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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10년대 결산 : 국내음악 by. 조지환

 

20

Song youngnam, 『Worldless』, Self-Released, 2019.12

첼로나 피아노, 바람소리나 또는 그 밖의 정체를 식별하기 힘든 여러 소리들이 스산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모여들어 어둑하고 흐릿한 공간(들)을 만든다. 『Worldless』는 그 공간들 사이로 낯선 공기를 흘려보낸다. 느릿하게 반복되거나 천천히 커지면서, 찌그러지는 듯한 질감의 잡음을 남기거나 한 순간 날카롭게 상승하면서, 소리들은 야트막한 두려움을 끌어내고 지속시킨다. 마지막 곡의 비트는 다른 곡들과는 이질적인 역동성으로 그 공포를 격화시킬 것이고, 갑작스레 멎음으로써 다시 한 번 생경함을 안길 것이다. 『Worldless』가 내어주는 것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정도를 지키며 유지되다 때때로 강렬해지곤 하는 기이함이다. 이 앨범은 앰비언트 음악의 청취가 어떻게 일관된 긴장감 아래 놓일 수 있는지, 그리고 또 그것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체험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알게 해준다.

 

19

Red Velvet, 『Perfect Velvet』, SM Ent., 2017.11

SM은 레드벨벳의 고유성을 이루던 두 가지 경향성을 번갈아 제시하며 합쳐놓았다. 「Automatic」에서 그랬듯 조금 더 짙고 무게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Kingdom Come」, 보다 장난스럽고 유쾌한 「두 번째 데이트」와 「Attaboy」 등, 두 가지 다른 경향성들을 통과하면서 『Perfect Velvet』은 다양해진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는 관계없이, 가장 강한 매력은 첫 두 곡에 있다. 「피카부」는 이전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레드벨벳의 타이틀곡에서 펼쳐졌던 과감한 실험의 계기들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의 도발적 성격을 살짝 덜어낸 뒤 가장 세련된 형태로 다시 다듬었다. 일렉트로닉 팝과 (SM풍의) 알앤비 보컬을 조합하고, 여러 소스들을 반복적으로 번갈아 등장시키며 다층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 보컬 샘플들이 어지럽게 잇따르며 인상을 모종의 신비감을 자아내는 「봐」의 인트로는 강렬한 유혹이 된다. 「피카부」에서 「봐」로 이어지는 흐름은 몇 년 동안 전자음악의 작법과 질감을 변용시켜 온 SM의 시도가 만들어낸 가장 멋진 결과물일 것이다.

 

18

선우정아, 『It’s Okay, Dear』,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2013.04

일반적인 밴드 세션에 브라스나 일렉트로닉 텍스쳐를 더해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활용하면서, 쾌활한 레게 연주에서부터 조금은 신파적이기까지 이별 발라드까지 다양한 구성과 스타일을 펼쳐놓았다. 우선 편곡에서의 아기자기한 재치들이 귀에 들어온다. 첫 곡의 첫 번째 코러스 뒤로 잠깐 등장하는 합창이나 환호성, 혹은 「울지마」의 처량한 건반이 들어오기 전 나지막이 깔리는 익숙한 “울-지-마”, 「알 수 없는 작곡가의」 칩튠풍 신스와 간주의 어지럽고 재지한 피아노 솔로 등 조금은 엉뚱한 장치들을 곳곳에 놓아 청취를 더욱 재미나게 만들었다. 선우정아의 자유로운 보컬 애드립은 나올 때마다 강하게 귀를 잡아끈다. 특히나 6번과 7번 트랙의 스캣이 그렇다. 트랙들이 수록된 순서가 중요한 앨범은 아니겠지만, 「비온다」만은 마지막 곡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점진적인 진행 끝에 벅차오르는 마무리를 들려주는 「비온다」는 앨범의 끝에서 개운한 느낌을 안긴다. 화려하게 꾸며지다 기분 좋은 인상을 새기며 마무리되는, 풍성한 앨범이다.

 

17

쾅프로그램, 『감은 눈』, 헬리콥터 레코즈, 2016.10

두리반 세대 전위적 음악가들의 작품들 중 가장 사납고 과격하게 망가진 소음을 녹음한 앨범이다. 쾅프로그램은 그 이상한 소리들을 역시나 기이한 형식에 맞춰 쏟아낸다. 그렇게 분출된 소리들의 청취는 극단적인 체험이다. 쾅프로그램은 그 체험이 공포에 닿을 때까지 극단성을 밀고 나아간다. 이를테면 「브라질리언 연지곤지」가 그렇다. 정신 사납게 이것저것 두들겨대는 소리들을 여러 겹으로 쌓으면서 혼돈을 연출하고, 점차 소리의 크기를 키우며 위압감을 만든다. 그리고 문득 수그러든 소음들이 다시 갑작스레 터져 나올 때, 음악을 듣는 일은 두려운 일이 된다. 「울 수 없나요」나 「zzz」 등 상대적으로 더 조용한 소리들로 더 세밀한 자극을 주는 트랙들이 잠시 쉴 틈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의 광포한 소음은 다시 청자를 강한 긴장으로 몰아넣고, 그 긴장 상태를 한동안 지속시킨다. 그 불쾌하리만치 격렬한 소리들은 외려 『감은 눈』이 야기하는 짜릿한 쾌감의 출처가 된다. 긴장이 쾌감으로 뒤집히는 이 전복은 아마도 노이즈 음악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매력일 것이다. 쾅프로그램은 그것을 난폭하게 구현해 제공했다.

 

16

전자양, 『소음의 왕』, Self-Released, 2015.09

그 이름에 걸맞게, 『소음의 왕』은 시작부터 야릇한 소리들을 내리붓는다. 소음들은 앨범의 곳곳에 숨어 있다가 골탕을 먹이듯 튀어나오고 다시 어느 순간 뒤로 빠진다. 「소음의 왕」의 뒷부분에서 두 번에 걸쳐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드라이브 기타의 쇳소리는 특히나 아찔한 자극이다. 쾌활한 리듬 사이로 틈틈이 들어박힌 뜻밖의 소리들. 『소음의 왕』은 그 요란함으로 승부를 본다. 화려하게 트랙들을 장식하는 기묘한 음색들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화하는 곡의 구조, 전자양의 방정맞은 가성과 종종 생뚱맞게 튀어나오는 꺼림칙한 저음의 목소리……. 단 다섯 곡만으로도 『소음의 왕』은 그토록 많은 것들을 펼쳐낸다. 거기에 장난스럽고 냉소적이면서도 신화적인 가사가 이 앨범을 한층 더 야릇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뭉쳐 이 해괴한 물건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재미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15

사람12사람, 『빗물구름태풍태양』, 영기획, 2013.12

글리치를 서정의 장치로 변용시켜 팝 멜로디와 함께 병치한 앨범들은 지난 십 년 간 계속해서 제출되어 왔다. 「빗물구름태풍태양」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련된 결과물이다.

