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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10년대 결산 : 국외음악 by. coloringCYAN

   

다시 한 번 2010년대의 결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국외에서 발매된 음반들 중 백 장을 추렸고, 그 중 열 장에는 제가 그들을 2010년대의 뛰어난 음악으로 선정한 나름의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제가 2010년대의 국내음악을 결산하며 느꼈던 아쉬움이 해결되지 못한데 더해 ‘국외’라는 이름 아래 영미 제도권 음악들만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다른 제도권의 음악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해져 더욱 아쉬운 리스트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본 리스트가 독자 여러분들이 2010년대의 음악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다시 한 번 저희 웹진 <온음>을 구독해주심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coloringCYAN

   
  • 본고에 작성되지 않은 2010년대 국외음악 100-11위 까지의 리스트는 해당 페이지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더불어서 본고에 적힌 영어 노랫말(내지는 인용)들의 경우, 제가 번역한 문장을 리뷰에 싣고 그에 대한 원문을 각주로 다는 방식을 채택했음을 알립니다. 최대한 각 작품과 노랫말이 담은 맥락을 보존하며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다소 간의 의역/오역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독자 여러분들께 미리 양해 구합니다.
   

10

Grimes, 『Art Angels』, 4AD, 2015.11

2012년 Grimes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앨범 『Visions』는 다양한 측면에서 비평계의 고평가를 받았지만, 그러한 찬사들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iPhone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작곡 어플리케이션 GarageBand를 통해 앨범을 제작함으로써 기존의 대중음악 내에 알게 모르게 퍼져있던 ‘머니 게임’과 같은 기반을 비웃었다는 상징성과(물론 그렇다고 『Visions』가 아예 무자본으로 제작된 앨범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Oblivion」과 같은 트랙을 통해 성폭력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번쩍거리는 소리들로 승화해 그 자체로 어떠한 희망적임을 제시했다는 방향성에 있다. 그 결과로 그녀는 엄청난 찬사와 유명세를 한 몸에 받으며 지금의 위상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을 딛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정작 그녀는 그러한 찬사들이 별로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가령 그녀는 『Visions』 내지는 그 이전에 발매한 그녀들의 작품에 담긴 소리들이 ‘실험적이다’와 같은 어휘들로 포장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동시에 그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가 그녀에 대한 평가의 기준으로서 제시되어 일부 비평가나 청자들의 성 차별적인 어휘들에 갇히는 것 역시 원하지 않았다(우리는 남성의 상상 안에서 지극히 ‘소녀스럽다’고 여겨지는 그녀의 음색이 그녀의 작품을 논하는 데 있어 어떠한 기준으로 작용했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본작, 『Art Angels』인데, Grimes는 본작을 작업함에 있어 『Visions』에 가해졌던 평가 내지는 찬사들을 최대한 피하는 방향으로 일관하며 ‘듣는 이의 권력’에 대한 투쟁을 본격화했다. 실제로 그녀가 본작을 제작하면서 작곡 프로그램을 기존에 사용하던 GarageBand에서 유료 프로그램이자 많은 전자음악가들이 애용하는 프로그램인 Ableton Live로 변경한 이유가 단지 그녀가 『Visions』를 통해 유료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녀는 본작에 이르러 『Visions』에서 호평 받았던 소리들의 구성이나 방향성을 유지하는 척만 하면서 그들을 과장하고, 왜곡하고, 비틀어버렸는데, 네임밸류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그녀가 그녀에게 어떠한 방향성을 기대하는 청자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고의적 트롤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본작에 수록된 열 네 개의 트랙들은 어떠한 일관된 방향성을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각자의 생명력을 각자가 보존한 채 따로 노는 모양으로 드러난다. 가령 본작의 인트로격인 「Laughing And Not Being Normal」에서는 오케스트레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차분한 소리들을 보여주다가도, 「SCREAM」에서는 로킹하게 들끓는 기타 연주 위로 대만 래퍼 Pan Wei Ju의 중국어 랩을 내세우며 앞선 흐름을 배반한 채 듣는 이들을 뒤흔들어놓는다. 조화를 모르는 본작의 트랙들 사이에서 그나마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각 트랙들을 이루는 소리들이 하나같이 과잉되어있다는 점일 텐데, 「Kill V. Maim」은 그러한 경향성의 대표로 놓을 수 있을 만한 킬러 트랙이다. 「Kill V. Maim」은 평소에도 K-Pop 장르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Grimes가 K-Pop 특유의 상업적이면서도 아티스트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강조되는 맥락을 배제한 채 그를 흉내 낸 트랙이라 할 수 있겠는데, 반짝이다 못해 눈부시게 나타나는 신시사이저와 훅(하이라이트)에 이르러 폭발하는 볼륨, 그리고 그 위를 명징하게 노니는 멜로디 라인과 같은 요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본작은 Grimes의 커리어에서도 가장 대중-친화를 추구한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이리저리 뒤섞인 장르들과 콘셉트가 끝내는 어떠한 과잉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그 결과물은 양가적이다. 어쨌든 본작의 두 번째 트랙 「California」에서 그녀가 그녀에게 가장 많은 찬사를 안겼던 비평 매체 중 하나인 Pitchfork를 겨냥하며 “걔네가 내 안에서 보는 것들, 난 그런 거 못 봐”1라고 일갈했던 것처럼 그녀가 고깝게 여기던 ‘듣는 이의 권력’은 주로 비평계에 그 화살을 겨누었지만, 결국 대중음악에 흔히 제기되는 시선인 대중성과 비평의 비례 관계에 대한 문제(가령 대중적인 팝-코드의 음악들은 비평계에서 고평가를 받기 어렵다와 같은)에서도 역시 틀에 박힌 분석의 방향을 교묘하게 피해갔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본작에서 그녀에게 공격받은 Pitchfork는 본작에 대한 리뷰를 통해 본작에서의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주목하는데, 물론 Janelle Monáe와 함께한 「Venus Fly」와 같은 트랙들을 참조한다면 그 역시 유효한 분석일 테지만, 그것은 적어도 그들이 어떠한 권력을 가진 비평 집단으로서 그녀의 진의를 애써 외면한 결과에 가깝다. 본작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으로서 ‘듣는 이’의 위계 속으로 무방비하게 던져진다고 할 때, 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던 대표적인 움직임으로서 이해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지금의 Grimes를 있게 한 것은 『Visions』일지라도, 지금의 Grimes를 만든 것은 바로 본작일 것이다.

         

9

D’Angelo & The Vanguard, 『Black Messiah』, RCA, 2014.12

『Voodoo』라는 위대한 앨범을 대표적으로 2000년대 네오-소울을 이끌었던 아티스트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D’Angelo가 본작, 『Black Messiah』가 발매되기까지 무려 14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이유는 그가 그 시기동안 그의 최악을 헤쳐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교통사고, 뮤직비디오 촬영 이후 생긴 정신적 트라우마, 그로 인한 알코올과 마약 중독 등,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본작이 탄생하기까지 14년 동안 장르적 주류는 이미 크게 변화해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본 결산의 후반부에 위치한 어떤 앨범에 대해 논할 때 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그가 능숙하게 구사하던 네오-소울 및 가스펠, 재즈, 클래식/컨템포러리 R&B는 장르적 주류가 아니게 되었고, 그 자리는 보다 간-장르적인 매력으로 청자들을 사로잡던 ‘얼터너티브 R&B’(PBR&B)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14년만의 복귀작에서 그의 장기인 네오-소울을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본작의 소리들에 대한 주요한 공은 ― 본작의 아티스트명이 D’Angelo 단독이 아닌 D’Angelo and the Vanguard라고 명시되어있는 것처럼 ― D’Angelo와 본작 전체에서 함께한 빅-밴드 the Vanguard에게도 역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첫 트랙 「Ain’t That Easy」에서의 흥겨운 그루비함을 시작으로 「1000 Deaths」에서의 Jimi Hendrix를 연상케 하는 거친 질주, 「Sugah Daddy」에서의 재지한 비밥 사운드, 「Really Love」의 한껏 고풍스러운 느낌 등, 네오-소울의 범주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다채로운 분위기들이 the Vanguard의 연주를 통해 직조된다. 오랜 공백기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짜릿한 D’Angelo의 보컬, 그리고 본작의 무드를 살리기 위해 모든 트랙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되었다는 점 역시 본작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일 것이다.

『Black Messiah』라는 제목을 놓고 생각해본다면 결국 D’Angelo의 복귀는 네오-소울 거장의 성대한 부활과 같이 생각될 수 있겠지만, 본작에 녹아있는 노랫말들 면면을 고려한다면 동시에 그는 본작으로서 여기저기에서 차별과 혐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흑인들의 현실을 재현하고 구원하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앞선 문단에서 그의 공백기 동안 장르적 주류가 이행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시간동안 이행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010년대에 이르러, 흑인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작품으로서 흑인(주로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 대표될 것이다)들이 가지는 정치성을 재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본작의 노랫말은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Brown Sugar』나 『Voodoo』와 같은 전작들에 비해 훨씬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1000 Deaths」와 「The Charade」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1000 Deaths」의 경우엔 그 도입부에 흑인 정당 ‘흑표당’의 연설을 샘플링한 부분에서 “그들은 나를 언덕 너머로 보낼 거야.”2와 같은 라인들을 보다 정치적으로 읽히게 하고, 「The Charade」에선 “가해자들은 신자들을 위하고자 한다면 조심히 기도해”3와 같은 라인이 인상적이다. 「Til It’s Done (Tutu)」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지 알고 있나?”4와 같은 라인이 노골적이고, 본작에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재생되는 트랙 「Back to the Future」는 계속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표하는데, 이는 사랑 이야기와 흑인들의 재현이 뒤얽힌 본작의 흐름으로서 마치 차별과 혐오로 얼룩지지 않은 사랑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람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국 D’Angelo의 14년만의 복귀는 빅-밴드 the Vanguard와 함께 성공적이었고, 본작은 모든 것이 14년 전의 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세상에서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 좋은 향수로 남을 것이다. 2010년대에 순수하고도 정통적인 ‘네오-소울’ 걸작이라니, 그 이름만으로도 낯설지만, 또 그래서 더욱 새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

Solange, 『A Seat at the Table』, Saint, 2016.09

데뷔 이후 Solange가 백인 비평가들을 향해 흑인 음악에 대해 평하기 전에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부터 하라고 날린 거침없는 발언들과 그에 대한 백인 비평가 Jon Caramanica의 “너를 먹이는 손을 깨물지 마라.”5라는 문제적인 대응으로 대표되는 그녀와 백인 비평가들 사이의 비프는 본작, 『A Seat at the Table』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맥락이 될 것이다. 실제로 Jon Caramanica의 그러한 문제적인 발언은 본작에 수록된 트랙 「Don’t You Wait」에도 인용되기도 했고(“자, 난 나에게 반대쪽을 보여줄 손을 깨물기는 싫은걸 그래”6), 본작에서 Solange가 내는 목소리는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봐도 가장 저항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현실에 대한 재현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비록 본작에서 Solange가 쓴 노랫말은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형태로 부유하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서의 자신에게 닥치는 부조리함들을 애써 지우려고 노력하는 「Cranes In The Sky」로부터, 「Weary」와 「Don’t You Wait」에서의 고민과 직시,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Mad」에서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분노는 부조리함을 체감함에도 쉽사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현실의 차별 속에서 살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라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Interlude: Tina Taught Me」에서 자신의 어머니인 Tina Knowles에게 흑인으로서 가져 마땅할 자부심에 대한 조언을 들은 뒤 「Don’t Touch My Hair」에서부터 「Where Do We Go」로의 이어짐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대한 적실한 응답일 것이고, 「Interlude: For Us By Us」와 「F.U.B.U.」는 보다 구체적으로 발현된 흑인 주체들에 대한 송가일 것이다. “온 세상에 있는 내 Nigga들아”7라는 첫 라인에서 드러나듯, 「F.U.B.U.」는 오직 흑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흑인들만이 따라 부를 수 있을 트랙이다. 이렇게 본작에서 Solange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을 모든 흑인들을 위해 바치고, 때문에 본작의 마지막 트랙 「Closing: The Chosen Ones」의 끝이 “이제 우리는 여기 노예로 왔음에도 왕족이 되어 나가고, 우리가 진실로 선택받은 존재들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거야.”8라는 라인으로 끝나는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인 마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aphael Saadiq이 총괄 프로듀싱을 담당한 본작의 소리들은 Blood Orange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아티스트 Dev Hynes가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전작 『True』에서의 다채로움에 비해선 R&B 장르의 향이 짙게 풍기는 편이지만, 그 면면이 매우 훌륭하게 직조되어 차고 넘치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분명하게 울리는 드럼과 낮게 깔리는 현악의 조화가 인상적인 컨템포러리 R&B 트랙 「Cranes In The Sky」, 훅에서 백-보컬을 덧대는 것을 강조하며 마치 1950년대의 ‘두-왑’과도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Mad」, 약간의 전자음을 가미한 몽롱한 P-Funk 트랙 「Don’t You Wait」, 강렬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트랙의 전체의 인상을 지배하는 「Where Do We Go」와 같은 트랙이 그렇다. 또한 Raphael Saadiq은 본작에서 어느 정도 R&B 장르의 다양한 면면들을 부각시키고자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도 본작 발매 당시 이미 주류가 되어있었던 ‘얼터너티브 R&B’의 흐름을 배반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Don’t Touch My Hair」, 「Borderline (An Ode To Self Care)」, 「Don’t Wish Me Well」, 「Scales」와 같은 트랙들은 그러한 분석에 대한 뒷받침이 될 것이다. 본작에 담긴 서사의 이정표가 된다고 할 수 있을 ‘Interlude’ 트랙들에 나레이션으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보탠 아티스트 Master P 역시 주목해야 하고, 각 Interlude 트랙들과 다른 트랙들 사이에 연결점을 보충해 서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Raphael Saadiq의 기획력 역시 인상적인 지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본작에 대해 2010년대의 물음에 적실하게 응답하는 재현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도, 탄탄한 구성과 완성도 높은 트랙들의 면면, 그리고 감각적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탄생한 2010년대 R&B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에서 “모든 내 Nigga들아”9를 외치던 Solange의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모두에게 유효한 의미가 되어 날아가고 있다.

