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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es Sumney, 『græ』

   

우리는 Moses Sumney(이하 Moses)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특히 『Aromanticism(2017)』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과 목소리를 이토록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되새겨보자, 『Aromanticism』. 그렇다고 사용된 악기가 아주 적냐 묻는다면 그런 것은 또 아니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무언가, 그리고 그 위에서 어쩔 수 없이 잘 들리는 그의 팔세토가 인상적이어서일까. 아니면, 로맨스가 과연 대중문화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요소인지 의문을 던지는 식으로, 고독이라는 평범한 것으로 향하는 색다른 접근법이 놀라워서일까. 본 필자는 섣불리 답을 할 수 없다. 이렇듯 우리가 Moses를 기억하고 있음에도 앞선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앨범이, 그가 선보이는 연주가 우리에게 각인되는 과정은 지극히 감정적인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이성적인 판단을 뒤로한 채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가 누리는 이 대중문화에 걸출한 싱어송라이터가 탄생했음을. 그를 통한 음악적 경험이 분명 전에 없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Blood Orange(혹은 Dev Hynes)를 통해 최소한의 악기만으로 선보이는 세련된 퍼포먼스를 경험했고, D’Angelo를 통해 목소리가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문학적인 감상을 부르는 하나의 펜과도 같다는 것을 학습했다. 그 펜은 James Blake에 의해 하나의 악기가 되었으며, Frank Ocean 같은 걸출한 연출가들의 손에서 근사한 무언가로 가공되는 것을 목도했던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Moses가 우두커니 뒷짐을 진 채 서 있다.