일관되게 우울한 정서를 품고 있으나, 모든 요소들이 그렇게 음울하게 가라앉지만은 않는다. 「Wind Blow」의 어쿠스틱 기타는 여타 포크팝 곡들에서 그렇듯 따뜻한 음색을 낸다. 대체로는 조용하게 소리를 내도록 설계된 글리치 노이즈들은 다른 소리들을 뒤덮지 않고 그것들과 조화되며, 그럼으로써 이들의 팝은 더 세련되어졌다. 비트와 신스는 때때로 역동적인 전개로 곡들의 분위기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여러 소리들의 구체적인 질감과 음색을 적극 활용했다. 특히 (「더 많은 이야기」의 가사에서도 강조되듯) 지음이 내는 마찰음은 그녀의 보컬의 서늘한 느낌을 배가시키고, 그 주변에 놓인 자그마한 글리치 노이즈들과 함께 세밀하게 귀를 자극한다.

 

14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사우스폴 사운드 랩, 2012.10

「스모우크핫커피리필」과 「끝말잇기」는 모두 말소리들로 놀이를 한다는 개성을 갖춘 곡들이지만, 두 곡은 곡의 진행에 있어 완전히 다른 곡들이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이 말소리의 반복과 다양한 음향적 효과들로 특징지어진다면, 「끝말잇기」는 경쾌한 리듬으로 특징지어진다. 두 곡이 공유하고 있는 개성이, 각 곡들마다 다른 색을 띄고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dreamtalk』의 트랙들은 모두 서로 다른 매력들을 가지고 있다.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는 떠들썩하게 몸을 흔들게 하고, 「제주바람 2011807」은 고요한 사운드 스케이프와 드론 노이즈를 앞뒤에 배치하며 그와는 반대되는 분위기를 만든다. 어느 한 트랙에서도 지겨워질 틈을 내지 않는 그 다양성이 『dreamtalk』의 매력을 구성한다. 구간마다 스타일을 달리하며 신비로운 연주를 들려주는 「꿈속으로」는 앨범의 그 같은 매력을 한 곡 안에 요약한다.

남상아의 보컬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랬듯) 이 앨범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남상아는 4번 트랙에서는 아찔한 스캣을 들려주다가, 5번 트랙에서는 해맑고 천진하게 노래하고, 6번 트랙에서는 절절하게 울부짖는다. 그녀는 때마다 목소리를 바꾸면서 각 곡들의 특색을 또렷하게 전달한다.

『dreamtalk』은 마치 여러 가지 맛의 사탕들을 한 데 모아놓은 사탕 꾸러미 같은 앨범이다. 그 꾸러미 속 사탕들 한 알 한 알이 놀랍다.

 

13

김사월X김해원, 『{비밀}』, Self-Released, 2014.10

두 명의 기타와 목소리를 기본적인 단위로 삼고, 그 주변에 여러 가지 타악기와 자그마한 음향적 장치들을 더해 꾸며낸 앨범이다. 앨범의 편곡은 수월하게 단조로움을 비껴간다. 가령 「비밀」에서는 리드 기타의 다양한 변주가 곡에 역동성을 주며, 「지옥으로 가버려」에서는 뒷부분에서 잠시 기타 소리를 빼면서도 리듬은 유지하는 식으로 곡의 다양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부여했다. 곡의 구조나 연주보다도 더 강한 힘을 지닌 것은 둘의 서늘하면서도 관능적인 목소리들이다. 이 점에서 「사막, Pt. 1」은 가장 중요한 트랙이다. 「사막, Pt. 1」에서 이들은 말소리의 음색과 질감을 강조한다. “그대 내 숨을 마셔요”와 “그대 내 물을 마셔요”를 반복하면서, “숨”과 “물”의 초성의 마찰음과 비음 사이의 발음 차이를 부각시킨다. 그 덕에 하나는 보다 거칠게, 또 하나는 보다 부드럽게 들리는데, 노랫말과 함께 생각할 때, 그 차이는 서로 의존적인 관계 또는 서로 상대가 자신에게 의존하기를 바라는 관계의 양가성 (그 소름끼치는 면과 애틋한 면)의 음적 재현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안아줘」 같은 곡에서 그렇듯) 이따금씩은 소름끼치기도 하는 노랫말을, 비밀을 속삭이듯 조용한 (그렇기에 더 자극적인)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렇게 『{비밀}』은 그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고, 유혹적으로 흘려보내며, 그것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든다.

 

12

Jclef, 『flaw, flaw』, 비스킷 하우스, 2018.08

멜로디컬한 가창과 랩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스타일은 지난 몇 년 동안 흑인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규정했던 요소였으며, 『flaw, flaw』의 제이클래프는 그 새로운 스타일을 가장 능란하게 구사하는 신인이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활용에 있어서 뿐 아니라, 플로우의 구성과 작사법에 있어서나, 동료 루키들과의 협업에 있어서도, 그리고 새로이 부상하는 담론들에 대해 제시된 관점에 있어서도 『flaw, flaw』는 가장 멋진 것들을 성취했다. 비트 메이킹과 피쳐링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이들도 모두 신인이었으며, 가사는 여성혐오와 정신질환자혐오 등의 문제에 과감하게 접근하면서도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공격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쓰였다

탁월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Dive In Island」의 은유나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서사를 구성하면서 제이클래프는 구체적인 묘사들을 더했으며, 이로써 앨범에 생생함을 더했다. 그녀의 보컬이 만드는 리듬은 프로듀서진들의 비트와 절묘하게 맞아든다. 그 점에서 코아 화이트가 작업한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은 각별하다. 그 곡의 코러스에서 코아 화이트는 하이햇과 킥을 차례차례 중단시키면서 소리들 사이의 여백을 만들고, 보컬이 주목받을 수 있게 하면서도 그 뒤로는 필드 레코딩 샘플들을 보컬 주변에 놓아 노래의 분위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코러스의 중간에서 “삶”이 발음되는 것에 맞춰 킥과 스네어가 강조점을 찍는 순간의 쫄깃함은 이 노래의 큰 매력이다.

 

11

아침, 『hunch』, 붕가붕가레코드, 2010.06

『hunch』는 지나간 날들에 대한 모종의 애도와 함께, 또는 추억들을 집어삼키며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에 대한 모종의 원망과 함께 시작한다. 만약 바로 맞은편까지 닥쳐온 미래가 두렵다면, 그 까닭은 그것이 과거를 보살필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향수마저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처음 세 곡 안에서 계속해서 벌어지는, 그리운 날들로부터의 거리.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거리에 기인하는 패배적인 정서가 앨범을 이끌고 간다. 추억은 부서지고 떠내려간다. 모든 감정들이 이미 잊히기 시작한 과거를 향하며 갈 곳을 잃는다.

