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음 2020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

by 온음
 

길었던 한 해를 뒤로하고, 우리는 새로운 2021년을 향해 나아갑니다. 저희 <온음>의 첫 글이 올라간 것이 벌써 2년 가까운 시간 전의 일이라는 것이 새삼 놀랍게 느껴집니다. 2021년에도 저희 <온음> 일동은 좋은 음악과 이야깃거리를 들고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것을 약속드리며, 2020년 한 해 동안 저희 <온음>을 찾아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2020년은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치명적인 한 해였습니다. 유례가 없던 공황 앞에 그들이 관객을 마주할 일이 사라져버렸고, 그 여파로 많은 공연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목도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별이 빛나는 법일까요,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통해 우리의 대중음악이 윤택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저희 <온음> 일동은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한 해 동안의 기록 중에서 유독 빛나던 지점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2020년이 힘든 한 해였다는 사실은 아티스트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저희와 같이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이 저희의 글을 통해 2020년의 대중음악을 되짚어보며 자그맣게나마 힘을 얻어 가셨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2021년이 한층 더 따뜻하고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하며, 인사드립니다. – XENITH

   
  • 아래의 목록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1월 사이에 발매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선정 이전의 후보 목록은 해당 링크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General Field──

   

The Best Album of 2020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Self-Released, 2020.05

별안간 모든 것에 ‘K-’가 붙는 시대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최근 부각된 ‘K-’라는 수식어의 사용(내지는 밈)은 특정 대상을 오직 현재의 한국적인(한국의) 것으로 재-정의하여 다른 국가의 그것과 분리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우리가 ‘K-’라는 수식어가 붙은 낱말을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형성하는 국경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K-’라는 수식어의 사용은 그것이 수식하는 낱말에 담긴(또는 그 낱말에 대한 사고에 담긴) 비-한국적인 것 내지는 그렇게 여겨지는 것들을 몰아낸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수식어가 만들어내는 국경이다. 그런데 그 국경은 비록 한계를 정하나 그러한 한정지음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상정한 채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예로부터’ 한국적이라 불리었던 ‘전통적’임을 침범한다. 사실 ‘K-’라는 수식어의 사용이 한국적인 것으로의 재-정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한국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K-’의 남발을 통해 우리가 현재의 대한민국의 국경을 체감할 때, 동시에 우리는 이전에 과거의 ‘한국적’이라는 낱말에 떠오르는 ‘전통’이라 불리던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현재의 한국은 온전히 한국적인 무언가를 찾기가 민망할 정도로 세계화가 진행된 ― 다시 말해 기존의 한국적임을 대표했던 전통과 같은 요소들이 점점 세를 잃어가고, 그 자리를 외국의 것들이 채워가거나 결합된 ―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서 전통음악과 양악을 결합하고자 했던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만일 앞선 ‘K-’의 사용을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현재의 세계화된 한국에 기반을 두어 수행되는 새로운 재-정의로 이해할 수 있다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중음악과 양악의 결합 역시 현재의 세계화된 한국에 맞추어 우리가 간직해오던 전통이 그 형태를 달리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임에 대한 재-정의가 논의되는 지금, 국악-크로스오버 음악의 대두가 전통음악이 양악과 융화되어 재-정의된 한국적임에 발을 딛으려는 움직임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그리 무리한 서술은 아닐 것이다.

여기, 추다혜차지스의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가 있다. 본작은 2019년부터 2020년 양해 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수많은 국악-크로스오버 작품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강렬한 록 연주를 바탕으로 우리를 당산나무 밑으로 데려가는 인트로 트랙 「undo」에서부터, 무당의 방울소리 이후 사이키델릭한 연주가 어우러지며, 그 위를 서도민요 전공자다운 추다혜의 보컬이 꺾어 내리는 「비나수+」, 재지한 연주가 점차 그녀의 보컬의 간드러진 그루브에 맞춰 펑키해져가고 마무리를 김오키의 색소폰을 필두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사는새」, 댄서블한 펑크가 우리를 버선발로 맞아주어 우리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리츄얼댄스」, 본격적으로 레게의 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에허리쑹거야」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트랙이 없다. 나는 이번에는 특히나 「차지S차지」에 조금 더 주목하고자 한다. 「차지S차지」는 어쩌면 본작 내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트랙이다. 「차지S차지」의 노랫말은 특정 추임새를 제외하고는 전부 추다혜가 새로 지은 노랫말이라는 점에서 전통음악의 개입이 가장 적은 트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가의 말이 그 형식성만을 남긴 채 그 내용들이 전부 현재성을 띠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주요한 것은 추다혜가 전하는 위로가 겨냥하는 대상, 그리고 그를 둘러싼 요소들이다. 본작을 청취할 현재의 우리를 위로하는 노랫말을 새로 쓴 추다혜의 가창은 정말로 옛 것이고, 그를 뒷받침하는 밴드의 연주는 실로 양악의 그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차지S차지」에 녹아있는 그러한 요소들과 그것이 겨냥하는 대상 간의 관계가 서로 쉽사리 멀어질 수 없게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추다혜는 일전에 <한국연구> 웹진에서 수행한 김보슬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통에 교묘히 감미료를 섞어 맛 좋고 예쁜 것으로 변형시키고 싶지 않다.”라고 밝히며 전통음악의 크로스오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녀의 기획은 양악 연주와 전통음악의 대조를 통해 전통음악의 한 부분을 도드라지게 하고자 하는바에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본작을 통해 보았을 때 그녀의 기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녀가 전통음악 내지는 크로스오버를 바라보는 시선이 “옛 것은 옛 것 자체의 냄새가 나게”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조금 다른 시선을 견지한 채 본작, 나아가 크로스오버라는 장르적 현상 자체를 바라본다(앞선 문단 역시 그러한 시선을 견지한 채 수행한 본작에 대한 독해였다). 전통음악의 소리는 양악의 침투로 인해 점차 우리로부터 멀어져갔고,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는 멀어져가는 전통음악의 소리가 다시 우리에게 소리로서 들릴 수 있도록 새로운 지평을 찾는 작업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크로스오버는 앞서 말했듯 현대의, 현재의 한국에 맞게 재-정의된 한국적임에 발을 딛으려는 전통음악의 분투다. 아마 이것이 추다혜가 말했던 그녀가 전통음악을 바라보는 시선과 본작을 크로스오버 음반으로서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서로 결별하는 지점일 것이다.

본작을 한국의 전통음악과 양악이 크로스오버된 작품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본작이 자신들의 소리를 내세움에 있어 그렇게까지 전통적인 접근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다혜차지스는 잠비나이와 같이 거문고나 해금 등을 사용하는 밴드도 아니고, 오히려 그 구성을 본다면 철저하게 양악에서의 밴드의 구성 ―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 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작이 우리에게 더욱 전통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은 본작을 아우르는 추다혜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추다혜는 본작에 전통의 목소리를 수놓기 위해 직접 무가를 노래하는 전승자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추다혜는 평안도, 황해도, 제주도의 무가들을 아주 멋들어지게 본작에 녹여내는데 성공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추다혜는 기존에 전승되어오던 작자미상의 무가들을 노랫말로 사용하면서도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굿패키지로다 디릴적에 이놀이 정성을 받으시고”와 같이 시대에 맞는 적절한 개사로 전통의 언저리에 놓여있는 무가와 현재의 대한민국을 잇는다. 추다혜의 그러한 활약은 본작을 청취하는 우리로 하여금 Funk, 레게, 덥과 같은 소리들 역시 현대에 펼쳐지는 굿판을 구성하는 요소와 같이 이해하도록 한다.