         

7

Kendrick Lamar, 『good kid, m.A.A.d city』, TDE, 2012.10

여러 음악의 장르들 중에서도 특유의 방법론으로 인해 아티스트의 자의식이 보다 강화되어 드러나게 되는 힙합 앨범의 특성상 그 노랫말이 다소간에 자전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이는 노랫말이 적히는 음악 장르들 중에서도 랩이라는 퍼포먼스의 독특함 덕에 같은 마디 위에 낱말들을 보다 빽빽하게 적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다). 실제로 과거의 많은 힙합 앨범들은 세계 위에 놓인 자신을 노랫말로서 드러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과거의 그 때와 스타일의 주류가 상당히 다른 차원으로 이행한 지금에서도 유의미하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그러한 특성에 주목한다면, Kendrick Lamar(이하 Kendrick)의 본작, 『good kid, m.A.A.d city』는 우리로 하여금 그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게 만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Kendrick은 그가 나고 자란 도시 Compton에서 보낸 그의 청소년기를 중심으로 본작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본작의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인 그의 전 애인 ‘Sherane’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첫 트랙 「Sherane a.k.a Master Splinter’s Daughter」에선 흑인 사회에 대한 차별과 혐오, 그리고 흑인 사회 내부에서의 갈등에 무지했던 어린 Kendrick의 모습이 그려지고, 다음 트랙 「Bitch, Don’t Kill My Vibe」에서 잠시 현실로 돌아와 “내가 색맹들과 어울린다면 어떻게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어?”10라는 노랫말로서 현재의 그가 적는 노랫말들에는 그의 삶과 상처가 담겨있다고 말하는 초반부는 본작의 이야기에 대한 훌륭한 인트로일 것이다. 우리는 이어서 「Backseat Freestyle」과 「The Art Of Peer Pressure」와 같은 트랙에서 Kendrick이 흑인 사회 내부의 갈등의 한 부분으로 녹아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고, 「good kid」에서 「m.A.A.d city」, 그리고 「Swimming Pools (Drank) (Extended Ver.)」로 이어지는 트랙들에서 그가 그러한 갈등 속에서 그의 친구 Dave의 죽음으로서 큰 반성과 전회를 겪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Real」에서 비로소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되는 깨달음을 얻는 장면과 아티스트로서 성공한 이후 Compton으로 돌아와 그의 우상이었던 Dr. Dre와 같이 공연을 하는 「Compton」에서의 장면을 보며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본작이 담은 Kendrick의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서사가 말하는 것은 인종을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고난을 겪어야했던 많은 흑인들의 삶 그 자체일 것이고, 이 때 Kendrick이 주인공이자 화자가 된 것은 단지 그들을 대표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Backseat Freestyle」에서 Martin Luther King Jr.와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으며 아이러니함을 부각시키는 장면이나, 「Poetic Justice」에서 Sherane이 사는 구역에 발을 들였다가 그 구역의 갱스터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장면, 「good kid」에서 흑인 갱스터와 백인 경찰 양 측에게 갱스터 집단과 관련되어있다는 같은 오해를 동시에 받는 장면, 「Swimming Pools (Drank) (Extended Ver.)」에서 Dave가 총격에 사망하는 장면과 「Sing About Me, I’m Dying Of Thirst」에서 죽은 Dave의 형이 Kendrick에게 성공한 아티스트가 되어 스스로 겪은 일을 모두에게 알려달라는 유언과 함께 사망하는 장면 등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된 일련의 장면들의 섬세함은 그것이 Kendrick이 겪은 경험이라는 영역을 넘어 모든 어린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직접 그린다. 본작의 아이러니는 본작의 이야기의 절정부에 해당하는 중후반부에 이르러 가장 높은 곳을 오른다. 우리가 본작의 이야기를 아이러니라고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작의 소리들과 Kendrick이 그리는 이야기 사이의 충돌에 기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본작의 소리들은 ― 그들이 최대한 웨스트-코스트 바이브 재현에 충실하면서 얼마나 훌륭하게 직조되었는지에 대해선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 때로 Kendrick의 이야기와 부딪치는 지점을 만들어내는데, 가령 어린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이 현실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가장 잘 통찰한 트랙 「good kid」에서의 강렬한 랩이 드러나고자 함은 그를 둘러싼 소리들이 바닥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모습과 충돌하고, 비교적 정석적인 트랩인 「m.A.A.d city」의 전반부는 그 노랫말의 내용과 무관하게 우리를 흥겹게 하며, 「Swimming Pools (Drank) (Extended Ver.)」의 강렬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훅은 “내 한계치를 넘는 독소에 난 익사하고 말걸”11이라고 말하며 깨어있고자 발버둥치는 Kendrick의 목소리를 취기로서 묻어버린다. 그러한 요소들은 본작에 녹아있는 이야기가 절대로 가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Kendrick은 어쩌면 본작을 ‘영화’와 같이 만들어(가령, 앨범이 시작할 때 들리는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같은 장치를 통해) 본작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의 가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가 겪었던 현실은 잔혹했으며, 그것이 현재의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이 겪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괴로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본작이 끝내는 희망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유도 그러한 부분과 맞닿아있을 것이다. Pitchfork가 본작에 대해 남긴 “본작 이후에 발매된 모든 자전적인 랩-앨범은 본작의 발자취 아래에 있다.”12라는 평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6

Kanye West, 『Yeezus』, Def Jam, 2013.06

첫 트랙 「On Sight」에서 펼쳐진 마치 레이저 쇼와도 같이 내리쬐는 전자음의 향연, 그리고 갑자기 그를 뒤집어버리는 성가대 샘플의 출현의 당혹스러움은 본작, 『Yeezus』의 시작부터 Kanye West(이하 Kanye)가 자신의 전작인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를 비롯한 이전의 커리어들을 딛고 새로운 지평으로 도약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On Sight」는 본작의 출발점으로서 Kanye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고의 인트로였을 것이다. 「I Am A God」의 중반부를 장식하는 Kanye의 소름끼치는 괴성과 「New Slaves」의 후반부에 Omega의 「Gyöngyhajú lány」를 샘플링하여 트랙의 흐름을 완전히 전복시켜버리는 장면, 「Blood On The Leaves」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웅장한 브라스 등, 본작은 그러한 방식들로 청자들의 감상을 일관적인 영역에서 이격시키는 데에 능숙하다. 총괄 프로듀서 Rick Rubin의 진두지휘 아래 Daft Punk, Gesaffelstein, Hudson Mohawke, Arca 등 걸출한 아티스트/프로듀서들이 모여 만들어낸 본작의 소리는 하우스, 애시드, 글리치, 인더스트리얼, 댄스홀 등 다양한 전자음악의 장르들이 뒤섞여 정제되지 않은 모양새와 같이 보인다. 그러한 소리들 밑에서 울리는 드럼/베이스는 「Guilt Trip」에서와 같이 지극히 전자음악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Black Skinhead」나 「Bound 2」와 같이 과거 올드-스쿨 힙합을 연상케 하는 경우도 있어 듣는 입장에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사실 이러한 사운드 디자인이 본작 이전까지의 힙합의 역사에서 전무했었냐 한다면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데, 가령 우리는 본작이 발매되기 1년여 전에 발매된 Death Grips의 『The Money Store』에서 본작에서보다 더욱 강력하고 파괴적인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느낄 수 있고, 그보다 더 이전의 작품으로는 2010년에 발매된 M.I.A.의 『/\/\ /\ Y /\』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2000년대로 눈을 돌려보면 강렬한 금속제 소리들을 주로 선보이던 Dälek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힙합 리스너들의 입장에서 지극히 혼란스럽고 불친절하게만 느껴지던 본작이 오히려 본작보다 앞선 선례들을 비교대상으로 할 때 상대적으로 잘 들리는 작품인 것처럼 모습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했던 소리와 드럼 사이의 부조화와도 어느 정도 연관되는 지점인데, 아무리 본작의 소리들이 이리저리 찢어지고 뒤섞이면서 불친절함을 유도한다 할지라도 정작 그 밑에서 울리는 드럼은 Kanye의 랩이 잘 기댈 수 있게끔 정형적으로 짜여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사실 본작에 대한 감상이 본작의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지던 간에, 결국 Kanye는 본작을 ‘랩 앨범’의 형식성에서 탈출시키고 싶진 않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본작을 처음 감상했을 때 심히 당혹감을 느끼고, 본작의 소리들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 본작을 반복하여 감상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감상의 중심이 본작의 소리가 아닌 Kanye의 목소리로 이행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가 Kanye가 설계한 바닥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하듯) ‘불친절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기만적’이면서도 ‘불쾌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Hold My Liquor」의 후반부에 들어서는 탁한 기타 솔로를 제외하고 본작의 모든 트랙의 모든 부분들에서 Kanye의 (혹은 객원의) 목소리가 빈 틈 없이 채워져 있고, 그 목소리는 Kanye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랩-퍼포먼스의 영역에서 벗어나있지 않다. 오히려 벗어나있는 것은 그에 담긴 내용들일 텐데,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공격적이면서도 외설적인 노랫말로 빼곡한 그의 랩은 존재감이 강렬한 본작의 소리들에 뒤지지 않겠다는 듯 자의식 과잉을 뽐낸다. 그러한 자의식의 과잉은 그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들에 닿고, 나아가 신적인 권능에까지 손을 뻗친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을 그가 노랫말로서 사용함에 있어 그 결과들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저급하다는 점에 있다. 「I Am A God」에서 신과 인사할 수 있을 정도의 권능을 가진 Kanye는 그의 권능을 고작 ‘크루아상’을 주문하는 데에 사용하고(“내 빌어먹을 크루아상 좀 서둘러서 내와”13), 「Blood On The Leaves」에서는 노예제가 존속하던 시절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이 겪었던 비극을 담은 Billie Holiday의 「Strange Fruit」을 샘플링해놓고는 인종차별 문제를 애인간의 갈등으로 치환하는 문제적 라인을 남기기도 한다(“그들을 별거시켜야해, 난 그를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르지”14). 또한 「I’m In It」에서는 Martin Luther King Jr.의 연설의 한 구절을 외설적인 노랫말로 차용해 그 상징성을 뭉개버리기까지 한다.(“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마침내 그들은 자유가 되었습니다.”15) 따라서 본작에 어떠한 불쾌함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힙합의 형식은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그 규격에서 벗어난 전자음악의 소리들로 자신이 몸담은 장르의 형식을 뒤흔들어버리는 기만과 흑인 음악을 하고 흑인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아프리칸-아메리칸의 투쟁의 역사성을 웃음거리처럼 보이게 하는 당황스러움에서 비롯될 것이다(그나마 현재의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컨셔스하다고 평가되는 트랙 「New Slaves」 역시, 나에게는 “너흰 그냥 흑인들일 뿐이었는데 이젠 모두 즐기고 있잖아”16와 같은 노랫말로서 흑인 사회 내부의 문제들을 희석시키고 ‘노예’라는 이름이 가진 반-백인적인 역사성을 소거하는 말장난과도 같다). 그래서 본작은 많은 이들이 Kanye에게 ― 특히 완벽에 가장 근접했다고 할 수 있을 5집의 발매 이후에 ― 기대했던 ‘힙합’을 무시하는 비웃음과 같고, 동시에 2010년대 차별에 대한 재현으로서 드러나는 흑인 음악의 방향성을 짓이겨버리는 모독과도 같다. 우리는 이미 본작에서 ‘신’과 같이 으스대던 Kanye가 끝내는 신의 이름 아래 신실해졌다는 사실(2019년에 발매된 앨범 『JESUS IS KING』을 대표적으로)을 알고, 더 이전에 ‘노예제’에 대해 남긴 Kanye의 문제적인 발언들을 알고 있다. 어쩌면 본작은 그러한 Kanye의 행보에 대한 예고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본작이 남긴 유산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본작 이후의 흑인 음악의 방향성에 영향을 끼쳤고, 전능한 Kanye께서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크루아상을 가지고 오라고 소리를 질렀는지 역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본작을 두고 ‘New Kanye’의 탄생이라 상찬했었지만, 사실 우리가 목도했던 것은 새로운 Kanye가 아닌 혼란만이 가득한 페르소나의 일부분이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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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Ocean, 『channel ORANGE』, Def Jam, 2012.07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본작 『channel ORANGE』에 대해 우리는 청자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소리와 부담 없이 따라부를 수 있을 명징한 멜로디, 그리고 유려한 Frank Ocean의 가창을 바탕으로 접근성이 높은 앨범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첫 트랙 「Start」에서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 따온 소리로서 친숙함을 높이는 방식, 「Thinkin Bout You」에서 먹먹한 신시사이저와 함께 랩에서의 그것과 같이 라임을 강조하는 가창(my room-excuse-it usually), 「Sweet Life」에서 훅에 이르러 상승하는 멜로디 라인, Mary J. Blige의 「Real Love」를 샘플링한 트랙 「Super Rich Kids」에서 보존된 원곡의 관능적임과 훅/Verse 간의 대비되는 무드, 「Crack Rock」에서의 감각적인 보컬의 배치 등은 대표적이다. Frank Ocean의 음색은 「Pyramids」로부터 시작되는 앨범의 중반부를 제외하면 시종일관 가라앉은 형태를 유지하는 소리들과 적실한 조화를 이루고, 「Pyramids」에서 「Monks」로 이어지는 밝은 소리들이 가득한 트랙들 위에서는 적절하게 톤을 올리며 그와 맞춰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본작에 대해 내가 앞으로 적어내릴 여러 가지 서술들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본작은 이미 그 자체로 듣기 좋으면서도 훌륭한 작품성을 가진 앨범이라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작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맥락들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면, 본작이 어떻게 2010년대의 ‘클래식’ 중 하나로 남고, Frank Ocean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2010년대의 중요한 위치에 서는지를 우리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Frank Ocean은 본작에서 기존 R&B 장르의 음악들이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전회들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첫 번째 전회는 본작이 발매되기 이전 그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그의 성적 지향성을 커밍-아웃함으로써 본작에 대한 독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행할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선-공개 싱글로 발매되었던 「Thinkin Bout You」에서 “내 눈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도, 소년이여, 지금 울고 있는걸.”17이라는 라인이 적힘은 많은 이들에게 문제적으로 다가왔었다. 믹스테잎 『nostalgia, ULTRA』와 같은 작품에서 지극히 ‘헤테로’적인 노랫말을 적었던 그였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지향성에 대한 의심을 표했고, 이에 그는 본작이 발매되기 얼마 전 자신의 텀블러에 스스로 ‘바이-섹슈얼’임을 커밍-아웃하는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본작에 대한 독해는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Bad Religion」과 같은 트랙에서 “나의 위장에 대한 진실을 말해줄 수 없어요.”18와 같은 라인이 그렇고, 또 「Forrest Gump」에서 “넌 충분히 몸짱에다가 강인한걸.”19과 같은 라인이 그럴 것이다. 본작을 통해 커밍-아웃한 Frank Ocean의 선택은 그렇게 일반적으로 대중음악에서 사용되어오던 낱말들을 자신의 지향성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로 뒤집었으며, 더 나아가 ‘헤테로’하지 않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혐오하던 흑인 음악계를 그 내부에서부터 분열시키던 움직임이기도 했다. 가령 우리는 Frank Ocean의 커밍-아웃에 대해 그를 옹호하던 아티스트들의 이름과 그를 비난하던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같이 기억할 수 있다. 이는 곧 흑인 음악계에서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아예 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성-소수자들의 이름이 그 내부에서부터 새겨지는 순간이었고, Frank Ocean의 커밍-아웃이 주목받던 메이저 흑인 아티스트들 중 커밍-아웃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는 더욱 기념비적이다. 그의 커밍-아웃은 그렇게 그가 몸담고 있던 규칙들의 반복과 인용을 전복하고 교란하였고, 나는 그를 높이 산다.