가사의 정서가 일관적이지만, 『hunch』는 록 연주로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분위기들을 차례차례 제시하며 들려주는 앨범이다. 셰이커 소리와 함께 실려 가는 「파도색 신발」의 나른함과, 베이스 핑거 피킹과 기타 스트로크의 리듬을 하나로 맞춘 「거짓말꽃」 인트로의 박력, 날카롭고 쨍한 톤의 기타로 만들어낸 「불꽃 놀이」 인트로의 스릴, 「이 비가 그친 뒤」의 솔로가 강렬하면서도 간결하게 전달하는 울적함, 초반부의 긴장된 연주 뒤에 따라오는 엉뚱한 노랫말의 발음에서 알 수 있는 「불신자들」의 과감함.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빛나는 장면은 「Pathetic Sight」의 청량하면서도 경쾌한 도입부 리프일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앨범은 다른 종류의 정서를 발견한다. 보너스 트랙 전에 놓인, 사실상의 마지막 곡에서, 앨범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갈 공간으로 나아간다. 연주부터 유쾌하다. 기분 좋은 기타 슬라이드가 앨범을 뒤집어놓는다. 지난날들과의 피할 수 없었던 이별 끝에, 과거에 대한 길었던 애도 끝에, 『hunch』는 곁에 있는 동료와 함께할 앞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끝에서 『hunch』는 하나의 성장담이 된다. 그 결말이 이 앨범을 더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10

E Sens, 『The Anecdote』, BANA, 2015.08

『The Anecdote』는 마치 자서전처럼 쓰였다. 이센스는 “빡빡이 가짜 신발 침 발라서 닦던 애”를 청자의 바로 옆으로 데려오고(「Back In Time」), 가까이에서 그의 궤적을 따라가도록 만든다. 『The Anecdote』의 성공은 그 점에 있다. 그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작해 청자는 그의 삶을 함께 겪어낸다. 학교에서는 촌지가 오갔고, 집안 사정은 어려웠으며, 학교를 그만두고도 한동안은 돈에 치여 살 것이다. 여러 곡들에 걸쳐 서술된 궁핍의 기록은, “돈보다 중요한 거 얻는 방법, 없어보고 따지는 게 순서가 맞어” 같은 구절들의 힘이 된다.(「A-G-E」) 앨범 속의 이야기는 단지 작사가 한 명만의 것은 아니다. 「Next Level」에 서술된 이센스의 이력은 동료들의 이력과도 얽혀든다. 이것은 한 래퍼가 그 자신과 씬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며 그 씬에 헌사를 보내는 가장 정중한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이센스 랩의 고유한 리듬감, 긴 이야기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드는 가사의 흡인력에, 일관성 있는 비트들을 응집시켜 통일감을 갖춘 프로덕션까지, 팬들과 래퍼들의 다소 요란스러웠고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상찬들을 걷어내더라도 『The Anecdote』는 여러 면에서 고르게 훌륭한 앨범이다.

 

91

키라라, 『sarah』, Self-Released / EARWIRE, 2018.08

“있잖아요”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같은 말들은 아무 때나 쓰는 말들이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고 묻고 싶은 것이 있으나 선뜻 입을 떼기가 조심스러울 때 하게 되는 말들이다. 『sarah』의 첫 곡 「걱정」은 이처럼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뒤에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키라라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잘 지내요?” 그리고는 곧바로 「Wish」의 명랑한 리드 신스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걱정을 뚫고 나오는 희망. 그것이 『sarah』의 힘이다.

『sarah』의 동력은 주로 90년대 스타일의 빅 비트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이 철두철미 빅 비트만으로 움직여간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트랙들이 록킹하게 몰아치듯 달려간다면, 「Water」는 조금 다른 속도로, 마치 시냇물이 흘러가듯 나아간다. 「Water」의 내용물은 13분 동안 반복되는 물소리들이다. 키라라는 물거품이 일어나는 소리들 사이에 차갑고 사무적인 목소리들을 끼워놓으면서 다소 울적한 느낌을 연출한다. 나는 「Water」가 『sarah』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이 곡을 통해 키라라가 전작들에서 들려주지 않았던, 다소 매니악한 (곧 덜 댄서블한) 사운드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키라라의 디스코그래피에서 「Water」는 새로운 실험이다. 둘째, 이 트랙이 「Earthquake」와 「장난」 사이에서 어떤 복잡한 정서를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Water」는 「Earthquake」의 뒷부분에서 2분가량 계속되는 음산하고 기분 나쁜 신스음 바로 뒤에 이어진다. 이 신스음은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기어코 멎어들기 직전이 되어서야 이전까지의 음산함을 모두 벗어던지는데, 「Water」의 물소리는 이 희망적인 순간을 바짝 뒤쫓는다. 「Water」가 조용히 마무리 되고 나면 그 뒤로는 이 앨범에서 가장 정신없고 시끄러운 1분인 「장난」의 인트로가 이어진다. 이렇게 「Water」를 한 가운데에 두고 온갖 감정들과 상태들이 교차한다. 그렇게 상반되는 감정들이 엎치락뒤치락 갈마들며 감정들의 복합체가 만들어진다. 『sarah』는 그 감정들의 복합체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손혜민나원영이 썼듯이, 『sarah』에는 기쁨과 슬픔이 뒤얽혀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상반되는 감정들을 한 데 뭉쳐 굴려가면서도, 『sarah』가 결코 활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떠나간 애인을 그리며 울적이는 윤종신의 목소리도 다시 흥겹게 바꿔놓고야 마는 것이 『sarah』다. 키라라는 꿋꿋하게 힘찬 비트를 때려대며 댄서블한 리드 신스 리듬을 들이민다. 그것이 『sarah』가 저 감정의 복합체들을 밀고 가는 방식이다.

여기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하나. 이 앨범은 크라우드 펀딩을 거쳐 제작된 앨범인데, 크라우드 펀딩은 2010년대를 지나며 자리 잡은 대안적 음반 제작 방법이다. 『sarah』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한 대안적 음반 제작의 성공 사례들 중 하나고, 그러므로 『sarah』는 2010년대 대중음악 산업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둘. 이 앨범의 라이너노트는 한 음악인이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이 겪어온 것들에 대해, 그 삶의 고유한 어려움에 대해, 그리고 그 어려움을 (함께) 견뎌 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에 대해 분명하게 적어 자신의 앨범 안에 담아낸 글로써, 대중음악 산업 안에서 수행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드문 사례다. 이 글은 (다의적으로 읽힐 가능성에 항상 개방되어 있는) 가사가 아닌 자립적 산문으로서 앨범에 실렸기에 더욱 분명한 (곧 부가적인 서사적 장치로 생각될 우려가 적은) 증언이 되어줄 것이다.

