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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10년대 결산 : 국내음악 by. YANG-SOHA

   

서문

 

지난 201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발전의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한국 작가의 책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인기를 얻었으며, 서문을 작성하는 오늘(2020.02.10)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앞선 사례 이외에도 미술, 연극, 무용, 요리, 패션, 게임 등 수많은 문화/예술 분야의 종사자들이 한국의 능력을 전 세계에 입증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그 능력을 마음껏 뽐내는 순간들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 음악인들의 활약 또한 눈부셨습니다. 수많은 국내 아티스트가 해외 유수의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케이팝 시장은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진출해 글로벌 팬층을 섭렵하고,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난 10년간 수많은 예술/문화인들이 훌륭한 작품과 능력을 토대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한국 문화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발매된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작품 중에서 스무 개의 작품을 추려내는 작업은 지금까지 해온 어떤 것보다도 행복했지만, 동시에 심히 고된 일이었습니다. 너무도 쟁쟁한 후보군 사이에서 수도 없이 고민했고, 또 이를 어떤 방법으로 독자분들께 전달할지에 대해, 그리고 독자분들이 이 리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끝없이 걱정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취향과 선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저 지난 10년간 감상했던 작품 중 제 마음 가장 깊이 존재하는 스무 개의 작품을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내놓은 리스트가 여러분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쉽게 서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작성한 이 리스트를 통해 여러분의 지난 10년을 회고하고, 또 앞으로 이어질 한국 대중음악의 멋진 행보를 기대할 수 있을 근거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본고에는 지난 10년간 발매된 작품 중 총 스무 개의 작품을 선별해 정리했고, 이를 저의 취향과 의견을 보태 감히 순위를 매겨놓았습니다. 리스트에 포함된 작품이 절대적으로 좋은 작품이 아니듯, 포함되지 않은 작품이 절대적으로 좋지 않은 작품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발표된 모든 작품은 우리 모두를 각각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해줬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을 받을만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난 2010년대를 빛내 주신 모든 아티스트와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2020년대의 한국 음악 시장에 대한 응원과 기대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또한 지난 1년간 저의 글과 웹진 온음을 찾아주셨던 모든 독자분께도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20

 
파라솔,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두루두루AMC, 2015.07
 

파라솔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인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은 밴드로서 이룩한 노력의 성과이자 각각의 인물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결과물이다. 구도나 후보정의 열의가 드러나지 않는 커버 아트워크와 유기성이 뚜렷하지 않은 트랙의 구성은 밴드의 첫 앨범에서 느낄법한 부담과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했던가. 우리는 파라솔의 멤버들이 그저 본인들의 취향으로 만든 앨범에서 그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앨범을 전반적으로 주무르는 나른하고 눅눅한 소리들에 이어, 범상치 않은 가사들이 청자들을 어루만진다. 그들이 법원과 범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보편적인 사랑마저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단지 훌륭한 음악적 결실이 노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소리와 가사가 어우러져 만드는 분위기는 그 안에서 그저 나태하고 낙천적일 수 있을, 현대인의 낙원을 만든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자처해 그 낙원에 입성하고자 하였고, 그 입성의 방법은 그저 파라솔의 음악을 틀어놓는 것뿐이었다. 곧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은 노력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시대에서, 소정의 노력만으로 낙원을 꿈꿀 수 있는 음악이 된 것만 같다.

 

19

 
Red Velvet, 『The Perfect Red Velvet』, SM Ent., 2018.01
 

케이팝 시장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룹의 컨셉에 있어서, 레드벨벳이 “레드”와 “벨벳”으로 양분된 음악적 분위기의 구분을 택한 것은 영리한 구상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설명처럼 ‘강렬함’과 ‘부드러움’으로 표현되기 힘든 복합적인 컨셉과 분위기일지라도, 그 둘을 조합함으로써 모든 컨셉을 구성할 수 있는 더 없이 효과적인 방법을 그려낸 것이다. 또한 이렇게 양분되어 있던 레드벨벳의 최종적인 결합은 「행복 (Happiness)」과 「Dumb Dumb」을 거친 “레드”컨셉과, 「Automatic」, 「7월 7일 (One Of These Nights)」로 이어지는 “벨벳” 컨셉이 본격적으로 융합의 시도를 꾀한 『The Perfect Velvet』, 『The Perfect Red Velvet』, 『RBB』 연작에서 명료하게 발현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The Perfect Red Velvet』, 그리고 그 타이틀 곡인 「Bad Boy」는 「피카부 (Peek-A-Boo)」에서는 조금 흐릿하게, 「RBB (Really Bad Boy)」에서 더욱 뚜렷하게 그려진 “레드”와 “벨벳” 조합의 중심을 잡고 있다. 때로는 정신없는 “레드” 컨셉 같이, 때로는 음산하고 차분한 “벨벳” 컨셉의 분위기를 표방하는 사이에서도 그 중심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두지 않음으로써 둘의 조화가 성공적으로 맺어졌다. 「봐 (Look)」, 「Kingdom Come」, 「두 번째 데이트 (My Second Date)」등의 세련된 아이돌 팝을 그려낸 『Perfect Velvet』의 수록곡들을 그대로 가져온 리패키지 앨범의 형식을 차용하면서, 새로 투입된 「Bad Boy」와 「All Right」을 전면에, 「Time To Love」를 그 중심에 배치하면서 이전 앨범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익숙한 모습을 그려내어 균형을 유지했다. 결국 이렇게 한 그룹 내에서 양분되던 컨셉의 융합,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세련되고 그룹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음악의 구성은 현재 케이팝 시장에서 SM엔터테인먼트 정도의 자본과 안정성을 가진 기획사만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5년간의 대장정의 결과물로서 형상화된 앨범이 『The Perfect Red Velvet』이다.