또한 본작의 노랫말들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앞서 설명한 바 있는 Frank Ocean 자신의 맥락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구체화하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본작의 제목이 『channel ORANGE』인 이유가 있다면, 트랙마다 다양한 인물들이 그의 삶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 이야기들이 하나로 주목하는 것은 마치 미국에서 통용되는 죄수복 색상 ‘오렌지색’과 같은 미국 사회의 어두움일 것이고, 본작은 단지 그를 송출하는 ‘채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Sweet Life」에서 매트릭스에 나오는 ‘파란 약’을 먹고 “내 TV는 HD가 아니야, 그건 너무 사실적이라”20라고 말하며 현실의 어두움을 외면하고 그를 달콤함으로 포장하는 화자의 모습이나, “은수저”21라는 낱말로 드러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의 대물림과 그로 인해 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Super Rich Kids」에서의 화자의 모습, 마약에 빠져 자신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망가뜨리는 「Crack Rock」에서의 화자의 모습 등은 대표적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그의 본의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성-노동자 혐오로 점철된 트랙 「Pyramids」 역시 그러한 어두움에 대한 거대한 비유로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앞서 수행한 「Thinkin Bout You」, 「Bad Religion」, 「Forrest Gump」와 같이 Frank Ocean이 직접 화자로 등장하는 트랙들에 대한 독해를 살핀다면, 그의 성적 지향성과 그에 대한 사회의 배격 역시 그가 조명하고자 했던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나는 본작에 대해 ‘접근성이 높은 앨범’이라고 칭한 바 있다. 이번 문단까지 본고를 끌고 온 다음 그를 수정한다면, 본작의 ‘접근성 높음’은 단지 본작의 노랫말들을 음미하지 않고 지나쳤을 때에만 한정될 것이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본작의 흐름을 부여잡고 본작에 새겨진 노랫말들을 직시한다면, 본작에 대한 감상은 첫인상을 벗어던짐은 물론 꺼림칙하게까지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본작에서 부유하는 나른함과 포착되는 공백들은 오히려 그러한 어두움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함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남는다.

Frank Ocean이 본작에서 선보인 두 번째 전회란 바로 이러한 측면에 맞닿아있을 것이고, 이는 내가 앞서 『Black Messiah』에서 대충 설명하고 넘긴 바 있는 ‘얼터너티브 R&B’(당시에는 ‘힙스터 R&B’ 내지는 ‘PBR&B’라는 이름으로 먼저 드러났지만)의 출현과 주류화와 깊게 연관되어있을 것이다. How to Dress Well의 2010년 발매된 데뷔 앨범 『Love Remains』에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을 얼터너티브 R&B는 사실 그 이전부터 점점 모호해져만 가던 전자음악과 흑인 음악 사이의 경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포착한 움직임이라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간-장르적인 매력으로 많은 청자들을 사로잡던 얼터너티브 R&B의 주류화에 크게 일조한 아티스트는 Frank Ocean, Miguel, The Weekend의 셋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고, 여기에 이름을 더 추가하자면 (엄밀하게 얼터너티브 R&B를 구사하지는 않았더라도) Drake의 이름 정도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Frank Ocean의 본작 『channel ORANGE』와 동년에 얼터너티브 R&B로서 기념비적으로 남은 그들의 작품들을 발매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본작이 유독 얼터너티브 R&B의 바이블처럼 남은 이유는 본작에서 드러난 그의 영민함으로부터 비롯할 것이다. 가령 같이 얼터너티브 R&B를 구사하던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의 어두움을 포착하고자 노력한 Frank Ocean의 노랫말은 앞서 설명했듯 본작의 소리와 함께 얼터너티브 R&B 특유의 바이브와 맞물리며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러닝타임이 10분에 육박하는 대곡 「Pyramids」에서의 전자음과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한 변칙적인 소리들의 전개와 확산, 조화는 지극히 얼터너티브 R&B스럽게 이루어지며 장르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거대하게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렇기에 본작은 다양한 차원에서 2010년대의 대중음악을 뒤흔들었던 작품이었다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나는 2010년대의 대중음악을 논할 때 본작의 이름을 섣부르게 제외한 채 논할 수 없고, 나아가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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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A Twigs, 『MAGDALENE』, Young Turks, 2019.11

2012년 『EP1』의 발매로부터 그녀의 커리어를 시작한 FKA Twigs는 전자음의 적극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2010년대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현상 중 하나였던 ‘장르 사이의 경계를 뒤흔들고 모호하게 만드는 교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로서, 2010년대의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역시 중요하게 논해져야 할 이름일 것이다. 초창기에 그녀는 ‘얼터너티브 R&B’를 구사하는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논함에 있어 섣부르게 R&B의 이름을 덧씌우는 행위를 경계해야만 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녀 스스로가 “Fuck alternative R&B!”라는 말로서 그녀의 방향성이 얼터너티브 R&B와는 다른 차원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기 때문일 것이고, 실제로 그녀의 음악은 다른 얼터너티브 R&B 음악들이 가진 전형성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얼터너티브 R&B 좆까!”라는 발언은 흑인과 같이 보이는 그녀의 피부색만을 두고 그녀의 음악을 재단하던 일부 비평가들에게 날리는 일침이기도 했지만(실제로 그녀는 스페인계 영국인인 어머니와 자메이카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녀가 또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녀의 음악은 R&B의 범주에 놓고 이야기하기엔 불친절한 부분들이 많다. 가령 우리는 2014년에 발매된 그녀의 또 다른 걸작 『LP1』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데, 반짝거리는 전자음들과 이따금씩 그와 상충하는 악기들의 연주 위로 종잡을 수 없는 멜로디로서 흘러가는 FKA Twigs의 목소리는 불친절함을 넘어 위태롭다고까지 느껴지며 우리의 ‘편안한’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영하는 FKA Twigs의 목소리가 결국엔 어떠한 독보적인 그루브를 그려내고(그루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온전히 우리의 감상을 배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 그 주위를 맴도는 소리들이 일단은 드럼/보컬의 구도로 집중된다는 사실에 우선성을 부과할 때, 우리는 그녀의 음악이 Björk이나 Kate Bush 등을 선배로 두는 ‘아방가르드-팝’과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아간 얼터너티브 R&B 사이 어디쯤에 있다라고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201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기에 발매된 본작 『MAGDALENE』은 FKA Twigs가 선보였던 그러한 시도들 중에서도 가장 완성된 형태로 드러난 작품이고, 또한 그렇기에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위태로우면서도 가장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을 작품이라는 아이러니를 끌어안기도 한다. 『MAGDALENE』이라는 제목은 해석 과정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곡해되어 전해졌던 성서의 등장인물 ‘Mary Magdalene’에서 차용한 것이고, 여기에 본작이 발매되기 이전에 FKA Twigs가 겪었던 여러 사건들(가령 Robert Pattinson과의 파혼과 자궁 종양 제거 수술, 그러한 사건들로 말미암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배운 폴-댄스 등)을 같이 떠올려본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본작이 담은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공통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사항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있다. 가톨릭에 뿌리내린 남성-권력에 희생되어 그 중요성이 격하당하고 타락한 여인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던 Mary Magdalene의 이야기는, 가톨릭 교육을 받았던 FKA Twigs에게 지금까지도 서양 사회 전반에 상존하는 남성중심 체계의 시발점과 같이 읽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본작은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봐도 가장 정치적으로 독해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첫 트랙 「thousand eyes」에서 그녀가 여린 목소리로 “나를 되돌려놓지 않으면 천 개의 눈이 깨어날 거야”22라고 노래함은 그녀의 목소리를 휘감는 성가대 풍의 백-보컬과 근엄함을 연출하는 정형성으로 인해 마치 기독교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를 여성-서사로서 독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Mary Magdalene을 타락한 여인으로 격하시키던 중세 서양의 종교적 헤게모니가 그녀의 입지를 검열하였다는 사실과 중반부부터 절규하듯 흘러내리는 트랙의 소리들을 같이 상상했을 때에 가능할 것이다. 이는 곧 FKA Twigs가 Mary Magdalene을 스스로에게 투영하여 내비친 결과이다. 본작에서의 위태와 고뇌는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다음 트랙 「home with you」는 「thousand eyes」에서 FKA Twigs가 Mary Magdalene을 투영한다고 했을 때, 현재에 이르러 어느 정도 본래적인 입지를 회복한 Mary Magdalene에 대한 재-전복의 시도이다. 어두운 전자음이 일그러지는 파트와 오케스트레이션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파트가 교차되어 드러나는 본 트랙에서 그녀의 태도는 파트를 오갈 때마다 극명하게 갈린 채 드러난다. 이 때 전자를 대표하는 노랫말은 “공상과학소설에서도 나 같은 영웅은 본 적이 없지”23일 것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노랫말은 “그렇다면 나 역시 외로웠다고 너에게 말했을 텐데”24일 것이다. 자의식이 과잉된 채 구함의 주체가 되어, 오히려 구함을 받는 대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위에 서려고 하는 “영웅”이 끝내는 자신 역시 외로웠음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며 상대를 끌어안는 모습은 극적으로 전개되는 소리의 구성과 함께 장대한 영웅담과 같이 다가온다. Mary Magdalene의 입지가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할지라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녀가 예수의 말씀을 위해 쏟았던 헌신보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을 먼저 기억하며 그녀를 잊는다. 전자와 후자의 극명한 대비가 각각 예수의 사도들, 그리고 Mary Magdalene을 떠올리게 한다면, 「home with you」는 예수에게 쏟았던 Mary Magdalene의 헌신으로 대표되는 ‘남성을 위한 헌신’이라는 여성에 부과된 역할을 영웅담으로 뒤바꾸어 그 위계를 전복하는 시도라고 독해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FKA Twigs는 “사과, 체리, 고통”25과 같은, 자궁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던 개인적 경험을 덧씌우며 「thousand eyes」에서의 투영을 이어간다). 끝내 Mary Magdalene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트랙 「mary magdalene」에서는 그러한 시도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여성들의 일, 여성들의 특권, 헌신하는 여성들의 시간”26이라고 노래하는 첫 라인으로서 여성-서사임을 명백히 하고, “너를 쓰다듬는 육아의 숨결”27과 같은 라인으로 앞선 트랙들의 이야기와의 연결점을 만들며, “점령되지 아니한 역사”28라는 낱말로서 Mary Magdalene이라는 인물의 역사성을 본작에 직접 개입시킨다. 충돌하게 될 지라도 상대를 끌어안을 것이라는 외침은 「home with you」의 이야기와 쌍을 이루며, 이는 다시 한 번 여성성과 남성성의 위계를 뒤바꾸는 반복적인 시도이다. 결국 「mary magdalene」, 나아가 본작에서 재현되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정치성이자 그 대척점에 놓인 남성성의 이름이다. 본 문단에서 설명한 「home with you」와 「mary magdalene」은 대표적인 트랙일 것이고, 이 두 트랙을 참조했을 때 본작의 다른 트랙들에서도 여성성의 재현과 전복이 드러난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우리는 본작의 여성-서사의 방향성을 이해했을 때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본작에 적힌 노랫말들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김도헌이 밝혔듯 『LP1』에서 상대를 ‘유혹하는’(선택-받음을 갈구하는) 자였던 FKA Twigs는 본작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가 된다. 「sad day」에서 자신에게 소원을 빌어보라며 권하는 모습은 『LP1』에서의 유혹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상대가 과연 자신이 헌신할 수 있을 만큼의 진실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holy terrain」에서 객원 아티스트로 참여한 Future와 Verse를 주고받는 모습은 「sad day」에서 드러난 물음의 연장에 놓일 것이다(이렇게 해석할 때, 「holy terrain」의 시작부터 “Bitch”라는 여성 혐오적인 낱말을 사용하는 Future의 모습은 본작의 약점으로 남을 것이다). 「fallen alien」에서 “나에게 바란다고 말하지 마, 다 거짓인 걸 알고 있으니”29와 같은 라인으로 드러나는 것은 앞서 드러난 선택의 주체와 대상이 전복된 구도에서 전복되기 이전의, 즉 현실의 구도를 상상하며 철저하게 여성의 것으로서 FKA Twigs가 분출하는 분노일 것이며, 「mirrored heart」에서의 격한 물음이나, 「daybed」에서의 우울함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역시 비슷한 차원의 여성-서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면 「mary magdalene」 이후로 이어지는 후반부 트랙들은 점점 재현의 대상을 좁은 차원으로 한정하게 되는데(더 구체적으로는 「mirrored heart」에서 구함과 위함의 대상을 직접 호명하고 한정하는 부분에서부터), 그러한 한정은 이내 FKA Twigs라는 한 여성에게 향하게 된다. 마지막 트랙 「cellophane」은 그렇기에 본작이 더욱 비극적이면서도 굳건한 여성-서사로서 독해되게 하는 최후의 장치일 것이다. 내가 이전에 썼던 것처럼, 「cellophane」은 FKA Twigs라는 여성이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과 그로 인해 받게 된 수많은 관심과 비판에 추락하는 모습을 투명하게 비춘다. 「thousand eyes」에서 출발해 「home with you」와 「mary magdalene」을 거치며 Mary Magdalene을 스스로에게 투영했던 그녀는, 마지막에 이르러 그러한 투영에서 빠져나온 채 그녀 자신만을 모두에게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작에서 그녀가 선보였던 여성성의 재현에서 벗어난 채 온전히 개인적인 서사로 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cellophane」이야말로 Mary Magdalene으로 대표된 여성성 박해의 역사가 FKA Twigs에게도 역시 덧씌워져있음을 비로소 인식하는 과정의 체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순간 그녀의 경험은 곧 모든 여성의 경험이 되어 나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본작은 내가 앞서 말했듯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가장 위태로운 장면들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내가 밝혔듯 본작은 그 안에 담긴 그러한 이야기들이 보다 잘 들릴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소리들의 난해함이 가장 덜어진 작품이기도하다. 「thousand eyes」나 「home with you」와 같이 전자음의 개입이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트랙들이 그럴 것이고, 객원 아티스트 Future와의 호흡을 고려한 듯 트랩의 색을 상당부분 가미한 「holy terrain」과 같은 경우 역시 그렇다. 대신 Nicolas Jaar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본작의 프로덕션은 FKA Twigs의 보컬이 드러내는 섬세한 감정선을 한층 더 부각시키는 방향에 집중한다. 가령 「sad day」의 경우 부유하는 신시사이저가 조심스럽게 발을 딛는 그녀의 보컬을 뒷받침하다가도, 트랙이 진행되면서 빠르게 질주하는 타악기를 통해 그녀의 물음을 조금 더 극적인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home with you」의 탁월한 구성이 어떻게 그녀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감쌌는지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고, 이외에도 「fallen alien」의 훅에서 드러나는 격정이나 「mirrored heart」 후반부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소리들, Oneohtrix Point Never의 감각적인 프로듀싱으로서 보다 세밀하게 연출된 「daybed」에서의 우울함 등 역시 그렇다. 「holy terrain」에서 가장 기성 팝 음악에 근접한 소리를 선보였음에도 그를 독보적인 멜로디-메이킹으로 차별화시킨 FKA Twigs의 공도 본작에서는 크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본작은 여러 방면에서의 탁월함을 바탕으로 그녀의 커리어 최고작으로 남았음과 동시에, 2010년대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던 여성 문제와 그들의 재현에 있어 그녀만의 방식으로 독보적이게 응답한 작품으로 남았다. 대중음악의 장르들 사이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교란하던 교란자의 역할 역시 본작의 그녀에게도 유효하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기에 이만큼 적실한 작품이 없다.