 

8


XXX, 『LANGUAGE』, BANA, 2018.11

차트 지향적 힙합, 또는 방송국 힙합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대한 경멸은 2010년대 한국 힙합 씬의 한 부분을 장악했던 동기였다. 그 경멸은 오래된 대립의 형식들을 되풀이했다. ‘CJ 대 반-CJ’에 연쇄된 ‘타협 대 순수’, ‘상업주의 대 예술’ 같은 오래된 슬로건들은 관행처럼 반복되었다. 그런 이원적 범주들로 사태를 이해하는 것이 적실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상관없이, 그것들은 강력한 수사적 무기로 쓰였다. 『녹색이념』은 그러한 수사법을 열정적으로 반복한 앨범으로서 명반화되었다. ‘CJ-차트-타협적 상업주의 대 진짜 예술’이라는 대립 도식에 대한 신뢰 자체가 소위 ‘예술성’의 증거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LANGUAGE』는 그와 같은 시기에 기획된 탈선의 시도다.

첫 곡에서부터 FRNK의 비트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을 쏘아 보내면서 급히 변화하는 전개를 들려준다. 레프트필드 일렉트로닉 장르들의 소스들을 빌려옴으로써, FRNK는 보다 요란하고 공격적인 비트를 만들어냈다. 퍼커션을 산만하게 반복시키면서, 또는 두꺼운 신스음을 잇달아 충돌시키면서, 또 때로는 뜻밖의 스트링을 삽입시키면서, 그의 비트는 그때그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LANGUAGE』는 충분히 독특한 앨범이겠다.

그러나 이 앨범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적었던 그 이원적으로 도식화된 슬로건을 의문에 부치는 김심야의 가사가 『LANGUAGE』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물론 김심야도 또한 그 도식을 습관적으로 인용하며, 자신들을 ‘순수’, ‘예술’의 편에 위치시키려는 제스쳐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른바 ‘예술’이라는 것을 상업주의적 타협들로부터 그토록 선연하게 갈라내는 것에 지쳤다는 듯한 제스쳐를 보이기도 한다. 돈 얘기는 하기 싫으니 예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해도 다시 돈 얘기로 귀착하고야마는 담화의 구조는 「수작」과 「Trust Us」, 그리고 「뭐 어쩔까 그럼」을 지배하는 모티프이며, 크게 보자면 이 앨범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뭐 어쩔까 그럼」에서 논변으로 형식화되어 제시된다. 그리고 「Bad For You」에서 김심야는 ‘상업 대 예술’이라는 이원적 대립을 계속해서 재생시키는 스스로를 “예술하는 척쟁이”로 명명한다. 김심야는 예술성에 대한 호소 그 자체를 예술성의 증거로 삼는 그 관습의 “명분”과 “이유와 증명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수작」) 내가 보기엔 이것이 XXX가 닿은 새로운 영역이다.

『LANGUAGE』는 비트의 작법에 있어서나 작사법에 있어서나 기성의 관행적인 작법들을 제치고 나아가고, 김심야는 쇼미더머니 시대의 힙합 씬과 작품들이 이해되고 평가되는 기준이 되던 도식적 범주들의 효력을 자신의 가사 안에서 반복하여 문제 삼는다. 그것이 이 앨범의 급진성일 것이다.

 

7

줄리아드림, 『불안의 세계』, In a Dream, 2016.04

『불안의 세계』의 무대는 바다다. 줄리아드림은 온갖 소리들의 잔향으로 그 바다를 채색한다. 첫 곡에서부터 그들은 기타의 디케이를 길게 늘어뜨리며 시작한다. 다음곡 「만선」에서도 가장 먼저 주의를 끄는 것도 킥 드럼이 뒤로 남기는 긴 잔향이다. 인트로에서 기타의 잔향들이 서로 겹쳐들며 만들어내는 것이 공포의 느낌이라면, 드럼과 보컬의 잔향이 찍어내는 인상은 그보다는 황량하게 느껴질 것이다. 『불안의 세계』는 그렇게 스산하게 출발한다. 스산함은 『불안의 세계』 전반을 휘도는 인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연주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때에도 그렇다. 가령 코러스의 베이스가 경쾌한 라인을 연주하고 뒷부분의 기타가 정열적인 솔로를 쏟아 붓는 「My Queen」에서도, 2분 십 초 쯤에서는 기타 벤딩음이 다시 연주에 서늘함을 집어넣는다. 불규칙적인 피아노에 온갖 노이즈를 뒤섞은 「구원의 세계, Pt. 1」, 그리고 「어제처럼 그렇게」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불길함은 극단화될 것이다.

앨범의 소개글에 적혀 있듯, 「만선」의 간주에서 짧게 나오는 기타 리프는 「파도」에서는 보컬 멜로디와 건반 스케일로, 「잊혀진 바닷가」 뒷부분에서는 다시 기타 리프로 비슷하게 반복될 것이다. 그 리프의 스케일이 이 앨범의 첫 여덟 트랙과 뒤의 여덟 트랙 사이의 유기성과 통일성을 조직하는 중심이다. 같은 음진행을 반복함으로써 강조된 세 곡은 모두 가사에서 같은 모티프를 공유한다. 바다에서의 죽음이라는 모티프가 그것이다. 나는 「파도」와 「잊혀진 바닷가 : 친구의 노래」에서부터 『불안의 세계』를 다시 읽는다. 아침 무렵 바다를 향해 나선 이들의 죽었다는 소식과, 누군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 했다는 전언. 가사는 충분히 분명한 방식으로 세월호를 가리킨다. 이 두 트랙들을 거쳐, 『불안의 세계』의 다른 트랙들의 표제들, 가령 “외면과 도피”, “My Queen”이나 “망각” 같은 어휘들은 새로이 어떤 은유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그것들을 박근혜 정부 내각의 책임방기와 자료 은폐에 대한 완곡한 지시로 읽힌다.2 그것들을 세월호를 망각시키고자 했던 책임자들의 면피 시도에 대한 은유로 읽는다면, 이 같은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참사 당일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긴 시간에 대한 참조일 것이다.

「Casus Belli」나 「어떤전쟁」 같은 곡들에서 이들은 몹시도 맹렬한 연주를 들려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어제처럼 그렇게」의 마지막 2분을 채우는 연주다. 서글픈 팔세토와 대비되게도 돌연 경쾌해지는 리듬 뒤로, 심벌과 기타 벤딩음의 잔향이 어지럽게 침입한다. 느슨해진 긴장을 다시 바짝 당기는 이 잔향과 함께, 앨범은 스산하게 마무리된다. 이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까지 다시 돌아오는, 길게 지속되는 잔향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잔존하는 그 무언가에 불안이라는 이름을 붙인 셈이다. 『불안의 세계』의 가사가 집요하게 외면이나 망각 같은 어휘를 맴도는 것과는 달리, 바다를 재현하는 듯 들렸던 잔향들은 또한 불안의 잔존을 재현한다. 『불안의 세계』는 장대한 연주 가운데에서 그 불안의 기억을 붙잡는다. 이들의 연주는 노랫말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노랫말과는 독립적으로) 참사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은유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노랫말이 세월호를 가리키는 방식이 그리 정중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가령 “세월이 흘러도 아무도 오질 않았네”라는 가사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려 했던 이들의 노력을 ‘망각’한 채 쓰인 구절일 것이다.), 이 앨범에 녹음된 연주는 노랫말에서 시도된 것보다 더 적실한 은유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불안의 세계』는 세월호라는 무거운 이름에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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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둑, 『무너지기』, Self-Released, 2018.07

다채롭게 다듬고 꾸민 여러 가지 음색과 질감의 전자음들과 샘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투박한 음질을 만들어내고, 보컬 트랙을 알아듣기 힘들 만큼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몇 가지 장르들의 접점에 서서 그 장르들의 작법들을 자유롭게 빌려온다. 이것들 모두 이 앨범의 강점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무너지기』에서 가장 감탄할만한 점은, 이런저런 소리들을 충돌시키는 방식에 있다. 공중도둑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리들을 골라 서로 부딪히게 만든다. 첫 곡부터 그렇다. 어쿠스틱 기타 위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던 전자음들이 기어코 터져 나오는 찰나, 모든 소리들이 서로에게 과격하게 부딪혀든다. 『무너지기』는 쉬지 않고 소리들을 충돌시키고, 그런 때마다 노래들을 뒤집어놓는다.

