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Home > XENITH > Abroad > James Blake, 『Assume Form』

James Blake, 『Assume Form』

   

James Blake(이하 James)의 『Assume Form(이하 본작)』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본작의 발매로부터 7개월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때는 2018년 5월, 「Don’t Miss It」의 선공개 이후 Pitchfork의 Kevin Lozano는 이를 다루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Don’t Miss It」은 James의 ‘sad boy music’ 카테고리에 들어갈 또 다른 아름답고 잔인한 트랙이다. 그의 음악이 아름답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갈수록 뭔가가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James는 오늘 밤 산책이나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James는 이 기사에 대해 그간 보이지 않았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며 답변을 남겼다. “나는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때, 주로 건강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우리 사회는 이미 남성의 우울증과 그로 인한 자살에 관한 문제가 만연해 있어. 저런 사람들이 꼭 어떤 남자가 약해진 마음과 상처를 논하면 그걸 비꼬니까 그런 거라고. 그런 세태가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은 증명조차 필요 없는 사실이야.” James의 발언은 당시 큰 지지를 얻으며 그의 의도대로 꽤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에게 크게 한 방을 맞은 Pitchfork는 이후 당시 본작에 관한 평을 남긴 매체 중 가장 낮은 점수인 5.8점을 부여하는 뒤끝을 보였다. 사실 이것을 뒤끝이라고 보기에는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후 2010년대 결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Pitchfork가 자체적으로 높은 평점을 부여했던 James의 작품들을 모조리 배제하는 통에―그래도 너무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트랙 단위의 글에서는 한 번 언급했지만―Pitchfork가 그를 의도적으로 “Canceling”하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저 일련의 과정이 Kevin―엄밀히 따지자면 Pitchfork―의 명백한 실책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Don’t Miss It」을 ‘sad boy music’ 카테고리 안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James의 가사를 완전히 외면했다는 점에 있다. 이 트랙에서 James는 과거의 자신이 많은 것을 등지고 외로운 삶을 지내온 것에 대해 반성하며 누군가가 자신처럼 달아나고 헤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놓치고 말았어. 놓치지 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놓치지 마1.”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은 반쪽짜리 해석일 수밖에 없고, 그를 바탕으로 한 속단이 오판일 수밖에 없음은 필연적이다. 다시 말해 Kevin이 내놓은 기사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선보이는 James의 새로운 시작에 굳이 찾아와서 초를 친 격인 셈이다. 또한, 그로부터 1주일 뒤 James는 한 심포지엄에서 아티스트의 좋지 못한 정신 건강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구시대적 발상에 환멸을 느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산업에서는 창조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불안해야만 하고, 천재가 되기 위해선 우울증을 앓아야 한다는 미신이 있어. 단언컨대, 불안감은 내 음악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지.” 동시에 그는 음악 산업이 유지되는 일련의 방식―투어―에 의해 아티스트들이 자신 스스로를 갉아먹는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것을 지켜보았다며 자신들이 음악 산업 내에 만연한 정신 건강과 관련된 부정적인 담론을 파훼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정확히는 미디어가 그를 묘사함에 있어 이용해왔던 단어들이 충분히 어울리던 James의 발언이라고는 쉽게 믿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다. 그것은 곧, 현재의 James는 과거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본작에서 보여주는 소리가 비록 전작에서 보여주던 그것들과 비슷할지라도 전작에서의 그것과 다르게 독해해야 한다는 점은 더 이상의 근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인트로 트랙 「Assume Form」부터가 그렇다. 이것은 James가 그간 들려주었던 음악과 크게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그의 가사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난 깨달았어, 내가 일생토록 감정을 찾기 위해 안갯속에 있었다는 걸2.” James는 본작에 와서야―앨범 커버가 그렇듯―자신의 얼굴을 비로소 뚜렷하게 모두의 앞에 내보인다. 그것은 아마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James Blake』의 앨범 커버처럼―부정적인 정신 건강을 의미하는 단어들로 수식되는 것을 더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주변인들은 내가 더는 흐느끼지 않게, 지나치게 감정적이지도 않게, 또는 ‘내가 어떠한 이유로 기분이 좋지 않다,’며 굳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게 하려고 나를 계속해서 배려해줬어.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지.” 본작은 James가 자신의 자화상들을 한데 모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겠지만, 이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엔드 크레딧이 나오는 순간에도 자리를 떠나선 안 될지도 모르겠다. 엔드 크레딧을 한 번 훑어볼까. James의 연인인 Jameela Jamil을 비롯해 Metro Boomin, Travis Scott, Moses Sumney, ROSALIA, André 3000와 같은 이들이 조연으로서 James와 함께한다. Daniel Lopatin과 Dominic Maker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본작의 크레딧은 지금까지 James가 발표한 그 어떤 앨범보다 긴 설명란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작업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타인의 지분을 늘려가던 James의 급격한 전회나 진배없다. 