대중음악이 전통음악과 양악의 융화를 통해 새롭게 ‘한국적’인 방향을 쫓으려할 때 주로 사용되던 전통음악의 형식은 판소리나 궁중 음악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가와 Funk, 레게, 덥과 같은 장르의 융화는 우리에게 있어 충분히 새로운 것이었다. 앞서 내가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K-’라는 낱말의 사용에 대해 적은 것은 우리가 이전까지 전통적인 ―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는 ― 것들에 대해 ‘한국적’이라 이름 붙여지던 것이 점차 그 효력을 잃고, 대신 그 자리에 현재의 세계화된 한국의 규격이 들어서 새로이 국경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예시였다. 그리고 대중음악에서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한국 전통음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는 그 이전부터 전통음악이 더 이상 한국에만 국한될 수 없는 한국적인 것의 영역 아래 발 디딜 곳을 찾아 목소리를 내었던 시도의 연속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국악-크로스오버 음반이 전통적 국악에 가깝고, 어떠한 국악-크로스오버 음반이 보다 양악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지를 논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작품들에 대해 전통음악의 관점과 양악의 관점을 나누어 바라보는 것 역시 나에게 있어 새삼스럽다. 내가 보았을 때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에서 그 둘을 병렬적으로 연결된 두 가지 요소로 보고 그를 분할하여 무게의 경중을 논하고자 하는 시선은 어느 정도 부당한 접근법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크로스오버를 국악과 양악이 단순히 병렬적으로만 연결된 음악이 아닌 국악과 양악이 하나의 덩어리와 같이 융화된 음악으로 이해하여야 하고, 또한 그러한 크로스오버는 현재의 한국에 과거의 한국적임을 아로새기려하는 움직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다혜차지스의 본작은 더욱 특기할만한 작품이다. 본작은 한국 전통음악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무가를 토대로 역시나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에서 익숙하지 않은 Funk, 레게, 덥과 같은 소리들을 융화시키며 이것 역시 한국적인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도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선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본작은 이전까지 있어왔지만, 이전까지는 결코 있지 않았던 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추다혜차지스가 직접 열어젖힌 것만 같고, 그래서 나는 본작이 2020년에 발매된 모든 크로스오버 작품 중에 가장 인상적인 성과를 성취하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비슷한 시도를 꾀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앞에는 반드시 추다혜차지스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고, 추다혜차지스는 자신들이 열어젖힌 문으로 더 깊숙이 가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나는 본작을 2020년의 대중음악을 되짚을 때 가장 뛰어났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본작이 2020년대의 초입에서부터 한국 음악계의 2020년대 전체를 꿰뚫는 그런 상징적인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 coloringCYAN

 

The Best Track of 2020

이날치, 「범 내려온다」, 잔파, 2020.02

일단 트랙 자체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의 감상은 장영규와 정중엽의 장력이 느껴지는 베이스 소리, 프로그래밍된 박수 소리와 이철희가 직접 연주하는 드럼 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명징하게 펑크―Funk―스러운 연주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 위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펑크라는 단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이 온전히 판소리 창법에서 기원한 탓이었다. 판소리 <수궁가> 속 11개의 대목을 골라 흥겹고 신명 나는 트랙들로 개편하여 제작된 『수궁가』, 그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트랙 「범 내려온다」는 분명하게 놀라운 순간에서 시작될 것이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여기서부터는 상당한 힘이 나를 휘감는다. 권송희,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 4명의 소리꾼은 때로는 서로가 다른 가사를 부르는 목소리를 교차시키고, 때로는 독창과 화성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흥을 더하고 있었다. 중독적인 챈트와 매력적인 하모니, 신나는 리듬을 담고 있는 「범 내려온다」는 이미 충분히 멋진 트랙이었다.

부끄러운 사실일 테지만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이 트랙이 만들어낸 거대한 화학 반응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작용 기전을 명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장영규의 안목에서 시작된 이날치의 결성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의 협업이 어쩌다가 “힙”의 칭호를 받아들게 되었는지, 대중성이라는 그 기준이 불분명한 척도를 갖다 대었을 때 어떤 지점에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던 것인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지목하기를 시도한다는 것이 심히 까다로운 공정인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이 딱히 이유가 없던 현상이라고 귀결짓는 것도 웃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과관계가 완성되지 않고도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이뤄낸 성과는 2020년의 한국 대중음악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반드시 중요하게 논해져야 할 대목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범 내려온다」를 “Track Of The Year”로 선정하며 그에 걸맞은 감탄을 해보고자 한다. 나는 일전에 이들의 움직임을 두고 “현대 국악의 앞에 있는 길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국악을 사유할 수 있을지 놀라운 방법을 통해 체현한 사례”라고 말했던 바 있다. 사실 나는 이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악의 소리는 분명하게 일반적인 대중의 시야 바깥에 있었고, 국악을 향한 인식은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상황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망 있는 젊은 국악인들은 양악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볼 수 있는 현세대 사람들의 취향과 국악의 소리를 크로스오버하기를 시도했다. 그들의 시도에 힘입어 대중을 향해 나 있던 문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그 문은 이날치에 의해 그야말로 활짝 열려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둘러싼, 그리고 대중음악을 사유하는 방식에 관련한 여러 맥락과 함께, 「범 내려온다」를 올해의 가장 소중한 트랙으로 꼽게 되었다. – XENITH

 

The Best Artist of 2020

이날치 &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2020년은 국악이라는 요소가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온 해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국악을 필두로 다양한 요소와의 접합을 통해 청자에게 뛰어난 음악을 들려준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중에서 이날치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작품과 활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먼저 그들이 발표한 『수궁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판소리의 여러 대목을 모티프 삼아 그것을 펑크, 재즈, 디스코와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면모의 음악을 담은 선물 같은 작품이다. 그것은 XENITH가 언급한 것처럼 국악이 가지는 특정 부분의 딜레마를 말끔히 해소하는 동시에 기존의 청자와 새로운 청자를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들로 점철되어 있는 음악으로 남게 되었다. 특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범 내려온다」의 경우에는 그 음악이 가지는 파급력을 중심으로 국악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음악이 현대의 대중적인 청자들에게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인지시키기도 했다.

「범 내려온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온스테이지의 공연 영상은 현재 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중심으로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인 ‘Feel the Rhythm of Korea’의 메인 음악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이날치의 다양한 TV 프로그램 출연 등의 행보는 「범 내려온다」가 가지는 파급력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되는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인지시킨다. 물론 「범 내려온다」가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 된 계기에 대하여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공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범 내려온다」를 유튜브에 검색하면 그 연관검색어로 ‘춤’, ‘안무’와 같은 검색어가 표출된다거나, 그 안무를 중심으로 틱톡 등의 뉴미디어에서 챌린지와 같은 형태의 새로운 즐길 거리로 확장되는 현상은 단지 이날치의 음악이 가지는 매력뿐만 아니라 그 매력을 배가시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안무가 있음을 충분히 증명할만하다.

그렇게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범 내려온다」의 파급력은 단지 그것의 일시적인 관심을 넘어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이 뻗쳐나갈 수 있는 다양한 활로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많은 국악 예술가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2020년에서, 이날치가 선보인 행보는 분명 국악과 한국의 전통 음악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그리고 매력적인 활로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특기할만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다채로운 매력과 성과를 필두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2020년의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큰 성과를 이룩해 낸 그룹임을 나는 분명히 견지할 수 있다. – 양소하

 

The Best Rookie of 2020

추다혜차지스

추다혜 스스로는 무가를 새로운 것으로 가공해낸다거나 하는 목표를 겨냥하지는 않은 것 같다. 외려 <한국연구> 웹진에 실린 플랑크톤 뮤직 김보슬과의 인터뷰에서, 추다혜는 오늘날의 대중음악 연주들과의 대조를 통해 전통음악의 한 부분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어조는 꽤나 단호하다. “전통에 교묘히 감미료를 섞어 맛 좋고 예쁜 것으로 변형시키고 싶지 않다. [……] 그걸 부르는 내 자신의 태도가 그래야 하고, 세련된 척하면 안 된다. 옛 것은 옛 것 자체의 냄새가 나야 한다.” 그러니 기획의 목표를 두고 생각할 때 그녀의 입장은, 전통음악을 “다른 나라의 앞선 음악과 같은 수준”의 “시대에 맞는 음악”으로 변형시키고자 했던 씽씽의 프로듀서 장영규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1 추다혜는 한 작품 안의 두 요소들 각각에 나름의 독립성을 부여하려한 셈이다. 내게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추다혜의 이 같은 입장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추다혜의 노래에 연주가 순응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노래가 연주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새」는 그런 점에서 가장 독특한 곡일 텐데, 이 곡의 후반부에서는 (“주어라”에서부터 김오키의 솔로까지) 가창이 강조되는 부분과 연주가 강조되는 부분이 교차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두 요소들 각각이 자율적이기에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한 편에서는 펑크되, 동시에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 서로 다른 음악 형식들 각각의 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두 형식들을 같은 박자로 이끌어간다는 점에 이들 음악의 개성이 있을 것이다. 고유한 입장과 문제의식을 고유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새로 등장한 음악인들이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일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에서 이 자리에서 이들을 꼽는다. – 조지환

   

──Genre Field──

   