충돌은 변화를 수반한다. 지금 내는 소리가 아까 냈던 소리와 다르도록, 곧 내게 될 소리가 지금 내는 소리와 다르도록, 『무너지기』는 달라지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앨범의 매력적인 비일관성이 만들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weiv]의 나원영이 더 자세하게 서술한 바 있다.) 곡의 분위기와 속도, 소리의 세기와 음색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공중도둑은 변덕스럽게 곡들을 이어간다. 변덕. 이 앨범과 가장 잘 어울리는 낱말이다. 죽 끓듯이 변덕을 부려대는 음악. 『무너지기』는 그런 앨범이다.

목소리도 작고 발음도 불분명해서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노랫말도 탁월하게 쓰였다.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은 일반적인 상황들을 묘사하면서도 사뭇 새로운 방식으로 낱말들을 배열해 놓는다. (가령, 「흙」의 “묽어져가는 등불들과 함께 새벽에 넘겨줄 이 도로”처럼.) 그리 쉽게 읽히는 노랫말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어휘들이 쓰인 것도 아니다. 둘의 노랫말은 괜히 무게를 잡거나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간단해지거나 단순해지지도 않는다. 노랫말들을 전달하는 보컬 멜로디도 매력적이다. 여러 소리들이 종잡을 수 없이 지나쳐가는 와중에도, 『무너지기』는 조용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자극을 전달한다.

발칙한 앨범이다. 심지어 앨범 커버까지도 마지막 곡의 정경과 너무 잘 어울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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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IRAT, 『iraer/tiaroe』, Agramm Prt., 2013.12

대안적 전자음악 공연 <WATMM>이 그 이름을 달고 정기 공연을 시작한 것은 2013년 연초였다고 한다. 그 해는 영기획이 추진했던 전자 음악 페어 ‘암페어’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며, 기술부의 첫 공식 EP와 오대리의 첫 정규작이 나왔던 해이기도 하다. 한국 전자음악의 비주류적 역사가 갱신되던 그 해,4 <WATMM>을 기획하면서 씬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했던 다미라트 또한 첫 더블 EP를 제출했다.

이 앨범에 담긴 것은 언뜻 불규칙하게 흐트러진 듯 들리는, 그러나 분명 반복의 주기들을 갖추고 정렬된 소리들이다. 그것은 만들어질 때에는 모종의 규칙 아래에서 만들어졌겠으나 들릴 때에는 마치 규칙을 벗어난 것처럼 들리는 소리들이며, 그러한 점에서 현대적이다. 다미라트의 비트는 극단적으로 변형되어 그 모양새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 닿았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iraer/tiaroe』는 IDM 음반이다. 다미라트는 규칙성과 외현적 불규칙성의 사이의 이중적인 영역에 비트를 떨어뜨린다. 「rcvv rar」이나 「loncc」 같은 트랙들에서 가장 아찔하게 느낄 수 있는 그 이중성, 그리고 그에 수반되어 느껴지는 혼란이 『iraer/tiaroe』의 청취가 안겨주는 즐거움의 첫 번째 출처일 것이다. 이 앨범을 소개하면서 오대리는 “모르면 모르는 채로 다가오고 느껴지는 이 낯선 모든 게 다미라트를 이해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썼다. 그가 옳다. 다미라트의 리듬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헷갈리는 그 이해의 불충분 속에서 체험되고 향수된다.

갖은 질감들과 음색들 또한 이 앨범을 더 복잡하고 화려하게 만든다. 소리들의 다양성이 관건이라면, 깊은 물속으로 잠겨드는 듯한 잔향과 어수선한 공장의 기계음, 그리고 낮고 짧게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현악음을 번갈아 내는 「ece ils」를, 또는 서정적인 건반 선율을 거친 기계음들과 맞세우는 「L.delt」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더 자극적인 소리들이 관건이라면, 쉬지 않고 소리들을 찌그러뜨려대는 「nctt.2」나 「tpoc」를 내세울 수 있다. 어떤 측면을 강조하든 다미라트의 소리들은 더없이 기이하다. 기이하되, 서로 뭉쳐지거나 뒤섞이는 일 없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들리며, 그럼으로써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자극들을 전달한다.

『iraer/tiaroe』는 강렬한 청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앨범일 뿐 아니라 그 당시 움튼 한국 전자음악의 주변적 움직임들 중의 일례로서 제시될 수 있는 앨범일 것이다. 다미라트는 IDM이라는 90년대 방식의 실험을 되살렸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유한 작업물로, 그리고 씬에 던져질 하나의 대안으로 다시 가공해냈다.

 

4

이민휘, 『빌린 입』, Self-Released, 2016.11

『빌린 입』의 가사는 언어에 대한, 정확히는 화행에 대한, 그리고 침묵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가부장제의 구속력에 대한 여성주의적 묘사로 읽혔으며, 이를 앞서의 화행 또는 침묵이라는 쟁점과 함께 생각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말해질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말들과 그럴 수 없는 (침묵 당한) 말들을 구분하는 성차화된 권력 관계에 대한 은유로 읽혔다. 「깨진 거울」의 가사는 재귀적 독백을 통해서만 침묵과 예속을 재확인하고, 다른 이들의 말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킴으로써만 그 침묵과 예속에서 해방되는 비극으로 읽혔다.

나는 “그대 입과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다고”라고 말하는 「빌린 입」의 가사를, 발화와 그것의 수신이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개인적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지시하는 문장으로 읽는다. 나는 또한 「거울」의 가사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종속이 어머니에게서 딸로 세대를 거쳐 반복된 것임을 지시하는 이야기로 읽는다. 나는 「받아쓰기」를 중심에 놓는다. 혀는 소리를 분절시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적 표현으로 만드는 발음기관의 일부다. 「받아쓰기」에서 가사 속 딸은 혀를, 곧 발화의 능력을 도둑맞는데, 그녀의 혀를 회수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다. 「받아쓰기」속 아버지의 자리에서, 발화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좌우하는 권위와 가부장의 권위는 한 곳에 포개어진다.