그런 그의 앨범 『græ(이하 본작)』. 20개의 트랙, 심지어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발매된 본작은1 『Aromanticism』과는 다르게 꽤 이성적인 해석과 판단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가장 먼저 본 필자는 Moses가 Intro 「insula」를 통해 던지는 두 가지 질문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단 첫째로, 왜 본작의 타이틀이 『græ』인가. 우리는 「insula」 말미에서 Ayesha K. Faines가 『græ』를 분명히 [greɪ]라고 발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greɪ]는 회색을 의미하는 gray의 발음 기호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굳이 gray나 grey2가 아니라 『græ』인지 이유를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것이 옳으리라 판단된다. 오히려 본작의 타이틀은 영어 화자들의 발음상의 독특한 현상3이나 그 현상에서 기인하는 발음상의 유사성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본작의 타이틀이 회색을 의미하는 그 어떤 단어로도 대체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둘째, 「insula」를 통해 본작의 서두에서 Moses는 결국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의 자아를 대변하는 Taiye Selasi는 그녀의 신비한 목소리를 통해 마치 주문을 외는 듯 이렇게 말한다. “고독, isolation은 섬, island를 뜻하는 단어 insula에서 기원했다45.” 마치 선언처럼 느껴지는 이 문장을 통해 Moses는 자신이 고독의 범주에 들어가는 감정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혹은 본작이 고독을 노래하는 작품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다. 『Aromanticism』에서 다뤄졌던 주제와 이 두 가지 장치로 미루어보건대, 궁극적으로 본작에서의 Moses가 원하는 것은 사전적 고독의 문학적 독해가 아니라, 고독의 재정의에 가깝다. 그리고 후술할 회색의 정의로 인해 우리는 “다양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 역시 Moses의 요구 사항 중 하나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단순히 “다양성이 사전적 의미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한 사람의 내면에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6,” 그게 Moses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본작의 타이틀 『græ』와 Intro 「insula」만을 다루는 문단에 갑작스럽게 10번 트랙의 가사가 각주로 등장한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다소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앞선 문단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심오한 이야기가 오고 갈 필요성이 있다. 일단 색상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색을 회색이라고 칭할 때, 그것은 회색이 하나의 색상으로 특정될 수 있다, 혹은 특정된다는 전제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실험심리학용어사전에 따르면, 무채색을 색조가 없는 색 즉, 하얀색과 검은색 및 이 양극단 사이에 있는 모든 회색과 하얀색, 검은색의 통칭으로 정의하는데, 이 말은 우리의 생각처럼 회색이 무채색의 스펙트럼 내에서 단 하나의 색으로 특정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할 수 있는 색상임을 의미할 것이다. 동시에 신기한 점은, 회색이라고 부르는 어떠한 색상과 양극단의 격차가 0에 수렴하게 될 때, 그 색을 하얀색, 혹은 검은색이라고 칭해도 딱히 위화감은 없겠지만, 앞서 언급한 정의에 따라 그 색상은 회색의 범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그 색을 하얀색, 혹은 검은색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는 회색이라는 색이 양극단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색이라는 인식 때문일 수도 있고, 무채색 내에서 색상을 다시 나누는 일종의 범주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종의 약속에 그가 동의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Moses가 굳이 본작에 『græ』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은 그가, 혹은 그가 할 이야기들이 회색의 정의에 어느 정도 부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신념은 그저 많은 것 중 하나일 뿐이야. 나는 한 가지 틀에 맞춰질 수도 없고 한 가지 시야를 통해서만 삶을 바라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누군가는 『græ : part 1』을 듣고 이렇게 말해, ‘『Aromanticism』과는 다르게 너무 맥시멀리즘해! 너무 다르다고! 어쩌고저쩌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해, ‘그렇게 다르지는 않은데?’” 본작과 자신을 회색으로 칭함은,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으로 결정되는 사회의 이분법적인 분류에 자신이 종속되지 않음을, 혹은 종속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자신이라는 개체와 본작이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묘사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회색이라는 색상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용례가 존재한다는 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회색은 단 하나의 색으로 특정되며, 이 때문인지 “검은색도 하얀색도 아닌 애매한 색”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Moses도 현실이 어떠한지 알고 있고, 그 현실에 좌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범주화에 관해서 여러 번 비판하고는 했는데, 현실은 그런 나에 대해 범주화를 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내 음악의 팬이라고.” 자신의 신념과 관계없이 Moses 역시 범주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앞서 설명했듯 관대한 시선을 보이고 타인에게 역시 그러한 시선을 가질 것을 요구하지만, 역설적으로 관대하지 못한, 범주화에 대해서는 옹졸하다시피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 Moses를 사회는 배척하고, 그의 이름 앞에 고독이라는 이름을 내걸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Moses가 회색이라는 이름을 자기 앞에 내걸었던 것은 어느 정도 자의에 의한 것이지만, 그와 상반되게 그가 섬 위의 사람이 되었던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음악적인 것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가나와 미국의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10살 때 가나로 돌아가 생활하지만, 속된 말로 “too American” 하다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아마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편견에 의한 따돌림은 피차일반일 것이다.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경험을 연속으로 겪은 Moses는 이를 기점으로 섬 위의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섬 위에 연륙교가 있다고 한들 섬은 여전히 섬인 것처럼, Moses가 연륙교를 세워 대륙을 향해 나아가려 한들 결국 그는 타의 요구로 인해 섬 위의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앞선 세 문단을 종합해보면 Moses는 본작의 타이틀 『græ』와 Intro 「insula」를 통해, 조금 더 명확하게는 “회색”과 “섬(혹은 고독)”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자신에게 붙여진 고독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맞게 일정 부분 재정의하고, 자신에게 내재한 다양성과 개인주의적 시각을 통해 세상을 관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도전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념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획일화되어 정의되는 현상 그 자체일 것이다. “나에게 좋지는 않겠지만, 그게 필요할 것 같긴 해7.” 일반적으로 관념에 대한 도전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이는 성문화되어 있지 않을지언정, 사실에 가까울 것이고, 그 시각은 그 자체로 예리해져 Moses의 정체성을 공격하고 그것에 기어이 흠집을 낸다. 하지만 Moses는 그것을 방어하지 않고, 오히려 흠집을 내어보라고 도발하기까지 한다8. 「Cut Me」는 그러한 불친절한 시각을 가진 관념에 나긋하지만 담대하게 던지는 포고와도 같으며, 이 문제적일 수 있는 포고의 당위성을 「boxes」를 통해 Moses는 명시한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심히 우려를 표해9.”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만, 특히 흑인 여성과 남성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 정의를 그들 자신을 위해 다시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봐1011.” 그러한 발화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향하지만, 무차별적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명확한 대상을 타겟으로 삼는다. 「Virile」과 「Conveyor」가 대표적이다. 「Virile」에서는 “알게 모르게 들어오고 싶지? 사내다움을 고양시키고 싶잖아12.”라는 어구를 통해 남성성을 의인화시켜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농락하더니, 「Conveyor」에서는 대놓고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를 비꼬고13, 더 나아가 연대의식으로 포장된 자아의 강제적인 희석을 조롱한다14. 이 두 트랙에만 국한된 이야기인가 하면 당연히 아닌 것이, 본작의 서사에 의해 「In Bloom」이나 「Polly」 같은 트랙들이 사랑을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관한 환멸의 묘사로 읽히기도 하고, 심지어 「Gagarin」의 초반부에서 들리는 형식이 없는 듯한 문장들이15 후반부에서 연속된 문장으로 읽히는 현상은 마치 「Gagarin」이 「Conveyor」의 연장선상에 있는 트랙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지게끔 한다16.