어쩌면 이러한 내용에 담긴 James의 함의를 읽어내는 것이 본작의 독해 과정에 있어 핵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본 필자에게 “『The Colour In Anything(2016)』에서 Rick Rubin이 갖는 지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변으로 아마 웬만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Metro Boomin이나 Daniel Lopatin과 같은 이름들이 적잖이 당황스럽겠지만 동시에 특별할 수 있겠다. Travis Scott이 참여하기도 한 「Mile High」나 Moses Sumney의 팔세토가 돋보이는 「Tell Them」을 들어보라. 힙합스럽고 가벼운 스네어, Outkast의 그것이 떠오르는 날카로운 하이햇, 듣기만 해도 누구의 것인지 알게 해주는 808 베이스까지. 이것을 들은 누군가에게 Metro Boomin이 자신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 전 선공개한 트랙들이라고 하면 그를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이러한 구성은 영락없는 그의 수훈이다. 「Can’t Believe The Way We Flow」에서의 샘플을 운용하는 방식도 James 본인의 것이라기보다는 Daniel Lopatin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아마 합리적일 것이다. 이쯤 되면 본작 내에서 타인의 지분을 늘리기를 선택한 James의 결단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독해될 여지가 생긴다. 그것은 James가 본작 내에서 자신의 지분을 즉,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감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 역시 예측하기 쉬운 명제이다. James는 앞서 언급했듯 그의 부정적인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고, 그렇기에 최소한 본작만큼은 자신의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와 그 성격이 선연히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협업은 필수적이었고, 그로 인해 기존의 James의 음악, 그러니까 어딘가 음산하고 왜곡된 소리의 색채와 자신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James의 결단은 소기의 목적을 취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지금까지 James의 디스코그래피는 덥스텝을 베이스로 하는 서브컬처의 한 부분에 있어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일종의 대안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후에 덥스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게 되는 한 장르에서 드러나는 레퍼런스 중 가장 커다란 이름이 과연 누구인가.). 하지만 본작에 와서 James는 자신의 목소리 외의 지금까지 그의 음악적 요소들을 거의 배제하다시피 한다. 본작에는 「I Never Learnt To Share(2011)」의 후반부처럼 여러 층의 신스가 신경질적이고 난잡하게 등장하는 일도 없고, 「Lindisfame(2011)」에서처럼 목소리를 짓뭉개는 경우도 쉽사리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언젠가부터 흑인음악의 최상위 계층의 인물들―Kendrick Lamar와 Beyonce, JAY-Z 등―과 어울리며 얻은 영감과 옛스러운 고전미가 적절히 혼재하며 그 자리를 대체한다(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James가 일전에 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기에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본작에서의 힙합스러운 특징을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이름인 Metro Boomin에 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으니 생략하자. The Manhattans의 풍성한 중창이 등장하는 「Can’t Believe The Way We Flow」와 이탈리아의 영화음악 제작자인 Bruno Nicolai의 음악에 등장하는 허밍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I’ll Come Too」를 들어보라. 우리는 이미 James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온 바 있기에, 이러한 변화를 James의 태도가 변한 것만큼이나 놀랍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본작에서 들려주는 소리가 꽤 듣기 편안하고 모두에게 친숙할 법하기에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대중친화적이고 James 본인에게 있어서도 가장 유의미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James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사 역시 그러한 가능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필자가 James의 태도와 협업에서 발생하는 프로덕션 측면의 특이점에 초점을 둔 서술을 했기 때문에 조금 미뤄둔 감은 있지만, 유의미한 부분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Where’s The Catch?」에서 André 3000는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는 가사를 담는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너무 바보같이 나 자신을 배신해. 너무 완벽해. 너무 완벽한데 왜 나는 최악의 결말을 보는 거지3?” André 3000의 가사가 James와 관계가 없는 André 3000만의 경험을 다룬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Power On」을 들어보면 이 점은 명확한 사실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과거 자신의 불안감을 마주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한 탓이다. “나는 내가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이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고, 내 자리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틀렸어4.” 허무주의가 관류하던 2010년대의 대중음악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이의 진솔한 참회는 높은 확률로 음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James는 마침내, 희뿌연 안개를 뒤로한 채 힘을 빼고 깊게 숨을 내쉰다. 그리고 James는 우리에게 묻는다. “해가 뜬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따뜻해지지 않는가5?” 본 필자는 이 가사가 본작을 꿰뚫는 가장 중요한 한 줄의 가사라고 독해한다. 물론 본작이 말하지 못할 여러 이유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한 줄기의 따스한 손길이라고 해석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면이 없잖아 있겠으나, 최소한 James에게 안정감을 찾아주려는 주변인들의 도움과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려는 그의 노력이 만들어낸 반전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본 필자가 앞서 언급한 프로덕션이 담고 있는 함의와 그를 통해 만들어낸 캐치하고 매력적인 멜로디 라인과 함께 본작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로서 작용한다.