 

18

 
KIRARA, 『Sarah』, Self-Released, 2018.08
 

키라라를 수식하는, 혹은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했던 많은 문장 중에서도, “쿵하면 쿵이 찍히고, 짝하면 짝이 찍혀서…”라는 문장이 가장 와 닿았다. 키라라의 음악 에서 ‘쿵’은 ‘쿵’의 역할을 하고 ‘짝’은 ‘짝’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쿵’과 ‘짝’이 만나서 전체적인 리듬의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챙’하는 소리라던가, ‘짝’이 연달아 들어가기도 하고, ‘통 통’하는 소리가 난입해 박자를 쪼개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로 강렬하거나 청명한 신디사이저가 파고들어 공간을 메우는 형식을 만든다. 또한 이는 이어지는 수식어와도 연관되어있다. 키라라가 공연에 앞서 말하는 “키라라는 예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을 춤을 춥니다.”에서 두 번째 문장에 집중해보자. 청자는 키라라가 만드는 음악에 필연적으로 춤을 추게 된다. 키라라가 만드는 리듬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다. 가끔은 정체 모를 소리가 난입해 구조를 흐트릴지라도, 기본적으로 그의 음악에는 ‘쿵’과 ‘짝’이 존재하기에 청자가 편히 춤을 출 수 있다. 이는 『Sarah』에서도, 『Moves』에서도, 혹은 그 이전부터도 이어져 온 키라라 고유의 무엇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Sarah』는 앨범 자체에서 담고 있는 수 많은 감정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그 감정들이 청자의 춤에 개입하지 않는 작품이다. 우리는 키라라의 말소리나 소리들을 통해 슬퍼지기도, 유쾌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원시적인 감정은 「걱정」이나 「Wish」에서 더욱 깊어지기도 하지만, 청자는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기에 상관없다. 때로는 춤을 추는 와중에도 누군가에 대한, 혹은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지만, 단지 신나게 춤을 추는 행위를 통해 모든 감정을 잊을 수 있다.

 

17

 
김사월, 『수잔』, Self-Released, 2015.10
 

『수잔』의 시작부터 끝까지 김사월은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소리들과 본인의 목소리라는 존재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그 이야기에는 뚜렷한 서사와 서정이 담겨있다. 청자는 그 시간 동안 작품의 주인공 ‘수잔’에 이입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되며, 그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앨범 내내 점철된 주인공 수잔에 관한 이야기들은 타자가 바라본 수잔의 모습을 소개한 첫 트랙과, 「아름다워」, 「콧바람」, 「접속」에서 드러나듯 수잔을 사모하는 그 인물의 애절한 찬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젊은 여자」에서 분기점을 맞이해 급변의 바람을 맞는다. 아직까지 우리의 사회에 뿌리내린 편견들로 가득한 트랙의 앞에서, 우리는 그 편견으로 인해 상처받을 한 인간을 그저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그 인간이 수잔이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에게 더 애처로운 마음을 선사하며, 이러한 감상은 이어지는 트랙들의 화자가 이전의 타인에서 수잔으로 넘어왔음을 인지하는 순간 더 깊어진다. 수잔이 본인에 대한 이야기와, 어쩌면 기존의 화자였을지 모르는 존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순간을 거쳐 우리는 결국 『수잔』의 마지막이자 이야기에 앞서 나올 티저이고, 끝을 장식할 에필로그일지 모를 「머리맡」을 통한 여운을 얻는다. 김사월의 말대로 수잔은 허구의 인물일지, 김사월 본인일지, 혹은 그의 주변인이거나 전반적인 사회의 표상일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김사월과 그의 동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수잔의 이야기는 분명 청자의 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어쩌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어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16

 
선우정아, 『It’s Okay, Dear』,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2013.04
 

지난 10년간 너무도 뚜렷한 활동 양상을 보여준 선우정아의 작품 중에서도 『It’s Okay, Dear』는 아마 선우정아라는 인물을 가장 확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It’s Okay, Dear』을 구성하는 9개의 트랙은 제각각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가사에 있어, 열등감을 ‘뱁새’로 유쾌하게 빗댄 「뱁새」와, 이와 반대로 애처로운 연인의 말로를 처절하게 그려내는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또한 조금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들이 가득한 「Workaholic」과 「Purple Daddy」마저도 같은 작품 내에 공존한다. 덧붙여 이를 실연하는 선우정아의 목소리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에서의 선우정아는 중반부까지도 담담하게 유지하던 목소리 톤을 후반부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처절한 목소리로 전개한다. 하지만 이런 처절한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뱁새」에서는 너무도 명랑한 인물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의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가 뚜렷한 「You Are So Beautiful (Joe Cocker)」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YG라는 대형 케이팝 기획사의 작곡가이자 작사가였고, 재즈 보컬리스트였던 선우정아가 본인의 이야기를, 본인의 목소리로 그려내기 시작한 시점 이후에는 『It’s Okay, Dear』이 그 첨병이자 초석으로서 역할했고, 결국 잘 다져놓은 기반으로 그가 이후 2010년대를 마음껏 활보하게 된 셈이다.

 

15

 
f(x), 『Pink Tape』, SM Ent., 2013.07
 

“사랑은 존재하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2분가량의 아트필름은 『Pink Tape』를 통해 만들어가고자 하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이미 케이팝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꿰차고 있던 f(x)는 『Pink Tape』를 통해 한 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앞서 말한 아트필름의 나레이션이 있다. 이전부터 f(x)의 특징이라면 재기발랄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독특한 표현방식의 가사에 있었다. 「NU 예삐오 (NU ABO)」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들의 생활/사랑 방식을 이야기했고, 「피노키오 (Danger)」과 「Electric Shock」를 통해 더욱 실험적인 전자음의 도입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또다시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허나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내놓은 아트필름을 필두로, 『Pink Tape』에서의 f(x)는 조금은 성숙하고 차분한 음악을 전개했다. 여전히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의 가사는 독특했지만 알기 쉬운 비유로 표현되었고, 「미행 (그림자: Shadow)」와 「Goodbye Summer」는 서정적인 소리들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Pretty Girl」과 「여우 같은 내 친구 (No More)」등의 트랙에서 여전히 명랑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전보다 세련된 사운드로 표현 방식을 변주해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일렉트로닉 장르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송캠프’라 불리는 새로운 프로듀싱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예시가 된다. 분명 201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의 위상은 현재와 크게 달랐다. 특히 아이돌 시장은 10대와 20대를 위한 음악이라는 편견에 갖혀 흔히 ’30대 이상의 사람이 듣는 걸 들킨다면 창피를 당할’수준의 취급을 받기도 했다. 허나 『Pink Tape』라는 작품이 등장하게 되면서 아이돌 음악이 그저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유치한 음악이라는 꼬리표를 벗어 던지게 되었고, 이를 넘어 아이돌 시장이 ‘세련되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Pink Tape』를 통해 시도한 방식들이 지금까지도 케이팝 시장에 자리한 채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f(x)와 『Pink Tape』의 등장은 2010년대의 케이팝 시장을 뒤흔든 핵심적 사건임이 분명해진다.