The Best Rock Album of 2020

다브다,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 Self-Released, 2020.06

이미 인트로인 「Light Comes Back」부터 완벽하다. 소리로 영상을 보여주는 듯한 역동성과, 음향적 장치들의 적극적인 활용, 후반부의 폭발적인 질주까지 탁월하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듯 신비하면서도, 생생한 활기로 차 있고, 온기가 감돈다. 그것이 이 앨범이 연출하는 분위기의 커다란 형태다. 그렇다고 물론 이들이 흔히 밝고 따뜻하다고들 하는 코드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무딘」의 화성 진행은 듣기 편하기만 한 그런 진행은 아니다. 이들은 일관된 분위기를 만들어가면서도 곡들의 복잡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양하면서도 급작스러운 리듬 변화에서는 매쓰록으로, 강렬하면서도 유연하게 달리는 기타가 만드는 소리의 벽은 포스트록으로 이끈다. 그 사이를 넓고 자유롭게 오가는 이들의 연주는 꽤 어려운 리듬들 사이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절도를 갖추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격정적이면서도 가뿐하다. 특히나 「Polydream」 등에서 들을 수 있는 드러머 이승현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다. 가사에서는 추억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편안하고 포근한 말들만 늘어놓는 가사는 아니다. 「Journey」에서는 권태를 내비칠 때가 있고 「흔들흔들」에서 초조함을 고백할 때가 있다. 그런 때에도 무료함이나 회한에 삼켜 들어가지 않으며, 도리어 지난날들이 가진 미약한 광채를 바라보려 한다는 것이 이 앨범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추억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더욱 따스하다.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감탄스러운 것은 단지 인트로만이 아니다.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은 모든 곡에 최고의 연주가 녹음되어 있는 앨범이며, 그 뿐 아니라 곡들의 노랫말이 모두 통일적으로 묶여 하나의 정서적 태도를 제시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 조지환

 

The Best Rock Track of 2020

실리카겔, 「Kyo181」, 붕가붕가레코드, 2020.08

2017년 11월 『SiO2.nH2O』를 발매하고 멤버들의 군입대를 위해 도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2년 6개월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2년 6개월의 공백이 무색하게도 훨씬 발전해있었다. 본 트랙의 시작부터 잔뜩 변조된 소리가 흘러나오며 긴장감을 주더니, 김한주의 보컬 퍼포먼스와 함께 모든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하며 상승되어있던 긴장감을 순식간에 이완시킨다. 김한주의 노랫말은 단순하다. “Kyo”라고 불리는 의문의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들은 모두 여섯 글자라는 형식 안에서 맴돈다. 그러나 김한주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던져지는 “Kyo야 복수를 꿈꿨니, “Kyo야 사랑을 해봤니, “Kyo야 날 만져보았니와 같은 의미심장한 질문들은 “Kyo”에 대한 우리들의 궁금증을 자극함과 동시에 다시금 긴장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본 트랙은 그러한 긴장의 상승과 이완의 반복으로만 구성된 트랙이 아니다. 단출한 노랫말과 그로 인한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을 황홀한 연주가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꿔가며 싸고돈다. 그 덕에 우리는 본 트랙을 감상하면서 긴장된 상태와 넋을 놓은, 한껏 이완된 상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트랙의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나아가는 전개는 본 트랙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보컬이 멈추고 그 자리를 강직한 신스 전자음이 메우며, 기존에 보컬을 싸고돌던 연주의 틈 사이를 비집고 나와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이윽고 단순한 드럼과 기타만이 남아 소리의 쌓임이 약해지는데, 그러한 약화는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효과를 줄 것이다. 그 위로 김한주의 목소리가 새겨지고, 이내 본 트랙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강렬한 연주가 우리에게 찾아온다. 다시 김한주의 목소리가 퇴장하고, 김민수의 쨍한 기타 솔로가 다른 모든 연주들을 진두지휘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본 트랙 내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았다. 기승전결이 잘 짜인 스토리를 담은 뮤직비디오 역시 본 트랙을 즐길 수 있을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될 것이다. 실리카겔의 복귀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까지 완성도 높은 음악을 복귀작으로 내놓을 줄을 가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본 트랙, 「Kyo181」을 2020년 올해 최고의 트랙 중 하나로 기억하고 싶다. – coloringCYAN

  • 본고는 coloringCYAN 필진의 이전 리뷰에서 발췌한 글임을 알립니다.
 

The Best Rap/Hiphop Album of 2020

Omega Sapien, 『Garlic』, Balming Tiger, 2020.09

전자음악의 기법이 힙합의 문법 아래에 편입되는 일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2년 급작스럽게 Paris로 날아갔던 Kanye West가 『Yeezus』(2013)를 발매하는 통에 그 흐름에 속도가 붙었다. 물론 그러한 흐름을 되짚어볼 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앨범들이 더 있을 것이다―가령 Death Grips의 『The Money Store』(2012)나 Run The Jewels의 『Run The Jewels』(2013) 등이 그렇다. 하지만 『Yeezus』가 만들어낸 파장은 특히나 결이 달랐다. Hudson Mohawke, Arca, Daft Punk 등 온전히 전자음악의 영역을 자신의 지평으로 삼는 이들이 참여했음은 물론이고, 윤색을 더하기 위해 여러 요소를 제거하는 동시에 음압 전쟁의 시대에 미니멀리즘의 역설을 설명하는 등 모든 면에서 직관에 반했던 움직임이 그 이유였다. 당시 총괄 프로듀서로 함께 했던 Rick Rubin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이 앨범이 완성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원대한 꿈을 안고 도전에 나섰지만,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커다란 깃발을 꽂은 이는 철저하게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던 Kanye West였고, 그를 기점으로 오늘날 힙합에서의 소리는 또 다른 무기를 얻게 되었다.

이토록 극단적인 성공 사례가 한 번 나와버리니 그것으로 관심이 쏠렸던 것은 당연했을 테고, A$AP Rocky, Vince Staples와 같은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그러한 흐름 한가운데에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 도전을 향한 초대장은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 한국에도 날아왔으며, 초대장을 받아든 이들은 새로운 문법을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그리고 아주 깊이 탐구하여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를 시도했다. 『KYOMI』(2016)의 XXX, 『ㅂㅂ』(2017)의 TFO 그리고 『Entertain』(2018)의 이수호와 같은 이들이 그들이었고, 그들은 한국힙합을 자신의 지평으로 삼는 이들에게 다양한 선택지와 넓은 시야를 제공했다. Omega Sapien 역시 이수호, 전광재, 수민, NET GALA 등 많은 이들의 조력에 힘입어 본작 『Garlic』을 통해 그들의 행렬에 참여하려 한다. UK 베이스를 토대로 베이스 라인과 탑 라인이 서로를 날카롭게 위협하는 「i p t i m e」, 고막을 강하게 짓누르는, 글라이드를 한껏 먹인 베이스와 우리의 신경을 거스르는 한 줄의 사각파(Sqaure-Wave) 신스, 변조된 목소리가 난무하는 「Chu Chu」부터 그러한 의중을 명확하게 밝힌다. 이후의 「Ah! Ego」와 「Happycore」의 소리 역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고, 디컨스트럭티드―Deconstructed―의 소리가 NET GALA의 프로덕션 아래 힙합의 문법이라는 잘 짜인 틀 속에 마련되는 장면을 엿볼 수 있는 「WWE」도 그런 면에서 특기할만한 트랙일 것이다.

