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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 2010년대 결산 : 국내음악 by. coloringCYAN

   

이제 저희는 파란만장했던 2010년대를 보내고 새로운 10년, 새로운 2020년대를 향합니다. 저는 과연 앞으로의 10년 동안에는 저희가 어떠한 음악들에 즐거워하게 될지 기대되기도 합니다만, 한 편으론 지난 10년 동안 발매되었던 많은 좋은 음악들을 다시 되짚어보고 싶게 만드는 아쉬움 역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돌이켜보면 2010년대 음악계에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정말 많은 좋은 음악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지나간 2010년대의 좋은 음악들 중 제가 특별히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음악들을 추려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본 리스트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독자 여러분들께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세 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리스트를 정하면서 많은 수정과 고민을 거친 끝에 결국 이도저도 아닌, 누군가 이유를 물어온다면 횡설수설 할 수밖에 없게 되는 리스트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의 이 리스트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지난 2010년대의 음악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들을 되짚어보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발매된 모든 국내 음반들 중 오십 장을 추렸고, 그 중 스무 장에는 제가 그들을 2010년대의 뛰어난 음악으로 선정한 나름의 이유를 덧붙였습니다.1 즐겁게 읽어주실 수 있기를 바라며, 끝으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그리고 지난 10년을 풍성하게 빛내주신 모든 음악인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 coloringCYAN

   
  • 본고에 작성되지 않은 2010년대 국내음악 50-21위 까지의 리스트는 해당 페이지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20

카코포니, 『夢』, Self-Released, 2019.11

겨울이 봄을 향해가듯 그대에게 돌아간다고 말하는 「귀환」, 카코포니는 이를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순리와 같이 서술하지만 그를 둘러싼 소리들은 당연하지 않게도 제법 웅장하고, 때로는 범람하는 시냇물 같기도, 때로는 날카로운 겨울바람 같기도 하다. 꽤나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타히티」와 그러한 따뜻함이 북받치는 감정과잉으로 이어지는 「이 우주는 당신」은 「귀환」에서 이어지는 카코포니의 발자국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높이 올라갔다. 높이 올라간 이상 추락할 때의 빠른 속도와 엄청난 고통은 그녀 자신이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상대와 자신 사이 감정의 무게중심이 자신 쪽으로 쏠려있다는 것을 자각한 「X」에서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추락은 「Believe」에서의 자기분열과 「Tu me dis」에서의 공포, 부정을 거쳐 “왜 날 사랑한다 말했어?”라고 외치는 「제발」에서의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구체화된다.

하지만 그러한 원망이 온전히 원망으로만 남을 수 없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아무리 흑화 된다고 할지라도 그 밑바탕은 설명될 수 없고, 거역할 수도 없는 열렬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온 밤」에서 왜 내게 아픔을 주나요?”라는 서글픈 물음을 던지면서도 결국 그러한 물음들 역시 그녀의 온 밤을 채우는 것처럼 말이다. 「온 밤」에 이르러 한껏 차분해진 소리는 다시 잠에 들길 희망하는 「I am sorry」를 거쳐, 「Fate」에 이르러 뒤틀리는 전자음들로 인해 꿈으로 인도된다. 다음 트랙 「침묵의 노래」에서 그녀는 아팠던 기억들을 걸러내고 상대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만을 남기려 하지만, 도리어 걸러낸 아픔들은 마지막 트랙 「Parallel World」에서 미련으로 남아 그녀에게 또 다른 차원의 평행세계를 갈구하게 한다. 어쩌면 마지막 트랙이 인도한 세상 속에서도, 그녀는 결국 상대에게 돌아갈 지도 모른다. 겨울이 봄을 향해가듯

소리의 질감, 섬세한 노랫말, 감정적인 보컬 등을 통해 카코포니는, 본작에서 그녀의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썼다. 사랑과 이별, 단절과 회상의 과정은 어쩌면 모두가 익히 겪었고, 겪고 있을 장면들이지만, 본작의 소리들, 본작의 장치들이 카코포니의 이야기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녀 자신만의 특별한 위치에 놓는다. 당신의 눈앞에 사랑하는 누군가가, 혹은 사라져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와닿을 연애담이다.

         

19

Deepflow, 『양화』, VMC, 2015.04

앞서 설명한 『夢』과 같은 연애담이, 설사 그 결과물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할지라도, 한국힙합에서 강하게 배척되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2010년대의 한국힙합을 설명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의 ‘Money-Chasing’하는 힙합씬의 주류와는 다른 맥락으로 ‘마초적’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당시의 한국힙합을 대표하는 앨범은 단연 Deepflow의 본작, 『양화』일 것이다. 본작에서의 이야기는, 기술적으로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단단하게 안정적으로 내리 누르는 Deepflow의 랩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Deepflow라는 인간에 대해 그린다. ‘홍대’를 주름잡는 한국힙합의 대부로서 ‘진짜’ 힙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반부, 그 이전에 ‘인간 Deepflow’로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그린 중반부, 또 그 이전에 그를 형성한 ‘가족’에게로 회귀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을 본작의 서사는 탄탄하게 구성되어있고, 탁월한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잘 어울려」, 「작두」와 같은 킬러 트랙들까지 있으니 청자의 귀를 사로잡기에 차고 넘친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다른 설명을 보태기 이전에도, 이미 2010년대 한국힙합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기억될 만 한 작품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본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앨범의 중반부와 후반부에 드러난 ‘인간 Deepflow’의 고뇌에 주목하곤 했다. 하지만 2010년대를 마감하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주목해야할 지점은 앨범의 전반부다. 「열반」에서 지금 한국힙합은 연애 중이라는 라인이나, 「불구경」에서 “DeepflowTV에서 볼 일은 없지 멜론차트에 랩송 다 구려와 같은 라인, 「낡은 신발」에서 반복되는 진짜에 대한 언급, 「잘 어울려」에서의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노골적인 저격까지. 본작의 전반부에 자리한 Deepflow의 이야기는 단순히 Deepflow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그 당시 한국힙합씬에 뿌리박혔던 스테레오타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로의 노출, 그리고 노랫말로서 쓰이는 연애담 등을 극히 경계하고 타자화하며 스스로를 ‘진짜’로 격상시키는 태도. 그것이 당시의 한국힙합이 지극히도 배타적이며 ‘마초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에 이르러 한국힙합의 그러한 시선들이 어떻게 희석되었는지, 그리고 Deepflow의 움직임이 몇 년 사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떠올려본다면, 본작의 기억은 단순히 작품성이 좋은 작품임을 넘어서 2010년대 한국힙합에 뿌리내렸던 스테레오타입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18

모임 별,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클럽비단뱀, 2011.11

“모임 별은 이천년 일월 우연히 만나 어울리게 된 이들의 비정기적인 술자리에서 시작되었으며 … 여전히 친구들의 술모임이다.”라고 그들의 홈페이지에 쓰여있듯, 모임 별은 조월, 조태상, 이선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던 아티스트들의 사모임에서 시작한 집단이다. 그들은 2000년대에 진행한 <월간 뱀파이어> 프로젝트를 대표적으로 음악적 행보를 이어나갔고, 2010년대에 이르러서도 『주인 없는 금』과 같은 좋은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디자인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2011년에 발매된 본작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월간 뱀파이어> 프로젝트에서 발표했던 트랙들 중 일부를 모아놓은 앨범이고, 그것은 본작이 그들의 ‘베스트 앨범’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본작은 2000년대의 모임 별의 기억을 종합함과 동시에 (당시에) 2010년대로 나아갈 모임 별의 미래를 매개하는 앨범으로서 말해질 수 있을 것이며, 2010년대를 마감하는 지금 시점의 우리에게는 아련한 과거의 감성에 대한 향수로 남을 수 있는 앨범일 것이다.

본작의 문을 열어젖히는 첫 트랙 「2」에서의 감성에 집중한다면 본작은 낭만적인 앨범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너무 붕 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하며 흩날리는 신시사이저 위로 얹히는 조월의 목소리는 오롯이 ‘너’로 드러나는 대상에 집중하고, 쉬이 형용될 수 없는 감정들을 한 번에 담고 있는 듯하다. 「푸른전구빛」에서의 아련함, 「태평양」과 「6」에서의 벅차오름, 「비밀경찰」의 댄서블함 등, 트랙들마다 결이 다른 감정들을 종합하는 것은 노랫말일 것이다. 「태평양」에서의 함께 우리가 본 것은 누구도 다시 보지 못할거야와 같은 말이나 「6」에서의 , 난 말이지, 나중에 커서 벌새가 될 거야와 같은 감각적인 노랫말들은 본작의 트랙들을 마치 단 둘만이 존재하는 신비로운 세상처럼 꾸미고, 그렇기에 우리는 본작의 전반부를 낭만적이라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가 지나가고, 발랄한 신시사이저가 춤을 추는 「벌레춤」 이후로 「해운대」가 들어서면서 본작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너’가 소거되고 난 이후의 애수에 대해 말하는 후반부는 신시사이저보다는 애절한 기타 연주가 중심에 자리하고, 「세계의 공장」에서와 같은 보다 직접적인 낱말들이 우리를 같이 슬프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부에 자리한 트랙 「둘」이 들어서는 순간은 어쩌면 본작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첫 트랙 「2」를 떠올리게 하는 「둘」은 직전 트랙 「부루마블」에서의 처연한 신시사이저를 밝게 환기시키는 형태로 받고, 상반된다고 말할 수 있을 본작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직접 매개한다. 「둘」은 둘 중 어떠한 분위기에 치우쳐있다고 말할 수 없는 트랙이다. 우리는 봐줄만한 실패작, 어딘가 모자라는 성공작, 이 훌륭한 노랫말은 어쩌면 본작에서의 불완전한 너와 나의 이야기, 아니면 그를 만들어낸 모임 별과 그를 지켜보는 우리, 그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 문장일 것이다.

