple Double」은 자신을 David Bowie와 Kobe Bryant에 비견하는 재치와 대담함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Dummy」에서는 글리치 팝을 향한 접근을 확인할 수 있고, 본작에서 가장 이질적인 트랙인 「06 Burst」은 폭발적인 익스페리멘탈 인더스트리얼 트랙으로서 JPEGMAFIA의 영향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 얼터너티브 시대에 장르의 벽을 허문다는 근사한 행위에 동참한 이들 중에서도 Jean Dawson의 이름은 철저히 Under the radar인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록, 일렉트로닉, 힙합 등의 소리가 세련되게 섞여 있는 본작의 높은 완성도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 아 그리고, 아트워크도 꽤 감각적인 것 같다.

       
   

clipping.의 『Visions Of Bodies Being Burned』가 갖는 강점은 스킷이 담고 있는 이야깃거리도, Daveed Diggs가 써 내려가는 가사도, 그의 스킬도 아니다. 오히려 본작의 강점은 본작이 생각 외로 컨셉츄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William Hutson과 Jonathan Snipes에 의해 만들어진 소리는 모두 하나같이 청자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그것을 고양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령 「Intro」에서 둔탁한 소리가 점점 커지는 연출은 대표적일 것이며, 「Something Underneath」나 「Make Them Dead」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가공된 노이즈 역시 그러한 소리의 예시로 적합하다. 「Body for the Pile」에서의 소리는 어떠한가. 이 트리오의 독특한 지향점에 의해 가벼울 수 있는 트랩 비트가 실로 무겁고 무서우며 소름이 끼치는 하드코어 혹은 호러코어 힙합으로 재탄생한다. Daveed의 낮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근사한 퍼포먼스 역시 이러한 소리에 꽤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것은 덤이다. 사실 내가 앞에서 스킷의 가치를 저평가했다고 읽힐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애당초 이들이 직조해낸 소리가 직관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탓이다. 나오는 트랙마다 다 똑같다고 느껴지는 요즘 힙합의 물결 안에서, 이토록 독특한 야망을 품은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나는 생각하게 된다.

       
   

직설적인 화법에 따라 적힌 가사는 더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통기타를 든 히피들의 시대는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젊은이들이 세상을 향해 분노 섞인 열변을 토하는 것은 소모될 대로 소모된 클리셰가 되었으며, 청자가 적나라한 묘사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기를 바라는 것만큼 순진한 생각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나는 갖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적지 않은 수의, 그러한 가사를 담은 작품들이 꾸준히 제출되고 있는데, Phoebe Bridgers의 『Punisher』는 그러한 흥미롭지 않은 시류의 산물들 사이에서도 빛이 나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본작에는 포크 장르가 나아가는 대안적인 영역이라 볼 수 있을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Multi Instrumentalist―의 면모가 엿보이는 기악적 구성 위에서, 남이 되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 인간관계와 죽음에 관한 블랙 유머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상념과 경험을 다룬 은유적인 가사가 담겨있다. Elliott Smith의 팬이기도 했던 그녀가 그에게서 받았던 영감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본작은 우리가 은유적인 가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깊이 들어올 것을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동시에 이상한 인력―引力―을 지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적당히 가볍게도, 적당히 무겁게도 감상할 수 있는 이 이상한 작품은 어쩌면 젊은 싱어송라이터가 해낼 수 있는 가장 품격있는 저울질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었듯, Oneohtrix Point Never는 항상 노스탤지어―Nostalgia―라는 단어가 갖는 맹점을 지적했었다. “노스탤지어는 그저 가공된 기억들일 뿐이다.” 그러한 지적은 본작 『Magic Oneohtrix Point Never』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그 어느 때보다 청자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과거의 유산이 담긴 것이라며 그가 제시했던 트랙들은 하나같이 현대의 전자음악 기법으로 제작된, 진정으로 과거를 대변할 수 없는 소리로 가득했고, 심지어는 그것마저 과거의 대중음악을 조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지금까지 제출했던 작품에서의 접근법을 다시금 재현하는 행위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실로 기만적이었다. 그래서 본작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익스페리멘탈 일렉트로니카 앨범으로 다가오겠지만―애당초 앰비언트라는 이름에만 묶이기에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나에게는 2020년 대중음악의 시류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작품으로 인식된다. 그렇다고 OPN이 일련의 시류를 전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기만적 행위가 갖는 기묘한 설득력은 비연속적으로나마 계속해서 존재했던 시류가 언젠가 다시금 되살아날 때마다 함께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득점으로 이어지는 슈팅은 아닐지언정, 유효 슈팅 정도는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2020년 그의 조소는 유효한 무언가이다.