         

3

Beyoncé, 『Lemonade』, Parkwood, 2016.04

Beyoncé의 이름은 이미 이전부터도 대중음악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던 이름이었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2010년대 팝의 아이콘과 같이 되었던 것은 2013년 12월 발매된 셀프 타이틀 앨범 『BEYONCÉ』의 발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프로모션이나 바이럴 마케팅 같은 것 없이 갑작스럽게 발매된 앨범은 수많은 비평가들과 청자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겼고, 그에 담긴 트랙들 역시 이전까지의 Beyoncé의 음악들보다 한 단계 이상 진일보한 탁월한 결과물들로 엄선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BEYONCÉ』를 통해 그녀가 마치 2010년대의 대중음악을 정확하게 통찰했을 뿐 아니라 그 다음 세대 음악계의 흐름 역시 그럴듯하게 예언했다는 것일 텐데, 이는 『BEYONCÉ』가 모든 수록 트랙들에 대한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17개의 비디오로 구성된 ‘비주얼-앨범’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BEYONCÉ』의 갑작스러운 발매가 전한 것이 싱글 중심으로 전개되며 앨범-음악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던 당시의 시대에 울리는 경종이었다면, ‘비주얼-앨범’의 형식성은 앨범의 발매 수 년 뒤에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던 ‘유튜브-음악’ 시대에 대한 선구적 통찰과도 같았던 것이다. 비록 어떠한 사전 프로모션도 없었을 지라도, 대중들은 과감한 그녀의 행보에 열광했고, 결국 『BEYONCÉ』는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으로 남았다. 그렇게 Beyoncé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중음악의 규칙들을 스스로 깨부수고, 또한 그들을 스스로 재-정립함으로서 2010년대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떠올랐고, 그렇게 그녀는 진정한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이 되었다.

『BEYONCÉ』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발매된 본작, 『Lemonade』는 Beyoncé가 다시 한 번 이루어낸 도약이다. 본작은 『BEYONCÉ』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프로모션이 없다시피 했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녀가 그녀의 배우자 JAY Z가 운영하는 스트리밍 플랫폼 TIDAL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선공개 싱글 「Formation」을 TIDAL에서 독점 공개한 것이나, 앨범의 공개를 일정 기간 동안 TIDAL에서만 우선적으로 수행한 것으로서 그녀는 자신이 현재 스트리밍 중심의 음악 시장의 핵심이란 무엇인지를 다른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 또한 본작에서는 『BEYONCÉ』의 ‘비주얼-앨범’이라는 형식성을 넘어, 아예 모든 트랙들의 뮤직비디오를 한데 묶어 영화와 같은 형식으로 발매하는, ‘앨범-무비’라 부를 수 있는 형식을 채택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소말리아 출신 시인 Warsan Shire의 시를 Intuition(직관), Denial(거부), Apathy(무관심), Reformation(개혁), Forgiveness(용서), Hope(희망), Redemption(구원)라는 섹션들로 나누어 그 위로 본작의 각 트랙들을 엮어내는 방식을 취한 한 편의 단편 영화는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임과 동시에 본작에 담긴 이야기들을 잘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본작이 발매되기 이전 Beyoncé를 둘러싼 가십은 본작의 이야기를 지탱하는 주축 중 하나가 되었다. 2014년 멧 갈라 애프터파티에 참여한 Beyoncé가 당시 그녀의 여동생 Solange가 자신의 배우자 JAY Z를 폭행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장면이 CCTV를 통해 유출되었었고, 이로 인해 Beyoncé와 JAY Z 간의 불화에 대해 많은 루머들이 양산되었었다.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이었던 Solange와 JAY Z를 비롯해 Beyoncé 역시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전말은 본작을 통해 음악으로서 꽃핀다. 첫 트랙 「Pray You Catch Me」에서 상대가 조금 더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슬픈 목소리를 시작으로 「Hold Up」에서의 의심과 갈등, 「Don’t Hurt Yourself」와 「Sorry」에서의 노골적인 분노는 외도하는 사랑에 대해 Beyoncé가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음악적으로 정제된 채 드러난 기제들일 것이며, 그 대상은 “넌 그저 그런 년이랑 결혼한 게 아니라고 새끼야”30와 같은 라인을 통해 그녀의 배우자 JAY Z로서 구체화된다. 커리어의 매 순간마다 그녀를 따라다녔던 가십들에 대해 언제나 적실한 방향의 대응책을 찾았던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본작은 결국 이별의 서사를 담지 않았고, 「Forward」에서의 용서와 「All Night」에서의 극복, 그리고 본작이 발매되고 수개월 뒤 그녀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밝힌 사실들을 참조한다면 본작이 담은 것은 진실한 사랑으로서 상대의 잘못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는 장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Beyoncé의 거침없는 당당함 아래 죄 지은 상대에 대한 용서이자 구원과도 같이 그려지고, 「Formation」에서의 “너는 흑인 Bill Gates가 되고 있는 거겠지, 내가 끝내주니까”31와 같은 라인을 대표적으로 본다면 본작의 이야기는 여성이 남성을 용서하고 구함으로서 완성시킨다는 여성-서사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또한 Led Zepplin의 「When the Levee Breaks」를 샘플링한 시원한 록 사운드를 뽐내는 「Don’t Hurt Yourself」, Isaac Hayes의 「Walk On By」를 현대판 트랩으로 재구성한 트랙 「6 Inch」, 흥겨운 스윙 재즈를 선보이는 「Daddy Lessons」, 발라드의 절절함을 바탕으로 그 감정을 한껏 드러내는 「Sandcastles」와 「Forward」 등, 본작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Beyoncé의 목소리를 서포트하는 다채로운 소리들의 탁월한 구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논한 것들에 대해 괄호 친다고 했을 때, 그럼에도 내가 본작을 높게 사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본작을 통해 Beyoncé가 선보인 또 다른 전회와 그로 인한 충격에 관련할 것이다. 가령 우리는 본작의 선공개 싱글로서 「Formation」이 발매되었을 때를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는데, 해당 싱글이 가져다준 충격은 스트리밍 시대에 반하는 독점 TIDAL 발매라는 그녀의 선택과도 관련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보이는 Beyoncé의 태도다. “난 나로부터 이어받은 우리 아가의 아프로 머리가 좋아. 또 나는 Jackson Five의 콧구멍을 닮은 내 Negro 코도 좋고”32라는 라인을 대표적으로 아프리칸-아메리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아로새기고, “자, 여성들아, 이제 우리 대형을 갖추자”33라는 라인으로서 ‘흑인 여성’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안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앞세우는 모양으로 드러났다. 「Formation」의 서사가 ‘여성’보다 ‘흑인’에 우선성을 부과한다는 사실은 또한 “내 아버지는 Alabama로부터, 어머니는 Louisiana로부터”34라고 외치며 많은 흑인들이 미국 남부로 끌려와 노예가 되었던 역사를 부각하는 라인,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아웃트로에서 New Orleans의 인종차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Trouble The Water’의 음성을 따온 장치로서 정당화될 것이다. 이러한 인종적 문제틀을 주목할 때 우리는 본작의 중심으로 「Formation」과 함께 「Freedom」을 같이 내세울 수 있는데, 반복적으로 “Freedom”을 외치며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는 승리자가 될 것임을 외치며 다짐하는 Beyoncé의 목소리와 『To Pimp A Butterfly』를 통해 차세대 흑인 사회의 리더이자 아이콘이 된 Kendrick Lamar가 “나를 강탈하고 속이는 국가적 위선”35이고 외치며 미국 내 백인 중심의 시스템을 거세게 비판함이 교차할 때 그것은 거센 울림이 되어 나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황두하가 썼듯, Trayvon Martin, Tamir Rice, Mike Brown 등 백인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사망한 흑인 청년들의 부모가 본작의 단편 영화에 등장함 역시 본작이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장중하게 흑인 사회의 비극을 재현하는 작품임을 우리에게 되새긴다.

사실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이라는 나의 표현이 무색하게, 본작이 발매되기 이전의 Beyoncé는 흑인이었음에도 차별에 고통 받는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정치성을 작품에 재현하는 방향으로는 응답하지 않았던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Independent Women」, 「Run the World」, 「Single Ladies」 등 그녀가 추구하던 방향성은 수동적인 여성상의 능동적 전회를 현실의 여성들에게 독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었고, 이는 전작이었던 『BEYONCÉ』가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여성적인 섹슈얼함을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이어지던 흐름이었다. 여기에 흑인 음악을 구사하면서도 다른 흑인 아티스트(특히 힙합 장르의)들과 다르게 마약과 같이 백인들이 흑인 사회에 덧씌운 스테레오타입을 비껴가며 ‘모범적’으로 보였던 그녀의 행보는,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백인 청자들의 지지를 긁어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참조한다면 첫 문단에서 내가 『BEYONCÉ』에 대해 수행한 설명은 무력화된다. 『BEYONCÉ』의 성공은, 그리고 그 이전에 『BEYONCÉ』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게 했던 Beyoncé의 커리어-쌓음은 그녀 자신만의 것이 아닌, 흑인 사회와 그들의 음악에 스테레오타입과 다소간의 불만을 가졌던 백인 청자들의 지지와 같이 놓여야 설명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Beyoncé는 본작을 통해 과감하게 그를 뒤집어버렸고, 이는 ― Jon Caramanica이 Solange에게 했던 말을 재인용하자면 ― ‘그녀를 먹이는 손을 깨무는’ 행위였다. 파장은 엄청났다. 그녀의 여성-서사를 이어가면서도 흑인 사회의 재현에 충실했던 본작을 두고 많은 백인 청자들이 당혹스러움과 비판을 이어갔고, 미국의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아예 ‘The Day Beyoncé Turned Black’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따로 제작할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 Beyoncé가 제 50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흑인 정당 ‘흑표당’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은 결정타였다. 2017년 Grammy Awards에서 수많은 논란 속에 Adele의 『25』가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것은 그에 대한 백인 청자들과 비평가들의 대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36 그러나 결국 본작은 Beyoncé가 여성과 흑인이라는 자신의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비로소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았음을 알리는 위대한 선언과도 같이 남았고, 그 반작용으로 떠오른 무수한 의문과 비판은 단지 그녀의 전회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알리는 증거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본작을 통해 오직 ‘흑인 여성’만을 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섣부른 오해는 하면 안 될 것이다. 본작의, 그리고 Beyoncé의 영민함은 여전히 모든 여성들의 편에 있어서도 굳건하다. 단지 그녀는 그녀와 그녀의 조건들의 본래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다시 한 번 수행하였을 뿐이고, 골머리를 앓는 것은 오롯이 백인-남성적 체제에 선 사람들이었으니, 이 얼마나 멋진 한 방인가.