 

14

 
줄리아드림, 『불안의 세계』, In a Dream, 2016.04
 

사회적 이슈와 그에 따른 정서는 예술과 문화에 깊게 잠입한다. 단순히 정확히 그 이슈를 지칭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문화 시장에 속한 인물들은 다양한 행위를 통해 그러한 사건을 언급한다. 그리고 2014년 발생한 끔찍한 사고 역시도 문화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사고의 사상자 대부분이 열어덟살의 어린 학생들이고, 이들을 방관한 채 사경을 헤매도록 내버려 둔 작자들은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수 많은 문화인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를 어쩌면 명백히, 혹은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불안의 세계』는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에 봉착한 ‘불안’을 이야기했다. 줄리아 드림은 계속해서 섬뜩한 분위기의 소리와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계속해서 ‘바다’의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본작의 ‘바다’는 특정한 사건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고, ‘불안’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바다’라는 단어를 통해 과거의 기억에 묻히기도, 무의식적인 불안에 잠식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상이 ‘불안함’이라는 점은 일관된다. 줄리아드림은 2CD라는 형식을 통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불안을 묘사한다 . 이는 어쩌면 부모와 자식 모두가 불안한, 말 그대로 모든 인간이 불안한 사회를 암시하기도 하는데, 분명 이러한 사회는 허구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현실과 너무 닮아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고난을 타파하는 방식은 먼저 그 고난에 맞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줄리아드림이 들려주는 불안에 피하지 않고 맞서는 순간 그 불안을 이겨낼 첫발을 디디는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13

 
이랑, 『신의 놀이』, 소모임 음반, 2016.10
 

이랑이라는 아티스트가 『신의 놀이』를 통해 들려주는 것들은 담백하다. 수수한 목소리와 소리들로 꾸려진 음악의 공간은 도처에 빈공간을 남겨두고, 그 소리의 종착지인 가사에는 은유나 비유보다는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전작인 『욘욘슨』에서는 더욱 부각되었던 목소리가 다양한 악기의 조화로 조금은 흐릿할지라도, 여전히 이랑은 본인이 전하는 이야기에 가장 큰 힘을 싣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신의 놀이』는 보다 다채로운 방식들을 활용하여 지루함을 덜어낸다. 「가족을 찾아서」에서는 돌림노래처럼 이어지는 목소리들의 연결을 듣게 되고, 「웃어, 유머에」는 모든 공간을 채우는 웃음소리가 3분가량 계속된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와 「도쿄의 친구」에서는 우리의 일상처럼 평범한 듯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반면, 앨범의 시작인 「신의 놀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생각의 여지를 제공한다. 결국 우리는 이랑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뻔할지 모르는 것들이다. 소설처럼 화려한 스토리가 있지는 않으며, 과학도서처럼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들도 아니다. 허나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고, 우리는 이랑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가진 다양성과 그로 인해 일어지는 도취되는 감흥들에 이끌린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이야기에 힘을 부여하며, 이랑은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가장 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다.

 

12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두루두루 AMC, 2011.06
 

2010년대에 들어서며 흔히 말하는 ‘한국 인디 1세대’의 거목들은 몇 존재하지 않았지만, 유수의 훌륭한 밴드들이 등장하며 그 여백을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봉대이자 아이콘과 같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2018년 밴드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디 팬들을 만족시킬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데뷔 앨범인 『별일 없이 산다』에 이어 발매된 두 번째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들이 일으킨 돌풍이 단지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그들은 데뷔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말하듯 노래하며, 장난스러운 악기 연주로 음악을 구성했고, 중독성 높은 가사와 멜로디로 무장한 독특한 인디 밴드의 모습 그 자체였다. 허나 그저 전작과 온전히 동일한 모습이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암울했을지 모르지만,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이 보였기에 『장기하와 얼굴들』은 모든 사람이 앞으로 펼쳐질 밴드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별일 없이 산다』의 음악은 유머러스하지만 그와 동시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를 받아주오」에서는 처절한 가사와 목소리에 서글퍼지기도 했고, 「느리게 걷자」에서 무기력한 듯 희망찬 그의 이야기에 즐거워했다. 이는 본작의 「우리 지금 만나」에서의 서글프지만 조금은 성숙한 모습, 그리고 「마냥 걷는다」에서의 여전히 걷고 있지만 과거의 추억을 원동력 삼아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성장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싸구려 커피」와 「TV를 봤네」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하고 씁쓸했지만 이 또한 숙련된 모습이었고, 8분에 달하는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그들이 만들고자 한 음악들의 집대성이자 이후 펼쳐질 그들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별일 없이 산다』의 성장본이자 익숙한 표상이었고, 동시에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의 앞날을 점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담고 있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11

 
XXX, 『LANGUAGE』, BANA, 2018.11
 

XXX가 힙합 팬들에게 선사하는 충격은 그 태초부터 존재했다. 정식 등장의 이전부터 김심야(Kim Ximya)와 프랭크(FRNK)는 각각 『The Anecdote』, 「4 Walls」의 참여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발매된 『KYOMI』에서 그들의 앞선 참여가 단순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그들은 분명 기존에 드물었던 소리들을 조합해냈으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성으로 등장했다. 그렇게 데뷔 앨범을 발매한 이후 소식이 잠잠하던 차에 나타난 개인 작업물인 『Moonshine』과 「모방과 창작 Mixset Vol.1」을 통해 두 멤버는 개인의 역량마저도 드러내는 성과를 만들었다. 그렇게 증명의 과정을 거쳐 등장한 『LANGAUAGE』에는 데뷔작에서의 신선한 충격이 존재했고, 이와 동시에 개인 작업 등으로 성장한 역량의 표시마저 가득했다. 그들은 『LANGAUAGE』의 내부에서 각자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면서도, 두 사람의 합 또한 덩달아 성장했음을 예기했다. 「18거 1517」에서 김심야가 만들어낸 서사는 명료했으며, 「간주곡」에서의 프로듀싱은 프랭크의 흡입력 있는 구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또한 이 모든 순간에는 두 사람이 함께했고, 그 조화가 어우러지는 지점이 속속 출현했기에 그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이는 둘의 조화가 정점에 달하는 「수작」에서 두드러지며, 본작에서 가장 날카로운 프로듀싱이 빛나는 「Trust Us」와 냉철하게 시장을 관찰한 김심야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S_it」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게 XXX는 『LANGAUAGE』를 통해 다시 한 번 시장을 향한 충격을 선물했다. 그들은 개인의 역량과 팀으로서의 조화를 명징하게 뽐내면서도, 전작에서 드러난 날카로운 견해들을 피력했다. 그들이 현재까지도 ‘반-미디어’의 기수이자 새로운 스타일의 귀감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LANGAUAGE』라는 작품을 통해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의 노력과, 이 노력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력으로 증명해낸 점을 가장 높게 사야 한다.