본 필자가 본작에 대해 이토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이유가 또 있다면 아마 그것은 앨범 바깥에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본 필자는 앞서 첫 문단에서 다뤄진 기사를 두고 Kevin의 명백한 실책이며 오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James의 말대로 이러한 시선은 Kevin과 Pitchfork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대중음악사, 아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우울증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적이라고 여길 행동들―각종 중독 증상―과 결과―자살 혹은 사고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묘사하고 있는지 둘러볼 필요가 불편하겠지만 아주 조금은 있다. 본 필자가 본고를 통해서 그것에 관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Kevin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나약한 자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실패, 부적응과 같은 공격적인 단어들로 수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치료를 위한 약물의 이용을 쾌락을 탐닉하기 위한 부정한 방식이라고 비하하거나6 정신병적 증상이 의사들의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반지성주의적인 경우도 있으며, 유명인들의 삶이 황폐화되는 것을 마치 그것이 흥미롭다는 양 가십거리로 다루었던 사례들―27세 클럽7―도 있다. 또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은 예술가의 동반자다,” 혹은 “상실은 영감의 원천이다,”와 같은 위험한 발언들을 일삼으며 누군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요소에 대한 고찰은 생략한 채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며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우리는 대중음악이 성립된 이래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떠나보내야 했으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많은 이들이 우울이라는 늪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윤택함을 잃어가는 큰 손실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태는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본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심적 고통은 절대 유희 거리가 될 수 없다는 점이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라는 점이며, 무턱대고 빈정거려도 될 만큼 부도덕할 리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이 점은 아티스트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결정하고, 그것을 존중받으며, 그것을 최소한 자신의 작품 내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다룰 권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James는 본작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는 멋있는 일을 해낸 것이라고 본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은 어쩌면 뛰어난 작품을 통해 힙스터들의 취향과 요구를 만족시켜주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어쩌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일을 해내는 것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것이 비록 추상적인 개념에서 그치는 것이더라도 음악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있기에 그렇다. 대개 그러한 작품들을 비평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본 필자에게는 Mount Eerie의 『A Crow Looked At Me(2017)』나 Logic의 『Everybody(2017)』가 그랬으며, Sufjan Stevens의 『Carrie & Lowell(2015)』 같은 작품들이 그러한 경우였다. 그리고 본작 역시 그러한 경우였다. 하지만 본 필자는 끝내 본작을 비평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기를 선택했고, 그와 함께 많은 생각을 글로써 담게 되었다. 자, 종합해본다. 아름답고, 용감하며, 매력적임과 동시에 따뜻하다. 이것이 본 필자의 생각이고, James를 향해 보내는 헌사이다.

   

  1. “Oh but I’d miss it. Don’t miss it. Don’t miss it like I did.” – 「Don’t Miss It」 中
  2. “Now I’m confiding, know I’m in haze, gone through the motions my whole life.” – 「Assume Form」 中
  3. “There’s no reason really, treason to myself so silly. So perfect, so perfect, so why do I look for curtains?” – 「Where’s The Catch?」 中
  4. “I thought I might be better dead, but I was wrong. I thought everything could fade, but I was wrong. I thought I’d never find my place, but I was wrong.” – 「Power On」 中
  5. “Doesn’t it seem much warmer just knowing the sun will be out?” – 「Assume Form」 中
  6. 치료 목적 이외의 약물 악용 사례를 포함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경향도 약물에 관한 범죄적 사례만을 비추는 미디어와 그로 인한 무지의 영향이 클 것이다.
  7. 이것은 사실 그들을 기리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이들이 모두 27세에 비극을 맞이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했기에 생겨난 밈에 가깝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이 사람을 27세 클럽에 가입시키는 게 맞는가”하는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던 것은 아주 우스운 사례로 남을 것이다.

댓글 남기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