         

2

Kanye West,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Def Jam, 2016.04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사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기가 민망할 따름이다. 본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은 찬사가 오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비록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더라도, 본작이 발매된 2010년 11월 이후 모든 비평매체의 Hype는 본작을 조준했으며 당시부터도 이미 본작이 2010년대의 대중음악을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치 중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상찬이 가득했다. 고작 2010년대의 시작으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 발매된 앨범이 말이다! 그러한 상찬은 사실이 되었다. 2010년대가 마무리된 지금 본작은 2010년대의 음반들 중에서도 ‘정말로’ 가장 중요하면서 뛰어난 앨범 중 하나로서 손꼽히고 있고, 본작에 가장 큰 Hype를 주었던 매체 중 하나인 Pitchfork는 그들의 연대결산에서 본작에 2위를 줬다는 이유로 상당한 비판을 감내해야만 했다(물론 여기에는 그들이 1위로 올린 음반인 Frank Ocean의 『Blonde』를 논함에 있어 “『Blonde』는 미국인을 뜻하는 동의어이다”37라는 다소 무리수 섞인 평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조금 과장 섞어서 말하자면, 2010년대를 통틀어 본작 이상의, 아니, 본작만큼이라도 Hype를 받았던 앨범은 본작 이외에는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굳이 더 할 말은 없다. 이미 본작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너무나 많은 글들이 나와 있고, 그 중에서는 또 내가 본작에 대해 쓰게 될 글보다 훨씬 좋은 글들 역시 너무나 많으며, 나는 그들보다 본작에 대한 좋은 글을 써낼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본고를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 “그런데 왜 당신은, 본작에 대한 Hype를 이야기하며 마치 본작이 2010년대 최고의 작품인 양 이야기하면서 왜 정작 순위는 2위를 줬는가?” 말하자면 본작은 나에게 있어 2010년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가 맞고, 또 더해서 본작은 내가 ‘앨범 단위로’ 청취한 첫 번째 음반이라는 점에서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앨범이기도하다(본작을 듣게 된 계기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본작의 빨간 커버가 본능적으로 끌렸다던가). 그런고로 본고는 내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본작에 대한 (내가 본작을 처음 청취했을 당시의) 개인적인 소회를 더듬는 방향으로 쓰일 것이고, 거기에 더해, 지금 시점에서 내가 본작에 가지는 어떠한 꺼림칙함에 대해 논하는 방향으로 쓰일 것이다. 그 꺼림칙함이 내가 본 리스트를 만듦에 있어 본작의 위치를 정하는데 고민을 하게 한 이유이고, 그럼에도 그 역시 2010년대의 대중음악에 본작이 남긴 중요한 유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음악 작품에 대해 ‘압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 그러한 수식어로서 해당 작품에 수행될 청자들의 감상의 폭을 제한하고 나아가 일축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본작에 어떠한 수식어를 덧대고자할 때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주저하고 싶지는 않다(여기서부터가 첫 문단에서 내가 말한, 본작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소회’를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작은 그것이 실제로 그러한가에 대한 문제를 떠나서 정말로 청자들을 압도하고자했던 Kanye West(이하 Kanye)의 욕망이 거침없이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에 대해 나는 내가 본작을 처음 들으면서 본작의 첫 트랙 「Dark Fantasy」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상을 제시할 수 있는데, Nicki Minaj가 의도적으로 용인발음(영국의 왕족이나 상류층들이 주로 구사한다고 알려진 영어 억양으로 posh accent라고 불리기도 한다)을 흉내내며 고압적으로 내뱉는 내레이션을 지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성가대 풍의 백-보컬이 덧대어지는 구성은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는 심히 당혹스러우면서도, 마치 Kanye West가 짜놓은 판에 내가 어떠한 감상을 제시할 틈도 없이 제압당하는 느낌까지 들었던 ‘압도’였었다. 이는 어쩌면 17C-18C에 성행한 교회 바로크 음악의 형식성에 대한 현대적 참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사이에 놓인 섹스를 한다든지 펠라치오(구강성교)를 받는다든지 하는 Kanye의 저속하기 짝이 없는 Verse는 그러한 장중하고 엄격한 형식에 대한 참조마저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과격한 자신감의 표출과도 같고, 그 뒤에는 역시 청자를 압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깔려있다(「Dark Fantasy」의 마무리에 모든 요소들을 퇴장시켜 마치 트랙이 끝난 것처럼 꾸민 다음 갑작스럽게 훅을 한 번 더 반복하는 구성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대체 왜 본작이 그렇게 고평가를 받아왔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첫 트랙에서부터 현대 대중음악이 형성되기 훨씬 이전의 것을 가져와 자신의 입맛대로 재조립하고, 그 과정에서 Mike Oldfield의 「In High Places」의 라인을 훅으로 차용해 기존에 자신이 주로 샘플링하던 장르들과는 다른 1980년대의 브리티시-록을 가미해 조화를 이루어내며, 거기에 청자들을 압도하고야 말리라는 의지를 담은 연출까지 더하니 어느새 「Dark Fantasy」는 이전까지의 힙합의 정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트랙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 트랙 「Gorgeous」는 「Dark Fantasy」와는 다르고, 어쩌면 정 반대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트랙일 것이다. 「Dark Fantasy」에서 브리티시-록을 참조한 것과 달리 미국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연주자 Enoch Light의 「You Showed Me」의 기타 리프를 샘플링하여 마치 그것이 직접 연주한 것인양 기만하는 Kanye의 소리는 전 트랙에서의 웅장함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는 Kid Cudi의 훅에 발을 맞추며 전 트랙과는 또 다르게 미국 사회와 인종 문제를 언급하며 ‘컨셔스함’을 연기하는데, 정작 그 결론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자찬하는 방향으로 기어들어간다는 점에서 역시 기만적이다. 분명히 두 트랙은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짐에도, 여기서 나는 처음 「Dark Fantasy」를 들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압도를 경험했었는데, 그것은 「Dark Fantasy」에서 느꼈던 청자를 제압하고자 하는 Kanye의 의도가 「Gorgeous」에서도 반복됨을 포착함에 따랐던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었다. 이 앨범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좋다/나쁘다와 같은 나의 ‘미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첫 두 트랙에서부터 이미 게임 오버다. 나는 그 지점에서 본작에 가해졌던 수많은 Hype들을 이해했다. 그것은 전부 Kanye가 만들어낸 것이다.

다음 트랙 「Power」는 다시 첫 트랙 「Dark Fantasy」와 같은 거대한 웅장함으로 회귀하는 트랙인데, 재밌게도 중심적으로 사용된 샘플 역시 「Dark Fantasy」와 동일한 브리티시-록, King Crimson의 「21st Century Schizoid Man」이다(이미 알려졌다시피 Kanye는 해당 트랙을 무단으로 샘플링했다. 다만 본고에서는 그에 대한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여전히 Kanye는 나를 자신이 짜놓은 판 안으로 끌고 와 가지고 놀았다. 어쩌면 본작에서 가장 아프리칸-아메리칸에 대한 문제를 잘 요약했다고 말할 수 있을 라인을 절륜하게 짜놓고는(“시스템은 망가졌고, 학교는 문을 닫았고, 감옥문은 열렸지. 우리는 잃을 게 없어”38) 바로 다음 라인에 백인 중심의 체계에 묻어가버림으로서 판을 엎어버리는 기가 막힐 따름인 장면은 물론이고(“이 백인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선택받은 편이야”39), 실컷 자신이 이뤄내고 가진 “Power”를 자랑하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자살을 선택하며 “넌 너의 힘을 포기할 힘이 있구나”40라는 라인으로 트랙에 대한 해석의 방향성을 절묘하게 뒤집어버리는 그의 농간은 나에게 있어 문자 그대로 그가 ‘21세기에서 가장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는 꼴과 같았다. 「All Of The Lights」는 또 어떠한가. Interlude에서 깊게 가라앉은 바이올린 독주를 보여주다가도 막상 본 트랙에 들어가면 본작 내에서도 가장 경쾌하고 반짝거리는 전자음들이 가득하다. 또한 「All Of The Lights」에서 Kanye가 청자로서의 나를 제압하는 지점이 있었다면, 거의 인맥자랑 수준으로 포진한 초호화 피처링 군단의 멤버들이 단발적으로 소모되어가던 과정이 그럴 것이다. 그래 뭐, 나는 당시에 본작의 크레딧을 보면서 「All Of The Lights」의 피처링 군단을 보고 기겁하긴 했지만, 직접 들었을 때는 다른 의미로 놀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Alicia Keys와 같은 초대형 팝스타들이 고작 백-보컬 몇 번만 넣고 퇴장한다는 건 당시의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당시의 기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래,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배신감 역시 내 잘못이었다. 앞서 ‘첫 두 트랙에서부터 이미 게임 오버’라고 쓰지 않았나. 첫 트랙에서 한 번, 그 다음 트랙에서 한 번 더, 그렇다면 그 다음부터는 반드시 그의 공작이 가득하리라는 상상 정도는 미리 했어야지.

그쯤 되니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 뒤로는 그저 Kanye의 의도 아래 순순히 제압당하며 그가 펼쳐놓은 마성적인 소리들에 빨려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할로윈에 재생하면 딱 좋을 것만 같은 공포스러움을 연출하는 「Monster」에서 JAY Z와 Nicki Minaj가 엄청난 퍼포먼스를 뽐낸 것이나, 다음 트랙 「So Appalled」에서 다시 한 번 인맥자랑 수준의 초호화 피처링 군단이(이번에는 「All Of The Lights」와 같은 낭비가 없이) 포진한 것은 두 트랙이 나에게 마치 Kanye가 주최한 ‘천하제일 랩 경연대회’처럼 다가오게끔 만들었다. 랩이 중심이 된 트랙들을 빠져나간 다음 마주하는 것은 다시금 대단하게 마성적인 소리들의 향연이다. 「Gorgeous」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설적인 아티스트 Smokey Robinson의 「Will You Love Me Tomorrow?」를 샘플링해 자신의 것인양 꾸며내는 「Devil In A New Dress」의 번쩍거리는 소리들은 한껏 서정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를 뽐내지만, 정작 그 위에 놓인 건 그러한 무드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저속함을 “sin-sation”이라는 낱말의 사용으로 포장하는 Kanye의 모습이었다. 절륜한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각자 자기가 최고라고 우기는듯하는 본작의 트랙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트랙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Runaway」에서 Kanye가 보여준 것은 자신의 천재성이 이만큼까지 나아갔다고 외치는 거만함과도 같았다. 한 손가락으로만 만들어낸 피아노 음계에 내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할 때, The Backyard Heavies의 「Expo ’83」을 샘플링한 드럼과 함께 소리가 확장하며, 그 위에서 Kanye는 갑작스레 지금까지의 자신의 저속함을 고해성사하며 상대에게 자신에게서 도망치라(“Runaway”)고 말한다. 그러한 고해로 감춰진 Kanye의 저속함을 대리하는 Pusha T의 Verse 뒤에 이어지는 후반부에 보코더로 변조된 목소리가 수놓아짐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그렇게 「Runaway」는 9분여의 대곡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트랙이 되었다. 단순한 피아노 음계로부터 시작되어 거대한 여행기가 된 트랙은 다양한 소리들을 덧대는 와중에도 그 시작을 잊지 않은 채 중심으로 두며, 이는 마치 나는 하여금 Kanye 자신이 그러한 초심자-스러운 터치에서도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선언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의 천재성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묻던 이들에게 그런 게 어디 있겠냐며 던지는 비웃음인 것이다.

하지만 「Runaway」가 본작 내에서 나에게 남긴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오만함의 끝을 보여주던 Kanye의 목소리가 주저함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Devil In A New Dress」에서부터 등장한 천국과 지옥의(혹은 예수와 사탄의) 이분법적 도식으로서 Kanye는 클리셰적인 프로테스탄티즘 딜레마에 몸을 담은 것이고, 「Runaway」에서의 고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그의 모습이 구체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트랙들을 볼까, 사이키델릭함이 돋보이는 트랙 「Hell Of A Life」에서 지속적으로 ‘지옥’을 언급하며 “천국을 위해서 우린 지옥으로 가지”41라는 문제적인 라인을 남기는 그의 모습이 있고, Aphex Twin의 「Avril 14th」의 피아노 연주를 감각적으로(그리고 또한 무단으로) 샘플링한 트랙 「Blame Game」에서는 본작 내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비난하는 Kanye의 모습과 함께 마치 천사와 악마가 속삭이는 듯한 탁월한 기술적 연출이 드러난다. 재밌는 것은 왼편과 오른편 양 측에서 그에게 속삭이는 변조된 목소리는 정작 그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서 서로 같음은 물론 Kanye와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은 「Devil In A New Dress」와 「Runaway」로부터 이어진 러닝-타임에 대한 참조가 바탕이 된 까닭이었다. 이전까지 본작에서 드러난 Kanye의 저속함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거만함은 지극히 세속의 것이었고, 「Devil In A New Dress」에서 탈-세속적이면서 지극히 프로테스탄티즘적인 도식이 등장한 이후 나는 자연스레 이어질 그의 성찰과 회개, 그리고 도약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상상함! 이라고 외치더라도 어림도 없다. Kanye는 그러한 탈-세속적 도식마저도 스스로의 거만함으로서 세속적인 것으로 끌어안는다. 인간으로서 결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이야기에 대응하는, 무결하다고 여겨지는 신의 서사를 껴안아 바벨탑에서 뛰어내리는 꼴이었다. 신의 무결함마저도 자신의 결함 아래에 두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Kanye는 본작 내에서 신적으로 무결하게 되었다. 그건 누가 가르쳐줬냐면, 역시나 “Yeezy(Kanye)가 가르쳐 준 거야”42