 

10

 
전자양, 『소음의 왕』, Self-Released, 2015.09
 

전자양은 이전부터 그랬지만,『소음의 왕』에 이르러서도 기괴한 모습임은 매한가지였다. 다섯 곡에 2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그 안에서 전자양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기괴한 모습을 바꿔가며 등장했다. 첫 트랙 「거인」은 재생되는 1분 30초 동안 반복되는 비형식적 리듬과, 그 위를 유영하는 날카로운 전자음들로 혼을 빼놓았고, 다음 트랙 「우리는 가족」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리듬 위로 음높이의 극단을 넘나드는 목소리로 정신을 흔들었다. 이어지는 「생명의 빛」 역시 마찬가지인데, 다소 익숙한 형태로 전개되다가도 독특한 목소리가 만드는 효과음들에 이은 가늠하기 힘든 변주가 더해지며 보다 거세게 반응을 이끌어낸다. 「소음의 왕」에서는 더더욱 난잡하게 쏟아지는 목소리들의 중첩과, 단순한 독해와 이해의 시도를 거부하는 표현들로 가득한 가사가 혼란을 야기한다. 그렇게 마지막 트랙에 도달해서야 청자는 전자양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을 오래도록 복습시키는 8분간의 소리들을 지나고 나서야 청자는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이상하고도 독특한 앨범이다. 『소음의 왕』의 모든 트랙은 전혀 길지 않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이들 모두가 제각각의 괴상한 모습을 띠고 있고, 말미에는 그 괴상한 형상에 빠져드는 내 모습 마저 괴상해 보이는, 정말 괴상한 매력을 가진 앨범이다.

『소음의 왕』에서 전자양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밴드 형식을 차용했다거나 다양한 창법을 활용했다는 변화 역시 적시할만하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전자양은 이전의 이미지를 상기시킬 여지를 남겨두었고, 이는 그들의 가사에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가족」의 유전자는 악마의 주사위 놀이 같아 / 저주받을 너는 나와 가장 닮은 존재는 쓴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소음의 왕」의 시작에서 마그마 같은 피는 손등 위로 올라 / 모래를 털고 핥을 때마다 쇠의 맛이 나를 아주 높고 청명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순간에는 그저 실소만이 나게 되는, 전작에서도 빛을 발했던 독특한 매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독특함으로부터 형성되는 전자양의 이미지 역시도 계속하여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음의 왕』은 이렇게 독특한 표현과 사운드가 괴상함의 수준까지 올라왔으며, 그 괴상함 또한 연거푸 청자에게 매력으로 접근했다. 결국 독특함이 괴상함으로 진화하는 과정마저도 우리가 전자양의 매력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9

 
실리카겔, 『실리카겔』, 붕가붕가레코드, 2016.10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아이덴티티마저 독특하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멤버들이 모여있으며,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기도, 한꺼번에 뭉쳐서 활동하기도 하는, 심히 다채로운 구성의 밴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그들의 첫 정규앨범 『실리카겔』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속된 멤버 대부분이 프로듀싱에 참여했고, 소속된 VJ들도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실리카겔』에서는 전반적인 프로듀싱의 틀이 일관되지 않으며, 단순히 분위기의 차이로 일축할 수 없는 어수선함이 존재한다. 허나 그 어수선함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실리카겔이라는 아티스트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의 소리는 전혀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기타의 펑키한 소리, 신디사이저의 몽환적인 분위기, 드럼의 신나는 리듬 등이 음악의 전면으로 치고 나온다. 그렇기에 본작에 수록된 곡들은 때로는 펑키하고, 때로는 몽환적이며 때로는 신난다. 이렇듯 다양한 분위기를 만드는 이러한 요인들이 앞서 말한 어수선함의 주범일지라도, 그 어수선함이 만드는 분위기가 난잡함이 아닌 다양함으로 변화하기에 이들의 매력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작품은 작가를 따라가게 되어있고, 『실리카겔』역시 실리카겔을 따라간다. 그리고 『실리카겔』이 비록 어수선할지라도, 이 또한 실리카겔이 만드는 매력으로 둔갑하게 된다.

다양한 멤버가 프로듀싱 참여한다는 것은 제법 고된 시간이 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동일한 의미를 가진 수많은 관용어가 존재하는, 우리의 속담으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실리카겔은 비록 배가 산으로 가더라도, 그 과정이 전혀 지루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배가 산으로 가게 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에 청자가 마음을 편히 두고 감상에 몰입할 수 있다. 우리는 『실리카겔』 안에서 관능적이고, 치밀하며, 몽환적이고, 독특하고, 귀엽기까지 한그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봐야 하고, 모든 트랙을 감상하고 난 뒤에는 마치 꿈을 꾼 듯 헤매거나, 다양한 분위기에 휩쓸린 듯한 혼란에 잠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을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채로움으로 무장했으며, 조금은 혼란스러울지라도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혼란이 허망으로 변하게 두지는 않는다. 이렇듯 다채로운 매력을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행여나 이로 인한 난잡함을 야기될 수 있다는 걱정을 이겨낼 만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실리카겔』에 개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리카겔이 많은 것을 겪지 않은 신인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 용기는 제대로 청자에게 먹혀들었기에, 우리는 1이 아닌 1+1+1+1+1=5의 실리카겔을 사랑하게 되었다.

 

8

 
모임 별,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Club Bidanbaem, 2011.11
 

요즈음에 흔히 ‘케미’라고 말하는, 우정이라던가 사랑과는 다른 느낌의 단어가 있고, 그러한 케미가 만들어내는 인물과 그룹의 매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임 별은 오래된 친구, 그리고 그 친구들 간의 술자리에서 출발한 밴드이기에 더욱 깊은 케미를 뽐내며, 그 중심에 위치한 조월과 조태상 형제를 핵심으로 뭉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만드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통해 많은 팬들을 그들의 매력으로 잠식시켰다. 모임 별은 2001년부터 7년에 걸쳐 <월간 뱀파이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총 여섯 차례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 안에는 전자음이 핵심으로 작용하지만 다양한 악기와 그것들이 만드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음악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월간 뱀파이어>의 수록곡들을 모아 발매한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들의 베스트 앨범과도 같았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모임 별이라는 모임의 추억을 담은듯했다.