이렇듯 전자음악의 다양한 소리가 힙합이라는 문법 아래에 비교적 엄격하게 편입되는 과정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다만 Omega Sapien은 그러한 소리를 담은 본작에서 고려된 사안이 전자음악 기법의 수입이 아니라 대안적인 성격의 K-Pop 즉, Alternative-K-Pop으로의 진취라고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일단 그가 K-Pop이라는 영역을 전자음악의 소리를 빌려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의 문화임을 자처하는 Pop의 영역이라는 좁은 의미로서 이해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본다. 그렇다면 앞서 설명한 소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그가 발휘한 탐구심을 통해 K-Pop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도 타 아티스트보다 한 걸음 앞에 있는 그의 모습을 우리가 연상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전개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보다 더 대안적인―Alternative―성격에 가까울 것이라고 본인이 굳이 일컬음은 아마 “K”라는 접두어를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일정 부분 거부한 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단서를 가사를 통해 찾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본작의 가사 대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본작에서 한국어 가사가 유의미할 지점은 딱 두 군데로, 「Ah! Ego」의 “너가 뭐라 하던 나는 정말 신경 안 써”“너가 나를 싫어해서 너가 진짜 미워” 사이의 모순이 감지되는 지점, 그리고 「Happycore」에서 “Power, Fame, 이것들은 당신의 행복의 전부가 아닙니다!”라는 Omega Sapien의 설파가 이뤄지는 지점이다. 두 지점은―그의 말에 의하면―자전적일 본작을 독해하는 데에 한국인 청자인 우리가 반드시 집중하게 될 그것이며, 그렇게 우리의 일차적인 독해는 그의 복합적이고 다소간에 입체적인 자의식 그리고 난립하는 상념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그랬듯, 일반적으로 영미권의 음악을 마주할 때처럼 본작을 독해하기 위해서 수많은 영어 가사들을 해석하는 것이 먼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몇 없는 한국어 가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나쁘게 말해서는 기만적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그래서 대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본작을 Alternative-K-Pop이 아닌 랩/힙합 앨범으로서 다루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간단하다. 하나는 coloringCYAN이 일전에 기고한 글에서 말했던, 일종의 넓은 의미로서의 K-Pop에 Omega Sapien이 부합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더구나 나는 해외에서 K-Pop의 영역을 인식하고 규정짓는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고 여긴다. 다른 하나는 여러 대목에서 그의 퍼포먼스가 일차적으로 힙합의 문법에 발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i p t i m e」과 「Chu Chu」같은 트랙에서의 고전적인 각운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발음이나, 「Happycore」 후반부에서의 탑 라인이 배제된 형식의 노랫말, 「Fireworks」와 「Serenade for Mrs.Jeon」에서의 클라우드-랩 등에서 기원한 랩에서의 그루브 등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본작을 랩/힙합 앨범으로 이해하고, 그렇기에 갖는 의미를 가늠해본다―만일 그의 퍼포먼스가 랩이고, 본작의 소리가 한국힙합에서 처음 있는 시도가 아니라면, 랩을 위한, 랩에 어울리는 프로덕션과 힙합을 지평으로 삼는 이들의 진취적 움직임은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겠는가? 다만 이 질문에는 나조차도 쉽사리 답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만큼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이야기이다. 그 대신 내가 하나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전자음악과 힙합의 접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근 몇 년간의 시도들과 함께 본작이 중요한 이정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 XENITH

 

The Best Rap/Hiphop Track of 2020

Swervy, 「파랑」, Hi-Lite Records, 2020.05

「파랑」은 감정을 단정하고 말끔하게 다루는 노래가 아니다. 그렇다고 「파랑」의 감정이 그저 피상적인 자존감이나 우울감으로 환원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는 것도 아니다. 「파랑」은 치열한 분투 중의 복잡한 감정을, 감추듯이 드러낸다. “나는 상처받을 리가 없네”는 동요 없는 강인함을 서술하는 듯하지만, 바로 그 뒤의 “나는 울 수 있을 리가 없네”에서 읽히는 함축은 조금 더 혼란스럽다. 그것은 상처 없이 견딜 수 있다는 의연함보다는, 상처에 괴로워하는 기색을 허용하지 않는,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 대한 호소로 읽힌다. 그것은 말하는 이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엄격함(“내 청바지는 Junya Watanabe …… 내가 이 fit에 얼마를 썼는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 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너희들이 상처받지 못하게 난 그냥 죽은 척 치장을 해”) 비난들(“그들이 … 날 물어 죽이려 할 때”)을 견뎌내는 일은, 때때로, 나를 걱정하며 함께 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괴로운 시간들을 더 숨 막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시간들 속에서 버틸 힘을 주기도 한다. 벌스의 마지막에서 “사랑을 보답해야 한다니까”라고 적으면서, 「파랑」의 가사는 스스로에게 울 여유를 허락지 않았던 바로 그 이유들에서부터 다시 힘과 격려를 구하는 강인함을 다시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이 모든 관점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모두의 기준에 맞추기엔 내 몸은 아직 너무 작기만 해”) 생산적인 태도 정립으로 적히기도 한다.

「파랑」은 많이 말하지 않는다. 중언부언 장식들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스월비는 말을 줄이면서도 감정들의 복잡한 운동을 중층적으로 표현하는 기예를 갖춘 MC다. 이 트랙 후반부의 격정적인 연주는 짧게 제시된 가사의 치열함을 더욱 벅차오르게 전달한다. – 조지환

 

The Best R&B/Soul Album of 2020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Self-Released, 2020.05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 <온음> 일동이 추다혜차지스의 본작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를 올해 최고의 R&B/Soul 앨범으로 꼽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요구되지 않았다.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만장일치였다. 그것은 본작이 나를 포함한 우리 <온음> 일동 전원에게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는 방증이기도 하거니와, 추다혜차지스가 본작을 통해 자신들의 의중을 근사하고 멋있게 담아내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할 것이다. 첫 트랙 「undo」에서의 “여봐라”라고 외치는 추다혜의 모습 뒤로 강렬한 락의 연주가 진행되는 순간부터 그렇다. 추다혜의 목소리에는 영험함이 아로새겨져 있고, 차지스의 연주에는 예측을 불허하는 놀라움이 담겨있었다. 이미 본작의 첫 순간부터 내가 당산나무 아래로 끌려가는 것은 불가항력의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잠깐, 당산나무가 무엇인가. 당산나무는 마을의 수호령이 깃들었다 여겨지는 수호수―守戶樹―로서 신격화되는 나무임과 동시에 굿판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undo」에서의 영험함과 놀라움을 따라 굿판으로 향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부터 특별한 대목인 것이다. 지금껏 국악과 양악의 조화를 선보인 이들이 무속 음악 즉, 무가―巫歌―를 빌리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가를 빌려 근래 국악-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이들의 시도와는 다른 것을 우리에게 선보이려 한다. 무당 방울의 소리, 기타의 사이키델릭한 연주가 돋보이는 「비나수+」에서 그들은 현장성이라는 무가의 특성을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 “하연다년 경자년―2020년―이옵고 달에나 월색은 3월달요,”라는 말로서 구현하여, 자신들의 음악이 본작에 잘 녹아날 수 있도록 소원하는 동시에 “부귀공명 열어주구 아리질병 근심우환걱정 다 시기눌제”라는 말로서 그들이 굿을 하는 대상이 우리 모두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궁아궁아 대천궁아”로 시작되는 추다혜의 서도 창법에서 기원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대단한 힘을 지니며, 「오늘날에야」에서의 “굿패키지로 정성 올려”하는 모습과 함께 평안도 굿을 그야말로 제대로 체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피안도 서낭굿으로 신맞이를 하고, 제주도 영등굿으로 부정을 씻어, 황해도 재수굿으로 명과 복을 빌고”라는 「비나수+」의 가사, 그리고 “부정이 많다 부정을 씻자 새도림으로 부정을 씻자”라는 「오늘날에야」의 가사에서 드러나듯, 「사는새」부터는 제주도의 굿에서 기원한 선율을 들려준다. 쫓아내야 할 새들의 이름을 읊으며 3박자의 재즈 연주로 빌드업을 쌓다가 점진적으로 펑크―Funk―락의 색채가 더해지더니, “주어라 훨쭉 훨쭉 훨짱”이라는 추다혜의 마지막 외침을 뒤로 김오키의 근사한 색소폰 연주가 합세하며 감흥을 더한다. 우리의 감상이 한껏 높아졌을 때 그들은 「unravel」을 통해 능숙한 완급조절을 보여주고, 본작의 하이라이트인 「리츄얼댄스」로 향한다. 흥겨운 펑크 리듬을 바탕으로 서우젯소리에서 기원한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우리는 그들과 하나가 되어 신명 나게 춤을 추게 된다. “요왕 놀면 선왕도 놀고 선왕님 놀며는 여러분도 논다”라고 말하듯 그들은 우리가 모두 한데 모여 춤을 추며 즐기기를 권하는 것이다.

신도 모셨고, 부정도 씻은 그들은 우리 모두와 함께 명복을 빌기 위해 신나게 춤을 추며 황해도로 향한다. 레게 연주와 자그마한 전자음이 겹쳐있는 스네어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에허리쑹거야」의 감상도 특별할 것이지만, 나는 「차지S차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거의 모든 가사가 창작된 것으로 이루어진 「차지S차지」의 전반부는 5-5-6-5박자라는 특이한 구조로 진행되는데, “다 지나가요 다 지나가요 힘듦 설움 아픔도 다 지나가요”라는 가사는 COVID-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본의 아니게 본작 내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게 된 셈이다. 4박자의 레게 연주로 변주가 진행된 후에 그녀는 명복이 우리 “모두의 차지”일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본작의 핵심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명확하게 가리킨다. “무가에는 누군가를 위한 ‘치유’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음악이 개개인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고 그것이 즐거움과 안정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이 예술로서 무가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추다혜는 말한다.