그렇기에 프로테스탄티즘적 윤리 역시 그의 앞에서는 무력하다. 「Lost In The World」에서 “넌 나의 악마이자 천사요, 천국이자 지옥”43이라는 라인으로서 양가적인 것들을 언급하고, 그들을 자신의 이름 아래 끌어안는 그의 모습은 「Blame Game」에 이어지는 독해가 될 것이고, 바로 뒤에 마지막 트랙으로서 저항적인 흑인 시인 GIl-Scott Heron의 시를 가져온 「Who Will Survive in America」를 사용한 것은 프로테스탄티즘적인 도식을 미국의 현실과 동일시하며 그에 신적인 권능으로 심판을 내리는 무결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본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렇게 Kanye의 의도는 스스로 벌여놓은 판에서 탈선한 적이 없다. ‘압도적인’ 소리와 연출의 체현으로서, 기만적인 샘플링과 인간의 결함을 그리는 신화/종교적 클리셰를 스스로의 무결함으로 돌려 뒤엎어버리는 것으로서 본작은 끝까지 모두의 기대를 벗어나는 그림을 그린다. “난 모두의 영웅도, 악당도 될 수 없고, 모두의 구원자도, 죄인도, 크리스천도, 반-기독교인도 될 수 없어!”44이라고 Kanye가 본작이 발매되기 전에 말했던가. 완벽하고자 했던 이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스스로 그렇게 화할 수 있는 완벽함으로 나아감, 그렇게 그는 실제로 천재적이었고, 또 독보적이었다. 그래서 본작에 가해진 무수한 Hype들 역시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야만 했던 것들이었다. 마치 그랜드 캐니언의 장관을 보고 그에 압도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듯, Kanye라는 신이 조각한 세계에 사는 인간들이 어찌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찬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을까. 생각해보면 흑인 사회 내의 갱스터 문제를 바탕으로 그 마초적임이 팽배하던 힙합에서 ‘대학 문턱이라도 밟아본’ 엘리트 축에 속했던 Kanye는 그의 데뷔에서부터 어떻게 스스로의 ‘Black’함을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었고, 자신에게 씌워진 엘리트-가짜-힙합 프레임을 제목에서부터 벗어던진 『The College Dropout』으로부터 이어지는 ‘학교 3부작’에서부터 그는 ‘Black하면서 Black하지 않은’ 흑인 음악의 방향성을 고민했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작은 그가 오랜 고뇌 끝에 마침내 창조하여 무결해진, 역동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 당시 나의 개인적인 소회였고,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점에서 본작을 다시 생각해본다고 한다면, 본작은 ‘힙합’이자 ‘흑인 음악’이라는 방향성을 스스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때 또한 매우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본작은 2010년대를 거치며 더 이상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자신 만의 것으로 남을 수 없게 된(즉 필연적으로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통해 투영된 현실의 무엇인가를 재현하게 된) 정체성-음악에 대항적으로 기능하는 마지막 정체성-음악의 유산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여기서 내가 사용한 정체성-음악이라는 낱말에서 정체성을 ‘흑인’으로 바꿔 한정한다고 한다면, 흑인 음악에서 자신의 성취와 현재의 안락함을 자랑하기 바빠 어떠한 마초적인 무결함을 연기하는 데 몰두하던 흐름은 이제 스스로의 결함과 그러한 결함이 실제로 결함이 되게끔 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직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그것은 어떠한 차원에선 아프리칸-아메리칸이 가진 정치성이 되었으며, 또 어느 음악에서는 재현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Emo-Rap’의 대두와 같은 현상으로서 우리는 여전히 흑인 음악의 방향성이 아티스트가 가진 결함을 공표함으로서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행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첫 문단에서 말했던, 지금 시점에서 본작에 가지는 꺼림칙함은 그러한 분석에서부터 출발한다. 가령 「Gorgeous」와 같은 트랙에서 인종적 문제들을 스스로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적으로 읽히고, 「Runaway」에서의 Pusha T의 Verse는 (내가 본작에 대해 사적으로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로 ‘멍청한’ 워딩으로 가득하며, Kanye 역시 스스로의 무결함을 거만하게 자랑하는 데 있어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 등의 이미지들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는 점에서 역시 문제적이다. 여기서 ‘이미지를 소모’함이란 본작에서의 무결함을 위해 지배적인 백인/남성적인 시선을 아프리칸-아메리칸/여성에 각각 투과하여 그들이 채택할 수 있는 주요 담론을 교란한다는 말이다. 인종 문제는 앞에서 어느 정도 살폈으니 조금 더 페미니즘 적인 관점에서 본작을 살피자면, 본작의 노랫말들은 여성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수준의 혐오로 점철되어있고, 그러한 저속함은 “Bitch”라는 낱말로 대표되던 마초적인 힙합에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본작이 Kanye의 무결함이 창조한 세계와 같은 만큼 그러한 것이 그의 룰에 있어 어떠한 위반도 없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시대성이 이행한 지금 시점에서는 명백하게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본작의 위대함을 끝내 나는 거부할 수 없다. 본작을 통해 힙합의 차원은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본작 이후의 힙합 아티스트들 중 본작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아티스트를 우리는 찾기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Bon Iver, Nicki Minaj, Pusha T와 같이 객원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본작을 통해 더욱 주목을 받은 것과 본작 이전의 힙합이 어느 정도 경량화 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본작이 ‘게임 체인저’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고, 앞서 언급한 본작의 꺼림칙함 역시 최종적으로 대중음악의 판도가 그에 반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반면교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작에서 Kanye가 주도하던, 거역할 수 없었던 압도적임에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Kanye의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살펴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더 나아가 힙합이라는 장르의 바이블로서 남을 수 있을 진귀한 보물과도 같이 되었다.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본작에서 무결한 Kanye의 계획 아래에 있고, 완전함을 향해 도약한 그를 보며 우리는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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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 TDE, 2015.03

『To Pimp A Butterfly』, 직관적이지 않고 아리송하게 다가오는 본작의 제목은 ‘나비 수탈하기’ 내지는 ‘나비를 수탈하기 위하여’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인데45, 이러한 제목의 애매함은 곧 본작이 가지게 될 양가적인 요소를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수탈’이라는 낱말인데, 본작 이전까지의 Kendrick Lamar(이하 ‘Kendrick’)의 행보와 그 자신의,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건들을 고려한다면 그 낱말은 우리에게 본작이 인종 차별에 관한 앨범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비’란 흑인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은유일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드러난 대상을 실제적으로 ‘수탈’하게 될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본작이 발매될 당시에 수행하였던 논의에서 간과했었을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본작이 발매되기 두 달 전인 2015년 1월에 발생하였던 Kendrick과 Azealia Banks 간의 비프가 바로 그것인데, 미국 음악계에서도 유명한 트러블메이커인 Azealia Banks의 대응은 확실히 과했던 감이 있으나, 그와 별개로 당시 Kendrick이 흑인 소년 ‘Mike Brown’의 목숨을 앗아간 ‘퍼거슨시 경찰 총격 사건’과 그로 인해 발발한 ‘2014년 퍼거슨 소요’에 관해 남긴 발언은 충분히 문제적이었다. “우리(흑인)가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데 그들(백인)에게 우리를 존중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적인 발언은 그 자체로 당시 인종차별 문제와 관련한 최대의 화두였던 ‘#BlackLiveMatter’ 운동에 대한 과속방지턱과 같았고, 『good kid, m.A.A.d city』와 같은 앨범으로 흑인 예술-운동의 대표와 같이 추앙받았던 Kendrick이었기에 많은 흑인들이 배신감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흑인 남성의 발화들 중에서 가장 멍청한 발화”라는 트윗을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Azealia Banks의 대응은 단지 Kendrick의 발언에 대한 수많은 피드백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단에 첨부한 기사에도 실린 것처럼, “Kendrick에게 오스카상을 줘야겠다. 걔는 사람들에게 마치 자기가 차세대 흑인 사회의 리더가 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그 실상은 흑인 사회에 대해 오독하고 있는 ned flanders46와 같다.”는 트윗을 대표적으로 많은 흑인들이 Kendrick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이어갔고, 여기까지는 그가 이룩한 성과들과 그로 인해 구성된 그의 캐릭터를 그가 스스로 무너뜨리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부정적인 여론이 반전된 것은 두 달 뒤 본작이 실제적으로 발매되고 난 이후의 일이다. 수많은 비평 매체들에게 전작 『good kid, m.A.A.d city』보다도 더한 찬사를 쓸어 담고 많은 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던 본작이 담은 것은 흑인 사회에 가해지는 인종차별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랫말들과 흑인 음악의 원류를 찾고자 했던 소리들 내지는 프로덕션, 그리고 마지막 트랙 「Mortal Man」에서 힙합의 전설 2Pac을 직접 소환하며 마치 그의 왕위를 직접 계승하는 것처럼 ‘보였던’ 퍼포먼스와 그로 인한 전율 등이었다. 결국 본작은 위태로워지던 흑인 사회 내에서의 Kendrick의 입지를 다시 회복시켜준 작품임과 동시에, 그를 진정한 흑인 예술가이자 운동가로서 우리에게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은 본작을 ‘백인들과 그들이 자행하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흑인 음악의 최고봉과 같이 기억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표면적’인 영역에 한정하자면 말이다.

각종 장치(가령, 앨범이 시작할 때 들리는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같이)들로 인해 전작 『good kid, m.A.A.d city』는 음악 앨범임과 동시에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본작에 담긴 치밀한 내러티브는 그러한 장치들 없이도 본작 역시 한 편의 영화 내지는 어떠한 스토리로서 독해할 것을 우리에게 요청한다. 전작과 본작 사이에 놓인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두 작품 모두 현실에서 발생했던, 혹은 발생하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본작이 전작보다 조금 더 ‘비-현실적’이라는 데에 있다. 가령 전작의 서사를 이끌어가던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였던 ‘Sherane’은 Kendrick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인물이자 캐릭터이지만, 본작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 ‘Lucy’는 인물이 아닌 타락천사 ‘Lucifer’의 이름에서 차용한 하나의 망령이다. 그리고 본작이 그러한 ‘현실적임’과 결별하는 지점을 우리는 첫 트랙 「Wesley’s Theory」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처음엔 널 사랑했었는데, 이젠 그냥 섹스나 하고 싶어 … 넌 내 첫 애인이었지 …”47와 같이 노골적으로 전작의 ‘Sherane’을 연상케 하는 인물을 가지고 옴과 동시에 그녀를 타자화시키며, 끝내는 그녀가 “Destroyed”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곧 『good kid, m.A.A.d city』에서의 이야기와의 결별을 알림과 동시에 전작에서의 ‘현실적임’과 그 자체로 거리-두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Wesley’s Theory」의 모티브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데, 유명 흑인 배우이자 미국의 불합리한 과세행정에 대항하는 단체 ‘The American Rights Litigators’의 대표이기도 한 ‘Wesley Snipes’의 탈세혐의 기소 과정과 그로 인해 흑인 사회에서 발생한 ‘납세 거부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재밌는 것은 두 파트로 나누어진 「Wesley’s Theory」의 서사가 상호의존적으로 읽힌다는 점인데, 첫 Verse가 “공화당 국회의원, 까불면 나한테 죽어”48라는 라인을 대표적으로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흑인 래퍼가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적임’을 연기하는 이야기라면 두 번째 Verse는 그 Verse의 화자가 스스로를 ‘Lucy’이자 ‘Uncle Sam’이라 밝히듯 그러한 흑인 래퍼들의 부를 세금으로 수탈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백인 중심의 미국 공권력 그 자체로 화해 그들을 유혹하는 망령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Uncle Sam’은 “네가 그 모든 것을 사고 납세를 거부한다면, 네가 35살이 되기 전에 Wesley Snipe로 널 쏴버릴 거야.”49라고 말하면서도 “왜냐하면 너는 날 영원히 살게 하니까”50라고 말한다. 그것에 주목한다면 「Wesley’s Theory」에 대한 독해는 ‘Uncle Sam’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가 아닌 비-자발적인 것으로 보이는 흑인에 대한 과세행정이 어떻게 ‘Uncle Sam’을 살게 만드는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나아가는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첫 Verse의 “내가 계약만하면 이 새끼야, 그냥 멍청하게 살 거야”51, “못 배워 쳐 먹었어도 나에겐 백만 달러 수표가 있는데, 뭐 어쩌라고?”52와 같은 라인을 주목한다면 이는 곧 두 Verse 간의 상호-참조를 거치는 독해 과정일 것이다. 그렇기에 두 Verse 사이에 등장하는 Dr. Dre의 “어려운 건 그 지위를 지키는 거야 이 좆같은 새끼야”53라는 목소리는 ― 많은 이들은 이를 Dr. Dre와 Kendrick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Dr. Dre가 Kendrick에게 전하는 조언으로 해석하지만 ― 첫 Verse의 화자로 대표되는 모든 흑인 래퍼들에게 전하는 경고와 같다. 흑인 래퍼들이 백인들이 꾸려놓은 시스템 안에서 얼마의 부를 축적하던 간에 그것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백인들 앞에 돌아갈 것이고, 그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Wesley’s Theory」는 양면적인 트랙이다. Kendrick은 그 트랙에서 첫 Verse의 흑인 래퍼와 두 번째 Verse의 ‘Uncle Sam’을 비판의 대상으로서 같은 위치에 두며, 이러한 해석은 그가 “fool”, “Uneducated”, “ain’t pass”와 같은 낱말들로서 첫 Verse의 화자를 최대한 ‘컨셔스하지 못한’ 상태인 것처럼 꾸미는 연출로서 정당화될 것이다.54 그리고 이는 곧 본작이 흑인 음악들에서 흔히 다루어진 바 있는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복선이기도 할 것이다.