앨범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빌린 입」은 플롯의 약간 탁한 음색으로 특징지어지는가 하면, 「거울」에서는 그보다 맑은 음색의 높은 건반 소리가 다소 을씨년스러운 첫 인상을 만들고, 「부은 발」에서는 꽤 길게 이어지는 해변의 사운드 스케이프의 반복이 그 곡의 고유한 분위기를 구성한다. 「빌린 입」에서는 플롯의 선율을 중심으로 기타와 베이스가 리듬을 구성하는가 하면, 「받아쓰기」는 타악기가 전면에 나서며 상대적으로 역동적으로 들리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전자기타가 꽤나 청량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나, 목소리가 이민휘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나 「깨진 거울」은 아마도 가장 튀는 곡일 것이다. 특히나 곡의 아웃트로에서 기타에 걸린 모듈레이션 페달의 효과는 그 앞 곡 「꿈」의 음울했던 마지막을 생각하면 더더욱 도드라진다.

「받아쓰기」를 중심에 놓는다면 「꿈」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가진 곡으로 생각될 수 있다. 「꿈」에서 이민휘는 첫 째로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없애고, 멜로디만 부각시킨다. 둘째로 이민휘는 말소리를 들려주는데, 다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도록 처리해놓았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말소리들이 서로 번갈아 들려올 때, 그전까지 배경음으로 들리던 소리가 커지며 소음을 낼 것이다. 그 말소리들과 소음이 천천히 멎어가는 것으로 트랙은 마무리된다. 「받아쓰기」의 딸이 가지지 못한 것이 만약 목소리가 말로 수용될 수 있게끔 만드는 능력이라면, 「꿈」의 말 없는 콧노래와 말로 이해되지 않는 말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커져가는 소음은 그녀가 말을 전하는 일에 있어 어떻게 좌절했는가를 들려주는 소리들일 것이다.5

마지막 곡에 이르면, 더없이 처연한 첼로 선율을 마주하게 된다. 약 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첼로와 피아노는 서로 속도를 맞춰 흐느낀다. 「꿈」에서의 말로 이해되지 않던 목소리에 다시 말 아닌 소리(첼로)가 울음에 가깝게 응답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침묵의 빛」은 한 편으로는 의사소통의 대안적 수단을 제시한 셈이겠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침묵의 빛」은 「받아쓰기」의 딸이 끝내 말하기와 듣기의 망 안으로 돌입하는 데에 실패했음을 알려준 셈이다. 딸은 「받아쓰기」의 끝에서 도둑을 가리키며 자신의 목소리를 말로 만들려 시도했다. 그 뒤에 첼로가 이토록 구슬픈 소리를 내야만했다면, 그 까닭은 그녀의 발화의 의미가 아버지의 귀 앞에서 차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6

『빌린 입』은 여러 관점에서의 독해를 허용하는 앨범이겠으나, 어떤 관점에서든 그것이 발매되던 시기의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반영이며, 담론사적 자료일 것이다. 2016년 당시의 담론들은 『빌린 입』과 상호참조의 관계에 놓여있다. 그 무렵은 말하기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발화된 진술들 사이의 위계를 결정하는 가부장제 규범과 함께 공적 문제로서 (다시) 떠오르던 때였다. 『빌린 입』은 그 두 가지 이슈에 얽혀있던 담론들을 지시하는 앨범임과 동시에, 또한 그 시기의 담론들에 매개되어 독해되는 앨범이다.

 

3

잠비나이, 『차연』, GMC 레코드, 2012.02

CLASH 매거진에 실린 기고문에서 김보미는, 잠비나이는 국악기가 내는 소리의 질감과 음향-이미지에 집중하며, 국악 고유의 연주법을 통해 기성 국악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소음들을 활용한다고 쓴다. 이 때 그녀가 염두에 둔 질감은, 잠비나이가 들려주는 질감이 실제로 그러하듯, 거친 종류의 질감이다. 가령 그녀는 전통 악기로서 해금이 가진 매력이 “거칠고, 탁하며 다소 신경증적인” 음색에 있으며, 해금 소리는 그런 거친 음색으로 인해 보다 직접적으로 감정에 가닿을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녀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귀결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잠비나이의 음악은 국악기들을 포스트 메탈의 소음에 적응시키려는 기획의 결과물이 아니라, 국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거친 음색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형식을 찾아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소멸의 시간」은 그들이 전통악기의 파괴적인 음색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대한 강렬한 요약이다. 거문고가 인트로의 리프를 반복하면서 강박적인 리듬을 만들면, 그 소리를 뚫고 해금이 이따금씩 삐걱대면서 음산한 소리를 낸다. 끝에서는 광포한 기타 노이즈 속에서 태평소가 높고 시끄럽게 곡의 절정을 끌어온다. 첫 곡에서 요약된 이들 탐구의 본론은 「바라밀다 Pt.1」에서부터 「텅 빈 눈동자 Pt.1」에까지 펼쳐진다. 두 곡의 「바라밀다」에서 잠비나이는 그 폭력적인 소음들을 한 덩어리로 뭉쳐 놓는다. 두 곡은 모두 점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 곡 모두 한동안 간헐적으로 울리는 거문고와 그 밑에서 조용히 낮게 우글대는 소리들을 들려주다, 뒷부분에서 어지럽게 뒤섞인 소리들을 터뜨리듯 내보내며 위압적인 구간들을 만든다. 「구원의 손길」에서 맹렬한 리듬을 뒤로 하고 태평소와 해금이 곡하는 귀신들 마냥 울어대며 서로 달라붙을 때, 이들은 「바라밀다」들의 그것보다 더 서늘하면서도 그만큼 소름끼치는 구간을 연출한다. 그리고 심은용이 거문고 현들을 횡으로 긁어댈 때, 『차연』이 제시하는 가장 섬뜩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광포한 소음들을 쏟아낸 뒤에 찾아오는 두 곡의 「텅 빈 눈동자」는 마치 다음에 올 무언가를 예비하는 듯 들린다. 그 두 곡이 끝나면, 이 앨범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연주가 찾아온다. 커져가던 딜레이 노이즈가 노래 중간에 멎고 나면, 그 때부터 반복되는 해금 선율을 중심으로 점층적인 결말부가 시작된다. 드럼 비트가 조금씩 거세져갈 때에도 「Connection」은 이전과 같은 광포한 소리들을 내지는 않는다. 『차연』은 그렇게 조심스럽고 따스하게 끝을 맞는다.