하지만 본작의 첫 번째 파트가 끝나갈 무렵, 정확히는 Moses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발화가 「also also also and and and」를 통해 절정에 달할 때 즈음, 「Neither/Nor」에 이르러 그의 발화가 모조리 부정당한다. 그의 대담한 발화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 의해 부정당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이어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것은 Moses가 마치 그러한 부정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양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향하는 발화를 갑작스레 멈췄기 때문일 것이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첫 번째 파트와는 대조되는 내용의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Two Dogs」에서는 자신이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떠나보내던 일련의 경험담을 늘어놓더니, 「Me in 20 Years」를 통해서 어릴 적 공상 같은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그가 엉뚱하다고 보일 정도로 이질적이다. 하지만 단 두 줄의 가사로 인해 엉뚱해 보이는 두 번째 파트 역시 본작의 서사 아래 편성된다. “솔직함이 가장 도덕적인 방법일 거야. 하지만 도덕성은 회색이라고17.” “그리고 내 생각에는, 내가 일생토록 겪었던 것은, 정확히 고립당하는 것이었어18.” 첫 번째 파트가 지금껏 언급했듯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향하는, 회색인 Moses의 발화였다면, 두 번째 파트는 Moses가 자의에 의해 자신에게 회색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타의에 의해 자신이 섬 위의 사람이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회고하는, 즉,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파트인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본작이 왜 굳이 『græ』라는 하나의 타이틀 아래에서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각기 다른 일자에 발표되어야만 했는지 설득력을 부여하는 대목 중 하나일 것이다.

이쯤에서 서사적 구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잠시 뒤로 하고 화제를 본작을 구성하는 소리에 관한 내용으로 돌려보자면, 우리는 비교적 명징한 멜로디와 강조되는 드럼 프로그래밍, 뚜렷한 음절의 구분, 그리고 그들로 인해 마디의 식별이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대표되는 현시대 음악 시장의 추세에 다소 맞지 않는 구성적 면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소 맞지 않는”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함은, 본작의 모든 음악적 구성이 추세를 아주 배반하는 형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그러한 추세에 아주 긍정하다가도 소수의 요소에 의해 긍정과는 거리가 살짝은 멀어지는 형태를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본작의 소리가 보이는 이색적인 형태에 관한 본 필자의 전 문장과 같은 접근법은 세 번째 문단에서 언급된 Moses의 전언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본작의 소리 역시 Moses의 의도대로 “다른 것 같지만 결국에는 이들이 모두 회색의 범주 내에 존재하는” 소리로써 우리가 감상할 것을 요청할 것이다. 「Cut Me」에서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재즈풍의 연주는 대부분 일반적인 마디의 개념을 무시한 듯 들리며, 이런 면에서 공통분모가 있는 「Virile」의 초반부를 지나 락의 풍채를 물씬 풍기는 드럼과 기타가 들리는 점 역시 긍정과 부정을 넘나드는 요소로써 해석될 여지가 존재할 것이다. 「Colouour」에서 비로소 우리는 추세에 반하는 면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 트랙을 마주하나 싶지만 Moses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대부분의 기악 편성이 거짓말같이 퇴장하며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Bystanders」에서는 단어 그대로의 박자감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박자감을 감지하기 위해 오로지 Moses의 목소리에 의존해야 하는 정도의 연주를 선보이며 본 필자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서술 방식을 전환하여 본작의 크레딧을 짚어보며 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해보자면, Moses가 상당히 많은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임을 고려하더라도19 우리의 시선은 Daniel Lopatin(이하 Daniel)이라는 이름에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것이다. 본명보다 Oneohtrix Point Never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그는 본작 내 상당수의 트랙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전자음악의 기법을 대부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Daniel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그랬듯 그의 장기와도 같은 앰비언트, IDM 등의 장르를 본작 내에서도 선보이는데, 「insula」, 「and so I come to isolation」 같은 대부분의 스킷 트랙에서는 한껏 왜곡시킨 신비한 목소리와 맞물려 특유의 음산한 기운을 조성하기도 하고, 「Two Dogs」에서는 기악 편성 너머 삽입된 단발적인 소스를 통해 우리의 귀를 간지럽히기도 한다. 또한, Daniel 그가 꼭 주가 되지 않더라도 프로덕션에 일부 참여하며 Moses의 목소리를 매만지고, 그가 삽입한 전자음을 통해 소리에 관한 부분에서 최대한의 통일성을 구축하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한 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본작의 소리가 모두 Daniel의 공로라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티스트들이 작편곡에 참여한 바 있다. 우리에게 Thundercat이나 James Blake, FKJ 같은 이들은 낯선 이들이 아닐 것이고, 실제로 그들은 낯설지 않은 연주를 선보이며, 특히나 James Blake가 참여한 「Lucky Me」 같은 경우 Moses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James Blake의 트랙이라고 해도 딱히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다. 이외에도 『Aromanticism』에도 참여한 바 있는 Matthew Otto를 비롯해 Adult Jazz, Ian Chang, Ben Baptie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유의미한 흔적을 남긴 바 있다. 가사를 보탠 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선술 한 바 있던 Taiye Selasi, Ayesha K. Faines를 포함해 Jill Scott, Ezra Miller 등은 단순히 다양한 목소리의 표현을 위해 노랫말로써 힘을 보태는 것을 넘어 Moses가 펼치는 서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도 하는 등 본작에 있어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기용마저 Moses 단 한 명의 구상이라면, 크레딧에 적힌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저마다의 지분을 나누어줄 수 있는 Moses는 필히 걸출한 아티스트일 것이다.