         

17

이랑, 『신의 놀이』, 소모임 음반, 2016.10

이랑의 본작 『신의 놀이』는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일 것이다. 본고에 대해 유념되어야 할 것은 내가 ‘음반’ 『신의 놀이』만을 접했고 ‘도서’로 발매된 <신의 놀이>는 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본고는 반쪽짜리 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본고를 쓴다.

첫 트랙 「신의 놀이」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라는 걸출한 첫 노랫말이 빛나지만, 우리는 첫 노랫말에 대한 대답으로서 풀어질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이든 결국 집을 떠나면서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들일 것이고, 모든 이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트랙 「가족을 찾아서」에서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 남은 후회들을 되새기며 ‘잘못됨’에 대해 찾는다. 다시 「이야기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여러 트랙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지극히 이랑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이고, 종종 그러한 사적 요소들이 구체화되는 지점들이 포착된다. 특정한 장소적 맥락을 제공하는 「도쿄의 친구」나 가장 긴 텍스트들에 맞춰 가장 방대한 이야기가 담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와 같은 트랙들이 그렇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본작의 소리들보다 우선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본작의 소리들 자체가 기타, 드럼, 현악기 등이 최대한 단출하게 차려진 모양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랑의 목소리가 언제나 그들의 소리보다 우선하여 다가오게끔 녹음된 것은 어쩌면 그녀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본작에서 이랑의 발화를 통해 드러나는, ‘신’이라는 낱말을 둘러싼 창작의 이름은 본작 전체적으로 문제시되는 개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에서 그녀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에 대해 칭찬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많은 창작자들이 그들만의 사적인 이야기가 모두(에게 들리는)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것도, 이랑이 본작에서 ‘모두를 바라보는’ 『신의 놀이』를 한다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도 그것과 비슷한 맥락 위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랑은 본작에서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서만 얽매고, 어쩌면 그렇기에 본작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좋은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본작은 창작이라는 예술적 활동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물음일 것이고, 그녀가 본작에서 풀어낸 다양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모두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말을 할 줄 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6

Red Velvet, 『Perfect Velvet』, SM Ent., 2017.11

본작 『Perfect Velvet』은 2010년대를 통틀어 봐도 가장 빛나는 K-Pop의 성취 중 하나이다. 타이틀 트랙 「피카부 (Peek-A-Boo)」는 Red 콘셉트의 상업적 성과를 Velvet 콘셉트에서도 이룩하고자 했던 SM이 제시한 최고의 해답에 가깝고, 반짝거리는 신시사이저로 세련되게 구성된 디스코 트랙 「봐 (Look)」 역시 빛난다. 훅과 Verse 사이에 큰 낙차를 바탕으로 한 퓨처-베이스 트랙 「I Just」와 Red Velvet이 그동안 Velvet 콘셉트의 작업물들에서 선보였던 녹진한 R&B 트랙 「Kingdom Come」은 서로의 상반된 색깔에도 불구하고 본작에서 멤버들의 보컬이 가장 빛을 발한 두 가지 순간들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데이트 (My Second Date)」와 「About Love」에서의 산뜻한 가벼움이나 「Attaboy」에서 한껏 무게를 잡는 모습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고, 마지막 트랙 「달빛 소리 (Moonlight Melody)」의 경우 보통의 K-Pop 앨범들에 하나씩은 있는 정통적인 발라드 트랙이지만, 그 자체로 Velvet으로 세워진 본작의 정체성을 갈무리한다.

지난번에 나는 이달의 소녀의 『X X』에 대해 다루면서 K-Pop이라는 장르가 가진 기획적인 측면, 그리고 세계관과 캐릭터성이라는 요소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Red Velvet 역시 그러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아티스트이고, 본작은 Red Velvet이라는 그룹이 가진 콘셉트와 캐릭터가 극대화되어 매력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그녀들은 본작에서 Pop, 퓨처-베이스, 힙합, R&B,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들을 차용하면서도 그들에 온전히 귀속된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시 말해, 본작의 트랙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르의 이름으로서 불릴 수 없고, Red Velvet의 이름을 경유해야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예리와 아이린의 랩(경우에 따라서는 조이 역시), 그리고 웬디와 슬기의 음색 등으로 드러나는 멤버들의 캐릭터가 각 트랙의 소리보다 우선하여 자리하는 순간은 본작 곳곳에서 목격되고, 그것은 어쩌면 그 동안 Red Velvet을 포함한 수많은 K-Pop 아티스트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궁극적인 방향일지 모른다. ‘칼 갈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서 Red Velvet이 K-Pop 아티스트로서 추구하는 고유함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본작은 우리가 발견한 2010년대 K-Pop 음악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5

f(x), 『4 Walls』, SM Ent., 2015.10

앞서 『Perfect Velvet』이 Pop이라는 장르가 되새기는 많은 장르들을 차용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융화시키며 탄생한 K-Pop 음악의 정수라면, 본작 『4 walls』는 f(x)라는 K-Pop 아티스트가 그녀들의 위기를 딛고 비상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에는 f(x)의 핵심 멤버라고 부를 수 있었던 설리의 탈퇴 이후 그녀들이 가졌던 음악적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래서 본작은 결론적으로 그 동안의 f(x)의 음악들과도 그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한 차이점은 음악적 소리들의 다름으로서 드러나기도 하고, 보다 자의식에 차있는 노랫말로서도 드러나기도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설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캐릭터의 활용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본작을 감상함에 있어 가장 주목해야 할 멤버는 앰버일 것이다. 그간 f(x)의 음악에서 랩을 전담하다시피 해왔던 앰버는 본작에서 보컬로 참여할 더 많은 기회를 가졌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f(x)의 음악과 본작을 다르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남겼다. 가령 「X」의 훅에서 루나의 고음과 앰버의 저음이 조화되는 순간은 그녀들이 「X」에서 의도했던 캐릭터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Rude Love」가 본작에서 가장 훅이 빛난 트랙 중 하나인 이유를 우리가 앰버의 적극적인 드러남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각 트랙들의 뛰어난 완성도는 그러한 변화를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며, 본작이 왜 2010년대 K-Pop 최고의 앨범들 중 하나인지를 증명한다. 타이틀 트랙 「4 Walls」는 하우스 비트와 베이스가 몽환적인 멤버들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트랙이고, 세션과 보컬의 멜로디, 드럼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Glitter」, 반복되는 클럽풍 신시사이저가 인상적인 「Deja Vu」를 비롯해 앞서 설명한 「X」나 「Rude Love」 등 어느 트랙 하나 그 완성도에서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트랙은 「Papi」다. ‘Papi’라는 이름은 트랙의 노랫말인 “B O S S C E O”와 교차되며 가부장적인 권위를 되새기는 이름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며, 그 이름의 앞에서 f(x)는 주인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외친다. 잠시 f(x)가 2010년대 K-Pop 아티스트로서 고평가 받아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음악으로서 정체되어있던 ‘K-Pop 여성 아티스트-다움’을 해체하고, 재해석하며 언제나 한 발씩 앞서 나갔다. 그래서 어쩌면 「Papi」에서 드러난 자유를 좇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그러한 f(x)의 행보의 연장선에 있는 동시에, 그녀들을 수식하는 이름 중 ‘여성’에 우선성을 덧씌우며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했던 움직임이었을지 모르겠다. 결국 분명한 것은, 본작은 K-Pop 음악으로서 치명적이었던 ‘캐릭터의 공백’을 멋지게 극복해낸 작품이고, 어쩌면 마지막이었을 수 있기에 더욱 아쉬운 f(x)의 마지막 날갯짓, 2010년대를 장식하는 최고의 K-Pop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는 것이다.

         

14

Jclef, 『flaw, flaw』, biscuit haus, 2018.08

「Papi」에서부터 떠올리는 ‘여성’으로서의 움직임. 2010년대는 확실히 여성 아티스트들의 활약상이 돋보였던 연대였다. Jclef의 본작 『flaw, flaw』, 말 그대로 흠결(flaw)을 가진 이가 우리에게 선보이는 결함 가득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 역시 2010년대 여성 아티스트의 빛나는 성취 중 하나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에서 그녀는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우리 모두가 잊고 있었을 사실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그녀의 흠결 있는 세상을 향한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FLAW, FLAW」와 「꾐」을 지나 첫 발을 내딛는 「주스 온더 락」에서 강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동행자」에서부터 그녀의 흠결 있는 세상은 내적 자아를 벗어나 타인에게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유쾌하게 만은 그려지지 않는 타인과의 동행은 본작 속 그녀에게 어떠한 좌절을 안겨줌과 동시에, 동행자 역시 그녀와 같은 흠결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얼른 내놔라, 두 어깨를 잡고 흔들어서 / 나는 아무거나 짚이는 것을 토 했어 / , 이런 건 대화라 불리면 안 되는 것 아닐까(「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거봐, 이 바다는 눈치가 참 빨라서 나의 어설픈 폼새를 읽고 틈만 나면 삼키려 들잖아(「DIVE IN ISLAND」)와 같은 인상적인 라인들이 그를 대표한다.