       
   

Lianne La Havas의 『Lianne La Havas』를 감상하며 나는 Lauryn Hill이나, Corinne Bailey Rae와 같은, 또 Erykah Badu나 Janet Jackson과 같은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이유를 찾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Read My Mind」나 「Paper Thin」에서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그루브는 분명한 그들의 영향이고, 「Can’t Fight」의 연주 역시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Lianne의 이름을 저들의 후계로서만 기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애당초 본작이 왜 셀프 타이틀 앨범이겠는가. 본작에는 Lianne 자신의 음악을 향한 진중한 사색―그리고 Prince의 가르침―이 녹아 있다. “예전에 나온 트랙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야. 그래도 뭐, 좋은 트랙이지만. 나는 저것들을 ‘내 트랙이 아니다’하는 생각 없이는 들을 수 없더라고.” 그런 사색이 만들어낸 본작의 초안은 온전히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고, 그런 본작은 그녀의 경험과 감정을 투명하게 담아내고 있다. 알앤비와 네오 소울의 가치는 밀레니엄에 접어들며 옅어져 가고 있었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수많은 재능에 의해 장르가 갖는 힘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다시금 증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작의 Lianne 역시, 저들의 행렬에 맞추어 그 힘이 자신의 통기타와 목소리에서도 나올 수 있음을 증명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Phil Elverum이 실로 오랜만에 the Microphones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Microphones in 2020』는 그의 회고록에 가깝다. 45분 길이의 트랙 하나로 이루어진 본작에서 그는 어린 시절 아티스트로서의 삶, the Microphones라는 이름의 유래, 그 외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들을 늘어놓는다. 본작의 뼈대를 이루는 두 개의 코드로 이루어진 멜로디와 이따금 들려오는 기타나 아날로그 베이스의 노이즈가 섞여 있는 연주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각기 다른 어딘가를 연상시키는 것이지만, 사실 본작을 감상하며 중요하게 보아야 할 요소는 따로 있다. 그것은 본작이 일종의 회고록처럼 구성되어있는 이유에 맞닿아 있다. 지난 몇 년간 겪은 일련의 사건에서 그가 얻은 교훈―『A Crow Looked At Me(2017)』―은 그의 신념을 “모든 것의 진실”1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정확히는 죽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과 태양이 매일 빠짐없이 뜨는 것”2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그러한 것들의 실체를 찾기 위해 삶이 남긴 상흔이 덜한 어린 시절을 굳이 짚어보려고 한다.

그렇기에 마흔을 넘긴 그가 본작을 일종의 회고록처럼 구성한 것일 테고,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지만, 당연하게도 그가 본작에서의 탐구를 통해 모든 것의 실체를 알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삶은 항상 복잡했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에게 삶이 직접 나서 쉽게 답을 내어주는 일은 없었다―때로는 답이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들 덕에 꾸준히 발전해온 바 있다. 우리가 사유하는 대중음악 역시 그러한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Phil의 독백이, 혹은 본작과 같은 사례가 헛된 공상에 그칠지언정 가끔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삶은 Phil에게 상흔을 남겼고,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죽지 않은 상태와 야속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선사할 테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것들이 왜 자신에게 주어지는지 그 이유를 찾고자 나설 것이다. 그가 본작의 마지막에 “끝은 없을 것”3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듯이 말이다.

       
   

근래 미국 평단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밴드 Big Thief의 프론트 퍼슨 Adrianne Lenker가 Massachusetts의 한 오두막을 찾았다. 이것은 과거 Justin Vernon이 『For Emma, Forever Ago(2007)』를 만들 시절의 발걸음을 떠올리게 하는 일화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사회적인 맥락이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2020년 대중음악에 큰 악영향을 끼친 COVID-19으로서, 수많은 공연을 취소시키고, 앨범의 발매와 홍보를 위한 공정을 마비시키는 등 그 여파가 그녀에게도 닿았던 고로, 그녀가 계획한 약 한 달간의 휴식은 한 불청객이 몰고 온 사회적 혼란과 정보과학 기술이 주는 피로감을 등지기 위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찾아간 오두막에서 철저히 고전적인―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한―녹음 방식에 의해 의도치 않게 탄생한 두 장의 앨범 『instrumentals』와 『songs』에는 Adrianne의 통기타와 목소리, 그녀가 머물던 숲이 주는 효과음―그리고 아주 미량의 감미료―만이 담겨있다. 이 덕에 본작은 심히 로-파이한 인상을 남기며, 일상의 배경음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기도 한다.

요즘 세상에 이러한 접근법은 보기 드문 것일지는 몰라도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닐 테다―유행은 더더욱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 본작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Adrianne의 목소리이다.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목소리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져 버린 기억들, 공상에 대한 자그마한 소회, 이전 연인과의 소소했던 일상들을 노래한다. “공허함이여, 너의 자연에 대해 알려줄래?”4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상이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러한 일상이 평생토록 자신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소원을 담기도 한다. 자, 여기서, 우리를 징글맞게도 괴롭히는 사회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행복을 소원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무언가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한 근원적인 탐구가 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유도하는 작품으로서 본작만큼 적절하고 아름다운 경우는 흔치 않다. 본작은, 아트워크에 그려져있는 꽃들만큼이나, 그 색깔이 남다르다.