「에허리쑹거야」의 리믹스 트랙 격인 「복Dub」을 마지막으로 하나의 멋들어진 굿판-순회공연은 막을 내린다. 나는, 그리고 본작을 감상한 우리는 어쩌면 그동안 있지 않았던 작품을 감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재즈, 사이키델릭, 펑크, 락, 레게 등의 요소가 무가가 지닌 정서, 분위기와 함께 호흡하는, 그리고 추다혜의 목소리가 작품의 완성도를 보증하는 신기한 광경을 우리는 목도하고야 말았다. 추다혜차지스가 본작의 소리를 “펑쿳(Funk+굿)”이라고 자칭했듯이,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이름의 장르-명을 생각해 내어 가장 윗부분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기를 시도하겠지만, 사실 본작이 주는 대단한 감흥과 잔향 앞에서 그런 일은 필요성이 흐릿해진다. 본작은 그저, 놀랍고 화려하며, 흥겨움과 동시에 가슴 뛰는 순간들로 그득할 뿐이고,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이 본작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순간들을 엿본 나는, 본작이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별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자 한다. 추다혜차지스는, 아주 굉장한 일을 해냈다. – XENITH

 

The Best R&B/Soul Track of 2020

안다영, 「지문」, Self-Released, 2020.06

“그러려나요?” 뒤에 오는, 부풀어 오른 듯한 음색의 리프 프레이즈가 특징적이다. 곡의 변화들은 이 프레이즈의 반복과 함께 일어난다. 이 프레이즈가 두 번째로 나올 때는 그에 더불어 보컬 후렴이 나오며, 그 다음에는 더 경쾌하고 바쁜 비트와 함께 다시 오며, 마지막으로는 안다영이 저 프레이즈를 따라 부르는 식으로, 되풀이는 점진적인 역동성이 펼쳐지는 무대가 된다. 저 프레이즈는 다시 찾아올 때마다 갈수록 들떠가는 듯 보이는데, 특히나 밝고 화려한 음색으로 연출되는 세 번째 반복에서가 그렇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같은 리프를 따라 노래할 때를 빼면, 안다영의 목소리는 좀체 들뜨지 않는다. 가령, “땅 끝에 도착해본 적 있어요?”에서부터 베이스가 빨라질 때에도, 보컬은 박자를 끊는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급해지지는 않는다. 조금 조심스러워하는 듯한 어조의 노랫말에 맞춰, 그녀의 목소리는 대체로 널뛰지 않으며, 이는 가장 화려한 간주 뒤에서 특히나 도드라지게 그렇다. 그러므로 이 곡의 개성은 이면적인데, 벌스들 사이에서 터지듯 부풀어 오르는 리프 프레이즈와, 보컬과 노랫말의 머뭇거리는 듯한 차분함이 그 두 얼굴이다. 그 둘 사이의 대조가, 지문(혹은 손)과 오늘에 가까이 붙어있고자 하는 (만지려거나, 잠그고 가둬두려는) 소망과 요구를 따라 그려지는 이 노래의 공간을 긴장시킨다. 지문 또는 오늘과 나 사이에는 여전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가,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지는 않은 그런 거리가 남아 있는 듯 들린다. 왜냐하면 「지문」은 그저 들뜨며 만족하는 노래만도, 그저 힘없이 가라앉는 노래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려나요?”는 만족과 불만족 모두를 유예시키고, 둘 모두를 동등하게 같은 것으로 유지시키는 장치로 읽힌다. 저 물음이, 언뜻 단언처럼 말해지는 “우린 아무도 아닐 거야”를 곧바로 불확정적인 말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연주와 가창-가사가 교차하며 만드는 이 노래의 양면성에, 물음을 던짐으로써 도리어 답이 내려지는 순간을 뒤로 미루는 가사만의 양면성이 조응한다. 지나보내기 싫은 하루를, 또는 잡은 적 없는 것만 같은 손을 붙잡고 있으려는 마음들에 들어차있을 법한 그런 미묘함이다. – 조지환

 

The Best Electronic Album of 2020

송영남, 『Worldless』, Self-Released, 2019.12

조지환의 말대로, 앰비언트는 그저 조용한 음악들을 묶어놓기 위해 마련된 팻말은 아닐 것이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앰비언트―Ambient―라는 형용사의 사전적 정의 덕분에 꽤 명확할지도 모른다. 앰비언트의 선구자 격 인물인 Brian Eno는 “흥미로운 만큼 무시될 수도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자신의 앨범인 『Ambient 1 : Music For Airports(1978)』의 라이너 노트에 남겨놓았고, 그 앨범에서 들려주던 단출한 선율과 낮은 볼륨, 소리가 갖는 긴 호흡과 같은 요소들은 오랜 기간 앰비언트의 주된 철칙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조지환이 그랬듯 나 역시 현대에 와서 앰비언트라는 단어가 조금은 넓은 의미로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데, Pitchfork에서 2016년에 기고한 앰비언트를 소개하는 글에서의 문장과 맥락을 함께하기에 옮겨본다―이제 “앰비언트”는 춤추기 위한 음악에서부터 거친 소음을 다루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음악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이 말은 곧, 현재 앰비언트라고 규정되는 영역 내에서 Brian Eno가 주장했던 “흥미로운 만큼 무시될 수도 있는” 소리를 여전히 다루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흥미롭기에 무시될 수 없는” 소리, 혹은 그러한 스펙트럼의 중간 어딘가의 소리 역시 다뤄지고 있다는 말로 변환될 수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넓고 느슨한 정의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령 Aphex Twin의 디스코그래피는 앰비언트의 정의가 변화하던 과정을 보여주는 적실한 증거가 될 것이며, Oneohtrix Point Never의 경우는 극단적이지만 그렇기에 현재의 앰비언트를 논함에 있어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Brian Eno의 방법론을 최대한 이어가려는 이들도 조금은 다른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본명을 쓰는 Nicolas Jaar나 Grouper, Tim Hecker와 같은 이들이 그런 부류일 텐데, 그들은 대개 자신의 소리가 조용함과 시끄러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기를 지향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는 볼륨, 질감, 인상 그 어떠한 척도를 갖다 대더라도 그 정도가 심히 모호한 탓에, 흥미로운 만큼 무시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흥미롭기에 무시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다소 혼종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그런 소리가 호흡마저 길고 음고의 변화가 아주 크지 않음과 동시에, 우리가 있는 공간을 가득 메우는 무언가이기도 한 이유로 때로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며 무서운 소리로 전환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서론은 이쯤 해두고, 나는 Song youngnam(이하 송영남)의 본작 『Worldless』가 그러한 소리를 담은 앰비언트 작품이라고 이해한다. 「In and Out」과 「Near and Far」에서의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자유롭게 오가는 형태로 구성된 드론부터가 본작에서 앞으로 들릴 소리의 전형을 시사하는 것과도 같다―그것은 낮은 볼륨과 단출한 구성 등 모종의 이유로 인해 무시될 수 있는 것처럼 들리다가도, 우리의 역치를 건드리는 순간 불편함과 음산함 등의 감상으로 나아가며 무시될 수 없는 것이 되는, 심히 이상한 소리이다. 「We Prefer Group A」와 「Repetition of Pattern」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소리―가령 첼로의 Portamento 연주라던지―가 반복적으로 연주되며 우리의 감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시간에 따라 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소리가 우리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본작의 소리가 다들 비슷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다. 트랙 간의 통일성이 소위 동어반복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인데, 하지만 송영남은 우리가 어떠한 트랙에서라도 비슷한 감상을 가져가기를 종용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럴 수 있는 이유는 후술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Multiples of A」를 본작의 하이라이트로 꼽는다. 음고와 질감이 다른 두 줄의 기묘한 드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피아노 소리가 긴 호흡을 가져가며 알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긴장감이 한껏 고조될 즈음 그것이 풀어지나 싶지만, 그 자체로 무시될 수 없는 소리로 기능하는 기이한 선율의 피아노 소리가 들리며 트랙이 마무리된다. 단 세 개의 소리를 통해 초기 앰비언트의 작법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무시될 수 없는” 소리로 조직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름 끼치고 불편한 경험이 될 수 있는지 가장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라고 나는 여긴다.