잠비나이의 연주에는 일반적인 구조가 있는 듯 보인다. 더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고, 더 시끄럽고 격정적인 부분들이 있으며, 전자가 후자를 준비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감은 눈 위로 비추는 불빛」과 두 곡의 「바라밀다」가 특히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 어떻게 보면 이는 「Connection」에 대해서도 정당한 관념이다. 「Connection」도 그같은 점진적인 구조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Connection」은 그전까지 『차연』이 유도해 온 그 같은 관념을 파기하는 결말이기도 하다. 「소멸의 시간」부터 이어져 온 맹렬한 연주들을 모두 거친 뒤 그 끝에서 가장 온화한 분위기의 「Connection」에 닿는 흐름을 염두에 두자면, 마지막 순간에 『차연』은 도리어 시끄럽고 거친 부분들이 마지막의 서정적인 연주를 준비하는 모양새를 갖춘 듯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잠비나이의 가장 뚜렷한 개성은 국악기들로 만들어낸 소음들이겠고, 그것은 잠비나이 앨범들의 고유하고 강력한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Connection」에 대해 썼던 것처럼, 『차연』의 매력은 소름끼치게 휘몰아치는 소음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연』은 그보다 더 다면적인 앨범이다. 소음들에 대한 일관적인 탐구는 그것이 그 같은 다면성 가운데에 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게 생각된다. 앨범의 흐름에 있어서, 그리고 각 곡들이 매순간 새로이 내어주는 강렬한 체험에 있어서, 『차연』은 훌륭한 앨범이다.

 

2

실리카겔, 『SiO2.nH2O』, 붕가붕가레코드, 2017.11

실리카겔의 첫 번째 정규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 앨범은 한 편의 꿈을, 또는 여러 꿈의 모음집을 들려준다는 뜻에서 드림팝 앨범이다.” 이들의 두 번째 셀프 타이틀 『SiO2.nH2O』도 그렇다. 이번에도 실리카겔은 다양한 소리들을 다층적으로 끌어 모아 환상을 그려낼 것이고, ‘말이 되게끔 만드는’ 문장 구성 방식으로부터 단어들을 해방시킬 것이며, 각 단어들의 발음을 청각적 환상의 부분들로 만들어낼 것이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일렉트로닉의 음색과 질감에 가깝게, 때로는 록에 가깝게. 이들의 연주는 이번에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실리카겔의 음악에는 꿈결 같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쭉쭉 뻗어가는 리드 신스 뒤에 이어, 이들의 나른하고 느긋한 노랫소리와 은은한 기타 스트로크가 청자를 그 꿈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트랙이 재생되는 동안 이들은 몇 번씩 난장판을 펼 것이고, 그 때마다 신스가 화려하게 춤을 출 것이다. 첫 두 트랙 동안, 앨범의 서두에서 실리카겔은 경쾌한 연주로 흥겨운 장면들을 펼쳐낸다. 「Zzz」부터 「Neo Soul」의 인트로까지는 엉뚱하게도 사뭇 미심쩍은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며, 그 뒤로는 다시 「그린내」의 벅찬 결말을 준비하며 즐겁게 춤출 수 있는 연주를 들려줄 것이다. 보다 짙은 리버브 효과를 더하며 기묘하게 소리들을 재배열한 DJ 소울스케이프와 달파란의 에필로그는 앨범을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들며, 더더욱 꿈결 같은 느낌 속에서 청취를 끝마칠 수 있도록 해준다.

실리카겔은 쉽게 귀에 익을 만한 보컬 멜로디들을 전보다 더 많이 가져왔다. 「뚝방길」의 동요 같은 멜로디나, 「불한당」에서 “불한당”을 반복하는 마디들에서 특히나 그러하며, 연주곡인 「Zzz」를 제외한 모든 곡들이 그처럼 매혹적인 멜로디들을 가지고 있다. 「9」와 「모두 그래」가 가지고 있던 강점들을, 네 곡을 줄여 간결해진 EP의 구성에 맞춰 앨범 전반에 골고루 나눠놓은 것이다. 이제 이들의 꿈(들)은 첫 곡의 제목이 알려주듯 낮잠을 자며 꾸는 짧은 꿈(들)이겠으나, 그 꿈(들)이 새길 인상은 밤중의 꿈(들)보다도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SiO2.nH2O』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린내」의 마지막 합창이 안겨주는 고양감일 것이다. 곡의 한 복판에 놓인 신스의 상승 음계는 마치 응원가의 인트로처럼 청자를 들뜨게 만든다. 그 뒤로 1분 남짓의 경쾌한 연주가 이어지고 나면, 신스 하나만 남기고 모든 악기들의 소리가 멎는다. 그때부터 합창은 주인공이 된다. 비슷한 발음들을 반복하면서, 그 합창은 더없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구성한다. 소리들을 비워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이어진 현란한 연주들 끝에 목소리가 주목을 받으며 앨범의 인상이 뒤집힘에 따라, 이 결말부는 벅차오르는 느낌을 전달한다. 그 장중한 연출을 노래 끝의 박력 있는 기타와 정신없는 드럼이 갈무리한다. 완벽한 순간이다.

실리카겔은 재기 넘치는 연주로 비현실의 체험을 내어주었다. 내게 그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멋진 신인이었고, 그것은 그들이 이미 벌써 몇 장의 결과물을 제출한 지금에까지도 그렇다. 그것은 그들의 연주가 항상 새롭고, 활기차고, 엉뚱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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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키무키만만수, 『2012』, 비트볼뮤직, 2012.05

만수는 자신이 그 전까지 해오던 음악의 기준에서 볼 때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은 “용납할 수 없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박국, 2012.) 『2012』는 기이하다. 황당하리만치 어설픈 괴성과, 그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꽤나 표준적인 형식을 갖춘 리듬, 크레딧에 올라간 달파란이라는 거장의 이름……. 지구종말의 낭설이 떠돌던 해, 안드로메다에서 출발해 석관동으로 내려와 남산을 거쳐 빠리를 찍고 숭례문으로 돌아오는 『2012』는 그 해의 문제작이었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무키무키만만수를 “2012년 평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이 앨범의 “의외성”을 높이 산 박주혁의 논평은 “무키무키만만수의 데뷔작 『2012』에 대해 말도 많고 대립각도 날카롭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박주혁•차우진•최민우, 2012.) 내 기억에도 『2012』는 논쟁적이었다. 이 앨범에 대한 담론은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그 때문에 단편선은 『2012』에 대해 쓰며 가장 먼저 “나는 그녀들의 음악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며 “지지자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다. (단편선, 2012.) 입장들 사이의 대립은 서정민갑과 김반야의 글에서 가장 또렷하게 보인다. 서정민갑은 “유례가 없는 음악”이라는 다소 과장된 찬사를 제출했다. (서정민갑, 2012.) 반대편에 선 김반야의 입장은 신중하다. “튀고 도드라지는 이런 스타일은 사실은 매우, 전통적이고, 낡은, 수법”이라면서, 이들의 실험적 경향을 “구시대적인 ‘태도’나 ‘정신'”이라고 썼다. (김반야, 2012.) 이것은 ‘실험’이라는 것에는 이제 신물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던 최민우의 입장과도 비슷하다. (박주혁•차우진•최민우, 2012.)