본작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동행자는 ‘너’로 이야기되지만, 동시에 ‘모든 이’, 그리고 ‘모든 이’가 관계하는 세상 그 자체로 뻗어나간다. 유쾌하지 않았던 타인과의 동행의 경험은 Jclef에게는 곧 여행을 시작한 이유가 된다. 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척하는 것인가? 이에 질려버린 그녀는 망치를 들고 실천할 수 있을 리 없는 파괴를 부르짖으며 협박하기도 하고(「WAT`S YOUR HOUSE FOR」),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더디게 살아가기를 다짐하기도 하지만(「THE UNCERTAIN`S CLUB」), 불행하게도 끝내 모두가 자신의 흠결을 받아들이게 되는 때는 지구 종말 직전일 뿐이었다(「지구 멸망 한 시간 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거봐, 저길 엿보기만 할 수 있는 이곳이 지상낙원이야라며 종말 직전에 애쓰는 모두를 비웃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여행을 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단순히 세상 모든 것들의 흠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잘 짜인 노랫말뿐만이 아니라, 트렌디한 힙합과 R&B의 경계에 걸쳐 곳곳에 펑크와 재즈 등을 잘 섞어낸 프로덕션, 사운드클라우드 랩과 보컬의 경계에 걸쳐있는 탁월한 퍼포먼스까지, 본작의 모든 것들은 항상 어딘가에 걸쳐져 애매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이 역시 세상의 흠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작의 정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만 같다.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서로의 흠결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되는 때는 과연 언제쯤 오게 될까?

         

13

키라라, 『sarah』, Self-Released, 2018.08

그러나 그러한 세상일지라도 결국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키라라의 본작 『sarah』는 어쩌면 세상의 풍파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를 위해 그녀가 마련해준 독무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sarah』, 아니, ‘살아’.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며 만든 두 트랙 「걱정」과 「Wish」에서부터 본작은 살아 숨 쉰다. 하우스와 빅-비트를 중심으로 짜인 그녀의 음악적 방법론은 2016년 발매된 전작 『moves』와 유사하지만, 『moves』와 달리 본작에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감돈다. 하지만 슬픔이 본작에 머물러있다고 해서 본작을 단순히 슬픈 앨범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본작은 우리가 울면서도 춤을 추게 만드는 앨범이고, 어쩌면 그렇게 ‘울면서도 춤을 추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고,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건네는 다섯 마디를 위한 하나의 8분의 대서사시를 그린 「걱정」과 분명하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신시사이저 멜로디의 처연한 여행기를 담은 「Wish」를 지나, 「Blink」와 「Earthquake」에서는 그녀의 전작 『moves』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밝고 댄서블한 빅-비트 음악을 엿볼 수 있지만, 「Blink」에서 2분 40초를 지나며 순식간에 무드가 가라앉을 때, 「Earthquake」의 마지막 2분 동안 반복되는 신경증적인 전자음들의 향연이 빗발칠 때 춤을 추는 우리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지게 된다. 본작의 모든 트랙이 그렇다. 「Water」에서 차분하게 물소리가 이어지다가 한 순간 신스음이 높아지는 장면, 「장난」에서 드럼이 퇴장하고 「Wish」의 신시사이저 멜로디를 연상케 하는 음이 등장하는 장면, 015B의 「텅 빈 거리에서」를 샘플링한 트랙 「Rain Dance」에서 샘플이 퇴장하고 밝은 리듬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장면 등등, 본작은 모든 부분에서 우리에게 춤을 추게 하면서도 단순히 그 춤이 몸짓으로서만 머물게 하지 않고 다양한 표정 변화를 통해 더욱 강한 생동감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본작의 앨범 소개 글에 쓰여 있듯, “쿵 하면 쿵, 짝 하면 짝”하는 음악, 그녀는 사람이 춤을 추게 되는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왜 춤을 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간과하지도 않았다. 앞서 첫 문단에서도 말했듯, 그녀가 다양한 감정들을 녹여낸 본작의 흐름은 우리가 울면서도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이는 앞서 말했듯 세상의 풍파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를 위해 그녀가 마련해준 독무대일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속이며, 그녀가 선물한 팔찌를 떼어낸 채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갈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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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수잔』, Self-Released, 2015.10

키라라가 『sarah』의 소리들을 통해 우리에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용기를 북돋았다면, 본작 『수잔』에서 들려오는 살아남아야 했던 한 20대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과 생각을 남길 것이다. 『수잔』, 본작의 타이틀이자 김사월이 본작에서 내세운 페르소나. 어쩌면 ‘수잔’이라는 이름은, 김사월이 인터뷰에서 의도적으로 화자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두려 했다고 말했듯이, 김사월의 목소리를 빌린 또 다른 누군가로 이해되어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소녀 같은 건, 소년스러운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수잔」의 이야기도, 남성들에 의해 세워지는 젊은 여성을 향한 시선들의 문제적 측면을 고찰하는 「젊은 여자」에서의 이야기도, 그 외 본작의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오롯이 본작을 청취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같이 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작의 이야기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생동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김사월이 ‘수잔’에게 빌려준 그녀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부드러우면서도 서늘한 느낌이 감돈다고 평가받는 그녀의 목소리는 각 트랙마다 세심한 차원으로 변화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낸다. “너의 앞에서 내 모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며 짙은 잔향을 남기는 「아름다워」에서의 목소리나,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내뱉는 「접속」에서의 목소리, 둥실둥실 떠오르는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에서의 목소리, 한 순간 낮게 깔리다가도 고혹적인 향을 풍기는 「악취」에서의 목소리 등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목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본작의 소리들이다. 서늘한 플루트가 깔리며 무드를 조성하는 「수잔」, 김오키의 색소폰에 짙게 빨려들어가는 「악취」 등이 대표적이고, 이외에 장수현, 지박, 노선택, 이기현등의 연주자들과 프로듀싱을 맡은 김해원의 주도 아래 짜인 본작의 소리들은 김사월의 목소리와 발을 맞추며 수잔의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단출한 연주 위에 발화자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빛냈던 한국 포크의 전통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본작은, 박찬은이 썼던 것처럼 한국 ‘포크의 현대화’를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음반으로 평가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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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LANGUAGE』, BANA, 2018.11

김사월의 『수잔』이 한국의 포크 음악을 한 발 더 나아가게 한 음반이라면, 본작 『LANGUAGE』는 한국힙합의 소리를 한 단계 진일보시킴과 동시에 기존 한국힙합이 구사하던 언어체계를 전복하고자 하였던 발걸음이다. XXX는 『LANGUAGE』에서 이미 죽어버린 ‘사어’를 구사한다. FRNK는 정글과 DnB(드럼앤베이스), 글리치, 테크노, 덥스텝 등 일렉트로닉 음악들에서 따온 사운드들을 재배열하고 정제하며 기존 한국힙합이 들려주던 소리와는 다른 방식의 사운드를 보여주고, 김심야가 선보이는 노랫말은 한국힙합이 구사하던 언어와 정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그러한 방향성은 곧 무자비한 공격성으로서도 드러나는데, 그러한 공격성은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한국힙합의 언어의 근간을 뒤흔든다. 가령 「S_it」에서 어차피 XXX는 사라질 것이라 말하는 누군가에게 좆까, 난 너희를 눈앞에서 찢어버려야 돼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공격하는 것에 대한 의미 있는 갈망을 같이 드러내기도 하는데, 앨범의 포문을 여는 트랙 「18거 1517」의 인트로는 자신이 주류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돈, 효도, 자동차’라는 기존 한국힙합의 낱말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이후에도 곳곳에서 스스로를 비웃으며 그를 추구한다. 「Trust Us」에서 또 돈 얘기 돈, , , 나도 싫어 그럼 auto mobile 얘길 하니? 아니 이런, 힙합은 돈 얘기 말고 뭐있어?”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듯이 말이다. 결국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한국힙합의 언어가 ‘되지 않은 언어’가 아닌 ‘되지 못한 언어’이고, 그 사실은 김심야의 노랫말 기저에 깔린 공격성마저 우스운 질투로 보이게 한다.

주목해야할 것은, XXX가 본작에서 한국힙합의 언어를 질투하며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언어를 잃지 않고 도리어 꽉 쥐고 있다는 점이다. 「간주곡」에서 내 지루한 음악이 해답이니까라고 발칙하게 외치며 스스로의 위치를 격상하거나, 「뭐 어쩔까 그럼」에서 예술은 인간, 인간은 욕심, 욕심은 돈 근데 이젠 돈 얘긴 그만이라고 말하며 반복적으로 자신의 명제에 새겨지는 물질을 거부하기도 한다. 더불어 김심야가 그의 노랫말로서 한국힙합의 언어를 갈망하는 와중에도 FRNK의 프로덕션은 오롯이 그 자신만의 문법만을 구사하며 김심야의 갈망과 질투가 그 자체로 모순이 되게 만든다. 비록 본작에서 FRNK가 주조해낸 소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음악의 코드와는 멀리 떨어져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완전히 새로울 것까지는 없더라도, 그 범위를 한국힙합으로 한정한다고 했을 때 FRNK의 소리들은 온전히 새로운 것이고, 대중적이기를 온전히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작에서의 FRNK의 소리와 김심야의 노랫말은 모순되면서도 상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 지점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XXX의 최고작으로 『LANGUAGE』를 내세우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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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SECOND LANGUAGE』, BANA, 2019.02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LANGUAGE』보다 본작 『SECOND LANGUAGE』를 더 주목하는 이유는, 본작에서 FRNK가 적극적인 신시사이저와 전자음의 활용, 멜로딕함을 배제하지 않은 전개를 더해 전작에 비해 보다 쉽게 들릴 수 있게 소리를 구성함이 오히려 전작보다도 더 나아간 김심야와의 상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 첫째이고, 김심야의 노랫말이 보다 정확하게 2010년대 한국힙합을 지배하던 ‘대중성’과 ‘예술성’의 클리셰적인 이분법을 본격적으로 해체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기 때문이 둘째이다.