이제 글을 끝마칠 때가 왔다. 다만 어떻게 끝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두 개의 파트, 20개의 트랙, 65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이 원대한 작품의 감상에 관한 서술을 마무리하는 데에 단 한 문단만이 본 필자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따라서 본 필자는 마지막 문단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동시에 본작을 감상할 우리가 더 의미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일종의 당부를 남기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본작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본작을 그 자체로 이해할 것.” 이게 전부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면 「boxes」로 돌아가 보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만, 특히 흑인 여성과 남성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 정의를 그들 자신을 위해 다시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봐20.” 이 문장과 「Virile」와 같은 트랙을 두고 본작이 Moses의 정치적 선언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과연 가당한 해석일까? 전혀 아니다. 저 문장이 본작에 삽입됨은 그저 Ayesha K. Faines의 목소리를 빌린 것에 지나지 않고, 저 문장에 “흑인,” “여성,” “남성”이라는 단어가 굳이 들어간 점은 그녀의 호소가 특정한 범주들이나 규정들로 하여금 제한받지 않기를 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도리어 합리적이라는 점은 꾸준히 서술되었기에 굳이 반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Moses를 섬으로 밀어 넣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관념, 특히 고정 관념, 그리고 그 고정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던가? 이 사회는 이미 관념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그의 정체성을 꾸준히 공격해왔음은 물론이고 그들의 고정 관념에 지긋이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실로 대단하신 이유 하나만으로 이 청년을 포용하기를 거부했다. 그러한 그를 그들의 기준에서 사회의 요구에 얽매이길 강요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명분이 없는 일일 것이고, 본작의 독해에 관해 오롯이 우리 사회 보편의 언어로 이를 서술한다는 사실이 영 꺼림칙하기도 할 것이다. 사실 본고 내에서 특정 단어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것도 제3자인 본 필자가 본작에 관한 주관적인 해석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필요했을 뿐, 그것들이 반드시 Moses를 대표하는 단어들이 될 수는 없다. 아니, 그럴 수 없음은 필연적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Moses는 “그리 할 수 있음”을 인정해줄 것을 “다양할 수 있는 권리”라는 어구로써 우리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사회에서 배척해도 개인으로써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Moses는 그렇게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 본작을 가져온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꽤 시의적절하게 발매되었다. 본작에서 다뤄지는 Moses 본인의 이야기를 배제하고 생각해보더라도 그렇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관념 간의 대립과 혐오가 근 몇 년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사회의 주된 이슈로 대두되었음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국경이 무색해지자 이 이슈들은 범지구적인 형태로 확장되었다. 확장에 편승하여 특정 관념에 몸을 실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진영으로 합류할 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거부하면 그들을 공격한다. Moses는,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의견을 전하는 본 필자가 그렇듯, 그가 가져온 본작이 「Neither/Nor」에서 그랬듯 부정당할지언정, 이 사회에 있어 의미가 없을 수 없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Moses는 먼발치 뒤에서, 자신의 메시지가 끝내는 부정당할 것을 알고 있는 양, 그저 응시하고만 있을지도 모른다.