어쩌면 이런 논쟁이야말로 『2012』의 급진성을 구성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심화시킨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논쟁을 생산한다는 것은 흔히 작품의 급진성의 조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의 급진성에는 이보다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는 조건도 있다.

서정민갑은 다음과 같이 썼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음악이 발현하고 성장한 과정이 기존의 운동이나 방식으로 묶이지 않은, 새로운 대중과 공간의 탄생과 맥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서정민갑, 2012.) 서정민갑이 염두에 둔 것은 부산 한진 조선소로 떠났던 희망버스다. 무키무키만만수는 『2012』 이전에 이미 집회의 현장들에서부터 유명해졌던 밴드다. 홍대 두리반과 명동 마리, 그리고 제주도 강정마을 등을 거쳐 간 무키무키만만수의 투쟁 연대 이력은, 2011년을 전후로 독립 음악가들 사이에서 (다시) 구체화되어 가던 하나의 움직임을, 곧 연대 투쟁의 현장들에서 벌어졌던 전위적 퍼포먼스들을 대표한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은 격식 없는 어조의 괴성과 구장구장이라는 근본 없는 악기를 동원한, 생뚱맞은 형태의 저항적 행동이었던 셈이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을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라고 명명하면서, 이민희는 『2012』가 “길거리에서 ‘악 지르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고 쓴다. (이민희, 2013.) 여기에서 여성이 강조된다면, 그것은 단지 무키무키만만수가 잡년 행진 등의 여성주의 집회에서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앨범에 녹음된 괴성과 무키무키만만수의 집회 퍼포먼스를 함께 고려하면서, 이민희는 이들의 괴성이 대중음악에서 기대되는 여성 목소리의 표준형을 배반할 뿐 아니라, 그것이 공적 장소인 길거리에서 내질러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곧 무키무키만만수의 목소리는 거리에서-소리지르며-활동하는-여성의 재현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같은 활동적 여성의 표상은 기성의 민중가요에서 기대되는 여성의 이미지와도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이민희의 요점이다. 다소 길지만 원문을 인용하도록 한다. “민중가요에서 발견되는 ‘여성’은 주로 텍스트 안에 있는 ‘누나’, ‘어머니’ 혹은 ‘동지’라는 지위로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보호의 대상이며, 운동의 ‘주체’인 남성이 열성적으로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좌한다. [……] 대중음악에서 드러나는 ‘여성’은 그 육체가 강조되며 성적 대상으로서 그려진다. [……]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여성’ 음악가의 음악들은 손쉽게 남성적 음악이나 남성 음악가와 대립구도를 이룬다. 앞서 인용했던 ‘1세대 인디의 남성적인 펑크와 2세대 인디의 여성적인 모던록’이라는 표현은 이런 접근의 한 예이다. [……] [무키무키만만수]의 이미지는 대중음악과 민중가요 두 진영에 모두 진보적으로 다가온다. [무키무키만만수는]는 대중들 앞에서 그들이 난생처음 경험하는 복합적인 여성 이미지를 재현한다.” (이민희, 같은 글.) 요컨대 무키무키만만수의 목소리는 한국의 대중음악과 민중가요 양편에서 재생산되어 온 도식적 여성 이미지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졌다. 그런 이중의 거리두기가 이 앨범을 통해 생각될 수 있는 까닭에, “새로운” 민중가요라는 명명법은 정당하다.

앨범에 담긴 소리들만 따진다면, 사실 『2012』는 그렇게까지 전복적인 앨범은 아니다. 이 앨범이 포크 앨범이건 펑크 앨범이건 간에, 그런 장르들에서의 아마추어리즘적인 괴성은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이 기성 음악의 형식을 완전히 배반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특히 「2008년 석관동」이나 「식물원」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단편선이 썼듯, 이 앨범은 “묘하게 모험을 하지 않는” 앨범이다. (단편선, 2012.) ─ 물론 그렇다고 해서 『2012』가 내용적으로 재미없다거나 평범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 그러므로 『2012』의 급진적 성격은 다른 조건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 앨범은 기성의 음악들에서 전제되었던 여성-재현의 규범들을 전복한다는 점에서 모험적이고, 바로 그 정치성으로 말미암아 파격적이다.

『2012』의 괴성은 얼핏 장난으로 들릴 것이다. 그리고 『2012』는 실로 장난이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비장함과 엄숙함을 놀려먹는, 그리고 동시에 기성 음악에서 반복되었던 종류의 여성-재현의 인습을 놀려먹는 장난이다. 그러므로 『2012』는 여성주의적 주체화로 전유된 키치 예술이다.

『2012』의 괴성이 제시하는 전복적 표상은 파업과 철거 농성 현장 등에서 구성되어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이로써 『2012』는 자본이라는 쟁점과 여성이라는 쟁점이 (또한 기후 또는 환경이라는 쟁점이) 서로를 매개하는 지점에 자리 잡는다. 이 괴이한 노래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쟁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저항 세력들이 서로에게 관여하고 있으며, 각자의 쟁점들 또한 교차하며 복잡화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과정들이, 2010년대의 한국 사회 안에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앨범의 제작자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두었든 그러지 않았든) 그 과정들의 음악적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을 이 앨범을 (그리고 이 앨범 앞뒤에 놓인 퍼포먼스들의 맥락을) 2010년대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사건으로 꼽는다.

  1. 이전에 썼던 글을 다소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2. 한 편 박준형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쓴 가사들을 설명한다. 인터뷰를 참조.
  3. 이전에 썼던 글(www.tonplein.com/?p=1469)을 다소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4. 2013년 전후의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 씬의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 김윤하, [대중음악사 8] 생존을 위한 작지만 단단한 취향의 연대 – 2000년대 이후 한국 인디 음악의 경향과 흐름 ; 문학동네 96호 (2018년 가을 호), 문학동네, 2018.
  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 김달, 이민휘 -1빌린 입(2016) :지금여기의 귀와 입, 그리하여 만나기 ; 네이버 블로그, 2019.
  6. 김나리는 이와는 다른 독해를 제시한다. 『빌린 입』에서 침묵은 해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나리는 「침묵의 빛」에서 화자와 청자가 서로 입을 열지 않고도 있을 수 있는 장소, 곧 다른 입을 빌리지 않고서도 고유의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장소에 닿는다고 쓴다. 김나리, 빌린 빛 : 이민휘의 [빌린 입], <침묵의 빛>에 부쳐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9 참조.
  7.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글들은 다음과 같다.: 김반야, 무키무키만만수, [2012] ; IZM, 2012. // 단편선, 무키무키만만수, [2012] ; 보다, 2012. // 박주혁•차우진•최민우, [pros & cons] 무키무키만만수 | 2012 ; weiv, 2012. // 서정민갑, 참으로 노골적인 아우성 ; 다음 뮤직, 2012. // 이민희, 무키무키만만수와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 그 둘 모두의 탄생 ; 플랫폼 37호 (2013년 1•2월 호), 22-30쪽, 2013. // 하박국, 무키무키만만수 인터뷰 : 만수 편 ; 영기획,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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