나는 초기에, 나의 감상을 송영남이 제시한 제작 의도와 결부 짓기를 시도했다. 송영남이 제시한 것은 개인 간의 다름을 판가름하는 지표인 틈을 다루는 인간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그 안에서는 사회의 범위가 너무나 큰 나머지 그 틈이라는 개념은 간과된 모양이었고, 틈 너머에 있는 이를 자처하는 송영남은 “Group A”에 속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본작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나는 독해했다. 생각해보라. 우리의 사회가 틈이 존재함을 무시하는, 개인의 보호와 다름의 지표가 없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삭막할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송영남은, 본작에서의 소리가 하나같이 불편하게 들리기를 우리에게 요구한 것일 테고, 그래서 나는 더 이상의 추상적인 독해를 포기했으며, 본작의 소리가 무시될 수 없는 두려움을 얼마나 내포하고 있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본작이 인상적인 앰비언트 앨범이라고 생각하며, 본작을 올해 최고의 Electronic 앨범으로 선정하고자 한다. – XENITH

 

The Best Electronic Track of 2020

Wona, 「When I Was Dead」, NBDKNW, 2020.09

Wona의 『Thanatoid Butterfly』의 본 트랙, 「When I Was Dead」가 앨범 소개글에 적혀있던 것처럼 “죽음에 대한 동경을 반추”하는 트랙이라면, 본 트랙은 그 제목부터 죽음에 대한 동경을 열어젖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통틀어 ‘죽어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 트랙의 제목은 그 자체로 우리의 모든 경험과 모순된다. 그러나 Wona는 마치 자신이 ‘죽어보았던’ 사람인 것처럼 담담하게 본 트랙의 시작을 알린다. “When I Was Dead”라는 나지막한 읊조림이 그렇다. 그렇게 본 트랙의 시작은 작게 일렁이거나 반짝거린다는 인상을 주는 소리와 Wona의 읊조림으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그녀가 진실로 ‘죽어보았다면’ 그녀가 거기서 목도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을 꾸고, 그 꿈에서 그녀는 얼어붙은 바다와 다 타버린 숲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죽음의 경험이 삶의 언어로 술회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그녀는 단지 꿈을 꾸고, 그 꿈속에서 꿈을 꾸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꿈속의 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바로 그런 것이고, 그래서 죽음은 곧 동경의 대상이 된다.

나는 그녀의 자신이 죽어보았다는 읊조림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 트랙이 보여주는 풍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첫 읊조림 이후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복잡한 타악기 리듬, 불길한 신시사이저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글리치까지 많은 소리들이 불길함과 불안함을 조성한다. 이후 정형화된 킥의 위로 노이즈와 신시사이저가 종종 치고들어오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콰이어 신스는 죽음의 장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다시 첫 물음으로 돌아와보자. 죽음을 동경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죽음을 삶의 부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를 동경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에 짙게 덮인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본 트랙은 어째서 그녀가 죽음을 동경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동경은 본 트랙에 있어 하나의 맥거핀이 될 것이다. 대신 우리는 Wona가 선보이는 소리들의 움직임을 보며 생각할 수 있다. 내리꽂히는 스네어와 리듬과 어긋나는 퍼커션, 그리고 불길한 신시사이저의 반복 등을 보다가 마지막에 우리를 내리누르는 저음에 깔리면서, 그녀가 동경하는 죽음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본 트랙과 함께 우리는 어느새, 마치 그녀와 같이 죽음에 대해 떠올리고, 그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우리의 삶에 대한 떠올림도 될 것이다. 쉬이 잊히지 않는 트랙이다. – coloringCYAN

 

The Best Folk Album of 2020

정밀아, 『청파소나타』, 금반지레코드, 2020.10

조지환의 말처럼 정말 말이 많은 앨범이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등장하는 순간을 찾는 것보다 말이 등장하지 않는 순간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이다. 게다가 그 말은 주로 음악의 중심에 위치한다. 「광장」이나 「오래된 동네」, 「춥지 않은 겨울 밤」의 경우에는 보다 많은 소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트랙에서는 기타와 정밀아의 목소리, 둘만이 오롯이 존재하며, 그 와중에도 기타 소리는 대부분 그의 목소리를 받쳐주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그렇게도 많은 말이 오가는 앨범이지만, 그럼에도 그 말이 거슬리거나 귀찮은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지나치게 많은 단어와 문장이 쏟아지는 앨범의 러닝 타임 중에서도, 그 모든 한마디 한마디는 그마다의 감상을 남긴다. 때로는 편안하게 대화하듯 말을 걸때도(「서울역에서 출발」), 혹은 온정 깊은 말을 건네거나(「환란일기」), 보다 무겁고 진중한 말을 건넬 때도(「오래된 동네」) 그 이야기를 꾸며내는 모든 노랫말은 청자에게 부드럽게 다가온다. 끊임없는 말과 말의 사이에서 부드러움과 섬세함으로 청자를 지루하지 않게, 혹은 지치지 않게 만드는 정밀아의 역량은 앨범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남영역부터 서울역을 둘러싸고 있는 청파동에서의 일기는 어쩌면 우리와 먼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들을 우리와 가까운 곳으로 데려온다. 정밀아가 스스로 언급했듯 『청파소나타』는 청파동의 여러 소리들을 채집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혹은 청파동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정밀아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다. 걱정 어린 어머니의 질문에 조곤조곤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서울역에서 출발」은 그 안에 가득한 일상적인 이야기와 가볍고 위트 있는 말들로 우리를 그 이야기 속으로 몰두하게 만든다. 또한 「언니」와 같은 트랙 역시 마찬가지로, 특정 대상에게 정밀아가 건네는 말들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그것이 결말에 이르러 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말들로 마무리된다는 것에 우리는 보다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집중하게 된다. 혹은 조금 더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는 트랙들을 살펴보자. 조지환의 말처럼 두 가지 광장이 공존하는 「광장」에서는, 그 사운드 스케이프로 보다 거대한 공간을 그려내는 첫 번째 광장과 보다 이상적인 공간으로서 일말의 희망을 남겨놓는 두 번째 광장을 한 트랙 안에 자리해둔다. 「오래된 동네」에서는 조금은 비판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흔히 지켜보았을만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진중한 목소리를 내어 청자를 향해 간단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은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도 정밀아의 목소리는 절대 비장해진다거나 과장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며, 그렇기에 청자는 그 많은 말을 듣고 있음에도 절대 지치거나 지겨워지지 않는다. 글의 처음에서 말한 ‘정말 말이 많은 앨범’임에도 『청파소나타』를 듣는 내내 우리가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에는 정밀아가 모든 말을 함에 있어서 조금도 과장을 보태거나 비장해지지 않으며, 이를 편안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안하게 말을 걸어오는 정밀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과 위로 역시 받을 수 있게 된다. ‘어른’이라는 낱말에 의미에 대해 간단하게 탐구하며 그것이 삶과 연결되는 「어른」의 이야기 속에서도, 세상을 덮친 재난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희망을 담고 있는 「환란일기」속에서도, 사려 깊은 문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한 「서시」, 「바다 ii」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를 통한 희망과 안식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편안함을 위시한 감정은 정밀아의 안정적인 목소리에서 나온다. 혹은 그 목소리로 전달하는 이야기에서 나온다.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밀아의 목소리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 편안함과 안정감으로부터 우리는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위로와 희망이라는 거대하고도 엄청난 감정을 선사하는 작품으로써, 또 그 모든 이야기의 재미를 빼놓지 않은 채 청자에게 위트 있게 다가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으로써 『청파소나타』는 지난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상을 준 작품으로 남는다. – 양소하

 

The Best Folk Track of 2020

이랑, 「환란의 세대」, 스윗드림프레스/헬리콥터레코즈, 2020.06

2015년 11월, 이랑은 <신곡의 방> 프로젝트의 마지막으로 「환란의 세대」를 제출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의 위로 이랑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가 iPhone으로 녹음한 목소리가 겹쳐 들리고, 그 목소리를 통해 이랑이 노래하는 것은 하나의 유토피아다. 일도 안 해도 되고, 돈도 없어도 되고라는 모두의 바람, 울지 않아도 되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라는 모두의 기억 한 편을 자극하는 말들. 그녀의 바람은 점점 더 깊숙하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가령 목도 안 메도 되고, 불에 안타도 되고, 물에 안 빠져도 되고,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 약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안 먹어도 되고와 같은 부분이 그렇다. 그녀의 바람은 곧 그녀의 현재, 우리 모두의 현재를 조명하는 것만 같다. 간단하다, 그녀가 외친 노랫말들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된다. ‘일을 해야 하고, 돈이 필요하고, 울 일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목을 메고 불에 타오르며 물속에 잠겨 손목을 긋고, 약도 한꺼번에 입에 털어넣어야 하는’, 그렇지 않고서야 차마 버틸 수가 없는 현재는 그녀가 바라는 유토피아와는 멀리 동떨어져있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의 바람이 우리가 먼저 죽게 되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지금 그녀가 놓인 현실에서는 그러한 바람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2015년 당시 대한민국은 ‘헬조선’ 논의 아래에서 모든 이들에게 패배주의가 짙게 드리웠던 시절이다. 이랑은 그녀의 그러한 노랫말을 바탕으로 당시 ‘헬조선’ 논의를 깔끔하게 요약한다. 이른바 「환란의 세대」인 것이다.