   
  1. 첫 번째 파트는 『græ : part 1』라는 이름으로 2020년 2월 발매되었다.
  2. 전자는 미국, 후자는 영국에서 주로 채택하는 “회색”이다. Moses의 국적을 고려하여 미국식 표기를 선제적으로 언급했음을 알린다.
  3. 단어 끝의 e가 발음 기호상에도 마찬가지로 가장 끝자리에 위치할 때, 이 발음이 [eɪ]로 대체되는 현상. 본작의 타이틀을 “g-r-a-e”로 표기한다는 전제 하의 해석이다. 이 현상은 table같이 발음 기호상에서 e가 사라지는 경우는 해당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특별한 용어가 존재하는 공인된 현상은 아니다. 일례로 Kanye West가 자신의 이름 Kanye를 [칸예]가 아니라 [카이예“이”]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며, 이를 근거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카녜이 웨스트”라는 표기를 채택했다.
  4. Isolation comes from “insula” which means island – 「insula」 中
  5. 사족으로 여기서 말하는 insula는 라틴어 단어이다. 섬을 의미하는 insula라는 영단어가 있는 것은 맞지만 영어권에서는 island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영단어로서 실제 용례도 해부학 용어로만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해부학 용어가 라틴어에서 기원했음을 생각해보면 본 트랙에서의 insula 역시 라틴어 단어로써 독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6. I insist upon my right to be multiple / Even more so, I insist upon the recognition of my multiplicity – 「also also also and and and」 中
  7. Might not be healthy for me, but seemingly I need – 「Cut Me」 中
  8. What cuts me, cuts me, cuts me, cut me, cut me, cut me – 「Cut Me」 中
  9. Very concerned about giving names, giving names – 「boxes」 中
  10. I truly believe that people who define you, control you, and the most significant thing that any person can do, but especially “black women and men” is to think about who gave them their definitions and rewrite those definition for themselves – 「boxes」 中
  11. 본 문장에 관한 내용은 다시 한번 후술한다.
  12. You wanna slip right in, amp up the masculine / You’ve got the wrong idea, son – 「Virile」 中
  13. I will assume form, join the workforce, the colony – 「Conveyor」 中
  14. The carpenter bee dies when he finally leaves a sting – 「Conveyor」 中
  15. My life to something / Something bigger than me / I gave – 「Gagarin」 中
  16. 본 필자만의 자의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 트랙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Yurii Gagarin의 이름을 따왔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생애와 당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만 그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따라서 본 트랙에서의 Big blue bold라는 어구를 지구로, The gold medal라는 어구를 냉전 시대의 인류 최초라는 칭호가 갖는 의미로 독해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Yurii Gagarin이 끝내 단명했다는 사실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17. Honesty is the most moral way / But morality is grey – 「Bystanders」 中
  18. And I thought, that’s exactly what I’ve been my whole life / I’ve been islanded – 「and so I come to isolation」 中
  19. Moses는 『Aromanticism』에서 그랬듯 본작에서도 기악 편성에 관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20. 14번 각주 참고

2 thoughts on “Moses Sumney, 『græ』

  1. 글이란게 누군가가 읽는것인데
    너무길어 읽을수가없네요
    좀더 간략하게 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뛰어쓰기라든지 좀더

    1. 안녕하세요 『온음』의 필진 XENITH입니다.

      제가 국외의 앨범을 단일 앨범의 리뷰로 다루면서 글이 길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1. 국외의 앨범에 관해 한국어로 정리된 정보가 적기 때문에 글을 읽으시는 한국인 독자 여러분께 비교적 상세하고 많은 정보를 한국어로써 전달하기 위함.(실제로 제가 글을 쓰는 취지 자체도 비평의 목적보다는 정보 전달에 더 치중된 양상입니다. 또한 본작 같은 경우에는 근미래에 다른 분에 의해 국내에서 다뤄지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2. 정보와 주관 간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서술이 길어지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 정도로 축약됩니다.

      글이 길어지면 독자 여러분들이 피로감을 느끼실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만, 제가 이러한 서술 방식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글이 길어지는만큼 앞으로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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