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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k High, 『Epik High Is Here 上』

   

스스로를 0(Zero)으로 되돌려 달라고 말하며 그간 Epik High의 ‘Lesson’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듯한 Tablo의 태도는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다음 트랙 「Rosario」에서 Tablo가 뱉는 첫 라인이 “Yeah, yeah, 있을 때 잘해인 것은 의미심장한 지점일 것이다. 나는 본작을 여러 번 돌려들으며 대체 무엇이 그들(Epik High)을 궁지로 몰았기에 본작에 담긴 그들의 노랫말이 그렇게 공격적인 변명들로 가득했는지 궁금해 하곤 했었다. 실마리를 그간 Epik High의 전작들을 관통해왔던 ‘Lesson’ 시리즈와 그들을 통째로 부정하는 듯한 첫 트랙 「Lesson Zero」에서부터 찾아본다. 그간의 ‘Lesson’ 시리즈에는 어떠한 비판적인 통렬함이 있다고 한다면, 이번 「Lesson Zero」에서는 그저 운명을 받아들인 필멸자와 같은 체념과 무기력함만이 맴돌 뿐이다.

그렇게 0으로 돌아간 Epik High는 다음 트랙 「Rosario」에서부터 그들의 번뜩이는 칼날을 불특정한 다수에게로 돌린다. 소위 ‘Hater’들에게 공격적인 낱말들을 흩뿌리는 것은 힙합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Lesson Zero」의 잔향 탓일까,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뭣만 하면 죽을 죄, 다들 티끌 하나 없나? 성자가 뭐 이리 많아?”라고 말하는 Tablo의 태도는 같은 트랙에서 “Thank you my hater”라고 인사하는 ZICO의 태도와는 비슷한 듯 상충된다. Mithra 역시 불특정 다수에게 칼끝을 겨누면서도, 마지막에 평생 공을 들여 탑을 쌓아도 무너뜨릴 세상이지만이라 말하며 그 적개심이 결국 세상 모두에게 향해있음을 알린다. 『Epik High Is Here 上』이라는 당당한 본작의 제목과는 다르게 그들은 어딘가 한껏 몰려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Leica」에서 Verse의 무드와는 다르게 이래도 지랄, 저래도 또 지랄, 바람 잘 날 없네라고 김사월이 푸념하는 훅이나, 「수상소감」에서의 수도 없이 봤지 앞과 뒤가 다른 모습 등으로 드러나는 착잡함 등은 본작에서 그들이 취하는 태도를 더욱 와닿게 한다. 그렇다면 「정당방위」는 나름대로 본작에서 중요하게 읽힐 수 있을 트랙일 것이다. 본작의 스탠스가 한껏 공격적으로 서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이면서도 날카로웠던 트랙으로 이 트랙을 지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어딘가 궁지에 몰린 것 같은 트랙 위로 Epik High에 더해 우원재, 넉살, 창모라는 빼어난 기예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한 데 뭉쳐 퍼부어대는 랩은 어째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지를 제대로 드러낸다. 그러한 공격적인 노랫말들에 흡족할만한 기량이 더해진다면 그 날카로움은 분명 베일 듯한 것일 테다. 한편 본작에서 가장 특출난 트랙으로는 「Rosario」의 이름을 호명할 수 있을 것이다. 라틴 트랩 사운드 위에서 질주하는 Tablo와 ZICO의 랩, 그리고 피어오르는 CL의 훅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매우 충분한 것이었다. 「Rosario」와 「정당방위」, 확 바뀌어버린 그들의 공격성을, 그리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어떠한 궁색함을 전시하는 가장 탁월한 트랙들이다.

전작들의 캐주얼함에 비해 본작은 보다 힙합-스러운 색채로 가득하고, 본작에서의 Epik High의 스탠스 역시 앞서 꾸준히 언급했듯 우리가 힙합 음악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것과 닮아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내 얘기 같아」는 본작에 있어 치명적인 이물감으로 다가온다. 「내 얘기 같아」의 경우 「술이 달다」나 「헤픈 엔딩」 등 Epik High가 흔히 시도해왔던 서정성이 가득한 트랙이지만, 앨범이 진행될수록 Epik High가 본작에서 그리고자 했던 영역에서 동떨어져있다는 인상이 강해진다 ― 비슷한 서정성을 확보하는 「Leica」의 경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본작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완성도도 그들이 시도했던 다른 비슷한 트랙들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만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은 커진다. 그 외로 Epik High의 커리어 초반의 트랙들을 연상케 하지만 그다지 큰 감흥을 선사하지는 못하는 「수상소감」도 아쉬움이 짙고, 세련된 팝-랩 트랙을 추구하고자 했던 「True Crime」은 그 전개가 다소 예상 가능한 범주에 있어 맛이 살지 않으며, Tablo와 Mithra가 랩을 주고받는 트랙인 「Social Distance 16」 역시 날이 선 노랫말들만 부유하는 채로 특별한 감상을 남기지 못한 채 흘러간다.

이 시점에서 나는 본작의 노랫말 역시 문제 삼을 수 있겠다. Tablo는 번뜩이는 펀치라인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였던 테크니션이지만, 본작에서는 그러한 강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허공을 맴도는 투정만이 가득하다. 본작의 공격성에 그의 장기가 매몰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그렇게 방향성을 바꾼 노랫말 역시 통쾌함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남긴다. 이는 첫 번째 문단에서도 밝힌 바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궁지로 몰았기에 본작에 담긴 그들의 노랫말이 그렇게 공격적인 변명들로 가득하게 된 것일까. 이외에도 Tablo와 Mithra의 랩 퍼포먼스가 트랙마다 널을 뛴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어쩌면 더욱 긍정적으로 읽힐 수 있을 작품이었겠지만, 여러 부정적인 지점들이 긍정적인 감상을 저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그들의 제자리걸음이라 적지는 않겠다. 분명히 그들의 태도는 본작에 들어 확실하게 달라졌고, 이는 「Lesson Zero」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본작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들의 다음 챕터가 될 下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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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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