       
   

Fleet Foxes의 『Shore』는 앨범 타이틀이나 아트워크가 그렇듯 여느 미국의 해변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기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본작은 따스한 햇살이 수면에 부딪혀 난반사되는 풍광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작품에 가깝다. Robin Pecknold와 그의 밴드가 2020년 추분의 시작점―9월 22일 국제 표준시 13시 31분―에 정확하게 맞추어 발매한 본작은 청자가 따스한 분위기를 느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본작이 주는 따스함은 「Wading In Waist-High Water」와 「Sunblind」 간의 연계가 그렇듯 자연스럽거나, 혹은 「Maestranza」에서의 Robin의 퍼포먼스처럼 강렬하도록 직관적이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둔탁한 드럼의 질감이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는, 그런 면에서 그들이 줄곧 제출해왔던 트랙들과 크게 다를 게 없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청자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트랙들의 지분이 크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아마 지금까지 서술한 나의 감상은 그들이 The Beach Boys에게서 받은 영향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랫말의 위를 훑곤 하는 긴 호흡의 목소리는 분명 Brian Wilson의 유산일 테고, 두 밴드의 작법을 비교해볼 때 세월의 간극을 무색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의 헌사는 대놓고 더 많은 아티스트들을 향하고 있다. “Richard Swift를 위해. John Prine과 Bill Withers를 위해서. Judee Sill과 Elliott Smith, 그리고 David Berman을 위해서도.”56 이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Robin은 비교적 밝고 따스한 본작을 만들면서 그들의 흔적을 되짚는 것이 그의 좋지 않은 정신건강을 일정 부분 회복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탓인지 본작의 가사는 철저히 그의 개인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노래에서 자신이 받았던 힘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의미하게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취향을 불문하는 본작은 그런 면에서 귀중한 흔적이고, 우리가 사유하던 대중음악이 생각 외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것일 테다. 이 자리를 빌어 나는 본작에 대해 감사를 보내며, Robin의 앞에 따스한 햇살이 드리우기를 소원하려 한다.

       
   