2020년 6월, 「환란의 세대」는 ‘아는언니들’과의 합작의 형태로 다시금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뀐 점은 꽤 많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만 이루어져있던 소리는 다양한 악기들이 추가되며 그 스케일이 확장되었고, 트랙 분위기의 중심을 잡는 이랑의 음색도 미묘하게 변하였다. 그 외에도 이랑이 녹음한 목소리를 백-보컬로 사용했던 2015년의 「환란의 세대」와 달리 2020년의 「환란의 세대」에는 아는언니들의 콰이어 보컬이 백-보컬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트랙은 보다 풍성해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랑의 노랫말이 그렇다. 그녀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바란다. 일도 안 해도 되고 돈도 없어도 되는, 울지 않아도 되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손목을 긋지도, 약을 한 번에 털어넣지 않아도 되는 그런 유토피아를 바란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헬조선’이고, 여전히 「환란의 세대」에 있다는 것이 이랑의 진단일 것이다.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다는 본 트랙의 첫 소절이 유독 더 슬프게 들리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트랙의 마지막은 특기할만한 요소이다. 이랑이 자신의 바람들을 이야기하며 트랙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며 점점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아는언니들의 합창은 점점 비명으로 변한다. 그 비명은 과연 어떠한 비명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의 비명인가? 그런데 분명 이들은 바로 전에 죽음의 이후를 상상하며 “너무 좋다”, “깔끔하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바란다기보다는 삶이 죽음보다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 이랑의 통찰은 2020년까지도 유효했고, 날카로웠다. – coloringCYAN

 

The Best Pop Album of 2020

김뜻돌, 『꿈에서 걸려온 전화』, Self-Released, 2020.09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 했었던가, 김뜻돌의 음악은 말 그대로 다양한 뜻이 담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의 데뷔 앨범인 『꿈에서 걸려온 전화』는 섬세한 아트 팝부터 몽환적인 드림 팝, 강렬한 록의 사운드까지 다양한 소리와 함께 이를 뒤덮는 뜻깊은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애초에 꿈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간다. 첫 트랙인 「꿈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김뜻돌은 ‘너’의 꿈속으로 몰래 들어가 작은 위로를 남긴다. 이후의 「이름이 없는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로, 꿈결 같은 문장들이 어지럽혀진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너’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며, 「나빗가루」에서 역시 꽤나 섬세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너’를 향해 자신의 걱정스러운 한 마디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다시 한 번 표현한다. 하지만 모든 꿈이 그렇듯, 작품 속에서 이야기는 뒤죽박죽하게 섞여간다. 「작은 종말」은 인간에 비해 절대적으로 거대한 바다와, 달과, 태양의 이야기로 말을 시작해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거대한 존재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서우 다투고, 후회하고, 사랑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문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김뜻돌의 사과와, 화해와, 걱정과 위로의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꿈에서 걸려온 전화』의 초반부에서 우리는 계속되는 따듯한 위로와 걱정과 화해와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 찬다.

하지만 「아참,」에 들어 더욱 쾌활해진 분위기는 새로운 꿈의 전개를 예상케 한다. 앞서 걱정과 위로를 선물했던 ‘너’에게 이제는 훈계를 제시하는 「아참,」을 지나, 「보물찾기」에 들어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로 넘어온다. 보다 꿈같이 난잡하고 모호한 문장으로 가득하던 앞선 트랙들에 비해 「보물찾기」에는 유쾌하고 활발한 ‘나’의 소감들이 가득하고, 이는 앞선 트랙인 「아참,」과 비슷한 시선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트랙으로 남도록 한다. 하지만 다시 「성큼성큼」에 들어 우리는 모호한 말들과 함께 다시금 꿈속으로 빠져든다. 툭 내뱉는 한 단어와, 그와 연결되는 문장들의 나열을 통해 꿈의 깊은 곳까지 빠져든 우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급작스런 기상을 맞이한다. 단연 앨범의 하이라이트인 「삐뽀삐뽀」는 상쾌하면서도 강렬한 록 사운드를 바탕으로, 김뜻돌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정수를 담아낸 노랫말로 가득하다. 자신의 죽음, 혹은 꿈에서의 비극적인 일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이 순간에도, 그 비극이 그 어떠한 것과도 치환되지 않는, 곧 비극이 비극으로 받아들여지며 그럼에도 그 비극을 너무 슬프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그러한 김뜻돌의 노랫말을 우리는 조금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 있나요」로 연장되는 감정의 선과 「샤워를 해야 해」를 통해 말끔하게 씻어지는 앞선 꿈같은 이야기들의 희미해짐을 통해 마무리된다.

그렇게 꿈같은, 혹은 꿈속 깊이 들어갔다가도 곧바로 꿈에서 깨어버리고 마는 이야기의 흐름이 담겨 있는 『꿈에서 걸려온 전화』가 선사하는 최종적인 이야기는 결국 위로와 사랑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은 직설적이고 쾌활하더라도(「아참,」), 혹은 보다 ‘너’를 향한 위로를 강력하게 내밀거나(「꿈에서 걸려온 전화」), 나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는 것이더라도(「삐뽀삐뽀」), 또는 완전히 다른 사물에 투영하여 우화적으로 전달하더라도(「작은 종말」) 그 안에는 모두 화자와 청자를 향한 위로와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는 2020년에 들어 모두가 느꼈던 힘듦과 고된 삶에 대한 충분한 위로와 사랑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이야기와 다채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가득 담겨 있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매력적인 요소로 뒤덮인 채 선사했던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는 김뜻돌이라는 아티스트의 이름처럼,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뜻깊게 다가왔다. – 양소하

 

The Best Pop Track of 2020

백예린, 「Square (2017)」, 블루바이닐, 2019.12

Korg사의 Kronos 신시사이저, 기타와 베이스, 활기찬 드럼의 연주가 한 번에 밀려오는 도입부부터 백예린의 「Square (2017)」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들은 트랙이 진행되는 내도록 우리와 함께하며 어떠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를 시도한다. 본 트랙에서 소리는 공간에 종속된 객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공간을 이끌 수 있는 주체가 되어 하나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그런 고로 우리가 본 트랙의 소리에서 창문을 통해 비치는 따스한 햇살이나 어두운 방 안을 수놓는 자그마한 불빛들을 연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상하는 공간이 어떠한 형태이든, 그 공간은 필히 따뜻하고 포근한 인상을 남길 것이고, 또 그 공간 한가운데에는 백예린이 마이크 앞에 선 채 우리와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줄 것을, 스스로 흠결을 내보이며 노래한다. “난 강한 사람이 아니야… 나도 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것 알아, 그래도 네가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는 알지?”2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기를 원한다. “내가 너의 사람이 되어줄게!”3 나는 일전에 기고한 글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어쩌면 보편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바 있다. 그러한 점은 본 트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누군가에 의해 보듬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보듬어짐이 사랑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를 내보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기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용기로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할 테다. 백예린은 그러한 것을 노래한다.

그렇다고 미래를 약속하는 식상한 전개를 그리지는 않는다. “너는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이야. 여기,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4 선물 같은 오늘을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어떤 트랙들에서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그 힘을 높게 산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진 힘은 언어적 장벽을 진즉에 뛰어넘었음은 물론이고, 우리가 음악을 수용하면서 장르적 가치나 기술적인 완성도 등 여러 잣대를 갖다 대는 일을 무용하게 했다. 물론 상찬을 조금 더 얹어보자면 영어 가사로 이루어진 트랙이 한국의 음원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일에 관한 맥락이나, 힙스터가 고대하던 팝스타의 발걸음이 남긴 자취를 논해볼 수야 있겠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갈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본 트랙이 나에게 있어 2020년 한 해 동안의 가장 기분 좋은 경험 중 하나였다는 점을 서술하기에는 이만해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 XENITH

 

The Best K-Pop Album of 2020

NCT, 『NCT Resonance Pt. 2』, SM Ent., 2020.11

NCT라는 거대한 플랫폼은 이제야 그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NCT 2018 EMPATHY』이후 2년 만에 모든 멤버를 집합하여 모습을 드러낸 『NCT RESONANCE』는 SM 엔터테인먼트와 케이팝 시장이 그리고자 했던 거대한 플랫폼으로서의 그룹을 제대로 보여준 한 수가 되었다. 지난 NCT 2018에 WayV와 두 명의 새로운 멤버가 참여해 23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NCT 2020은 그 기획 자체에서 케이팝이, 아니 어쩌면 SM 엔터가 그리고자 했던 플랫폼 형 그룹의 정점을 찍은 듯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물론 이전의 NCT 2018의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8명의 멤버들이 한 무대에 섰던 「Black On Black」은 물론, 당시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NCT 127 과 NCT DREAM이 기존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준 「TOUCH」와 「GO」, 완전히 새로운 조합을 통해 NCT U의 유의미한 가능성을 보여준 「BOSS」등, 지난 『NCT 2018 EMPATHY』은 NCT가 SM 엔터를 넘어 케이팝 시장에 특별한 발자취를 남길 그룹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터전은 『NCT RESONANCE』에 들어 더욱 완벽한 모습으로, 또 더욱 성장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도했다.