그들이 본작에서 의미한 “아편굴 처녀”라던가 그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하게 밝히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제목이 표방하듯 본작에 내포된 핵심 주제는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처녀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명료하게 느껴졌다. 처녀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특정한 인물과 그 군상을 특정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로서 소리를 선택했으며, 그 소리가 변환될 수 있는 다수의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가 전달하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차분하고 느리다. 그 느릿한 소리가 만드는 분위기는 공간을 형성하고, 그 공간들이 곳곳에서 겹치며 더 큰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의 내부와 틈 사이를 또 다른 소리들이 파고들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야기가 그저 정형화된 문장을 통해서 전달되어 올 것이라는 편견을 내려놓아야 하며, 그러한 방식을 수용했을 때 비로소 모임 별이 만드는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본작은 분명 다채로운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전달하는,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닌 작품이다. 우리는 본작을 새로운 방식으로 감상함으로써 목소리와 신디사이저, 기타, 드럼 등이 만든 소리로 이야기가 전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방식이 머릿속에서 다시금 기억되는 순간, 우리는 이야기가 드럼, 기타, 신디사이저, 목소리등 의 소리로 변환되는 신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7

 
아침 (achime), 『Hunch』, 붕가붕가레코드, 2010.06
 

붕가붕가레코드의 홍보 글에서는 『Hunch』에 대해 “동시에 미래에 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직관적인 것들, 현실주의자들은 부정하는, 하지만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그런 낙관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Hunch』는 일방적으로 낙관적이지 않다. 비단 우울한 색채의 「이 비가 그친 뒤」나 「파도색 신발」뿐만 아니라, 신나는 리듬과 기타리프가 재생되는 「맞은편 미래」와 「무표정한 발걸음」의 말소리에도 암울한 색채가 가득하다. 뚜렷한 공간을 만드는 기타의 사운드가 확연히 비춰짐과 동시에 빠빠야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불신자들」은 어딘가 아련하고, 본작에서 가장 속도감 있는 「거짓말꽃」의 리듬은 동시에 애처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럼에도 아직 『Hunch』를 낙관적으로 본다면, 그 이유는 「Pathetic Sight」와 「매일매일」에 있을 것이다.

「Pathetic Sight」역시도 그다지 낙관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청명한 기타 소리와 명랑한 드럼 리듬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Pathetic Sight」에는 가볍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채워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분위기의 노랫말이 자리 잡았다.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녀석의 차를 타고 간 해수욕장에는 거대한 스크린같은 밤바다가 펼쳐져 있고, 술기운으로 겨우 용기 내어 말을 건 취해있는 여자아이들과 가진 시간은 그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헤어짐의 그림자를 이겨내지 못한 채 추억을 모래사장에 남기게 되었으며, 그 추억이 파도를 타고 멀리 돌고 돌다가 다시금 그 바다에 돌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 사항을 남긴 채 끝맺고 있다. 이는 필히 밝지 많은 않은 이야기이다. 단지 한순간의 만남이 그려지고, 그 만남은 필연적인 이별을 담고 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아침이 이야기했던 낙관적인 감정이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Hunch』에서 표현되는 주제의 기본적으로 청춘의 표상을 내포한다. 청춘은 이유 모를 고독에 빠지거나(「맞은편 미래」),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기도 하고(「무표정한 발걸음」), 짧은 순간을 위해 불과 같이 열정을 쏟거나(「불꽃놀이」) 애절한 기억 때문에 슬퍼지기도 한다(이 비가 그친 뒤). 그럼에도 본작에서 청춘은 잊혀질지 모를 추억을 위해 숨 가쁘게 뛰고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말미에 기억이 흐릿해져 의미가 무색해지더라도, 결국 우리의 기억에 남아 실현되는 추억은 평생을 견딜 소중한 동기가 된다. 이는 이미 「Pathetic Sight」에서 암시되었으며, 마지막 트랙 「매일매일」에 당도해서는 그 의미를 확고히 만든다. 우리는 먼 미래에 청춘이 한낱 기억으로 치부될 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랑하고, 도전하는 것임이 틀림없음을 「매일매일」을 통해 확신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에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쏟고 고난을 겪으면서도 다음 추억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청춘을 보낼 것임을 아침은 예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청춘은 많은 이들에게서 실현되고, 실현될 것이기에 아침이 의미한 청춘을 모두가 상기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다.

 

6

 
이민휘, 『빌린 입』, Self-Released, 2016.11
 

『빌린 입』이라는 말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기관인 ‘입’은 당연하게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한 동물들은 입을 통해 음식을 먹고 호흡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입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있어 의사소통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소통에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관은 분명 입일 것이다. 특히나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개인의 감정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입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사람은 입을 통해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어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한다. 허나 본작의 제목인 『빌린 입』이라는 단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인간이 타인의 입을 빌린다면, 혹은 타인에게 입을 빌려준다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지는 쉽게 유추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빌린 입이 작용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면, 이는 인간이 수천 년간 인지해온 보편적인 ‘입’의 사용되는 방식과는 반드시 다를 것임이 확실하다.

이민휘는 『빌린 입』을 통해 상징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섬뜩한 느낌이 드는 「거울」에는 네발로 거울에 들어가는 나와 이를 바라보는 네발의 어머니가 있고, 이후 「깨진 거울」에서는 거울에서 벗어난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부은 발」과 「꿈」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늘어놓거나, 무기력한 악기들의 연주 소리로 채워진다. 그리고 제목과 직결되는 가사를 내포한 「받아쓰기」에서 『빌린 입』의 핵심을 맞이할 수 있다. 「받아쓰기」는 본작의 감상에 있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 앞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은연한 비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존에 우리 사회에 존속하는 가부장제의 구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예속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본고의 피드백 과정에서 제기된 조지환의 말을 빌렸다.). 혀를 잃어버린 딸과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그 앞에 등장한 인물로 인해 딸은 발화의 기회를 얻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그제야 본인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지만 그 결말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마무리되는 「받아쓰기」의 전개는 청자에게 암울한 결과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마지막 트랙인 「침묵의 빛」으로 넘어가서는 끝없이 어두운 첼로와 피아노 소리만이 존재하게 된다. 「빌린 입」에서 「받아쓰기」까지 이어지는 서사의 엔딩으로서 작용하는 연주곡은 한없이 무거운듯 하지만, 그 연주가 아닌 곡의 제목에 집중한다면 일말의 희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빌린 입』의 화자가 6개의 곡이 재생되는 동안 겪은 일을 알고 있다. 해소되지 않은 침묵의 이유는 그대 입과 그대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비통한 이야기와(「빌린 입」), 한 번의 실수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무너질지 모르는 산을 구원을 찾기 위해 올랐으며, 네 발로 들어갔던 (「거울」) 거울을 깨뜨리고 난 뒤 비로소 자신에게 지난 세월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깨진 거울」),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나의 입을 빌어 큰소리로 고백하는 (「받아쓰기」)화자를 지켜보았다. 이런 억겁의 시간에서 우리가 간절히 빌었던 것은 화자가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침묵의 빛」은 그 화자가 겪었던 침묵의 시간을 빛으로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그러한 희망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일차원적 해석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려있는 결말을 맞이한 사람은, 그 결말을 본인의 희망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말을 나의 바람으로 그려내자면, 나는 반드시 화자가 ‘빛’을 보게 되었을 장면을 떠올렸다.