“록은 죽었다.” 장르 팬들에게나 아티스트에게나 심히 도발적일 장르를 향한 이러한 사망 선고는 어찌나 많은 이들에 의해서 행해졌던지 더 이상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그랬지만 저 말에 관한 맥락을 굳이―특히나 본고를 통해서―샅샅히 파헤쳐볼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하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저 문장의 길이만큼이나 단호할 선언이 무색하게도 장르에 숨을 불어넣는 이들이 꾸준히 존재해왔다는 점인데, 『Heaven To A Tortured Mind』의 Yves Tumor도 그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재밌는 점은 이 신비주의자가 현대 전자음악의 보고로 여겨지는 Warp Records 출신인 점을 빼더라도, 그 역시 은연중에 “록은 죽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Safe In The Hands Of Love(2018)』에서도 어렴풋이 보이던 록을 향한 호기심이 본작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모양새가, 혹은 그런 본작이 Yves의 이름이 연상시키는 불친절한 전자음악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이내 즐거움으로 변모한다. 죽어가던 장르에 숨을 붙어넣기 위한 시도가 꽤 다양한 탓이다. 한국 가요가 샘플링된 「Gospel for a New Century」는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안광―Madvillain, 『Madvillainy(2004)』―을 연상시키고, 「Kerosene!」은 그야말로 그 시절의 록스타―Jimi Hendrix, David Bowie, Prince 등―를 연상시키는 트랙이다. 전반적으로 글램 록의 자취를 좇는 듯한 그의 움직임은 브릿 팝과 소울, 사이키델릭 록의 영역에도 발을 들인 모양이고, 그런 면에서 「Super Stars」나 「Strawberry Privilege」 역시 특기할 만한 지점일 것이다. 목소리의 활용도 흥미롭다. Yves는 때로는 본연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울부짖으며, 때로는 팔세토를 활용하여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기도 하고, 이따금 여성 보컬리스트의 힘을 빌려 양성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함과 유연함은 나에게도,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도 좋은 어필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본작이 그가 공언하던 히트곡의 집합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미 록을 향한 호기심이 낳은 훌륭한 완성도의 본작을 통해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타파해버린 이 시점에, 그가 가진 잠재력을 논할 길이 없어보이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Childish Gambino의 실질적인 디스코그래피는 Kanye West가 준 영감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그의 재능이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은 『Awaken, My Love!(2016)』를 통해 George Clinton과 Prince의 향취를 쫓는 이가 D’Angelo 뿐만이 아님을 증명하면서였다. 그로부터 2년 뒤에 발표된 「This Is America(2018)」는 한층 더 주술적이고 정치적인 트랙으로서 그에게 Grammy Awards 4관왕의 영예를 선사했다. 굳이 집약되었다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그가 수년간에 걸쳐 만들어온 스펙트럼이 전세계가 유례 없는 공황의 전조 앞에서 신음하던 시점에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선공개한 『3.15.20』에서의 하얀색 앨범 아트워크로 집약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친구이기도 한 Ludwig Göransson과 DJ Dahi의 프로덕션 아래 그의 사이키델릭 펑크―Funk―와 소울을 향한 탐닉은 「19.10」으로, 얼터너티브 힙합으로의 동경은 「Algorhythm」으로 재탄생했다. 「Time」에서는 기성의 팝 코드를 따라가는가 하면, 「42.26」―「Feels Like Summer」―는 가히 Gambino다운 컨템포러리 알앤비 트랙이기도 하다. 그러니 집약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Gambino는 대 COVID-19 시대를 맞아 발매된 본작을 통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조적 특질과 인간 군상에 관한 의심을 던진다. 「0.00」에서 말하는 “우리”7는 「Algorhythm」에서의 “무언가에 맞춰 움직이고 춤을 추는 모든 사람”8이라는 말과 등치되며, 이것은 인간이 고안한 시스템의 필연적인 불완전성을 묵인하는 세태에 대한 그의 고발로 독해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그가 던지는 의심이 「42.26」에서의 “태양의 주위를 도는 70억 개의 영혼”9 즉,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본작의 마지막에 가서는 인간 천연의 본성을 현실적인 합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작은 정치적이고 의식적일 수 있다. 아마 그가 예상하던 본작의 발매는 이러한 그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2020년 3월 15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그가 예견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사회의 시스템에 던지는 의심과 그에 대한 고찰을 담은 본작을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러한 방식과 형태로 발매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본작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의미한 전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재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여성 아티스트 Rina Sawayama의 데뷔 앨범 『SAWAYAMA』는 좋은 팝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Dynasty」와 「XS」, 「STFU!」는 하나같이 2000년대 초중반의 팝 스타를 연상시키는―평단은 명확하게 Britney Spears와 Christina Aguilera를 지목한다―전개와 구성을 가진 트랙이다. 후반부의 「Who’s Gonna Save U Now?」 역시 그렇다. 물론 기타가 그들에게 썩 어울리는 악기였던가 하는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Rina의 퍼포먼스는 분명 그들보다는 뛰어나다. 「Comme Des Garçons (Like The Boys)」와 「Akasaka Sad」에서는 미래지향적 펑크―Funk―와 EDM 트랩의 조화를 엿볼 수 있고, 「Bad Friend」와 「Fuck This World (Interlude)」에서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Ariana Grande의 모습을, 「Chosen Family」에서의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소싯적 Beyoncé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많은 팝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그렇듯 본작 역시도 Rina가 레퍼런스와 자신의 색채를 저울질하며 고심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물론 다양함이 곧장 좋은 앨범으로 직결되는 요소는 아니겠으나, 최소한 그러한 저울질이 팝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몰개성과 이윤 추구, 그리고 예술성과 완전히 분리된 어떤 개념―을 파훼하고 장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행위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 결과물에서 나타나는, 팝 록과 컨템포러리 알앤비, 기성의 이지 리스닝 팝을 이리저리 오가는 Rina의 영민한 움직임이야말로 본작을 좋은 팝 앨범으로 만드는 주역일 것이다. 다만 나는 조금 다른 것을 보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의 발화이다. “나와 함께 사슬을 부수지 않을래?”10 그녀가 부수고자 하는 사슬은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그녀의 속성 그 자체일 것이다. 맛좋은 칵테일들의 집합체와도 같은 본작에서 그녀는 가난의 대물림을 언급하고(「Dynasty」), 과도한 물질적 소비를 비판하며(「XS」), 갖가지 차별과 선입견을 향해 일갈을 날리는 데에 상당한 지분을 할애한다(「STFU!」, 「Comme Des Garçons (Like The Boys)」, 「Tokyo Love Hotel」). 「Chosen Family」는 분명 성 소수자를 향해 연대를 주문하는 트랙이겠지만, 「Love Me 4 Me」와 「Who’s Gonna Save U Now?」에서는 연대만큼이나 자기애 역시도 중요한 것임을 일깨우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특별하다. 지금까지의 대중음악에서 휴머니즘의 선봉을 자처한 이들이야 많았지만, 본작, 그리고 Rina는 아마 여러 측면에서 가장 큰 리스크 테이킹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감수한 위험 요소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데뷔 앨범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하던 나의 우려는 이미 없던 일이 되었다. 대신 나의 우려는 기대로 바뀌어 이 다재다능한 아티스트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정말 근사한 작품이다. Jessie Ware의 『What’s Your Pleasure?』에는 역작과 같은 다소 과해 보이는 어구가 반드시 요구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절대 과할 리가 없다. Daft Punk와 Bruno Mars 이후 실로 오랜만에 뉴웨이브 혹은 디스코를 위시한 댄스 팝 넘버가 살아나 각종 차트를 정복하는 이 시대에 본작을 감상하는 53분은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극적인 전개로 우리의 감각을 단번에 매료시키는 뉴디스코 트랙 「Spotlight」부터, 본작의 정체성이기도 한 「What’s Your Pleasure?」를 지나 「Ooh La La」, 「Soul Control」, 「Save A Kiss」와 같은 적당한 템포의 그루브가 느껴지는 트랙들까지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또한 스트링 세션이 이끄는 스타일이 다른 두 트랙 「In Your Eyes」나 「Step Into My Life」는 청자의 취향에 따라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트랙들일 것이다. 수미상관의 미가 느껴지는 본작의 마무리 「Remember Where You Are」에 이르기까지, 본작을 감상하는 누군가가 본작의 레퍼런스―Robyn―를 짚어내는 일은 쉬울지 모르겠으나, 본작의 기술적인 면에서 흠결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본작의 기술적인 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또 있다면 Jessie 그녀의 관능미가 본작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사실이겠다. 본작 내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트랙이 있을까 싶지만, 특히 「What’s Your Pleasure?」와 「Adore You」에서의 주술적인 운용이나 「The Kill」에서의 유려한 가창은 우리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지점으로서 더욱 특별하다. “말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절대 해줄 수 없어.”11 본작을 열며 그녀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단 한 줄의 가사는 본작의 요점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듣는 이들을 춤추고 섹스하고 싶게 만드는 레코드.” 불가분의 관계라면 그렇다 볼 수 있을 대중음악과 섹스 어필의 역사 한편에 그녀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렇듯 완성도 높고 세련되며 능숙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작품이 Jessie에게서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18년 Coachella에서 Cardi B와 같은 시간대에 자신의 무대를 준비했던 그녀는 텅 빈 관중석에 서있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음악을 그만두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마주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저를 팟캐스트―<Food Manners>―로 더 잘 알고 있겠죠.” 하지만 그녀의 용감한 선택은 우연치 않게 2020년 대중음악의 가장 큰 시류와 만나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지난 한 해 그녀의 트랙들은 Spotify에서만 약 10억의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했다. 그래서 나는, Toronto와 London 출신의 두 젊음의 표상이 압도적인 리드를 가져간 듯 보이던 레이스의 끝에서, 아주 과감히 Jessie의 손을 들며 그녀의 판정승을 선언하고자 한다.