「Wesley’s Theory」의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세금 공무원이 온다!”55라는 외침에 이어지는 다음 트랙 「For Free? (Interlude)」는 표면적으로는 물질적인 측면에서 상대에게 불만을 가지는 여성과 그에 대한 남성의 항변과 같이 읽히지만, 그 뒤에는 「Wesley’s Theory」에서 이어지는 흑인 사회와 백인 중심의 시스템 간의 대립이라는 맥락이 자리한다. “오 아메리카, 이 나쁜X아, 난 널 부자로 만들 목화솜을 주웠었는데”56와 같은 라인과 직전 트랙 「Wesley’s Theory」와의 연관성을 같이 고려한다면, “This dick ain’t free”로 드러나는 핵심적인 라인은 중의적으로(공짜가 아니다/자유롭지 않다) 읽혀야만 할 것이다.57 참다못한 Kendrick의 상대 화자가 마지막에 이르러 “You ain’t no king!”이라고 부르짖음은 다음 트랙 「King Kunta」로 이어지고, Kendrick은 그 자신을 흑인 문호 Alex Haley의 소설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Kunta-Kinte)와 동일시하며, 왕(King)으로 추대한다. 어쩌면 『good kid, m.A.A.d city』 이후 Kendrick의 행보를 요약하는 트랙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King Kunta」에서 Kendrick은 “새끼야 내가 걸을 때 넌 어디서 뭐했냐?”58이라는 라인을 대표적으로 다른 흑인 래퍼들의 의식-결여 상태를 비판하며, “우리는 funk를 원한다!”59라는 라인으로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숭고함을 일깨우고자 일갈하기도 한다. 하지만 「King Kunta」의 마지막 라인이자 본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담은 시의 첫 문장이기도 한 “네가 갈등하던 것이 기억나, 너의 영향력을 오용함으로,”60가 들어서며, 우리는 왕과 같은 그가 숨기고 있는 혼란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음 트랙 「Institutionalized」는 그러한 혼란의 본격적인 발현이다. 왕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흑인에 대한 부정적 관념이 그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정작 그의 친구들의 삶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그를 좌절하고, 혼란하게 한다. Kendrick의 할머니로 분한 Bilal의 “네가 일어나서 행할 때까지는 좆도 안 변해”61, Kendrick의 친구의 목소리로서 드러나는 “지금 불경기인데 왜 씨발 저 새끼는 ‘다이아몬드의 왕’ 노릇을 하는 거야?”62, Snoop Dog의 “넌 네 친구를 hood에서 꺼낼 수는 있어도, 그 친구에게서 hood를 빼올 수는 없을 거야.”63의 세 라인은 「Institutionalized」를 독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라인들일 것이다.

다음 트랙 「These Walls」는 「Institutionalized」에서 발현된 혼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임과 동시에, 본작을 독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위치 지어지는 첫 번째 분기점으로 기능한다. 1997년 미국 방송사 HBO에서 방영한 『If these walls could talk』이라는 낙태에 관한 영화의 제목을 훅으로 차용한 본 트랙은 그 모티브가 된 영화와 같이 ‘자궁’이라는 공간성을 ‘walls’로 치환해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러한 공간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Verse 1과 2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흑인이라는 정체성의 본유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Verse 3에 이르러 ‘walls’가 말하는 공간성이 ‘자궁’에서 ‘감옥’으로 이행한다는 점인데, 그러한 이행은 “너의 운명은 끝내 너의 숙명을 받아들였다고”64, “그러니까 이 노래를 들을 때 첫 Verse를 다시 돌려봐”65와 같은 라인을 필두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심지어는 아프리칸-아메리칸에 대한 ‘자궁’과 ‘감옥’이라는 공간성의 작용이 일치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행은 곧 이전 트랙들의 이야기들과 교차되며, 미국 내 흑인들에 부과되는 시선 및 관념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드러나는지, 그리고 미국 내 흑인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떻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명확한 통찰이 된다. 「These Walls」까지의 여정을 통해 자신 역시 ‘성공한 흑인’으로서 어떠한 것도 바꿀 수 없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한 사실이 사실은 필연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Kendrick은, 그래서 다음 트랙 「u」에서 호텔 방에 홀로 앉아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100,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설교했으면서 정작 네 여동생에겐 닿지도 않았지”66, “넌 어디에 있었는데? 네가 주는 척 했던 도움은 어디로 갔는데? … 친구란 말이야 돈 때문에 고향(Compton)을 떠나지도, 친구를 버리지도 않는 것이라고”67와 같은 라인으로 대표되는 자기-혐오로 가득 찬 본 트랙은 그가 성공한 이후 결국엔 어떠한 것도 그와 같은 흑인들을 위해 이루어낸 것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세상은 알거야 결국 돈은 자멸을 초래할 나약함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68이라는 본 트랙을 갈무리하는 라인은 「Wesley’s Theory」, 「For Free? (Interlude)」와 같은 맥락으로 물질적인 부가 해소해주지 못하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그래서 다음 트랙 「Alright」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Pharrell Williams의 “우린 괜찮을 거야”69라는 훅과는 반대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직접 그린다. 반복적으로 희망을 되새기는 훅 다음에 자리한 첫 Verse는 성공한 흑인 래퍼들의 대척점에 놓인 비극적인 미국 내 흑인들의 현실을 말하고, 두 번째 Verse는 ‘Lucy’가 다시 등장해 「Wesley’s Theory」에서의 유혹을 되새기며 그러한 현실이 반복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Wesley’s Theory」에서 ‘Lucy’의 유혹은 성공적이었을지라도, 「Alright」에서 Kendrick은 끝내 그러한 유혹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국 「Alright」는 희망을 전하는 트랙이라기보다는, 상반된 훅과 Verse 이야기 속에서 가망이 없는 현실과 그 속의 차별들을 헤쳐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 드러나고, 그러한 모순은 곧 사람들이 본작에서 「Alright」를 가장 중요한 트랙이라고 기억하게 함과 동시에 「Alright」가 본작을 독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위치 지어지는 두 번째 분기점으로 기능하게 한다.

본작에 담긴 이야기의 후반부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 다음 트랙 「For Sale? (Interlude)」에서는 다시 한 번 ‘Lucy’가 등장하지만, 이미 「Alright」에서 한 번 거부당했기에 유혹의 방식은 다소간 바뀌어있다. 그는 「Wesley’s Theory」에서와 같이 적극적으로 Kendrick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제시하지는 않지만, Kendrick이 본작의 이야기에서 겪은 혼란을 꿰뚫어보며 어차피 그가 자신을 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사탄이 예수의 수행을 방해하며 유혹하던 방식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Kendrick을 유혹하는 ‘Lucy’에 대항하며, 본작의 이야기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본래의 땅이라 말할 수 있을 ‘Africa’로 이행한다. 「Momma」의 첫 Verse를 갈무리하는 라인 “나를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사실”70은 『good kid, m.A.A.d city』의 마지막 트랙에서 Kendrick의 어머니가 「Real」에서 전한 말(“네가 성공한다면, 용기를 주는 너의 말들로서 보답해라, 그게 너의 도시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길일 거야.”71)을 떠올리게 하며 ‘Compton’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듯 하지만, 세 번째 Verse에 이르러 트랙의 무대가 아프리카로, 화자가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서의 Kendrick을 바라보는 소년으로 전환되며 해당 라인에서 “home”이란 ‘Compton’을 넘어 ‘Africa’에 그 의미를 둔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만든다. 본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소년의 이야기가 “당신의 친구들에게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해주세요”72로 마무리될 때, 우리는 전작의 「Real」에서 느낌 감동과 또 다른 차원의 감상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본작에서 Kendrick이 전회를 겪는 첫 번째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트랙 「Hood Politics」에서 다시금 미국으로 배경의 전환이 이루어지더라도, “Compton에서부터 의회까지, 피아식별 못하고 지네 편이나 죽여 대는걸”73과 같은 라인이 부각되어 다가오는 이유는 「Momma」로부터 남은 여운일 것이다.