 

5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사우스폴 사운드 랩, 2012.10
 

어떠한 아티스트를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이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그들의 작품을 (오랜 시간이 지났을지라도 결국)발견했다는 행복과 그 시기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며 발생한다. 그 인물은 어떻게든 작품과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다가도, 그들이 작품을 마음껏 실연하던 그 시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인지하고 나서는 곧장 허망함에 빠지게 된다. 사설이 길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해서라도 본인이 뒤늦게 3호선 버터플라이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해야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에는 시대가 필요 없고, 『Dreamtalk』가 주는 감상은 언제나 긍정적이었기에, 또 다른 어떤 작품도 그를 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착잡한 마음을 달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그런 점에 있어서 『Dreamtalk』 는 내게 있어 너무도 고마운 앨범이다. 본작은 3호선 버터플라이가 내놓은 지난 3집의 음악을 총망라함과 동시에, 그들의 휴식 기간이 꽤나 길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모습이 건재함을 명확하게 설파하는 음반이었다. 아예 그들을 알지 못하는 청자가 본작을 감상하더라도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의 록-발라드적 분위기와 남상아의 목소리만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고, 혹은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의 독특한 언어체계와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본작을 특정 계절, 특히 여름에 들었다면 「Hello」와 「너와나」의 청량한 매력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결국 앞선 모든 것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제주바람 20110807」의 장엄함을 맞이하는 순간 경험할 압도감은 모든 청자를 황홀경에 빠뜨리거나, 혹은 나와 같이 가슴 한켠에 억울함을 품는 자들의 비애를 해소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적으로 『Dreamtalk』는 3호선 버터플라이가 뽐낼 수 있는 모든 매력을 온 힘으로 발산하는, 다시 말해 해당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환경과, 또 그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일절 상관없는, 그저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 너무도 매혹적인 음악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청자는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많은 의견을 형성하게 되며, 그 의견에 대한 근거와 감상을 축적해 나감으로써 결국 본작이 그리고 있는 수많은 의미를 이해하고 3호선 버터플라이가 십수 년의 활동을 통해 그려온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놀라운 감상의 경험을 제공받는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인디밴드가 형성되고 해체되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모든 신인의 등장은 반길만한 것이었지만, 그룹의 해체는 매 순간 팬들에게 뼈아픈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허나 우리는 『Dreamtalk』를 통해 결성 10주년을 넘긴 밴드가 여전히 능력을 과시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고, 이는 팬들에게도, 함께 시장을 이끄는 동료에게도 한 줄기 희망으로 빛나게 되었다. 또한 본작이 발매된 지 8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 그들이 지난 8년간 또다시 훌륭한 앨범을 냈다는, 또다시 희망을 선사한 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계속하여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4

 
E SENS, 『The Anecdote』, BANA, 2015.08
 

201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은 국내외적으로 지대한 성장을 이뤄냈지만, 그중에서도 힙합시장이 이룩한 발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으로 자리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그러한 성장을 온전히 전체적인 힙합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담론을 형성했지만, 어찌 되었든 힙합이 현재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갖게 된 비중을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원동력이 된 수많은 아티스트와, 그 아티스트들이 남긴 작품 중에서도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은 이센스의 『The Anecdote』이다. 물론 본작을 설명하기에 앞서 발매하기 이전까지의 경과 역시 빼놓을 수는 없다. 본작이 발매된 2015년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센스는 『The Anecdote』를 발매할 당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시장의 커다란 이슈였던 컨트롤 디스전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을 만들었으며, 이에 앞서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힙합 듀오 슈프림팀(Supreme Team)의 멤버이자, 더 먼 과거에는 힙합 팬들의 주목을 받는 슈퍼루키로 등장했다. 이센스가 등장한 그 시점부터 시작된 인상적인 내력을 거쳐 출현한 『The Anecdote』는 발매 전부터 동료들의 숱한 극찬을 받으며 기대치를 한껏 드높였으며,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성과를 내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으로 존재한다.

『The Anecdote』의 내부에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 장본인인 이센스는 한 시간을 할애하여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센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고, 그 감정의 서사가 분명하기에 이야기가 힘을 가진다. 세상에 부딪혀 본 적 없어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과 그보다 앞선 시기에 위치하는 유년기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도치시키면서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 전후로는 지방에서 태어난 소년이 힙합에 빠져들며 자신의 모든 시간을 꿈을 향해 쏟아부었고, 그로 인한 고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본인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덤덤한 말투로 풀어낸다. 전술했듯 그의 이야기는 과히 개인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솔했고, 이를 훌륭한 서사를 통해 풀어내었기에 무척이나 매력적인 담화로 거듭났다. 또한 그 이야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때로는 강력하게 피력하는 이센스 특유의 플로우와 곡의 도처에 배치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쾌감을 선사하는 라임배치로 표현되어 그 진가를 더했다. 물론 이를 공조하는 오비(Obi)의 프로듀싱은 적절한 만큼의 담백함과 화려함 사이의 자리를 꿰차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지도 않는 완급조절을 선보였다. 이렇게 다수의 부분에서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두 아티스트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센스가 건네는 이야기는 청자에게 재밌는 순간의 연속이자, 그의 과거를 함께 회상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The Anecdote』의 성공에는 앞서 언급했듯 이센스와 오비의 역량도 중요하게 자리했으나, 가장 큰 비결은 좋은 시나리오에 있었다. 소비자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생성되는 부가적인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퍼져 나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퍼지는 이야기들로 본질이 흐릿해지더라도, 결국 이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그 이야기의 본질을 만든 주인공은 이를 원동력 삼아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한 순환을 통해 2019년에 『이방인』이 등장했고, 이센스와 그의 동료들은 힘을 합쳐 더 발전하는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분명 2015년은 한국 힙합 팬들에게 더없이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본작을 포함하여 딥플로우(Deepflow)의 『양화』, 와비사비룸의 『물질보다 정신』 등의 무수히 많은 작품이 등장했으며, 다양한 루키가 등장하고 기성 래퍼들 역시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이 형성한 한국 힙합의 물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있던 이센스와 『The Anecdote』는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의 모범으로 자리 잡은 채 많은 래퍼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The Anecdote』를 2010년대 한국 힙합의 행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임을 분명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3

 
JAMBINAI (잠비나이), 『A Hermitage (은서;隱棲)』, The Tell-Tale Heart, 2016.06
 

잠비나이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그 기저에는 그들이 재생하는 소리와 그 소리의 근원인 악기가 있다. 현재는 드럼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최재혁과 유병구가 멤버에 추가되었지만, 얼마 전까지의 잠비나이는 이일우, 김보미, 심은용이 국악기를 필두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그룹이었다. 그들은 분명 피리, 태평소, 해금, 거문고 등의 악기를 사용했지만, 이는 기존의 것과 구별되는 색다른 소리를 만드는 악기로서 작용한다. 실제로 그들이 선사하는 국악기의 소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날카로우며, 때로는 거칠기도 한 소리를 낸다. 그러한 소리들이 모여 중첩됨으로써 잠비나이의 음악은 출발하고, 그 중첩이 해체되거나 정리되는 과정을 통해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비교적 익숙한 풍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거칠고 날카로우며, 이들이 겹겹이 쌓여 진행되는 음악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잠비나이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었으며, 그 새로운 것을 통해 익숙한 것을 만들어내는 순환의 과정을 선사했다.