       
   

흑백논리라는 단어는 편협한 방식의 사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부정적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다분히 이분법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어떠한 것의 가치를 두고 우리가 무채색의 스펙트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양극단의 흑백에 각각 대입될 “그러함”과 “그러하지 않음”이라는 값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이념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 아래에 즉각적으로 종속되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græ』에서 Moses Sumney는 자신을 회색으로 자칭하며 그러한 현상에 예속될 수 없음을 천명한다. Moses는 회색과 섬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자신에게 붙여진 고독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맞게 일정 부분 재정의하고, 자신에게 내재한 다양성과 개인주의적 시각을 통해 세상을 관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나에게 좋지는 않겠지만, 그게 필요할 것 같긴 해.”12 그의 신념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을 것이지만, 그는 「Cut Me」를 통해 그 불친절한 시선을 향해 담대하고 나긋하게 포고를 던진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Virile」에서는 남성성을 조롱하고, 「Conveyor」에서는 자본주의와 미국 사회의 단상을 비판하며, 연대의식으로 포장된 자아의 강제적인 희석을 언급하기도 한다―「Gagarin」은 그의 연장일 것이다.

여전히 Moses는 『Aromanticism(2017)』에서 그랬듯 강박적인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기악적 구성을 견지하는 듯하다. 그러한 점은 「Cut Me」나 「Colouour」, 「Two Dogs」 등에서도 드러나지만, 앰비언트의 극단적인 예시로 언급되는 Daniel Lopatin―OPN―의 이름이 크레딧에 등장한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그가 주조하는 음산한 소리 역시 회색빛의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의 지분이 가장 큰 프로덕션 위에서 진행되던 발화는 「Two Dogs」를 기점으로 자취를 감춘다. 「Neither/Nor」에서 모조리 부정당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전회가 이질적인 것은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발화를 멈춘 뒤에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Bystanders」나 「Me in 20 Years」에서의 소리는 과하게 적은 면이 있지만, 도덕성의 색이 무엇인지, 무엇이 자신을 그 색으로 이끌었는지 말하는 목소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리라. 이쯤 되니 생각이 조금 바뀐다. 그는 자신의 발화가 부정당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도 남았던 듯 보이고, 그런 이유로 본작을 두 개로 나눠 각기 다른 일자에 발표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성서 속 Moses―모세―가 홍해를 갈랐던 것을 통해 신의 은총을 받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세계의 Moses는, 언젠가 Frank Ocean―『channel ORANGE(2012)』―이 그랬듯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회색빛 영역에서, 갈등의 시대를 예견한 채 먼발치 뒤에서 관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 영역에 빛을 드리우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2020년. 좋지 않은 한 해였다. 이것이 너무 자명한 나머지 무언가를 더 서술하기가 민망하기도 하거니와 내 개인적인 이유에서도 피곤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굳이 내가 저 문장으로 본고를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Charli XCX의 『how i’m feeling now』가 발매된 배경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이 영국 출신의 미래지향적 팝을 주창하는 이의 발걸음을 잠시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2016년을 기점으로 그녀의 음악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대부분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즈음부터 SOPHIE와 Grimes, FKA twigs와 Björk 같은 이들 덕에 팝 내에서도 레프트 필드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에게서 바통을 건네받은 Charli가 자신이 서있는 지평 위에서의 움직임을 더욱 명징히 선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던 정규 앨범이 한 명의 해커 덕에 완전히 없던 일이 되는 불상사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신 두 장의 믹스테이프―『Number 1 Angel』, 『Pop 2(2017)』―가 그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그녀의 움직임에 힘을 보탰다.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정규 앨범 『Charli(2019)』는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멋들어진 팝 앨범이었고, 나 역시 일련의 돌발상황과 전화위복의 연속을 지켜보던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이유로, 근미래에 발매하겠다던 그녀의 다음 두 장의 정규 앨범에 큰 관심을 보이던 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2020년을 관통하는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발생하며 그녀의 공정에 제동이 걸렸다. 작업을 위해 다수의 스튜디오를 오갈 수도, 비행기를 탈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게 된 그녀는 그 와중에 최소한의 속도를 유지하기를 원했고, 팬데믹이 선포된 지 약 한 달이 되어가던 어느 시점에 기존의 계획과는 별개의 앨범이 발매될 것이라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 앨범이 본작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졌던 것은 남자친구와 생활하던 Los Angeles에 위치한 자신의 집과 인터넷 통신망 뿐이었다. 다시 말해 본작의 크레딧을 전작만큼이나 빼곡하게 써내려간다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그리고 아마 금전적으로도―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집을 DIY 스튜디오로 만들어 목소리의 녹음 그리고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의 촬영을 진행했고, A. G. Cook과 100 gecs의 Dylan Brady, BJ Burton 등 소수 프로듀서와의 지속적인 연락을 통해 본작의 소리를 조직했다. 특이한 점은 그러한 상황에서 성사되기 쉽지 않을 피처링을 최소화하고, 그 자리를―나를 포함한―상당수의 팬들로 채웠다는 점이다. 그녀는 작사 과정에서 팬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크레딧을 주거나, 아트워크 그리고 선공개할 트랙을 고르는 과정을 투표에 부치는 등 언택트 시대에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그 와중에 내가 고른 아트워크가 대부분 채택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본작에 관한 모든 공정을 6주만에 끝마쳤고, 그리고 그 즉시 본작을 발매했다.