가령 「우아」에서 예술가 오명은 씻고 가, 같은 취급이 기분 나뻐라고 말하면서도 예술가는 그냥 야부리 털어라고 말하며 ‘대중적인’ 친-미디어적 힙합 음악과 그에 반하는, 어쩌면 앞서 『양화』에서 썼듯 201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힙합을 대표했다고 말할 법한 스탠스의 힙합 음악 모두를 격하시키는 방식이 그렇고, 「Bougie」에서 연예인들 전부 예술가 취급하면 곤란하지라고 말하는 노랫말이 도리어 자신에게 “got bounces”되어 돌아온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고, 「괜찮아」같은 트랙에서 직접적으로 미디어와 미디어에 노출되는 MC들을 겨냥하면서도 바로 다음 트랙인 「다했어」에서 사실 그러한 것들이 다 뻔한 얘기라고 일축하는 방식이 그렇다. 김심야는 본작에서 그간 자신이 지속적으로 활용해옴과 동시에 한국힙합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대중성’과 ‘예술성’의 대립을 그러한 방식으로 별 볼일 없는 일로 ‘퉁쳐버리며’, 그 속에서 자신이 가진 이중성과 모순에 대해 정확하게 고찰하기까지 한다. 결국 김심야의 노랫말에 대한 독해는 2019년이 끝나고 난 지금에 이르러서 다른 방식으로 수행되게 되며, 변화해버린 한국힙합을 놓고 봤을 때 김심야는 본인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그런 변화를 미리 읽어낸 예언가처럼 되었다.

전작의 마지막 트랙 「Told You」에 이어 XXX 자신들의 회사 BANA를 비판하는 본작의 마지막 트랙 「사무직」은 앞서 서술한 두 가지 측면을 아우르는, XXX 연작의 마지막을 알리는 최고의 마무리다. 김심야는 해당 트랙에서 BANA에 대한 비판을 XXX가 BANA를 떠나는 가상의 상황으로 연출해낸다. 그 상황 속에서 그는 취업난에 함 잘해봐라, XXX”라고 자조하면서도 내 티눈만큼이라도 하는지 함 보자라는 인사를 날리며 공고해진 그들의 위치를 되새긴다. 살펴야할 것은 ‘사무직’이라는 XXX의 비유다. 자신들의 위치, 즉 아티스트라는 소명과 그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예술적 활동들이 ‘사무직’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는 것은 곧 ‘대중성’과 ‘예술성’의 대립으로 세워지던 한국힙합의 클리셰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사무직’이라는 낱말이 가진 맥락들은 우리에게 온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결국 XXX에 있어 미디어에 스스로를 노출하며 ‘돈을 추구한다’고 여겨지는 아티스트들을 타자화시키면서 한껏 고고함을 뽐내는 아티스트들 역시 결국은 벌어먹기 위해 ‘봉급을 받는’ 사무직인 것이다. 아마 그 범주에서 XXX 자신들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렇듯 본작에서 XXX는 변화해버린, 그리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한국힙합의 흐름들에 대해 매우 정확하고도 통렬한 분석을 수행하였고, 그렇기에 본작은 2010년대 한국힙합을 장식하는 최고의 마무리로 칭할 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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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드림, 『불안의 세계』, In a Dream, 2016.04

XXX가 그랬듯, 의식을 가진 아티스트들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사건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며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는 지금까지 ― 비록 어떠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주목하여 글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 소개한 작품들 중에서도 그러한 작품이 있고, 앞으로 소개할 작품들 역시 그러하지만, 본고의 절반을 지나는 지금 나는 줄리아드림이 본작 『불안의 세계』에 담아낸 의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작의 의식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측면은, 그들이 인터뷰에서 직접 노골적으로 담아냈다고 말하였듯 ‘세월호 참사’와 관련되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도」와 「잊혀진 바닷가 : 친구의 노래」에서 분명하게 떠오르는 노랫말들이 그렇다. 그리고 두 트랙이 CD2의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배치된 트랙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그들은 CD1을 CD2를 바탕으로 재독해할 것을 청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일지 모른다. CD1의 트랙들에는 「파도」와 「잊혀진 바닷가 : 친구의 노래」처럼 분명하게 ‘세월호 참사’를 가리키는 노랫말이 없지만, 우리는 감상에 있어 우리가 노랫말보다 우선하여 독해하게 되는 각 트랙들의 제목에서부터 그러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My Queen」, 「망각의 정오」, 「외면과 도피의 시간」에서와 같이. CD1과 CD2의 연주 진행에서 비슷한 차원에서 반복되는 지점이 포착된다는 것도 그러한 독해의 가능성을 여는 또 다른 요소일 것이다.

「잊혀진 바닷가 : 친구의 노래」에서의 분노는 곧 「Casus Belli」(개전開戰의 이유)를 알리고, 그는 곧이어 「어떤전쟁」으로 발발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줄리아드림이 본작에 자리한 의식의 동기가 된 ‘세월호 참사’에서 더 나아가 현재의 세상을 『불안의 세계』로서 규정하게 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구원의 세계’를 찾는다. 맹렬한 연주를 위풍당당하게 뽐내던 「Casus Belli」와 「어떤전쟁」 뒤에 이어지는 「구원의 세계 Part.1」과 「구원의 세계 Part.2」는 줄리아드림이 현재에 맞서 열게 된 전쟁의 내용을 표상하는 트랙일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문제적이다. 살펴보면 맹렬하게 치고 들어오던 「Casus Belli」와 「어떤전쟁」의 연주는 「구원의 세계 Part.1」에서부터 점점 가라앉고, 「구원의 세계 Part.2」에서 그들은 삶을 잃은 나의 외침이 너의 손끝에 가로막힌다.”라고 말하며 연대의 가능성이 차단되는 과정을 그린다. 다음 트랙 「The World Depend On You」에서 그들은 『불안의 세계』 속 다양한 언어로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며, 마지막 트랙 「어제처럼 그렇게」는 끝내 자신을 외면해달라 외치며 세상에 가득하게 놓인 불안이 결국엔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어쩌면 위에 첨부한 인터뷰에서 줄리아드림이 밝힌 것처럼, 결국 시대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표상하는 전개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연주와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세상이 본작의 탁월함만큼이나 멋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본작을 2010년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세월호 참사’와 관련짓더라도, 혹은 다른 방식으로 본작에 대한 독해를 수행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불안의 세계』를 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테니.

         

8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2011.06

『불안의 세계』가 2010년대를 관통하는 무거운 사건을 다루며 세계를 규정하는 앨범이라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본작 『장기하와 얼굴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이 가지기 시작한 공통감을 적실하게 반영한 앨범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말기에 발생하여 2010년대 초반까지도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던 ‘리먼 사태’,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지금까지도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문제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홍대거리 두리반 젠트리피케이션’과 그를 둘러싼 ‘두리반 농성’의 이름. 브로콜리너마저, 검정치마,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아티스트들은 그러한 시기에 주목받았고,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항심과 그를 바탕으로 한 노랫말에 담긴 짙은 패배주의에서부터 소급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 『별일 없이 산다』에서의 「아무것도 없잖어」, 「싸구려 커피」, 「별일 없이 산다」 등의 트랙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대표적이다. 본작의 노랫말들은 『별일 없이 산다』에서보다 그 노골적임은 줄어들었지만, 화자의 태도는 더욱 침잠해 들어간 상태로 있어 두 작품 사이의 2년 동안 모두의 공통감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행하였는지를 적실하게 드러낸다.

앞서 언급한 브로콜리너마저, 검정치마와 같은 아티스트에 비교해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 특유의 또박또박한 가창과 담백한 비유를 바탕으로 한 직설적인 노랫말로서 보다 분명하게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청자들의 공감을 쉽게 유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집의 성공을 정말 ‘별일’ 아닌 것처럼 치부하면서도, 그 속에 뿌리 깊은 자기부정이 담겨있는 첫 트랙 「뭘 그렇게 놀래」를 시작으로, 「별일 없이 산다」를 직접적으로 이어받는 듯한, 현대인의 무감각/무뎌진 감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뱉는 「TV를 봤네」, 인간관계의 과포화와 단절이 양립하는 실태를 말하는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신자유주의가 낳은 인간의 물화와 과열되는 경쟁 등의 현상의 비유로서 기능하는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등이 그렇다. 본작의 화자는 모든 트랙들에서 무력하고, 본작의 연주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 어딘가의 한국 록 스타일에 기대고 있다.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후반부에서의 현란한 싸이키델릭-풍 연주가 대표적일 것이다. 화자의 태도와도, 화자가 살고 있는 시대와도 엇나가는 본작의 연주는 본작 곳곳에서 화자의 목소리와 부조화를 일으킬 것이고(「그 때 그 노래」와 「마냥 걷는다」를 대표적으로), 그러한 부조화는 더더욱 상징적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마지막 트랙 「TV를 봤네 (다시)」에서 다시 무력하게 TV 앞에 앉은 화자는 더 이상 우리와 분리시킬 수 없을 것이다. 본작에서 장기하는, 그가 의도한 바와는 상관이 없이 현재의 우리의 이름을 직접 말하며, 그렇기에 본작은, 본작의 밑바탕이 된 우리들의 공통감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2010년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7

전자양, 『소음의 왕』, Self-Released, 2015.09

장기하와 얼굴들이 시대의 공통감을 보다 직설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앨범에 담아냈다면, 전자양의 본작 『소음의 왕』은 그들과 비슷한 차원의 시대의 문제들을 담아내면서도 그 문제들의 이미지를 날카로운 메타포들로서 표상시켜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Denci Hinji – Day Is Far Too Long』, 『숲』과 같은 전자양의 전작들에서도 번뜩이는 메타포들과 그로부터 형성된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지만, 어쨌든 화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로서 해석될 수 있었던 전작들과 달리 본작의 메타포는 화자 외부의 것들에 대해 직접 말하며 그로부터 발생한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하나로 규합시켜 우리에게 보여준다. 가령 「우리는 가족」에서 ‘가족’이라는 낱말로 표상되는 이미지는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이웃들보다는 충만하다는 이유로 그들이 ‘가족’으로서 묶일 이유를 찾고, 난 당신이 아닌 걸요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행복해야 해라고 말하며 다시금 ‘가족’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비유일 것이다(우리는 어쩌면 「우리는 가족」을 통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공동체 문화에 대한 비판을 떠올릴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나아가 우리를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측면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의 빛」의 도둑과 사기꾼만 고기를 구워 먹네, 빚지고 빚내어 우린 빛을 뿜어, 빛내고 빛낼수록 우린 죽어가네와 같은 라인은 자본주의 체제를 꼬집고, 「소음의 왕」에서 미래는 없어라고 직접 말하는 장면은 우리의 앞에 우리가 현 세태에 대해 가지는 공통감을 그린다.