그리고 2016년에 들어서 『A Hermitage (은서;隱棲)』(이하 『은서』)가 등장했다. 은둔처(Hermitage), 또는 은거하는 일/은거의 장소(隱棲)를 뜻하는 제목에 맞추어 『은서』는 전작 『Differance (차연,差延)』보다 어둡고 습한 기운을 내재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있었다. 『은서』는 초장부터 모든 소리를 파괴하듯 시작하는 「Wardrobe (벽장)」과, 곡의 끄트머리에 도착해서야 무섭도록 달리는 타악기로 맺어진 「Echo Of Creation」이 연결되며 발걸음을 뗀다 . 이어지는 트랙들은 어떠한가,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의 분위기는 이전 트랙과 유연하게 이어질 듯 하다가도 다양한 악기들이 점차 가세하고, 목가적인듯 동시에 어두운 소리들을 창조해내는 찰나를 창조한다. 이는 앞에서의 두 트랙과 앞으로 재현될 나머지 다섯 곡의 연결고리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을 가득 매우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Abyss (무저갱)」의 소리는 훨씬 무겁고 두꺼워져 있다. 거문고와 해금, 기타, 드럼의 소리들은 청자를 순식간에 흡수하며, 곧이어 등장하는 이그니토(Ignito)의 낮디낮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은 본작의 하이라이트를 예고하는 신호와 같다. 그 이후로 등장하는 트랙들도 여전히 매끈하게 연결되며, 이 유기성은 악기의 노이즈와 새로운 소리로서 점철되어 있기에, 이후의 트랙들마저 본연적으로 잠비나이의 것임을 입증된다. 「Deus Benedicat Tibi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에서는 마치 고궁에 직접 가서야 들을 수 있을 우렁찬 태평소가 시작을 알리고, 그 밑바탕에는 어른거리는 노이즈가 깔려있으며 곡의 중반부에 이르러 그 노이즈와 태평소가 만드는 긴장감이 터져나온다. 이는 이어지는 「The Mountain (억겁의 인내)」와 「Naburak」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발현되며, 마지막 「They Keep Silence (그들은 말이 없다)」에 이르러서야 앨범 안에서 몇 없는 목소리가 등장해 『은서』의 종말을 알린다. 잠비나이는 그들의 말과는 반대로 폭주하는 악기의 연주와 그가 만드는 소리 위에서 끝을 맺지만, 청자는 그들의 말처럼 아무 말 없이, 속된 말로 “벙 찐채”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은서』가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에, 모든 이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잠비나이의 등장은 2010년대뿐 아니라 한국의 대중음악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그들은 국악기를 사용한 새로운 음악에 있어서, 쉽게 어우러지지 않을 두 분야가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의 융합에서 찾아왔으며, 그 방식이 국내외에 커다란 충격을 선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적인 방식이었음이 증명된다. 그리고 그 충격은 한국과 한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다르게 발현된다. 국악기에 익숙지 않은 해외의 음악 팬들이 받았을 충격은 새로운 소리가 제공하는 신선함에서 발생하며, 국악기에 익숙한(실제 잠비나이가 사용한 악기가 아닐지언정 비슷한 양식의 악기와 그들이 만드는 소리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악기의 정체에 대한 놀라움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충격의 원인이 어떻든 간에, 잠비나이가 선사한 충격은 그 자체만으로 지난 10년간에 역사에 필히 남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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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키무키만만수, 『2012』, 비트볼뮤직, 2012.05
 

신나는 리듬을 만드는 타악기의 정체가 ‘구장구장’이라는 신생 악기라는 사실도, 아티스트명이 ‘무키’와 ‘만수’라는 듀오의 조합이라는 사실도 몹시 인상적이었지만, 역시나 그들의 음악이 주는 감상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멀리서나마 그들의 음악과 몇 없는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그들의 조합이나 악기의 외형보다는 그들의 소리가 끼치는 영향이 훨씬 거대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도, 공영방송의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에서도, 핸드폰으로 촬영된 야외 무대의 공연영상에서도 그들의 소리는 모든 걸 박차고 우리의 귀로 침투하는,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그런 파급력은 소리의 괴상함과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정형성, 그리고 서정성과 결합하여 더 큰 에너지를 띠는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들에게 매혹된 상태로 계속해서 『2012』를 들으며 알게 된 점은 정은실과 이민휘, 아니 무키와 만수가 만드는 괴성, 혹은 강렬한 소음들은 여전히 꽤나 거슬리지만, 그렇다고 극심한 고통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이전에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그들의 노랫말에 위치했다. 그들은 숭례문 방화 사건을 유머와 냉소를 뒤섞어 풀어내거나 (「방화범」), 산울림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무키무키만만수의 스타일로 변주하고, 정말 알 수 없는 표현들을 읊어대며 청자를 파리로, 유럽으로, 심지어 우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그러면서도 엄청난 파장의 밈을 만들어낸 「안드로메다」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인 「2008년 석관동」을 연이어 배치함으로써 그 혼란을 가중시키는 영민한 방법을 택하기도 했으며, 애니어그램(「7번 유형」)과 머리의 크기(「머리크기」)라는 독특한 주제를 필두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음악 역시 그러한 혼란의 형성에 동참하는 추세였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는 급진적인 혼돈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는 정형적인 리듬과 꽤나 중독적인 멜로디가 숨어있었고, 뒤늦게서야 그들의 음악이 단순 일회성인 유머의 소재로 그치지 않는다는 핵심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직전에 서술했듯 우리는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을 단순히 병맛코드로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은 이전까지, 혹은 지금에서도 보기 드문 괴성과 소음으로 무장한 음반을 선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명료한 서정과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자리하고 있다. 종전에 괴성으로 뒤덮여있던 트랙의 직후로 익숙한 정형성을 가진 포크음악이 등장하는 것도 앞선 문장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형성의 존재를 인지하고 난 이후에야 먼젓번에 나온 소음 역시도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문맥의 일부분임을 다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애니어그램의 유형 구분을 반복해서 읊조리는 것도, 삐뽀삐뽀뿡빵빵이라는 괴상망측한 문장을 되뇌이는 것도 그제서야 무키와 만수가 그려내는 이야기의 일부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면으로 내세워 거듭하는 괴성이라는 주체가 대중음악에서 매번 기피됐던 형식임을 되짚어 보자면, 그러한 형식의 시도는 두 사람이 그렇게도 등한시되어온 자극적인 방식을 택해서라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파하고자 하는 의지에 근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꼬리를 물게 된다.