물론 본작의 발매가 팬데믹과 상당 부분에서 맥락을 함께 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생각 외로 그것과 무관하다고 보여지는 부분이 많다. 우선 관계가 있는 지점에 관해 먼저 살펴보자면 그 예시로 전작의 트랙 「Click」의 리믹스 트랙 격인 「c 2.0」와 「anthems」 정도가 있겠다. 「c 2.0」에서 주술적으로 친구들―Clique―을 무려 96번이나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해당 트랙에서의 가사와 「anthems」에서 그녀의 지루한 현재의 일상을 묘사하는 지점과 겹쳐지며 우리가 누려왔던 일상과 유희, 사람들과 부대끼며 체온을 공유하던 모든 행위가 팬데믹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상태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승화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우리는 좀 더 가까워질지도 몰라.”13 관계가 없다고 보여지는 지점은 어떨까. 본작을 여는 인트로 「pink diamond」에서 Charli는 전작의 인트로 「Next Level Charli」의 가사를 빌림과 동시에 자신을 어둠 속에서도 특별한 색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에 비유하며 자신의 작업관을 언급한다. 「forever」와 「claws」 그리고 「7 years」까지 무려 세 개의 트랙에 걸쳐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i finally understand」에서는 자기 혐오로 점철된 과거 어딘가를 회고하며 반성하기도 한다―Charli는 이 생활이 현재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있는 서사로 읽힌다면 과장일까. 이것은 소리에서도 엿보이는 부분이다. 언젠가부터 Charli의 작업물에서 인트로는 작품의 소리를 개괄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Backseat」의 몽환적인 분위기―Pitchfork는 Fog machin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그랬고, 「Next Level Charli」의 캐치하고 번쩍이던 멜로디가 그랬듯이, 「pink diamond」에서는 설령 그것이 과할지라도 본작의 소리를 조직하는 방식이 상당히 작위적인 단계까지 나아갔음을 시사한다. 「claws」와 「anthems」는 그러한 면이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트랙으로서, 여러 측면에서 Death Grips와 SOPHIE의 소리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그들의 트랙이 그렇듯 즉각적인 감상을 남긴다. 그런 면에서 「detonate」나 「enemy」는 약간 이질적일 수 있겠으나, 역설적으로 본작에서의 작위적인 소리가 익숙하지 않을 이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는 내가 특별히 첨언할 것이 없다. 이것은 본작의 소리가 특별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전작을 기점으로 다른 수준에 올라선 완성도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칭송하는 취지에 가깝다. 물론 아쉬운 트랙이야 한 두 개쯤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트집이 잡힐 만한 지점이 보이지도 않는 터라 내가 굳이 말을 얹자니 모양새가 이상해지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사족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가 본작에 하이퍼 팝과 같이 근래에 떠오르는 특정한 이름을 굳이 붙이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Charli 그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기존의 것 이외에 새로운 명명법이 필요할 유의미한 근거가 있지도 않거니와, 특별하게 설득력 있는 기준―과잉의 목적어가 무엇인가―이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아서다. 정보통신 기술과 함께 나날이 발전하는 신시시즈의 가치가 생음악의 것과 이미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시대에, 팝 시장에서 전자 음악에 빚지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본작 역시 전작이 그랬듯 상당한 팝 앨범으로서 판단한다. 본작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하지만, 2020년의 대중음악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것을 대표할 법한 작품을 고를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 자전적인 이벤트-성 앨범의 순위가 조금은 내려갈지도 모르겠으나, 본작이 발매된 배경과 SNS 사회를 살아가며 소통하는 Charli만의 독특한 방식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의 선택에 작지 않은 설득력을 부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든다. 비록 본작은 좋지 않은 시점에 발매되었지만, 본작을 마무리하는 「visions」가 그렇듯 우리로 하여금 밝은 빛이 밀려들어오는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본작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고자 한다.