중요하게 살펴야할 요소는 첫 트랙 「거인」에서 거인이 찾아온 이후로, 전자양은 각 트랙에서 ‘우리’의 이름을 계속 호명한다는 점이다. 제목에서부터 그러한 요소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우리는 가족」, 세상에게 조종당하는 대상을 ‘우리’로 설정하는 「생명의 빛」이 그렇고, 「소음의 왕」에서 스스로를 ‘소음의 왕’이라 자처하면서도 ‘노이즈’를 바라고 부르짖는 주체 역시 ‘우리’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지막 트랙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 캠프파이어」에서 ‘우리’가 소거되는 순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해당 트랙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서 청자들을 반강제로 끌어안았던 앨범의 흐름은 사라지고, 네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네와 같은 노랫말로 ‘우리’는 해체된다. 그저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기다리는 대상들과 그를 한 발 떨어져 관찰하는 화자가 남을 뿐이고, 그렇기에 ‘나’가 ‘너’에게 말하는 사랑은 위선적으로까지 읽힌다(후시적인 접근이지만, 나는 해당 트랙의 전반부에서 Jclef의 「지구 멸망 한 시간 전」과 유사한 분위기를 느꼈었다). 하지만 특정 지점을 지나면서, ‘나’와 ‘너’는 그 입장이 뒤바뀐다. 아니, 뒤바뀐다기보다는 사실 원래 그러하였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나’와 ‘너’가 똑같이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기다리는 주체가 될 때, ‘나’가 ‘너’에게 말하는 사랑은 그 위선을 떨쳐내며 더욱 절절한 감정으로 화한다. 그렇게 전자양은 마지막 트랙에서 ‘우리’의 이름 없이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그려내며, 그것은 아마 결론적으로 본작이 현재의 우리에게 희망적인 송가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쓰다 보니 노랫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져, 본작의 또 다른 훌륭한 요소인 본작의 소리들에 대해선 쓰지 못했지만, 그러한 노랫말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본작의 분위기를 탁월하게 조성한 본작의 소리들의 훌륭함에 대해서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6

이민휘, 『빌린 입』, Self-Released, 2016.11

앞서 내가 김사월의 『수잔』에 대해 목소리와 소리가 발을 맞추며 이뤄낸 현대 한국포크의 중요한 성과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민휘의 본작 『빌린 입』은 어쩌면 그와 달리 ‘분명하지 않은 포크 음악’으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수잔』에서 김사월의 목소리는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하게 들리고, 그 안에 실린 김사월의 세심한 감정과 세밀한 떨림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빌린 입』에 실린 이민휘의 목소리는 그에 비하면 어딘가 탁하고, 분명하지 않다. 가령 「빌린 입」에서 이민휘의 음색이 상당히 탁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어쩌면 그 트랙의 화자는 ‘목이 메어있는’ 상태일지 모른다)이나, 「거울」이나 「돌팔매」와 같은 트랙에서 이민휘의 목소리가 연주의 뒤에서 이펙트를 잔뜩 머금은 채로 부유한다는 사실이 그렇다. 또한 본작의 노랫말들은 『수잔』, 그리고 다른 포크 음반들에 비하면 그 의미가 불분명한 비유들이다. 그래서 본작을 감상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본작의 소리들에서 무게중심을 찾게 된다. 본작의 소리들은 ― 적어도 우리가 ‘포크’라는 장르의 이름에서 생각하는 단출한 연주의 이미지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 ― 이질적이다. 대부분의 트랙에서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을 잡지만, 「돌팔매」에서의 몽롱한 신시사이저, 「빌린 입」에서의 서늘한 관악 연주, 「거울」에서의 하이 피치 피아노 연주, 「부은 발」에서의 ‘바닷가 소리’와 「깨진 거울」에서의 전자 기타 등이 본작의 소리를 이질적인 것으로 만든다. 「꿈」은 어떠한 의미에서 그러한 이질적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을 결여한 ― 적어도 그러한 것처럼 들리는 ― 소리만을 전달하는 이민휘의 목소리 위를 덮는 다양한 세션들의 연주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본작에 대한 독해를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러한 요청 뒤에도 이민휘는 어쨌든 계속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분명히 본작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꿈」은 본작을 불친절한 이야기로 만드는 이민휘의 의도이자 절묘한 수였을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비유로도 읽힐 수 있을 본작의 노랫말들을 자세히 뜯어본다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말’과 ‘침묵’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빌린 입」에서 화자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말을 행하고, 듣는 것이 사실은 그 자체로 타자화를 수행한다고 말하며, 그에 더해 그러한 행위들이 사실은 주체적인 활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고 나서 「거울」로 이행, ‘네 발’로 거울 안으로 들어가며 ‘어머니’의 이름을 호명하는 화자의 모습은 비로소 본작이 어떠한 이야기를 담은 비유인지를 우리 앞에 어렴풋이 드러낸다. 그것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전승/반복되어 온, 가부장의 이름 아래 새겨진 온갖 금지적 명제의 표상일 것이다. 「부은 발」에서 금지당한 발화는 「꿈」에서 내용을 결여한 소리로 남고, 발화의 금지와 그로 인한 침묵이 드러남은 아마도 여성들에게 내려진 금지적 명제들을 가장 원초적이게 표현한 방식일 것이다(「거울」에서 ‘네 발’로 들어가는 장면을 떠올려볼 때 역시 그렇다). 그 제목부터 문제적인 「깨진 거울」과 「받아쓰기」는 본작의 이야기의 절정부임과 동시에 본작이 여성-서사로 읽혀야만 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깨진 거울」에서 화자는 끝내는 주체적인 발화를 할 것을 다짐하고, 「받아쓰기」에서는 자신의 ‘혀’를 훔친 도둑을 직접 마주하며 그가 자신의 ‘혀’를 훔쳤음을, 그를 되찾음으로 고백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트랙 「침묵의 빛」은 되찾은 ‘혀’로서 빛을 찾은 희망적인 벅차오름으로 독해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포착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첫째로 「깨진 거울」의 발화자가 남성이라는 것일 테다. 「부은 발」에서는 진실을 말하면 산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발화를 금지 당했고, 전후의 맥락을 고려하면 금지의 대상은 여성일 것이다. 그러나 「깨진 거울」에서 그러한 금지를 뚫어내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남성의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는 「받아쓰기」가 ‘받아쓰기’로 적힌 이유일 것이다. 「받아쓰기」에서 자신의 ‘혀’가 도둑맞았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발화의 가능성을 보유한 남성의 권위를 ‘받아쓰기’ 하는 것으로 읽힌다면, 그것은 「깨진 거울」의 목소리가 「받아쓰기」에서 필사한 남성적 발화인 탓일 것이고, 이는 곧 두 트랙 간의 상호참조를 거친 독해일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침묵의 빛」은 희망적인 벅차오름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 화자 대신에 울부짖는 구슬픈 첼로의 울음소리와 같이 들리고, 그렇기에 본작은 나에게 지극히 비극처럼 다가온다. 비록 본작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적어도 본작의 소리와 노랫말, 그리고 본작을 둘러싼 2016년 당시 떠오르던 여성 담론들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본작의 이야기는 그러한 것들을 참조하여 독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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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키무키만만수, 『2012』, 비트볼뮤직, 2012.05

이민휘는 『빌린 입』이라는 훌륭한 작품을 발매하기 이전에, 2010년대 가장 문제적인 아티스트 중 하나라고 평가될 수 있을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본고는 본작 『2012』에 대해 조지환이 쓴 글보다 나중에 쓰인 글이고, 조지환은 본작에 대해 “기성 음악에서 반복되었던 종류의 여성-재현의 인습을 놀려먹는 장난”이라고 칭함과 동시에 “자본이라는 쟁점과 성차라는 쟁점이 서로를 매개하는 지점에 자리”잡아 그들의 교차와 복잡화를 음악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2010년대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사건”이라 말한다. 나는 조지환이 평한 바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그가 제출한 찬사에서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키무키만만수가 본작에서 구성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조지환이 이미 훌륭한 글을 쓴 바, 나는 본작에 대해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글을 이끌어가고자 한다.

내가 본고를 작성하며 본작이 발매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각자의 비평문을 통해 본작에 대해 암묵적인 논쟁을 이어가던 비평가들의 모습이었다. 구체적인 논의의 방향성은 상이하더라도, 대체로 그들은 본작의 소리, 노랫말, 그리고 퍼포먼스가 가진 ‘실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었고, 본작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비평가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논의를 이어갔다. 가령 김반야의 경우 “형태의 파괴, 그로테스크, 난해함은 별다른 근거 없이 ‘예술적인 소양’으로 변신”한다는 말로 다소 공격적인 평을 제출하며, “음악은 파격이 주가 아니며 무엇보다 이 앨범은 그만큼 ‘충격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최민우의 경우, 본작에 담긴 ‘실험성’의 유효함은 인정하면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험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욕망을 수용하도록 만들고야 마는 설득력이 아닐까?”라는 신중한 평을 제시한다.