그 제목부터 문제적이라 할 수 있을 다음 트랙 「How Much a Dollar Cost」에 이르러 Kendrick은 「Momma」에 이은 두 번째 전회를 맞이한다. 성공한 Kendrick의 앞에 나타난 한 흑인 노인은 Kendrick에게 10란드(환산가치 1달러)의 돈을 요구했고74, Kendrick은 “난 나은 판단력이 있어서, 구라치는 놈들을 다 알아본다고”75라 말하며 그를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Kendrick에게 자리한 모순인데, ‘Compton’, 나아가 ‘Africa’로 돌아가 흑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하던 Kendrick이 흑인 노인의 1달러 적선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76 이는 「Wesley’s Theory」, 「Alright」, 「For Sale? (Interlude)」 등에서 드러난 ‘Lucy’의 물질적 유혹과 연관되며 끝내 Kendrick이 그들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더 큰 아이러니다. 그러나 마지막 Verse에 이어 Kendrick에게 1달러를 요구하던 이의 정체는 ‘신’으로 드러나고, 이는 ‘Lucy’가 Kendrick을 시험에 들게 한 것과 같은 차원에서 논해질 수 있는 장치일 것이다. “내가 너에게 1달러의 가치를 알려줄 것이니 : 내가 너의 주(主)요, 그것은 천국에 놓일 너의 자리의 값이니라. 그를 잃어버림을 받아들이거라.”77라는 라인으로 Kendrick이 자신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한 채 천국에서의 자리를 잃었다고 선언하는 ‘신’의 모습은 「Momma」에서의 전회와 연결되며 세계에 놓인 모든 흑인들의 현재가 과연 어떠한지를 묻는다. 이것은 곧 본작에서 Kendrick이 전회를 겪는 두 번째 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트랙 「Complexion (A Zulu Love)」은 그러한 두 번의 전회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흑인들에 대한 찬가일 것이다. Rapsody의 마지막 라인 “Blues든 Pirus든, 색은 중요치 않아. 우린 다 같은 팀인걸”78로서 비로소 본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온전히 드러나고,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앞서 내가 말했듯 본작이 어째서 단순한 ‘흑인 대 백인’의 대립구도를 담은 작품으로 기억될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The Blacker The Berry」의 강력한 랩 퍼포먼스는 Verse 1과 2에 걸쳐 흑인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백인들을 거세게 비판한다. “넌(백인) 흑인들이 싫지, 너의 계획은 우리의 문화를 멸절시키는 것이지.”79, “속임수와 거짓말들을 제도화시키지”80와 같은 라인들로 말이다. 여기에 Assassin의 훅 “난 말하지 그들이 우리를 노예처럼 다룬다고, 우리가 검둥이니까.”81가 섞이며 청자들은 「The Blacker The Berry」를 ‘무난하게’ 저항적인 흑인의 목소리를 담은 트랙으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Kendrick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위선자(“hypocrite”)로 칭하는 것이 미심쩍다. 그러한 모종의 의문 속에서 울리는 세 번째 Verse에서 Kendrick은 놀랍게도, 비판의 대상을 같은 흑인들에게로 옮긴다. 그러한 비판은 「King Kunta」 등에서 드러났던 흑인들에 대한 비판과도 그 양상이 다르다. 과거 아프리카의 Zulu와 Xhosa 부족의 대립을 현재 미국 내 Crips와 Pirus 갱의 대립으로 치환하고, Black Panthers와 Marcus Garvey 등 흑인 사회에 상징적으로 기억되는 의미들을 ‘무-의미화’시키며, 또 흑인들이 향유하는 문화적 요소들을 하나씩 언급하며(특히 BET에 대한 언급은 가장 문제적이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향유와 지지가 곧 흑인 사회의 부흥으로 지양될 것이라는 대다수 흑인들의 상투적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지막 두 라인은 치명적이다. Kendrick은 그 두 라인에서 ‘#BlackLiveMatter’를 촉발했던 Trayvon Martin 살인 사건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흑인들이 그의 죽음을 기리며 슬퍼할 자격이 없었음을 격앙된 목소리로 외친다.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인종 차별의 주체인 백인들을 먼저 겨냥하는 것이 아닌, 흑인 사회 내부에 문제를 돌리는 이러한 Kendrick의 시선은 앞서 설명했던 그가 ‘퍼거슨시 경찰 총격 사건’에 남긴 코멘트와 동일한 방향성을 견지하며, 그렇기에 “hypocrite”(위선자)이라는 낱말로서 재현되는 것은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내부를 고찰하지 않고 역시 서로를 몰아세우고 죽이는 데에 무관심했던 흑인 사회 전체일 것이다. 「The Blacker The Berry」의 이러한 충격적인 서사는 「i」에 이르러 한 발 더 나아간다. 싱글로 선공개되었던 모습과 달리 마치 라이브 공연을 하는 듯한 장치들을 통해 「i」가 곧 Kendrick의 장중한 연설과도 같이 느껴지는데, “난 나를 사랑해”82라는 반복적인 주문과 흑인들이 사용하는 ‘N-word’에 대한 “royalty; King royalty”로의 재-정의 과정은 「The Blacker The Berry」에서의 이야기와 이어지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흑인들은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감동적인 제안이 된다. 마지막 트랙 「Mortal Man」은 “만델라의 유산, 내 플로우가 그를 나아가게 하길”83이라는 라인을 필두로 현실적인 본작의 이야기를 흑인 사회가 범한 실수들과 해결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전반부와 2Pac의 유령과 꿈결 같은 긴 이야기를 나누는 비-현실적인 후반부로 나뉜다. 본작의 트랙들을 거치며 완성되어가던 Kendrick의 시는 「i」에서 드러난 사랑으로 갈무리되며, 2Pac과 Kendrick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Kendrick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떠나는 2Pac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Kendrick이야말로 2Pac의 유지를 이을 진정한 흑인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일 수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2Pac의 침묵은 그 자체로 Kendrick이 제안한 ‘나비’의 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제를 본작의 소리들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한 방향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본작이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감에 있어 우리가 그간 많은 힙합 앨범들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론을 구사한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의 소리들은 본작이 발매되던 당시 몇 가지 큰 틀 안에서 어느 정도 단순화되던 힙합 음악의 방법론을 거부하는데, 그 자리를 재즈와 블루스, 펑크 등 흑인 음악의 원류라 칭할 수 있을 장르들이 채우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본작의 메인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을 Sounwave의 지휘 아래 Flying Lotus, Pharrell Williams, Robert Glasper, Terrace Martin 등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재즈 연주자들이 힘을 보탰고, 그 결과로 탄생한 본작의 소리들은 Kendrick이 추구하고자 한 방향성을 온전히 담아냈다. 그 방향성이라 함은 곧 현대 흑인 음악의 역사성인데, 가령 우리는 「Institutionalized」와 같은 트랙에서 1950년대의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향취를 느낄 수 있고, 「For Free? (Interlude)」에서 느껴지는 격정적임은 그의 반대급부로 자라난 이스트-코스트 재즈의 기억일 것이다. 또한 「Wesley’s Theory」에서 느껴지는 사이키델릭함은 1960년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포근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These Walls」는 1970년대의 재즈-록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 더해 「King Kunta」와 같은 트랙은 G-Funk를 가미한 1990년대 힙합 골든-에라의 소리들을 닮아있는 트랙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고, 「How Much a Dollar Cost」, 「Complexion (A Zulu Love)」 등에서 드러나는 소울과 가스펠 역시 우리는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본작의 소리들은 현대 흑인 음악의 역사성을 그대로 가진 채 정제하며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경계를 다시 한 번 뛰어넘은 소리들이라 할 수 있고, 이는 현대 흑인들의 원류를 찾아가는 본작의 서사와도 빼닮아있다. 그러한 본작의 소리와 함께 본작의 서사를 뒷받침하는 것은 Kendrick의 랩이다. 그는 본작이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화자, 캐릭터들을 연기하고, 그에 따라 다채로운 톤과 플로우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본작이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가 되게 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조금 과장을 섞어서 말하자면, 랩 음악의 역사를 따져봐도 앨범 단위로 놓고 봤을 때 본작에서 Kendrick이 보여준 퍼포먼스보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래퍼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다시 「Mortal Man」의 마지막 문답과 2Pac의 침묵에 집중한다. Kendrick이 ‘자신의 친한 친구’가 만들었다는 말과 함께 2Pac에게 읽어준 시는 나비를 수탈하는 애벌레의 모습과, 그럼에도 실은 나비와 애벌레가 전혀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라는 내용을 담는다. 이것은 본작이 담은 장대한 이야기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다. 수탈하는 애벌레와 수탈당하는 나비의 구도에서 우리는 그 구도를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인인 ‘미친 도시’(“mad city”)에 대해서는 경시하게 된다. 애벌레와 나비는 모두 흑인 사회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능하며, 애벌레가 나비를 수탈함은 곧 Kendrick이 “이 갱스터짓이 나로 하여금 나보다 더 검은 이들을 죽이게 하는데?”84라는 라인으로서 경계했던 현상일 것이고, 마지막에 이르러 애벌레와 나비가 같은 존재임을 깨달음은 「i」에서의 메시지와 Kendrick이 현실에서 행한 인터뷰와 같이 ‘흑인인 우리가 우리를 사랑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본작, 『To Pimp A Butterfly』라는 제목의 의미는 ‘나비 수탈하기’라는 흑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드러나는 현상 뿐 아니라, ‘나비를 수탈하기 위하여’라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수탈의 또 다른 주체와 그들의 수탈기제/방법들까지도 조명하는 방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2Pac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고, 이제 공은 Kendrick, 그리고 현대의 흑인 모두에게 넘어갔다. 결국 본작은 2010년대 대중음악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재현’이라는 정치성에 대해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을 방식으로, 그리고 어쩌면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방향성으로 우리에게 응답한 작품으로 남았다. 본작의 재현에 어떠한 탁월함을 매길 수 있다면, 그것은 억압 집단과 피-억압 집단을 재현함에 있어 고착화된 구도를 깨어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적 충격을 선사하면서도, 그러한 재현이 재현된 피-억압 집단 내에서 또 다른 억압 집단을 생성하는 방향이 아닌 그 안에서 억압 집단에 대항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발생할 가능성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작은 서사의 전개 방식에서, 소리들을 이끌어나가는 방법론과 힙합이라는 장르의 경계에서, 그리고 사회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재현의 방향성에서,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보다 한 발짝 먼저 나아갔다. 그것이 내가 어째서 본작, 『To Pimp A Butterfly』를 2010년대 최고의 앨범으로 추대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1. “The things they see in me, I cannot see myself”
  2. “They’re gonna send me over the hill”
  3. “Perpetrators beware say a prayer if you dare for the believers”
  4. “Do we even know what we’re fighting for?”
  5. “Don’t bite the hand that feeds you.”
  6. “Now, I don’t want to bite the hand that’ll show me the other side, no”
  7. “All my niggas in the whole wide world”
  8. “Now, we come here as slaves, but we going out as royalty, and able to show that we are truly the chosen ones”
  9. “All my niggas”
  10. “How can I paint this picture when the color blind is hanging with ya”, 흑인 갱스터들에게 있어 그들의 상징색은 매우 중요하고(가령 Crip갱의 상징색은 파란색인 것처럼), 여기서 ‘color blind’라 함은 그러한 흑인 사회 내부의 갱스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11. “I’mma drown in some poison abusin’ my limit”
  12. “Every autobiographical rap album that came after it walks in part in its footsteps.”
  13. “Hurry up with my damn croissants”
  14. “Gotta keep ’em separated, I call that apartheid”
  15. “Thank God almighty, they free at last”
  16. “Used to only be niggas now everybody playin”
  17. “My eyes don’t shed tears, but, boy, they bawlin”
  18. “I can’t tell you the truth about my disguise”
  19. “But you’re so buff and so strong”
  20. “My TV ain’t HD, that’s too real”
  21. “silver spoon”
  22. “If you don’t pull me back, it wakes a thousand eyes”
  23. “I’ve never seen a hero like me in a sci-fi”
  24. “And I’d have told you I was lonely too”
  25. “Apples, cherries, pain”, FKA Twigs에게 고통을 주었던 종양의 크기들을 비유한 표현이다.
  26. “A woman’s work, a woman’s prerogative, a woman’s time to embrace”
  27. “A nurturing breath that could stroke you”
  28. “Unoccupied history”
  29. “Don’t tell me what you want ’cause I know you lie”
  30. “You ain’t married to no average bitch, boy”
  31. “You just might be a black Bill Gates in the making, cause I slay”
  32. “I like my baby heir with baby hair and afro, I like my negro nose with Jackson Five nostrils”
  33. “Okay, ladies, now let’s get in formation”
  34. “My daddy Alabama, Momma Louisiana”
  35. “Stole from me, lied to me, nation hypocrisy”
  36. 당시 Adele 본인도 수상 소감으로서 “이 상을 제가 받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공개적인 비판을 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그래미의 결과는 대중음악의 헤게모니가 여전히 백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이는 바로 전 해였던 2016년에 Kendrick Lamar의 『To Pimp A Butterfly』가 Taylor Swift의 『1989』에 밀려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지 못한 사건과 연관될 수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두 사건은 그 세부에서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령 나는 『1989』의 수상의 경우 ‘백인들의 음악’이라 불리는 컨트리 장르의 영웅과도 같이 추앙받았던 Taylor Swift를 수호하기 위한 움직임이(물론 『1989』는 Taylor Swift가 컨트리와의 결별을 선언한 앨범이기도 하지만, 이미 백인들에 의해 쌓인 그녀의 이미지는 Hype를 부과하기 충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25』의 경우 끝까지 ‘백인들을 위한 흑인 아티스트’로 남아줄줄로만 알았던 Beyoncé에 대해 백인 사회가 느낀 배신감이 주된 맥락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을 다시 밝힌다.
  37. “Blonde is one synonym for American.”
  38. “The system broken, the schools closed, the prisons open. We ain’t got nothin’ to lose”
  39. “In this white man’s world, we the ones chosen”
  40. “You got the power to let power go”
  41. “We headin’ to hell for heaven’s sake”
  42. “Yeezy taught me”
  43. “You’re my Devil, You’re my Angel, You’re my Heaven, You’re my Hell”
  44. “I can’t be everybody’s hero and villain, savior and sinner, Christian and anti Christ!”
  45. 본작의 제목이 Harper Lee의 소설 『To Kill A Mockingbird』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 작품이 우리나라에 『앵무새 죽이기』라는 말로서 번역되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본작의 제목 역시 ‘나비 수탈하기’라는 말로서 번역되는 것이 합당할 것이고 또한 그것은 본작의 제목에 대한 주류적 해석이기도하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본고에서 ‘나비를 수탈하기 위하여’라는 새로운 해석을 덧대는 이유는 후술 할 것이다.
  46.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등장인물로서, 기독교를 광적으로 숭상하며 그 자체로 현대 기독교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는 캐릭터다. 다른 종교들을 극단적으로 배격하며 기독교의 원리적 측면들을 상찬하는 모습은 청자들에게 기독교의 원리 자체를 웃음거리처럼 만들도록 기능하는데, 여기서 ‘흑인 사회를 오독하는’이라는 수식어가 Kendrick에게 붙은 것은 그의 발언이 흑인 사회의 모습들을 직접 오독하며 도리어 흑인 사회를 웃음거리처럼 만든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47. “At first, I did love you. But now I just wanna fuck … You was my first girlfriend …”
  48. “Republican, run up, get socked out”
  49. “And everything you buy, taxes with deny, I’ll Wesley Snipe your ass before thirty-five”
  50. “Because you make me live forever baby”
  51. “When I get signed, homie I’mma act a fool”
  52. “Uneducated but I got a million dollar check, like that”
  53. “The hard part is keeping it, motherfucker”
  54.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그의 영리함은 그가 첫 Verse에서 ‘Compton’을 직접 호명함이나, 두 번째 Verse에서 ‘Uncle Sam’이 ‘Kendrick’이라는 이름을 호명하는 부분에 있을 것이다. 이는 본작의 창작자이자 본작에서 최종적으로 발화를 수행하는 Kendrick 자신 역시 결국에는 첫 Verse에 등장하는 흑인 래퍼들과 같은 입장에 놓인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 동시에 ‘흑인이 같은 흑인 래퍼를 (인종적인 차원에서) 비판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본작의 화자의 자리에 본격적으로 Kendrick이 들어서는 지점은 「King Kunta」부터인데, 설명한 「Wesley’s Theory」에서의 장치들이 그러한 이행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55. “Tax man comin’!”
  56. “Oh America, you bad bitch, I picked cotton that made you rich”
  57. “Pity the fool that made the pretty in you prosper. Titty juice and pussy lips kept me obnoxious”와 같은 라인으로 미루어보면(그리고 인종 차별의 주체가 되는 백인 중심의 시스템을 ‘여성’으로 환원하여 그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같이 고려한다면), 「For Free? (Interlude)」는 본작 내에서도 가장 여성 혐오가 다분한 트랙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Wesley’s Theory」의 첫 Verse를 떠올린다면, 「For Free? (Interlude)」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마초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Kendrick이 컨셔스-힙합을 구사하면서도 그 자신이 여성 혐오적 발화를 적극적으로 행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내가 「For Free? (Interlude)」에 대해 수행한 해석은 그러한 여성 혐오의 맥락을 제외한 채 우리가 후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관대한’ 해석일 것이다.
  58. “Bitch where you when I was walkin’?”
  59. “We want the funk”
  60. “I remember you was conflicted, misusing your influence”
  61. “Shit don’t change until you get up and wash your ass”
  62. “It’s the recession, then why the fuck he in King of Diamonds?”
  63. “You can take your boy out the hood but you can’t take the hood out the homie”, 여기서 hood란 ‘neighborhood’를 지칭하는 슬랭인데, 본작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본 라인의 더 정확한 의미는 ‘흑인 빈민가의 삶에서 친구를 구제할 수는 있어도, 그의 내부에 자리한 흑인 빈민가의 맥락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4. “Your destiny accepted your fate”
  65. “So when you play this song rewind the first verse”
  66. “You preached in front of 100,000 but never reached her”
  67. “Where was your presence, where was your support that you pretend? … A friend never leave Compton for profit or leave his best friend”
  68. “The world’ll know money can’t stop a suicidal weakness”
  69. “We gon’ be alright”
  70. “The fact it brought me back home”
  71. “But when you do make it, give back, with your words of encouragement, and that’s the best way to give back, to your city”
  72. “Tell your homies especially to come back home”
  73. “From Compton to Congress, it’s set trippin’ all around”
  74. “Indigenous African only spoke Zulu, my American tongue was slurry”, “Asked me for ten rand, stressin’ about dry land”와 같은 라인으로 미루어보면 「How Much a Dollar Cost」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75. “I got better judgement, I know when nigga’s hustlin’”
  76. 또한 흑인 노인이 처음 등장해 Kendrick에게 적선을 요구했을 때, 그는 “A piece of crack that he wanted, I knew he was smokin’”이라고 흑인 노인의 요구를 섣부르게 단정하는데, 흑인들에게 따라붙는 ‘마약’과 관련한 이미지는 주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것이고 트랙의 배경이 미국이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Kendrick 자신에게도 무의식적으로 흑인들에 대한 ‘백인스러운’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Wesley’s Theory」, 「King Kunta」등을 필두로 본작 전체에서 드러나던 ‘성공한 흑인 래퍼들의 의식-결여’라는 덫에 Kendrick 자신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할 것이다.
  77. “I’ll tell you just how much a dollar cost : The price of having a spot in Heaven, embrace your loss, I am God”
  78. “We all on the same team, Blues and Pirus, no colors ain’t a thing”
  79. “You hate my people, your plan is to terminate my culture”
  80. “Institutionalize manipulation and lies”
  81. “I said they treat me like a slave, cah’ me black”
  82. “I love myself”
  83. “The ghost of Mandela, hope my flows they propel it”
  84. “When gang banging make me kill a nigga blacker than me?”
coloringCYAN
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3 thoughts on “온음 2010년대 결산 : 국외음악 by. coloringCYAN

  1. 정말 수고하셨네요 선정한 앨범들이 2010년대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쓰여있어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2. 구글링하다 이곳을 알게되고 이 글을 읽게되었습니다. 양이나 질이나 굉장히 훌륭한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방문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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