『2012』는 분명 급진적이고 괴상하지만, 동시에 서정적이고 차분한 음악이다. 이는 이미 앞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한 어구일 테지만, 본작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수식어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이 공연한 무대가 집회현장과 EBS였다는 사실마저도 이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듯싶다. 혹은 음악보다 현실에 더 집중하던 두 학생이 기획한 음악을 달파란이라는 거장이 프로듀싱 했다거나, 그들이 말했듯 순수한 목적으로 구현한 정치적 활동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제는 그들이 음악을 하는 무키와 만수에서 정은실과 이민휘로 살아가고 있으며, 각자의 삶에 충실한 두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은 우리가 예상한 무키, 만수의 삶과는 전혀 달라 보인다. 허나 지금에 와서도 그들의 음악과, 공연은 여전히 충격을 주는 요소들로 남아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을 주제로, 혹은 이들의 행보를 중심으로 많은 담론의 장을 열었지만, 그 모든 사람들도 그들이 선사한 충격에 휩싸였던 순간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무키와 만수가 준 충격은 2010년대에 들어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가장 뚜렷한 충격의 여파를 남긴 순간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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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둑, 『무너지기』, Self-Released, 2018.07
 

때때로 음악은 청자를 실제와 동떨어진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이는 비단 EDM이 공간을 클럽으로 변화시킨다거나, 매혹적인 재즈 선율이 청자를 재즈바에 앉혀놓는다는 표현과는 다르며, 어쩌면 우리의 경험을 초월하는 그 어딘가로 이동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어떠한 음악을 관찰함에 있어, 그 음악이 주는 감상의 본질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수식이 길었지만 이 모든 형용은 『무너지기』를 위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무너지기』는 나의 2010년대에 있어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나는 『무너지기』를 통해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정체 모를 공간에 존재하기도 했고, 그 공간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선사하는 장엄한 광경에 넋을 잃기도 했다. 이는 모두 다른 어떤 것의 간섭 없이 그저 소리와 그 소리가 만드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극히 드물고 신비한 경험이었으며, 그 경험의 과정과 결말을 나누고 싶기에 본고를 써내려갔다.

나는 『무너지기』를 감상함에 있어서 총 3번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처음으로 본작을 감상했을 당시의 순간이 있었고, 어느 정도의 번민을 정리한 후의 두 번째 감상이 있었으며, 결국 해탈의 순간에 다다라 다시금 작품을 재생했을 시기의 감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음반을 처음 감상할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 소리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무너지기』는 그 소리에 관하여 번번이 뜻밖의 순간을 만들었다. 작품의 시작인 「왜?」의 소리는 순식간에 청자를 소리들이 중첩되어 만드는 공간으로 이끌고, 이어지는 「쇠사슬」의 중심부에 이르러서는 청자가 그 공간에 완전히 잠식되게 만들었다. 「왜?」에서 만들고 「쇠사슬」에서 확장시키는 『무너지기』의 공간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그럼에도 정제되어 있으며, 여백이 있고, 혹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너지기』의 모든 소리는 능동적으로 공간을 헤엄치다가도 수동적으로 형식에 맞춰졌다. 그리고 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정적을 만들기도 하고 점차적으로 모습을 숨기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곡선과 투과광」에서는 이전까지 뒷 순번으로 밀려나 있던 목소리가 느닷없이 핵심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함께 무너지기」에서는 다시금 목소리가 그 자취를 감추듯이 돌변하여 다른 소리의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계속해서 모순되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무너지기』는 조지환이 말했듯 “무형식을 형식화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앞선 모든 모순적인 말들이 존재했던 순간처럼 『무너지기』에는 무형식이 형식이 되고, 형식이 무형식이 된다. 그렇기에 그러한 모순의 순간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무너지기』를 감상하는 내내 나는 소리들에 휩싸이거나, 그들에게서 도태되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감상에 이르러서야 더 많은 소리들을 보다 면밀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혼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새로 맞이할 감상을 더욱 명료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줄곧 귓가를 맴돌던 노이즈는 마스터링 과정에 사용된 카세트 테이프 때문이었고, 앨범 전체에 등장하는 여성의 정체가 섬머소울(Summer Soul)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쯤되면 내가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는 거만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무너지기』는 예상을 매번 벗어났다. 가사를 읊으며 노래를 들어도, 자세를 바로잡고 재생버튼을 눌러도 『무너지기』는 부단히 예상 못 할 찰나에 나의 예측을 깨버리며 허망함에 빠뜨렸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음악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의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맞이하는 세 번째 감상의 시기에서야 『무너지기』가 제공하는 감상의 절정을 맞이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감상하는 『무너지기』는 나를 철저히 무너뜨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시공간에서 순식간에 출현하는 소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다지 애쓰지 않으며, 이 소리가 여운을 만들든, 정적을 만들든 간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이러한 무너짐의 반복 끝에, 나의 뇌리에 존재하던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 음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으로 획득하고자 했던 시도, 그리고 그 시도가 성공적이리라는 희망을 일순간에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매 순간 경험했던 무너짐이 마냥 서글프지만은 않았다.

『무너지기』가 제공하는 무너짐은 청자에게 새로운 방편을 제시할 수도 있고, 혹은 생각을 재정비하는 시간과 또 다른 효율적인 형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무너지기』의 말미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그 무너짐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자고로 인간은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희망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다른 희망을 꿈꾸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무너짐에 굴복하지 못한 채 허망함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내려놓은 채 본작을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무너지기』는 2010년대 내가 겪었던 음악적 경험에 있어 가장 무서운 순간과 가장 희망적인 순간을 함께 선물했던 작품이었다. 이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감상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나와 같은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도 『무너지기』가 제공하는 압도적인 경험의 순간을 계속하여 되짚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또한 그렇기에, 나는 지난 10년간 나에게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선사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무너지기』를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작품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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