그러한 부정적 비평들에서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면, 확실히 본작은 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만큼의 ‘파격’을 담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2008년 석관동」이나 「식물원」과 같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기성-포크 음악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트랙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안드로메다」에서의 벌레 외침을 대표적으로 본작을 이끌어가는 무키와 만수의 악 쓰는 듯한 보컬은 이전부터도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으므로 그렇게까지 새로울 요소도 아니다. 조지환은 그러한 무키무키만만수의 퍼포먼스에 대해 “아마추어리즘적 괴성”이라고 적었는데, 그렇게 악 지르는 보컬의 강한 인상과는 다르게 본작의 소리와 퍼포먼스의 균형이 프로듀싱을 맡은 달파란에 의해 꽤나 그럴듯하게 정제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본작에서 무키무키만만수는 그렇게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도 않는다(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감상으로, 대다수의 평자들은 본작에 드러난 무키무키만만수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동의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본작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유는 본작에 담긴 ‘파격’ 내지 ‘실험성’들에 뒤따르는 의문부호들이 도리어 무키무키만만수를 더욱 독보적인 위치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본작을 발매하기 전부터 이미 홍대의 두리반, 명동의 마리, 그리고 제주도 강정마을 등 다양한 집회의 현장에서 투쟁하며 본작의 트랙들을 노래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녀들이 본작에서 악을 지르는 모습은 우리에게 직접 드러난 그 당시의 저항적 행동들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성됨은 본작이 어떠한 ‘음악적인 것’으로서 치부되기 이전에 ‘들려지기 위한’ 목소리로서 우선적으로 청자들에게 다가오게 되고, 이는 본작이 본작 내부의 요소들보다 본작을 둘러싼 맥락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할 것을 요청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가령 본작의 노랫말들이, 사실 그 자체로는 어떠한 목적의식이나 시의성을 담보하고 있지 않음에도(한 예로 「방화범」과 같은 트랙은 ‘숭례문 방화사건’을 직접 말하지만, 정작 그 내용에는 소재로 차용한 사건 내지는 대상을 말장난처럼 사용한 흔적만 남을 뿐 별다른 목적의식을 찾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정치적’인 것으로 독해하게 되는 이유는 무키무키만만수라는 아티스트가 밟아온 발자취들에 기인한다.

그래서 본작에 제기되는 음악적인 의문부호들은 어쩌면 본작을 비호하는 나와 같은 입장에서도 해명할 필요가 없는 메아리와 같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본작은 애초부터 음악적 분석의 대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는 작품이고, 무키무키만만수의 생동하는 움직임으로서 본작은 완성되기에 어쩌면 우리는 본작을 두고 ‘2010년대의 가장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민갑은 본작에 대해 “이런 음악, 예전에는 없었다. 아니, 예전에는 이런 음악, 음악으로도 안 쳤다.”라는 평을 제출했다. 나는 거기에 더해 ‘음악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을 덧대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본작에 대해 ‘음악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달파란에 의해 그럴듯하게 정제된 본작의 소리들이 그러한 접근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은 어쩌면 그녀들의 목소리로서 음악적 생경함을 꾸며내고, 그들을 다시 정제하여 우리에게 보임으로서 ‘음악적’임을 연기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조지환은 본작이 “기성 음악에서 반복되었던 종류의 여성-재현의 인습을 놀려먹는 장난”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본작은 하나의 장난이다. 본작은 “여성-재현의 인습을 놀려먹는” 장난임과 동시에, 대중음악사에서 반복되어온 ‘음악적’인 스타일과 그를 기대하는 청자들을 놀려먹는 장난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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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사우스폴 사운드랩, 2012.10

지금까지 내가 리스트를 작성함에 있어 나는 각 음반들이 불러일으킨, 혹은 담지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대중음악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조건 내지는 현상들을 바탕으로 하여 글을 썼다. 그런 의미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본작 『dreamtalk』은, 앞서 서술한 모임 별의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부분들에 있어 할 말이 많지 않은 음반일 수 있고, 이는 서문에서 내가 본 리스트에 대해 “이도저도 아닌, 누군가 이유를 물어온다면 횡설수설 할 수밖에 없게 되는” 리스트라고 설명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본작을 본 리스트에 고순위로 위치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본작은 박정용이 썼듯 “(모던)록이라는 쟝르의 특질 안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록 음악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이율배반적 요소들을 한데 묶어 설득력 있게 전달”한 앨범이고(비록 나는 ‘모던-록’이라는 장르적 이름이 ‘록’의 범주에서 분명하게 구분됨을 경계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본작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 비록 그 입지는, 2010년대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할지라도 ― 자리 잡고 있는 2010년대 한국 ‘록’ 장르의 완성형에 가까운 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본고는 기존에 본작에 주어졌던 많은 상찬들의 반복/재생산에 그치고 말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본작의 훌륭함에 나름의 이유를 덧붙이기를 시도한다. 가령 첫 트랙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은 본작을 말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트랙일 것이다. 4분 30초의 시간동안 오직 네 문장의 노랫말만이(해당 노랫말은 당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활동하던 성기완의 시집 『ㄹ』에 수록되어있는 시구詩句이기도 하다) 담겨있는 본 트랙은 감각적인 한국어 글귀가 구현해내는 이미지가 그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음악적 이미지들을 만났을 때 드러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이라는 아리송한 노랫말이 트랙의 문을 열 때, 그리고 그 노랫말을 읊조리는 남상아의 입에서 “스모우크-”“핫-”의 마지막 소리가 파열되어 들릴 때, 그 위로 “-커피리필”“달이뜨지않고네가뜨는밤”의 부자연스러운 속도감이 겹쳐질 때, 우리는 그러한 글귀들을 그 의미를 모르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반복되는 노랫말의 뒤로 쌓이다가 폭발하는 소리들의 향연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게 드라마틱한 구성이지만, 그 위로 또 다른 시구인 “붉은눈시울망초, 심장을누르는돌-”을 부르짖는 남상아의 목소리가 등장하며 본 트랙을 아릿한 꿈결과도 같이 만든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포착되는 시구로 뱉어지는 말소리와 연주로 구현되는 소리들의 상호 작용은 성기완과 남상아가 우리에게 제시한 최고의 결과라고 할 만하고, 차우진의 말을 빌리자면 결국 본 트랙의 “모든 사운드 효과는 결국 모국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쓰였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로서 열어젖힌 꿈결은 이후 다양한 색깔을 띤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한 색깔들은 본작의 트랙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매력과 빼어난 완성도로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의 분위기를 잇는 듯싶다가도, 중반부터 미끄러지는 경쾌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 후반부에 주술적인 반복으로서 환상을 조성하는 「꿈속으로」, ‘섹시’를 말하는 농염함을 묘하게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포장하는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 너에게 침을 뱉고 싶어지는 이 기분이라는 가슴 저릿한 노랫말을 대표적으로 서정적인 호소가 극대화된 채 울컥하게 되는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어쩌면 본작에서 가장 댄서블하고 신나는 트랙으로 기억될 수 있으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풍자로 받아들여질 만한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 전반부의 샘플과 후반부의 드론 노이즈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제주바람 20110807」, 첫 트랙에서와 비슷한 차원으로 노랫말의 두드러짐을 그리면서도 그를 경쾌한 리듬 위에 유쾌하게 풀어낸 「끝말잇기」까지, 어느 트랙 하나 빠지는 트랙이 없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트랙 별로 짜임새도 매우 훌륭하다. 본작의 최고의 트랙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은 아마 본작의 청자들에게 가장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기완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본작의 노랫말들은 본작의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앞서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의 노랫말들이 성기완의 시구였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리고 그 노랫말들이 트랙에서 어떻게 기능하였는지를 떠올려보면, 본작 모든 트랙들에 걸쳐있는 시적인 노랫말들이 본작을 통해 드러남은 성기완이 이룩한 소기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랫말들을 최종적으로 발설하는 주체인 남상아의 보컬은 그러한 성기완의 노력과 성과를 더욱 빛낸다. 글자 하나마다 세심하게 발음의 조절하고, 세밀하게 감정선을 어루만지며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는 남상아의 목소리는 한 편의 꿈결과도 같은 본작 위를 우리와 함께 거닌다. 그러한 이유들로, 나는 과감하게 본작이 2010년대 최고의 록 앨범 중 하나일 것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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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ENS, 『The Anecdote』, BANA, 2015.08

앞서 『양화』에서의 논의를 다시 떠올려보면, 우리는 2015년 당시의 한국힙합이 미디어의 침입을 어떻게 경계하였고, 한국힙합의 플레이어들과 리스너들이 ‘마초적’이라 불릴 수 있을 씬의 분위기 속에서 ‘진짜’다운 작업물, 그것도 미디어에 노출되어(혹은 타협하여) ‘마초적’인 힙합의 이미지를 희석시키지 않는 차원의 ‘진짜’다운 작업물을 원했는지를 기억할 수 있다. 그러한 2015년의 정 가운데 지점에서 발매된 E SENS의 옥중앨범 『The Anecdote』는 ― 그것이 E SENS 개인에 대한 기대였던 아니면 그 이상의 ‘진짜’ 작업물에 대한 기대였던지 간에 ― 그러한 한국힙합씬의 플레이어와 리스너 모두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준 명작으로 평가되었다. 많은 플레이어들과 리스너들이 본작에 대해 아낌없는 상찬을 건넸고, 다수의 비평매체 역시 본작을 ‘올해의 앨범’으로 치켜세웠다. 나는 이러한 상찬들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The Anecdote』는 2010년대 한국힙합에서 가장 훌륭하면서도 상징적인 작품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고에서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 그것은 내가 본작이 2010년대 한국힙합의 ‘상징’으로 기억되어야한다고 말한 이유와 관련 있는데 ― 본작에 대한 상찬의 논의가 과열되며 만들어진 어떠한 분석의 방향성이다.