       
   

Album Of The Year!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의 단 하나의 앨범, 나는 그 앨범으로 Fiona Apple의 『Fetch The Bolt Cutters』를 꼽게 되었다. 그 배경을 설명하기 전에 약간의 소회를 늘어보려 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본작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은, 내가 일전에 기고했던 글에서도 언급했던, 발매 후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시 아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일 테다. 그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단순히 Pitchfork에서 10년 만에 만점을 부여한 앨범의 주인공이 본작이라서 뿐만이 아니라, 단 하루 만에―당시의 나는 저들이 제각각의 근거를 갖고 있다고 서술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마치 발매와 동시에 일종의 합의라도 본 듯 십수개의 매체에서 하나같이 만점에 달하는 점수를 부여하는 일이 말 그대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 밖에 앨범을 통째로 듣지 못했던 나는 이것이 상당히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몇 매체는 발매 전 보도자료를 참고하여 이미 글까지 작성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기만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눈 앞에서 벌어지던 이 놀랍지만 동시에 이상한 현상을 보고서도 평정심과 올곧은 주관을 흐트러짐 없이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의 시도를 했었다. 나의 감상과 저들의 합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글을 읽어보고, 다시 돌아가 본작을 감상하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어떠한 글을 읽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유로 종국에는 포기했다. 이 시도는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감상을 자의로 후시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양새가 살지 않기도 하거니와, 평단의 합의를 선제적으로 이해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야 지나간 일이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저 현상을 마주하는 경험은 분명히 하나의 사건과도 같았다. 그 경험은 어려웠지만 흥미로운 것이었고, 말로 모든 것을 형용하기가 마땅치 않을지언정 가치 있는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평단의 만점은 무슨 의미인가. 누군가가 마련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때 그것은 필히 감점으로 이어지는가. 어떠한 작품에 정치사회적 발화가 담겨 있을 때, 그것의 질적 측면을 어떻게 저울질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명확한 답이 존재할 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최소한 본작에 대입했을 때 우리의 감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본작을 감상하고 그것을 성문화하는 과정은 일종의 재귀적인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본작은 내가 가진 기준이 여전히 유효한지 되물었고,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다시 본작에 대입시켰다. 일전의 글에서도 서술했지만, 결론적으로 세간의 평가처럼 만점에 달하는 점수를 부여할 생각은 없으나 상당히 높은 점수를 부여하게 되었고, 우리가 그동안 대중음악을 사유하며 간과해왔던 지점들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로 아티스트 역시 우리와 똑같이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Fiona의 삶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불확실하고 비정형적이며, 이상할 것이다. 물론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아트 팝 특유의 전위적인 감각은 비정형적인 전개로서 적극적으로 드러나던 것이었지만, 언젠가 자신을 기괴한 기계―『Extraordinary Machine(2005)』―로 자칭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나이듦에 따른 성장인가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집으로 숨어들어간 허무주의의 반영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 없겠지만, 그녀는 본작에 와서 대중음악을 향한 대중의 요구를 정중히 거부함과 동시에 생동의 활력을 표현함으로서 인간적인 면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이른다.