먼저 『NCT RESONANCE』에서 돋보이는 것은 매력적인 음악들의 존재이다. 「90’s Love」, 「Misfit」등 매력적인 랩/힙합 트랙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Make A Wish (Birthday Song)」, 「Work It」등 신선한 NCT U 조합의 트랙과 「Music, Dance」, 「무대로 (Déjà Vu; 舞代路)」, 「月之迷 (Nectar)」와 같은 기존 팀의 매력이 돋보이는 트랙, 4개의 언어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From Home」과 「백열등」, 「피아노」등의 섬세한 트랙까지 정말 다양하면서도 각각의 특별한 매력을 담아낸 『NCT RESONANCE』의 트랙들은 말 그대로 NCT가 아니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매력을 담아낸 곡들로 가득하다. 또한 이러한 트랙들은 인터루드와 아웃트로로 구별되어 「90’s Love」등 보다 과거의 분위기를 자아낸 초반부를 지나 현재 활동 중인 기존 팀들의 트랙들이 자리한 현재, 보다 새로운 조합의 NCT U와 신선한 사운드로 무장한 트랙들로 가득한 미래 부분으로 전개되며 앨범 전반의 서사를 NCT라는 그룹 자체의 서사와 연결 지어 소개한다. 물론 이들의 연결을 돕는 「Interlude: Past to Present」, 「Interlude: Present to Future」, 「Outro: Dream Routine」이라는 연결고리 성격의 트랙들 역시 뛰어난 퀄리티로 무장했으며, 이는 앨범 전반의 서사를 탄탄하게 지탱하기도 한다. 또한 21개의 거대한 사이즈의 앨범 내의 트랙들은 여전히 강렬한 매력을 내포하며, 트랙에서 드러나는 23명의 멤버들의 역량 역시 무척이나 뛰어난 모습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축이 된다.

점점 거대해져가는 케이팝이라는 음악 시장에서 하나의 그룹이 생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 중, SM 엔터테인먼트가 택한 ‘플랫폼형 그룹’으로서의 NCT는 『NCT RESONANCE』를 통해 자신들의 기반이 된 과거와, 자신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현재와, 앞으로 펼쳐갈 미래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시간성을 한 데 모은 『NCT RESONANCE』는 NCT라는 그룹이 케이팝 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생존의 대안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이면서도 높은 가능성을 지녔음을 견지한다. 하나의 그룹 내에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고, 그 그룹들 사이에서 멤버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NCT의 방식이 아직 케이팝 시장에 완벽히 녹아들었다거나 그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으로는 보기 어려우나, 분명 이들이 2020년에 들어 보여준 다채로운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이 NCT의 방법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그룹으로써 NCT가 선보인 『NCT RESONANCE』라는 작품은, 그 작품이 가지는 퀄리티와 함께 케이팝 시장에 새로운 미래의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인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양소하

 

The Best K-Pop Track of 2020

우주소녀, 「Pantomime」, 스타쉽 Ent., 2020.06

우주소녀의 「Pantomime」이라는 곡이 2020년 최고의 케이팝 트랙이 되어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이유를 모두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글이 될 것이다. 먼저 「Pantomime」이 가지는 여러 가지 매력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케이팝에서 음악이 가질 수 있는 매력들, 가령 곡의 콘셉트와 주제, 소재, 사운드 메이킹, 보컬 운용, 케이팝스러운 다채로운 요소의 결합 등 다양한 요소에 있어서 「Pantomime」은 모든 부분을 무척 특별하고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 채운 곡이다. 먼저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coloringCYAN이 언급했듯, 「Pantomime」은 제목과 관련된 ‘무언극’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무언극이라는 소재가 사랑이라는 주제와 결합하며 케이팝에서, 아니 음악 전반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사랑 이야기로 치환된다. 특히 그것은 무언극과 연관된 다양한 단어, 가령 ‘신인 배우’, ‘A-cut’등의 어휘가 사랑을 그려내는 표현으로 활용되는 순간,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무언극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Pantomime」만의 독창적인 형태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이렇게 ‘무언극’이라는 소재로 우주소녀만의 사랑을 독특하게 그려낸 콘셉트 이외에도, 여전히 「Pantomime」의 매력적인 요소는 넘쳐난다.

콘셉트가 아닌 음악의 사운드적 측면에서도 「Pantomime」은 커다란 매력을 뽐낸다.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독특한 방식을 차용한 장르의 활용이다. 전반적으로 간결하면서도 정돈된 스타일의 분위기를 끌고 가는 딥-하우스 풍의 소리는 사뭇 왜곡된 모양새로 드러나며 기존의 고정된 스타일을 벗어나고자 한다. 가령 후렴에서 비교적 강렬하게 치고 나가는 신디사이저와 베이스는 비교적 깔끔한 소리라기보다는 꽤나 뒤틀린 형태의 사운드로 등장하며 기존의 케이팝에서 활용된 딥-하우스라는 장르의 소리와 일말의 격차를 둔다. 그리고 「Pantomime」에서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인식되는 음악적 요소는 멤버들의 보컬에 있다. 이미 기존에도 뛰어난 실력과 그 활용 방법으로 보컬 명가라 불린 우주소녀의 보컬은 「Pantomime」에서 기존과는 꽤나 다른 형태의 보컬을 선보인다. 가령 전반적으로 간결한 사운드와 맞물리는 벌스 부분의 정돈된 보컬과 프리코러스의 극적인 순간을 주조하는 섬세한 목소리, 때때로 곡의 분위기를 환기하며 곡의 재미를 추가하는 엑시의 랩은 그 예시로 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곡의 드랍 파트에서 등장하는 “Mute”, “Stop”을 무척이나 섬세하게, 가령 음절 사이의 호흡까지도 조절하며 존재감을 강렬하게 인지시키는 루다의 보컬과, 이후 브릿지 파트에서 무척 독특한 전개의 뒤틀림을 이끌어내는 다원의 “Pause”등의 순간은 곡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 순간이 때로는 거대한 여백으로 다가오도록, 혹은 긴장감으로 가득한 호흡으로 꽉 채워진 순간으로 존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이후 훅 파트에서 반음계의 오르내림으로 매혹적인 음역을 만들어내는 연정의 파트 또한 특기할만하며, 이후의 파트에서도 모든 멤버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아니 매우 뛰어나게 수행해내며 자신의 역량을 뽐낸다는 점에서 우주소녀의 보컬은 「Pantomime」에서 다시금 그들의 실력을 입증해낸다.

이렇게 「Pantomime」은 매우 다채로운 매력들로, 그리고 그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요소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Pantomime」은 지난 2020년 발매된 수많은 케이팝 트랙 가운데에서도, 콘셉트적으로도, 음악의 소재와 주제와 관련해서도, 혹은 음악의 사운드적 요소에 있어서도 그 무엇보다 뛰어난 요소들의 집합체로서 존재했다. 그렇기에 우주소녀와 그들이 만들어낸 「Pantomime」은 분명 2020년 발매된 케이팝 트랙 중 가장 우수한 요소들로만 가득한 트랙임을 강렬하게 표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양소하

  1. 한 편 다른 인터뷰에서 장영규는 씽씽의 음악을 민요로 생각하는 다른 멤버들의 입장과, 씽씽을 “완벽히” 록 밴드로 간주하는 자신의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2. “I’m no invincible… I know I’m not loveable, but you know what you’d have to say?”
  3. “I’ll be yours for sure!”
  4. “You’re the only one, who saw my yesterday, the one who knows I’m here alive today.”

2 comments

온음 2020 총결산 : 비하인드 by. coloringCYAN - 온음 2021년 1월 29일 - 6:01 오후

[…] 2020 총결산>의 후보 및 선정작은 해당 링크에서 열람하실 수 […]

Reply
The List : 2020 국내 베스트 앨범 20 by XENITH - 온음 2021년 3월 9일 - 6:00 오후

[…] 진취의 예시로서 본작이 적합할지는 상당한 의문을 품고 있다. 물론 일전에도 언급했듯, 그 맥락을 가사―혹은 그것을 독해하는 방식―에서 찾아보려한다면 나름 […]

Repl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