본작에 대한 평가 중 가장 문제적으로 기억되고 있는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하자면, 그것은 Deepflow가 본작에 대해 “한국의 『Illmatic』”이라고 칭한 평가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Deepflow의 그러한 평가는 본작의 발매 이전부터 많은 논쟁을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본작이 대다수의 청자들을 만족시킨 다음에는 본작의 위상을 수식하는 하나의 인용구처럼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izm의 김도헌이나, weiv의 이선엽, 임승균과 같은 이들이 그들의 글에서 Deepflow의 평을 어느 정도 인용했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나는 본작이『Illmatic』이 발매될 당시와 같은 혁신을 한국힙합의 지평 위에 불러일으킨 앨범이라곤 생각하진 않지만, 본작이 『Illmatic』과 유사하다고 칭해질 지점은 본작의 형식적인 부분들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Obi의 주도 아래 짜인 본작의 소리들은 ‘골든-에라’라고 불리는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붐-뱁-소리들의 바이브를 옮겨오는 데 힘쓰며, 그러한 소리들을 뛰어난 기술적 역량과 훌륭한 노랫말들로 꽉 채우는 E SENS의 모습은 마치 『Illmatic』에서의 Nas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 대해선 이미 너무나 많은 찬사들이 오간 바 있기에 나는 말을 줄인다.

내가 첫 문단에서 지적했던 부분은 바로 그러한 찬사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것은 “한국의 『Illmatic』”이라는 인용구 아래 본작의 ‘유일무이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청자들의 담론 형성과 관련한다. 그리고 그러한 ‘유일무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본작을 2015년 당시 본격적으로 한국힙합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었던 미디어들에 대한 안티태제와 같은 작품으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성훈의 평은 대표적이다. 「Next Level」에 대해 “브랜뉴뮤직, ‘쇼미더머니’ 등을 겪으며 바라보기 민망해지고 있는 한국 힙합 씬을 약간의 판타지 부여와 함께 구원하는 것 같은 짜릿함마저 제공”한다고 말하는 남성훈의 평은 일전에 『양화』에 대한 논의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당시 한국힙합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본작을 그러한 스테레오타입이 겨누는 조건들의 안티태제와 같이 부상시킨다. 당시의,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청자들이 그러한 분석에 동의하며, 본작에 대해 ‘E SENS만이 가능한’ 등과 같은 수식어들이 따라붙는 것 역시 비슷한 차원에 있는 시선들이다.

본작에서 그러한 시선들을 부추기는 지점들이 있다면, 그것은 「Writer’s Block」의 그것만 찾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 노래하는 법, 다 까먹어버린 걔는 거래하는 법을 배웠네.”와 같은 라인들이 그러할 것이고, 어떻게 보면 다소 노골적으로도 읽힐 수 있을 「삐끗」이나 「10.18.14」, 그리고 김심야의 Verse를 중심으로 「Tick Tock」을 독해할 때 그러할 것이다. 또한 본작에 주어진 시선들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E SENS라는 아티스트가 쌓아왔던, 그리고 동시에 그에 대해 쌓아올려졌던 캐릭터와 관련할 것이다. 2013년 ‘컨트롤 디스 대란’ 당시에 한국힙합의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개코를 저격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야기는 일종의 영웅담과 같이 되었고, 그것이 2015년 당시 팽배하던 한국힙합의 ‘마초적’인 배타성과 결합하며 본작에 대한 분석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Deepflow의 인용구가, 본작이 발매되기 이전에 제시된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본작은 발매되기 이전부터 이미 2010년대 한국힙합의 중요한 역사성을 띠게 될 운명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본작이 2010년대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기억되어야하는 이유는 ― 본작이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과 퍼포먼스, 그리고 훌륭한 노랫말들의 조화를 통해 그 자체로 뛰어난 작품성을 확보하였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 ― 본작을 둘러싼 조건들과 본작에 주어진 시선들의 결합으로서, SNS 등의 발달로 음악에 대해 활발해진 담론 형성을 바탕으로 각 음악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하이프’(hype)라는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본작에 주어졌던, 그리고 지금도 주어지고 있는 ‘하이프’는 이전까지의, 어쩌면 앞으로의 한국힙합 역사에서도 유례없을 정도이고, 그렇기에 본작은 하나의 거울과도 같다. 만일 201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가 ‘좋은 음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나누는 기준점이 달라졌다고 한다면, 우리는 본작을 통해서 그러한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대중음악의 음반들에 주어지는 ‘하이프’(hype)와 관련한 현상에 대해서는 나원영이 본고보다 먼저 작성한 좋은 글을 참조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본고와 나원영의 글 사이의 연관성은 본고의 초안이 작성된 이후 피드백 및 유사성 검토 과정에서 후시적으로 확인한 사항임을 독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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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둑, 『무너지기』, Self-Released, 2018.07

다시 한 번 『무너지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앨범 커버 폰트도 당황스럽고, 노랫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 트랙들의 구성도 친숙하지 않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음악들과는 거리감이 크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 놓고 들을 수 있기에는 본작은 너무 친절하지 못하고, 불안정해 위태롭다. 그런데 이미 본작은 평단과 리스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정말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결산에 본작을 집어넣으며 본작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내 입소문을 타고 해외로까지 번지며 본작이 한국 음악사에서 가질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도대체 왜? 앞서 말했던 사항들 : 노랫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 트랙들의 구성도 친숙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것. 다른 음악에는 비판이 되는 이러한 말들이 본작에는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위태롭고 불안’한 것은 결국엔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본작을 ‘포크’라고 칭한다. 어쿠스틱 기타가 모든 트랙에서 등장해 소리의 부품을 이루며 그 코드 하나하나가 주는 떨림이 지극히 ‘포크’적이고,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목소리에도 ‘포크’의 애수가 서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본작을 두고 ‘팝’이라 하고, 누군가는 본작을 두고 ‘일렉트로닉’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맞았고, 모두가 틀렸다. 「왜?」에서 섬머소울의 등장과 함께 어쿠스틱 기타가 신시사이저와 뒤섞이는 일련의 과정, 「쇠사슬」의 기타 연주 사이사이로 굴러들어오는 전자음, 「감은 듯」과 「곡선과 투과광」에서의 지극히 ‘팝’의 색깔을 띤 멜로디. 별이 밤을 수놓듯 본작을 장식하던 전자음들이 거의 퇴장하고 어쿠스틱 기타가 전면에 등장하는 「함께 무너지기」,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며 노이즈 록의 분위기를 풍기는 「흙」 등. 본작은 특정 장르로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장르들이 중심이 없이 어지러이 꽃핀다. 그리고 그렇게 꽃피는 것들은, 자기-복제를 하지도 않고,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형태로 치고 빠지면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장르의 경계, 전형성과 정형성, 우리들의 예상과 기대, 그들과 함께 본작은 무너진다.

또 반대로 무너지기 직전의 ‘위태롭고 불안’한 것은, 그렇게 쌓여있기에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다. 본작에서는 결코 희미하지 않은, 하지만 위태로운 소리들이 서서히 쌓여가고 있다. 기타 소리가 한 폭씩 쌓이고, 그 속으로 노이즈와 전자음, 신시사이저가 들어오고, 또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목소리는 엄연히 노랫말을 가지고 있는 ‘노래’이고, 그 노랫말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추상적인 ― 어느 부분에서는 종교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 비유와 단어, 의미들이 부유하고 있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래’이다. 그런데 본작에서 그들의 ‘노래’는 ‘노래’이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켜켜이 쌓여있는 사운드들의 층의 중간 그 어디쯤으로 조심스레 넘어가 그저 같이 흘러가는 하나의 ‘소리’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쌓인 소리들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한 감각을 만들어내고, 그 감각은 우리에게 만져짐으로써 깊은 질감을 가진 다양한 모양들을 빚어내고, 그 모양들은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쌓인 소리들로 쌓여가는 감각들은, 그 소리들처럼 ‘위태롭고 불안하다’. 언제 무너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쌓이지 않은 것은 무너질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쌓이고, 무너진다’. 그런데 본작에서의 무너지고 쌓임은, 쌓이는 것이 먼저인지 무너지는 것이 먼저인지 짐작하는 것도 어렵다. 끊임없는 무너지기와 쌓임의 반복은 본작과 함께하는 우리까지 끌어들인다. 이것을 ‘압도적이다’와 같은 비평적 찬사로 수식할 수는 없다. 압도적인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본작은 절대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다. 그저 스스로 쌓아지고, 무너지고, 다시 쌓아지고, 다시 무너지고를 반복할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본작이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작은 우리에게 결코 희미하지만은 않은 소리들과 함께, 우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불러내 같이 무너지고 쌓이며 더듬더듬 나아가는 그러한 앨범이 아닐까. 그래서 본작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러한 본작의 아름다움은 앞서 말했듯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청자들까지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그러한 매료는 BTS 등이 이룩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더라도, 어떠한 프로모션, 바이럴-마케팅도 없이 자가-발매한 한국의 인디음악이 그 자체의 작품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입소문만으로 해외에까지 입지를 넓힌 것은 고무적인 사건이라 칭할만하다. 2010년대는 한국의 음악들이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위상을 드높이기 시작한 연대이기도 했다. 그러한 현상들의 더 적절한 예시는 K-Pop과 같은 다른 장르들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사실상 ‘무無에서 유有를 일구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본작의 성과 역시 높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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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A Hermitage (은서;隱棲)』, The Tell-Tale Heart, 2016.06