“우린 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연주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노래했어. 벽을, 바닥을, 그녀의 집을 두들기곤 했지.” 본작은 타악기의 오케스트라임과 동시에 일상이 부르는 합창과도 같다. 「Fetch The Bolt Cutters」가 대표적이다. Fiona와 그녀의 밴드는 주방의 식기들을 있는 대로 꺼내 드럼의 자리를 대체하기로 입을 모은 것처럼 느껴지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니 이것은 강아지들의 소리가 아닌가? 「On I Go」는 더 심하다. 이들은 숨소리를 녹음하고, 옆에서는 급수탑을 두들기며, 누군가는 열심히 발을 구르는 등 그들의 녹음실―그녀의 집―을 말 그대로 난장판을 만들어놓는다. 난장판을 만드는 것은 Fiona 역시도 그렇다. 여기서 두 번째, 나는 이상하리만치 전형이 없는 전개의 집합을 마주한다. 그녀의 밴드는 현대 화성학으로 인해 형식미가 갖추어진 재즈풍의 연주를 선보이며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Fiona는, 예를 들면 박자라던지 조성이라던지, 그러한 것들을 모두 무시하기로 한 듯 노래한다. 노래? 아닐 지도 모른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빼어난 가창력을 선보일 생각이 없던 이처럼 말하고, 소리를 지르고, 흐느끼기까지 한다. 이따금 그녀의 초대를 받아 목소리를 보태는 이들 역시 매한가지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상당히 본질적인 음악―音樂―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지점들을 마주하고 나니 그제서야 그녀의 발화가 눈에 들어온다. 애당초 본작의 타이틀부터 자신을 옭아매던 일련의 합의를 파훼하자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본작에서의 발화는 중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실 본작을 여는 인트로 「I Want You To Love Me」에서의 목소리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결국, 이 어떤 것도 무의미할 것을 알아.”14 그런 그녀를 각성시키는 것은 「Shameika」라는 기억이며, 그 이후로는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말 그대로 가감없이 쏟아낸다. “테이블 아래서 날 열심히 걷어 차봐. 난 닥치지 않을 거라고.”15 그것은 때로는 당혹스럽고 불쾌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금까지 그녀가 발매한 어떤 작품보다도 강한 힘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Rack Of His」와 「For Her」같은 트랙이 공존하는 것이 대표적이겠다. “내 시간을 너에게 쓴 유일한 이유는 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야.”16 “좋은 아침이야. 넌 네 딸이 태어난 그 침대에서 나를 강간했었지.”17 후자의 경우라면, 「Relay」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다―물론 어느 정도 문제적일 수 있다. “악은 릴레이 스포츠야.”18 “네가 네 인생을 좆같은 프로파간다처럼 보여주는 게 짜증나.”19 이외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지점으로서「For Her」와 「Ladies」 역시 특기해야 하겠다. “숙녀 여러분!”20 그녀의 발화가 마치 담대한 주문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약이 아니다. 나는 이 산문집에 가까운 인상을 남기는 본작에 진보주의라는 팻말을 굳이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개인 혹은 사회의 그릇된 관념과 그에 기반한 행동들을―더군다나 자신을 향했던 평단의 조롱을―겨냥하는 비판적 태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아주 설득력이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Pitchfork―말했듯 전에 없던 음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재즈풍의 연주로 트랙을 전개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타악기의 잠재력에 관한 연구는 대중음악 뿐 아니라 현대음악의 영역에서도 꾸준히 진행되던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본작이 발매와 거의 동시에 장안의 화제가 되어버리는 광경을 보았던 나는 본작을 특별한 지점으로 기억하려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중음악을 사유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취향을 재고하고 자세를 고쳐잡는 일은 생각 외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나의 잣대가 이 작품을 기점으로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Fiona가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그저 대중음악에 요구되오던 미덕이 어느 정도는 부재한, 그 공백을 우리 삶의 활력이 채운, 그 위에서 한 사람이 자유롭게 발화하는 풍광을 경험하기를 요청한 것 정도가 그녀의 의도일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어떤 공식에 지친 당신에게 본작을 자신 있게 권하고자 하며, 본작과 그것을 둘러싼 현상의 맥락을 2020년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사건으로 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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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 true state of all things,”
  2. “I keep on not dying, the sun keeps on rising.”
  3. “There’s no end.”
  4. “Oh, emptiness, tell me ‘bout your nature.” – 「zombie girl」 中
  5. “For Richard Swift. For John and Bill. / … / Judee and Smith. For Berman too.” – 「Sunblind」 中
  6. 후에 가사에서 언급되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세상을 떠났다.
  7. “We are,” – 「0.00」 中
  8. “Everybody, move your body, now do it. Here is something that’s gonna make you move and groove” – 「Algorhythm」 中
  9. “Seven billion souls that move around the sun,” – 「42.26」 中
  10. “Would you break the chain with me?” – 「Dynasty」 中
  11. “Word can never do the things that I need them to.” – 「Spotlight」 中
  12. “Might not be healthy for me, but seemingly I need.” – 「Cut Me」 中
  13. “Finally, when it over, we might be even closer.” – 「anthems」 中
  14. “And I know none of this will matter in the long run.” – 「I Want You To Love Me」 中
  15. “Kick me under the table all you want. I won’t shut up.” – 「Under The Table」 中
  16. “It was because I was loving you so much that’s the only reason I gave my time to you.” – 「Rack Of His」 中
  17. “Good morning, you raped me in the same bed your daughter was born in.” – 「For Her」 中
  18. “Evil is a relay sport.” – 「Relay」 中
  19. “I resent you for presenting your life, like a fucking propaganda brochure.” – 「Relay」 中
  20. “Ladies!” – 「Ladies」 中

3 thoughts on “The List : 2020 국외 베스트 앨범 20 by XENITH

  1. 살짝 훑어만 봐도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음이 느껴지네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일렉트로닉과 인디 포크를 정말 좋게 들으셨나봐요.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물론 저도 다 좋게 들은 앨범이긴 하지만요. 이제 피오나는 반열에 올랐다고 보고 찰리나 사와야마 같은 친구들이 눈에 띄네요. 차근차근 읽으면서 작년을 되돌아봐야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온음>의 필진 XENITH입니다. 먼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본고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좋은 앨범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2020년에 발매된 앨범들을 20장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쉽지 않을 수 없기도 하고요. 2020년은 포크 영역에서 정말 좋은 앨범들이 많이 나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환경적 제약이 낳은 결과라고나 할까요―컴퓨터 기술과 함께 나날이 발전하는 신시시즈가 전면에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일렉트로닉 영역의 약진도 특기해야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점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omboy님도 본고를 읽으시면서 2020년 한 해 빛났던 작품들을 돌아보시는 계기를 마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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