공중도둑이 그의 작품으로서 국외의 청자들까지 매료시킨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국외의 다양한 비평 매체들과 청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잠비나이의 활약상 역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국내 하드-록 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GMC 레코드의 산하 레이블인 ESTELLA RECORDS에서 발매한 『잠비나이(EP)』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들은 이듬해인 2011년 ‘EBS 스페이스 공감’이 주관하는 ‘헬로루키’에서 주목받았다. 해금과 거문고와 같은 국악기들을 이일우의 기타를 바탕으로 ‘독창적’이라 칭할 수 있을 흐름으로 만들어가는 그들의 소리는 실제로 새로운 것이었으며, 2012년 발매된 그들의 정규작 『Différance (차연;差延)』은 『잠비나이(EP)』에서보다 한 발 더 나아감과 동시에 그들의 방향성을 더욱 확실하게 우리에게 알린 멋진 작품이었다. 『Différance (차연;差延)』은 ‘제 1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하며 그들에게 영예를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그들의 활약상에 보다 주목한 것은 국내가 아닌 국외의 비평 매체들과 청자들이었을 것이다. 잠비나이가 2013년 WOMEX 뮤직 마켓에서 ‘OFFICIAL SELECTION’으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SWSX와 같은 뮤직 마켓, 글라스톤베리와 같은 대형 록-페스티벌에서 무대를 서게 된 것 역시 국외에서의 적극적인 조명을 바탕으로 하였다. 끝내는 미국의 유명 인디 레이블 ‘Bella Union’과 계약하게 된 행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6년에 발매된 본작 『A Hermitage (은서;隱棲)』는 잠비나이가 ‘Bella Union’과 계약한 이후의 첫 작품으로서, 우리는 본작에 대해 전작이었던 『Différance (차연;差延)』에서 확고해진 그들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를 확장시키는 작품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 전작은 각 트랙들이 ― 두 부분으로 나뉘어 움직이는 「바라밀다」와 「텅 빈 눈동자」를 대표적으로 ― 하나의 몸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구조였다고 말할 수 있고, 그렇기에 “‘앨범 전체’로서 메리트”를 가지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비나이는 본작을 작업함에 있어 트랙 “각각의 특성이나 개성에 주목”하였고, 그래서 본작은 ― 본작에서 가장 이질적인 트랙이라고 말할 수 있을 「Abyss (무저갱)」을 특히 중심적으로 ― 전작에서보다 분절적인 이야기들이 모인 앨범이라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 본작의 트랙들이 서로에게 단절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가령 「Wardrobe (벽장)」과 「Echo Of Creation」의 이어짐이 그럴 것이고,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와 「The Mountain (억겁의 인내)」와 같이 서정성을 띤 트랙들이 데칼코마니와 같이 배치되어있음이 그럴 것이다.

첫 트랙 「Wardrobe (벽장)」에서의 강렬함은 놀랄만한 것이다. 동일한 선상을 달리는 기타와 거문고 연주의 위로 해금의 소리가 들어서도, 곳곳에서 부르짖어지는 이일우의 스크리밍은 트랙의 강렬함을 더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요소는 이일우의 스크리밍인데, 이는 스크리모 밴드였던 49몰핀즈에서의 이일우의 경력을 반영하는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스크리밍이 거문고, 해금과 같은 소리들과 어우러지며 우리에게 마치 국악의 ‘창(唱)’에서의 분노 내지는 ‘한(恨)’이 가득 담겨있는 듯한 감상을 선사한다. 다음 트랙 「Echo Of Creation」 역시 악기들의 훌륭한 조화를 바탕으로 한 강렬한 연주를 선보이지만, 이번에는 심은용의 구슬픈 울음이 앞선 트랙에서의 이일우의 외침을 대신한다. 강렬한 연주의 향연 뒤로 한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들려오는 심은용의 울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역시 ‘창(唱)’에서의 그것과 흡사하며, 그것은 「Wardrobe (벽장)」에서 포착된 이일우의 외침과는 또 다른 차원의 ‘한(恨)’이 서려있는 요소일 것이다. 본작의 문을 열어젖히는 첫 두 트랙 「Wardrobe (벽장)」와 「Echo Of Creation」의 이어짐이 선사하는 강렬함은 마치 전작에서 「소멸의 시간」과 「Grace Kelly」로 이어지던 초반부의 강렬함과 유사하지만, 이일우와 심은용의 목소리가 전작의 초반부와는 다른 감상을 이끌어내며, 그것은 곧 본작을 둘러싸고 있는 감정의 바탕이 전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이를 유념한 상태로 본작에 대한 계속적인 감상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세 번째 트랙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는 첫 두 트랙의 강렬함 뒤에 자리 잡은 차분한 서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반복되는 기타와 피아노의 뒤로 다양한 악기들이 쌓여가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트랙이 진행되어 갈수록 터질 듯이 끓어오른다. 이러한 구성은 우리가 서정적이라 칭할 수 있을 ‘포스트-록’ 음악들의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전작의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빛」과 같은 트랙과도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에서의 서정성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끝을 맺는데, 폭발의 직전에 갑작스럽게 다시 한 번 들어서는 피아노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그곳에서 여러 악기들의 음향은 확대될지라도 분출함이 없이 트랙의 서정성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빛」에서 분출되던 폭발과도, 「Connection」에서 느낄 수 있었던 벅차오름과도 다른 차원의 감상을 제공하는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는 다시 한 번 본작을 전작과 구분 지을 수 있게 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Abyss (무저갱)」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트랙 「Deus Benedicat Tibi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은 궁중 음악 ‘대취타’에서의 태평소 연주의 강렬함을 시작으로 여러 소리들이 얽히고설킨 채 파괴적인 분위기를 직조해낸다. 뒤엉킨 소리들을 헤치고 나아가면 다시 한 번 우리는 「The Mountain (억겁의 인내)」에서의 서정성이 우리를 맞는다. 보다 정통적이라고 할 수 있을 ‘포스트-록’의 문법을 구사하는 「The Mountain (억겁의 인내)」는 그 제목에서 쓰인 낱말 ‘억겁의 인내’와 같이 켜켜이 쌓이던 소리들이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것들이 끝내는 화산과 같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0년 『잠비나이(EP)』 이후 6년 만에 재-수록된 트랙 「Naburak」은 원곡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훨씬 다양한 층위의 소리들을 통해 원곡과는 다른 감상을 유도해내며, 이는 『잠비나이(EP)』에서의 잠비나이가 『Différance (차연;差延)』에서와 잠비나이를 마주하며 끝내는 지금에 이르게 된 그들의 음악적 행보를 그 자체로 상징하는 트랙인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트랙 「They Keep Silence (그들은 말이 없다)」는 본작의 트랙들에서 드러난 잠비나이의 성취들을 종합하는 문제적 트랙일 것이다. 능숙한 완급조절을 바탕으로 하는 강렬한 연주와 파괴적인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지는 이일우의 그들은 말이 없다라는 목소리는 한 데 어우러지며 앞서 초반부 두 트랙에서 우리가 목도했던 격정들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헤친다. 그리고 그러한 격정은, 본 트랙에 대해 위에 첨부한 인터뷰에서 이일우가 “세월호에 관한 곡”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한 것처럼, 보다 직접적인 분노가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본작에서 잠비나이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일우가 「They Keep Silence (그들은 말이 없다)」에 남긴 “세월호에 관한 곡”이라는 코멘트와 본작에서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격정들과 함께, 본작에서 유일하게 IGNITO의 랩으로서 노랫말이 정면에 서는 트랙 「Abyss (무저갱)」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Abyss (무저갱)」에서의 IGNITO의 노랫말은 그가 그의 커리어에서 반복해왔듯 추상적인 한문 어휘로 난해하게 짜여있지만, 그의 랩은 평소대로의 음침함과 어두움, 시니컬함/냉소적임보다도 세계에 대한 관조적인 황망함으로 나아간다. “모든 인간의 대립 규칙은 간단해. 전략적인 화해, 그리고 또 공격적인 파괴”, “질문은 잠시 거두고 다만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뿐”과 같은 라인으로 대표되는 본 트랙에서의 그의 노랫말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놓인 부조리함과 그를 어찌할 수 없음으로 말미암은 절망을 직접 말한다. 또한 우리는 본작의 제목에서부터 잠비나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A Hermitage (은서;隱棲)』, ‘숨어-살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그러한 낱말은 거대한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를 표상하는 낱말일 것이고, 이는 「Wardrobe (벽장)」과 「Echo Of Creation」에서 드러난 격정, 「Deus Benedicat Tibi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에서 ‘궁중’ 음악의 사용됨2, 「The Mountain (억겁의 인내)」에서의 폭발적인 분출, 「They Keep Silence (그들은 말이 없다)」에서의 목소리 등을 그 자체로 이해시킨다.

이일우가 언급했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의 2010년대 중반은, 우리가 지나간 한국의 2010년대를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그 시기에 발생했고, 그를 바탕으로 수많은 담론들이 생산되며 공론화되었고, 또한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의 슬프고도 절망적인 현실과 사건들을 겪으며 2010년대 초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패배적인 공통감을 키워나가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발매된 본작은 모두가 겪었던 시기의 이야기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소리들로 풀어내고 또 부딪친다. 그래서 본작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파고드는 강렬한 상흔일 것이고, 또 그러한 세상에서 ‘숨어-살이’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어떠한 메시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본작은 그 자체로 지나가버린 2010년대를 상징하고, 기억할만한 가장 적실한 작품으로 남았고, 그렇기에 나는 본작, 잠비나이의 『A Hermitage (은서;隱棲)』를 2010년대 최고의 한국 음반으로 올린다.

 
  1. 또 하나 아쉬운 것은, 글의 분량 상 각 음반 별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령 f(x)의 『4 Walls』는 제가 설명한 부분들 이외에도 또한 당시 SM이 어떻게 해외 작곡팀과 협력하며 ‘그들만의 소리’를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중요하게 설명되어야 할 음반일 것입니다(『4 Walls』와 SHINee의 『View』와의 연관 또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분을 생략하였습니다.
  2. 이일우는 인터뷰에서 해당 트랙에 대해 “‘당신들 모두 왕이니까, 기운 내고,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란다’고 보내는 응원가”라고 말하지만, 해당 트랙에 자리한 파괴적인 소리들은 나에게 이일우가 제시한 방향과는 다른 방식의 독해를 수행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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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3 thoughts on “온음 2010년대 결산 : 국내음악 by. coloringC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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